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52화 (152/200)

18장 인어 : 썩소한 망나니

테오도르와 훈련장에서 대련한 이후.

우리 일행의 무도대회 참가는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다만 4명의 선수가 참가해야 하기에 오르네오 현자님이 빠졌다.

오르네오가 제외된 이유는 가위바위보를 져서다. 다들 주먹을 냈는데 혼자 가위를 낸 영감님은 자기 손으로 가위 낸 손을 때리며 아쉬워했다.

어쨌든 최종 결정된 선수는 나, 시온, 켐벨, 테오도르였다.

테오도르는 자신이 최약체임을 인식한 이후로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그에게 경험치를 먹여주기 위해서 대련 상대가 되어주었다.

“옆구리가 비었는데?”

“뒤를 향해 휘둘러야지!”

“또 발밑이 비네. 붕어대가리냐?”

“붕어대가리라 하지 말라고 했다!”

“아, 맞다. 그럼 붕어빵 대가리.”

“둘 다 하지마!”

물론 가르침이 친절한 편은 아니었다.

녀석은 어인족이 인간보다 강하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주 위험한 생각이지.’

아르니아 대륙에서도 테오도르처럼 한정된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 종종 있었다.

평민 출신이라 약하다.

외국인이라 약하다.

여자나 아이라서 약하다.

저런 식의 편협된 사고관을 가진 채로 싸움에 임하는 행동은 일찍 죽는 지름길이다.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안목이나 특수한 스킬이 있지 않고서야 항상 긴장하는 게 옳았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잖는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테오도르가 귄위의식에 사로잡힌 밥맛은 아니었다. 정말로 인간이 약하다고 여겼을 뿐, 일단 우리에게 연속으로 깨지자 자신이 틀렸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계속해서 가르침을 청했고 단 한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패배의 맛은 무척이나 썼지만 테오도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발전했다. 원래도 부족 내에서 천재로 불렸던 만큼 하루하루 강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무도대회 이틀 전.

테오도르는 멍투성이가 되어 훈련장에 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다시 대련을 청한다.”

“됐어. 지금은 휴식을 취해야 해.”

“아니다. 더 할 수 있다.”

“다리 몽둥이 부러트리기 전에 누워있어.”

“······”

테오도르와 여러 번 검을 맞대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그는 어인족답게 힘과 민첩은 당연하거니와 반사신경과 탄력까지 우수했다.

심지어 창을 휘두르는 기술도 상당했고 높은 전투센스로 인해 임기응변에도 능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단점도 확실했다.

이건 비단 테오도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어인족은 본인의 신체를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마나 수련을 빈약하게 하거나 대충했다.

그의 창에 휘감기는 푸른마나가 멋대로 날뛰길래 마나수련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기상천외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마나? 그게 뭐지?”

“네가 창에 불어넣는 기운 말이다.”

“바다의 축복을 말하는 거군.”

“바다의 축복?”

“그래. 재능을 가진 자에게는 바다가 축복을 내려준다. 자연스럽게 강해지는 길이지.”

어떠한 체계적인 시스템조차 없다.

외공을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내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믿고 있다.

한마디로 영어 공부하다 보면 수학 점수도 같이 오른다는 소리다.

‘기가 막히는군.’

나머지는 어인족 특유의 강인한 육체로 커버한다.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인간, 요즘 너희에게 계속 지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그러다면 다행이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무도대회쯤은 가볍게 우승할 거라고 여겼다. 몇 명이 나오든 모두 쳐부술 자신이 있었지.”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말인가?”

“그렇다.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어. 주변에서 천재라고 떠받들어 줘서 취했던 거야. 내심 포세이돈 시티에서도 내가 통할 거라고 자신했다.”

테오도르는 기가 죽었는지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나는 더 강해지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안 된다는 게 느껴진다. 나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줬으면 좋겠다. 부탁이다!!”

전사가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드높았던 그의 자존심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상황 자체가 상당히 의외였다.

“안 그래도 맞으면서 배우고 있잖아?”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한지는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정체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과연 천재는 천재라 이건가.

부족함에 대한 자각은 있다.

나는 그가 무엇이 부족한지 안다.

문제는 그걸 짚어주느냐인데···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오늘도 날쌘바람 부족은 평화로웠다.

어른들은 낚시와 채집을 하러 나가서 마을은 한산했다.

아이들은 얼굴에 진흙을 가득 묻히고 해맑게 뛰어다니고 있다.

외지인에게 늘 친절한 시골 마을.

만약 무도대회에서 패배하거나, 승리하더라도 앞으로 테오도르가 무너지면 사라질 풍경이었다.

‘조금 도와줄까.’

아공간을 뒤졌다.

뭐 쓸만한 게 없을까 싶었는데.

마침 눈에 띄는 물건이 있다.

손을 내저어 꺼냈다.

[아공간 호리병]

[생명수를 꺼냈습니다]

동부 대산림에서 얻은 생명수였다.

엘프의 숲 분쟁이 해결해주고 나서 사샤에게 상당량의 샘물을 선물 받았다.

당장 아기용 코코가 샘물을 먹고 성장했고, 엘프족 전사도 일시적으로 경지를 올렸을 만큼 생명수는 강력한 기운을 품고 있다.

다만 엘프 전사들은 축복이라는 명목하에 과도한 양을 섭취하여 이성이 마비되고 몸이 망가졌으나, 사실 권장량만 지키면 이만한 영약이 없었다.

생명수를 받자마자 주변에 하나씩 선물했고 이로 인해 동료들은 나름 큰 진전을 이루었다.

선물을 전부 뿌리고 여분이 남아서 아공간에 저장해 두었는데, 마침 테오도르에게 써주면 딱 좋을 듯 싶었다.

테오도르는 유리병에 찰랑거리는 액체가 특별한 물질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시선을 고정했다.

“저게 무엇이지?”

“네가 마셔야 할 물이다.”

“이걸 내가 마신다고?”

“그래.”

고작 테오도르 녀석에게 생명수를 쓰기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사샤에게 얼마든지 추가 분량을 얻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예전에 실컷 마셔서 추가로 마셔봐야 소용이 없었다.

영약 보존의 법칙.

똑같은 영약을 반복 섭취하면 효과가 급감한다.

이건 나에게도 적용되는 룰이었다.

“그냥 마시면 되는가?”

“그래.”

테오도르는 한입에 꿀꺽 넘겼다.

원래 평범한 익스퍼트 고수가 받아들일 만한 양보다 조금 더 줬다.

그가 튼튼한 어인의 신체를 가진 데다가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해왔기에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는 계산이었다.

“읏!”

“가만히 있지 말고 가부좌를 틀어라.”

억지로 앉히고 그의 등에 손을 댔다.

“기운을 흘려보낼 테니 저항하지 마라.”

테오도르는 대답할 여유도 없는지 땀을 뻘뻘 흘렸다.

안에 맴도는 기운을 통제 중이었다.

그런 그의 신체에 내 이원마나가 흘러들었다.

내부에서 난폭하게 날뛰는 기운이 텃세를 부리려 했으나 어림도 없는 일.

이원마나는 경험치 만렙인 닳고 닳은 베테랑이다.

어설픈 저항 따윈 손쉽게 눌러버렸다.

멱살 잡고서 모든 기운을 특정 방향으로 인도했다.

“흐름을 기억해라.”

심법이란 곧 마나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도식화한 공식.

시골에서 자라 재능은 넘치되 견문이 좁았던 그에게 일천년 전 가장 우수했던 심법의 기초만 조금 알려주었다.

테오도르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일러준 경로대로 마나를 돌리려고 노력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

여기부터는 테오도르가 해야 한다.

이원마나를 빼서 회수했다.

이후에도 그는 가르쳐준 대로 착실히 기혈을 뚫고 마나를 회전시켰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사납게 들끓던 기운이 한층 가라앉고 차분해졌다.

결국 테오도르도 이원마나를 각성한 셈이다. 생명수는 엘프의 숲에서 채취한 초록마나의 정수고, 원래 어인족인 테오도르가 다루던 기운은 푸른마나니까.

번쩍!

테오도르가 눈을 떴다.

눈동자가 예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무인으로서 한 단계 도약한 것이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나도 무인이기에 저 느낌을 안다.

저 당시의 기분은 뭐랄까.

로또 1등 당첨과 유사하다 보면 된다.

벌떡 일어난 그가 나를 꽉 껴안았다.

“고맙다! 은인이여! 너는 답을 알고 있었구나.”

“물론이지.”

“앞으로 나를 붕어빵 대가리라 불러도 괜찮다. 평생 놀려라.”

“알았다. 붕어빵아.”

진짜로 붕어빵이라고 부를 줄 몰랐는지 잠시 멍 때리던 테오도르가 재차 감사함을 표했다.

“은인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줬다. 그런데 나는 은인에게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땐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해결해야지. 일단 무도대회부터 씹어먹어라. 지금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테오도르의 어깨너머로 강맹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이제는 진짜 익스퍼트급에 오른 천재 어인족 전사. 붕어빵 녀석이 어느 정도 활약을 보일지 기대됐다.

* * *

무도대회 날이 밝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이었다.

대회 장소는 포세이돈 시티와 가까운 북부의 어느 한 공터다.

위치가 이곳에 잡힌 이유는 순전히 편리성 때문.

대회를 진행하는 스텝이나 관계자 전원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관이었기에 이곳에 장소를 잡았다.

아직 시작하기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람이 잔뜩 몰려들었다.

수많은 북부의 부족이 너도나도 참가했고, 포세이돈 시티에서도 많은 인파가 방문했다.

여러 부족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대회였지만 최고 관심사는 역시나 날쌘바람 부족의 생존이었다.

“날쌘바람 부족이 이길 수 있을까?”

“글쎄,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쪽에 에이스가 한 명 있다는군.”

“그래봐야 한 명이지. 혼자 네 명을 올킬해야 하니까 사실 가능성은 희박해.”

“부족이 통째로 사라지는 건 백년 만인가. 역사에 남을 일이군.”

대회에는 역시 내기가 필수.

바구니가 돌고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날쌘바람 부족의 배당은 무려 9배.

그만큼 가망 없다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럼에도 항상 역배팅은 존재한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어인족 하나가 생존 쪽에 돈을 걸려고 했다.

그 어인족은 옆에 있던 친구에게 손목이 잡혔다.

“왜 그래?”

“아서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무슨 말이야.”

“내가 너랑 친하니까 특별히 알려준다. 오늘은 정배팅이 답이야.”

저 어인족이 역배팅 어인족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역배 어인족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확실해? 도살자 형제들? 그 어인 같지도 않은 놈들을 강철심장 부족에서 섭외했다고?”

“쉿! 조용히 해. 정확히 설명해줄게. 날쌘바람에 테오도르란 전사가 있거든? 강한 건 맞아. 그런데 걔 혼자 도살자 형제를 다 이길 수 있을까? 장담하건데, 한 명이라도 이기면 다행일걸?”

역배팅에 걸려던 어인이 냉큼 모든 돈을 정배팅에 걸었다.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깃들었다.

“휴, 다행이군. 자네 아니었다면 돈을 버릴 뻔했어.”

“고마우면 꽁돈 벌었다 치고 술이라도 한잔 사라고.”

“알겠네.”

들뜬 외부에 비해 참가자가 대기하는 내부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특히나 부족 전원의 생존이 걸려있는 날쌘바람 부족은 너무 고요해서 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다른 부족은 경기를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만 왔지만, 날쌘바람은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전부 와서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 날쌘바람 부족 영역에 웬 낯선 무리가 우르르 들어와 소란을 일으켰다.

“이거야 원, 이미 초상집 분위기군.”

“자기네 운명을 짐작한 것 아닙니까?”

“눈빛이 사육장에 갇힌 노예 눈빛들과 다를 바가 없군요.”

방문자는 강철심장 부족 전사였다.

건들거리며 걷는 폼새가 무척이나 불량했다.

몇몇 전사는 대놓고 ‘고놈 포동해서 잡아먹으면 맛있겠네.’ 라며 군침을 흘리고 입맛을 다셨다.

당연히 날쌘바람 측에서도 전사들이 나와서 블레이크를 비롯한 침입자를 막아섰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더러운 흙발을 들이미느냐! 썩 꺼져라.”

테오도르와 마주한 블레이크가 깐족거렸다.

“이게 누구신가! 날쌘바람의 희망 아니신가!”

과장된 포즈와 격앙된 어조.

누가 봐도 조롱투였다.

“네놈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게 역겹군. 썩 꺼져라.”

“제인을 불러와라. 그녀와 할 이야기가 있다.”

“누님은 너와 안 만나겠다고 했다.”

“마지막 기회를 차버리는군. 지금이라도 와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면 사육장행은 면하게 해주려 했는데 말이야.”

“감히!!”

검이 뽑히며 서로에게 겨누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지금이 나설 타이밍이다.

‘현자님, 부탁합니다.’

오르네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영감님은 바로 알아듣고 떡갈나무 지팡이를 휘둘렀다.

동시에 하늘에서 몽글몽글 생성되는 거대한 물폭탄.

일정 크기가 되자 수직으로 낙하했다.

쏴아아아!!

폭포수가 이러할까.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시원하게 떨어진 물은 강철심장 부족이 있는 곳만 골라서 적셨다.

블레이크를 비롯한 전사들은 순식간에 쫄딱 젖은 생쥐가 되었다.

몇몇 전사는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보기 흉하게 나동그라졌다.

“어떤 새끼야!”

분노한 블레이크에게 다가갔다.

아까 녀석이 지었던 미소와 똑같은 썩은 미소를 지으면서.

“딱봐도 오늘 비 올 날씨였는데. 조심 좀 하지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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