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이게…… 전부 쥐굴에서 나온 거 맞나.”
“박 씨. 그럼 저 사체가 쥐쟁이 아니면 뭐로 보여?”
“아니. 그래도 그렇지…….”
던전은 콘크리트 건물로 봉인하는 것이 기본.
그래서 중대형의 철문을 통과해서 사체를 일일이 밖으로 날라야 했다.
이 몬스터 사체를 허투루 할 수 없는 것이, 이 사체가 전부 돈이 되니까.
몸 안에 들어가 있는 마정석이라는 녀석은 현대 사회의 아주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석유를 대체한 무공해 에너지로 불리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몬스터의 뼈에는 특수한 금속 성분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은 부위와 가죽은 비료로도 쓰고, 옷 재료로도 쓴다.
내가 입고 있는 후줄근한 청바지에 운동화도 몬스터 소재로 만든 것이다.
방어력은 기대할 수 없는 패션 상품이다만.
이걸 입지 않았으면 던전 들어가서 알몸으로 지냈을 거다.
몬스터 소재의 옷이라는 게. 일반적인 옷보다야 당연히 비싸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살 것도 없는 수준.
내 복장 위아래 다 해서 대충 50만 원 정도로 산 거니까.
제대로 된 방어력을 제공하는 건 수백만 원에서 수십억도 한다만.
나야 돈 아끼려고 이러고 있는 거니까.
“정…… 정말 30마리 어치나 떼어 줘도 되겠나?”
“그거 얼마나 한다고요. 30마리 떼어 드릴 테니까 둘이 나누세요.”
“크…… 고맙구먼.”
방패 아재.
그냥 말 놓으라고 해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와 나는 던전 감옥.
그러니까 본래 명칭은 미궁 폐쇄 방어 건물이지만, 각성자들은 다들 던전 감옥이라고 부르는 저 안에서 나와 있다.
이제부터는 처리 업체의 시간.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 사체, 물건 등을 전부 가지고 나와서 싣고 간다.
아 물론. 특별한 건 가지고 가지 않지만.
이를테면 던전 아이템이라던가.
여튼 밖에 나와서 업체 사람들이 일하는 걸 지켜보는 중이다.
이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삥땅 치는 일도 있고, 아이템 중간에 빼돌리려는 일도 있다.
지켜보는 눈도 많고, 감시 카메라도 있어서 그런 일은 어지간하면 일어나지 않는다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밖에 의자 같은 걸 놓고 쉬면서 지켜보는 것이다.
나, 냥곰이, 방패 아재.
이렇게 셋.
그리고 우리가 쉬는 의자라는 건 아주 편안한 안락의자다.
이것도 몬스터 부산물 처리 업체에서 가져다준다.
애초에 저 업체는 방패 아재가 불렀다.
보통 기업에 속한 각성자라면 기업에서 처리하지만, 방패 아재 같은 프리랜서들은 각자가 아는 처리 업체를 부른다.
그러고서 뒤로 돈을 받는 리베이트.
그러니까 다른 말로 백마진을 받기도 하고.
뭐. 다들 그렇게 좋게 좋게 사는 거지. 새삼스럽지도 않다.
“뭐. 말은 험하지만 그래도 저보고 죽으라고 하지는 않으셨으니까. 인성은 좀 되어 보시니까 배려해 드리는 겁니다.”
“크흠. 험험. 고, 고맙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통수충도 있는 마당인데요 뭘. 그나저나. 각성자 담당 경찰은 언제 온답니까?”
“아마 곧 올 걸세. 그쪽은 늘 인력이 달린다고 난리이니 뭐.”
“하긴. 그건 그렇네요. 그나저나. 냥곰이 씨?”
내 말에 헬멧을 뒤집어쓴 그녀는 고개만 돌려 나를 본다.
“아까 한 이야기로 동의하시는 거 맞죠?”
그녀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말은 안 한다.
“그러면 동의한 것으로 알고 그렇게 처리하죠.”
“그렇게 하세나. 그나저나. 짭새들은 언제 오는 거야 대체.”
방패 아재가 투덜거렸다.
경찰.
정확히는 ‘각성자 범죄 수사관’이라고 하는 것인데, 경찰 기관에 속해 있지만 거의 대부분 별도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각성자가 일으킨 범죄 전문으로, 오늘 같은 통수충 녀석이 나올 때도 조사하러 온다.
‘우리 세 명이 짜고서 상대를 처리했을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말이 씨가 된다고…… 저기 오네요.”
“근디 저건 경찰차가 아닌디?”
“각성자 전담 팀은 경찰차 안 타잖아요.”
“그런가? 뭐 만나 봤어야 알지.”
아재가 투덜투덜거렸다.
저 멀리. 검은색 차가 오고 있다.
우리가 들어온 이 쥐쟁이 던전은 서울시와 고양시 사이의 야산에 위치한 던전이라서, 사실 주변에 사람이 거의 안 산다.
그나마 여기는 나은 편이지.
이런 녀석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나와봐라. 부동산값 조져지는 건 순식간이다.
차는 우리 쪽 근처까지 다가와 멈춘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아가씨. 모시러 왔습니다.”
뭐여…….
경찰 아니었어?
나랑 방패 아재가 당황한 얼굴로 보고 있자니, 문을 열고 4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검은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도 썼다.
고전영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모습일세. 어디서 나온 사람들이야?
냥곰이가 그 모습에 고개를 휙 돌린다.
뭔가, 가기 싫다는 그런 제스처 같다. 있는 집안사람은 맞는 모양이네. 저런 태도인 것을 보면.
“부잣집 딸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더 부자인가 벼.”
방패 아재가 내 쪽으로 슬쩍 몸을 내밀며 소근거렸다. 아재요. 쟤네들도 각성자면 다 들려요.
“아가씨께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래 엔터테인먼트 실장 김시연이라고 합니다.”
여성 중 한 명.
짧은 단발머리에 키가 1.8미터는 되어 보이는 여성이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알고 있다.
불퇴권사 김시연.
그녀가 여기에 있었었나?
최후의 전쟁.
마왕에 도달하기 위해서 같이 했던 수많은 동료 중 하나.
마왕의 앞에 도달한 것은 나를 포함한 최후의 칠 인이지만, 그곳에 도달하게 만들기 위해서 같이한 동료의 숫자는 백여 명에 달한다.
그리고 우리 백여 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세계 전체가 협력해서 고르고 고른 정예가 정확히 1,024명.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목숨 바친 이들이 다시금 수만여 명.
피라미드 구조 같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서 나와 최후의 칠 인은 마왕의 앞에 도달한 거였다.
그렇기에 값지다. 그렇기에 고귀하다. 그들은 자신들을 희생해서 우리를 나아가게 만들었으며, 마왕의 속삭임에 변절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서 싸웠다.
그런 그녀가 여기 나올 줄이야.
‘하, 신기하네?’
내 상념은 아재의 목소리로 깨졌다.
“만, 만나서 반갑수다! 방패 전사인 박종석이요. 그리고 이쪽은…….”
“근원의 영혼 마법사인 지한휘입니다.”
근원의 영혼 마법사.
이번에 직업 진화를 하면서 얻은 새로운 내 직업. 회귀 전과는 명확하게 다른 직업이 떠서 처음에는 놀랐지만, 지금은 만족하는 중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내 직업을 밝히는 것은 다아 이유가 있다 이거지.
이른바 빅-플랜! 이라는 거?
불퇴권사 김시연도 미래에 대단한 인물이 되지만, 미래 물산이라는 곳도 무시무시한 곳이거든.
미래 물산.
오성 방직과 함께 이 좁아터진 한국을 양분하는 초거대기업이며, 좁아터진 한국을 뛰쳐나가 세계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대기업.
미래 물산은 지주 회사로서 그 밑으로는 그 유명한 대한 중공업과 대한 자동차가 있다. 대한 중공업이 뭐 하는 회사냐면…….
무기 회사다.
그것도 세계에서 알아주는 무기 회사.
오성 방직도 당연히 지주 회사인데, 이쪽도 대단하다.
오성 방직 아래에 있는 오성 전자는 전 세계 스마트폰의 36%를 점유하고 있는 초거대기업이거든요.
그뿐이 아니라 기간통신망 부분에서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미래 그룹과 오성 그룹.
그 두 그룹의 지주 회사인 미래 물산과 오성 방직.
두 업체는 이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룹이다. 아니. 세계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기업들이라서, 세계에서도 알아준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미래에서도. 이 두 그룹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지.
그나저나 냥곰이.
그냥 부잣집 따님이 아니라 한국 최대 재벌 집안의 딸내미였어?
‘아니 홀로 나온 거 보면, 숨은 자식이려나.’
어느 쪽이든 간에 그런 사람이 왜 호위 병력도 없이 혼자서 사냥 왔다가 죽을 뻔했대?
내가 회귀 전이었을 때는 여기서 죽었을 거 아닌가.
왜냐면, 통수충인 그림자 새끼는 오늘 나한테 안 죽었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데 성공했을 거니까.
어쨌건 죽을 사람이 여기서 살았다.
우리의 인사를 받듯 김시연은 명함을 꺼내 우리에게 준다.
“제 직통 번호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명함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거 유용할지도.
봐라. 그녀의 유용함은 바로 드러났다.
“사건 정리는 저희 측에서 할까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처리해 준다지 않은가.
하기야 미래 그룹의 딸내미가 혼자 사냥 나왔다가 죽을 뻔했다.
이거 알려지면 빅이슈긴 하지. 그걸 막으려고 그러는 걸지도.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라서 뭐라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어쨌건 좋다.
“어. 그쪽에서 해 준다면야 나야 환영이긴 한데…….”
방패 아재가 미묘하게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모를 어투로 대답한다.
저 아재.
저렇게 처세가 엉망이어서야. 그간 혼자 다닌 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생존을 위한 처세는 빠르더만, 사회적인 처세는 느리단 건가.
하긴 세상사 여러 가지 인간군상이 있는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가 대신 대답해 줄 수밖에.
“저도 그쪽이 편하니. 괜찮습니다. 경찰 쪽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 맞죠?”
“예. 맞습니다.”
내 말에 김시연은 가볍게 긍정했다.
“그러면 저희야 환영이죠. 경찰분들 상대하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러면 혹시 저것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업체 직원들이 일개미처럼 나르고 있는 쥐쟁이 사체를 가리켰다.
저것들 정산도 알아서 해서 줘. 그리고 냥곰이 구한 보상금도 있으면 같이 입금 좀 하고.
그런 뉘앙스가 담긴 내 말에 그녀는 가볍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그 정도는 해 드려야죠. 그리고…….”
그녀는 잠시 주변에 쌓인 사체들을 질릴 듯 바라봤다. 그러곤 은밀한 제안을 하듯 물었다.
“본사에서 한번 연락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스카우트 제의입니까?”
“그렇습니다.”
꽤나 직설적인 스카우트 제의였다.
‘일 처리 좋고.’
바로 거절할 필요도, 당장 대답할 필요도 없잖은가. 대답은 보류.
“그러면 연락 주세요. 연락처는 이미 아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적당히 대답해 주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여기서 해결할 일은 다 끝냈으니까…… 가 볼까.
“방패 님 다음에 또 인연이 되면 뵙죠. 냥곰이 님도 다음에 인연이 있다면 뵙겠습니다. 저는 조금 피곤해서 이만…….”
“어? 뭐야? 가게?”
“가야죠.”
“어…… 그러면 나도 갈까…….”
방패 아재는 쭈뼛거리면서 눈치를 본다. 그러든 말든 나는 고개를 한 번 까닥해 보이고 등을 돌렸다.
가열 찼던 하루가 이제 끝을 고하고 있었다.
* * *
그렇게 가벼이 물러나고 있는 지한휘.
그런 그의 뒤를 김시연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 시키는 게 익숙해 보였는데…… 어디 도련님이라도 되는 건가? 그러기엔 행색이 좋진 않았어.’
김시연이 보기에 지한휘는 괴이한 인간이었다.
겉모습으로 보아선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하급 헌터다.
그러며 자신을 대하는 건?
아랫사람을 여럿 거느리기라도 해본 경험이 있는 거처럼 익숙해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다.
자신이 현재 소속된 곳이 어딘가.
미래 엔터다. 한국의 헌터인 이상 이런 미래의 힘을 모를 리 없었다.
그 존재를 모를 린 더더욱 없고.
그게 누구라도 자연스레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설사 오성의 인물이 나온다 해도 경계 정도는 하겠지.
그런 거치고 그는 너무도 편해 보이는 기색이었다.
마치 그녀가 미래 그룹에 속하든 말든, 어떻든 간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눈치다.
그러기에 그는 더 신경이 쓰였다.
‘이제 막 루키가 된 녀석이 거만한 거라고 하기엔…… 뭔가 달라.’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무언가 있노라고.
그러니 알아봐야 한다 느끼는 건 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알아봐야겠어.’
본래 감으로 움직이는 타입은 절대 아닌 그녀였다. 그러기에 지금의 결정은 김시연으로선 꽤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바꿀 생각은 들지 않고 있었다.
“아가씨도 뭔가 느낀 게 있으신 거죠?”
“…….”
끄덕.
그녀의 바로 옆. 어느새 김시연에게 다가온 냥곰이 -김민하-가 그녀의 감에 동의하고 있었으니까.
“돌아가면 바쁘게 움직여 봐야겠네요.”
김시연. 그녀의 눈에 지한휘가 깊숙이 박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모를 일이었다.
그녀 눈에 그가 들어간 게 중요한 것인지, 그의 눈에 그녀가 들어선 게 중요한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 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