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실패한 합궁, 황제의 자비
* * *
"하앙!"
침상에서 여자의 교성이 흘러나왔다. 젊은 청년은 이 아름다운 궁녀를 품에 안으며 열락을 즐기고 있었다.
백옥같은 피부를 가진 여인의 몸이 활처럼 휘면서 남자의 양물을 받아내고 있었고, 청년은 그런 여자의 몸을 희롱하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여인에게 거칠게 박아대고 있었다.
"참으로 듣기 좋은 소리구나. 더, 더 내보거라."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가 된 기분으로 청년, 아니 미친왕은 여인의 몸을 희롱하며 말했다.
"저, 전하! 하읏!"
궁녀가 교성을 내지르면서 미친왕에게 안겨왔고, 미친왕은 그런 궁녀를 안아주며 입을 맞춰주고는, 그대로 다시 움직여 이 궁녀에게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인 탐스러운 유방을 입에 물었다.
발기한 선홍색 유두를 가볍게 혀로 굴리자, 이 싱그럽고 젊은 궁녀의 달콤한 살 내음이 미친왕의 코를 간질였다.
"참으로 곱구나. 고와."
미친왕은 궁녀의 고운 살결을 맛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들을 곁에 두고도 형님은 전혀 안지를 않으니 자신이 실컷 즐겨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것들도 이제 전부 자기 것이 될 것이니까. 미리 즐겨도 문제는 없겠지.
미친왕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궁녀의 입술을 게걸스럽게 탐했다.
'짐은 곧 황제가 될 것이다.'
미친왕은 스스로 황제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형님이 죽으면, 당연히 남아 있는 황족 중에서 가장 정통성이 있는 자신이 황제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자! 전부 받아내거라. 내가 너한테 승은을 내려줄 터이니!"
"저, 전하! 전하! 하윽!"
그렇기에 미천왕은 열심히 허리를 놀리며 궁녀에게 자기 씨를 뿌렸다.
저 궁녀에겐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곧 황제가 될 남자의 씨를 품게 되었으니. 승은을 입은 셈이니까.
벌컥!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황제의 무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
미친왕은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형님의 무사가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지? 그가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전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실패한 건가?'
그 말에 미친왕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미친왕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형이 살아 있다는 것은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했고, 형이 자신을 부른다는 것은...
'쯧! 내 이름을 말하기라도 한 건가? 피곤하게 하는군.'
아마도 확인을 위해서겠지.
미친왕은 귀찮다는 듯이 속으로 혀를 차고는 순순히 무사들을 따라갈 채비를 했다.
"저, 전하..."
그때 궁녀가 자기 벌거벗은 몸을 이불로 급하게 가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궁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으니까.
"저 궁녀는..."
그걸 본 무사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궁녀에게 옷을 던져 주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어이! 너도 옷을 입고 따라와라."
"...네, 네!"
무사의 명령에 궁녀는 급하게 옷을 입고는 미친왕의 뒤를 따라 걸었다.
미친왕은 무사들에게 둘러싸여서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증거는 남기지 않았다. 내가 책 잡힐 일은 없어.'
어쩔 수 없지만 푸른 달 가문은 깔끔하게 포기하면 된다.
어차피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기회는 올 테니...
미친왕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황제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롭던 미친왕은 자신이 도착한 곳의 분위기를 보고는 몸을 움찔했다.
모든 대신들이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광장엔 달막족의 수장들이 좌우에 서 있었고, 그 중앙엔 푸른 달 가문의 식솔들이 굴비처럼 묶인 채 무릎이 꿇려 있었다.
그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는 황제가 의자에 앉은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태후는 그런 황제의 바로 옆에 앉아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재상인 김명한이 서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황제의 바로 뒤에는 금위대장인 모용진이 서 있었다.
"미친왕이 왔군. 어디에서 서 있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나?"
바로 그때, 황제가 덤덤하게 미친왕을 보면서 말했고, 미친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재상의 옆에 서려고 했다.
"거기가 아니다."
"...네?"
그러나 그 행동은 황제에게 제지당했고, 미친왕은 그 말에 당황했다.
자신이 설 곳이 여기가 아니면... 설마 저기 달막족의 수장들과 같은 자리에 서라는 건가? 아무리 자신이 실권이 없는 친왕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한 처사...
"미친왕."
움찔!
자기 대우에 대해 따지려던 미친왕은 황제가 자신을 부르자 몸을 떨었다.
황제의 목소리는 덤덤했으나 미친왕은 그것이 더욱 소름이 끼쳤다.
"그대가 있을 곳은 저기가 아닌가?"
"...폐, 폐하. 제가 어찌 저기 범죄자들과 같은 곳에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황제가 가리킨 곳은 잔뜩 얻어맞기라도 한 듯이 몸이 성한 곳이 없어 보이는 푸른 달 가문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미친왕은 억울한 얼굴로 따졌으나 황제는 덤덤하게 그런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짐이 직접 친왕의 다리를 잘라 저기에 앉혀주면 되겠나?"
"...폐하. 모함입니다."
황제가 가벼운 어조로 말하자 미친왕은 입으로는 모함이라 말하면서도 몸은 얌전히 그들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궁녀는 무엇이냐."
그러나 황제는 이미 미친왕의 이야기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느새 황제의 관심은 미친왕과 함께 온 궁녀에게 향하고 있었으니까.
무사의 옆에 있는 궁녀를 보며 황제가 질문하자 무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미친왕의 승은을 입은 궁녀입니다."
무사의 대답에 황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더니 곧 부드러워졌다.
"그렇군. 딱 좋은 시기에 생겼어. 친왕비는 이리 와서 여기 앉아 있게."
"지, 지엄한 황명을 받듭니다."
궁녀는 덜덜 떨면서도 황제의 앞에 새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짐이 그대들을 부른 이유를 아는가?"
황제는 궁녀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달막족의 수장들에게 말을 걸었다.
"송구스러운 일이나 저희는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모르옵니다."
그들 중에서 푸른 달 다음으로 귄력을 지닌 붉은 달의 수장이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그걸 본 황제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알았더라면 그대들도 저기에 같이 앉아 있었을 테니."
오싹!
수장들은 공포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황제는 분명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거늘... 수장들은 모두가 그 말에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 여자를 데려와라."
무사들은 황제의 말에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잠시 후 피로 칠갑을 한 알몸의 여인을 데려와서 마치 쓰레기처럼 바닥에 던졌다.
"성과는?"
황제는 덤덤하게 물었고, 무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모든 범행을 시인했습니다."
"그렇겠지. 그대들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푸른 달에서 보낸 이 여인이 역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무심한 어조로 그들에게 말했다.
"!"
그 말에 달막족의 수장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그제야 그들은 조금 전 황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자신들이 이곳에 불려온 이유를 알았다면 그대로 달막족이 역사에서 사라졌을 거란 것을 말이다.
"아무래도 푸른 달의 독단이었던 모양이군. 푸른 달 구름. 할 말이 있는 가?"
"하, 하늘아..."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은 중년의 남자는 황제의 질문에도 쓰레기처럼 바닥을 뒹굴고 있는 여인을 보며 울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할 마음이 없나."
저벅. 저벅.
황제는 의자에서 일어나 구름이 보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 갔다.
꽤 모진 고문을 당했는지 손톱은 전부 뽑혀 있었고, 그 티 없던 육체에는 채찍 자국이 가득했다.
푸른 달 하늘이라고 했던가? 하늘을 노린 죄로 하늘에게 심판을 받았으니 이름 하나는 제대로 지은 셈이었다.
터억.
그런 여자의 머리를 잡고 들어 올린 황제는 그런 여자를 질질 끌고서는 구름에게 다가갔다.
"이 아이가 왜 이런 꼴이 되어야 했을까? 자네의 식솔들은 왜 이곳에 끌려와서 무릎을 꿇고 있을까?"
"아, 안 돼... 하지 마!"
구름은 황제가 무슨 짓을 할지 알아차렸는지 발악하듯 외쳤다.
그러나 황제는 그 비명이 듣기 좋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대로 여자의 머리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우득!
그러자 여자의 머리가 그대로 터졌다.
머리가 터지면서 뿌려진 피와 뇌수는 구름을 덮고, 그 옆에 앉아 있던 미친왕에게 까지 튀었다.
황제도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황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언제 웃었냐는 듯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가 짐을 적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짐의 자비가 그대에겐 너무나도 버거웠나보군."
"이 악마 같은 놈! 지옥으로 떨어질! 네놈은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이 개자식!"
구름이 악을 쓰듯 저주의 말을 내뱉자 재상은 분노로 얼룩진 표정으로 부들거렸고, 미친왕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으며 수장들은 바로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은 저자와 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황태후는 이 사태에 눈을 질끈 감고는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고 있었다.
"짐이 지옥으로 떨어질 거라고 했나."
황제는 그런 저주의 말에도 덤덤하게 말하고는 구름을 내려다보았다.
그 차가운 눈길에 악을 쓰던 구름도 위축되고 말았다.
"이미 짐이 있는 이곳이 지옥이고."
황제는 그런 구름의 머리를 가볍게 밟고는 점점 그 발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콰직!
"그대는 그 지옥에 있는 죄인인 것을 왜 모르는 건지 짐은 도저히 모르겠구나."
황제는 자신에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대로 발에 밟혀 머리가 터진 구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히이익!"
뒤에 묶여 있던 푸른 달의 식솔들은 그 참혹한 광경에 몸을 떨었고, 하늘의 피에 이어 구름의 피까지 뒤집어쓰게 된 미친왕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미친왕."
그때 떨고 있는 미친왕에게 황제가 말을 걸어왔다.
"네, 폐, 폐하..."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는 미친왕을 보면서 황제는 웃는 얼굴로 물었다.
"짐이 그대에게 왜 미친왕이란 칭호를 주었는지 아는가?"
"그, 그것은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미친왕은 떨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말하였다.
세간에는 황제가 동생의 외모를 칭찬하여 아름다울 미(美)자를 붙여서 미친왕으로 봉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미친왕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황제는 전혀 그런 의도로 그런 이름을 붙인 게 아니었다.
"아우야. 짐이 너에게 미친왕이라 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네가 미친왕인 이유다."
황제는 그런 아우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면서 말했다.
그 말대로, 그 이유를 모르는 것 자체가 바로 그가 미친왕인 이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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