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천황제를 열겠다
* * *
"그래서! 그래서 말이지. 이봐! 듣고 있어?"
황제는 식사 시간에도 저 입을 쉴 줄 모르는 오르테가를 보면서 이마를 감싸 쥐었다.
나르타가 옆에서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지만 황제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으니까.
"듣고 있다."
그렇다고 반응하지 않으면 더욱 귀찮게 굴어대니 황제는 귀찮아도 반응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황궁에 왔는데 뭔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맞다! 용왕제 같은 거."
"..."
황제는 처음 들어 보는 축제 이름에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용왕제는 뭐지?
황제는 솔직히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제가 감히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나르타가 그 말에 반응하자 황제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인 같이 재미없는 놈들이 하는 축제이니 별로 재미없을...
"용왕제란 용왕을 뽑는 축제를 말한다고 해요. 용인은 가장 강한 자가 왕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뭔가 엄청나게 재미있을 거 같은 내용이 튀어나왔다.
그렇기에 황제는 어느새 나르타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계속해봐라."
"네? 아예... 그래서 용왕제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워서 가장 강한 용을 가리는 용왕 선별제예요. 그들에게 축제란 바로 피를 흘리는 대규모 행사를 의미한답니다."
전혀 몰랐다.
황제는 용왕이 정해지면 그저 인가만 내리면 되었으니까.
그런 재미있는 방식으로 왕을 뽑다니! 용인은 생각보다 훨씬 호감인 종족인 거 같았다.
황제는 약간 용왕에 대한 호감도가 오르는 걸 느끼면서 오르테가에게 말했다.
"재미있겠군."
그런 의미의 축제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그럼 하나 열지. 그래, 용인의 방식으로."
축제란 원래 무언가를 축하하는 대규모 행사가 맞겠지만... 이번에 벌일 축제는 용인식 축제다.
그에 걸맞는 이름을 생각하던 황제는 곧 결정을 내렸다.
"축제 이름은... 천황제(???)가 좋겠어."
"오! 뭐야? 뭔데?"
오르테가가 흥미로 눈을 반짝이며 질문하자 황제는 그 질문에 웃으면서 말했다.
천황제는 그냥 천황제다.
하늘이 정한 황제를 뽑는 축제.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었다.
"곧 알게 될 거다."
황제는 정말이지 벌써 축제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술렁. 술렁.
거대한 제국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전국에 붙은 황제의 옥새가 찍힌 친서는 황실에서 천황제를 개최할 것을 알리고 있었다.
"어디 보자... 천왕제? 하늘이 정한 황제를 뽑는 축제라. 호오 거창하기도 하지. 어디 보자... 황제의 일격을 버티는 자에겐 황제의 자리를..."
멈칫.
글을 읽을 줄 알던 남자는 친서의 내용을 읽어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천황제.
하늘이 정한 황제를 뽑는 축제라더니 그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황제의 공격을 단 한 번이라도 막아 내면 그 즉시 황제의 자리를 넘겨 주겠다는 엄청난 내용이 담겨 있었으니까!
'한 번만 버티면 된다고?'
이번 황제의 악명은 유명하긴 했다.
무슨 전장의 괴물이라느니, 만인지적이라느니, 혹은 저기 변방의 오랑캐들은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던가...
심지어는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
한 번의 공격을 막아 내면 그 즉시 황제가 된다고?
그야말로 파격이요, 아무리 소문의 황제라고 해도 한 번 정도는 우리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목숨은 책임지지 않는다. 죽을 각오가 있는 자만 참석하도록. 거 굉장히 살벌하구만."
그러나 그 밑에 황제의 친필로 적혀 있는 경고 문구가 남자는 영 마음에 걸렸다.
'에잉, 내가 무슨 황제야. 구경이나 해야겠다.'
그렇기에 남자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는 황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회보다 자기 목숨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거 진짜야?"
"오우! 남자가 목숨을 걸어볼 만 하지. 흐흐, 황제라면 여자도 마음껏 안을 수 있지 않나? 손도 못 잡아볼 미인과 합궁도..."
저잣거리가 어느새 천황제의 이야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걸 보면서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목숨 소중한 줄 모르는 구만."
"그러게... 저거 그냥 사람 죽이고 싶어서 하는 건데 말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 축제는 안 나가는 게 목숨을 부지하는 겁니다."
그때 남자의 뒤에서 거구의 청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과 재수 없어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청년은 뜻밖에 털털한 성격인지 옷이 더려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털썩 앉아 있었다.
"에휴...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인지. 덕분에 돌아다니느라 참으로 힘듭니다. 아저씨도 조심하십쇼. 나쁜 상관을 만나면 이리 구릅니다."
"허허! 그렇긴 하지. 아주 고약한 상관을 두신 모양이구려. 헌데... 감히 제가 말을 놔도 되는 신분이십니까?"
처음엔 무심결에 편하게 대답한 남자는 곧 청년의 옷을 보고는 위축되었다.
제법 수수해 보이는 옷이긴 했지만, 그 원단을 보면 절대 저렴한 옷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남자의 말투가 조심스러워졌으나 청년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편히 말씀하십쇼. 신분의 귀천이 있다고 하나 누가 봐도 연장자인 사람에게 굳이 존대 들으면서 위세 부리고 싶진 않습니다."
"허허, 그렇다면야... 그보다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남자는 그 말에 다시 말을 편하게 하고는 가장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서 물었다.
황제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이 천황제를 벌였다니?
쉬이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크게 보면 결국 그거긴 합니다만... 엄밀하게 따지면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정확히는 피를 보고 싶어서니까 말입니다. 그게 자기 피든, 남의 피든."
피를 보고 싶어서 이런 축제를 벌인다고? 어느 쪽이든 정상적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허나 일격만 막아 내면 바로 황제가 바뀌는 게 아니오. 그런 위험 부담을 고작 그런 이유로?"
일격이다! 단 일격만 막히면 황제가 아니게 되는 데 고작 피를 보고 싶다고 그런 조건을 걸면서 축제를 연다고? 남자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폐하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막아 내는 자가 있으면 기뻐할 테지만... 그럴 자가 있을진 의문이군요."
그러나 청년은 단호했다.
황제는 애초에 저 조건을 위험 부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막히면 오히려 자기 일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기뻐서 날뛸 테지.
이건 황제가 자신의 무료함을 해결하기 위해 벌인 축제였다.
그것도 피의 축제.
멋도 모르고 조건만 보고 달려든 야망 넘치는 자들은 그 야망의 목숨을 잃고 피를 흘릴 거다.
그리고 황제는 그 피를 뒤집어쓰면서 미소 짓겠지.
정말... 내키지 않는 축제다.
청년은 그리 생각하면서 남자에게 진심으로 충고했다.
"친한 사람이 이 축제에 나간다고 하면 기필코 말리십쇼. 그 친한 사람이 회장에서 죽어 나가는걸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진심이 담긴 청년의 충고에 남자가 오한을 느낄 때였다.
"대장님. 전국에 친서를 붙이는 작업이 모두 끝났답니다."
'저, 저건 금위대?'
남자는 갑자기 나타난 병사의 복장을 보고는 그야말로 식겁하고 말았다.
저 금색 비늘 갑옷은... 금위대의 상징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그 금위대가 대장이라 부르는 이 청년은...
'금위대장!'
남자는 모골이 송연했다.
금위대장이 어떤 존재인가!
군부의 총책임자인 대장군보다 사실상 군부의 실세에 가까운 인물로 현 황제의 사촌 형이기도 한 자였다. 그 막강한 신분, 그리고 직위는 어지간한 명문가의 귀족조차도 고개를 숙이게 만들 정도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상상 이상의 거물과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보다 저 정도의 남자가 그리 말한다는 것은...'
남자는 이번 축제가 분명 피의 축제로 변모할 거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남자는 걸음을 서둘렀다.
친한 친구들에게 혹시라도 저 축제에 참가할 생각이 있다면 절대 하지 말라고 만류하기 위해서!
'사람 목숨 여럿 구했네.'
진은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황궁으로 복귀했다.
황제의 친서를 전국으로 붙이는데 걸린 시각은 고작 12시간.
금위대가 동분서주한 덕분도 있지만...
"역시 겔만족의 마법. 대단히 빠른 속도입니다."
겔만족의 마법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금위대의 병사들을 방방곡곡으로 전송시켜준 마법사들의 공적이 아주 컸기에 진은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허허, 폐하의 명이니 저희는 따를 뿐이지요. 허나... 이건 조금 과한 여흥이 아닌지..."
축제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황궁에서 일하는 겔만족 마법사들의 총책임자인 크라이스 드 바럼은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얼마나 과하면 저희 겔만족의 젊은이들도 참가한다고 후끈거리더군요. 마법 사용도 가능이라..."
크라이스는 곤란한 표정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입장에선 이번 축제로 혹여 옥체가 상하는 일이라도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이었고.
"폐하께서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마법에는 반사 마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마법 중에서는 상대의 공격을 반사하는 마법도 있다.
그렇기에 크라이스는 혹시 황제가 이런 어이없는 축제로 바뀌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꽤 두려운 일이었다.
겔만족에서 소외받던 그가 이렇게 큰 권력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황제가 친정할 때 합류한 유일한 마법사였기 때문이었으니까.
크라이스는 이번 황제와 사실 한 배를 탄 동지나 다름이 없었고, 그렇기에 그가 황제를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폐하께선 그때보다도 더욱 강해지셨으니."
"...그 말은."
크라이스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그때보다도 더 강해지셨단 말인가? 그건 전혀 생각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야만족을 토벌하실 때보다 말입니까?"
홀로 적진으로 뛰어 들어가서 상대를 베어내는 황제의 모습은 가히 살아 있는 재앙이요, 인외의 괴물이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더욱 강해졌다? 크라이스는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마법사와 주술사가 전장의 재앙이라고 흔히 말하는 데 크라이스는 황제의 무위에 비하면 그들은 훨씬 인간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을 정도였으니까.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진의 확언에 크라이스는 다른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너무 죽이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바로 도전자들의 목숨이었다.
이런 축제에서 사람들이 대량으로 죽어나가면 그야말로 큰 인적 손실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좀 죽어 나가다 보면 지원자가 줄어들 겁니다."
그러나 진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황제의 실력을 보면 그 누구도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금방 지원자가 줄어들고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할 거다. 게다가 거리에서 몇몇한테 언질도 주었으니 적어도 그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축제에 참가하는 걸 주저하겠지.
자신의 충고는 황제의 무위와 더해져 삽시간에 퍼지게 될 거고, 포기자가 속출하게 될 거다.
진이 굳이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고 돌아다닌 건 그런 의도가 컸다.
"가끔은 이렇게 달래주는 편이 좋겠죠. 폐하께서 원치 않은 합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니."
"허허! 그것도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이걸로 반란 분자도 정리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황위가 보상으로 걸린 축제에 나온다?
크라이스의 기준으로 볼 땐 그저 반란 분자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걸 보상으로 건 것은 황제지만 참가하기로 결심한 건 참가자들이니 말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크라이스는 당연히 이름 모를 참가자보단 황제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폐하께서 그 정도로까지 생각하신 건 아닌 듯하지만..."
재상은 대충 그런 의도도 있었던 모양이었던 거 같다.
그가 가장 먼저 친서를 붙이라고 지시한 곳들은 전부 현재 중점으로 조사받고 있는 가문들의 본가가 있는 곳이었으니.
"그 축제를 구경할 수 있는 좌석을 매일 판매한다고 하더군요. 그걸로 인한 금전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진이 재상이 이야기한 황실에서의 관람표 판매 이야기를 거론하자 크라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로부터 피가 난무하는 투기는 인기가 많은 볼거리였으니... 게다가 황제가 직접 민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닙니까? 분명 판매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 뒤에도 크라이스는 '당장 저도 보고 싶군요. 폐하의 일검을 보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영광이니' 같은 말을 지껄이면서 어느새 일주일 후 있을 축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보다 천황제가 끝나기 전까진 합궁을 안 하겠다고? 이게 본심 아니야?'
진은 솔직히 황제의 본심이 이쪽이 좀 더 가깝다는 생각 마저 들었지만 굳이 거론하진 않았다.
정작 합궁이 미뤄진 당사자인 오르테가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까.
재상도 그 부분은 뭐라 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당사자가 가만히 있으니 침묵하는 모양새였다.
'참으로 영악해지셨군.'
뭐, 어찌 되었든 황제에겐 이득만 있는 축제라고 볼 수 있다.
원하는 대로 광증을 달랠 피를 볼 수 있으면서 합궁도 미룰 수 있으니.
진은 그리 생각하면서 황제에게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 진의 발걸음엔 축제에 대한 기대감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었다.
이 축제에 부정적인 진 본인도 정작 황제의 일검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숨기지는 못하고 있었으니...
그도 어쩔 수 없는 무인이었고, 그런 점에서 이 축제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축제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