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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233화 (233/235)

"우승 축하해! 가비."

그날 저녁.

오늘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식사 자리를 주선한 오르테가는 오늘의 주인공인 가비를 축하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가비가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를 표하자 오르테가는 뒤이어 들어온 사람들을 반겼다.

"디나카랑 달리아도 고생했어."

본선 진출로 만족한 디나카와 가비와 결승에서 겨룬 달리아를 향해 그리 말해 준 오르테가는 달리아와 디나카를 보았다.

디나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고, 달리아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활 좋던데? 어디서 구한 거야?"

오히려 달리아는 가비가 오늘 사용한 활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런 달리아의 질문에 가비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카란타 씨가 만들어 주셨어요. 뭐, 홍보? 뭐, 아무튼 최근에 선보일 상품이라고 하더라고요."

가비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나르타는 여휘를 챙기면서 숙소에서 식사하고 있었고, 아린은 시아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식사 중이라서 오르테가가 마련한 자리에 참석한 건 이 세 명이 끝이었다.

카란타는 바로 일하러 가 버렸고, 쌍둥이도 바쁜 모양이었으니까.

"키린하고 케르는 어디 있는지 알아? 베베라는 그래도 인사하고 갔는데."

궁술 대회를 한참 구경하고 있을 때 베베라는 자신에게 인사하러 와서는 대회까지 단련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가 버렸다.

레오니는 아마도 대회 준비로 바쁠 테지만... 키린이나 케르 둘 다 딱히 그런 쪽으로 준비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아무튼 둘은 만나지도 못해서 당연히 초대도 못했기에 오르테가는 그녀들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달리아는 여유로운 얼굴로 그리 대답하고는 아직도 탄력을 잃지 않은 가슴이 드러나는 걸 신경 쓰지 않으면서 옷을 팔랑거렸다.

"그보다 안이 좀 더운데?"

"그래? 난 잘 몰라서."

오르테가는 방 온도에 민감하지 않은지 고개를 갸웃했고, 디나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덥긴 하네요."

"그래? 그럼 온도 좀 낮출까?"

오르테가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의 온도를 조절했다.

"이러면 되나? 로라가 만든 건 다루기가 어렵네."

버튼을 조작해 온도를 조절하면서 제대로 된 건지 확신하지 못한 채 머리를 긁적인 오르테가는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면서 질문했다.

"이제 어쩔 거야? 셋은? 다른 사람들 경기도 보고 갈 거야?"

"전 디카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바로 돌아가서 훈련에 들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디나카가 단호한 얼굴로 대답하자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디나카는... 아들을 금위대장으로 만드는 게 목적이었지? 아무래도 이미 금위대장으로 내정된 인물이 있어서 이루기는 힘들 거 같지만...

"난 선약이 있어서. 내일 바로 가 봐야 할 거 같은데."

달리아도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딸한테 사냥을 가르쳐 주기로 했거든."

언젠가 부족으로 돌아가 사냥꾼이 될 딸을 위해서 달리아는 딸에게 사냥 기술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했는데 하필이면 그게 내일이었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면 달리아는 바로 약속 장소인 쿠쿠루루로 가는 열차에 탈 예정이었다.

"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러면 가비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준 오르테가가 이번엔 가비를 향해 묻자 가비는 자신의 뒤에 무슨 석상처럼 서 있는 대흘을 쳐다보았고, 대흘은 말해도 된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랑 같이 불휘의 활을 만들 재료를 구하러 가기로 해서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가 봐야 할 거 같네요."

가비는 아쉬운 얼굴로 대답했다.

일주일 안에 활을 만들어서 현재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불휘에게 전해주기로 약속했기에 얼른 재료를 구하러 가야했다.

'다 바쁘구나...'

오르테가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오늘 이렇게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조심해서 돌아가."

'다 같이 보면 좋을 텐데... 오르테가는 아쉬워하면서도 내일 할 일을 정리했다.

내일은 대회 시작 전에 비토바르의 거리를 돌아보기로 약속했으니까.

--

"얼마나 걸려요?"

황제가 수희와 열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2일 째.

벌써 열차 여행이 질렸는지 수희가 창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내일이면 도착할 거란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자두렴."

황제는 느긋하게 신문을 읽으면서 모처럼 얻은 휴식을 만끽했다.

물론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언제까지 자신이 제국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황제는 신하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재상이 알아서 하겠지.'

다른 이도 아니고 재상은 믿을 만 했고, 모용진도 두고 왔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황제는 걱정은 뒤로하고 여행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황제가 무책임하게 그냥 황궁을 나온 것은 절대 아니었다.

[네, 그래서 오늘도 이상은 없네요. 관리들은 전부 퇴궁했고, 딱히 문제는 없답니다.]

통신 마도구로 연락해온 아네스의 보고를 들으면서 황제는 수희를 재웠다.

"그래, 다행이구나."

이미 황제는 아네스에게 그날 황궁에서 있던 일을 전부 보고하라고 지시해 두었으니까.

아네스는 그저 황제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목소리가 가벼웠다.

[태자 전하께서는 철곡에 도착해서 감찰 업무를 시작하신 모양이네요.]

"그 아이는... 무슨 판단을 했느냐?"

황제는 철곡을 감찰하고 난 다음 태자가 내린 결론을 듣고 싶었다.

[보고서가 곧 날아올 테니까 읽어보고 연락 드릴까요?]

"그래, 그래 주면 고맙겠구나."

태자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은 건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가볍게 대답했다.

[사랑해요.]

"나도."

뚝.

그녀의 사랑한다는 말에 맞장구쳐준 황제는 연락을 끊었다.

요즘엔 이런 소형 연락용 마도구도 예전처럼 귀한 물건이 아니었다.

당장 이런 마도구로 가족과 연락하는 이들을 열차 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태자는...'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제국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황제는 불안했다.

그래도...

'믿어 줘야겠지.'

자기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그게 자신이 아버지로서 할 일이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

"감찰이라는 거... 생각보다 되게 귀찮네."

태자는 장부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형식적인 감찰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했기에 일일이 서류를 다 확인하고 대조해 보는 건 생각 이상으로 귀찮았다.

'확실히 재정적으로는 자립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랐고...'

태자는 철곡의 재정 상태를 살펴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중앙의 지원은 필요 없겠지만...

'여전히 그리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야.'

조세 감면 혜택도 없앨 정도로 인구가 넘치는 곳은 아니었다.

아니, 생활 인구만 보면 여전히 기피지역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더 걷는다고 유의미한 차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물론 감면 혜택을 없애면 철곡에서 들어오는 조세야 늘겠지. 그러나 그렇게 늘어난 조세라고 해 봐야...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티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철곡을 포함한 관북은 더욱 발전할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관북의 중심지가 된 철곡이 이 정도니... 뭐, 다른 관북 지역은 따로 조사해 보지 않아도 뻔하리라.

"지원은 축소하는 방향으로... 조세 감면 혜택은 유지? 이 정도가 적절할 거 같은데."

"네, 그러면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태자의 업무를 도우라고 황제가 추가로 보낸 감찰관은 그 말에 얌전히 붓을 들고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으아아... 끝났다. 이제 뭐 하지?"

크게 기지개를 켠 태자가 묻자 뒤를 지키고 서 있던 길명이 대답했다.

"복귀하셔야죠. 폐하께서 자리를 비우셨으니 얼른 전하께서 황궁으로 복귀해 대리청정을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 아버지는 왜 가 버린 거야? 하. 그러면 이번엔."

태자는 싫은 표정을 지었다.

바로 복귀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그래 마법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란다."

뒤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미성과 마력초 연기를 보며 태자는 직감했다.

"마리아 비께서... 오셨군요."

태자는 뒤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새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놓은... 그 커다란 흉부가 부각되는 로브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싱긋 웃으면서 태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 그녀의 손에 마력초가 든 곰방대가 들려 있었다.

"크라이스를 보내면 그쪽이 안 올 거 같아서 말이다. 황제는 태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란 말이 있었지만... 본녀는 아무리 그래도 태자가 그 빈자리를 메워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황제를 그냥 황제라고 부르고, 태자를 그냥 태자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비.

마리아는 그리 말하면서 마력초를 태웠다.

"저 쉬고 싶은..."

"쉴 거면 황궁에서 쉬어도 되니까.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니."

"..."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태자는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이동할 테지만... 맞다. 길명은 남거라. 그대는 남아서 미르예프 비와 카예프를 잘 지키고 돌아오는 게 좋겠구나."

"...명을 받듭니다."

길명은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태자의 호위 무사이기 전에 황제의 무사였고, 마리아의 말투에서 이미 그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하긴 애초에 황제가 굳이 그녀를 태자에게 붙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황제가 말하길 태자를 돌아오게 할 생각이면 호위는 당분간 이화로 두고 싶다더구나."

'역시...'

이번 인선은 황제의 뜻이 깊게 개입된 인선.

길명은 황제가 굳이 이화를 태자와 함께 보낸 이유를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상대는 나름 의미가 깊으니까. 미리 친해져서 나쁠 건 없겠지. 미리 사고 치는 것도 괜찮고.]

황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길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고라...

"그럼 돌아갈까... 피곤하네. 이화도 돌아가면 얼른 퇴궁해. 나도 잘 거니까."

"네? 아, 네... 그럼 퇴궁하고 아침에 복귀하겠습니다."

태자와 이화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길명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폐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둘이 사고를 치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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