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이게 말이 돼? 이건 다 망한 거잖아? 하드모드 게임도 이렇겐 안 만든다고!”
“좀 닥쳐줄래? 시끄러우니까.”
동료의 차가운 말.
그런다고 열 받는 기운이 가라앉을 리 없다.
“뭐라고 했냐?”
“닥쳐달라고.”
“지금 닥치게 생겼냐?”
“나 생각할 게 있으니까. 그래도 닥쳐.”
유보라. 시간의 대마도사.
최후의 일곱 중 하나, 시간계 마법의 달인.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마도사였다.
그러면 뭐 하나?
우리는 결국 실패해 버리고 말았는데.
최후의 칠 인인 우리.
그 우리가 마왕에 도달하게 만들어 주었던 결사대도 죽었고.
칠 인 전부가 마왕을 죽였는데도, 세계의 멸망은 여전히 내려앉고 있었다.
저 하늘을 보면 칠흑 같은 어둠이 물감처럼 퍼져 내려온다.
<공허>
불과 몇 년 전부터 나타난 이상 현상이었다.
지금 그 공허가 빠른 속도로 내려앉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다.
무엇도 존재할 수 없는 게 <공허>이며, 삼켜지면 모든 게 사라진다.
들판에 불길이 뻗어나가는 것처럼.
내가 살던 세계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니 내가 발광이라도 할 수밖에 없지 않냐 이거다.
츠츠츠츠츠-
보아하니 하늘 전체가 공허에 먹혀 사라지는 건 몇 분이면 충분할 것 같다.
태양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그 공허가 지상으로 뻗어 내려온다.
차별은 없다.
드글드글 거리는 몬스터도, 인간보다 인간 아닌 것들이 즐비한 이 땅도 전부 먹혀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생각이라니?
“다 끝났어. 해결할 수 있을 거면 진즉에 해결 했을 거야.”
“닥쳐 봐 좀.”
“그래요 영훈. 그녀가 생각을 하게 조용히 해 주세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요. 만사가 다 끝난 상황에서 이러는 내가 등신인가 봅니다.”
유보라 옆에서 차분하게 말하는 마리.
최후의 일곱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셋.
그중 둘의 의견이 같다.
나는 고개를 휙 돌리고야 말았다.
그를 기다리듯 들려오는 낮은 음성.
-크…… 이제 만족하느냐?
온몸이 꿰뚫린 주제에 웅온한 저 목소리.
여전히 침착하기까지 하다.
반대로 내 대답은 공허를 찢듯 질러졌다.
“만족할 리가 있겠냐!”
나, 그리고 동료들.
최후의 칠 인은 저 공허 때문에 여기에 모였다.
공허가 나타난 후 파멸뿐인 미래.
그 미래를 막으려고 여기까지 왔다.
우리, 최후의 일곱 명은 가장 강했기에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싸웠더랬지.
인류 중, 우리가 아니면 이 개같은 마왕 새끼를 쓰러트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쉬운 것도 아니었다.
우리를 여기 앞에 도달시키기 위해서 결사대란 이름으로 수천 명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그렇게 결사대 수천이 전부 죽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발판삼아 도착한 칠 인인 우리가 마왕을 기어코 무너트렸다.
근데 이게 뭐냐?
가슴 벅차게, 다시 돌아가 최후의 생존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성공했다고.
우리는 인류를 지키는 데 성공했노라고.
그러고 싶었는데…….
이 상황은 대체 뭐냐 이거야.
죽어 가면서 세상을 구해 달라던 수없는 이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X이바아아아아아알!”
소리를 질러도 변하는 건 없었다.
멸망 중이니까.
처음엔 성공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 마왕 새끼를 죽일 때까지만 해도.
한데, 아니다.
제대로 죽이지조차 못했다.
봐라.
몸에 두른 갑주와 그 안의 몸이 잘려 나가고도, 입을 나불거리지 않나.
이게 입만 산 거라고 하는 건가?
-너희 인류의 배반자들이 왜 배반했을 것 같으냐?
-왜 그들이 배반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으냐?
-가장 고귀했다 일컬어지던 자. 성인이라 불리던 이가 왜 여의 부름에 응했는지…….
-너희는 깊이 생각했어야 했느니라.
우중충한 목소리에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안 그래도 열 받는데, 이 새끼가 대체 뭐라고 나불거리는 거야?
“그걸 일일이 어떻게 알고 자빠졌어. 그리고 알면 뭐 해. 그거 알면? 너희가 인류를 살려 주냐?”
마왕 벨린카니스.
우리 세계를 침공한 ‘것들’ 중에서 최고로 강했던 녀석.
그리고 나와 최후의 일곱 명의 손에 쓰러지고, 지금은 그 혼만 튀어나와서는 이빨을 털고 있는 녀석.
그래.
우린 이 마왕이 마지막 보스인 줄 알았다.
이놈을 찢어 죽이면 세계가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잖아.
최종 보스 쓰러트렸으면 됐잖아!
무엇을 더 어째야 했던 거냐?
-하…… 하하하하하하!
-그래도 멸종만은 피할 수 있을 터였느니라. 적어도.
-백만 명 정도의 인류는 살아남아서 여의 제국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 터였어.
-그걸, 너희가 망쳐 버렸을 따름이니. 이 어찌 가엽지 않은가?
“닥쳐.”
-그렇지 않아도 곧 여의 입은 다물어질 터이니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려무나.
-다만 내 백성들에게는 미안하구나.
-그들에게도 내일의 해를 볼 자격은 있을 것인데…….
“이 새끼 끝까지 혀를 놀리네. 내가 너 새끼 영혼을 아주 그냥 조각내서 다 씹어먹어 주마.”
나는 거대한 마왕의 머리통 앞으로 걸어갔다.
머리통은 희뿌연 혼이 일렁거리고 있고, 나는 그런 마왕의 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무 거칠지 않으냐? 살살 하거라.
녀석의 혼이 내 손에 붙잡혀 흔들거린다.
“내가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 진짜 고통스럽게 네 녀석을 먹어 주겠어. 알겠냐?”
-하하핫! 이깟 고통이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랴? 마음대로 해 보거라.
녀석은 미친 듯 웃어 댄다.
그게 더 짜증을 불러일으켜서, 녀석의 혼을 쥐어짜려고 힘을 주었을 때였다.
세계가 급변한다.
어느새 공허는 땅까지 뻗어와 땅을 먹고 있었다.
공기는 대부분 빨려 들어간 지 오래다.
결국, 우리는 컴퓨터 속 쓸모가 다 된 동영상처럼 삭제당하고 있다.
-크하하하핫! 크하하하하하!
이 상황에서도 마왕 새끼는 웃어 댄다.
멀리서 보면 이런 희극은 또 없겠지.
하…….
콰드드득-
결국 우리 근처에도 공허가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가 선 땅이 박살 나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래. 이제 끝이라 이거지?
내가 죽기 전에 마왕 이 새끼는 조지고 죽는…….
덥석.
마지막으로 마왕의 영혼을 불사르려던 내 손이 막혔다.
“뭐야?”
“수를 생각해 냈어.”
“뭐?”
“모든 것을 되돌릴 기회야.”
[당신은 3인 합동 기술을 제안받았다.]
[Y/N]
내 눈앞에 뜬 메시지 창을 힐끗 보고서 유보라를 직시했다.
“이제 와서 뭘 하겠다고?”
“안 할 거야?”
우리 주변까지 공허에 먹혀 사라졌다.
이제는 주변에 보이는 것은 거의 없다.
마주한 유보라의 눈동자는 절망이나 분노가 아닌, 침착한 광기만이 있었다.
광기라.
저 눈, 그래 저 눈이었을 때의 유보라는 가장 믿음직했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좋아. 해 보자. 어차피 다 끝장난 상황인데.”
Y를 선택하자, 녀석은 마리를 향해 손을 내 뻗었다.
마리가 다가와 녀석의 손을 붙잡는다.
[당신은 3인 합동 기술을 승낙했다.]
[기술 : 영혼 포식에 의한 기술 연계 강화]
[기술 : 시간 회귀]
뭐?
“야. 이게 무슨 개소리…….”
마리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마리의 몸 하나하나가 마치 먼지처럼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야! 이게 무슨 짓이야! 마리! 유보라!”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동료는 이미 네 명이나 잃었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이제 더는…….
내 손목을 잡은 유보라를 떨쳐 내려는데 떨어지지 않았다.
얘는 언제 이렇게 힘이 세졌어!
-호오…… 도박을 하는 것이냐? 과연 성공할지 궁금하구나.
“넌 닥쳐!”
-아하하하하. 여가 왜 그래야 하느냐? 어차피 곧 너에게 먹힐 터인데.
“마리이!”
보라를 말릴 수 없자, 마리를 설득해 보려고 했다.
“한휘. 이것은 끝이 아니에요. 다시 만난다면, 저한테 더…….”
마리.
최고의 서포터. 최고의 사제.
그녀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그렇게 흩어져 사라졌다.
“안 돼…….”
그리고 그녀의 몸이 흩어진 순간.
그녀의 몸에서 찬란한 광휘가 뻗어 나와 나에게 달라붙었다.
[희생 기술의 효과 발현.]
[일시적으로 모든 기술의 위력 다섯 배로 증가.]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 다섯 배로 증가.]
희생!?
아니. 이 순간 갑자기 무슨 놈의 희생이야! 유보라 대체…….
“유보라아아! 이게 대…….”
유보라의 몸이 마리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내 말 잘 들어.”
“…….”
“이제 스킬이 발동될 거야. 알았어?”
“무슨 스킬인데.”
“영혼 포식과 연계된 시간 회귀.”
잠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영혼 포식. 그건 내 스킬이니까.
“나, 마리, 마왕. 이렇게 셋의 영혼까지 먹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거야.”
“시간 회귀라는 거…… 농담 아니었냐?”
“내가 그런 걸로 농담할…….”
어느새 녀석의 몸 반절이 사라졌다.
“세계를 구해. 이제 너 밖에…….”
녀석의 몸이 전부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마왕이 웃었다.
-하하하하! 즐거운 여흥이로구나. 만약 성공한다면. 다시 만나자꾸나. 아니 꼭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동시에 녀석의 혼 역시 산산이 흩어져 사라져 간다.
그리고 사라져 가는 세계의 중심에서 나는 홀로 빛났다.
“이 개같은…….”
알겠다. 유보라.
이 녀석이 최후의 순간까지 냉정하게 계산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생각해 둔 거겠지.
시간의 대마법사라는 그 이름처럼.
세계를 구하지 못한다면, 혹시나 하고 준비한 최후의 한 수를 만들어 놓은 거였다.
그게 시간 회귀.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료가…….
마왕, 유보라 그 자신, 그리고 마리.
사실 더 많은 생존자가 있었다면, 그놈들도 모조리 내 영혼 포식의 제물로 사용했을 테지.
어차피 공허가 뒤덮은 이 세계에 미래 따위 없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빛이 내 몸에서 폭발했다.
[기술 : 시간 회귀]
[발동]
그리고 내 의식 역시 빛과 함께 증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