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회는 맛있었는데 고기는 간이 너무 쌔잖아."
오르테가가 황제를 손가락으로 쿡쿡 건드리면서 말하자 황제는 그녀의 그 손가락을 잡고는 말했다.
"예전이면 잘랐다."
"응, 너 나한테는 예전에도 안 그런 거 다 알아."
"..."
다른 비들은 이러면 겁을 집어 먹던데... 이 녀석은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오니 황제는 그저 황당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르테가가 계속 건방지게 구는 걸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감히 황제를 너라고 부른 건가? 이거 황태후께 말해야겠구나."
"너어! 아니 폐하! 그게 무슨 말이야! 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정 없는 짓은 안 할 거지? 응? 우리 사이잖아."
오르테가가 애교를 부리자 황제는 고민했다.
다른 비들은 다 식사에 만족하고 돌아갔건만... 혼자 남아선 유독 귀찮게 구는 이 녀석을 어찌할까 고민하면서 황제는 그녀의 볼을 쫘악 늘렸다.
"으으... 안 이를 거지?"
아파하면서도 황태후한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오르테가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와서 황제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너 하는 거 봐서."
"...쪼잔해."
오르테가가 살짝 부은 뺨을 만지작거리면서 투덜거리자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황제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어? 왜?"
"...잠시."
타악.
황제가 오르테가를 자신의 뒤로 이끌면서 날아든 침을 잡았다.
"...독침이구나."
"뭐야? 암살?"
황제의 손에 잡힌 독침을 보면서 오르테가가 호들갑을 떨었으나 정작 황제는 침착했다.
그는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날... 노린 게 아니군.'
독침의 방향은 자신을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르테가를 노리고 있었다. 그게 황제는 마음에 걸렸다.
'오르테가를 노린 건가? 왜?'
황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휘익!
순식간에 움직인 황제가 저 멀리서 독침을 쏘아낸 남자를 잡아냈다.
"...자결했군."
그러나 이미 늦었다.
황제가 뭘 하기도 전에 스스로 독을 먹고 자살해 버렸으니까.
"어, 그... 괜찮아?"
바로 따라 나온 오르테가가 황제의 얼굴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황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잠시. 금위대장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군."
누군지 모르지만 오르테가를 노리는 자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오르테가를 노리는 게 아니라 비 자체를 노리는 걸지도 모르지.
황제는 그렇기에 바로 금위대장을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뭔가 침울한 얼굴로 나타난 금위대장을 보면서 황제가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폐하가 아닌 오르테가를... 아니 오르테가 비 전하를 말입니까?"
"그래."
그 말에 모용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리고는 바로 결론을 냈다.
"흐음... 백부장들에게 경계를 강화하라 지시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제가 따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서는 그대로 후욱 불었다.
그러자 조그마한 모용진이 여러 개 생겨났다.
"일단 이것들을 비 전하들께 붙여두고 경계를 강화하겠습니다."
"...이건 무어냐?"
황제가 신기하다는 듯이 작은 모용진을 쓰다듬었다.
솔직히 덩치 큰 모용진의 외모는 좋게 말해 줘도 듬직하단 느낌이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모용진은 2등신에다가 눈도 동그래서 제법 귀여웠다.
"우와! 귀여워. 너 그냥 이런 모습으로 사는 건 안 돼?"
오르테가도 같은 생각인지 자기 손 위에 올라온 작은 모용진을 꼭 껴안으면서 말했다.
"인형 같아. 푹신한데?"
"제 기운을 응축해 둔 분신입니다. 물론 말이 분신이지 그냥 제 기운을 담은 전기... 같은 거라서... 저기 듣고 있습니까?"
작은 모용진을 도열해 두고 있는 황제와 하늘로 던졌다가 받는 짓을 반복하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모용진은 설명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딱히 지성이 있는 분신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용법을 설명해드릴까 하는데 괜찮습니까?"
"그래."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모용진은 가볍게 설명했다.
"상대의 적의에 반응합니다. 적의, 혹은 살기가 담긴 것은 이렇게."
파직!
모용진이 던진 침을 작은 모용진이 전기로 격추했다. 그리고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전기를 이용해서 격추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렇게 손을 들어서 알리는 거죠."
"호오..."
황제가 관심을 보였다.
꽤 유용한 존재가 아닌가.
"주술이냐?"
"음... 요괴의 술법이니까 요술이라고 봐야겠죠?"
볼을 긁적이면서 모용진이 대답하자 황제는 일단 오르테가에게 작은 모용진 하나를 넘겨 주었다.
"그거 들고 오늘은 돌아가거라."
"어? 알았어."
오르테가가 그대로 작은 모용진을 들고 가 버리자 황제는 남은 것들을 보면서 고민했다.
"음... 이거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작은 모용진이라고 부르기도 그렇구나."
"대충 부르죠? 어차피 소모품인데."
모용진은 뭐 이런 거에 이름까지 지어? 그런 생각이었으나 황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소진이라고 하자."
"아니 이 사람이."
모용진의 이름인 진에 작을 소(小)를 써서 소진.
황제의 말에 모용진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작은 모용진은 소진이 되었다.
"이것들은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비들에게도 전부 나눠 주고 오거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상선이 소진들을 안아 들고 저 멀리 사라지자 모용진은 황제에게 물었다.
"그럼 전 백부장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그 배후를 조사하러 가 보겠습니다."
"그래."
모용진까지 사라지자 혼자 남은 황제는 집무실로 돌아와서 생각에 잠겼다.
대체 배후엔 누가 있을까?
그리고... 목적이 무엇이지?
'용왕의 딸이라서?'
바아간은 솔직히 적이 많다.
그러니 그 딸을 노리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건 오르테가만 노리고 있다면 성립되는 이야기지.'
아직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다.
오르테가라서 노린 건지, 아니면 그저 황제의 비라서 노린 건지 아직 확정 지을 수 있는 단서가 없었으니까.
'모르겠군.'
사실 바아간 이상으로 적이 많은 게 황제였다.
그렇기에 황제는 고민이 깊어졌다.
너무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아서 오히려 배후를 짐작하기가 어려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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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본녀가 꽤 무시를 당한 거 같구나."
마리아는 그대로 사로잡은 암살자를 보면서 고민했다.
"이미 해독하였으니 그 어금니에 독은 못 쓸 거란다."
자결하려던 암살자는 그 말에 당황했고, 세헤라자드는 염동 마법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잡혀 있는 암살자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문양을 보니 프리아쪽에 있는 암살 집단으로 보이옵니다."
"흐음... 그렇다면 본녀가 목적인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말에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겔만 마법의 상징이자, 대륙 마법의 정점인 그녀는 당연히 적이 많았다.
프리아족이라고 하니 마리아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사를 좀 해볼까? 마법으로 머리를 좀 주무르면 폐인이 되기는 해도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듯한데..."
"아마 마법으로 건드리면 뇌가 터지는 주박을 걸어두었을 것이옵니다."
세헤라자드의 설명에 마리아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곤란하구나. 그런 주박은 풀기가 번거로운데..."
보통 그런 걸 풀려면 주박을 건 마법사의 마법 암호를 풀어야 했다.
한 번 실패하는 순간 바로 마법이 발동하므로 경우의 수를 통한 해제는 불가능했다.
"뭐,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마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암살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퍼엉!
잠시 후 암살자의 머리가 펑 하고 터졌고, 마리아는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아니었나? 흐음... 당연히 이 숫자라고 생각하였는데..."
머리를 긁적이던 마리아는 궁녀가 비명을 지르자 일단 시체를 가볍게 치웠다.
"뭔가 느낌이 썩 좋지 않구나. 그러니 앞으로 같이 다니는 편이 좋겠느니."
그 말에 세헤라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암살자가 설치는 이 상황에서 혼자 다니는 건 내키지 않았으니까.
--
화륵!
"뭔가 날아왔네요."
나르타는 자신에게 날아든 독침을 순식간에 태워 버리고는 중얼거렸다.
"해명을... 저런."
그대로 불로 암살자를 제압하려던 나르타는 바로 독을 먹고 자결한 암살자를 발견하고는 혀를 찼다.
"일단 시체는 치우고... 폐하께 보고해야 할까요?"
나르타는 시체를 뭔가가 타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무사에게 맡기고는 가볍게 질문했다.
"이미 폐하께선 알고 계십니다."
그런 나르타에게 어느새 다가온 상선이 소진을 건네면서 말했다.
"오르테가 비 전하께서 폐하 앞에서 습격을 당하셨습니다. 하여, 모든 비 전하께서는 호신용으로 이 소진을 소지하고 다니시길 바랍니다."
"소진이... 요?"
이 작은 인형 같은 물건은... 확실히 모용진과 약간 닮아 있었다. 모용진보다는 눈이 동그랗고 귀엽긴 했지만.
"네, 폐하께서 직접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아... 네."
작은 게 인형 같다.
나르타는 그런 생각하면서 그 소진을 받아들였다.
"그럼."
상선이 소진들을 들고 저 멀리 사라지자 나르타는 자기 손에 들려 있는 소진을 내려다보았다.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냥 전기 덩어리...'
정확히는 뇌기의 덩어리다.
특정 명령을 입력해 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대단했다.
이토록 오래 외부에서 기가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주술이라니...
'대단한 주술. 아니 이 경우엔 요술일까요?'
아무튼 안심할 수 있겠다.
나르타는 그런 생각하면서 소진을 들고는 침소로 향했다.
암살자 문제는... 폐하께서 해결해주실 거라 믿고 있었으니까.
--
"악골족이라..."
황제는 이번 합궁 상대인 악골족의 여인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았다.
"골 가문이라... 기억하고 있지."
황제는 악골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황제 암살 작전에 투입되었던 리아의 비장의 무기. 검강을 사용하는 남자가 바로 악골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었다.
반역자인 리아의 손을 잡은 이상 황제의 처지에선 축출 대상이었기에 악골족은 군으로의 진출이 금지 당했고, 그때 황제의 앞까지 와선 자기 목을 쳐도 좋으니 제발 군인으로 남게 해 달라고 빌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바로 골 가문의 남자였다.
황제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애절하게 빌면서 그 남자는 머리에 피가 날 정도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골 바칸. 그 남자의 딸이구나."
그 남자의 딸인가...
그 의도가 너무 보여서 황제는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어쩔 생각이십니까?"
미령의 질문에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딱히 무슨 짓을 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이미 처벌을 받았으니."
황제는 그리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을 위한 추가적인 처벌은 필요없다.
군에서 그 자리를 잃은 것만으로 그들은 이미 충분히 고통 받고 있었으니까.
"준비는 끝났나?"
"그렇습니다."
미령의 대답에 황제는 상선이 남겨두고 간 소진을 건네주며 말했다.
"비를 노리는 건지, 아니면 오르테가를 노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암살 시도가 있었다. 호신용이니 잘 가지고 다니거라."
"그거, 인형이 아니었군요."
미령이 소진을 받아들면서 중얼거리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방범 장치라고 생각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미령이 그대로 사라지자 황제는 잠시 차를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소리를 내며 걸으며 자기 침소로 향한 황제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가마."
"넵!"
각 잡힌 목소리가 들려오자 황제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니 적갈색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른 여인이 각 잡힌 자세로 앉아서는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남자의 딸이 맞긴 하구나.'
날카로운 눈매에 그 남자가 생각나는 붉은 눈동자.
그리고 날렵해 보이는 몸매까지.
근육은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제법 단련은 했다고 평가해 줄 수 있는 탄탄한 몸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으음...'
뭔가 잔뜩 긴장한 거 같은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일단 그녀에게 다가갔다.
검은 속옷만 입고 있는 그녀는 황제가 다가오자 눈을 감았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래."
준비되었다면 안 할 이유는 없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일단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움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움찔거리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생각했다.
자기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던 그 남자와 참으로 닮았구나.
딸은 보통 아버지를 닮는다는데... 그렇다면 자신에게서 난 딸도 그리 될까? 정말 그렇다면 솔직히...
'...썩 좋은 기분은 아니군.'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황제는 솔직히 자신의 자식들은 자신을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의 성격이 좋진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