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쓸데없이 피곤하구먼.”
택시를 하나 불러서 집에 돌아왔다.
애초에 내 무기는 늘었다 줄어들었다 하는 검은 쇠사슬인지라, 줄여서 팔에 둘둘 감기만 하면 끝.
이게 줄여도 무조건 1m 정도의 길이는 유지하는 녀석이라 튀는 거 까진 어쩔 수 없다.
중2병 같아 보이지만 어쩔 수 없지.
옷은 던전 소재로 만든 거라지만,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에 딱히 남의 시선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내 집.
8평형 원룸. 그래도 풀 옵션이고, 나름 깔끔하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오피스텔이기도 하고. 거기다가 서울이 아니라서 방세도 그렇게까지 비싸지 않다.
여기는 고양시 일산이니까.
애초에 서울 빼고는 부동산 가격이 조져진 지 오래된 일이다. 아 물론 여기도 조져졌다. 조금 덜 조져졌다는 소리다.
“후우…….”
집에 들어와서 옷을 벗고, 일단 가볍게 씻으러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있자니, 하루의 피로가 녹아나는 기분이다.
“으허! 기분 좋드아.”
아재 같은 소리를 내면서 씻고 나와서 알몸으로 반팔에 반바지를 챙겨 입었다. 집에서는 노팬티 반팔 반바지가 국룰 아닌가.
물론. 내가 혼자 살아서 이런 거지만.
의복의 자유인지, 하루의 자유 덕분인지 모를 시원함을 느끼며 냉장고를 열었다.
“어디 보자……. 맥주가…… 여기 있네.”
맥주 한 캔을 꺼내서 딴다. 푸슛 소리가 나고, 그대로 입에 대고 들이켰다.
크흐-
목 넘김이 훌륭해서,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다.
“카아아. 역시. 일하고 나서의 맥주 한 캔은 따봉이야. 회귀 전에는 맥주 한 캔도 엄청난 사치였는데…….”
회귀 전. 즉. 세계 멸망 카운트 다운 직전. 당연하지만 술 같은 것은 사치품이었고, 거의 먹을 수가 없었더랬지.
담배 한 개비에 목숨 거는 놈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후…….”
잠시 맥주를 홀짝이며, 벽을 등지고 침대 위에 앉아 옛 생각을 했다. 체감적으로는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마왕 때려잡고 있었는데…….
어제 회귀를 해서, 자격증 받는 시험장에서 정신 차리고. 대출 땡겨서 물건 사고. 그리고 바로 막공 알아본 다음 오늘 사냥 끝내고 왔다.
폭풍 같은 이틀이다.
이제 와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회귀 전에도 이렇게 빡빡하게 살았다. 전투는 시도 때도 없이 벌어졌고, 지켜야 할 사람을 하나 둘 잃었었다.
하하. 생각해 보니. 엄청 빡빡한데?
“그러니 이 정도 사치와 휴식은 이해해 달라고.”
지금은 곁에 없는 과거의 동료들에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안주가 없는 게 아쉬웠다.
“그러면. 어디 보자……. 그림자 주머니.”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나서 스킬을 사용해 본다.
현생에서의 첫 번째 던전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 중 하나.
그림자 술사의 스킬인 그림자 주머니.
일종의 아공간으로, 게임으로 치면 인벤토리 같은 녀석. 다만 크기가 그렇게 큰 것은 아니어서 많은 걸 넣을 수는 없다.
크기로 치면 한 변의 길이가 1미터인 정육각형 크기이고, 무게 제한도 있어서 100kg까지밖에 못 넣는다.
뭐.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야 더 넓어지겠지만, 나로서는 현재 이 그림자 술사의 스킬 레벨을 올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림자 술사의 영혼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보니까.
그래도 레벨 보정을 받으면 넓이가 점점 커지긴 한다. 능력의 출력은 결국 레벨x가호(레벨 곱하기 가호)로 결정되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높은 레벨에 높은 랭크일 수록 스킬의 위력과 효과가 더 강력해진다.
그림자 F에 현재 레벨 9니까 1m에 100kg이지. 레벨 높아지면 더 넓고 많은 걸 넣을 수 있게 된다.
그건 기본적인 공식이니까.
여튼.
“웃챠.”
내 그림자를 향해 손을 집어넣는다. 이게 그림자 주머니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손을 넣고 손에 걸리는 것을 잡아서 쭈욱 뺐다.
우르르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도끼, 채찍, 쇠사슬 달린 금속 목걸이, 반지, 귀걸이.
도끼는 약간 녹슨 듯 보이는 한손 도끼. 뭐 하는 물건인지는 모르겠다.
쇠사슬 달린 금속 목걸이는 회귀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예속의 목걸이.
이걸 착용시키면 그 사람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게 되는 악랄한 물건이지만.
“이걸 여기서 또 보네.”
이 예속의 목걸이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착용하려는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로 착용해야만 효과가 있다.
보통은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이 인신매매 후에 협박해서 끼게 만들고는 한다. 실제로 그런 놈들 몇몇 봤고, 전부 죽여 버렸었지.
“옛날 생각나는데.”
그리고 반지는 꽈배기 모양인데, 이것도 뭔지 모르겠지만. 귀걸이는 뭔지 알 거 같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거는 아마 야성의 귀걸이일 거 같은데.
청각, 후각, 시각, 촉각, 미각의 5감각을 상승시켜 주며, 체력과 근력도 증가시켜 주는 제법 좋은 물건이다.
“정신없을 때 보스 보상 슬쩍하길 잘했는걸…….”
야성의 귀걸이는 당연히 비싸고. 예속의 목걸이는 정부에만 판매할 수 있는 거래 불가능 물품.
그리고 한 손 도끼나 반지도 감정을 안 해 봐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돈이 되는 물건들임에는 분명하다.
“어디.”
귀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귀에 가져다 대고, 그대로 귀걸이의 바늘을 귀에 대고 눌러 버렸다.
푹!
귓불이 제법 아프지만, 그대로 귀걸이를 채웠다.
후욱.
힘이 상승하는 게 느껴진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이게 제일이란 말이지.
“그러면…… 보자. 나머지 3개는 내일 가져다 팔아야…… 응?”
드르르륵.
폰이 진동하길래 뭔가 하고 들어 보니, 돈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이여…… 통 큰데?”
들어온 돈.
그것은 무려 50억!
냥곰이 구출에 대한 보상금인가 보다.
쥐쟁이 사체를 산처럼 쌓았다고 하지만, 그거 다 해도 대략 1억 정도 될까 말까 한 금액이었을 텐데.
“이러면 계획을 더 빠르게 수정할 수 있겠는데?”
이놈의 쇠사슬하고 팔찌 사느라고 저번에 대출한 돈 다 써 버려서, 한동안은 그거 갚는 데 집중하려고 했단 말이죠.
그런데? 짜잔. 한 번에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이제 흥신소를 써서 옛 동료들을 찾아…….
아니지.
생각해 보니 흥신소 쓸 거 없지. 나한테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을 걸어 놓은 데로 갔다. 지갑을 꺼내고, 낮에 받은 명함을 꺼낸다.
김시연.
그녀의 명함을 보면서 생각했다.
미래의 불퇴권사가 지금은 비서로 있다라. 아무래도 좋지만. 미래 그룹의 힘을 빌리면 최후의 칠인을 찾기가 더 수월하겠지? 좋아. 그렇게 하자고.
하지만 그 전에…….
침대로 몸을 돌리고 그대로 점프했다.
잠부터 자야지!
* * *
지한휘.
그가 자신의 자택에서 잠을 자던 그 시각.
서울의 여기저기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이게 정말입니까?”
“아가씨의 헬멧에 부착된 영상 녹화 마법으로 확인한 사항입니다. 노이즈가 껴서 흐릿하긴 해도 상황 파악은 되지 않습니까?”
미래 그룹의 지주 회사는 미래 물산이지만, 가장 큰 기업은 미래 중공업이다.
미래 중공업은 대 괴물용 무기를 생산하여 판매하는데,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술력을 가진 업체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미래 중공업의 사장은 현재 회장의 첫째 아들로서,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족벌경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 첫째 아들의 경영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런 대한 중공업의 본사인 거대한 빌딩의 한 층에서는 지금 회의가 열렸다.
미래 중공업 산하 각성자 매니지먼트부.
각성자들과 계약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부서이다. 세간에서는 미래 그룹 공격대라거나, 미래 매니지먼트라고도 부르는 부서였다.
각 기업들은 이런 부서를 가지고 있었다.
오성 매니지먼트. 올라잇 매니지먼트 등등…….
미래 매니지먼트는 한국에서는 탑 3안에 들어가는 거대 매니지먼트 중 하나였는데, 본체인 미래 그룹이 세계 수준의 거대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회의실에는 네 명의 사람이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토론 중이다.
검은 정장을 입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 한 명. 그리고 풀어진 자세의 중년 남성 둘과 중년 여성 한 명.
김시연. 그녀가 중년의 남녀 세 명과 대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진짜 슈퍼 루키인데…… 아니. 어디서 이런 녀석이 튀어나온 거래?”
“그거 보다. 이게 문제 아닙니까? 사채에서 대출을 당겼어요. 그래 놓고 산 게…… 저주템?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고아 출신이잖아요. 돈 귀한 줄 몰랐던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옛날에 유행했던 거 따라가려고 했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거 있잖아요. 템빨 사냥.”
“템빨 사냥이 언제적 유행 메타인데…… 아니. 고아라서 정보가 한정되어 있나.”
“이봐요들. 그런 평가는 실적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거 모릅니까? 이거 봐요. 쥐쟁이를 싹 쓸어서 죽이고 나온 거에 더해서, 레벨이 적어도 10 이상으로 추정되는 범죄자를 한 번에 처리했잖아요.”
“그렇긴 한데. 영혼 관련 계열은 원래 안 좋은 직업이었지 않나요? 특히, 술사는요.”
“정확히는 근원의 영혼 마법사라고 합니다.”
“그 또한 처음 있는 케이스인데요. 외국을 뒤져 봐도 없고. 그만큼 연구가 덜 된 직업이기도 하죠.”
“흐음…….”
네 남녀는 서로 서류를 뒤적거리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미래 중공업 각성자 매니지먼트 부서에 존재하는 네 명의 실장이다.
부서 자체가 특수했다.
이 부서에는 부장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네 명의 실장이 직접적인 관리자였다.
이들이 스카우트에서부터 각성자 케어 및 관리까지 전부 했다. 덧붙여 소속된 헌터의 팀을 꾸리는 것도 이들의 권한 중 하나였다.
물론 업무가 많다 보니 이들 밑에 부하직원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결정권은 언제나 이들 네 명이 가졌다.
“김 실장. 김 실장 생각은 어때요?”
“영입할 수 있다면 최상의 조건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미지수인 부분은 많지만. 실적이 워낙 대단하니…….”
네 명의 실장 중 한 명이자, 여성인 신이현 실장이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거린다.
“신기하네……. 영혼 술사 중에서 포텐 터트린 사람이 아예 없는데…….”
살이 좀 찐 중년 남성, 박성군 실장이 물을 마시면서 해외의 다른 직업군 서류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때. 마지막 한 명인 마른 중년 남성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폰을 꺼냈다.
아마도 폰의 진동이 울린 모양이다.
“여보세요. 응? 벌써? 어. 계속 알아봐. 알았어.”
간단한 대화. 하지만 다들 그를 보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데?”
“벌써요?”
“얼마에?”
“계약금 50억 걸고. 조건은 8:2 수준이라던데?”
“미쳤나…… 아무리 오랜만의 루키라고는 해도. 어디래요?”
“금선 전자.”
“우리는…….”
그때였다.
영입에 대한 판단을 돕기 위해서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김시연이 폰을 꺼냈다.
다들 그걸 보고는 조용해졌다.
김시연이 미래 엔터테인먼트 실장이자 동시에 미래 물산 비서실의 실장도 같이 역임하고 있단 걸 알기 때문이다.
둘 모두 영향력 있는 자리다. 그러한 겸직이 주는 침묵이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그 사이 그녀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겠습니다. 예.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곧 전화를 끊는다.
“회장님의 명령이십니다. 반드시 영입하라고 하십니다. 아가씨께 따로 붙이실 거라고 하시는군요.”
“그러면…… 조건 최대로 가죠, 우리는.”
“비율도 밑져야겠는데. 뭐, 좋지. 어떻게든 뽑아먹을 방안은 마련하면 되니까.”
“좋아. 남들이 채가기 전에. 그러자고.”
그렇게. 지한휘에 대한 몸값이 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 중공업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보통을 가진 어지간한 기업들은 전부 영입을 하기 위해서 회의를 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