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111화 (111/235)

"호오? 그거 참 흥미로운 소식이로구나."

집무실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마리아는 오르테가의 말에 바로 관심을 보였다.

황제가 요리라니.

미식가로도 이름이 높아서 모든 황궁 요리를 본인이 직접 책임졌다는 미문제 이후로는 없었던 일이었다.

"폐하가 요리를 말입니까?"

그런 마리아와 장기를 두고 있던 모용진은 관심을 보이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를 물렸다.

"은근슬쩍 수를 물리지 말거라."

"..."

그러나 바로 들켰고, 모용진은 멋쩍은 얼굴로 다시 말을 원래대로 돌려 두었다.

"본녀도 한 번 먹어보고 싶구나."

마리아가 장기를 두면서 느긋하게 말하자 모용진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으음... 솔직히 폐하의 야전 요리는 최악이었는데요."

모용진은 야전에서 황제가 했던 요리를 먹었던 적이 있기에 부정적이었다.

진짜 살기 위해서 먹었지 전쟁 중이 아니었다면 절대 먹지 않았을 끔찍한 맛이었다.

백부장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맛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한 명은 먹을 만 하다고 말하겠지.

그 한 명은 누구냐고?

미뢰가 뒤져 버린 게 아닌지 의심되는 대흘이지 뭐.

모용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솔직한 심정으로 토로했다.

"기대가 안 됩니다."

모용진의 단호한 말에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입가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알았어. 폐하한테는 그렇게 전할..."

"아하하! 하지만 배운다면 달라질 수 있죠. 전 폐하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는 모용진은 오르테가는 조금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모용진... 어른이 되었구나."

조금 놀렸다고 저렇게 비굴하게 나올 줄이야. 오르테가는 오랜 친구가 어른이 된 거 같아서 조금 안타까웠다.

"전 예전부터 어른이었습니다만?"

그 반응에 모용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지만 오르테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말했다.

"아무튼 난 말했으니까 이젠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갈게."

"그래, 좀 있다가 보자꾸나."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말을 움직였다. 그녀의 수를 보면서 모용진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으음!"

그걸 보면서 모용진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황제의 요리고 나발이고 지금은 당장 장기를 이겨야 했으니까.

--

"일단은 이렇게 피를 빼주는 거예요오."

아가미뚜껑을 젖혀서 칼로 푹 찌른 마리프는 그대로 생선을 해수에 담구면서 말했다.

"흐음, 쉽구나."

황제는 그걸 보면서 일단 살아 있는 생선을 그녀가 했던 것처럼 쳐서 절명시켰다.

그러고는 똑같이 칼을 찌르고는 피를 빼냈다.

"와! 역시 잘하시네요오."

완벽하게 자신을 따라하는 황제를 보면서 그녀가 감탄하자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뭔가의 피를 빼내는 건 짐의 특기지."

"하하..."

설화와 미르예프는 그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예전에 주 가문 사람을 처형할 때를 떠올렸다. 확실히 피를 빼는 게 특기긴 했다.

그런 설화와 달리 마리프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피가 빠질 동안 다른 걸 준비할까요오?"

마리프의 질문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하면 될까?"

"굴 요리를 만들어 보죠오. 전은 어떨까요오?"

"전이라..."

그녀의 제안에 황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보마."

못 할 것은 없지. 황제는 나름 자신감을 보이면서 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네에, 이쪽으로 오세요오."

어느새 굴을 준비하는 그녀의 행동력을 보면서 황제는 감탄했다.

"요리하는 걸 보니 새삼 그대가 달리 보이는구나."

언제나 느긋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리를 할 때의 행동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후후, 그런가요오? 다행이네요오."

그 말이 기쁜지 마리프는 미소를 지으면서 굴을 씻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금을 이용해서... 불순물을 빼내는 거랍니다."

"흐음... 그렇구나."

황제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굴을 씻기 시작했다.

'어렵지도 않은데.'

솔직히 그리 어렵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벌써 자신의 요리를 보고 놀라는 건방진 동생들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어머니한테도 좀 드려야겠구나.'

잘 만들어지면 어머니한테도 드려야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굴을 씻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황제의 머리에는 이미 실패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

"요리?"

공방에서 한참 설계도를 그리고 있던 타흘라는 오르테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 점심시간이 곧이구나. 뭐... 가 볼까아? 로라가 데려다주는 거지?"

그제야 시계를 확인한 그녀가 칭얼거리면서 로라에게 달라붙자 로라는 싫은 표정을 지었다.

"...염동 마법으로 공중에 띄워서는 데려가 줄 수 있는데. 아무튼 꼭 갈게."

로라가 공구로 시제품을 손 보면서 대답하자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으니까 꼭 오는 거야 둘 다?"

"귀여워라. 알았어. 꼭 갈게."

타흘라는 그 말에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는 떠나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말했다.

"귀엽네 저런 동생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그보다 진짜 내가 데려가야 되는 거야? 두 발은 장식이야?"

로라가 조금 짜증 난 얼굴로 묻자 타흘라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 장식이야."

"그럼 자른다."

"어? 자, 잠깐 장식은 함부로 떼는 거 아닌데... 미안! 미안! 그래도 데려가줘!"

잔찌 자르려는 듯이 톱을 들고 다가오는 로라를 보고 타흘라가 애원하자 로라는 그 모습에 한숨을 쉬고는 그녀를 염동 마법으로 띄웠다.

"이렇게 데려간다. 그럼."

"어, 아직 겨울이라 이대로는 좀 추울... 보온 마법을 쓰면 되겠지 뭐. 부탁할 게."

타흘라가 불평하기 무섭게 로라가 바로 떨어트리려고 하자 타흘라는 급하게 말을 바꾸었다.

"정말이지... 누굴 닮아서 이렇게 귀찮아하는 거야?"

로라가 투덜거리자 타흘라는 꾸벅 졸면서 대답했다.

"흐음... 엄마?"

"문제가 있어!"

투덜거리면서도 로라는 그녀를 데리고 황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슬슬 점심시간이었으니까.

--

"야, 폐하께서 요리를 하신다는데?"

그 과정을 지켜본 콰오콴은 최근에 친해진 크라이스에게 바로 달려가서는 자신이 들은 소식을 전했다.

"폐하께서 요리를...?"

크라이스는 자기 귀를 의심했고, 그 뒤에서 검을 손질하던 할바르는 몸을 떨었다.

"으으, 끔찍한 소리를."

"그렇지..."

크라이스는 이미 황제의 야전 요리를 먹어보았으니까. 그 말에 공감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는 끔찍한 맛.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맛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 황제를 존경하기는 하나, 그럼에도 크라이스는 다신 황제의 요리를 먹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인가?"

그러나 대흘은 고개를 갸웃했다.

"먹을 만하던데."

그는 솔직히 그냥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너는... 에휴."

그런 반응에 할바르는 뭐라고 하기도 지쳤는지 그냥 포기했고, 세르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친구는 진흙으로 죽을 만들어도 잘 먹을 거 같아요."

"인정. 저 새끼가 맛있다고 한 음식은 거른다."

세르나의 말에 황보철궁이 공감하자, 박철준이 한숨을 쉬었다.

"난 먹었는데... 다신 저 자식이랑은 식당을 안 가."

"저 녀석 미각이 좀 이상하긴 해."

아비까지 공감하자 대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흘은 나름 그들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비 전하들께서는 다 먹어볼 생각같던데?"

콰오콴의 말에 백부장들은 전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려나...?'

할바르는 조금 걱정되었다.

그만큼 그가 기억하는 황제의 요리는 최악이었으니까.

--

"폐하께서 요리라... 미문제 이후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만..."

이곳에 왔다간 오르테가가 해준 말을 떠올리며 재상은 리사에게 말했다.

"솔직히 전장에서 사람을 베는 것보단 식재료를 베는 게 전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재상은 황제의 몸으로 전장에 서는 것보단 주방에 서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불안하지는 않으니까.

"저도요. 그보다 월말 보고서에 대해서 말인데요."

리사의 질문에 재상은 그녀가 건넨 보고서를 읽어보면서 말했다.

"좀 더 명확하게 적어 주시는 편이 제 쪽에선 검토하기 편할 거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 부분이 아무래도 명확하지가 않군요."

재상이 콕 짚어준 부분은 리사가 직접 처리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리사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죄송해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뭐든 처음엔 힘든 법이니까요. 흐음... 그보다 드시고 싶으시면 잠시 쉬도록 할까요? 니사 비 전하와 미령 비 전하도 같이요."

뒤에서 미령에게 다른 대륙의 언어를 배우고 있던 니사를 보면서 재상이 제안하자 미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조, 조금 기대되네요."

니사는 조금 기대되는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리사도 기대가 되었기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요리라...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으니까.

--

"나 돌아왔어! 마리프! 이거 요리해 줄 수... 어라? 폐하께선 여긴 어쩐 일이시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달리아가 해맑게 웃으면서 자신이 잡은 사슴을 멧돼지를 내려놓다가 주방에서 굴전을 굽고 있는 황제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멧돼지라... 이거 구울까?"

전을 뒤집던 걸 멈추고 황제가 달리아가 가져온 멧돼지를 보면서 묻자 마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겠네요오. 사람을 불러서 해체해 달라고 할까요오?"

"...굳이 부를 필요는 없지."

그 말에 고개를 저은 황제는 덤덤하게 식칼을 들고 가서는 그대로 멧돼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뼈까지 그냥 잘라버리는 말도 안 되는 무력에 달리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세헤라자드. 원래 해체를 저렇게 하던가?"

정신을 차린 달리아가 우연히 만나서 같이 주방까지 왔던 세헤라자드를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묻자 세헤라자드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식으로 해체하는 사람은 적어도 세헤라자드는 본 적이 없었다.

"폐하께서 직접 요리하시는 것이옵니까?"

세헤라자드가 황제를 향해 의아한 듯 질문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먹고 싶으면 그대들도 와도 좋다. 짐이 좋아하는 정자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니."

"알겠사옵니다."

꼭 오겠다는 듯이 세헤라자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제가 말해준 장소로 떠났다.

"냐! 간식을 받으러 왔다냐! 어라? 주인? 여기서 뭐 하냥?"

그때 케르가 모처럼 묘인의 모습을 하고 해맑게 웃으면서 들어오다가 황제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폐하, 단련은 피곤해서 쉬신다더니..."

"요리를 하고 계신 겁니까...?"

그런 케르를 따라오고 있던 여화와 레오니가 조금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은 오늘 단련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가 요리하기 위해서라는 게 조금 서운했다.

"두 분 다 어떤 활을... 폐하?"

그런 둘에게 어떤 활을 만들어 줄지 물어보고 있던 가비는 황제가 멧돼지 고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 놀랐다.

"요리를 하고 계셨군요."

그러나 딱 그것뿐.

가비는 별다른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녀는 황제가 요리를 할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으니까.

"짐은 증명해야 하니 보고 있거라."

그러나 여화와 레오니가 실망하더라도 황제는 요리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라오허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황제는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