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진짜 개좀생이 새끼였네 이거."
라오허가 나르타에게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게 된 미친왕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카무란은 그 말에 난처한 듯 웃었고, 나르타는 민망한 듯이 어색하게 웃었다.
"뭐라고 했냐?"
"좀생이 새끼. 니가 재능이 좇도 없는 걸 왜 남탓을 하고 자빠졌냐. 한심하게."
라오허가 눈을 부라리자 미친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말했다.
"아 자식이!"
퍼억!
라오허의 주먹이 그대로 미친왕의 얼굴에 직격했고, 미친왕은 비틀거리면서 쓰러졌다.
"쳤냐?"
코에서 피가 나자 미친왕이 화난 얼굴로 벌떡 일어나서는 그대로 턱을 올려 찼다.
빠각!
라오허의 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라오허의 몸이 부웅 떴다.
"약골 새끼가 깝치고 있어."
철퍼덕
그대로 땅에 떨어진 라오허를 비웃으면서 미친왕이 말했다.
애초에 얼굴만 사납지 싸움도 못 하는 라오허와 달리 그래도 미친왕은 형이나 어머니에게 배운 가닥이 있어서 몸싸움은 좀 할 줄 알았으니까.
"머리를 식혀. 네가 그딴 식으로 나온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해?"
"미친왕이 제대로 된 말을 하니까 뭔가 이상하네요."
카무란은 덤덤하게 그리 말하면서 일단 라오허를 치료했다.
"턱에 금이 좀 갔네요. 뭐. 이 정도면 싸우다가 그럴 수도 있죠."
"...빌어먹을."
치료를 받으면서 라오허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나도 알아. 안다고. 괜한 짜증이라는 거."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괜한 감정이라는 것 정도는...
"그래도 그러면 이 감정은 대체 누구한테 풀어야 하는데."
"...와 나 다른 사람이 볼 때 저렇게 추했어?"
미친왕이 그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는지 소름이 끼친 얼굴로 묻자 카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님이... 잘라버릴 만할지도? 내가 봐도 그러고 싶은데?"
물론 미친왕의 입을 자른 건 그냥 죄를 지어서 그런 거였지만 미친왕은 조금 형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뭐,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놈이 욕심과 열등감만 가득하니 그것만큼 보기 추한 것이 없었다.
"그런 처벌을 받아 놓고 그걸로 농을 할 수 있는 미친왕의 담력이 참으로 대담하네요."
"응? 지난 일이잖아. 어차피."
미친왕은 여전히 꿍해 있는 라오허를 보면서 말했다.
"너도 그냥 털어 넘겨라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잘해."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라오허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미친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음식물 처리?"
"숨 쉬기도 할 줄 알죠."
"이딴 놈들이 형제라고..."
그 대답에 라오허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하긴...
"저 새끼도 멀쩡히 살아가는데 내가 뭐라고."
미친왕 같은 바퀴벌레 같은 자식도 잘만 사는데 뭔 궁상이었는지...
그런 생각하니까 라오허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보다 형님은 왜 이렇게 늦어? 요리하다가 누구 죽였어? 그리고 뭔데 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많아졌지?"
라오허의 말대로 어느새 주변엔 사람이 늘어 있었다.
"여어, 카무란."
공중에 둥둥 떠선 졸고 있는 타흘라가 카무란한테 인사하자 카무란은 그제야 주변을 보았다.
"전부... 비 전하시네요."
벌써 마련된 상 옆에 앉아 있는 여인들을 보면서 카무란은 놀랐다.
"아직도 요리 안 된 거야?"
그 여인들을 대부분 끌고 온 오르테가가 미친왕에게 묻자 미친왕은 짜증을 냈다.
"몰라."
"맞다! 세이나도 왔더라. 데려왔어."
"안녕하세요. 미친왕."
오르테가의 말에 그제야 시선을 준 미친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세이나를 보며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했다.
"쿠류에서 돌아오신 겁니까?"
"네에...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해서 바로 왔답니다."
세이나의 대답에 미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재미있는 일이긴 했으니까.
다른 자도 아니고 그 황제가 요리를 하는 것이니.
"너... 왜 이 누님한테는 공손하게 안 굴어? 조금 건방지다?"
세이나에겐 깍듯한 미친왕을 보면서 오르테가가 조금 삐진 얼굴로 말하자 미친왕은 그 반응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대모는 일단 잘 쓰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 여자도 도움이 되는 게 있다니."
표정은 웃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세이나의 대답에 오르테가가 순간 움찔했다.
'뭔가...'
달라진 거 같은데.
오르테가는 그 변화가 낯설게 느껴졌다.
"형님이 확실히 좀 늦긴 하네요."
미친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한 번 보고 오겠습니다."
다른 비들에게 그리 말하고 미친왕이 걸음을 옮기자 라오허가 따라왔다.
"넌 왜 따라와?"
"저기 숨 막혀서. 미인들은 많은데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한 명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
미친왕은 솔직히 공감했다.
솔직히 비들이 저리 많이 모여 있으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동등한 입장이긴 한데... 묘하게 윗사람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사실 보통은 황제의 동생과 비면 동생 쪽이 좀 더 위인 느낌이 강하긴 했다.
선제 시절에는 황후조차도 사실 선제의 동생들보다 힘이 없었던 게 사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사실 이 비의 권력이라는 것이 황제의 권력에서 나오는 법이라... 역대를 따져 보아도 이 제국을 세운 천무제 이후, 아니 어쩌면 그 천무제 이상의 절대 황권을 구축했다 평가 받는 형님의 비라면 그 권위도 차원이 달랐다.
당장 어떤 비의 의견으로 지금 전국에 열차란 것이 달릴 철도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고작 비 하나의 의견으로 그 정도의 대규모 국가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짓이 가능한 비가 역사상으로 따져 봐도 없었다.
황후로 넘어가면... 한 두 명 정도는 있었겠지만.
'새삼 미친놈이었지.'
그런 황제에게 도전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형제인 미친왕은 자신이 정말 얼마나 미친놈이었는지 실감했다.
역사상 가장 황권이 약한 상태에서 황위에 올라 그 정도의 권력을 구축하는데 고작 2년.
그야말로 초인이자 괴물인... 자기 친형을 생각하면서 미친왕은 새삼 자신에게 왜 형님이 미미하다 하였는지 알 거 같았다.
그 어떤 형제도 형님에 비하면 그저 미미한 존재일 뿐이었다.
미친왕이 가장 두려워했고, 모두가 역사상 두 번째 여성 황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평가했던 리아 누님조차도 형님에 비하면 그저 초라하고 미미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위대한 형님은...
"폐, 폐하? 고기를 그렇게 구우시면?"
"문제가 생기나?"
미르예프가 보는 앞에서 멧돼지 고기를 석탄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라오허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우리 위장에 문제가 생기지. 형님 그걸 말이라고 해요?"
"...흐음."
황제는 완전히 검게 타버린 고기를 보면서 고민했다.
"왜?"
"...맙소사."
이런 사람이 무슨 요리를 한다고.
라오허는 자기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먹는데 지장은 없는데."
우득. 우득.
저 다 탄 걸 잘라서 씹고 있는 황제를 보면서 라오허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다른 요리는 제대로 하셨는데... 그 마리프 비가 고기는 직접 구워 보자고 했거든요."
그걸 본 미르예프가 난처한 얼굴로 둘에게 설명했다.
확실히 뒤에 있는 요리는 잘되어 있었다.
특히 회는 누가 썰었는지 몰라도 한 치에 오차도 없이 같은 두께로 깔끔하게 썰려 있어서 군침이 돌 정도였다.
"저 회는 누가?"
라오허의 질문에 황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짐이 직접."
"...써는 건 참 잘하네."
라오허의 감탄에 미친왕도 부정은 못했다.
'뭐든 썰어 버리는 건 참 잘하긴 하지.'
그 뭐든지에 인간이 포함되긴 하지만.
미친왕은 그리 생각하면서 다 타버린 고기를 보았다.
"아무튼 형님 이건 못 먹습니다."
"...그럼 어쩌지? 다 써버렸는데."
황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달리아가 잔뜩 기대하면서 부탁하고 갔는데... 다 태워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죠오. 탄 부분을 잘라 내서 가져가면 얼추 먹을 만하지 않을까요오?"
그 모든 과정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리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마리프는 황제가 구운 고기에서 탄 부분을 보면서 말했다.
"탄 부분만 잘라주시겠어요오?"
"어렵진 않구나."
그 뒤엔 황제가 식칼을 들었고, 그 후에 뭔가가 잠깐 번쩍하더니... 탄 부분이 깔끔하게 베여서 떨어져 나갔다.
모두가 황제가 검을 움직이는 장면을 보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솜씨였다.
"오! 이렇게 보니까 또 괜찮은데?"
탄 부분을 제외하고 보니까 나름 괜찮게 구워졌다.
그렇기에 미친왕은 작게 감탄했다.
"그래도요오. 제가 가르쳐 준 건 잘하셨답니다아."
마리프의 말에 황제는 라오허를 보았다.
"어떠냐. 짐도 배우면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그... 남들이 시키는 걸 망칠 정도로 못 하지는 않네."
라오허가 그 말에 결국 자기 잘못을 인정하자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물론 혼자서는 절대 요리 못하겠다. 이거 다 태워 먹은 거 봐라. 고기 굽는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네."
"...부정은 못 하겠구나."
황제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배우고 나서 알았다.
자신에게 요리는 영 맞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무언가를 썰어 버리는 건 자신이 있지만 확실히 태우는 건 부족하구나."
"음... 그거 형님이 말하니까 다른 의미로 들리는데?"
미친왕이 움찔거리면서 말하자 황제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그 의미도 맞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미친왕은 더욱 몸을 떨었다.
"아무튼 슬슬 식사하자. 오늘 합궁도 있으니 시간이 부족하구나."
황제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궁녀가 황제와 마리프가 한 요리를 들고는 그런 황제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 뒤에 이어진 식사는... 황제는 그래도 자신이 직접해서 그런지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
"이곳은 우리 민족의 운명이 걸린 전장이다."
황궁에서 마련된 비 후보들을 위한 별궁.
이번에 그 자리를 차지한 여인은 진지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호랑이 같은 인상의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를 의심해. 우리는 군인이다. 설령 비 후보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각진 자세로 앉아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면서 남자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우리 악골족은 예로부터 황제의 창이라 불렸던 전투 민족이다. 숱한 전쟁에서 활약했으며, 대부분 그러했지. 단 하나. 단 하나의 실수가 모든 걸 망쳐 버렸어."
악골족의 가장 큰 실수는 이번 황제를 의심한 것.
그래서 리아 황녀의 편에 서서 가장 유능한 전사를 황제의 암살 작전에 빌려주었고, 그 전사를 잃었으며...
황제의 눈 밖에 나서 그 영광스러운 전쟁에서 선두에 서지 못하고 후방에 머물러야 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약골족이 설 자리가 없었다.
금위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그 증오스러운 카이아족의 전사에게 그 영광을 넘겨 주어야 했다.
두 번 다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었다.
전장에선... 늘 악골족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 선두에 서서 피를 흘려야 함이 옳았다.
"늘 후회한다. 그 여자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이번 황제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한 우리 악골족은... 결국 카이아족에게 밀려 군에서 설 자리를 잃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리아는 이번 황제가 황위에 오르면서 자신들을 버릴 것이라 주장했다.
카이아족에게 모든 자리를 줄 것이라고, 실제로 그가 총애하는 할바르도 카이아족이고, 그의 편에 선 오페아 가문도 카이아족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정작... 황제는 군을 등용하는데 딱히 차별이 없었다.
당장 국경 방위 사령관은 앵글족이, 수도 방위 사령관은 프리아족이 맡고 있으며, 대장군조차도 동아족이 아닌가!
리아를 따르지만 않았다면 분명... 유능한 악골의 전사들도 군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남자는 지금도 피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그 치욕을 두 번 다시 겪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딸아. 전사답게 싸우거라. 밤의 싸움이라고 해도 전사라면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 반드시 싸워서. 폐하의 마음을 얻어내거라."
황후가 되는 건 포기했다.
너무 순번이 늦어서... 확률이 낮았으니까.
하지만 폐하의 마음에만 들면 된다. 그러면 막힌 군으로의 진출을 다시 꿈꿀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 디나카. 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네 아들이 차기 황제의 금위대장이 되는 거다."
"네."
그들의 소망은 군에 들어가는 것, 그것도 황제의 검이라 불리며 늘 선봉에 서는 금위대의 대장이 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였다.
"다른 비와 친해지는 그 과정조차도 전쟁이다. 명심하거라. 악골족의 미래가 너에게 달렸다."
어떤 비가 황후가 될지 모르니 어느 누구하고도 친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남자는 강하게 명령했고,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건투를 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여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방에서 떠났다.
'악골족을 위해서...'
잘할 수 있을까?
홀로 남은 그녀는 그런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아니 해야 해.'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임무다.
전사는... 군인은 목숨을 다해서라도 그 임무를 달성해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목숨을 걸고 이 황궁에서 싸워나갈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