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짐을 적으로 돌린다는 것은/열 번째 합궁박미령
* * *
"그럼 장부를 내놓거라."
황제의 말에 여전히 전직 장관들은 머뭇거렸다.
장부를 건넨다는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직위를 전부 진짜로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걸 본 황제의 손이 다시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황태후! 황태후 폐하께서 이 사실을 아나?"
정신을 차린 모용철이 악을 쓰며 말했다.
"당장 황태후 폐하를 불러와라! 내 동생. 동생을 봐야겠다."
"...하."
발악하는 그를 보며 진심으로 경멸하는 표정을 지은 황제는 뒤에 서 있던 박노식에게 말했다.
"보았나? 저게 모용가의 수장이라는 자의 대가리다."
황제의 입에서 대가리라는 천박한 말이 튀어나오자 박노식은 깜짝 놀랐으나 곧 평정을 되찾고는 대답했다.
"확실히... 멍청하군요."
박노식은 이게 정말 모용가의 수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초에 폐하께서 이렇게 일을 크게 벌렸거늘, 황후가 없는 지금 내명부의 수장인 황태후가 정녕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명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 자체가 황태후가 이번 일을 묵인하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였다.
"이봐. 모용철."
"..."
황제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직접 불렀다.
모용철은 주제도 모르고 그저 조카가 자신의 이름을 막 부른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가 황제라는 사실은 지금 그의 뇌리에는 없었으니까.
"너, 너! 난 네 외숙부다! 그런데 이렇게 건방..."
"짐이 그대처럼 멍청이로 보이나? 아니면 모든 사람이 그대처럼 병신인 거 같나."
황제의 욕설에 박노식은 잠시 움찔했으나 모용철은 갑작스러운 모욕에 얼굴이 붉어졌다.
"너, 너... 나 없으면 네가 황제가..."
꽈악.
"너희들은 참 재미있는 착각을 하더구나. 그대들의 힘으로 짐이 황제가 된 거 같던가?"
더 듣기 싫다는 듯이 황제는 그대로 손을 뻗어 기로 모용철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황제는 웃음이 나왔다.
이리도 약한 것이.
어찌 이리도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걸까?
"그 힘이 그래서 그대들을 지켜주던가? 짐을 황제로 만들 정도의 힘이라면서?"
"..."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황제의 명령 한 번에 순식간에 제압 당해 끌려온 것이 자신들이었으니까.
"착각하지 말거라. 그대들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황제는 모용철을 점점 더 위로 들어올렸다.
모용철은 겁에 질린 얼굴로 점점 더 높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콰직!
"...힘이 있는 것은 짐이라는 것을 말이야."
그대로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진 모용철은 일어나지 못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선, 더 이상 악을 쓰지도 못했으니까.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도 모두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공포가.
황제에 대한 강한 공포가 그들의 입을 막았다.
"자, 장부를 돌려드리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황제의 권위 앞에 다시 한 번 굴복했다.
그들은 이젠 알았다.
자신들의 힘이라 믿던 것은.
굳건한 성이라고 믿었던 자신들의 권위는.
황제의 앞에선 그저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보다 피가 적게 흘렀구나."
황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선 돌려받은 장부를 정리하는 재상을 보았다.
뭔가 더 저항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몇몇 멍청이들을 제외하면 빠르게 현실을 파악하고 굴복해버렸다.
이럴 거면 왜 그리 거만하게 굴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대신 한족들의 권력 구도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명문가들이 직책을 잃으면서 가지고 있던 힘이 크게 줄었고, 박가가 이번에 이부 상서를 배출하면서 크게 영향력을 키웠으니 말입니다."
재상은 엄청난 변화라며 놀라워했으나 황제는 그런 건 시시하다 여겼다.
자신의 결정 하나에 크게 바뀔 귄력 구도 같은 건 황제에게 크게 의미가 없었으니까.
"잘하셨습니다. 한족에게 너무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바람직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들도 이젠 자중하겠지요."
"...그래, 이게 맞는 거겠지."
아쉽긴 하지만 굳이 저항 의지를 잃은 자들을 더 죽일 필요는 없다.
애초에 주 가문처럼 대놓고 빌미를 제공한 것도 아니고, 사직 상소를 제출하고, 장부를 들고 튄 것 정도로 닥치는 대로 죽이는 건 과한 처분이었다.
어차피 저들은 스스로 내세운 수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많은 걸 잃었으니...
굳이 더 건드릴 필요도 없었다.
"이제 좀 알았겠지. 짐을 적으로 돌리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황제는 의자에 기댄 채 중얼거렸다.
이제 저들은 확실히 실감하게 되었으리라.
자신을 적으로 돌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황제는 일단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한족과 황제의 다툼은 황제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새로 이부 상서가 된 박노식을 포함하여, 장관들도 새로 바뀌었고, 그 아래 관료들도 전부 새로 뽑았다.
한족으로 득세하던 문관들은 이젠 제법 다양한 민족을 아우른다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되는데 걸린 시간이 딱 이주였다.
슬슬 날씨도 추워지는 겨울.
황제는 자기 앞에서 고구마를 먹고 있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물었다.
"그게 그리 맛있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고구마를 우물거리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가 물었다.
"응? 폐하도 한 입 먹을래?"
그러자 입에 있는 걸 다 먹어 치운 오르테가가 손에 든 고구마를 내밀며 묻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열 번째 합궁은 무난하게 흘러 갔다.
이부 상서의 딸은 꽤 말끔하게 생긴 여인이었고, 평범하게 합궁을 진행하고, 평범하게 비의 자리에 올라. 지금은 또 평범하게 아비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가 문관의 일을 하다니...
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황제가 허락했다는 데 딱히 말리는 자가 없었다.
"요새 편해?"
"...조금은."
황제는 열 번째 합궁 이후에 그 누구와도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황제의 말에 황태후가 직접 나서서 일정을 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인 듯했다.
"폐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밖에서 들리는 깐깐해 보이는 목소리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라."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안으로 들어온 것은 안경을 낀 사무적인 인상의 미인이었다.
이곳에서 보기 드문 사무적인 정장을 입고 있는 그녀는 검은색 머리는 깔끔하게 올려 묶어서는 비녀로 정리해 두었고, 날카로운 진갈색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채 황제를 보고 있었다.
금욕적인 얼굴과 대비되는 육감적인 몸매가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무뚝뚝한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이 여자가 바로 박미령.
황제의 열 번째 합궁 상대였던 여인이자, 지금은 이부 상서 밑에서 일하고 있는 특이한 비였다.
"다름이 아니고 폐하께서 다시 합궁을 재개하기로 한 날이 되었기에 보고를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
이젠 자기 밑에서 일하는 비가 있으니 이쪽에 합궁 일을 떠넘긴 건가?
황제는 늘 오던 재상이 오지 않은 것엔 놀랐지만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한 번째구나."
"네, 이번 민족은 루루족으로 루루족의 다인 족장의 장녀가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황제는 보고를 덤덤하게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장녀면 나이가..."
"올해로 약관을 넘긴 지 4년째군요."
그녀의 명쾌한 대답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계속하도록."
"이름은 달리아 키무르다인. 루루족에서도 제법 유명한 사냥꾼인 모양입니다. 밀림의 왕뱀을 홀로 사냥한 전적이 있다는군요."
"그렇구나. 지금 와 있나?"
황제의 질문에 미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궁에서 쉬고 있는 중입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되었다. 피곤하면 쉬어야지."
딱히 관심이 가는 상대는 아닌지라 황제는 굳이 만나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볍게 잘랐고, 미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딱딱하네. 미령이는."
오르테가는 그런 미령을 보면서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모처럼 예쁜 얼굴인데 저렇게 인상을 쓰고 있으면... 뭔가 조금 아쉽다. 웃으면 훨씬 예쁠 텐데.
오르테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령을 보고 있자 황제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침대에선 그렇게 안 딱딱..."
덥썩!
황제의 느긋한 말에 그녀의 무뚝뚝 하고 사무적이던 표정이 깨졌다. 순식간에 황제에게 다가온 미령은 그 입을 양손으로 급하게 막았다.
"그, 그 이야기는 금지입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르테가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짓궂게 웃었다.
"침대에선 뭐? 나 그 이야기 꼭 들어 보고 싶은데?"
저 미령이 저렇게 당황하다니! 오르테가는 아주 관심이 갔으니까.
"벼, 별거 아닙니다! 아무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 반응에 빠르게 도망쳐 버린 미령을 보면서 오르테가는 황제에게 물었다.
"그래서 침대에선 어땠는데?"
"...훗."
황제는 '궁금해 죽어보시지?' 란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오르테가는 황제의 볼을 마구 늘렸다.
"이익! 얄미워! 그보다 정장이란 것도 예쁘다. 나도 입어볼까?"
금방 관심사를 바꾼 오르테가를 보면서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저 녀석한테 황태후의 교육이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딱히 바뀐 건 없는 거 같은데...
"저기 폐하. 어떻게 생각해? 나한테 잘 어울릴 거 같아?"
자신을 부르는 호칭 말고는 별로 바뀐 것도 없는 녀석을 보면서 한숨을 쉬던 황제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잘 어울리겠지."
그래도 저 옷도 제법 잘 어울릴 거 같긴 했다.
성격은 저래도 얼굴은 괜찮으니.
"헤헤, 그래? 그럼 한 번 입어봐야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르테가는 애처럼 실실 웃더니 그대로 어딘가로 가 버렸다.
'조용해졌군.'
황제는 녀석이 사라지자 조용해진 집무실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녀석이 사라지니까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조금 심심할 정도로 말이다.
그녀와의 열 번째 합궁은 모든 일이 정리되고 난 밤에 있었다.
그때 황제는 침소로 향하면서도 계속 그날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적게 죽였다.
명분 같은 건 사소한 것.
죽이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더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 변화가 황제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언제 바뀐 걸까? 어디서부터 바뀐 걸까?
황제는 아무리 스스로 생각해봐도... 막상 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침소로 돌아가자 황제를 반긴 것은 안경을 낀 사무적인 느낌의 여성이었다.
검은색 네글리제를 입은 그녀는 그 육감적인 몸매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앉아 있다가 읽던 책을 덮었다.
"누구지?"
"박미령이라고 합니다."
그제야 황제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박미령.
박노식의 장녀이자, 프리히 대학에서 교육 과정을 끝내고, 제국의 고등교육 기관인 태학에서 박사 자격을 따낸 여인이었다.
비 후보 치고는 특이한 학력이라 황제의 기억에 남았다.
"프리히면 프리아족의 학교인가? 제법 독특한 곳에서 수학하였군."
한족이 굳이 저 먼 프리아족의 학교에서 수학하다니? 특이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문화가 다른 곳의 교육도 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태학에 들어가려면 하위 교육 기관에서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하기도 하니까요."
황제의 질문에 그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에 황제는 그녀가 원래 원하던 것은 당연히 이런 비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고위직에 들어가려면 아무래도 태학에서 박사 자격은 취득하는 게 보통이니까.
아마도 이 여인은 관료를 꿈꾸며 공부하던 모양이었다.
"후회되진 않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관료를 꿈꾸던 것이 아닌가?"
황제는 알고 있다.
당장 프리히 대학도 제법 많은 학식을 필요로 하는 교육 기관이고 관도에 있는 최고 교육 기관인 태학은 어지간한 학자나 선비들도 입학할 엄두도 내지 못 하는 무서운 곳이다.
모용철은 입학 시험에서 떨어져서 태학에 입학하지도 못했다.
재상은 그곳에서도 수석을 놓쳐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재상이 특이한 것이고, 보통은 입학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다.
배운 것을 못 쓰게 되는 것만큼 아쉬운 게 있을까?
황제는 자신이 검을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끔찍했다.
"제가 무엇을 하던 배운 지식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요. 아버님의 판단이 옳다 생각했기에 저 역시 동의하고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덤덤한 얼굴로 말하며 안경을 추어올리는 그녀의 모습은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그렇군."
황제는 자신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가 괜찮다는 데 괜히 제삼자가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곧 수면 시간이니 얼른 합궁을 진행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옷을 벗으려다가 손을 멈췄다.
"혹시 직접 벗기는 것을 더 선호하십니까?"
진지한 얼굴로 묻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옷을 벗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것에 취향을 두진 않는다."
그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네글리제를 벗고는 화려한 검은색 속옷도 벗어냈다.
그러자 조금 살집이 있는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바로 삽입하셔도 됩니다."
"...전혀 준비가 안 되었는데."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무슨 준비가 되었단 말인가.
몸은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고, 아래도 전혀 풀려 있지 않았으며, 젖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삽입하면 다칠 뿐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일단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굳은 몸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읏."
필사적으로 신음을 눌러 참으면서 그녀는 여전히 딱딱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걸 본 황제는 손을 가득 채울 정도로 잡히는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면서 아래를 만져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살짝 가파진 숨소리로 흥분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유두가 서기 시작했고, 아래가 젖기 시작했으니까.
슬슬 젖기 시작하자 그녀의 은밀한 곳에 손가락을 넣은 황제는 차분하게 아래를 풀어 주면서 삽입을 준비했다.
"그럼 넣으마."
"준비되었습니다."
여전히 딱딱한 말투로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그대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는 삽입을 시작했다.
황제의 커다란 물건이 그녀를 강하게 꿰뚫었다.
"흣!"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그녀는 입을 틀어 막은 채 신음을 참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황제는 묵묵히 허리를 움직였다.
찌걱. 찌걱.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위 아래로 출렁였고, 그녀의 머리도 위 아래로 작게 흔들렸다.
덜컹.
그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안경이 벗겨지자 지금까지 무표정을 유지하던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읏! 자, 잠시 멈... 흐읏!"
순식간에 표정이 무너져 내린 그녀는 쌓아두었던 둑이 터진 것처럼 순식간에 감정을 토해내며 열락에 찬 신음을 토했다.
"흐읏! 제, 제발 잠시만... 안경을..."
안경에 손을 뻗으려던 그녀는 결국 안경을 잡지 못하고는 오히려 손을 틀어서 황제를 꽈악 껴안았다.
"하악! 너무 좋아요. 이런 느낌은 처음... 이라! 흐읏! 너무..."
그녀는 황제에게 입을 맞추더니 그대로 혀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갑자기 변한 그녀의 태도에 황제는 당황하면서도 그녀의 키스에 호응해주었다.
혀와 혀가 섞이고 몸이 곂쳐지면서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그대로 뭉개졌다.
"하악. 좀 더... 좀 더..."
어느새 눈앞에 무표정한 여인은 없었다.
찌걱. 찌걱.
그저 쾌락에 젖은 여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퓨슛! 퓨슛!
그때 황제가 그녀의 안에 그대로 사정했고, 그녀는 그 사정을 받아들이며 황제를 꼬옥 껴안고는 몸을 작게 떨었다.
얼마나 껴안고 있었을까?
잠시 후 여운에서 벗어난 그녀는 급하게 몸을 떼어내고는 바로 안경을 썼다.
"...지금 건 잊어 주세요."
다시 평온을 찾은 얼굴로 주섬주섬 옷을 입으면서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그 변화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안경 하나로 이리 달라지다니?
옷을 입고 후다닥 도망치듯 사라지는 그녀를 생각하며 황제는 자신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참으로... 신기한 여인이었다.
아무튼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보기보단 그리 무뚝뚝한 여인은 아니었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어느새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 나르타에게 질문했다.
"그대는 무슨 볼일이지?"
"딱히 볼일이 있어야 낭군님의 얼굴을 볼 수 있나요?"
"..."
능글맞은 나르타의 대답에 황제는 침묵했다.
딱히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오르테가 녀석은 심심하면 찾아오는 수준이니까.
"아니지."
그렇기에 황제가 가볍게 대답하자 나르타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냥 오늘 한 번 보고 싶어서 찾아와봤답니다."
그 말이 정말이라는 듯 한참 황제의 얼굴을 구경하고 나르타가 떠나자 그 다음에 바로 세헤라자드가 들어왔다.
그녀는 황제와 간단한 담소만 나누고는 떠났다.
그 뒤에 찾아온 여화와는 검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누었고, 쌍둥이와는 보석에 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뒤에 찾아온 마리아는 연구를 위한 마석을 사달라고 징징거렸으며, 설화는 직접 만든 요리라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주먹밥을 가지고 들어왔다.
정말이지...
그 모든 게 익숙해진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합궁을 하기 전에 황제의 옆에 있는 건 대부분 모용진이었고, 재상이었으며, 가끔 황태후께서 찾아와 다과를 같이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새 달라졌다.
황제에겐 어느새 시간을 보낼 사람이,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다.
귀찮을 법도 한데... 황제는 그 변화가 이상할 정도로 싫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왜 이런 번거로운 만남들이... 이리도 가슴을 한 구석을 따스하게 만드는 걸까?
황제는 아직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거 하나 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일상에 점점 그녀들이 녹아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