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던전.
최하급의 던전을 기준으로 적을 쓸어버리는 데 3인 파티가 10시간은 움직여야 정복이 가능했다.
왜 이리 오래 걸리냐 싶겠다만.
그게 기본 기준이다.
던전 자체가 넓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던전 내부는 완전한 이차원의 세계다.
일종의 ‘조각난 세계’랄까.
이 던전 내부에는 던전의 핵이 존재하는데, 이걸 파괴하면 던전을 클리어한 것으로 간주되어 전부 포탈 밖으로 튕겨 나오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는데.
던전 내부에서 몬스터들을 잡아도 레벨은 올라가지만, 던전 클리어만으로도 레벨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 입구에서 대기 타다가 남이 던전 클리어하는 거에 무임승차 하게 되면 레벨 업이 더디긴 하다.
그래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서, 돈을 내고 전투 없이 레벨 업을 하는 부류도 있다.
주로 부잣집 자식들이 그런다나?
그걸 버스 탄다고 하지.
방패 아재가 화를 씩씩 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내가 전혀 쓸모가 없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 입구에 박아 두겠다고 선언한 것.
그거 자체가 사실 버스 태우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면에서 언행은 좀 거칠긴 해도 나쁜 아재는 아닌 듯하다.
물론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빅-플랜이 있거든요.
“짱마법. 냥곰이. 둘 다 내 뒤로 따라와. 절대로 내 앞으로 나가면 안 돼. 그리고 나랑 3미터 이상 벌어져도 안 되고, 냥곰이 너는 내 왼쪽 뒤. 짱마법 너는 내 오른쪽 뒤. 내가 방패로 막는 동안 공격해.”
방패 아재는 나를 쌩 까고 두 명에게만 떠들어 대고 있다.
그런데 말을 들어 보면 확실히 능숙하다.
이곳에서 수십 번도 더 해 봤다더니, 정말인 거 같네.
“그럼 간다. 어이 너. 너는 여기 처박혀 있어. 뒤지기 싫으면. 알았어?”
“예. 그러죠.”
“씁…… 그러면 가자고 다들.”
무례한 방패 아재는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새하얀 던전의 입구, 이른바 안전지대에서부터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안전지대.
던전에 진입하면 나오는 지역. 새하얀 원형의 공간으로, 출구는 달랑 하나. 그리고 여기에 들어오면 입구도 막힌다.
던전은 한 번 들어오면 던전 핵을 부수기 전에는 나갈 수 없기 때문.
이 안전지대에 있으면 몬스터도 안 나오고 죽지도 않는다.
그래서 버스 타는 게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하여튼 아재…… 성깔하고는.”
이게 참 웃긴 게.
던전이라는 게 예약제로 운영된다.
그리고 최소 입장 제한 같은 것도 있었다.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제도다. 괜히 혼자서 들어갔다가 뒤지지 말라고 만든 거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내가 회귀자씩이나 되는데 이런 던전 따위 혼자서 털지 못할 리가 없잖나.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 모든 던전을 관리하기 때문에, 용을 써도 지금의 나로서는 혼자 못 들어간다.
결국 막공에 껴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거지.
이 던전의 이름은 쥐의 소굴.
공식 명칭은 그렇지만 다들 랫맨 던전이라고 부른다.
나오는 몬스터가 쥐니까.
거대 쥐. 쥐쟁이 노예. 쥐쟁이 전사. 쥐쟁이 궁사.
이렇게 넷이 나온다.
거대 쥐는 말 그대로 덩치가 도베르만 크기만 한 쥐다.
앞발과 이빨로 공격해 오는 녀석들.
쥐쟁이는 쥐 인간, 그러니까 랫맨이라는 종족인데.
이놈들은 거대 쥐보다 왜소하다.
키도 1.2미터 정도에 몸도 살이 별로 없고 마른 놈들이니까.
특히 쥐쟁이 노예는 노예라는 명칭답게 쉽게 쓰러지게 생겼다.
그나마 위험한 게 쥐쟁이 전사와 쥐쟁이 궁사.
쥐쟁이 전사는 키가 1.5미터에 나름 탄탄한 근육도 가지고 있는 놈들이다.
궁사는 전사의 활든 버전같은 놈들이고.
이 랫맨 던전에서는 이 네 마리가 고루고루 등장한다.
비율은 노예→거대 쥐→궁수→전사.
이 네 가지 순서다.
“자. 그러면…… 아재들 나간 김에 준비해 보실까.”
이런 던전에, 내가 여기 버스 무임승차 하러 온 게 아니란 말이지.
다 빅-플랜이 있어서 온 거야.
우선.
“영혼 분리.”
[당신은 기술 : 영혼 분리를 사용했다.]
으직.
내면에서 뭔가가 찢어지는 감각이 난다.
그리고 그건 말 그대로 영혼의 고통을 수반했다.
육체적 고통과는 다른 진절머리 쳐지는 감각.
내 영혼이 조금 분리된 것이다.
영혼 술사가 비인기에 제대로 능력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이것 때문이다. 영혼 분리가 영혼 술사의 기본적인 능력 기반이기 때문에.
자해를 해야만 스킬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미친 능력.
“후…… 느낌 참 더럽고 아프네……. 오랜만이야 이것도…….”
나중에 레벨이 오르고, 내 영혼 자체가 강력해지면 그만큼 고통도 줄어든다지만…… 그것도 나중 일이다.
지금은 아프더라도 참을 수밖에.
그런 말도 있잖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빌어먹을 개소리.
아프면 병원 가야지 청춘은 개뿔.
어쨌건 나는 아직 청춘이라 참아야 했다.
둥실-
분리한 내 영혼이 내 옆에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왼팔에 휘감은 흑염룡을 풀어 냈다.
철그렁.
새카만 색의 굵은 쇠사슬이 풀려난다.
사실 쇠사슬은 존재 자체가 놀라운 녀석이다.
‘가볍단 말이지.’
이것의 착용자는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돼 있었다.
즉. 나는 이게 전혀 무겁지 않다 이거지.
다만 나에게만 그런 거지, 남에게는 엄연히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놀라운 점 두 번째.
[원령이 당신을 인지한다.]
[원령이 당신을 저주한다.]
[당신은 저주받았다.]
무려 저주 능력을 갖고 있다.
원한의 저주 말이다.
메시지가 증명해 주지 않나.
이 저주도 검은 쇠사슬의 효과다.
‘캬, 오랜만에 보내.’
사실 나는 이 저주, 아니 쇠사슬의 존재와 효과를 알고 있었다.
이 쇠사슬은 일명 하데스의 사슬이다.
지극히 사용하기 까다로운 물건인데,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심연의 저주 술사라는 빌런 새끼가 쓰던 물건이었다.
그놈은 저주를 아주 기가 막히게 쓰는 능력을 가졌던 놈이다.
몬스터에 저주는 안 뿌리고, 이 쇠사슬을 이용해 인간에게 저주를 뿌려 돈을 만지던 놈이었다.
안 그래도 세상 구하기 바빠 죽겠는데, 나타나는 빌런이랄까.
그딴 놈이 X랄 발광을 해대니까 짜증이 나나, 안 나나?
내 손에 걸리자마자 탈탈 털어줬었다.
어쨌거나 그때 알게 된 이 사슬의 효과가 뭐냐면.
주변의 영혼을 잡아당겨서 묶어 버린다는 거다.
그리고 영혼은 그대로 이 물건에 묶여서는 이 물건의 사용자를 저주한다.
물론, 이 사슬에 처맞은 새끼도 저주받는다.
이래도 저주, 저래도 저주랄까.
즉, 저주 술사 같은 녀석들 아니면 이 물건을 제대로 다루기 어렵다는 거지.
무게 제거에, 주변 영혼 묶기 능력까지.
이것만 가지고도 놀라운 물건이지만, 여기에 두 가지 특성이 더 있다.
100미터까지 늘어난다.
파괴되지 않는다.
그렇다.
이 녀석은 생각보다 대단하고 강력한 물건인 것이다.
파괴되지 않는다……. 이것만 해도 진짜로 대단한 물건이다.
이게 100미터까지 지가 스스로 늘어날 수 있어서, 이걸 둘둘 감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방어력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
심연의 검은 저주 술사 새끼도 이걸로 제 몸을 둘둘 말고 다녀서 저주 사슬맨이라고도 불릴 정도였다.
‘이름은 웃긴데 꽤 오래 살아남았지.’
그리고.
나는 이걸 전혀 다르게 사용할 생각이다.
“영혼 포식.”
[당신은 기술 : 영혼 포식을 사용했다.]
내 몸 안. 내 영혼. 그곳 일부가 입을 벌린다.
괴물의 입처럼 영혼이 아가리를 벌리고.
그대로 후읍 하고 영적인 것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악!
-끄아아아아!
사슬에 서려 있던 원령들이 그대로 빨려 들어온다. 그대로 내 안으로 밀려 들어와 그대로 흡수되었다.
으적으적-
다른 영혼을 먹고, 그것을 소화해 갔다.
동시에 영혼들이 가지고 있던 힘 역시 나의 혼에 녹아들어 흡수됐다.
이것이 영혼 술사의 진정한 힘.
영혼 포식.
회귀 전만 해도 이걸 사람을 대상으로는 쓰지 않았었다.
사람의 영혼을 먹어 치우는 것.
그것은 식인을 한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지금 그런 나의 생각과 판단을 돌이켜 보면 등X 머저리 같은 생각이었다.
‘세계가 멸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면…… 뭐든지 해야 했어야 했는데…….’
머저리 같은 생각을 버리자마자, 결과는 바로 드러났다.
[당신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당신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당신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영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당신은 영력의 가호를 얻었다.]
최상의 메시지가 뜬다.
영력의 가호.
영혼 포식을 처음 하면 생기는 것. 오랜만에 영력의 가호에 대한 설명 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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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영력 F]
세계를 이루는 근원적 요소 중 하나인 영력을 깨우쳐 내려지는 가호.
영력의 힘을 다루게 해 준다.
이는 창생과 사멸 중 생과 사의 사이에 존재하게 해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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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싸한 설명. 하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영혼 술사는 늘 이딴 식이라서 짜증이 난다.
지가 무슨 확률 공개 안 하는 게임사냐?
‘아, 그래도 조작은 안 하니까 차라리 낫나?’
[당신을 위협하던 저주가 사그라든다.]
동시에 저주가 사라졌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저주의 주체를 내가 냠냠 해 버렸으니까.
그리고 원령을 먹는 것만으로 레벨은 3이 올라서, 지금은 4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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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 지한휘
등급 : 4
가호 : 영력 F
직업 : 영혼 술사.
기술 : 영혼 포식(F). 영혼 구속(F). 영혼 분리(F). 영혼 감지(F).
특수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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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아주 빠른 렙업이군.
그만큼 이놈의 쇠사슬에 원혼이 많이 들어차 있다는 거겠지만.
방패최강맨 아재가 레벨 4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미친 렙업이라고 볼수 있다.
그 아재. 이 던전만 수십 번 돌았다며.
그런데도 레벨 4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나?
이 세계. 레벨 업 하기가 무지하게 힘들다.
그런데도 벌써 레벨이 4다. 지독한 꼼수를 부린 덕분.
‘이게 회귀 뽕맛이란 거지.’
어쨌거나, 레벨 4가 되었다는 거만으로도 상황은 달라진다. 내 능력이 기본적으로 4배 이상은 증가한 걸 뜻했으니까.
“자 그러면…… 바로 다음으로. 들어가.”
아까 전부터 내 주변에 있던 내 영혼의 조각이 검은 쇠사슬에 스며 들어간다.
[당신은 영혼 조각을 하데스의 사슬에 부여했다.]
[하데스의 사슬은 당신의 영혼의 일부를 담아 당신의 일부가 되었다.]
“좋아!”
의도한 대로 성공.
영혼 분리는 애초에 이렇게 써먹는 거다. 내 영혼의 조각. 그걸 떼어 내서 아무 데나 다 불어넣을 수 있다.
이걸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넣으면? 그놈은 미쳐 버린다.
물건에 넣으면? 내 의지에 반응해서 움직이는 물건이 된다.
신통하지? 나도 그래.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애매하게 쓰기가 어렵다.
생명체는 저항을 해 버린다. 쉽게 말해 들어가기가 어렵단 거다.
물건에 넣어서 조종한다고 해도, 쉽진 않다.
물건이 뭔가 강력한 힘을 내는 게 아니거든. 이 레벨에선 흔히 말하는 폴터가이스트 현상 수준이다.
하지만 이 하데스의 사슬에는 아주 딱 맞다.
철그렁.
쇠사슬이 내 팔에서 풀려나와서 저절로 움직인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촉수 같은 움직임으로 중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공에 지지할 만한 게 없는 데도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귀신 들린 거처럼.
이렇게 보니까 완전 호러네.
저벅저벅.
하데스의 사슬을 풀어내면서 안전지대의 출구로 향했다.
여기서 작업하고 있은 지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까 앞의 세 명은 제법 멀리 갔을 테지.
‘작업하려면 혼자가 딱 좋지.’
그리고 사실.
나는 이 던전을 빠르게 클리어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하려고 하는 건 다른 일이니까.
여기 사는 쥐새끼들 전부.
몰살이 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