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건 말이다냐. 진행하겠다냐!"
케르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앞에 있는 모용진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용진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금세 그 의문을 털어버렸다.
확실한 황제의 인장이 찍힌 케르 비에게 모든 황제의 권한을 임시로 위임한다는 문서가 그 의문을 지워 버렸으니까.
'또 어디 가 버린 모양이구만.'
모용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까부터 냐옹하고 울고 있는 검은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그보다 갑자기 고양이라니. 비 전하께서 데려오신 겁니까?"
"냐냐? 아, 그, 그렇다냐! 잠시 친구에게 맡아 달라고 부탁을 받았다냐."
처음엔 당황하던 케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대답하자 모용진은 그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황제가 생각나는 금안이 인상적인 작고 귀여운 고양이라 한 번 쓰다...
휘익.
그러나 그 고양이는 그 손길을 거부하듯 빠른 몸놀림으로 천장으로 올라가 버렸다.
"...거 굉장히 빠른 고양이네요."
모용진은 순간 자신이 움직임을 놓쳤다는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일단 용건을 끝냈다.
묘인이 키우는 고양이면 그만큼 특별한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용진은 고양이의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을 그냥 가볍게 넘겼다.
"그럼 통합 훈련은 이때 진행하는 걸로 알고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수, 수고했다냐!"
어색하게 모용진에게 인사해준 케르는 모용진이 떠나자 그대로 추욱 의자에 늘어졌다.
그녀는 지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타악.
그걸 본 검은 고양이가 천장에서 내려오더니 가볍게 냐옹하고 울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겐 그저 고양이가 귀엽게 우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케르에겐 전혀 다르게 들렸다.
[벌써 그렇게 늘어지면 앞으로 어찌 버티려고 그러느냐. 좀 더 분발하거라냐.]
검은 고양이는 놀랍게도 케르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 앙증맞은 발로 케르의 팔을 툭툭 치면서 고양이는 말했다.
[짐을 대신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냐.]
케르는 그 고양이의 잔소리에 잔뜩 기가 죽은 얼굴로 귀를 웅크렸다.
"그, 그렇지만 냐... 이런 건 처음이라냐."
[그대가 저지른 일이다냐. 그대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검은 고양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른 세수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케르의 어깨에 올라갔다.
[짐이 잘 보조해줄 테니 이 모습이 풀릴 때까지 버티거라냐.]
"노, 노력해 보겠다냐. 주인."
검은 고양이.
아니 고양이가 된 황제는 그녀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히 그래야지.
황제가 지금, 이 모습이 된 것은... 그녀의 잘못도 있었으니까.
--
그 일이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오늘 아침.
해왕국에서 돌아와 바로 조정에 출근한 황제는 회의를 끝내고 아침 일정을 소화하기 전에 잠시 집무실에 들렸다.
집무실에서 살펴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황제가 집무실로 들어가자 모처럼 묘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케르가 황제를 반겼다.
"주인! 아빠가 선물을 보냈다냐!"
케르는 신난 얼굴로 무카가 보낸 물병을 흔들었다.
황제는 그 무카가 보낸 선물이라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다른 놈도 아니고 그 무카가 선물을 보내다니!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금수 같은 남자가 그래도 자기 딸이라고 선물을 보낸 건가?
황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니까.
"무엇이지?"
황제는 그녀에게서 물병을 받으면서 물었다.
안에 들어 있는 물에선 개다래나무 냄새가 났다.
"마시는 것 같은데."
황제가 물병을 들고 흔들어 보며 묻자 케르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꼬리는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 자랑스러운 묘인의 비전으로 만든 건강에 좋은 물이다냐! 인간이 마셔도 상관은 없으니까 좀 나눠 주겠다냐!"
"...그거 고맙군."
묘인의 영약이라는 건가?
황제는 흥미를 느끼면서 그 물병에 든 액체를 잔에 따라서는 마셨다.
두근!
그러자 갑자기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황제는 점점 자기 몸에 검은 털이 자라나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무..."
퍼엉!
황제가 그 변화에 당황하는 순간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 뭐냐냥?"
그 연기에 놀란 케르가 깜짝 놀라서 튀어 올랐을 때였다.
연기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황제가 아니었다.
[소란 떨지 마라냐. 별거 아니다냐.]
"...냐?"
케르는 그 순간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황제 대신 작고 귀여운 검은 고양이가 아름다운 금안을 반짝이면서 앞발을 들고 있었으니까.
[그렇구냐. 이런 거였냐.]
그 모습에도 오히려 당황하지 않은 것은 고양이로 변한 황제였다.
그는 거울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더니 감탄했다.
케르가 변신했을 때보다 작은 몸.
윤기가 넘치는 검은 털, 분홍색의 발볼록살까지... 그야말로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고양이가 거울 안에 있었다.
[고양이의 몸은 생각 이상으로 유연하다냐.]
몸을 가볍게 움직여보면서 황제는 감탄했다.
이 정도까지 변형이 되나? 싶을 정도로 상상 이상으로 유연한 몸이었다.
"...냐냥! 주인! 이게 무슨 일이다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케르가 호들갑을 떨자 황제는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앞발을 날렸다.
퍼억!
"냐냥!"
그대로 그 가벼운 고양이 발에 맞고 날아가 버린 케르를 보면서 황제가 작게 중얼거렸다.
[고양이라고 해서 짐의 신체 능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구냐.]
"흉기다냐!"
케르가 살짝 부은 뺨을 어루만지면서 소리쳤다.
저 작은 몸에서 휘둘러졌다고 믿어지지 않은 엄청난 일격이었다.
[미안하구냐. 아무튼 심각한 일이다냐.]
아무튼 심각한 일이다.
황제는 오늘 할 일을 생각해 보면서 말했다.
[언제 풀리겠느냐?]
"으음... 애초에 이런 효과는 생각을 못 해서냐. 모르겠다냐."
케르가 황제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하자 황제는 그녀의 손에서 가볍게 벗어나고는 책상 위에 올라가 그 앙증맞은 앞발을 까닥였다.
[일단 이쪽으로 오도록 하라냐.]
"아, 알았다냐."
황제의 명령에 케르가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걸 본 황제는 꼬리를 가볍게 살랑거리면서 말했다.
황제의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케르의 눈은 본능적으로 그 꼬리를 쫓았다.
[짐이 이 몸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는 없다냐.]
"그, 그렇긴 하다냐."
고양이의 몸으로는 당장 붓을 잡을 수도 없다.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도 그녀뿐이니 소통도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대가 대리청정을 해야겠다냐.]
"대리청정... 이 뭐다냐?"
멍청한 얼굴로 묻는 케르를 보면서 황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한테 정말 맡겨도 되는 걸까? 그런 불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몸이 된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존재가 그녀 뿐이었으니까.
[이렇게 쓰거라냐. 짐이 부재하는 동안 짐의 모든 권한은 임시로 케르 비에게 위임한다냐.]
"아, 알았다냐."
황제가 그 말랑말랑한 발볼록살로 종이를 툭툭 치면서 종이에 써야 할 것을 말하자 케르는 손을 인간의 손으로 둔갑해 붓을 쥐고는 열심히 황제가 부르는 말을 썼다.
"짐이 부재하는 동안... 케르 비에게 위임..."
[냐는 붙이지 말거라냐.]
별 생각 없이 그대로 따라 적으려는 케르를 제지한 황제는 앞발로 케르의 손을 툭툭 쳤다.
[그렇게 해서 짐이 그대를 어찌 믿고 맡기겠냐!]
"미, 미안하다냐! 다시 제대로 쓰겠다냐!"
황제의 검수를 받으면서 제대로 문서를 작성하는 데 성공한 케르를 보면서 황제는 바로 자기 책상 밑에 있는 함을 열고는 옥새를 가리켰다.
[이제 거기에 찍거라냐.]
"알겠다냐! 에잇!"
황제의 말대로 종이에 옥새를 찍은 케르는 그 종이를 보면서 물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냐냥?"
[이제부터 그대가 짐의 대리가 되는 거다냐.]
황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황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그녀뿐이다.
그러니까...
[서류 작업까지 부탁하진 않을 테니 누가 집무실에 와서 짐을 찾으면 그대가 짐 대신 대답하면 되는 거다냐.]
그녀는 오늘 황제의 대리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
"흐냐아아! 사람 엄청 많이 온다냐!"
케르는 의자에 늘어져선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유독 업무 관련으로 손님이 많았다.
모용진에, 대장군, 브레드, 그리고 재상에 호부 상서, 상선에다가... 미령까지!
옆에서 황제가 말하는 걸 대신 전해주기만 하는 건데도 그녀의 머리는 이미 터질 거 같은 상태였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바로 그녀의 머리 위로 올라온 황제는 케르를 앞발로 꾹꾹 누르면서 말했다.
[잘했다냐. 이대로만 하면 큰 문제는 없겠다냐.]
황제의 칭찬이 싫지 않은지 케르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실실 웃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 황제는 한참 꾹꾹이를 하더니 그대로 얌전히 몸을 웅크렸다.
"오늘 합궁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 거냐냥?"
자신의 머리 위에서 졸고 있는 황제를 보면서 케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려고 하는 황제를 보니 오늘 미령이 와서 합궁이 있다고 말해준 것이 생각 났으니까.
일단은 폐하께 전해준다고 말을 해 두긴 했지만... 만약 저녁에도 이 모습 그대로라면...
[미뤄야겠지냐.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냐.]
그러나 황제는 크게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졸린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한 황제는 그대로 케르의 머리에서 내려와서는 책상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리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고양이의 몸이 되니까 잠을 이기는 게 참으로 힘이 들구냐.]
"그, 그럼 좀 쉴까냐?"
그 말에 케르가 묘한 기대를 담아서 황제를 내려다 보면서 묻자 황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일은 끝낸 거 같으니... 가볍게 산책이나 하자꾸냐. 잠도 깰겸 말이다냐.]
그렇게 말한 황제는 가볍게 케르의 어깨에 안착하고는 앞발을 들었다.
[그러니 얼른 출발하거라냐.]
"..."
케르는 전혀 자신의 발로 걸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황제를 보면서 주인에겐 훌륭한 묘인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발로 걷기 싫어하는 건 묘인의 특징 중 하나였으니까.
--
"...갑자기 대리청정이라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구나."
황태후는 궁녀의 보고를 들으면서 당혹을 숨기지 못했다.
물론 이 기나긴 제국의 역사상 비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황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황제는 전부 경국지색의 미녀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암군들 뿐이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황태후는 다른 자도 아니고 황상이 비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는 파격을 보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케르 비라...'
솔직히 말해서 나르타 비나 미령 비라고 하면 이해했을 거다.
그녀들은 유능했고, 황상은 최근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으니 쉬고 싶어서 그나마 믿을 만한 비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다면 어미의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케르 비라니?
묘인이다.
묘인의 진중하지 못한 성정은 국정을 돌보는데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당장 그녀가 황실에서 보여 준 모습이라면 간식을 먹거나 햇볕을 쬐면서 낮잠을 자는 모습 뿐이었으니까.
그녀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르테가 비에게 맡기는 게 더 이해할 만한 요소가 있을 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그렇기에 황태후는 불안했다.
어쩌면 황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생각보다 일은 잘 하는 듯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직까지는 나름 국정을 잘 살피고 있는 것 같다는 것.
서류엔 전혀 손도 대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은 마치 폐하께서 직접 대답해주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재상이 말할 정도니...
생각보다 그녀의 적성에 맞는 걸지도 모르지.
그 부분은 황태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황제의 소재를 알아둘 필요는 있었다.
"황상께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직도 파악이 되지 않느냐."
"집무실에 들어간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궁녀의 대답에 황태후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사람들의 눈을 따돌리고 어딘가로 가 버린 것일까?'
황상이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다던가, 죽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대륙에서... 황상을 납치할 수 있는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집무실에서 황상이 보는 눈을 전부 따돌리고 황궁을 벗어났다는 것.
'이유가 무엇일지...'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짓을?
게다가...
'그때 집무실에 케르 비가 있었고...'
하필이면 왜 황상이 사라진 집무실에 케르 비가 있었던 걸까?
황태후의 생각은 깊어졌다.
뭔가... 집무실에서 일이 터진 것은 확실해 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