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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170화 (170/235)

초기의 제국은 그야말로 무법지대.

아직 융화되지 않은 각 민족들은 걸핏하면 다투며 분쟁을 일으켰고, 그것에 대한 법조차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차별하며, 언제 갈라질지 모를 불안한 제국을 안정시킨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천무제의 손자이자 아직도 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제국법을 완성한 법문제였다.

지금 제국의 법도는 그가 이룬 것을 조금 수정하고 보완한 것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이자, 황제.

그 법문제가 가장 총애하던 음악가가 바로...

"이 몸이었단다. 법문제는 살결이 참으로 부드러웠지."

자랑스럽게 그 커다란 흉부를 자랑하듯 내밀며 그녀가 말하자 황제는 침묵했다.

"..."

황제는 이걸 모독죄로 처벌해야 하나. 아니면 내버려 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일단 그녀가 원하는 대로 커피를 타서 내려놓았다.

"황제가 커피를 타는 모습을 보다니...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이 확실히 실감이 나."

그 모습을 집요하게 훑어보던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커피 향을 맡았다.

황제는 자신의 몸을 집요하게 훑는 그녀의 시선이 참으로 부담스러웠지만 내색하진 않으면서 얌전히 그녀의 앞에 앉아서는 커피를 마셨다.

"과연 설육이 그렇게 커피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구나."

꼭 한 번 마셔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커피를 마셨다.

"미남이 타주니까 더 맛있는 거 같은데?"

살짝 탈을 올리고 있던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말하자 황제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헛소리를 할 정신은 있는 듯 하여 참으로 다행입니다."

황제의 차가운 독설에도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미남의 독설도 좋은데?' 같은 헛소리나 하면서 그걸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날 찾은 이유가 있는 거겠지?"

커피를 다 마신 그녀가 살짝 올렸던 할미탈을 다시 쓰면서 물었다.

그걸 본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장휘량 님의 연주를 들어 보고 싶은 사람이 많습니다."

"아? 그야 당연히 그럴 테지. 그런데 어쩌지? 맨입으로 연주해 줄 생각은 없는데?"

황제는 능글맞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그런 반응까지는 이미 예상한 범주 내였다.

"원하는 것을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황제의 제안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바로 황제를 가리켰다.

"음... 그 몸?"

"..."

생각 이상으로 저질이다.

황제는 그런 생각하면서 순간 검을 뽑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마음 속에선 이미 그녀를 열 번은 난도질 한 상태였다.

"그 몸을 맛보게 해주면 조금 연주할 마음이 생길지도?"

"..."

다시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황제의 몸을 핥듯이 살펴보았다.

황제는 그 시선을 감내하면서도 침묵했고, 장휘량은 그것을 즐겁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싫으면 뭐... 어쩔 수 없고."

절대 안 해.

그녀의 행동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에 황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다른 건..."

"내가 돈이 필요할까? 아니면 다른 게 필요할까?"

"..."

그녀의 말에 황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긴 신선에게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렇다고 그녀를 쫓아낼 수도 없으니 결국 황제는 선택해야했다.

그녀의 공연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자기 몸을 포기하던가.

황제는 한참 머리를 굴려보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상선... 궁녀들을 전부 물리고 그대는 이 궁에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

"그 말씀은..."

"그 누구도."

그건 황태후 폐하도 포함이 된다는 이야기였기에 상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궁녀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황제가 사람을 비우기 시작하자 장휘량은 탈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무나도 의도가 명확한 행동이었으니까.

"약속은 지킬 거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황제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히 지켜야지. 이야 두근거려.  황제란 남자가 쪼잔하게 한 번으로 끝내는 건 아니지?"

황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탈을 벗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새하얀 머리가 비녀가 풀리면서 길게 늘어졌고, 탈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백옥 같이 희고 고운 피부,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검은색 눈동자.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얼굴은... 정말 예상과 다르군요."

황제는 그녀를 보면서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장휘량은 하는 말과는 안 어울리게 그녀의 얼굴은 순진한 인상의 미인이었다.

살짝 처진 눈매가 그런 그녀를 더욱 순진해 보이게 만들었다.

오른쪽 눈 밑에는 검은 점이 하나 있어서 눈에 띄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순진무구한 미인으로만 보이겠지만...

"다 벗을까? 아니면 입고? 어느 쪽이든 난 좋은데?"

잠시만 같이 이야기를 나눠봐도 본성을 알 수 있을 거 같은 여자였다.

황제는 마음대로 하라는 말하고는 용포를 벗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휘파람을 불더니 얇은 옷차림이 된 황제를 보면서 박수를 쳤다.

"단단하네. 벌써 기대가 되는데?"

황제의 가슴을 더듬으면서 그녀가 말하자 황제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중얼거렸다.

"...난 자꾸만 검을 들고 싶어지는데."

이젠 그녀를 향한 존칭도 없었다.

황제는 체념한 얼굴로 양손을 들면서 말했다.

"마음대로 하거라."

"아아! 그런 명령하는 듯한 태도도 좋은데? 옛날 생각이 나버렸잖아."

잔뜩 흥분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장휘량은 황제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기대가 가득했다.

--

예전부터...

몸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말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젊었던 시절.

대륙은 그야말로 난장판.

그 설육의 지엄한 가르침은 그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고,  제국은 서로가 서로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죽여도 별다른 처벌도 없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그녀는 그렇게 젊을 때 다른 민족의 손에 부모를 잃었다.

술에 취한 그 다른 민족의 남자는 그녀의 부모를 죽이고, 그녀는 강간했다.

그게 그녀의 첫 경험이었다.

그 시절엔 같은 민족을 처벌할 법은 있었지만 다른 민족을 처벌할 법은 없었기에 그 남자는 무죄가 되었고, 그녀는 모든 걸 잃은 채 길을 떠돌게 되었다.

그 뒤로 그녀는 자기 몸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처음엔 괴롭고, 고통스러웠지만.

나중엔... 그냥 그 행위가 가져다주는 쾌감에 돈을 받지 않고 관계를 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이제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의 세상은 쾌락 위주로 돌아갔고, 그녀의 처음을 가져간 것은 참으로 흉한 남자였기에 그녀는 반대로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가 몸을 굴리고, 점점 쾌락에 몸도, 마음도 마모되어갈 때...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났다.

이 더러운 곳에 있어서는 안 될 거 같은 고귀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움.

비단처럼 고운 검은 머리를 뒤로 가볍게 묶어서 정리한 그는, 남자였으나... 참으로 아름다워서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신보다 작은 키에, 부드러운 피부는 건드리면 더러워질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깨끗했다.

그런 그 아름다운 청년의 금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서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녀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 미소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그대가 장휘량인가?"

그는 그녀를 알고 있었고, 그녀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그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런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얼빠진 대답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흐트러진 더러운 옷을 금방 정리했다.

그래봐야 더러운 옷이, 더럽혀진 몸이, 더러워진 마음이.

깨끗하게 정돈되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그럼에도 의미가 없는 행위를 이어가며 그 남자 앞에서 초라하게 섰다.

그를 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더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손이 길고 곱구나."

두근.

자상하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녀는 많은 남자를 보았다.

하나같이 자신의 얼굴이나 가슴에만 관심을 가지는 짐승들이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달랐다.

그저 손가락.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던... 자기 손가락에 집중하고 있었다.

"밤에 그대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참으로 고운 음색이더구나."

"아, 그, 그건... 별건 아니었는데요."

그리고 남몰래 부르던 자신의 노래에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저 생각 없이... 부르던 노래에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 주었다는 것이... 그녀는 이렇게 기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제안을 하고자 하는데 궁중 악사가 될 생각이 없느냐?"

"궁중... 악사요?"

그제야 그녀는 남자의 눈에 집중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신비로운 금안.

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머리를 땅에 박으면서 빌었다.

어쩐지 고귀한 느낌이 들더라니...

그녀 같은 더러운 이는 함부로 보지도 못할 위대한 사람이었으니까.

"조, 존엄하신 하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사죄..."

그녀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빌고 있을 때였다.

"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그녀를 제지하면서.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죄가 아니라. 대답을 말이다."

"...제가 감히."

그런 자리에 올라도 되겠습니까?

그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남자. 아니 황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고른 악사다. 그 이상의 자격이 어디 있겠느냐."

황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 미소가, 그 말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지금도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와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

'다르긴 한데.'

장휘량은 황제의 근육으로 탄탄한 몸을 살펴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점에서 지금 황제는 솔직히 법문제와는 달랐다.

학자 느낌이 강한 법문제와 달리 지금의 황제는 무인의 느낌이 강했고.

부드럽고 자상한 법문제와 달리 지금의 황제는 차갑고 쌀쌀 맞았으며.

작고 여리던 법문제와 달리 지금의 황제는 크고 강인했다.

허나... 이렇게 다른 점이 많은데도...

고귀하고, 아름다웠다.

그것은 똑같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가만히 서 있는 황제를 보면서 그녀는 고민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옷을 벗기고 실컷 맛보고 싶은데... 상당한 진미라서 아무래도 고민이 된다고 해야 하나?

'어디부터 맛을 볼까?'

그녀는 고민하면서도 황제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웠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하게 풍기는 황제의 체취에 그녀는 아래가 벌써 축축하게 젖어버린 상태였다.

할짝.

묘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황제의 얼굴을 가볍게 핥아본 순간.

그 순간 그녀의 이성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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