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후우…… 진짜…… 이것도 몇 년 만에 먹는 건지…….”
후루루룩.
면발을 삼킨다.
얼큰한 국물이 목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컵라면이지만, 회귀 전에는 몇 년간 이것도 못 먹었다.
지구 전체가 개박살이 난 마당에 라면 공장이 돌아가겠나?
물론 최전선에 싸우는 몸이었던 만큼 이런저런 대우를 받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뒤로 갈수록 점점 혹독해졌다.
결국 라면이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결과가 일어나고 만다.
“후룩! 이거 진짜 먹고 싶었는데…….”
모든 면을 다 먹어 치우고서. 나는 입가를 닦았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라면을 좋아했다.
여러 가지 라면을 섭렵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먹어댔다.
사실 라면은 값도 적절하기 때문에 적은 금액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데 그만이다.
이걸 못 먹게 된 게 어찌나 서럽던지…….
이깟 3분 컵라면 하나 먹자고 내가 진짜…….
에휴. 말을 말자.
컵라면 하나 뚝딱 해치우고서 주변을 둘러본다.
높이 5미터. 너비도 5미터.
정사각형의 콘크리트로 된 공간.
여기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는 두꺼운 철문 하나뿐.
그 문도 금고의 문처럼 생겼다.
위우웅.
그리고 주저앉아서 컵라면을 먹던 내 앞에는 검은 차원의 구멍, 이른바 던전 입구라고 부르는 포탈이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포탈은 지상에서 약 30센티 공중에 떠 있는데, 이 포탈 주변은 전부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다.
이 포탈 앞에 오려면, 내가 방금 들어왔던 두꺼운 철문을 지나야 했다.
출입구는 단지 하나뿐.
참…… 예나 지금이나 생각하는 거지만, 잘 지었어.
던전이 터져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걸 대비해서 이렇게 지은 거긴 하지만.
방어적인 목적으로서는 확실히 훌륭하게 지었다.
디자인 면에서는 영 거시기해도 말이야.
뭐. 나중에는 이런 짓도 소용없었지만.
던전이 하도 여기저기에서 터져서 몬스터를 쏟아 내니 버틸 재간이 있나.
그나저나.
“나 빼고 전부 지각하는 거 실화야?”
아무리 막공이라고 해도.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막공.
‘막 만든 공격대’ 혹은 ‘막 만들어진 공격대’의 줄임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을 정확히 이런 뜻이라고 기억하는 건 이제 할배들밖에 없을 거다.
어쨌건 대충 다들 막공이라고 하면 뭔지 안다.
급조된 파티.
던전 사냥을 위한 고기 방패 모임. 자살 희망을 위한 보람찬 일꾼들.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봤나?
하지만 사실이다.
헌터 사망률은 한 해 약 10% 정도니까.
그 10%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게 막공이고.
어쨌거나 헌터 자체가 무시무시한 고위험 직군이란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터가 인기 직종인 이유는…… 하꼬도 연 1억은 어떻게든 버니까다.
‘물론 그만큼 쓰긴 하지만.’
그런 막공들 중의 하나에 들어가겠다고 국내 최대 각성자 전문 플랫폼 사이트 헌터넷에 글을 보면서, 대출 당기고 물건을 사들였던 어제.
그리고 오늘, 바로 날이 잡혀서 이렇게 던전 앞으로 나왔다.
“그나저나, 다들 시간이 남아도시나 보네.”
던전에 들어가기로 한 막공을 모집한 사람은 자기를 레벨 4 방패 전사라고 밝힌 <방패최강맨>이라는 닉을 쓰던 사람이었다.
헌터넷.
국내 굴지의 기업인 오성 그룹에서 만든 플랫폼으로, 현재는 모든 헌터가 이 헌터넷을 쓴다.
여러 가지 정보도 있고, 막공을 짜는 <공대 모집> 게시판도 있는 곳.
쩌리들은 여기서 막공을 짜서 사냥을 다니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그럴까.
사기도 많이 당하고, 가끔은 서로 죽이기도 한다.
사실 던전 안에서 죽으면 증거가 안 남아서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지.
그리고 여기에 올라 있는 막공 게시물을 보고서 내가 여기에 온 거다.
애초에 이 던전 자체가 레벨 2의 세 명이면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
그러기에 레벨 3~4짜리가 쩌리 레벨 1 각성자를 3명을 채워 가는 형태로 던전을 공략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여기서 레벨 3~4짜리는 돈을 더 챙긴다.
그거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보통 레벨 3~4짜리면 레벨 1짜리에 비해서 적어도 2배 이상은 강하다.
그놈이 리더가 돼서 앞에서 몸빵을 하고, 1레벨 꼬꼬마들은 뒤에서 깔짝깔짝 공격이나 해대며 안전하게 던전을 클리어하는 거다.
대신 던전에서 나온 돈의 절반은 막공을 짠 이 녀석이 가져가는 것.
흔한 일이지.
흔한 일인데…….
“내가 컵라면 하나 끓여 먹을 동안 안 오다니? 이거 실화냐?”
막공 대장인 <방패최강맨> 놈이야 지가 강해서 뻗대고 있다 쳐도, 다른 쩌리 놈들은 뭔 깡으로 지각이냐?
그렇게 생각하던 차였다.
덜컹.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면 그곳에는 그럭저럭 잘생긴 안경남이 한 명 서 있었다.
나이는 이제 스물 초반 정도?
그래도 던전 간다고, 나름 차려입고 온 게 보였다.
저렴한 전신 방어구-특수 경찰의 시위 진압용 방검/방탄 복장 같은 디자인-를 입었는데, 투구만 빼고 입은 상태.
거기에 등에는 두툼한 배낭을 메고 왔다.
안은 던전에서 필요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겠지.
손에는 지팡이 하나를 들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직업이 마법사 같다.
저 녀석이 <짱마법>인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혹시 방패최강맨 님?”
“아뇨. 회귀가답이다 입니다만.”
내 닉은 <회귀가답이다>. 내가 회귀해서 이렇게 지었다.
“아. 회귀 님이시군요. 저는 짱마법입니다. 반갑습니다.”
“예. 저도.”
역시 이 녀석이 짱마법이었구먼.
방패최강맨. 짱마법. 냥곰이.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막공하기로 했는데.
방패최강맨은 방패 전사. 짱마법은 마법사. 냥곰이는 궁수라고 들었다.
‘그나저나 짱마법이라…….’
세계 멸망의 그 순간까지 살아남았던 내가 기억 못 하는 거 보니까, 딱히 미래에 대단한 족적을 남기는 인간은 아닌 모양이로군.
그래도.
인성은 합격이다.
왜냐? 나를 붙잡고 무시하지 않았으니까.
막공에도 최소의 규칙이 존재한다.
자기 직업을 밝히는 것.
그래야 서로 믿고 싸울 수 있지. 저기가 잔챙이만 나오는 던전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위험 공간이니까.
잘못하면 뒈지는 건 순식간. 그러니 최소한의 신뢰는 있어야 전투를 위한 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다가.
영혼 술사라는 허접한 직업을 가진 나를 평범하게 대한다는 점에서 인성은 합격이라고 할 만했다.
각성자들 중 한 3분의 1은 대놓고,
‘님 허접이죠?’
같은 표정과 행동을 일삼다가 나한테 대가리 깨지고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는 했으니까.
“저…… 그런데 영혼 술사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인지 여쭈어봐…….”
안경남 짱마법이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려고 하던 그때.
또 덜컹 소리가 나며 철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몸에 착 달라붙는 바이크 라이더 수트 같은 것을 입은 여성이었는데, 슈트에 어떤 처리가 되어 있는 듯 제법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뭐지?’
재벌 3세인가? 저 라이더 수트같이 생긴 거. 마법 무구잖어.
뜨억! 소리가 나는 물건인데 저거.
여성은 라이더 수트에 걸맞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등에는 활 통이 매달려 있고, 손에는 활을 들고 있어서 딱 봐도 궁수처럼 생겼다.
냥곰이.
리더인 방패최강맨을 제외한 마지막 팀원.
근데 얘는 배낭 안 메고 왔네……. 버스 타려고 온 애인가?
“두 명은…….”
“회귀가답이다.”
“저는 짱마법이고요.”
냥곰이는 우리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 벽면으로 걸어가서는 주저앉았다.
음. 아무리 봐도…….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있어 보이는 인간이로다.
부잣집 딸내미 증후군 같은 거라도 걸렸나?
땅콩 때문에 배를 돌렸던 모 재벌가 딸내미 같은 거 말이다.
‘이럼 피곤한데.’
짱마법도 같은 걸 느낀 걸까.
안경남이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와 소근 거렸다.
“조금 대하기 어려운 분인 거 같은데요. 저 브랜드의 수트는 되게 비싸기도 하고요.”
보아하니 저 수트가 뭐 하는 물건인지 아는 모양이다.
나도 알긴 알지.
나야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내가 여기 있는 건 빅 플랜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요.
빅-플랜.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그나저나 막공장은 언제 오려…….”
덜컹-
이 아저씨도 양반은 못 되겠구먼.
“다들 왔나?”
들어오자마자 말을 틱 하고 내려놓는다.
얼굴을 보면 나이는 이제 서른 후반에 들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
면바지에 운동화. 거기에 방패 하나랑 손도끼 하나를 들고 있다. 등에는 두툼한 배낭을 맺는데, 속은 비어 있는 듯했다.
‘던전 필수품 같은 거 안 챙겼나?’
아니. 레벨 4 주제에.
저렇게 허술하게 하고 왔다고?
뭐.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기는 하다만.
“뭐여. 기다리면서 컵라면 먹은 겨? 그나저나 차림이 이렇다고 놀라지 말어. 내가 이 던전 벌써 서른 번 넘게 돌았거든.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되니까. 다들 걱정 말…… 아니. 던전 오는데 누가 그러고 오랬나?”
방패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 * *
“야! 너 레벨 1 아니냐? 뒤지고 싶어? 하…… 어디서 이런 꼴통이 들어왔대……. 너 말이다. 뒤져도 내 책임 아니다. 알았냐?”
아저씨가 화를 팍팍 내신다.
사실 뭐 그럴 만하다. 내가 지금. 복장이 요상하니까.
운동화. 청바지. 반팔 면티. 그 위에 체크무늬 셔츠. 거기에…… 왼팔에 흑염룡은 아니고. 완전히 검은색인 쇠사슬 뭉치.
중2병 환자 같은 모습.
그것이 지금의 나다. 최강방패맨도 다를 바 없는 복장이지만, 저 양반은 자기가 베테랑이랍시고 저러고 있는 거고.
나 빼고 다른 두 명은 지금 완전 무장 상태 아니겠나.
그러니 저 아재가 저리 화내는 거지.
초짜 새끼가 평상복 입고 털레털레 왔으니까.
뭐어. 이건 내가 의도한 거니까.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면. 미리 설명했지만, 다들 내 뒤만 따라와. 그리고 너. 네가 회귀가답이다지? 너 무기 어딨냐?”
나는 왼팔의 흑염룡을 보여줬다. 철그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쇠사슬이 흔들거린다.
아재의 얼굴이 팍 썩어들어갔다.
“하…… 원거리 공격 가능하다길래 데려왔더니…….”
뒤이어지는 욕지거리.
“X바. 너는. 들어가서 걍 입구에서 대기 타라. 알았냐? 돈 받을 생각 하지도 말고. 팍 씨! 너 다녀와서 두고 보자. 어휴 진짜…….”
욕. 이해는 한다.
생사가 오고 가는 원시적인 곳이 던전이다.
그런 던전을 탐색하는데 욕 정도?
나이가 얼마고 품성이 어떻게 되든 간에 기본 언어처럼 오고 가는 게 욕이다.
품위가 없다고?
당장 죽고, 대가리 깨지는 걸 봐봐라.
제 품성을 지키기 힘들어진다.
그러고 보면, 이 아저씨는 제법 양반이다.
‘이 아저씨 착한데?’
화내는 척하면서 그래도 죽지 말라고 챙겨 주고 있지 않냐.
말은 험하지만. 입구에서 대기를 타라고 하면서 내 생명을 염려하는 착하디 착한 아저씨인 것이다.
‘와…… 따뜻한 정(情) 보소.’
눈물 날 거 같다.
회귀 전에서는 이런 사람을 2년간 구경도 못했는데.
다들 나 등쳐먹으려고 들거나, 죽이려고 들거나……였는데.
욕만 당기고, 챙겨 주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크흐. 따뜻하다.
이게 회귀의 맛인가.
“뭐 그러죠.”
덕분에 내 대답은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었다.
“씁…… 그러면. 들어가자고. 예약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방패최강맨 아저씨는 그러더니 퉤! 하고 침 한 번 뱉어 주고서 성큼성큼 포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 뒤로 안경남, 슈트녀 그리고 내가 차례대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