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내가 한 게 회귀가 아니라 이 세계 전생이었나?
“아니, 돈 따서 갚으러 왔다고!”
“아! 안 받는다고 했잖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계에 규칙이 바뀐 건가. 왜 돈을 갚는다는데 안 받는 건데.
어쭈?
눈을 부릅뜨는 거 보게. 눈치로 봐선 분명 날 모르는 게 아닐 텐데?
‘능력자들한테 돈 빌려주고 받아 내려면, 길드나 엔터 곳곳에 빨대를 꽂아 놨을 거란 말이지.’
기름칠 좀 해서 꽂아 놓은 빨대를 통해서 이래저래 정보를 얻었을 거고.
그 정보에 나에 관한 정보가 없을 리가 있나? 없다.
이래 봬도 던전행 한 방에 떠오르는 슈퍼 루키가 나니까.
그런데도 돈을 안 받는단다.
“아, 거! 안 받는다잖아!”
“쩝. 간만에 놀러 왔는데, 왜 이리 시끄러운 건데. 어서 조용히 안 시켜?”
“어이쿠. 형님들, 죄송 또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내 이 찰거머리만 가면 좋은 데 모실 테니까!”
거기다 쟤들은 또 뭐냐.
보아하니 한 가닥 덩치들은 가지고 있고. 그 덩치 못지않게 강력한 마력을 몸에 품고 있는 게 보였다.
스스슷-
거기다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던 건지, 그들 영혼엔 검게 때가 묻어 있었다.
‘저 정도면 살인을 열 번은 더 넘게 해야 되겠는데? 아닌가, 때 탄 걸로 보면, 살인은 기본이고 덤으로 별짓 거리를 다 했겠어.’
온갖 더러운 이력을 갖지 않고선 가질 수 없는 영혼의 때를 가진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이 사무실에만 열.
바깥에서 느껴지는 영력까지 하면 스물이다.
그런 놈들이 하필 내가 돈을 갚을 거 같은 날에 한데 모여 있다라?
그러곤 내 돈을 거절한다? 아.
“……X벌. 이제 좀 알겠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겠다.
전생엔 시작부터 서로 죽이고 봤지, 이렇게 같잖은 수작질을 부리는 건 본 지 오래된 터라 잠시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 새끼들.
“뒤지고들 싶냐?”
내 돈을 받을 생각이 없다.
“뭐, 뭐?”
“다들 뒤지고 싶냐고. 여기서 돈 처 안 받고 이자놀이나 해 보겠다 이거냐? 어? 왜? 아니면, 이자 좀 불리다가 어디 다른 작업소에 팔아라도 넘겨 볼라고? 엉?”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 몰라. 오늘은 날이 아니라니까? 돈 받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고.”
“하…… 선 넘네.”
“선? 뭔 선? 지금 네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선 넘는 거 아니고?”
돈 대신 다른 걸 받을 생각이다.
돈이 아니라 내 몸을 노리고 있다.
햐.
공허 가운데서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한 나놈을 따라 오는 이성이 있다면 또 모를까. 저 거뭇거뭇한 놈들이 내 몸을 노린다고?
몸이 으스스하다 못해 오싹해질 지경이다.
그런 주제에 손가락질까지 해댄다.
“저거, 저거 봐라! 너 이 새끼. 여기서 계속 그리 죽치고 있으면 영업 방해야. 어? 저기, 쩌어기서 증거도 녹화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햐…….”
놈이 가리키는 곳에는 CCTV가 다발로 설치돼 있었다.
그 외에도 곳곳에 CCTV가 가득했다. 몇 개는 몰래 숨겨 놨는지, 작게 렌즈만 뽈록 튀어나온 것들도 있었다.
캬…….
놈들 말대로 제대로 녹음되고 있을 CCTV들이다.
내가 난동을 부리면 이 몸의 일거수일투족을 찍고, 그걸 약점 삼을 덫이라는 거겠지. 근데 어쩌냐?
“저게 뭐?”
파스스스슥- 파슥-
내가 손을 가리키는 족족 CCTV 렌즈들이 깨어져 나가고 있는데.
“어? 어어어!?”
“저거? 저 깨진 거? 팍팍 작살나고 있는 거?”
프스스슥-
숨겨져 있는 렌즈까지도 예외는 없었다. 순식간에 사채업자 사무실 안 모든 카메라가 깨져나간다.
깨는 기술?
[당신은 영혼 분리를 사용하고 있다.]
쪼개 놓은 영혼 일부를 사용하면 될 뿐이다.
‘어쭈?’
그 와중에 남은 카메라는 단 하나.
강짜 부리는 사채업자 놈이 온몸에 새기듯 숨겨 놓은 카메라들이었다. 이른바 1인칭 시점에서의 증거 채집을 위한 거겠지.
“너어! 너! 이런 식으로 나온 다 이거지!? 어? 스킬 함부로 쓰면 헌터 진압대가…….”
파아아앙-!
나는 이 마지막 남은 카메라를 분리한 영혼 일부를 함께 폭발시켰다.
커진 폭발음과 함께.
“아뜨, 뜨거! 따갑다고!”
놈의 가슴이 불타오른다.
놀란 듯 털어대는 옷은 부욱- 찢어지고.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낸 놈의 가슴에는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제 혼자 놀라서 몸을 덜덜 떨어대는 사채업자 놈.
“어허이!”
“이거 루키가 아니라 범죄자 새끼였구먼?”
그런 놈을 돕겠다고 자리에서 바싹 일어나기 시작하는 헌터. 아니 용병이라 할 수 있는 영혼에 때가 덕지덕지 묻은 놈들.
샤아아아아-
나는 놈들이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영혼들을 흩뿌렸다.
놈들을 묶기 위해서였다.
“으읏…… 이게 뭔…….”
“어? 어? 몸이…….”
제 몸이 원하지 않음을 이제 느낀 건가.
몇몇이 놀란 눈을 한다. 그리고 또 몇몇은 힘만 강한 헌터들답게 제 몸을 둘러싼 영혼을 찢어 내려 했다.
“이따위 것!”
하지만.
그걸 가만두고 볼 이유가 있을까.
‘새끼들이.’
놈들을 묶는 방법은 내게 차고 넘쳤다.
그중 하나가 그림자.
“그림자 제어.”
[당신은 그림자 제어를 사용했다.]
영혼보다도 더 가까이 있는 그림자를 이용해 묶으면 될 뿐이었다.
스스스-
냥곰이를 묶을 때도 힘을 발휘했던 그림자 술법이 영혼에 묶인 놈들을 덮친다.
그 순간.
‘……호오?’
[당신의 분리된 영혼에 그림자 가호가 스며든다.]
[영혼과 그림자가 합일한다.]
[당신에게 기술 : 그림자 영혼 묶기가 생성되었다.]
그림자와 영혼이 결합된다.
‘존재 포식이 나올 때부터 궁합이 좋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바로 조합이 되냐?’
결합된 힘은 서로를 향해 시너지 효과를 내더니,
“으읍…… 읍읍읍…….”
“크으으…….”
입을 나불대며 힘을 사용하려고 하던 모든 용병들을 멈춰 세웠다.
이곳에 있는 사채업자와 열 명의 헌터.
바깥에 추가로 있는 열 명의 헌터 모두 예외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일대가 전부 그림자와 영력에 묶였음을 느꼈다.
누구보다 강렬하게!
그럼으로 확실히 하나는 알았다.
‘내 거구나.’
이 일대. 이 지역만큼은 적어도 내 영역이라는걸.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은 이곳의 누구도 숨 하나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
“…….”
이제 와 두려움에 차, 침묵하고 있는 저들에게 내가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얘들아, 깽값 정산해야지?”
* * *
사람이 깽값으로 받을 수 있는 건 넘쳐났다.
“크히야아아아악!”
“오…… 이건, 이렇게 먹히나.”
먼저 받아낼 수 있는 건 그 몸뚱어리. 저 몸뚱어리를 상대로 꽤 많은 걸 받아낼 수 있다. 가장 먼저는, 실험체로서의 깽값이다.
“사, 살려! 크흐아악!”
“어허이. 비명 한번 특이한 거 보게. 자자, 이제 시작이라니까?”
“캬하아악! 키힉!”
이놈들을 묶어 내기 위해 그림자를 내보내자, 새로운 스킬 조합을 알게 됐잖나?
영력을 뿜어 놓고, 그림자를 대입하자마자 스킬이 떡하니 생겨났다.
‘그림자와 영력이 궁합이 좋은 건 예상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새로운 스킬이라니. 그것도 조합 스킬의 탄생이다.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기술 조합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그럴 리가. 그게 쉬웠으면 개나 소나 조합하고 다녔을 거다.
하나를 조합하려고 해도 온갖 수를 부려야 나오는 게 기술 조합이다.
왜 그래야 하냐면, 비율을 알아야 하거든.
예를 들어 ‘기술 : 근력 강화’란 게 있다 하고.
여기에 ‘기술 : 육체 강화’를 조합한다 치자.
딱 들어도 비슷한 것이 둘이 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차고 넘칠 거 같지 않나.
바보가 아닌 바에야 이걸 조합 시도 안 할 리가 없다.
어떻게든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책까지 구해서, 죄다 조합을 시도했다.
한둘이 시도한 것도 아니었다.
두 스킬 모두 탱커라면 기본으로 가질 만한 스킬인 데다가, 소위 기술이 담긴 스킬 북이 비싸긴 해도 꼭 못 구할 거는 아니었거든.
결과는 어떻게 됐냐면.
‘죄다 실패하고 성공한 놈은 얼마 되지도 않았지.’
로또 확률보다 낮게 성공했다.
그 이유는 내 전생 시절 거의 끝에야 다 달아서 알려졌다.
요는 비율이었다.
근력 강화에 35의 힘을 육체 강화에 50의 힘을 넣어야 했다. 남은 마력 15는 이들 둘을 중화시키는 데 써야 했다.
결국 섞고 나누는 배분을 잘해야 한다는 건데.
‘될 리가.’
배분까지 알려지고 나서도 이게 되는 놈들이 적었다.
다들 스킬을 끌어다 쓸 줄만 알았지, 제 힘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건 어려워했거든.
수련도 아니라, 보상이나 스킬 북으로 얻어지는 스킬이니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만큼 힘든 게 스킬 조합인데, 떡하니 됐네?
‘사기네, 사기야.’
이건 궁함을 넘어서 미친 확률이다.
이런 힘을 가졌는데, 써먹고 실험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비율이 딱 맞는 건지. 다른 조합방법을 위해선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런 거 말이다.
“키햐아아악!”
“어허이. 조용. 조용. 안 조용하면 더 길어진다니까?”
“끄으윽…… 끄극…….”
“옳지. 옳지. 버텨 봐.”
“끄윽…….”
그 실험체가 바로 요놈들이다.
스킬 <그림자 영혼 묶기>가 어떻게 써야 최곤지 알려 주는 실험체!
“어허이. 너무 잘 버티네? 이건 안 아픈가?”
“크히야아아악! 아, 아냐!”
“아냐? 내가 친구냐?”
“아닙니드아아아! 크학!”
얼마나 아픈지, 마력은 얼마나 불어 넣어야 잘 써먹는지 알아내는 거지.
어떻게 인간을 그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고? 양심에 찔리진 않느냐고?
‘이 새끼들 자체가 양심이 없는데, 왜 찔려?’
그럴 필요가 없다.
영혼 술사인 내 눈엔 놈들 몸에 묶인 영혼의 때가 보인다. 한두 번 더러운 짓거리를 해선 붙지도 않을 때가 덕지덕지 묻은 놈들이다.
이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게, 양심에 찔릴 리가.
“크햐아아악! 끄륵…….”
되레 놈들을 괴롭힐수록 상을 받아야 할 참이다.
“기절했네? 자자, 그럼 다음. 너는 얼마나 버티나 볼까?”
“히이이익!”
크든 작든 앞으로 온갖 일을 벌일 ‘예비’ 빌런을 망가트려 주는 셈이니까.
아아. 거, 아직 죄를 더 짓지도 않았는데 벌부터 주는 건 잔인하지 않냐고? 이건, 인정.
‘그래서 뭐?’
어쩔 거냐.
나란 놈이 완벽한 놈도 아니고. 이 정도만 해도 잘한 일인데. 이놈들이 나중에 개과천선을 할지 어쩔지 어떻게 알고 처분을 하란 건데.
애당초 내가 돈을 갚는다고 했을 때, 헛짓거리할 생각만 아니었으면 이런 상황이 되지도 않았다.
“크헉…….”
나는 놈들을 요리조리 스킬 조합에 써 먹고. 그에 더불어서 두 번째 대가도 받아냈다.
“돈…….”
“크흡. 없습니다.”
“없어? 하, 그럼 너도 써야지.”
놈들이 내게 추가로 찍게 하려고 미리 만들어둔 계약서. 이전에 쓴 계약서보다 더 끔찍한 계약서를 놈들이 대신해 찍게 만들었다.
이자는 몇만 %고.
그걸 못 갚으면 신체 포기까지 하게 만든 말도 안 되는 계약서에.
“으으으…….”
“안 찍냐? 앞에 놈들처럼 찍게 해 주리?”
“……찌, 찍습니다!”
“옳지. 옳지.”
나는 내 이름을 대신해 놈들의 이름을 찍게 해줬다.
제 손으로 계약서를 곱게 찍어 주다니.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