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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4화 (4/235)

〈 4화 〉 황제가 되고 싶었던 것

* * *

꼬끼오오오옥!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에 황제는 조용히 눈을 떴다.

그가 일어나기 무섭게 다가온 궁녀들에게 시중을 받아 간편한 옷으로 갈아 입은 황제는 욕탕으로 가서 바로 목욕재계를 하고는 용포로 갈아 입고 걸음을 옮겼다.

아침에는 늘 조정에서 정무회의가 있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황상께선 늘 이른 시간에 기침하시니 참으로 보기가 좋습니다."

그렇게 뒤에 상선과 궁녀들을 이끌며 걷던 황제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윤기 있는 흑발을 비녀로 정리하고, 나이를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지는 미인.

그러면서도 묘하게 황제를 닮은 것이 둘을 보고 있자면 남매 사이로도 보일 정도였다.

"벌써 기침하셨습니까."

짧게 운을 뗀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황태후께 미리 문안 인사를 하러 가지 못해서 참으로 유감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공사가 다망하여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는군요."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반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라. 황태후를 대하는 황제의 태도는 공손했다.

황태후는 그런 황제의 대답에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손사래를 쳤다.

"문안 인사라니요. 황상이 바쁜 건 다 아는 사실이니 무리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보다 황상은 언제나 건강해 보여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한 황태후는 황제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전부 살펴보고 나서야 황태후는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황제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야 그녀는 이쪽으로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 했다.

"합궁은 잘 진행하였는지요. 이 어미는 늘 황상이 우려가 된답니다."

'그걸 확인하러 오신 건가.'

황제는 황태후의 말을 듣고는 왜 그녀가 이런 새벽에, 굳이 이곳까지 왔는지를 알아차리고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다행히 합궁은 무사히 잘 진행했으니까.

"잘 진행하였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황상이 영 여인에게 관심이 없는 듯 하여 이 어미는 참으로 불안하였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황태후를 보며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당장 자신은 큰 고비를 넘겼지만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으니까.

"미친왕이 아직도 혼자지 않습니까? 슬슬 혼처를 알아봐야 할 텐데요."

황제의 친동생인 미친왕이 아직 혼처를 구하지 못했다.

그를 황제가 친왕으로 봉한 이유를 생각하면 아직까지 혼처가 없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어디로 보내야 황상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 중입니다. 혹여 신경 쓰는 곳이라도 있는지요?"

그런 황제의 말에 황태후도 공감하는 바가 있는지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친왕.

즉 황제가 공인한 믿을 수 있는 혈족이자.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한 황실의 자산 중 한 명이다.

보통 친왕을 보내는 곳은 황제의 위치를 공고히 할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가문으로 보내는 게 정석이다.

황제가 친왕으로 봉한 남자는 한 명으로, 바로 황태후의 직계 자손 중 한 명이자 황제의 친동생인 진민이었다.

황제가 가장 먼저 그를 친왕으로 봉한 것은 그만큼 자기 친동생을 신뢰한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황제는 미친왕을 매우 아꼈다.

원래라면... 그가 황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을 정도로.

'지난 일이지.'

황제는 황태후가 돌아가기 무섭게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았다.

무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늘 전방에서 서서 싸우고 싶었고, 그렇기에 야만족 무리들을 막는 최전선의 장군이 되고 싶었다.

허나... 그는 수 많은 황제의 자손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능력과 정통성을 지닌 후계자였고, 커다란 결격 사유도 없었으며, 그 미색마저도 형제들 중에서 특출났다.

당연히 권신들의 많은 지지를 받으며 원치 않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딱 한 번.

이 자리가 자기 것이 아니게 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황제는 그때를 떠올리면서 황태후가 사라지기 무섭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병상에 누워있던 선제께서 처음으로 양위 선언을 했을 때였다.

­­

황제에게 불려가 양위 선언을 들은 진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보통 양위 선언을 들으면 당장 거두어달라고 호들갑을 떠는 다른 자식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게 황제는 재미있다고 느끼면서도 진위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리 한숨을 쉬느냐?"

"폐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소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황제의 질문에 진위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황제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진위로선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전 무인입니다. 누군가를 베고, 죽이며, 피를 흘리는 것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황위에 오른다면... 분명 많은 피가 흐르겠지요."

모두가 원하고 갈구하는 자리를 가졌음에도 진위는 내키지가 않았다.

그는 늘 최전선에 서고 싶었고,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피를 보고 싶었다.

광기.

혹자는 그런 그를 미쳤다고 말하겠지.

진위는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에겐 피에 미친 수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황제의 자리는 고사하고자 했다.

모두가 원하는 지존의 자리를 그는 원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최전방에서 피를 흘리는 장군의 자리였지, 만인지상의 자리가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럼 딱 한 번, 태자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마."

창백해진 얼굴로 병상에 누운 채, 황제는 황위를 거부하는 진위에게 말했다.

황제는 진위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를 설득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를 데려오거라."

"네."

재상은 황제의 말에 잠시 자리를 비웠고, 곧 예쁘장한 소년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혀, 형님? 그리고 폐하. 대체 이건..."

소년, 아니 진민은 이 상황에 당황스러워했고, 황제는 진민이 황제인 자신보다 태자를 먼저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그걸 내색하지 않으면서 덤덤하게 물었다.

"황후의 아들은 너희 둘이다. 그러니 정통성을 생각해서라도 너희 둘 중 한 명이 황위에 오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니 진민아. 너는 황위를 이을 생각이 있느냐?"

황제의 질문에 진민은 깜짝 놀라면서 진위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더니 바로 머리를 땅에 박으면서 말했다.

"어찌 형님이 계신 데 제가 황위에 오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부디 그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 말에 황제는 웃었다.

참으로 재미있지 않은가!

보통은 황제가 양위를 선언하면 그 선언을 한 자신을 두려워해야 정상이거늘... 어느 아이를 데려오든 그 아이들이 눈치를 보는 건 황제인 자신이 아니라... 태자였다.

황제는 이것으로 태자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보았느냐? 벌써 다른 녀석들은 황제가 아닌 태자를 더 두려워하는구나. 이것 이상의 대답이 있느냐? 네가 원하든, 원치 않던, 넌 황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황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진위를 보며 말했다.

원래라면 불쾌해야 할 일이건만... 이미 한계를 맞은 몸이다 보니 오히려 자기 자식이 이토록 뛰어나다는 사실에 황제는 크게 흡족했다.

"그렇게 야망을 과시하던 녀석도 감히 너와 바로 대적할 생각은 않는구나. 이것이 바로 네가 황위를 이어야할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지나고 나면 다시 야망을 드러낼 아이들은 있겠지. 세력이 좀 더 커지면, 태자가 바로 눈앞에 존재하지 않으면, 꿈틀거리는 야욕을 내보일 아이들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런 쭉정이들은 감히 내가 낳은 걸작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황제는 덜덜 떨고 있는 진민을 내려다보며 태자에게 말했다.

"네가 황위에 오르면 많은 피가 흐른다? 더 많은 피를 흘려도 좋다. 내 아이들을 전부 죽여도 좋겠지. 한 민족을 멸해도 상관이 없다. 네가 했다면, 그것은 과한 일이 아니라.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인 거다."

그런 아이다.

누구보다도 황제에 적합한 아이다.

내가 낳은... 가장 완벽한 걸작이었다.

그렇기에 이 아이가 아니면 안 된다.

황제는 확신했다.

내 장자야말로 황제에 가장 적합한 자이며... 누구보다도 뛰어난 정통성을 지닌 이 아이가 가장 뛰어난 것은 제국의 흥복이라고.

"..."

진위는 그 말에 침묵했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진위는 진민의 태도에 놀라고 있었다.

진민은 병상에 누운 황제보다도... 자신을 더욱 두려워하고 있었으니까.

진위는 그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황제인 아버지보다 형제들에게 두려운 게 자신이라는 것이.

그렇기에 진위는 충격에 젖은 채 진민을 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당당하게 황제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아이였다.

그렇기에 진위는 내심 진민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고, 황위에 올라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지금 산산히 깨졌다.

진민은 두려움에 젖은 채 자신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고, 자신은 그런 진민을 조용히 내려다 보고 있었으니까.

진위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자신은 결국 황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봐도, 피할 수가 없었다.

이 무겁고도 거추장스러운 자리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의 피가... 이 자리에 앉으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위는 황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무거운 책임감이... 진위를 강하게 짓눌렀다.

'참으로 재미있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황제는 웃었다.

황제는 이 상황 자체가 재미있었다.

누구보다도 황제의 자리를 원하지 않는 아들이, 누구보다도 그 자리에 어울린다는 게 우스웠다.

"태자. 네가 바로 다음 황제다."

그렇기에 황제는 진위를 보면서 당당하게 선언했다.

이 아이야말로 내 후계자.

내 자식 중에서 이 거대한 제국을 이끌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유일한 존재.

그야말로 낭중지추(?中之?).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이 아이의 황제의 자질은 이미 자신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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