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저주 씐 원령이 아닌, 직접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흡수하면 이런 식으로 가호를 가질 수 있었던 건가?
‘하…… 이런 미친 능력이라고?’
쇠사슬에 갇힌 저주받은 영혼들을 먹는 것으로 끝이었다면.
알 수 없었을 능력이다.
‘차이라면…… 직접 얻어 내냐 아니냐 이건가.’
그때의 영혼들은 저주에 자기 자신을 잃은 지 오래다. 말 그대로 원령이다. 그러니 그들로부터는 기술을 못 얻었던 거겠지.
인간의 영혼조차 먹어 치운다는 어렵사리 새운 각오.
그 각오가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이야.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회귀를 겪은 내가 아니었더라면. 눈이 훽 돌아가서 인간만 전문적으로 사냥하고 다녔을지도 모를 그런 정도의 능력!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아니지.’
최악 중 최악의 상황을 본 나다.
이대로 인간을 사냥하다가 공허에 다시 잡아먹히는 걸 택할 이유가 있겠는가.
무작정 잡아먹어 학살을 하기보단, 힘을 합칠 사람을 찾아야 함을 잘 알았다.
그 시작이 유보라고.
잡아먹을 인간들 따위야.
어차피 많다.
‘빌런이 넘쳐나는 세상이거든.’
그러니 지금은 생각지 못하게 얻은 이 포식의 능력보다도, 당장 벌어진 일들을 수습해야 할 때였다.
쉽게 말해서.
저기서 멍하니 그림자 술사를 처리한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아저씨부터 수습하는 게 맞단 소리다.
“괜찮으신 겁니까?”
“그럭저럭 괜찮으이.”
방패맨 아재는 자기 손으로 부러진 팔을 맞추며 나한테 대답했다.
인상을 조금 찡그린 수준으로 대답하는 걸 봐서는 아마도 레어 스킬로 분류되는 <통각 제어>가 있는 것 같다.
궁금하면 참지 않지.
“통각 제어?”
“맞아. 통각 제어.”
“이야…… 좋은 거 뽑으셨네요.”
“뭘…… 그래 봤자 3D 노가다 직업이지.”
“그쪽은 괜찮습니까?”
고개를 돌려서 주저앉아 있는 냥곰이에게 물어봤다.
“…….”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는 몸집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말을 안 하는 게…… 이상한데. 혹시 쟤도 한패는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냥곰이는 자기 헬멧의 한쪽을 눌렀다.
푸쉭.
헬멧이 김을 내면서 열린다.
저런 종류의 제품은 나도 잘 안다. 마법과 과학의 산물.
‘어지간히 비싼데 저거.’
헬멧을 벗고 드러난 얼굴은 몹시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이었다.
눈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어서 마치 고양이 같은 눈매를 가진 그녀는 도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데도 저 정도라. 미쳤네.
하지만…… 내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아마도. 내가 여기에 없었으면, 이 시점에 이찬우한테 살해당해서 미래에는 살아 있지 않았을 사람일 것이다.
그녀는 그대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허리까지 휘는 인사.
그러고는 다시 헬멧을 뒤집어쓴다.
뭐야…….
말은 안 하는데. 얼굴은 보여 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해? 이게 무슨 상황이래?
그래도…… 영 싸가지가 아예 없는 인간은 아니로군.
“몸은 어떠십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동그라미. 즉. OK 사인을 해 왔다.
이쯤 되니 감이 온다.
어쩌면…… 말을 못 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지도.
말 없는 거야, 이 미친 세계에서 이해할 만한 작은 요소니 넘어가고.
어쨌건 중요한 건 결국 끝을 내는 거다.
“좋습니다. 그러면. 던전 클리어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패 아재도 내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그래. 그렇게 하세나.”
“그러면…….”
바로, 던전 클리어.
던전의 핵을 박살 내면 클리어된다.
물론 클리어한다고 해서 던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유예 시간이 초기화될 뿐이다.
해서 던전이라는 게 주기적으로 들어와 클리어해 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니까. 그래서 던전 입구를 그렇게 무식하게 틀어막아 놓은 거기도 하고.
어쨌건, 이거만 파괴하면 만사가 끝이다.
촤르르륵-
검은 사슬이 날아가 바로 던전의 핵을 관통한다.
콰앙-
파괴되는 던적의 핵.
그리고 우리가 선 던전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말로 ‘붕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현상이었다. 흙. 돌. 그리고 물건들이 조각나서 사라져 간다.
마치 원자 단위로 분해되는 그런 느낌.
‘마치 공허에 잡아 먹히는 거 같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붕괴되고.
나는 뒤이어 홀로 검은 공간에 서 있게 되었다.
* * *
눈을 뜨니 던전 보상을 받는 공간이었다.
[당신은 미궁의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의 행동 결과에 따라서 보상이 정산됐다.]
[당신은 처음으로 미궁의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은 미궁에서 인간 살해자를 살해했다.]
[당신은 최초로 미궁의 완전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은 최초로 최하등급의 미궁에서 모든 적성 괴물을 살해했다.]
[당신은 최초로 괴물의 영혼을 포식하여 가호를 얻었다.]
[당신은 최초로 인간의 영혼을 포식하여 가호를 얻었다.]
[당신은 최초로 첫 미궁 답파 와중에 5등급이 되었다.]
[당신은 최초로 단시간에 <가호 : 영력>을 E등급으로 만들었다.]
[당신은 최초로 다섯 개의 최초 업적을 동시에 달성했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신이 당신을 주시한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신이 당신을 주시한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신이 당신을 주시한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신이 당신을 주시한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신들이 당신을 주시한다.]
[당신은 최초로 당신이 모르는 다수 신들의 주의를 끌었다.]
[당신의 보상이 정산되었다.]
비었어야 할 공간은 수없이 많은 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어?”
던전에서의 활약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채워질 검은 공간.
즉, 행동 결과에 따라 보상에 차등이 있는 건 흔한 일이다.
보통은 레벨을 올리는 경험치.
‘활약 좀 했다?’ 싶으면 스킬을 하나 주기도 한다.
처음이야 레벨 5에 스킬을 한번 주지만. 이후로는 이조차도 벌어진다. 20레벨 특별던전을 가거나, 다른 특별한 활약을 해야 주는 게 스킬이다. 그러니 이 보상은 아주 크고 아름다운 거다.
이 보상은 아주 크고 아름다운 거다.
그 외에는 저 신이라는 작자들이 신기(神器)라고 부르는 것을 던져 주는 경우도 있고, 아예 별도의 직업을 주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래서 듀얼 클래스라는 놈들이 존재했었고.
‘여기까지는 나도 예상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일부러 사슬도 여기서 흡수하긴 한 건데…….’
하지만.
이런 보상은 나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도 회귀 전에 날리던 몸으로서 최후의 전쟁까지 살아남아 마왕까지 때려잡은 몸이다만.
회귀 전에도 이런 엄청난 메시지를 받아 본 적은 없었는데…….
다시 봐도 보이는 눈앞에 가득 찬 글자의 울림들은, 내가 전생의 기록마저 깼음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었다.
“하 참, 쪼렙 던전에서부터 이렇게 시작이라니. 미쳤는데.”
그나저나.
쥐쟁이를 내가 다 죽인 거였나.
어마어마하네…….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다 죽이면 특별한 보상을 얻을 수 있기야 하다만. 그래도 다 잡은 줄은 몰랐는데.
스스스-
가득 채웠던 글자들은 새로이 조합되어, 다른 것들을 보여줬다.
[당신은 위압의 가호를 얻었다.]
[당신은 살인의 가호를 얻었다.]
[당신은 포식의 가호를 얻었다.]
[당신의 기술 영혼 포식과 그림자 포식이 포식의 가호의 힘을 받아 하나로 합쳐져 존재 포식으로 진화했다.]
[당신은 대량의 경험을 얻어 더 나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당신은 보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세운 업적들의 조합이자 만들어진 결과.
“와우…… 가호를 세 개씩이나?”
위압. 그리고 살인.
이거 둘 다 좋은 가호다. 그리고 마지막 포식. 이건 나도 첨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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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위압 F]
다수의 존재를 위압하여 얻은 가호.
당신을 적대하는 존재는 당신에게 위압 당하여 움직임이 미미하게 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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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살인 F]
사람을 살해하여 얻은 가호.
사람을 살해하려고 시도할 경우 모든 능력이 미미하게 상승한다.
사람 간의 살해 행위는 태초부터 있었던 원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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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포식 F]
먹어서 흡수하는 능력을 두 개 이상 가진 자가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을 경우에만 얻을 수 있는 가호.
포식 계열 능력을 사용할 경우 포식으로 흡수할 수 있는 힘의 양과 질이 증가한다.
먹어서 흡수한다는 것은 태초부터의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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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압의 경우.
이거는 내 적의 움직임을 제한해 준다. 약간 느리고, 경직되게 만드는 그런 가호. 아주 좋은 가호라고 할 수 있지.
살인.
이거는 사람을 상대할 때 좋다. 나중에 세계가 반쯤 망하고 난 이후에는 거의 대다수의 각성자들은 이 가호를 달고 있다.
서로 죽일 일이 많아져서 그런 거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이 가호를 가진 놈은 거의 대다수가 통수충 새끼들이지.
사람 죽일 일이 많으니까.
물론 이게 좋은 가호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벨빨, 템빨, 스킬빨을 뛰어넘을 정도의 사기적인 가호는 아니다.
그래도. 주면 좋다. 제법 좋은 편.
하지만 저렇게 요란스럽게 줄 건 아니지.
아마도. 본편은 이걸 거다.
포식의 가호.
그리고 존재 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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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 존재 포식]
존재의 근원을 집어삼켜 먹어 치운다.
존재의 모든 것을 섭취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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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게 튀어나온다고? 그림자랑 영혼이 궁합이 잘 맞는 건가.’
이건…… 뭔가 다르다.
그런 감각이 강하게 들었다. 영혼 포식은 애초에 죽은 자의 영혼만 먹는 거다.
그림자 포식은 얻고 나서 써보지도 못해서 모르지만, 역시 그림자를 빼앗아 먹어서 능력을 강화시키는 종류의 스킬일 터였다.
그런데 그게 포식의 가호의 힘으로 합쳐졌다? 존재 포식?
존재의 근원을 집어삼킨다?
이거…… 뭔가. 있긴 있군그래. 진짜로.
일단 의문점과 새로운 점을 뒤로 하고, 상태 창을 열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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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 지한휘
등급 : 9
가호 : 영력 E / 쥐쟁이 F / 그림자 F / 위압 F / 살인 F / 포식 F
직업 : 영혼 술사.
기술 : 존재 포식(F). 영혼 구속(F). 영혼 분리(F). 영혼 감지(F). 그림자 주머니(F). 그림자 제어(F). 그림자 제어(F).
특수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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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던전 행.
그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바뀌어 버렸다. 뭐…… 회귀씩이나 한 데다가, 나도 회귀 전에는 최후의 전쟁에 참여할 정도의 베테랑.
고속 성장을 할 수 있다는 확신 정도야 있긴 했다.
하지만, 이건 아주 잭팟이 터져 버렸구먼.
마치 주식 떡상한 거처럼 대폭등.
떡상 중의 상떡상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레벨도 9가 되었다.
레벨을 더럽게 올리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던전 한번 들어와서 바로 레벨 9가 되었다?
완전히 미쳤다.
전에 없을 결과다.
그에 뿌듯한 보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갈증을 느꼈다.
‘누가 보면 욕심이 그득그득 쌓여서 투덜댄다고 할지도 모른다만.’
이것들조차도 아직은 부족했다.
이런 걸 쌓아 봐서야 회귀 전의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좀 더.
근본적으로 뭔가가 더 바뀌어야 했다.
그 갈증을 읽기라도 한 걸까.
스슷-
수많은 글자의 열람이 사라지고 단 한 줄이 남았다.
[당신은 보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이게, 마지막이라 이거지?”
갈증 반, 기대 반으로 나는 마지막 남은 한 줄을 손으로 흐트러트렸다.
그러자 보상을 고를 수 있단 마지막 한 줄이 완벽히 사라진다.
그 문구가 있던 자리에 3개의 선택 창이 떠올라 있었다.
그 세 개의 선택 창을 보았을 때.
“미쳤나?”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직업 진화>, <가호 강화>, <신기> 획득]
지금껏 가진 갈증 따위는 씻고도 남을 것들이 남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