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그럼 전 이만…….”
“에이, 그건 섭하지. 너도 찍먹은 해 봐야 하지 않겠어?”
“그건 말이 다른…….”
“언제 내가 찍으면 봐준다 했나?”
“……X발 놈이!”
“옳지.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크하아아악!”
물론, 그 끝은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자, 다음!”
“히익!”
내 아름다운 교화 작업은 저녁 늦게가 되도록 한참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는.
“끄으으…….”
“흐어어엉…….”
서른이 넘는 폐인들이 사무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 왜 서른이 넘냐면.
중간에 지원을 왔다. 애들을 구하겠다고.
감동적이지 않은가.
‘아직은 의리란 게 있다니까. 망하기 전보다는 덜 삭막하다니까.’
지원이라니. 망하기 직전 전생이었다면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지원은커녕 되레 뒤통수나 더 쳐댔겠지. 하나라도 더 뜯어먹으려고 말이다. 아주 아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마지막 결사대가 그리 모인 게 기적이었는데 말이야.’
마왕 벨린카니스를 죽이기 위한 결사대는 그 존재 자체가 기적이요, 희망이었다.
이런 광기에나 잡아 먹히고 있는 겨우 나 따위가 살아남아 그들을 대신하기엔 너무도 대단한 존재들이었다.
하…….
“이런 꼴들이나 보자고 내가 그리 발광하며 버텨낸 건 아닌데 말이다.”
“크흐으…….”
그 대단한 존재들이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던 세계. 그 세계의 구성원이 이런 버러지들이라는 게 우스울 따름이다.
그런 자들을 대신해 남은 게 나라는 거도…….
“으차차. 감상은 여기까지 해야지. 원래 안 이랬는데, 이거 왜 이러는지를 모르겠네. 유라 그 녀석은 이유를 알라나.”
회귀의 부작용인지 뭔지, 되지도 않던 감상에 빠질 뻔했던 나는 생각하기를 관뒀다.
대신 널브러진 놈들을 발로 툭툭 치우며 사무실 바깥으로 나설 뿐이다. 계속 여기 있다간 정신이 더 헤까닥 나갈 거 같으니까.
저 비명 소리와 고통들이 자꾸 나를 자극하거든.
그런 의미로다가.
“오늘은 좀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다시 돌아간 집은 또 사람들에 둘러싸여 최악일 테니, 다른 곳을 향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 * *
내가 갈 곳은 원룸은 아니었다.
몸을 숨기고 움직여 봐야 원룸 앞엔 사람이 득실득실 있을 게 분명하니까. 유망주에게 들러붙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 수가 두 배는 늘어나 있을 거다.
‘가 봐야 개미지옥에 빠지는 거지.’
스스스스-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는 없는 터. 그림자 안에 몸을 숨기고 내가 가는 방향은 자연스레 원룸이 아닌 정 반대 방향이 됐다.
싸구려 원룸이 있는 곳이 아닌, 보안 하나는 철저히 지켜지는 곳.
“캬. 아직 막장에 안 가긴 했다만…… 그래도 저건 호화스럽네.”
내 바로 앞.
호화스럽다 못해 사치스러운 112층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 내가 발을 디딜 곳은 바로 호텔.
띠리링-
86층에 도착하였습니다.
무려 타고 내리는 엘리베이터에서도 안내를 해 주시는 호화로운 건물이셨다.
‘크흐. 86층이라니. 다 망해 갈 때는 30층 건물도 유지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는데 말이야.’
전생에는 점프를 하든 영혼을 쓰든 해서 86층 높이까지 올라가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내 힘으로 오르는 거와 기계가 올려 주는 건 또 다르지 않은가. 오랜만에 느낀 부유하는 기분이 제법 좋았다.
‘엘베 타는 거도 사치라 느끼는 나란 놈. 소박한 건지, 불쌍한 건지. 쯔쯧.’
내려서 앞에선 나를 기다리는 건 무려 고오급 정복을 입은 호텔리어.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숙박을 좀 하려고 하는데……요.”
아무 데나 반말을 지껄일 필요는 없겠지. 고급 엘베 덕분인지 예의가 주입된 기분이다.
꼭 기분이 아니어도 내가 그렇게 글러 먹은 놈은 아니니까.
“숙박 말씀이십니까? 예약을 하셨으면 혹시 이메일이나, 어플로 확인이 가능한데 도와드릴까요?”
“예약은 안 했습니다. 바로 머물려고 하는 건데, 혹시 방 없습니까?”
“있기는 합니다마는…….”
아, 왜 뜸을 들이는 거지.
호오. 슬쩍 바라보는 저 눈빛. 흡사 하이에나가 먹잇감을 가늠하는 듯한 스캔이었다. 이해는 갔다. 내 행색이 그리 좋은 행색은 아니지.
복장이 안 좋다고 입구에서부터 쫓겨나는 시대는 아니다만. 신경은 쓰인다 이거냐.
그래도 예의 주입은 제대로 되어 있는 건지, 호텔리어는 조심스레 말을 다시 꺼냈다.
“죄송스럽게 곧 세미나가 하나 있어 일반 객실 등은 전부 차 버렸습니다. 해서 남은 객실들은…….”
“가격이 비싸단 거죠?”
나는 말을 가로챘고. 상대는 떨떠름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답했다.
햐. 전생엔 어느 호텔에 머무르던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말이야.
꼭 돈을 안 내도 제발 머물러 달라 하는 호텔이 수두룩했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어쭙잖은 치안이 확 올라가니까.
왜 그러냐면.
내 성격이 지X 맞아서 쉬는데 번잡스러운 건 질색을 했거든.
호텔 곳곳에 영혼 풀어 놓고, 뭔 일만 벌어지면 처벌을 좀 해댔더랬지. 그때마다 호텔 내 치안이 아주 수직상승 해 주셨다.
‘어차피 세상이 막장 직전인지라 내가 아무리 사적 제재를 하고 다녀도 누가 개입할 것도 없었고 말이지.’
덕분에 어딜 가든 잘 걱정, 가격 걱정은 안 했다. 알아서 모시려 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상태라.
거참. 새삼 회귀가 실감 난다.
뭐 좋다. 함 물어나 보자.
“그래서 얼만데요?”
“그게…… 남은 객실 중엔 최상인지라 1박에 300만 원입니다. 본래 말씀드리면 안 되긴 하지만, 조심스레 말씀드리자면 어플을 잘 활용하시면 그래도 50만 원은 빠지는…….”
뭐여. 고작 300만 가지고 이런 건가?
한 3,000만은 하는 초고오오오급 객실을 갖고 그러나 했더니만. 쯧.
왠지 모르게 김이 식는 기분이 들면서도 나는 시원스레 답해줬다.
“에이, 뭐 됐수다. 오케이, 300! 바로 합시다.”
나는 곧바로 결제를 위한 카드를 주었고. 호텔리어는 결제와 함께 숙박 관련 서류에 사인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 모든 과정을 일사천리로 끝내는 순간.
“바로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한휘 고객님!”
상대의 깊이 숙여지는 고개가 괜한 뿌듯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아, 돈 쓰고 이러는 거 너무 속물인 거 아니냐고?
‘그럼 좀 어때?’
나중 가 봐라. 속물적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게 될 테니까.
지금은 그저.
이 순간을 즐기면 될 뿐이었다.
* * *
“1111호 도착했습니다. 따로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호출해 주세요.”
“예, 예.”
찰칵-
문까지 열어 주는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건 하나였다.
“크…… 안은 더 화려하네.”
바로 감탄사. 일박에 300만 원. 그거도 망하기 전의 사치스러움이라고 하는 건, 세상 끝장을 본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호화스러움이었다.
영혼 술사로 성장하고 나선 반쯤 망해 버린 세상이라 이런 호사는 제대로 못 누렸는데.
고급 자재로 마련되었음이 분명한 방. 호텔임에도 방뿐만 아니라 응접실처럼 마련되어 있는 쇼파에 더 안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고오급 욕조까지.
“호사다. 호사야.”
회귀의 부작용인지 뭔지로 인해 쓱- 내려앉았던 기분을 풀어 줄 만큼 괜찮은 방이었다. 이런 방에 오면 하고 싶었던 건 하나.
“일단 씻어 볼까?”
혼자 들어가기에도 커다란 욕조 안에 몸부터 담그는 거였다.
* * *
“후으. 좋네.”
온몸에 가득한 흉터도, 훈장처럼 자리해 있던 상처들도 전부 사라진 몸을 욕조에 조심스레 뉘었다.
차르르륵- 차륵-
대자로 뻗어 있어도 여유가 남는 욕조 안. 흘러나오는 김이 간간이 시야를 가리는 거조차도 운치가 있었다.
“슬슬 나가 볼까.”
한참을 즐기던 나는 시원스레 몸을 일으켰다. 한쪽에 마련된 가운을 조여 매며 마지막까지 기분을 냈다.
움직일 때마다 몸을 쓸어내리는 부드러움을 만끽하며 바깥으로 나온 나는.
“라면을 먹을까. 아니, 아니지. 여기선 룸서비스를…… 어?”
생각지 못한 존재가 있는 것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척도 못 느꼈는데?’
없던 인기척은 보는 순간 생겨났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실력이 나보다 윗줄에 있단 의미.
“하…… 여기 호텔 이거 안 되겠네. 김시연, 무슨 일이지?”
“에이, 그래도 한창 즐기시는 걸 방해한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어때요, 호텔은 괜찮았어요?”
“방금 전까지만.”
“아쉽네요. 계속 만족스러웠다면 좋을 텐데요.”
널찍한 소파에 앉아서 나를 맞이하는 그녀. 불퇴권사 김시연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앉은 반대편 소파를 가리키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정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소송 걸어 주세요. 보상금은 넉넉히 챙겨 줄 거니까.”
“……꼭 자기 거처럼 이야기하는데.”
“설마 아니겠어요? 후후.”
마치 자신이 이 방에 주인인 양 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실제로.
“하. 이 호텔도 미래 그룹 거였나?”
“맞아요. 조금이지만 제 지분도 섞여 있죠. 계약할 당시에 화끈하게 받았거든요. 무려 2%나.”
“허. 이거 한 방 먹었네.”
“별말씀을.”
미소 짓는 그녀는 주인이었다.
단 2%라지만, 미래가 이 호텔에 때려 박아 넣었을 돈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재산은 아니었다. 수십, 어쩌면 수백억은 되겠지.
그만큼 큰 재산이 그녀에게 자신감을 가져다줄 수 있는 걸지도 모르고.
‘내가 일박에 300만 원 지르는 건 소꿉놀이였구먼.’
거기다 그녀 뒤를 받쳐주는 미래 그룹까지 생각하면. 대단하기는 하다.
나는 가운을 조이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머. 굳이 가리시지 않아도 될 거 같던데요?”
“감탄해서?”
“글쎄요. 어느 쪽일까요?”
다리를 꼬고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짙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내려 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접촉 방법이 썩 좋지는 않아.”
나로선 당장 분위기를 풀어 줄 이유가 없었다. 상황이 마음에 안 드니까.
“여기까지 날 찾아온 거면, 보나 마나 그 이유는 영입일 건데. 이런 식으로 기분을 잡쳐 놓고 시작하는 게 영입에 과연 좋겠어?”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고.
“어머. 우선 들어보면 이야기가 다를 텐데요?”
“뭐, 들어나 보자고.”
“우선은…….”
그 과한 자신감에 걸맞은 돈을 준비해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