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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69화 (69/235)

〈 69화 〉 전하고 싶은 것

* * *

생각해 보면 녀석은 늘 이랬던 거 같다.

언제나 태연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해 보여서...

어쩌면 이 녀석은 감정이 없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의 표정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녀석이었다.

하지만 오르테가는 알고 있었다.

표정을 아무리 잘 관리한다고 해서... 그 녀석이 감정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을.

녀석도 평범하게 상처 입고, 평범하게 슬퍼할 줄도 알며, 평범하게... 기뻐할 줄도 아는 인간이라는 것을.

오르테가는 이제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맛있나 보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이젠 그 무표정에서도 어느 정도 녀석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당장 녀석의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살짝 부드러워진 눈매로, 녀석에게 지금 식사가 만족스럽다는 걸 오르테가는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맛있지?"

"확실히... 쌍둥이들이 이런걸 보는 눈은 뛰어나구나."

역시 입에 맞았나 보구나.

오르테가는 자기 생각이 딱 들어맞았다는 생각에 기쁜 듯이 웃었다.

생각해 보면... 옛날에도 이렇게 둘이서 같이 밖에서 같이 식사했던 적이 있었다.

"옛날 생각나네. 그때도 우리 이렇게 밖으로 나와선 같이 식사했었잖아."

"...기억나는군."

어린 애 둘이서 무작정 가게로 찾아가선... 금괴로 계산하려다가 소란이 일어났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다 추억이다.

진위는 그리 생각하며 웃었다.

"제대로 된 돈은 있지?"

그때처럼 또 금괴 같은 이상한 걸 들고 온 건 아니지? 오르테가가 그런 눈으로 진위를 보며 묻자 진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그런 오르테가를 쳐다보았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제대로 된 돈으로 챙겼으니 안심하고 먹어라."

진위의 대답에 오르테가는 가재를 버터로 구운 요리를 먹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이곳의 식사가 마음에 들었던 만큼 그녀도 이곳의 식사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으음! 맛있어."

"그래, 많이 먹어라."

정말이지 감정이 풍부한 녀석이다.

진위는 자신과는 다른 오르테가가 참으로 신기하다 생각하면서도 그 역시 식사를 계속했다.

확실히... 모처럼 녀석과 나와서 먹은 식사는... 제법 맛이 있었다.

­­

"나르타 씨가 회임을... 그렇구나."

동생이 가져온 소식에 리사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동생도 제법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잡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이상하게도 그녀는 나르타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 마저 들고 있었다.

리사가 볼 때 그녀는 사려가 깊었고, 똑똑했으며, 아름다웠다.

솔직히 말해서... 리사는 사실 그녀와 어울리면서 반쯤은 황후가 되는 걸 포기했다.

자신 같은 몸만 큰 어린 애보단... 그녀가 황후가 되는 게 더 옳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버지의 칭찬이 받고 싶어서 황후가 되고 싶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유치한 이유였다.

리사는 이곳에 있다 보니 그때 자신의 어린 애 같음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언니! 이거 봐! 눈이 오고 있어."

그때 니사가 해맑게 웃으면서 밖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있었다.

그러네... 벌써 눈이 올 시기구나.

리사는 어느새 눈을 맞으러 나간 니사를 보면서 웃었다.

'그래 고민하지 말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이젠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많은 인연이 생겼으니까.

'얼른 나르타 씨가 오면 좋겠다.'

리사는 그런 생각하며 나르타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웃음이 나오는 만남이었다.

­­

"저쪽이... 리사고, 이쪽이 니사인가요?"

때는 합궁을 끝마치고 처소에서 그녀가 니사와 멍하니 합궁 때 일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예쁜 사람.'

리사는 자신을 니사로 착각하긴 했지만 굉장히 예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녀로 곱게 정리한 붉은 머리카락이 참으로 부드러워 보였고, 붉은 눈동자는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백옥 같은 피부는 티 하나 없이 맑고 고왔고, 아름다운 몸매는 균형이 잡혀 있어서 한복을 입고 있음에도 그 윤곽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였다.

"누구... 시죠?"

"아, 소개가 늦었네요. 나르타 쿤룬이라고 해요."

나르타 쿤룬.

그 이름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비...'

리사는 그 이름을 듣고는 그녀가 바로 진륜족의 대표로 선택된 비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비들은 일단은 황족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않기에 진이라는 성을 쓸 수 없다.

진이란 고귀한 성은 오로지 황족의 피가 흐르는 황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이기에.

나르타 쿤룬이라면 그녀가 알기로는 황제가 처음으로 얻은 비.

확실히 그런 품격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자신 따위보단... 훨씬 황제에게 어울리는 사람.

리사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게 제가..."

아무튼 잘못된 정보는 정정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쪽이 리사고, 저쪽이 니사다."

리사가 자신은 니사가 아니고 리사라고 말하려고 할 때였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황제가 덤덤하게 나르타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어머나? 죄송해요. 제가 그만 무례를..."

"아, 아뇨. 쌍둥이다 보니 그런 분들이 많아서 별 느낌은 없답니다. 근데..."

폐하께서는 대체 어떻게 우리를 알아본거지? 그리고 대체 이곳엔 어쩐 일이시지?

리사는 그런 의문을 품은 채, 놀란 눈으로 황제를 보았다.

니사 역시 말은 안 하지만 놀란 눈으로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다.

"기운이 다르다고 말해 봐야... 이해하기 힘드나?"

기운...? 리사가 그 대답에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나르타는 뭔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뇨. 확실히 이해했답니다. 그렇군요. 이런 기운이군요. 기억했어요."

기운으로... 알아볼 수 있어?

리사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과 동생을 그런 식으로 구분하는 사람을 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런 거로... 알아볼 수 있는 건가요?"

니사도 같은 생각인지 의아한 얼굴로 물었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좀 더 예민한 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도 못 알아볼 정도의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전할 말이 있다만. 이거 짐이 방해된 건가?"

황제는 말과는 다르게 자신이 전혀 방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고, 실제로 황제를 방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아뇨. 방해라고 할 거까지는..."

리사가 그렇기에 머뭇거리면서 손사래를 치자 황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잘되었군. 둘이 처소를 같이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네? 아, 예... 니사가 혼자선 불안해해서..."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황궁에서 지내다 보니 소심한 니사가 너무 불안해 했다. 그래서... 그런 동생을 위해서 그녀는 니사와 같은 방을 쓰고 있던 거였다.

리사가 머뭇거리면서 대답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방을 더 큰 곳으로 옮기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떤가?"

아, 그걸 물어보려고 직접 오신 거구나.

리사는 황제가 굉장히 사소한 것도 신경 써 준다는 사실이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 주시면 감사합니다만... 폐하께선 그런 것도 직접 하시는 건지요."

리사가 순수하게 궁금한 얼굴로 묻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비의 일이니 짐이 하는 것이다. 사소한 일은 아니지."

"아..."

리사는 그제야 실감했다.

이젠 자신도... 황제의 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 편히 쉬도록."

"후후, 보기보단 상냥하시죠? 소문과 다르게... 그리 무서운 분은 아니랍니다."

나르타는 어느새 저 멀리 가 버린 황제의 뒷모습을 보면서 후후 웃었다.

그 말을... 리사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확실히 폐하는 생각보다 상냥하고, 자상한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가끔 무서울 때도 있으시지만."

무서울 때?

나르타의 말에 리사는 고개를 갸웃했고, 나르타는 그런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답니다."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그녀를 보면서... 리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 고운 손을 잡았다.

신기한 사람.

사실상 경쟁자나 다름이 없는데도 이렇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 수 있다니...

리사는 그녀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그녀는 나르타란 사람을 동경하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경쟁자일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화사하게 웃으면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상냥함을 가진 그녀를 말이다.

­­

"나르타는 잘 지낼까?"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 오르테가는 나르타를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황궁에서 새로 사귄 친구인 나르타가 걱정이 되었다.

'세헤라자드랑 마리아하고 같이 갔던가?'

물론 세헤라자드나 마리아하고는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둘 다 나르타하고는 친한 거 같으니까. 오르테가는 자신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무튼 오르테가는 그들과 같이 본가로 간 나르타를 걱정했고, 진위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잘 지내겠지."

"그렇겠지? 다른 곳도 아니고 본가니까... 나도 본가로 돌아가고 싶다."

오르테가는 자신의 본가를 떠올리면서 중얼거렸고, 진위는 그런 그녀의 말에 바로 입을 열었다.

"가도 안 잡는다."

진위의 무심한 말에 오르테가는 기분이 조금 상했다.

막상 그렇게 선뜻 가라고 하니까 조금 서운했으니까.

"너무해!"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감도 안 오는군."

그런 그녀의 반응에 진위는 진심으로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여간 애 같은 녀석.

진위는 투덜거리면서도 대충 그녀에게 사탕을 사서 건네주었다.

단 걸 좋아하는 녀석이니 이걸로 기분이 좀 풀리길 기대하면서.

"이거라도 먹고 있어라."

"흥! 고작 먹는 걸로... 와! 눈 온다. 위! 눈이야. 눈!"

사탕을 받아 들면서도 여전히 삐진 표정이던 오르테가는 갑자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눈 하나로 풀어지는 건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눈을 보며 오르테가가 신난 얼굴로 호들갑을 떨자 진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먹을 걸로는 안 넘어오면서 눈에 넘어가는 건가?

하여간... 진위는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의 외투를 벗었다.

"춥다. 이거라도 걸치고 있어라."

오르테가의 옷은 꽤 두꺼운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눈이 오면 더 춥다.

그렇기에 진위는 자신의 외투를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어? 고, 고마워."

벌써 감기라도 걸린 건가?

얼굴이 잔뜩 붉어져선 외투로 자기 몸을 꼬옥 감싸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진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몸이 안 좋으면 이만 돌아갈까?"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진위가 그런 생각을 하며 묻자 오르테가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응? 아, 아니야! 그보다 넌 안 추워?"

외투를 벗어 줘서 그런지 제법 얇은 옷차림이 된 진위를 오르테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자 진위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추위에 구애 받지 않는 몸이 된 지 오래라."

"네, 네! 대단하십니다."

진위에 대답에 오르테가는 '그래 너 잘났다.' 하면서도 안도한 표정을 지었고, 진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경지긴 하지.

모용진을 제외하고는 자신과 같은 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 자가 역사상으로 찾아봐도 드물 정도니.

진위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 무인으로서 자긍심이 있었다.

"진이는 돌아오겠지...?"

그녀도 진위와 마찬가지로 모용진을 떠올렸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돌아올 거다."

진위는 단호하게 말했다.

돌아와야 했다.

반드시.

만약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진위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는 반드시 무사히 이곳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 돌아와야지. 아무튼 따라와. 너랑 꼭 가고 싶은 곳이 있거든."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여준 오르테가는 진위의 손을 꼭 쥐면서 그대로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곳이라니?"

진위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자 오르테가는 계속 그를 끌고 가면서 대답했다.

"너도 아는 곳이야. 아무튼 따라와."

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진위는 그런 생각하면서도 묵묵히 그녀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선...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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