제21화
“아. 이거, 한번 찍먹해 볼텨?”
저 놀라는 눈 좀 보라지.
내가 백화점에서 쇼퍼를 통해 구매할 때부터 그녀는 보고를 받았을 거다.
내가 뭘 사고, 뭘 골랐는지를.
그렇다 해도, 이런 식으로 직접 보게 되면 또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내 뒤로는 온갖 무구들이 쌓여 있었다.
무려 60억 원어치 무구다.
저 무구들, 그녀로서는 고철로 표현하기에 충분한 장비들이긴 했다.
슈트처럼 가볍지도, 개량받지도 않은 장비들이니까. 경험 쌓인 헌터들이라면 저런 장비는 줘도 쓰지 않을 거였다.
그런 게 쌓여 있다.
잘해야 서너 개쯤 가져올 거라 예상했을 텐데.
이걸 다 가져왔으니, 그녀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그녀의 놀람은 이상한 방향으로 갔다.
“내가 모르는 사이, 고철을 먹는 불가사리 능력이라도 각성했어요?”
“왜? 각성했으면, 보태 주게?”
혹여나 내가 이중 각성이라도 하지 않았나 하는 방향이었다.
“당연한 소리죠! 이런 쇠가 아니라, 특급 미스렐이라도 구해 줬을 거예요!”
“와. 미스렐이라니.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건 고맙긴 한데.”
불가사리.
한국 신화 속에 나오는 요괴 중 하나. 철을 집어먹고, 그 철을 통해 힘을 키우는 능력을 통칭 불가사리로 칭하긴 했다.
그러한 능력을 지니고서 후에 유명해지는 자 중에서 강철군이란 녀석이 하나 있긴 한데.
‘이 녀석은 아직 나올 때가 아니긴 하지? 생각해 보면 이제 슬슬 각성할 때니, 챙기긴 해야 하나.’
일단 요 녀석은 나중에 탐색하는 걸로 패스고.
어쨌거나.
어떤 강철을 먹느냐에 따라 성장도가 다른 불가사리 능력이니만큼.
금속 중 최상급으로 칭해지는 미스렐을 주는 것도 김시연에겐 남는 장사일 터였다.
하지만 아니다.
“아쉽게도 아냐. 아무리 나라도 아직 불가사리는 못 얻었다고?”
“꼭 나중엔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시네요.”
“글쎄. 흐흐.”
나중에라도 강철군이 빌런으로 빠지면 잡아 먹을지도 모르지.
라는 말까지는 생략했다.
어쨌거나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때다.
“내가 보여주려는 찍먹은 다른 거거든.”
“대체 무슨…….”
“한번 봐 봐. 영혼 분리.”
[당신은 기술 : 영혼 분리를 사용했다.]
영혼을 분리하는 거부터 시작했다.
내 몸에 내포된 거대한 영력이 나눠진다. 그 수는 내 옆에 자리한 수없이 많은 고철들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수.
50.
스스스슷-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분리된 영혼이 당신의 무구에 깃들었다.]
나뉜 영혼을 한 점도 남김없이, 무구들에 깃들게 했다.
그때부터 무구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철컹. 철컹.
땅에 내팽개쳐져 있던 갑옷이 스스로 조립되며, 자신이 전사라도 되는 양 무기를 챙겨 들었다.
무구 자체만 움직이는 거도 있었다.
바닥에 있던 검이 둥실 떠올랐고. 때로 여러 개가 스스로 얽히며 십(十)자 형태를 이뤄냈다. 활의 경우 스스로 영력 화살을 수십 발 장전하기까지 했다.
나조차 예상치 못한 수 없이 많은 형태의 병사들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합쳐지고 쪼개지길 반복하여 만들어진 수가 40.
단 10초.
이른바 영혼으로 이뤄진 군단이 만들어지는 데 걸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종의 하나의 군대가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꼭 수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김시연은 그걸 꼬집었다.
“영혼 병사네요. 하지만, 이 정도 수는 결코 조종할 수 없잖아요?”
“과연 그럴까?”
“잘해야 한계가 열 기라고요. 그 이상은 조종이 힘들잖아요.”
수가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질이었다.
소환을 해 냈다 하더라도, 그녀 말대로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면 끝이다.
일개 영혼 술사 개인이 40이 되는 병사를 조종하는 건 분명 불가능한 일.
‘회귀 전에도 잘해야 열 정도 움직이는 게 다였지. 나로서도 많이는 이용하지 않았고.’
하지만 한계는 깨라 있는 법이었다.
지난 이틀.
그녀가 빌런을 소탕한다며, 내 뒤를 봐주고 있던 사이.
나라고 해서 놀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계를 봤지.’
영웅의 전장과 실제 현실을 오고 가며 내가 다룰 수 있을 영혼 병사의 한계치를 체감했고. 동시에 그간 경험을 살려 끌어 올렸다.
내 뒤를 장식한 영혼 병사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군단이요, 내 무기였다.
이 모든 일을 하게 하는 건 특성 하나.
[특성이 발휘될 대상을 확인했다.]
[당신의 특성 : 전투 지능이 자동 발휘된다.]
[특성 : 전투 지능이 당신의 병사를 강화한다.]
바로 특성 : 전투 지능 덕분이다.
이 특성은 내가 영혼 병사에게 내려야 할 세세한 부분들을 저절로 채워 주고 있었다.
“잘 봐. 모두 안으로 들어가.”
“하나씩 조종해 봐야 그게 될 리가…… 어?”
지금도 봐라.
철컥. 철컥.
내가 신호를 보내자 강철로 이뤄진 영혼 군대는 던전 게이트로 발을 디디고 있었다.
발걸음엔 보통의 영혼 병사는 보일 수 없는 절도까지 보인다.
일반 병사는 절대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걸 아는 김시연은 눈을 더 크게 떴다.
영혼 술사의 한계치라 칭해지는 열.
회귀 전 지금 기준으로는 잘해야 둘 정도.
나는 그 스무 배를 넘는 병사들을 조종하고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어떻게 한 거예요?”
“내가 불가사리 능력은 없어도, 애들 조종하는 덴 딱 맞는 능력을 얻었거든. 그 능력 덕분이지.”
“뭔데요?”
그녀는 내 답을 기대한다는 듯, 놀라 묻고 있었다. 하지만 쉬워서야 되겠나.
“업계 비밀이야.”
“에?”
“알아서 알아내 봐. 그럼 다음에 보자고. 냥곰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어서 들어가자!”
나는 그녀에게 특성을 가르쳐 줄 생각이 전혀 없으셨다.
‘어떻게 했는지 알려면 골이 깨질 거다. 흐흐.’
아직 전투 지능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한 녀석들은 드물었다.
다들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다.
그 상황에 잘 써먹는 걸 보여줬는데, 어떻게 알아내겠는가.
절대 모르지.
뭐, 가르쳐 주자면 못 가르쳐 줄 거도 없긴 한데.
언제부턴가 그녀를 놀려 먹기에 취미가 들린 나였거든.
‘이게 꽤 쏠쏠하단 말이지.’
전생에 불퇴권사라 불리며 나찰 같던 김시연.
현재의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그녀.
그 사이에서 오는 갭이라고 하는 건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그러다 보니 도무지 놀리는 걸 그만둘 수가 없달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가까이 다가와서까지 물어보지만.
“알려 주세요! 바로 들어가지 마시…….”
“흐흐흐.”
나는 픽 웃어 주고는.
파아앗-!
나는 던전 개미둥지에 진입했다.
* * *
<개미둥지>.
조각 나 버린 세상에 개미들만이 가득했다.
이름 그대로 만들어진 던전 안에 몬스터는 개미뿐.
일개미, 병정개미, 여왕개미로 구성된 단순한 던전이다.
그러나 구성은 단순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복잡성은 결코 적지 않았다.
개미는 말 그대로 군집체.
-키이이이!
-키익!
자신들의 둥지에 침입자가 들어서는 순간 기이한 호르몬을 뿌리게 돼 있었다.
호르몬은 곧 동지를 불러들이는 신호!
-키이이!
-캬아!
신호를 받은 개미들은 하던 일을 멈춘다.
그 뒤 그들이 움직이는 건 오로지 침입자들을 향한 돌진뿐이었다.
돌진은 강렬했다.
일개미라 해도 그 크기가 중형견만 하다.
호랑이만 한 병정개미들도 널려 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쉼 없이 돌진해 오는데 우습게 볼 수 있을 리가.
최하급 던전이라고 방심하다가는, 순식간에 전멸을 면치 못했다.
‘그러니 쉽게 안 오는 던전이지. 대신 부산물은 쩔어 주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어지간한 길드에서 유망주니 루키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이 아니면 오지도 않을 곳.
설사 루키라 해도 어려움을 느낄 이곳에서.
“와!”
“와우. 이러면 저희 할 거 없는 거 같은데요.”
“…….”
던전에 진입한 우리는 잔뜩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
본래라면 진입하자마자 상대해야 할 일개미들. 그들을 대신 상대해 주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차아앙-!
전투 지능이 새겨진 영혼 병사들이었다.
우리를 대신해 전선을 형성하고 돌격을 막고 있었다.
전투 방식도 예사롭지 않았다.
전사 형태를 이룬 병사들이 전열에 섰다. 전선을 만들어 내며, 개미를 막아섰다.
그 틈바구니에서 무구로 된 병사들이 활약했다.
드드드득-
그들은 틈을 노리며 제각기 실력을 뽐냈다.
검에 깃든 병사는 검술을, 창에 깃든 병사는 창술을 쓰는 형태였다.
그 옆, 기형 병기는 괴상한 방식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 실력이 얕진 않았다. 특성 전투 지능에 내재된 전투 기술 덕분이다.
‘이야 저건 나도 배워야겠는데.’
되레 나로서도 감탄이 일만큼 굉장한 기술들을 뽐내곤 했다.
40의 영혼 병사들이 뽐내는 강력한 위력!
[당신은 일정량의 전투 경험을 획득했다.]
[당신은 일정량의 전투 경험을 획득했다.]
[당신은 일정량의 전투 경험을 획득했다.]
[당신은 등급이 상승했다.]
이 몸은 그저 영력만 뿜어내 줌으로 할 일은 끝이었다.
영혼 병사들이 알아서 움직였다.
자동 사냥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야말로 압도적 위력!
미래 그룹과 한 계약이 없었더라면, 나 혼자 혼자 쳐들어와 쓸어버려도 됐을 광경이다.
덕분일까.
만들어진 여유 속에서, 던전 안에 들어 온 파티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 파티에 들어온 자는 나까지 총 넷.
그중 익숙한 얼굴은 하나였다.
‘냥곰이는 여전하고.’
바로 냥곰이, 김민하.
한 손에 활을 들고 슈트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전과 같이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기세.
다른 자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영력을 느낄 수 있는 나로선 그녀의 기세가 정확히 느껴졌다.
“수련하고 온 거야?”
“…….”
끄덕.
“잘했네.”
기세가 오른 증거는 수련.
지난번에 했던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로 마음먹은 건가.
그녀는 꽤 강해져 있었다.
아마 미래 그룹에서 만들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강하게 굴렀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기세가 강해질 리 없었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뭔 아직도 얘기를 안 하냐. 컨셉질은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정신적인 문제가 있나?’
여전히 이어지지 않는 대화가 문제였다.
고개로 대답을 하는 걸로 봐서는 내 말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달리 대화가 되지는 않는다.
전투 시에 대화는 필수적인 걸 감안하면, 이는 큰 페널티였다.
“잘 따라 올 수 있겠지?”
끄덕-
전에 본 타고난 센스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건데.
이래서 계약 조건에 냥곰이의 보호가 있는 듯했다.
하기야 내게 있어 이 정도 페널티야 페널티도 아녔다.
철컹- 철컹-
영혼 병사들이 있는 한, 이딴 던전 나 혼자도 쓸어버리는 게 가능하니까.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미래 그룹은 걱정이 되는 건지 무려 둘을 더 붙여주셨다.
“쇼맨쉽 죽이시네요?”
“그쪽 복장만큼은 아닌 거 같은데?”
“흐흐. 좀 정신 사납긴 하죠? 그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부여받은 게 광대놀음이거든요.”
“이야. 광대? 희귀한 걸 받았네.”
“이진성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죠.”
그 둘 중 하나는 광대 옷차림을 하고 있는 이진성.
이 자는 미래 그룹의 새로운 루키로서, 받은 가호는 광대놀음이다.
일명 피에로.
가호 : 광대에 대해 알려진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유희의 성좌가 지켜본다는 이야기도 있고, 광대라는 성좌가 따로 후원한단 이야기도 있다.
가호를 만들어 낸 성좌 자체를 모를 만큼 그만큼 밝혀진 게 없다.
그나마 확실한 건 하나.
“얻은 스킬은? 저글링은 기본이겠고. 외줄 타기로 움직임은 요란하겠네?”
“이야. 다들 잘 모를 텐데.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특기로 칼 던지기도 있습니다. 흐흐.”
“좋네.”
강력하다는 거다.
저글링, 외줄 타기, 칼 던지기, 불 쇼, 차력…….
소위 광대놀음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기술로써 사용한다.
보여주기용 광대 기술이 아니라, 사냥용 기술로.
덕분에 그 강력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재밌는 건, 그 옆에 있는 자도 그리 약하진 않다는 거다.
“이쪽 광대가 이진성이면, 이쪽은 이진아?”
“……맞아요.”
이진성의 바로 옆, 이진아.
이름이 비슷한 건, 그녀가 이진성과 쌍둥이이기 때문.
“어느 쪽이 위야?”
“저요.”
“아니, 전데요.”
“야!”
“쓰읍! 바깥에선 이러지 말자니까!”
누가 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실력도 우열을 가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미래 그룹에서 알려 주기로 이진아가 가진 가호는 침묵의 암살자.
조용하고 은밀하게, 적을 사살하는 게 그녀의 가호가 가진 주특기였다.
‘침묵의 암살자라……. 이것도 희귀한 가호인데 말이야.’
분명 그녀의 가호는 얻기 쉬운 가호는 아니었다.
전생에도 침묵의 암살자란 가호를 지닌 자는 소수였다.
그러한 소수가 나설 때면 꽤 많은 자들이 죽곤 했다.
나만 해도 회귀 전 두 번은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그 두 번 다 결코 쉽진 않은 대결이었다.
한 번은 치명상, 다른 한 번은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
가호의 경지가 완숙에 다다를수록 그들은 더 은밀해졌다.
강력함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게 침묵의 암살자였다.
그렇다고 광대놀음도 결코 약하지 않은 걸 보면.
‘둘 모두 어느 성좌의 보살핌을 직접 받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냥곰 만큼이나 이 둘의 존재도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하다.
“뭐 위는 누군지 중요하진 않고. 가호로 보아하니 둘 다 축복받은 건 확실하네?”
“축복은 무슨!”
“……이건 장난질이죠. 쌍둥이인데 봐 봐요. 가호라고 해도 비슷한 걸 주지, 너무 다르지 않아요?”
“후음. 보아하니, 둘 다 성격이 다르잖아?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
“씁…… 그건 인정요.”
“…….”
“뭐 여튼…… 둘 다 오래 살아 남아보도록 하자고.”
특이한 가호들에 얼굴까지 낯이 익은 걸 보면 이 둘 어디서 본 거 같기는 한데.
‘꽤 재미난 조합이라 기억이 나야 하는데 말이지.’
기억이 희미한 걸 보면 전생 중간에 죽은 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냥곰이, 침묵의 암살자, 광대에 나까지.
던전 정복 파티로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제 몫을 다 해줄 것이 분명했다.
재밌는, 아니 아예 압도적인 전투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자자, 그 기대를 증명하자면.
“쓸러 가자.”
“예!”
“그래요, 가죠.”
“…….”
우선 눈앞의 것들부터 전부 쓸어 버리는 게 시작 아니겠는가.
-키에에엑!
-키익!
영혼 병사들이 버티는 전선을 확대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