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열세 번째 합궁레오니 비렌체
* * *
황제는 연무장에서 철검을 든 채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느껴지는군.'
황제는 느끼고 있었다.
저기서 다가오는 여인의... 강인한 기운이.
'나쁘지 않군.'
여화와 비슷한가? 아니면... 오히려 더 강할지도 모른다.
황제는 그녀의 기운을 평가하면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일단 느껴지는 기운은 나쁘지 않았다.
'데려왔습니다."
연무장에 도착한 미령의 말을 들으면서 황제는 미령의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레오니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둘 다 물러서라."
"?"
갑작스러운 황제의 명령에 미령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바로 물러났고, 황제의 어깨에 앉아 있던 케르도 빠르게 몸을 피했다.
카앙!
그 순간 레오니가 황제에게 갑자기 달려들었다.
"자기소개는 생략하는 편인가?"
황제는 빠르게 찔러온 레오니의 검을 검면으로 가볍게 막아내며 물었고, 레오니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무인은... 검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라 배웠기에."
황제는 그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카앙!
레오니가 회수한 검을 내려쳤고, 황제는 자신의 검을 옆으로 세워서 그 검을 막았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소개해 보거라."
휘익!
'무슨!'
레오니는 가볍게 자신을 밀어내는 황제의 완력에 놀랐다.
자신이 짓누르는 형세였는데 이걸 가볍게 밀어내다니! 그녀는 현재 마력을 통해 완력을 강화한 상태였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컸다.
휘익!
황제의 검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자 그녀는 검을 들어 그 베기를 막았다.
카앙!
"흐음..."
부들부들!
황제의 검을 막아 낸 그녀의 검을 쥔 손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우득! 우드득!
점점 밀리기 시작한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차분한 눈으로 그녀의 수를 생각했다.
그녀 정도의 검사가 이대로 밀리기만 할 생각은 아닐 거다.
무슨 수를 떠올리고 있는 거지?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그 힘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저 멀리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거리를 벌리는 판단인가?'
황제는 차분하게 그녀의 행동을 관찰했다.
추격해서 바로 끝낼 수도 있었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모처럼 검을 나눠볼 만한 상대를 만났는데 바로 끝내는 건 아쉬운 일이었으니까.
'진짜다...'
한편 거리를 벌린 레오니는 황제를 보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검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예리하게 번뜩이며,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그 어떤 것보다 넘치는 쾌감을 안겨줄 테니 덤벼오라고!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레오니는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성이 아닌 본능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검에 마력을 가득 실었다.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판단한다는 선택지는 이미 그녀에게 없었다.
[거, 검강이다냐.]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녀의 검강.
황제는 그 완성도 높은 그녀의 갈색 검강을 보면서 자기 검에도 검강을 씌웠다.
'단단하군.'
황제는 그녀의 검강을 보면서 평가를 내렸다.
아주 단단하고, 또 견고했다.
한눈에 봐도 그 강도가 느껴진다.
달려드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그녀의 검을 주시했다.
언뜻 찌르기로 보였던 그녀의 검은... 어느샌가 황제의 목을 베려는 듯이 옆에서 오고 있었다.
우드득!
'이 힘...?'
그런 단순한 눈속임에 당하지 않은 황제는 그 검을 막아내다가 자신이 힘에서 밀렸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아무리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고 해도 밀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명백하게 그녀의 검에 밀리고 있었다.
'그렇군.'
그러나 황제는 그 비밀을 바로 알아내었다.
바로 보법이었다.
그녀의 특별한 보법이 그녀의 검에 더욱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그렇군. 저런 식으로 발을 디디면 확실히 힘이 더 실리겠군.'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더욱 힘을 주어서 그녀를 제압했다.
황제의 검강에 그녀의 검강이 깨지면서 그 충격으로 그녀의 검이 튕겨져 날아가기 시작했다.
'끝이군.'
볼 건 다 봤으니까 이젠 끝낼 때였다.
푸아악!
'이... 게...'
검이 튕겨져 날아간 탓에 완전히 드러난 그녀의 몸통을 황제가 베어 버리자 그녀는 그대로 쓰러지면서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검이었다.
무슨 수를 써도...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거 같던 완벽한 일검.
비록 그 힘을 줄였어도, 그 검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털썩.
"멋지구나."
그 미소를 본 황제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죽음의 위험에서도 웃을 수 있는, 그저 검에 미친 망령.
하지만... 황제 역시 그녀와 같은 검의 망령이기에 그것이 오히려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최대한 손속에 사정은 두었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좋았나?"
황제의 질문에 레오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언젠가... 죽어도 좋으니 폐하의 진심이 담긴 검을... 보고 싶습니다."
"언제든 도전해라."
그 대답에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그녀를 직접 약으로 치료해주었다.
케르는 그런 둘을 보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목숨 걸고 왜 저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냐...]
"그러게요."
그런 케르의 의문에 미령은 공감했다.
그녀는 왜 검에 목숨을 거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대장. 이 숲 말인데요... 생각보다 훨씬 넓네요."
세르나는 불길한 숲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는 자세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조사에 시간이 걸리겠군."
어쩌면... 침입자를 혼란에 빠트리는 요소가 있는 걸지도 모르고.
모용진은 그런 생각하면서 자신이 남긴 표식이 있는 나무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이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이거 봐. 우리 다시 돌아왔어."
표식을 남긴 나무가 보인다는 건. 자신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니까.
"...어라? 진짜네요?"
'난처하군.'
능청스러운 세르나를 보면서 모용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숲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건 조금 난처했다.
"어쩌면 우리 여기 갇힌 걸지도 모르겠어."
"네? 그, 그럼 어떻게 해요?"
호들갑을 떠는 세르나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 준 모용진은 눈을 감고는 말했다.
"원인을 찾아야겠지. 조금만 기다려."
진법이던, 주술이던, 마법이던... 이런 기괴한 현상에는 그 원인이 있을 거다.
모용진은 그 원인을 제거할 생각했다.
'찾았군.'
저건가?
모용진은 이곳에서도 이질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물건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장?"
"...조용히 따라와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거 같은 세르나를 이끌고 모용진은 걸음을 옮겼다.
'꽤 먼데... 좀 오래 걸리겠어.'
조금만 방심해도 위치를 놓쳐 버릴 거 같은 감각의 혼란.
그것들을 이겨 내면서 모용진은 걸었다.
얼른 이 현상을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야 했으니까.
"...침입자가 있는 거 같은데."
어두운 성의 안.
새머리의 남자는 뭔가가 이곳에 침입한 것을 알아차렸다.
"문제 있어?"
"...문제는 없지. 진법은 완벽하다."
소머리 거한의 질문에 새머리 남자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문제가 될 건 없다.
진법은 완벽하고,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해제할 수 있는 성질의 진법이 아니었으니까.
"우마왕 형님."
"응? 왜? 아우야."
새머리의 남자가 그를 부르자 소머리 거한.
아니 우마왕은 풀을 우물거리면서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심각한 표정의 새머리 남자를 보며 우마왕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새머리 남자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혹시 형님이 사고 친 건 아닐까..."
퍼억!
새머리 남자의 머리를 후려친 우마왕은 화를 내며 말했다.
"가만히 있었어!"
"그, 그래... 그렇겠지. 평천대성(??大聖)이라고도 불리던 형님이 무슨 사고를 쳤겠어. 그럼 이 불길함은 뭐지?"
새머리 남자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말하자 우마왕은 고개를 저었다.
"기분 탓이라면 뭐, 어때? 근처 도시로 가서 인간이라도 잡아 올까?"
우마왕은 '인간을 먹으면 기분이 좀 풀릴 텐데.' 라고 말하며 당장이라도 도시로 나갈 기세였지만 새머리 남자가 그런 우마왕을 말렸다.
"...됐어. 괜히 인간을 먹겠다고 내려갔다가 눈에 띄고 싶진 않군. 형님은 특히 눈에 띄니까."
'그래, 기분 탓이겠지.'
새머리 남자는 자신의 불안을 애써 털어 버리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니 괜히 불안해진 거라고 믿으면서.
"나 심심해."
일단 의원에게 레오니를 맡기고, 집무실로 돌아온 황제는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오르테가의 말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심심하면 나르타한테 놀아달라고 해."
"나르타는 주술 공부한다고 본가로 돌아갔잖아."
황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은 이미 황제도 알고 있었으니까.
"너도 그러니까 그쪽으로 가라고."
"쌀쌀맞아!"
오르테가가 징징거렸으나 황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녀석이 징징거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어차피 금방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릴 테니까.
"오늘도 합궁이지?"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오르테가가 다른 곳에 관심을 돌렸다.
"그래."
오르테가의 질문에 황제가 태연하게 대답하자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열심히 해."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응원해주는 오르테가를 보며, 황제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하군. 왜 그런 표정이지?"
"으, 응? 뭐가? 난 하아나도 모르겠는데?"
저 녀석... 왜 저렇게 서운한 표정이지? 황제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지금의 모습도 황제가 볼 땐 그냥 허세를 부리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뭔가 서운한 거라도 있나?"
"서, 서운하디니! 그런 거 없어!"
황제가 가까이 다가가선 의아한 얼굴로 묻자 오르테가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그런 황제의 시선을 피하며 외쳤다.
"흐음..."
"어, 없다니까?"
황제는 계속해서 부정하는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이 녀석과 알고 지낸 세월이 있다. 부정하는 말과 다르게 지금 몹시 서운한 상태라는 걸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삐지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으으."
황제는 분한 듯 입술을 삐죽 내미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너하고 알고 지낸 세월이 있다. 그 정도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하진 않아."
"...이런 건 눈치채면서."
"?"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오르테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황제에게 말했다.
"그래! 삐졌어. 요새 너 나랑 잘 놀아주지도 않잖아."
"...그런 거 같긴 하군."
확실히 최근엔 바빠서 오르테가와 어울려주지 못한 거 같긴 했다. 그 사실을 흔쾌히 인정한 황제는 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따, 딱히 사과를 원한 건 아닌데... 좋아."
알고 있다.
자신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이 이상한 곳에선 둔한 황제는 자신의 감정을 절대 몰라줄 거라는 걸.
그러니까...
"그럼 폐하. 내일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오르테가는 확실하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진심을 말이다.
"내줄 수야 있지만..."
툭.
그 대답에 오르테가는 황제의 이마를 툭 건드리면서 해맑게 웃었다.
"그러면 내일 봐. 내일은 내가 잔뜩 데리고 다닐 거니까 기대하라고!"
그렇게 말하고 오르테가가 그대로 가 버리자 황제는 그녀가 건드린 이마를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뭘 하려는 거지?"
불안한 예감 밖에는 들지 않는데...
황제는 그런 생각하면서도 일단 오늘은 합궁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적어도 합궁 상대에 대한 예의였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