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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35화 (35/235)

〈 35화 〉 여섯, 그리고 일곱 번째 합궁­리사 오페아, 니사 리페이아

* * *

"막내야. 이런 변방으로 자원을 오는 병사들은 사실 인생 막장들이거든? 넌 얼굴도 반반하니 좋구만 여긴 왜 왔냐?"

그 날은 달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국경 수비대의 말단.

모두가 막내라고 부르는 병사는 선임 병사의 질문에 달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곳이 차라리 마음이 편해서겠죠."

그 짧은 대답에 선임 병사는 대충 짐작했다.

막내의 집안 꼬라지가 상당히 개판일 거라는 것을 말이다.

"히야... 집안 꼴이 말이 아닌가 보구나."

선임 병사는 그런 병사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위로했다.

그 위로가... 병사는 기꺼웠다.

"뭣 하면 날 형님이라 불러도 좋다. 빈손 형님! 하고 부르면 저기 막사에서 국밥이라도 사준다. 어때?"

"...풉."

병사는 그 말에 웃었다.

고작 국밥이라니. 하지만...

"형님... 이러면 됩니까?"

이상하게도 병사는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형님으로 불러봤지만... 그 느낌이 낯간지러우면서도 뭔가 싫지가 않았다.

"크으...! 이런 잘생긴 동생도 생기고 최전방도 올만 하네."

그 어색한 형님이란 말을 들은 선임 병사는 감격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 모습이 병사에겐 어색하게 느껴졌다.

"...저도 형이 생긴 건 처음입니다."

병사의 어색한 대답에 선임 병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이라고? 형 없어?"

뭔가 막내는 어디를 가던 막내 느낌이었는데 아니었다고? 선임 병사는 의외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누님이 한 명 있고, 나머지는 다 동생입니다."

병사의 덤덤한 대답에 선임 병사는 그제야 왜 집안이 엉망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아! 대가족. 집안이 개판일만 하네. 내가 느낀 건데 형제가 너무 많으면 그것대로 피곤하더라. 서로 밥그릇 가지고 싸우고 안 그래?"

그 말을 멋대로 이해한 선임 병사가 장단을 맞춰주자 병사는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더라고요."

병사는 하늘을 보았다.

밥그릇을 두고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형제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왔으니까.

병사가 보는 달은 참으로 밝았지만, 그의 마음은 참 어두웠다.

스윽. 스윽.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가족보다 더 진한 전우가 있잖아."

그때 병사의 머리에 선임 병사의 커다란 손이 올라갔다. 그리고는 병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위로했다.

그런 선임 병사의 위로에 병사는 웃었다.

"그러네요."

가족보다 더 진한 전우라...

전장에 오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던, 가족보다 소중한 전우...

그 전우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하늘도 달리 보였다.

"달이 참 아름답습니다. 형님."

정말이지 그날 봤던 하늘은 장담할 수 있었다.

병사.

아니 황제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

"..."

그때와 같은 하늘이거늘. 그때와 같은 밝은 달이거늘.

왜 지금은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걸까?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었다.

스스로가 어디로 걷는지도 모르는 채 걸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기에 손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술병이 들려 있는 거였으니까.

황제는 길을 걸으면서도 여전히 눈으로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폐하! 침소는 저쪽..."

상선이 뭐라 하는 말을 들었지만 황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걷고, 또 걸어서 그가 도착한 곳은 황궁 안에 마련된 공동 묘지였다.

그곳은 황제가 많은 대신들의 반발을 물리치고 전우들을 위해서 만든 공동 묘지였다.

"오랜 만에 오는 구나."

황제는 무덤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어쩐지 전우가 보고 싶었기에... 황제는 합궁 전에 이곳에 오고 싶었다.

무덤 하나 하나의 이름을 다 말해주던 황제는 곧 가장 안 쪽에 있던 묘지 앞에 도착했다.

"형님. 아우가 오늘 찾아왔습니다."

상선은 황제의 말에 그제야 이곳에 온 이유를 알아차리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서는 황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황제가 이곳에 오는 날은, 황제의 기분이 아주 나쁜 날이었다.

"늘 기분이 언짢을 때만 찾아오는 듯 하여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 사실은 황제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에 황제는 작게 사과하면서 말했다.

"그럼에도 제가 위로 받을 곳은 여기 뿐이라 이리 오게 되는 걸 어찌할 수가 없군요."

털썩.

황제는 스스로의 옷이 더러워지는 건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그렇게 무덤 앞에 주저 앉았다.

이곳에 있는 것은 자신과 함께 싸웠던, 그리고 죽었던 전우들의 무덤으로 그 수는 오십 하고도 하나.

그 무덤 중에서도 가장 안 쪽에 있는 형님의 무덤에 황제는 가져온 술을 전부 부었다.

형제들에겐 괴물에 불가했던 자신에게 진짜 형님이 되어주었던 그의 무덤에, 그가 가장 좋아하던 술을 바쳤다.

황제는 빈 술병을 무덤 앞에 놓아두고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선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들과의 과거를 추억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런. 선객이 있었군요."

그때 황제의 귀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바르."

할바르였다.

그 역시 죽은 전우이자, 자신의 부하들을 보러 온 모양이었다.

"백부장. 그래, 자네는 백부장이지."

황제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 시절. 자신의 백부장이었던 이가, 이젠 다른 의미로 자신의 백부장이 되어 있었다.

황제는 실없는 생각하며 실실 웃고는 그에게 말했다.

"백부장이라고 불러줄까?"

"폐하께서 그렇게 불러도 이젠 예전 같은 의미는 아닐 겁니다."

할바르의 대답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죽은 자가 돌아오지도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죽은 목숨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토록 망가진 마음도 그러할까? 황제는 알 수 없었다.

"야만족들은 화평을 원하더구나."

그들을 이 무덤에 눕게 만든 증오스러운 이름을 중얼거리며, 황제는 눈을 감았다. 아직도 그들의 손에 죽는 전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폐하... 그 정도면 많이 죽였습니다. 죽은 녀석들도 그 정도면..."

그 말에 할바르는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황제도 알았다.

이 녀석들이 그런 복수를 바라지 않을 거란 걸.

게다가... 죽여도 너무 죽였다.

50명하고 한 마리의 목숨에 대한 대가로 10만 명의 목숨은 과하면 과했지 부족하진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만족하겠지. 그 녀석들은 만족할 테지. 허나 짐이 만족을 못 하겠는데. 짐은 그 증오스러운 족속들을 전부 쳐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런데도 화평을 정녕 해야 한단 말이냐."

전우를 죽게 만든, 형님을 죽게 만든.

그들의 씨를 아예 말려버려야 이 감정이 해소될까 싶은데... 이젠 그럴 수조차 없었다.

그들은 굴복했고, 황제는 황제답게 이를 받아들였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황제가 아닌, 그 전장에 있던 말단 병사인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짐이 감정적이라는 것을."

황제는 오늘은 자신이 유독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라면 화평해야지. 해야겠지. 그게 황제가 내릴 판단이겠지."

황제라면, 황제니까, 황제답게... 왜 해야 하지?

이딴 자리가 뭐라고, 이게 대체 무엇이라고, 황제는 고작 이것을 위해서 왜 그리 사람들이 미치는 지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짐의 성격도 많이 버렸지. 짐을 물어뜯는 자는 더욱 심하게 물어뜯어 주는 재미로 버텼어. 미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자리니까 미쳤어. 그래, 짐은 이 자리에 있구나. 새장의 새는 오늘도 새장 속에서 스스로가 하늘에 있다고 믿으며 하루를 살아가는구나."

할바르는 그런 황제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안타까운 비극이었다.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할 자리를, 그 자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원하지 않던 사내가 가졌기에 생긴 비극.

만인이 앉고 싶어서 미치는 자리에, 오히려 앉은 것으로 미쳐버린 가여운 사내가 눈 앞에 있었다.

할바르는 그 비극을 끝낼 방법따윈 알지 못했기에 침묵으로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해. 할바르. 짐은 수백, 수천, 수만 번을 생각했다네. 이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짐은 이제와서 전장에 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황제는 질문을 하였지만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없겠지.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겠지. 새장 안에서 미쳐 버린 새가 새장 밖으로 도망친다고 제대로 하늘을 날 수 없듯이. 짐 역시 그러하겠지."

할바르는 그저 안타깝다는 듯이 황제를 보고 있었고, 황제는 입술을 꽈악 깨물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짐은 황제니까. 황제의 일을 해야겠지."

벌컥!

갑자기 황제는 할바르가 들고 온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그의 얼굴은 붉어졌고, 눈은 풀렸다.

황제는 벌떡 일어나서는 그대로 술에 취한 채 걸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하늘이 조금 아름다워 보였다.

달이 아름다웠다.

"하하... 이래서 술을 마시는 구나. 이제야 알겠어."

벌컥.

비틀거리면서 걸어온 황제는 침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여인 둘을 보며 중얼거렸다.

"취하긴 한 모양이구나. 여자가 둘로 보이니."

"시, 실제로 둘이옵니다. 폐하."

그제야 이 취객이 황제라는 걸 깨달은 건지 앞에 있던 여인이 공손하게 말했다.

황제는 그 말에 그녀를 보았다.

그러고는 상선에게 물었다.

"상선 진짜 둘인가?"

"네, 둘이옵니다."

상선은 덤덤하게 대답했고, 황제는 한참을 여인 둘을 노려보았다.

"...그래, 둘인가 보구나. 그럼 물러가 있거라."

황제는 그제야 여인이 진짜 둘인 걸 깨닫고는 상선에게 물러갈 것을 명했고, 상선은 그 말에 문을 닫고는 물러 갔다.

"어디보자... 진짜 둘이구나."

황제는 여전히 제정신은 아니었으나 차분하게 그녀들을 살펴보았다.

앞에 서 있는 푸른 머리의 여인이 조금 눈매가 날카로웠으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닮아 있었다.

손에 딱 잡힐 거 같은 적당한 크기의 젖가슴도, 군살 하나 없는 말끔한 몸매도, 이리 같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닮아 있는 두 여인이었다.

황제는 그런 두 여인을 안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만사가 귀찮아졌다.

"폐하십니까?"

"누가 리사고, 누가 니사냐?"

황제의 질문에 앞에 서 있던 여인이 공손하게 말했다.

"제가 리사입니다."

"둘은 쌍둥이 자매라지. 친한가?"

황제의 뜬금없는 질문에 리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지금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갑자기 들어온 황제의 외모에도 아직 적응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황제가 만취해서는 들어왔으며, 심지어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으니까.

"치, 친하옵니다."

그래도 일단 질문에는 답해야 했기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럽구나."

진심으로 부러운 듯, 둘을 보던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쿨..."

'잔다고?'

그 모습을 황당하게 바라보던 리사는 곧 정신을 차리고는 황제를 깨우기 위해 움직였다.

"폐, 폐하! 그대로 주무시면 아니되시는... 폐하!"

리사가 당황한 얼굴로 황제를 깨우려고 했으나 황제는 그대로 잠들어선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엔 니사 역시 당황했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어, 어쩌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하고 있던 그녀는 곧 황제의 물건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잠들어 있던 황제의 물건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꼿꼿하게 서 있었으니까.

"...방법이 없는 건 아닐지도."

그 양물을 가만히 내려다 보면서 리사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황제가 잠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합궁에 필요한 물건은 빳빳하게 서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황제의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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