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미친놈이 따로 없구나.'
황제는 스스로가 정상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미친놈이긴 했지."
오르테가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넌 늘 뭔가에 미치는 녀석이었잖아? 어릴 땐 검에, 나중엔 피에. 그리고 지금은 일에 미친 거 아니야?"
"..."
그 말에 황제는 그녀를 노려보았으나 막상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괜히 오르테가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트렸다.
"뭐야! 이거 관리하기가 얼마나 힘... 듣고 있어?"
오르테가가 바로 투덜거리기 시작했으나 황제는 신경 쓰지 않으면서 말했다.
"미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자리니까. 미치지 않으면 그때는 버틸 수 없었을 거야."
황제도 나름 할 말은 있었다.
원치 않은 자리에 올라서 증오스러운 그들을 상대해야 했다.
미치지 않으면 이상한 자리에서 미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에 미쳤다.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걸 남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이기적인 거겠지."
그건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사정, 그걸 남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감정이라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
부정하지 않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웃었다.
이래서 녀석하고 이야기하는 건 마음이 편했다.
이 녀석은 제대로 자신을 봐주니까. 자신에게 좋은 말만 해주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황제는 오르테가를, 그녀는 신뢰할 수 있었다.
"오르테가."
"응?"
이 녀석을 곁에 둔 것은 어쩌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
황제는 그런 생각하면서 말했다.
"늘 고맙다."
"뭐야 안 어울리게. 그런 말 해봐야 뭐 나오는 거 없거든?"
말과는 다르게 기분이 좋은지 뿔이 반짝거리는 녀석을 보며 웃음을 눌러 참은 황제는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오늘 누님이 다녀갔어."
"응? 리아 언니?"
황제의 말에 오르테가가 깜짝 놀랐다.
둘의 사이는 분명...
"그래,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눴지."
"그... 괜찮아?"
오르테가가 바로 눈치를 보자 황제는 피식 웃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님이 그러더군. 많이 변했다고."
자신을 보면서 변했다고 말하던 누님을 떠올리며 황제는 웃었다.
"내가 변하긴 한 모양이야."
그 누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솔직히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렇구나... 그럼 별일이 없던 거지?"
오르테가의 질문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행이다. 둘이 맨날 싸우기만 했잖아. 분위기도 괜히 흉흉해지고."
진심으로 안도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그녀의 머리를 다시 엉망으로 만들었다.
사실이긴 한데 녀석이 말하니까 뭔가 얄미웠으니까.
"아니 진짜! 하지 말라니까."
황제는 바로 투정을 부리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웃었다.
확실히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물론 그 후에 화난 오르테가가 고생이나 하라고 날씨를 바꾸려고 하는 바람에 이를 말리느라 애를 먹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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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바뀌었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탄 채 리아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괴물 같은 동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괴물이 인간이 될 수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괴물은...'
바뀐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처음부터 괴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 아이를 괴물로 만든 건.
그런 괴물은... 자신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그 아이는 어떠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떤 아이였지? 무엇을 좋아했지? 그때 그 아이는... 고작 7살 때 사람을 죽이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괴물이었나?'
재능이 남달랐던 건 알고 있었다.
검에 대한 소질은 근골이 빼어나지 않아 혹평을 받았으나 그 외에 모든 것에 능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자신은...
'그 녀석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려고 한 적이 있었나...?'
리아는 그제야 스스로의 죄를 깨달았다.
자신은 한 번도 그 아이를 제대로 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리아는 이 모든 일을 어쩌면... 자신이 자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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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첫 살인이 제일 힘들지. 나도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 손이 떨리고... 구역질이 나더라."
모용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화우란을 보았다.
모처럼 외부 임무인데 설마 이 녀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그제야 떨리는 손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그렇군요."
"사고야. 사고. 애초에 이 녀석들은 사람 질리게 죽였을 텐데 뭐."
화우란은 덜덜 떨면서 자기 앞에서 죽어 있는 산적을 쳐다보았다. 그 반응이 신기한지 모용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인이라면서 사람은 처음 죽여봐?"
"제, 제압만 해봤지 실제로 죽이는 건 처음인 걸요."
"신기하네."
자기 목숨은 막 걸길래 능숙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모용진은 그리 생각하면서 웃었다.
뭐, 살인이 처음이면 확실히 이런 반응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긴 폐하도 처음엔 덜덜 떨었으니까."
당장 그 황제도 첫 살인엔 그리 떨었으니까.
"...네? 폐, 폐하께서도요?"
화우란은 깜짝 놀랐다.
그 폐하께서 그랬다고? 믿어지지 않았으니까.
"그거 진짭니까?"
다른 금위대도 놀란 듯이 반응했다.
그 무서운 폐하께서 고작 살인에 덜덜 떨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으니까.
"진짜야.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덜덜 떨었다니까. 내 앞에선 펑펑 울기도 했는데?"
모용진은 그때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사람이 죽은 자리에서 그대로 잠든 배짱을 보여 준 황제는... 정작 자신을 보자 울음을 터트렸다.
그대로 품에 안긴 채, 한참을 울면서 애처롭게 떨었지.
그때가 모용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그 모습이 참...
"그땐 참 귀여웠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귀여워."
그렇게 자신에게 의존해주던 사촌 동생은 이젠 악덕 상관이 되어선 무섭게 일을 시키고 있었다.
"그 나이 먹고 귀여우면 더 문제 아닌가요?"
그 말에 화우란이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모용진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아무튼! 이제 너도 금위대니까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지."
"...그렇죠."
그 말에 그렇게 대답한 화우란은 애써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느낌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이젠 이게 익숙해져야 하는 직업이니까. 익숙해져야 하지만...
솔직히 화우란은 자신이 없었다.
'이게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죽여야 하는 걸까?'
개인 차가 있겠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꽤 오래 걸릴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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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황제는 조정에서 회의를 끝마치고 걸으면서 미령에게 보고를 들었다.
"그래, 어젯밤에 도착했다고."
"네, 지금은 준비 중에 있습니다."
미령의 보고에 황제는 각오를 다졌다.
드디어...
"지금 짐의 얼굴이 어때 보이나? 무섭나?"
"...?"
황제의 질문에 미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늘 그랬듯이...
"별 차이가 없으신데요."
그냥 잘생긴 얼굴이었으니까.
"긍정적인 의미냐 부정적인 의미냐."
황제의 질문에 미령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그래도 일단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황제는 일단 외견으로 공포감을 조성하지는 않을 거 같아서 조금 안심했다.
'오늘이구나.'
황제는 각오를 다졌다.
오늘은 드디어...
크릴라이족의 여인과 마주하는 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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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인형 같으시네요."
치장을 받는 사유우이를 보면서 아파리는 감탄했다.
성인 여성치고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 그리고 동안의 얼굴은 그녀를 아직 10대 소녀로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보기와 다르게 그녀는 이미 약관을 넘긴 지 제법 된 완숙한 성인이었다.
당장 그 작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골반도 잘 발달해 있었고, 가슴도 제법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새하얀 프릴이 달린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사유우이는 그야말로 인형처럼 귀여운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칭찬이죠...?"
사유우이가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를 보내며 묻자 아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아닌 거 같은데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사유우이가 눈을 가늘게 떴으나 아파리는 그 모습조차도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를 보면서, 그녀의 거친 느낌이 드는 회색 머리카락을 아파리는 직접 손으로 정리해주며 말했다.
"진심입니다. 아가씨가 이리 훌륭하게 자라신 모습을 보니... 너무 감동적이네요."
"아파리... 저 최선을 다 할게요."
그 말에 감동한 표정으로 눈물마저 글썽인 사유우이가 진지한 얼굴로 다짐했다.
최선을 다해서 황제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겠다.
무릎을 꿇으라면 꿇고, 머리를 조아리라면 조아리고, 발을 핥으라면 핥을 것이다.
그보다 더한 수치를 안겨 주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그녀는 설령 그대로 발가벗겨져 이 추운 날에 밖으로 내쫓겨진다고 해도 인내할 각오를 했다.
황제가 자신들을 아직도 증오하고 있다면 부디 그 증오를 자기 몸 하나로 끝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죽으면서도 원하던 것이었고, 그것이 지금의 크릴라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아가씨..."
그런 사유우이의 각오를 읽은 것일까? 아파리의 눈이 작게 떨렸다.
그리고는 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아가씨가 행복하기를.'
불안은 그저 헛된 불안으로만 남기를...
아파리는 기도하면서 열심히 사유우이의 머리를 땋았다.
--
"...준비가 끝났다고."
연못을 내려다 보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있던 황제는 미령이 합궁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자 바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씻어야겠구나."
"씻겨드릴까요?"
미령은 또 짓궂게 질문했고, 황제는 그 말에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 도움을 좀 받아보마."
"네, 그러실... 네?"
언제나처럼 거절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대답하던 미령이 그대로 굳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진심이십니까?"
스스로가 들은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해서 미령이 되묻자 황제가 태연하게 반문했다.
"왜 그리 당황하느냐. 그대가 제안한 일이 아니냐?"
"그, 그렇긴 하지요. 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여전히 당황한 눈치인 미령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비틀거리면서 사라지자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웃었다.
"저리 당황할 거면서 그런 농은 왜 하는지."
뭔가 이긴 기분이 들어서 황제는 기분 좋게 웃고는 욕탕으로 향했다.
과연 그녀가 어떤 준비를 했을지 황제는 조금 기대가 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황제를 반긴 것은 수건 한 장으로 자기 몸을 가린 미령이었다.
수건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계곡에선 물방울이 맺히고 있었고, 안경을 벗은 그녀의 얼굴은 약간의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벗겨드리겠습니다."
황제가 그 모습에 조금 당황하고 있을 때 애써 태연함을 가장한 미령이 황제에게 다가와 그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건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탐스러운 허벅지가 황제의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만지고 싶으시면 만져도 됩니다."
그 시선을 눈치챈 미령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권유했다. 그런 그녀의 권유를 황제는 사양하지 않았다.
"언제 만져도 부드럽구나."
황제가 그녀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하자 미령은 부끄러워하며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아..."
부끄러움에 안경을 고쳐 쓰려던 그녀는 자신이 욕탕이라 안경을 벗었단 사실을 깨닫고는 슬쩍 다시 손을 내렸다.
"그럼 어디 그대의 솜씨를 보고 싶구나."
허벅지를 희롱하는 걸 끝낸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바로 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스윽. 스윽.
미령은 그 모습을 보고는 물수건으로 열심히 황제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물론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고, 가끔은 너무 힘을 주는 그녀의 행동에서 그녀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그게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그 시선을 눈치채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웃었다.
"나쁘지 않구나."
그래도 정성이 느껴져서 황제는 나쁘지 않았다.
서툴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무엇보다...
이런 자신에게 이토록 정성을 쏟아주는 게 황제는 싫지 않았다.
그러니까...
'잘해야겠지.'
자신이 없다던가, 두렵다는 말로 피해선 안 되겠지.
황제는 각오를 굳혔다.
크릴라이의 여인을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이미 정해 두었으니까.
남은 건...
과거를...
아니 그녀를 마주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