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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79화 (179/235)

"참으로 당혹스럽구나."

황제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앞에서 그 푸른 눈을 반짝이는 여인은 자신의 검은 머리를 위로 정성스럽게 올려 묶어서 정리했고, 옷차림은 이상하게도 남자들이 입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반짝이는 푸른 눈에 가득한 장난기와 호기심이 이 여자가 얼마나 말괄량이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태학정의 여동생이라더니...'

그래도 확실히 태학정 이신의 여동생 같기는 했다.

눈이 푸른색인 게 신기하긴 하지만 그래도 참으로 닮은 점이 많아서 한눈에 보고 이신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으니까.

"보여주세요. 네? 엄청 강하다면서요! 제발요!"

이젠 애처럼 조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생긴 얼굴이나, 남자 옷을 입고 있음에도 여성스러운 곡선을 숨길 수 없는 그녀의 몸만 보아도 떼를 쓸 나이는 지난 것이 느껴지는데 저렇게 생떼를 부려대니... 황제는 어이가 없었다.

'과연...'

황제는 그제야 태학정이 왜 그런 반응을 보여주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 큰 처자가 어린 애처럼 떼를 쓰고 있으니 그의 입장에선 참으로 밖에 내놓기 부끄러웠을 것이다.

"...어찌 보여주면 되겠느냐?"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제 앞으로는 자기 사람이 될 여인이거늘.

황제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물었다.

저렇게 떼를 쓰는 데 안 들어주기도 무안했다.

"제가 엄선한 무림의 무인 10명 정도를 상대해주시면 될 거 같아요! 오라버니의 말대로라면 절대 지지 않으시겠죠?"

"...그건 조금 흥미롭구나."

그녀가 흥미로 반짝이는 눈으로 그렇게 제안하자 황제가 바로 반응했다.

사실 무림의 무인이 사람에게 고용되어서 일하는 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놈들도 결국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고, 할 줄 아는 게 칼질과 주먹질인 녀석들이 찾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명가의 딸인 그녀 밑에 기어들어간 무인들이 있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쁘지 않지. 준비는 되어 있느냐?"

아무튼 그 천하제일인을 찾는 김에 그들의 힘을 봐두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아 보였다.

황제가 그런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연무장에 진이 오라버니한테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 뒀어요."

"...그 녀석."

당연히 내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제대로 보았다.

황제는 걸어오는 도전은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가자. 그런데 죽여도 되나?"

황제가 순수하게 궁금해서 질문하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 힘드시면 그래도."

"그럼 전부 살려주마."

머뭇거리면서 말하는 그녀의 말에 황제는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바꾸었다.

보기와 다르게 죽음엔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만... 다음엔 이런 일할 때는 목숨을 거는 건 그대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걸 기억하도록."

"...네"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디 한 번 그녀가 준비한 무인들의 실력을 견식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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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선 얼마나 대단할까요?"

모용진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보면서 묻는 화우란이란 여인을 보며 말했다.

다른 놈들과 달리 그녀는 노골적으로 황제에 대한 존경을 딱히 숨기지 않았다.

하긴 황제가 보여준 무위를 생각하면 무인이라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긴 했다.

"보면 알 거다."

아무튼 친해질 필요는 없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모용진의 대답은 쌀쌀맞았다.

'폐하께서 죽이고자 하면 1초 정도 걸리려나?'

모용진은 그들의 수준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다 죽이는데 1초는 걸릴까?

역시 질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지는 실력이다.

이런 실력이면 냉정하게 말해서 금위대 무사도 못 된다. 일반 병사라면 가능하겠지.

"쳇! 더럽게 쌀쌀맞네. 자기가 뭐라도 되는..."

파직!

그 순간 모용진이 쏘아낸 뇌기가 덩치 큰 남자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쪽이야말로 뭐가 되나? 그 언행을 책임질 실력은 있는 거겠지?"

"끅!"

10명의 무인들이 모두 모용진이 보여 준 기술에 눈을 크게 뜨면서 덜덜 떨었다.

바로 옆에서 뇌기가 스쳐 지나가는 걸 경험한 덩치 큰 남자는 오줌까지 지렸을 정도였다.

"쯧. 옷이나 갈아입고 오도록."

그걸 보면서 코를 살짝 막은 모용진은 요술로 대충 갈아입을 옷을 만들어서는 남자에게 던져 주었다.

남자가 수치심에 물든 얼굴로 그 옷을 받고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사라지자 모용진은 요술로 남자가 지린 것을 치웠다.

정말이지... 저런 수준 미달들하고 폐하를 붙게 두어도 괜찮은 건가?

'뭐, 슬슬이니까...'

나쁘진 않겠지.

모용진은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 좀 잠잠하긴 하지만... 황제는 광증을 앓고 있었다.

그 광증을 진정시키는데는 피가 필요했다.

즉 이들은 제물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완화되었으니까 방금 저 남자처럼 무례하게 굴지만 않으면 죽이진 않겠지.

모용진은 그런 생각하면서 긴장한 얼굴로 몸을 푸는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준비는 끝났느냐?"

그때였다.

황제가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며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가벼운 말에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전부 굳어 버렸다.

모용진은 여전히 살벌한 기운이라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가 끝났습니다."

"으음..."

그들을 살펴보는 황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모용진은 바로 알아차렸다.

지금 황제는 무인들의 수준에 적잖이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하아."

깊은 한숨을 쉰 황제는 그대로 무기 없이 서선 말했다.

"수준을 보아하니 죽이지 않는 것도 일이겠구나."

한눈에 보니 그 수준이 목검이라도 들었다간 절명할 판이라서 맨손으로도 손속에 사정을 둬야 할 정도였다.

"먼저 공격하거라. 짐은 반격만 할 터이니."

"!"

그 정도로 무시한다고?

무인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순간 압도당하긴 했지만... 한눈에 봐도 황제는 제법 크긴 하나 대놓고 거구인 금위대장보다는 약해 보였다.

게다가 지금 황제에게선 별다른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고, 자세도 대충이었기에 무인들은 속으로 할만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갑니다."

무인들 중에서 대장을 맡은 화우란이 검을 뽑고는 호기롭게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비연참(飛鳶斬)!"

"...허."

황제는 그녀가 날린 솔개 모양의 참격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러고는 그것을 맨손으로 잡아서는 돌려주었다.

"!"

그대로 자신의 공격에 베여 버린 화우란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무인들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정도 수준일 줄이야..."

기술명을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황제는 완전히 질려 버렸다.

언령도 없으면 기조차 다루지 못 하는 하수들이라는 이야기였으니까.

"무림의 수준을 알만하구나."

황제는 한숨이 나왔다.

인간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건 어디에나 통용되는 법칙으로 수준 낮은 마법사들이 마법을 쓸 때 마법을 외치듯, 수준 낮은 주술사가 주술 이름을 부르듯.

수준이 낮은 무인들은 기를 다룰 때 기술명을 외친다.

말엔 힘이 있으니까.

부족한 실력을 메우기 위해 그 힘을 빌리는 것이다.

'금위대에 들어오지도 못할 버러지들을 상대해야 될 줄이야.'

관직에 오른 무인 중에 그 누구도 저런 초짜들은 없다.

아니, 당장 금위대의 병사만 해도 저런 식으로 조잡하게 기를 다루는 머저리들은 없었다.

"실망이 크구나."

황제는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이게 정말 저들의 수준이라면...

"왜 공격하지 않느냐? 아직 두 다리로 멀쩡하게 서 있지 않으냐."

얼른 끝내고 다시 돌아가서 일할 생각이었다.

덜덜...

남은 무인들은 황제의 말에 몸을 덜덜 떨더니 갑자기 자해하기 시작했다.

푸아악!

자신의 다리를 자르는 그들을 보면서 황제는 혀를 찼다.

두려움에 싸우는 것보단 자해를 택한 건가? 참으로 약한 정신력이었다.

"치료를. 비용은 이가에 청구하겠다."

황제가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온 어의들에게 치료를 명령하며 황제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이희에게 말했다.

"이게 그대가 말하는 강한 무인이라면 더 볼 필요도 없겠구나. 더 필요하느냐?"

"아, 아뇨..."

뒤따라오면서도 여전히 얼이 빠져 있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말했다.

"놀랐느냐? 그대에겐 단순한 흥미였는데 이리도 피해가 나왔으니."

"...네."

이희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솔직히 그냥 강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렇게... 사람을 망가뜨리는 강함을 보고 싶진 않았다.

소설에서 보던 가볍게 기세만으로 제압한다던가. 그런 걸 기대했으니까.

"그런 것이다. 개구리에게 흥미로 던진 돌이 그 개구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이해하지 못 하는 아해처럼. 그대도 그러했겠지."

그녀를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어린아이가 돌을 던질 때 그 돌이 상대에게 미칠 영향과 두려움을 이해하고 던질까?

그녀는 아직도 그런 아이와 같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볍게 이런 싸움을 주선했을 거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희가 뭔가 고민하는 얼굴로 사라지자 황제가 표정을 풀고는 뒤따라오던 모용진에게 물었다.

"그보다 그렇게 두려워할 정도였나? 나름 조절한다고 해준 것인데."

그래도 기본은 하겠지란 생각에 적당히 기세를 조절했는데... 그렇게 겁에 질려선 자해까지 할 줄은 황제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여자가 거기서 제일 강한 모양이더군요."

"그러냐? 짐은 몰랐구나."

전혀 몰랐다는 듯이 반응하는 황제를 보며 모용진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딱 보면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그대는 쌀을 구분할 때도 한 알이 다른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구분하느냐?"

"..."

황제의 말에 모용진은 새삼 이해가 갔다.

하긴 황제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이 가진 힘이 딱 그 정도일 테니까.

"정신이 들면 대충 돌려보내거라. 아무튼 조금 실망스럽구나. 저 실력이 무림에서도 손에 꼽는 실력이라면 더 볼 필요는 없겠으니."

"에이,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냥 제법 치는 정도겠지요. 아무리 떨거지들이라도 그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면 금위대의 병사 정도는 노려볼만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무림에서 상위권이라도 금위대 병사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 정도면 기만 다루지 검기는 쓰지도 못할 수준이라는 건데 참으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아니, 오늘 화우란이란 여자가 보여 준 걸 생각하면 기도 제대로 못 다루고 언령에 의존하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 수준이 끔찍하구나."

눈만 버렸군.

황제는 오늘 있던 대련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했다.

정말이지... 무림의 놈들은 무인이라 부르는 게 아깝다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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