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12화 (12/206)

제12화

“흐아아암.”

푸욱 자고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낸다.

푸슉- 소리를 내며 뚜껑 열린 캔맥주를 입에 가져다 대고 마시자, 시원함이 목구멍을 강타했다.

“크으……! 모닝 맥주, 죽여 주네.”

회귀 전에는 진짜. 이게 사치였는데.

지금이야 평범한 일이지만서도.

이래서 사람은 잃어 봐야 행복한 줄 안다고 하는 건가 봐.

사실 이것도 내가 각성자라서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모닝 맥주 하고서 속 버리지. 아닌가? 해장술 먹는 인간들도 있으니 상관없으려나.

나는 방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주워서 큰 배낭에 쑤셔 박았다.

그림자 주머니에 넣고 갈 수도 있지만, 그림자 능력을 대놓고 보여 주고 다닐 필요는 없잖나. 그러니 이렇게 직접 가방에 챙기는 거다.

이렇게 해야 가져다 팔지.

물론…… 몰래 빼돌린 거라서 암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그리고 몰래 빼돌린 이유는 역시나 돈 때문이다. 초창기에 돈을 팍팍 벌어 둬야 하거든.

자자.

오늘은 일정이 바쁘단 말이죠.

물건도 가져다 팔아야 하고. 사채업자들 들려서 돈도 갚아야 하고. 김시연에게 연락해서 옛 동료들도 찾아달라고 해야 하고.

그러니까. 어서 움직입시다.

* * *

문밖으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현관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놀랐다.

“뭐야. 무슨 행사 하나?”

바글바글한 사람들. 적어도 40명이 넘는 숫자가 내가 사는 조금 낡은 오피스텔 입구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익숙한 분위기다?

휙! 휙!

번뜩!

그리고.

그들 모두가 나를 매서운 눈길로 바라봤다.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하이에나 같은 느낌이랄까.

뭐야. 나를 노린 빌런들의 자객인가.

조금 긴장하는 순간. 가장 가까운 아저씨가 외쳤다.

“우림 각성자 매니지먼트의 팀장 이성인 이라고 합니다! 지한휘 씨 맞으시죠?”

“저는 벡턴 각성자 매니지먼트의 부장 김선건입니다! 지한휘 씨! 저희와 이야기 한번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지한휘 씨!”

“저는…….”

“헐…… 대-박.”

집단 음파 공격에 샤우팅 당해 버린 나는 잠시 멍해져 버리고 말았다.

“회귀했더니 쩌리였던 내가 인기 절정?”

그래서.

멍한 김에 헛소리를 내뱉고 말았고, 그런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져 버렸다. 회귀 부작용이 중2병이었나. 말도 많아졌기도 하고 말야. 큰일인걸.

“이봐! 밀지 마!”

“내가…….”

“지한휘 씨! 저희와 계약하시면 98대 2로 다가…….”

“모두 주목!”

웅웅웅웅.

영력을 살짝 끌어올려서 외치자 대기가 웅웅거린다.

다들 조용해져서는 나를 본다.

“우선은…… 너무 사람이 많은 관계로. 조건부터 받겠습니다. 헌터넷 아이디 회귀가답이다. 그게 제 아이디니까, 그쪽으로 메일 넣어 주시면 보고 검토할 테니까. 그쪽으로 처리해 주세요! 아셨습니까!”

그렇게 외치고 나서…… 쇠사슬을 풀었다.

촤아아악!

그걸로 저 멀리 가로등을 휘감고. 그대로 잡아당긴다.

촤악!

마치 거미 인간처럼, 가로등 위로 착지.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렸다. 이미 각성자이기 때문에, 신체 능력이 인간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이걸 빠져나가? 보통 놈은 아니네.”

오성 각성자 매니지먼트의 팀장 이채연.

나이 서른둘이지만, 외모만 보면 스물 후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인 그녀. 외모에 홀려서 다가온 각성자들을 휘어잡아서 부려 먹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유명했다.

일 처리 역시 확실하고. 그녀 스스로도 각성자이기도 하다.

다만 비전투 계열 각성자이기에 오성 그룹에서 일하고 있을 뿐.

“어떻게 하죠 팀장님?”

“뭘 어떻게 해? 어디로 가는지 CCTV 실시간 추적해서 보고해. 따라붙어야지.”

“따라붙기는 뭘 따라붙어?”

그런 이채연의 뒤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언니 오셨어요?”

“네 언니 아니거든?”

“그래도 나이상으로는 언니잖아요.”

“예의 차려라 채연아. 우리가 아무리 자주 보는 사이라지만, 이런 건 좀 아니지 않아?”

“그럴지도 모르지만, 제 기선 제압하겠다고 말 먼저 놓은 건 언니시잖아요?”

“하여튼 말 하나를 안 지려고 들어요.”

신이현.

미래 각성자 매니지먼트의 네 명의 실장 중 한 명이며, 중년의 나이를 가진 여성인 그녀가 나타났다.

“그렇다고는 해도…… 언니가 늦다니 별일이 다 있네요.”

“글쎄다?”

“흐음. 뭔가 꿍꿍이가 있으신가 봐요?”

“있긴 해. 안 가르쳐 줄 거지만.”

신이현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저 사람은 우리 쪽에서 데려가는 걸로 확정되어 있으니까. 헛물켜지 말도록 해.”

그리고는 멀어져 간다.

이채연은 그런 신이현 실장의 뒷모습을 삐뚜름하게 바라보았다.

“뭔가 있긴 한 거 같은데…….”

“알아볼까요?”

“놔둬. 어차피 저쪽도 만만치 않으니까. 일단 추적은 되고 있지?”

“CCTV상으로는 놓쳤습니다. 그래서 인근의 휴민트를 가동 중입니다.”

“좋아. 찾으면 보고해.”

“예. 실장님.”

그렇게 지한휘를 영입하기 위한 짧은 전쟁은 막을 내리는 듯했다.

* * *

‘옳지!’

바깥 상황이야 어떻든, 나는 내 할 일로 바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시야로부터 사라지는 거. 뒤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이건 우선 필수였다.

어렵사리 진행할 거도 없었다.

[당신은 그림자 제어를 사용했다.]

그림자를 이용. 내몸을 덮어 시야를 차단하는 거만으로도 주변의 시야를 완벽히 가릴 수 있었다.

설사 CCTV로 보더라도, 흐릿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게 보일 뿐이다.

그 흐릿함을 매개로 날 조사하는 거? 가능 할 리가.

여기에 약간의 묘기를 더하면 나에 대한 추격은 완벽히 불가능해진다.

‘전생 경험 좀 살리는 거지.’

무슨 묘기냐 하면. 영혼을 다루는 거다.

온몸에 은밀히 영혼을 두르면 된다. 끝이다.

영혼을 두르는 거만으로도 내 영혼은 타인이 보기에 한없이 비대해진다.

그럼 나오는 효과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내 비대해진 영혼으로부터 몸을 피하게 된다.

원리 따위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본래 사람이란 생물은 생각보다 본능적인지라, 그 본능 때문에 피한다고밖에 예상할 뿐이었다.

‘뭐, 사실 기어이 알 필요도 없고 말이지.’

사람들의 시야로부터 완벽히 피하면 그 뒤는 자유롭게 단 하나만 찾으면 됐다.

바로 암시장 찾기다.

‘이건 더 쉽지.’

* * *

암시장이라 해서 입구가 하나뿐인 것도 아니다. 여럿이다.

그중에서 몇 개는 내가 파악해 놓은 지 오래다.

한때, 제집 드나들 듯 다녔으니까.

“오케이, 도착.”

그나마 입구 하나를 헷갈리지만 않았으면 더 빨리 들어 왔을 거였다.

‘이때는 그 입구가 없는 줄 몰랐으니까.’

일종의 회귀 부작용이랄까.

그땐 있던 입구가 지금은 없어서, 한 번 돌아왔다. 뭐,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일. 그래도 반대로 생각하면.

‘나중에 암시장 놈들이 거기로 입구 열 거를 안다는 소리잖아?’

작은 정보를 미리 선점할 수 있기는 했다.

암시장 입구를 아무 데나 뚫어댈 수도 없으니, 그곳만 미리 사놓으면?

용돈벌이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큰돈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모아놔야 하는 법이었다.

‘부동산도 언제 한번 가야겠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도, 나는 몸을 날래게 움직였다.

암시장서 내가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화트노 감정소>.

바로 감정소.

인벤토리를 통해 얻은 아이템들을 감정할 장소였다. 마음 같아서야 건너뛰고 싶다만, 이게 다 감정을 해줘야 제값을 받으니까.

여기도 오랜만이구나 생각하고 들어가자마자,

“어서 옵쇼!”

쩌렁쩌렁한 인사가 울린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큰 덩치. 검은색 정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근육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세밀한 작업을 요구하는 감정사라곤 생각이 안 드는 외모지만.

“무엇을 감정하려고 오셨을까요? 하나에 30만, 10개에 270만 원에 모시겠습니다. 형님!”

보는 거처럼, 어울리지 않게 사근사근한데다가 장사도 제법 할 줄 안다.

봐라. 벌써부터 후려치려고 하는걸.

“어허이, 어딜 불법 감정소에서 30만씩 정가로 받아 챙기려 들어. 한방에 27만, 10개 세트로 220만 가야지. 시세 다 알고 왔다고. 세금도 없이 운영하면서, 날로 먹을라 하네?”

“……씁.”

아주 자연스레 시중 정가로 후려치려고 하잖나. 나를 냅다 호구 만들라고 하는 거다. 뭐, 여기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기분 나쁠 것도 없다.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대는 주인. 그 앞에 나는 물건을 턱턱 올려놓았다.

철컹. 철컹.

어디에 쓰일지 모를 이상한 밧줄과 초. 검은 가면, 톱날이 달린 검 소드 브레이커…….

‘아무리 봐도 그림자 술사 자식 취향이 엿보인단 말이지.’

겉으로 봐선 흉악하다 못해 꺼림칙한 물건들.

하지만 그걸 본 감정소 주인은 얕게 감탄사를 흘렸다.

“와우…….”

그럴 수밖에.

이 하나, 하나가 아이템이었다.

어디에 쓸지는 알 바 아니지만, 척 봐도 흐르는 영력이나 마력이 결코 작지는 않은 것들.

감정사는 감정을 통해 성장하는 걸 생각하면?

‘저 주인 놈도 오랜만에 성장 좀 한다 이거지.’

이 거래는 감정사에게도 이득이었다.

“전부 다 감정입니까?!”

“물론.”

그러니.

덥썩.

나는 물건을 전부 거둬가, 감정을 하려는 그의 손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꽤 귀한 것들이니까 추가 10% 할인 가능?”

“……쓰읍. 콜!”

“오케이! 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야 하니까.

* * *

“또 찾아 주십쇼! 손님!”

정중하게 인사를 올려오는 주인.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하고, 감정소를 나섰다.

‘등급 업을 두 번은 한 거 같은데? 더 싸게 감정했어야 하나. 큼.’

만족스러움과 함께 아쉬움을 가지고.

나는 곧바로 상점들을 돌아다녔다. 쓸 만한 물건 몇 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판매하기 위함이었다.

“2천!”

“어딜 날로 먹으려고. 최소 3천은 될 거를.”

“허어이. 그럼 나는 어떻게 팔라는 거요?”

“10% 붙여서 3천3백에 팔면 되지. 가만 앉아서 3백 벌면 되는 거를 왜 복잡하게 갈라 그래. 왜? 다른 데 가서 팔까?”

“에이힝. 다 알아보고 왔구먼. 쯧. 주쇼.”

“돈부터. 어딜 먹고 째 볼라고.”

“쳇. 대체 어디서 나온 거요?”

“알아서 뭐 하게? 그래서 안 팔 거야?”

“……받으쇼. 여기 3천.”

“흐흐흐.”

판매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대략적인 시세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데다가, 암시장이야 내게 이미 익숙했다.

‘내가 이 새끼들한테 당한 게 얼만데, 여기서 또 당하겠냐?’

물건 뒤바꾸기, 무게 조종, 시세 교란, 훔치기까지.

크흐.

용팔이의 용던도 울고 갈 곳이 바로 여기다.

아니 진화한 곳이랄까.

상상 이상의 온갖 수법을 다 사용하는 게 이곳 암시장. 이러한 암시장을 10년은 더 이용해왔는데 당할 리가.

털어먹는 건 그쪽이 아니라 나였다.

거래가 끝날 때마다 들려오는 암시장 주인들의 칭찬 세례는 덤이었다.

“퉷! 소금 뿌려라!”

“에히잉. 전화 돌려. 옴팡진 놈 하나 들어왔다고.”

“쓰읍…….”

찰지지 않나.

원래 상대가 욕하면 잘한 거거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1억 4,275만.

‘캬…… 그림자 술사 이놈 얼마나 해댄 거냐?’

쓸 만한 건 내가 챙기고 판 잔챙이만으로 얻은 돈이었다.

사냥 한 방에 1억이라.

“쥑이네.”

내 통장엔 50억이 이미 있다지만, 새로운 돈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아쉬운 건.

“쪼금 돌려줘야 한다는 거겠지.”

이 돈 중 일부를 다시 내줘야 한다는 거다.

누구한테? 무려, 이 몸을 저당 잡고 있는 사채업자 놈들한테다. 하루 빌렸지만, 빌린 건 갚아 줘야 하지 않겠나.

‘그게 상도지. 암, 제대로 된 상도야.’

비록 하루 빌렸을 뿐인데도, 선이자에 하루 이자까지 쳐 받을 녀석들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이게 다 세상 사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갚으러 왔다.

그런데.

“안 되겠는데요?”

“뭐?”

“……손님. 맞을래요?”

이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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