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네요."
나르타는 거리를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평화로웠다.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참 신기하네요.'
분명 자신이 어릴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거리에선 사람들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소리만 들려왔고, 가혹한 세금에 각지에서 도적들이 들끓었다.
진륜족을 포함한 여러 민족에선 진지하게 독립을 위해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여론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확히는 이번 황제가 즉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을 입에 담는 자들이 사라졌다.
잔혹한 황제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엄청난 권력을 지닌 재상을 즉위식에 직접 찢어 죽이는 과감한 행보를 시작으로 황제는 빠르게 제국을 좀 먹던 귄신들을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황족들과 권세가들 죽어 나갔고, 사실상 왕처럼 군림하던 민족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마치 이 제국의 무엇 하나도 넘겨 주지 않겠다는 듯한 그 과감하고도 거친 행보는 그야말로 폭군.
사방에서 귀족들의 피가 흘렀으나 그 피를 비료 삼기라도 한 듯 오히려 백성들의 삶은 점점 윤택해져갔다.
그를 폭군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거침없이 베어 버리는 그 잔혹함은 그 어떤 폭군과 비교해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잔혹하였으니.
하지만...
나르타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즉위하던 때에 제국에 당장 필요했던 건... 어질고 덕이 넘치는 성군보다는, 그토록 강하고 위대한 폭군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르타. 이리 오거라. 여기 재미있는 게 있구나."
그때 상념을 깨는 마리아의 목소리에 나르타는 그쪽에 시선을 주었다.
마리아가 거리에서 파는 눈깔 모양의 사탕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 신기하네요."
"사서 다른 비들에게 나눠줄까? 황태후에게 주면 딱 놀랄 거 같은데."
마리아가 짓궂은 목소리로 묻자 나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시지 않을까요?"
"후후, 그럼 사야겠구나."
'두 분은 친하신 건지 안 친하신 건지 헷갈리네요.'
그 말에 나르타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웃었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맨날 싸웠지만... 나르타가 보기엔 생각보다 그리 사이가 나빠 보이진 않았으니까.
--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한 소녀 안에서 작게 피어났던 작은 신성은 그 피를 먹고 점점 자라서는 이젠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버렸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사람들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신을 찾았다.
그녀는 그렇게 신이 되었다.
만들어진 신.
자신이 만들어 낸 신.
그러나 그녀는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때의 그녀는 고작 인간의 신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다른 종족에게도 신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각 종족의 장들에게 신물을 하사하기로 했다.
먼저 인간의 왕인 나는 전장에서 수많은 검을 잃었다.
그렇기에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을 원했다.
그녀는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
요괴의 우두머리는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봉을 원했다.
그녀는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
용의 우두머리는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원했다.
그녀는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
용인의 용왕은 번개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원했다.
그녀는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
묘인의 묘왕은 대륙의 어디든 빠르게 갈 수 있는 다리를 원했다.
그녀는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해왕은 바다 생물들에게 공격 당하지 않도록,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원했다.
그녀가 그 소원마저 들어 주니 모든 종족이 그녀를 신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모두가 인정한 하늘의 신.
천신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
'...갑자기 개념이 되겠다고 하더니.'
제천대성의 배신 이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일 눈물을 지으면서... 이 작은 사당을 만들고 어느 날 몸을 버리고 천신이란 개념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진위는 놀랐지만... 그 뜻을 존중했다.
그렇기에 그녀를 죽이고, 그녀의 기운을 자기 몸에 담았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그것을 정제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천기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길 기대했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넌 이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
진위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그녀를 쏙 빼닮은 여인이 황금의 검을 들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미 충격적인 배신으로 망가졌던 그녀는 신으로 계속 살 수 없었다.
그러니 본인은 개념으로 남아 신성을 유지하고 그 신성을... 새로운 신에게 모든 걸 물려줄 그 순간을 기다려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기다려왔던 새로운 신의 그릇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천기를 너무 흡수했나.'
황제는 여인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천기가 가져다주는 힘은 확실히 매력적이나... 이 모습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래... 그토록 기다려온 그릇이 드디어..."
진위가 중얼거리는 걸 보면서 황제는 검을 휘둘렀다.
카앙!
'점점 반응하는군.'
황제는 자기 검을 막아 낸 진위를 보면서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휘익!
그 순간 다리를 노리고 날아든 발차기를 황제는 몸을 뒤로 빼면서 피하고는 손가락으로 기를 날렸다.
쩌엉!
그러나 그 공격 역시 진위는 검을 들어 막아 냈다. 그걸 본 황제는 거리를 더욱 벌리고는 자세를 잡았다.
'...이제 보니 천지인과 비슷하구나.'
황제는 바뀐 몸에 적응하려고 가볍게 몸을 움직여보면서 진위의 검을 살펴보았다.
"천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그때 진위가 말을 걸어왔다.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신이라 불리지만... 어쩌면 인간이었을지도 모르지."
그 말을 들은 진위는 조금 놀랐다.
거기까지 눈치채고 있었나.
정말이지... 대단한 인간이었다.
하긴 그러니 그녀에게 그릇으로 선택 받은 것이겠지.
"...맞아. 인간이었지. 그것까진 제천대성도 아는 거였어."
신성을 품은 인간이 신이 된 것.
그것은 제천대성도 알고 있었다.
그가 모른 것은...
"그리고 그 천신이... 내 동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나?"
천신은 사실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자가 아닌, 자신의 친동생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오직 그와 그녀만이 알고 있던 것이었다.
"..."
전혀 몰랐다.
그렇기에 황제가 조금 놀란 눈으로 진위를 보자 그는 웃었다.
"모용희. 그게 천신이 인간이던 때의 이름이다."
"..."
모용...
황제는 그렇다면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왜 죽이려고 하지?
"네가 죽이려고 하는 저 남자의 이름을 아나?"
"...모르지."
진위는 당당하게 대답했고, 황제는 모용진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모용진. 그대가 말한 자와 같은 성을 쓰는 자다."
"...!"
진위는 그 이름을 듣고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이쪽도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나?
"하하... 어쩐지 요괴가 뇌기를 지니고 있더라니... 그래, 그녀와 같은 성이군."
그리고 그녀와 같은 체질이었나?
진위는 참으로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가끔 신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진위는 작게 중얼거렸다.
대륙에는 이따금... 뇌기를 지닌 채 태어나는, 신이 될 자질을 지닌 아이가 간혹 태어나고는 했다.
"하지만 처음엔 신이 되기엔 너무나도 미약한 신성이지. 물론... 그 요괴 쪽은 꽤 강하게 타고 태어난듯하지만."
저 정도의 뇌기면... 아마도 그녀보다도 더 많은 신성을 품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요괴가 되지 않았다면 그녀가 원하던 그릇은 저 아이였을 수도 있고, 물론 요괴가 된 이상 의미가 없는 가정이지만.
"그래서 그녀는 자기 신성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 거였군."
황제는 그제야 사직은... 자신이 이해한 것보다 더 무서운 작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가 개념이 되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만들어진 힘으로 그 힘을 받아들일 그릇을 만들고, 새로운 신을 만들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였던 거다.
"그리고 지금... 그 완성품이 내 눈앞에 있구나."
황제는 그 말에 심장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완성품이라... 그럼 이 모습은.
"정말이지..."
불쾌한 일이다.
황제는 자기 몸에 자리 잡으려고 하는 천기를 강제로 밀어냈다.
"...뭐 하는 짓이지?"
그 모습을 본 진위에 눈이 커졌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얼마나 귀중한 건지 정녕 모르는 건가?
"신이 될 수 있다! 전지전능한!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신이! 그 기회를... 지금 거절하겠다는 건가?"
진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이 세상 모든 걸 지배할 수 있는 신격이 완성될 수 있는 순간인데...!
지금 그걸 거절하겠다는 건가?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이... 되는 게 무슨 의미지?"
그러나 황제는 오히려 신을 만들려고 하는 그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강대한 힘도,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권능도, 황제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짐에게 필요 없다."
"필요 없다? 그것도 품어야 하는 것이 황제다. 아무리 필요 없다고 해도 황제라면 당연히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을 포옹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황제의 자리다!
이 폭군은 자신이 가지고자 하는 것만 취하겠다는 건가? 이 무슨... 오만함이란 말인가!
"그래, 짐이 황제기에."
황제는 진위를 보면서 당당하게 기검을 들었다.
황금색으로 변했던 기검은... 어느새 푸른빛을 뿜어내며 그 예리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던 황제는... 이젠 완전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신이 되지 않는다. 짐은 언제까지나 신이 아닌 인간의 황제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황제의 대답이었다.
"짐은 신이란 자리를 도피처로 삼지 않을 것이다."
신이란 자리도 황제에겐 도피처가 되지 못했다.
"도피처...? 신이란 자리를 고작 그런 식으로?"
진위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인간에겐 신이 필요했다.
나약한 인간들이 살기 위해선... 그럴 텐데.
"신은 더 이상 인간에게 필요가 없으니까."
저 남자는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인간에겐 신이 필요 없다고.
필요한 건... 그저 인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걸... 네가 어찌 단정 지을 수 있지?"
진위는 믿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해온 것들이.
동생마저 죽이고 지켜온 것들이...
전부 의미 없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짐이 황제니까."
황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은 할 수 없었던. 그 단호함으로.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그렇게 단정했다.
"짐의 말이 곧 법이다. 그게 지금의 제국이지."
"...정말이지."
대단한 폭군이군.
진위는 그런 생각하면서 검을 쥐었다.
"그렇다면 나는 마지막까지 그 폭군에게 항거해야겠구나."
황제가 아닌.
최후의 천신을 섬기는 신도로서.
진위는 싸울 각오를 굳혔다.
이 말도 안 되는 폭군에게 천신을 인정받기 위해서.
끼이익!
그 순간 황제의 기검이 진위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고, 진위는 검에 황금색 검강을 씌우고는 그 검을 흘려 냈다.
퍼억!
자세가 무너진 황제를 본 순간 진위의 발이 그대로 황제의 복부에 박혔고, 그 순간 황제의 몸이 살짝 굽혀졌다.
'말도 안 돼...'
그 황제의 몸이 꺾인다고?
모용진은 진위의 힘에 감탄했다.
기운은 확실히 진위가 우위에 있었다.
모용진은 지금 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그 정도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둘의 차이는 확연했으니까.
터억!
그런 황제를 끝내려던 진위는 그 순간 자신에게 달려드는 황제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황제는 그대로 진위를 덮쳐서는 검을 빼내고는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설마 자신에게 육탄 공격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진위의 반응이 늦어서 벌어진 참사였다.
"제대로 힘이 안 들어갈 거다."
'이건...'
위험하다!
진위가 그런 생각할 때였다.
빠악!
황제의 주먹이 그대로 진위에게 박혔다.
퍼억! 퍽! 퍽! 퍼억!
그 뒤로는 그야말로 무자비한 난타가 이어졌다.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황제에게 깔린 진위는 그 주먹을 전부 감당해야 했다.
피가 튀고, 진위의 얼굴이 엉망이 되었음에도 황제는 멈추지 않았다.
퍼억! 퍼어어어어!
진짜 죽일 기세로 황제는 한참을 진위를 내려쳤고, 그 순간...
털썩.
헛된 저항을 하던 진위의 손이 땅에 떨어졌다. 그걸 본 황제는 내리치던 주먹을 멈췄다.
뚝, 뚝.
황제의 손에서 진위의 피가 흘렀고, 황제는 머리가 깨져서 피가 흘러나오는 진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진위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하아... 하아..."
황제는 지친 숨을 내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진위를 때려 죽인 황제는 모용진에게 물었다.
"기운은?"
"...아! 이제 운용이 됩니다."
모용진이 다시 제대로 운용이 되는 자기 기를 느끼면서 대답하자 황제는 이젠 반응이 없는 진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천기는 그대로 저 작은 사당에 들어갔다.
'엄청난 천기군...'
사당에서 느껴지는 온몸이 떨릴 정도의 천기를 보면서 황제는 생각했다.
저 천기를 전부 몸에 받아들인다면... 저 남자가 말한 신이라는 게 될 수 있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물었다.
"그대는... 짐이 신이 되었으면 좋겠나?"
황제의 질문에 모용진은 진위의 시체를 보면서 대답했다.
"모든 건 폐하의 뜻대로 되실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저벅. 저벅.
황제는 사당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콰직!
그대로 그 사당을 부숴 버렸다. 그러자 사당에 모여있던 천기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선 흩어졌다.
황제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인간은 더 이상 만들어진 신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
황제는 주먹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잠시 멈칫했다.
완전히 뼈가 부러진 거 같았다.
"...챙기거라."
아무튼 돌아가야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왕관을 잡아서 모용진에게 던지고는 부러진 손뼈를 기로 맞추고는 고정했다.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면 필요한 조치였으니까.
"이게 해신의 왕관.... 조금 촌스럽네요."
황금으로 반짝이는 화려한 왕관을 챙기면서 모용진이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황제는 그 말에 모용진의 구름에 올라타면서 대답했다.
"신이란 것도 그렇다. 지금 섬기기엔 조금 촌스럽지."
천신이란 존재도, 지금, 이곳에서 죽은 천무제도...
과거에 남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것이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말했다.
"언젠가... 황제란 자리도 촌스러워지겠지."
그리고 언젠간... 이 황제란 자리도 그런 존재가 되겠지.
그게 세월의 흐름이라는 것이니까.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그거 다른 사람이 했으면 딱 역모 발언이네요."
그 말에 모용진이 구름을 움직이면서 중얼거리자 황제는 웃었다.
"그러니 짐이 하는 것이 아니냐. 억울하면 그대도 황제가 되거라."
황제의 능청스러운 말에 모용진은 몸을 떨었다.
"...절 죽이고 싶으시면 그냥 죽이시지 역모를 권하지 말아주세요."
모용진이 그 말에 투덜거리자 황제는 더욱 웃었다.
"그래, 고려해 보마."
황제는 눈을 감았다.
역사에 자신이 어떻게 기록될지는 뻔했다.
성군으로 기록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렸으니까.
명군으로 기록되지도 않겠지.
황제는 자신이 암군이라 불릴 정도로 무능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치적을 세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폭군으로 남을 것이다.
신하들을 겁박하고, 혈족을 죽인 잔혹한 폭군으로 남아서 역사에 그 이름을 새길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폭군 중에선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어 보는 게 최선이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해신의 왕관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보다 이거 진짜 넘겨줘도 되는 겁니까? 어인들이 강해지면 폐하께선 상관이 없겠지만... 그 뒤는 힘들 겁니다."
모용진의 걱정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후대에게 강성해진 어인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 될 거다.
하지만...
"그게 짐이랑 무슨 상관이냐. 그건 후대의 황제가 고민할 문제지."
뻔뻔한 황제의 대답에 모용진은 기가 막혔다.
"그거 자식들한테도 그리 말할 겁니까?"
"당장 짐도 그보다 더한 상황에서 황위에 올랐다. 지금 정도면 과분하지."
"..."
그건 그렇긴 하지만...
모용진이 머뭇거리자 황제는 크게 웃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황제가 실제로 제국을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즉위하지도 않았다.
"농이다. 안 그래도 그 문제로 고민 중이었다."
"...방법은 찾으셨습니까?"
모용진의 질문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황궁에 좀 들리자. 이건 결국은 천기를 이용한 마법 도구가 아니냐. 그걸 손 보려면 역시 마법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지."
"...아, 그러네요."
모용진이 구름의 방향을 돌리자 황제는 해신의 왕관을 보면서 말했다.
"게다가... 선물도 사야 하고 말이다."
오르테가와 했던 약속을 떠올리면서 황제가 말하자 모용진은 웃었다.
그리고는 새끼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말했다.
"아, 폐하의 그..."
"그 이상 말하면 모처럼 지켜 준 목숨을 짐의 손으로 거둬야겠는데."
"...아하하."
머쓱하게 웃으면서 하려던 말을 멈춘 모용진은 더욱 빠르게 구름을 움직였다.
지금 모용진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빠르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