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이들이 지닌 실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영혼 병사나 되는 게 상대했으니 쉽게 처리를 했을 뿐이다. 어지간한 헌터는 몰려온 이놈들한테 당했을 거다.
‘제대로 전투력도 발휘 못 하겠지.’
던전 안에서 전투랑 이 현실에서의 전투는 또 달라서다.
몬스터가 아닌 인간에게 힘을 쓴다는 상황.
전투의 급작스러움.
저들이 짜놓은 판에서의 불리함.
온갖 이유들이 있어 저런 놈들과 전투가 어렵고 힘들다.
그러한 이유로다가, 나는 요놈들로부터 정산받을 게 많을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과연 이들을 누가 끌어들였느냐였다.
답을 알아내는 건 쉬웠다.
“끄어어어억!”
“꺽……!”
때가 덕지덕지 묻은 영혼을 조금 어루만져 주면 될 뿐이거든.
[당신은 상대의 영혼 일부를 흡수했다.]
[당신은 가호 : 포식의 근원에 대해 점차 깨닫고 있다.]
겸사겸사 보너스도 얻고 말이다.
그렇게 나만의 정산법으로 알아낸 날 노리는 놈에 대한 정체.
“하, 참. 그 새끼들이 보냈다고? 이 망할 사채업자 놈들이?”
“네, 넵…… 맞습니다. 저희는 그저 시키는 대로 일을 했을 뿐…….”
“어디서 말장난이야? 의뢰받고 사람 죽이는 게 네놈들 일이니, 시키는 대로 일한 게 죽을 죄인 거지.”
“……크흣.”
내게 이미 한 번 털려 버린 사채업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윗선인가. 그들 사채업자의 쩐주이자 물주가 되신단다.
제 돈을 불리자고 쩐주 노릇을 했는데, 나한테 털려서 손해가 막심하단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보낸 게 저들.
끈질긴 게 놈들답다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니 죽을 곳을 찾고 있다 해야 하려나.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뭐, 피라미가 아니라 전문가를 보낸 걸 보면 내 나름 성장을 한 거 같기는 한데.”
“……커흑. 대, 대단하신.”
“시끄럽고.”
“끄어억!”
[당신은 상대의 영혼 일부를 흡수했다.]
어찌 됐든.
무슨 이유든 간에 상관없다.
나를 노리고 달려왔다면 처리해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문제는 던전 사냥 바로 직전이라는 거다.
이리 나서는 건 좀 귀찮았다.
그렇다고 뒤통수 맞을 걸 두고 갈 순 없잖나.
고민이 됐다.
‘어쩐다……. 근데 생각해 보면 꼭 내가 나설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다행히도 그 귀찮음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나는 잽싸게 품에 있던 폰을 들어 연락을 넣었다.
연결음이 얼마 가지 않아 목소리로 변환됐다.
-여보세요? 던전 행이 곧인데 이렇게 연락 준다는 게 왠지 불안한데요. 무슨 일 있죠?
“빙고! 감이 좋은데?”
-……하아.
들려오는 김시연의 목소리.
잔뜩 피로해 하는 가운데서도 그녀는 제 할 일만큼은 철저히 했다.
-또 무슨 일이에요?
“그게 있잖아.”
선생님에게 심술부린 아이를 고자질하듯이.
한편으로는 장난기를 머금고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해서 처리를 해줬으면 하는데?”
그리고 덤으로 원한 처리.
그 방식은 내가 원했던 방식이며, 전생에도 내가 행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이에는 이요, 피에는 피인 방식.
그를 들은 김시연은.
거부라도 할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던전 행 바로 이전, 이틀. 그러니까 던전 들어가시기 전에 완벽히 처리해 드리죠. 신경도 쓰이지 않게요.
“오우. 그게 되나?”
-마침 진행하던 작전이 하나 있었으니까요. 그에 하나 끼워 넣는 거쯤 어렵지도 않아요.
“오호?”
작전이라.
마침 이 시기쯤 사건 하나가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긴 했다.
‘그거랑 이거. 둘은 전혀 관련 없지 않나? 이걸 과연 어떻게 끼워 넣으려나?’
과연 그걸 이 사건과 어떻게 엮으려는지는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회귀자라도 없던 걸 예지하진 못하거든.
-그러니 기다려 보세요. 아주 좋은 소식을 전달 드릴 테니까.
“그거 기대되는데.”
나와 다르게 그녀는 완전히 계산이 끝난 듯했다.
아주 담담하게.
단, 이틀 만에 내가 원한다고 한 일을 행해 주겠다 약속해 주고 있었다.
‘어디, 정말로 기대해 볼까?’
그녀가 어찌 그림을 그려 줄지가 기대됐다.
* * *
내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빠르네.”
나와 통화가 끝나고 나서 1시간.
곳곳에 뉴스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짜여있는 작전처럼.
-미래 그룹 산하 길드,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협력?
-서울에 숨은 수많은 빌런, 일망타진되다?
-모두가 서울의 치안에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 외신도 놀란…….
“크흐…… 뭔 국뽕 제목 같은 게 다 있냐?”
온갖 버전으로 재생산되어 있는 뉴스가 가리키는 바는 하나.
서울에 있는 빌런들을 처리하겠다는 뉴스였다.
빌런.
말 그대로 악당이고, 현재는 각성 능력을 갖고 범죄에 사용하는 범죄자들을 총칭했다.
후에 [공허]가 다가올 적에는 인류의 배신자들을 통틀어 빌런이라고도 칭했다.
이러한 빌런을 처리하겠다는 뉴스가 곳곳에 내걸려 도배가 되다시피했다.
어떠한 조직적 움직임이 있지 않고선 힘든 모습이었다.
다시 두 시간이 더 지나.
그에 호응하듯 반응이 달리기 시작했다.
-빌런 새끼들, 안 그래도 신경 쓰였는데 잘 됐네!
-캬. 이런데 미래 그룹이 나서 주네? 역시 미래 그룹!
-5252 믿고 있었다고!
꽤 다수가 호응했다.
마치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 조작이라도 된 듯 그 말투가 어딘가 어색하긴 했다. 그러나 분위기를 끌어내는 덴 문제 없었다.
그러한 분위기가 커서일까.
-아무리 정부 협력에서 일어난다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업 산하 길드가 공권력을 휘두르는 건 문제가…….
-이건 뭔 개소리야?
-아, 쫌. 이상한 소리 할 거면 걍 보지 말든가.
-치안 지켜 주면, 덕분에 잘 살 거면서 참 말 많네? 억까 자제요.
그나마 제정신을 가진 자들이 글을 쓰지만, 이미 뜨거워진 호응 여론에 의해서 묻혀 버릴 뿐이었다.
빌런 소탕 작전은 오래전부터 기획이 됐다는 듯 뉴스가 도배됐다.
호응은 만들어짐으로써 여론이 빌런 소탕으로 뜨거워졌다.
이게 우연일까? 그럴 리가.
“작전 하나 잘 짰네. 과연 김시연인가.”
이건 완벽히 잘 짜여진 작전이다.
이런 식으로 판을 짜 버리게 되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빌런으로 둔갑시키기가 편해진다.
누굴 빌런으로 둔갑시키냐고?
사채업자나 쩐주.
능력을 지니지 못한 일반 범죄자를 빌런으로 둔갑시키는 거다.
-서울에 있는 빌런 조직들 이대로 괜찮은가!?
-서민의 삶까지 위협하는 빌런이 있다?
어려운 것도 없다.
몇 개의 뉴스만으로, 서울 내 범죄자 여럿은 빌런 조직이 돼 버렸다.
아주 완벽한 둔갑이다.
그렇다면 남은 물음은 하나다.
왜 이들을 둔갑시키느냐?
“잡기가 편해지니까.”
일이 쉬워져서다.
평소라면 사채업자나 쩐주 같은 것들은 모순되게도 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
범죄 사실을 알더라도 쉽게 말해 냅다 쳐버릴 수가 없다.
조사하고, 영장을 발부하고, 구속시키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인권도 문제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빌런으로 둔갑시키면 문제는 달라진다.
빌런에게만 발현되는 법이 있다.
이른바 <이능력자 범죄 대응 특별법>.
특별법 앞에서 빌런으로 낙인찍힌 자는 끝이다.
잡기 위한 수많은 절차가 생략된다.
이른바 인류 생존을 위해서 주어진 게 이능인데, 이를 범죄에 사용했으니 인권조차도 없단 논리!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거 같다만, 이능력이 발휘된 초창기에 만들어진 강력한 법 중 하나였다.
김시연은 이를 노린 거다.
“슬슬 시작인가?”
고작해야 다섯 시간.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이 당당하게 찍혔다.
-빌런 조직 진압 시작!
-진압을 위한 위풍당당한 모습들!
미리 진압을 준비하고 있던 경찰들과 특수부대.
그에 호응하듯 옆에 서 있는 미래 그룹 산하 길드원들이 있었다.
헌터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미리 협력이라도 구해 놓은 듯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길드들이 몇 더 보였으니까.
조직적이고, 또한 큰 규모.
김시연의 말대로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절대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나? 공교롭긴 하네.’
생각해 보면 이 작전의 시작은 날 위해서는 아니었다.
전생에도 이러한 작전이 있었다.
이른바 <서울 빌런 퇴출 작전>.
전생의 이 시기쯤에 이뤄진 작전 중 하나였다.
그 결과로 꽤 많은 빌런이라 하는 놈들을 서울, 경기 바깥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던 작전이었다.
덕분에 일시적으로 치안이 꽤 좋아졌었다.
그에 더불어 퇴출 작전에 참여했던 길드들에 대한 민심도 폭등했던 걸로 기억한다.
길드원 중 꽤 많은 스타도 나왔었다.
그들은 새로운 영웅이 됐고, 영웅은 곧 길드를 대표했다.
그러한 영웅들을 이용해 미래 그룹을 포함한 수많은 길드가 점차 영향력을 키우는 발판이 됐다.
언제고 정부를 뛰어넘는 거대 세력이 되는 발판이 이때 마련된 거다.
그 시작에 이런 식으로 내 일까지 끼어 있는다라.
그걸 보고 있자니 감탄이 나왔다.
“내가 말한 쩐주가 여기 끼워져 있다, 이거지. 햐. 이걸 이렇게 그린다라. 확실히 머리가 좋다니까.”
다시 일곱 시간이 지났을 때.
-제압해!
-끄아아악!
-거기 막아!
-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일부 길드는 아예 보라는 듯 빌런 진압을 위한 생중계를 시작했다.
현실에선 보기 힘든 이능력들이 난무하고.
빌런과 헌터의 대결이 펼쳐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화염이 뿜어지나 싶더니, 온 곳곳이 얼음으로 가득 찼다.
땅은 뒤틀리다 못해, 뭉개지는 건 예삿일이었다.
타아앙- 탕-!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의 일인지, 총소리는 숙소에 머무르며 뉴스를 보는 내게까지 들릴 지경이다.
“크흐. 실시간 전투로구먼, 오늘은 영웅 전장 시청자 수가 좀 줄겠는데.”
전투는 하루가 지나도록 이어졌다.
-빌런 조직 ‘갈음’ 전 조직원 제압 완료!
-경기도로 도망치는 빌런을 추격하다!
-영등포 조직원 전원 소탕!
곳곳에서 뉴스는 생산과 재생산을 반복했고.
-캬. 미쳤네.
-우리나라 빌런이 이리 많았나?
-그 많은 걸 다 쓸어버리고 있음!
-이제 좀 바깥에 편히 나가겠네.
-언젠 못 나갔냐? 이거도 다 쇼임! 쇼!
-아 시끄러! 이게 쇼 같으면, 다른 나라 가서 살든가.
-ㅇㅈ. 저기 위나라라도 가서 통제받는 건 어떰?
-그게 나라임?
-그건 ㅇㅈ.
이에 호응하듯이 인터넷은 달아올랐다.
그렇게 다시 하루.
보이는 뉴스 화면 수많은 자들이 검거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서울 사채업자들에게 쩐주 역할을 하고 있는 김대준.
그를 잡는 일 따위.
수많은 뉴스에 묻히기에 충분한 사이즈가 되었다.
실제로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가 만들어 낸 그만의 궁전.
그곳에 평소라면 들이지 않았을 헌터들이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는 당황한 가운데 외쳐 봤지만 소용이 있을 리가.
“커윽…… 나한테 이걸 왜 그러는 건데. 내가 소싯적에 너희 그룹에 얼마나 도움을 준 줄 알아?”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이 일을 위해 김시연이 손수 나섰다.
그녀가 직접 김대준을 찾아왔다.
김대준.
한때 한국에서 내로라할 정도로 거대한 사채업자.
채무자의 골수까지 빨아들여 올라간 그는 이젠 기업만 상대해 주는 명동 사채업자를 수준을 넘어 그 위를 준비하고 있는 쩐주 중 하나였다.
근래 들어서 그는 쩐주를 넘어 이다음을 넘보고 있었다.
그도 언제까지나 저 아래서만 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그에게 급작스레 들이닥친 김시연이라.
횡액이다 못 해, 재앙이었다.
그녀 앞에선 그가 그간 준비한 경비원들도 수많은 함정조차도 쉬이 돌파돼 버렸다.
남은 거라곤 절망뿐이었다.
그도 독한 자였다. 그 절망을 붙들어 발악해본다.
“너! 너! 내가 이대로 물러날 줄 알아? 내가 이리 죽어도…… 내 뒤를 봐주는 자들은.”
“어머. 그들도 당신과 같은 처지일 거라곤 생각 안 해 봤어요?”
“아…… 아아…….”
하지만, 진실은 아픈 법이었다.
김시연의 입에서 터진 진실에 그는 자신이 하는 발악조차도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쿠웅.
순간, 그의 몸은 저도 모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김시연은 그런 김대준을 더없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저자에 의해 무너진 자는 수없이 많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덕분일까. 그녀는 김대준의 처우를 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처분해.”
“옙!”
그 처우. 단 한 마디면 충분했다.
“아아악! 살려 줘! 살려 주라고!”
처분이 뭘지 알고 있는 김대준은 크게 외쳐보지만, 저항은 할 수 없었다. 끌려갈 뿐이었다.
그런 그를 김시연은 한참 서슬 퍼런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뒤.
김대준만의 궁전을 끝내 부서트리고서야 미래 엔터에 복귀한 그녀.
어느새 그녀는 서슬 퍼런 눈길을 지우고 있었다.
대신, 무언가 기대된다는 눈빛을 하고는.
“그럼 하나는 끝인가? 슬슬, 시간이 된 거 같으니 아가씨 데리고 움직여야겠네.”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지한휘를 맞이하게 된 그녀.
사채업자를 처리할 때도 나찰과 같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지한휘 앞에선 그 표정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여어, 일을 크게 벌였던데? 나 나름 감탄했어?”
“감탄 이전에, 그 고철들은 다 뭐예요?”
“아. 이거, 한번 찍먹해 볼텨?”
눈앞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광경에는 그녀로서도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