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인어 : 붕어빵 망나니
“우리 중 가장 최약체는 너야.”
테오도르가 강한 편은 맞다.
무려 익스퍼트급 창술사고 어인족답게 피지컬도 준수하다.
그렇다고 딱히 거짓을 말하진 않았다.
저 녀석은 정말 최약체가 맞거든.
높은 경지에 이르면 대충이나마 상대의 전력이 느껴진다.
드루이드의 직감으로 파악할 때도 있고 천마가 직접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 내가 가늠할 때, 테오도르는 캠벨의 반 수 아래였다.
당연하게도 테오도르는 전혀 인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식상한 농담이군. 손님이니까 참고 넘어가겠다. 다음부터는 신중하게 말을 뱉도록.”
“알겠다. 다음부터는 네 기분에 맞춰서 적당히 없는 말을 꾸며내겠다.”
내가 당해봐서 안다.
대놓고 까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살살 돌려 긁는 게 훨씬 효과적이란 것을.
테오도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금 잡힌 활어처럼 펄떡대는 반응을 보여준다.
“어처구니가 없군. 불쾌한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평범한 인간이 어인족보다 강하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추가로 화를 내려던 어인족 녀석은 나와 대거리하는 게 의미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내 몸을 돌렸다.
물론 얌전히 놔줄 생각은 없다.
“잘 가라. 최약체 씨.”
최약체라는 말이 방아쇠였을까.
결국 테오도르의 뚜껑이 열려버렸다.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죽고 싶다는데 죽여줘야지. 당장 무기 들고 튀어나와!”
씩씩대던 테오도르가 우리를 훈련장으로 소환했다.
늦은 밤이라 훈련장은 한산했다.
양측은 주위를 환하게 비추는 거대 야광진주 아래서 대치했다.
동료들에게 긴장감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캠벨은 짝다리를 짚은 채 휘파람을 불고 있었고, 시온은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오르네오는 ‘오! 여기가 훈련장이로군. 한 번쯤 구경하고 싶었는데.’ 이러면서 탐색모드로 들어갔다.
유일하게 테오도르만이 혼자 진지하고 혼자 비장했다.
그는 이런 상황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에게 창을 겨누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낙장불입이다. 네놈에게 어인족의 우수함을 제대로 깨닫게 해주마. 주둥이를 함부로 나불댄 죗값을 치러라.”
급발진하는 놈에게 집게손가락을 펴서 좌우로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네 상대는 내가 아니야.”
“뭐라?”
“저기 캠벨부터 이기고 올라와라.”
처음부터 최종보스를 잡으려 하다니.
중간보스부터 잡고 올라와야지.
테오도르는 기본이 안 됐다.
녀석은 캠벨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그렇군. 저 녀석은 인간임에도 어인족과 비슷한 신체를 지니고 있구나. 너희 중에 가장 강한 놈이 틀림없어.”
실컷 헛다리를 짚게 놔두자.
“저놈을 믿었나? 체급만 비슷할 따름이지, 인간과 어인은 근본적인 능력치 차이가 뚜렷하다.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덤벼라.”
“거참, 말 많네. 넌 혓바닥으로 싸우냐? 부단장이 나랑 싸우라잖아. 후딱 끝내줄 테니까 덤벼.”
바스타드 소드를 든 캠벨이 테오도르를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좋아. 어차피 순서의 차이일 뿐이다. 너희 모두 때려눕히고 끝내주마!”
테오도르와 캠벨이 서로 가까워졌다.
이어서 두 거한의 격돌.
콰쾅!!
캠벨의 검에는 마나가 없었다.
테오도르의 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훈련장은 충격파로 휩싸였다.
순수한 근력만으로 만들어낸 신비였다.
캠벨의 무지막지한 괴력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오늘 임자를 만났다.
테오도르 또한 힘에서 밀리지 않았다.
마치 수평한 시소처럼 팽팽했다.
“호오라? 내 힘을 정면으로 맞받아친 놈은 처음인걸?”
캠벨의 미소가 진해졌다.
반면에 테오도르는 약간 당황했다.
“인간이 나와 대등하다니. 놀랍군.”
“아까부터 상대를 깔보는 습성이 있네. 그 버르장머리부터 고쳐줘야겠어.”
쾅! 콰쾅! 쾅!
바스타도 소드와 할버드가 부딪치며 사방에서 불똥이 튀었다.
힘에서 승부가 안 나니 그다음부터는 기술 싸움이었다.
그런데 기술조차 비등했다.
아무래도 둘이 잘 붙여놓은 것 같다.
“후욱! 후욱!”
“으랴아!”
테오도르는 아까의 여유는 어디에 갔는지 전심전력으로 싸웠다.
캠벨 또한 최선을 다했다.
결국 백여 합이 훌쩍 넘었다.
훈련장 바닥은 두 사내가 흘린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승부의 추가 한쪽으로 슬슬 기울어지고 있었다.
“커헉! 헉!”
테오도르가 불리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에게는 경험치가 부족했다.
캠벨은 그동안 강자들과 싸우며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매일 같이 훈련하는 시온만 하더라도 캠벨과 비슷하거나 살짝 윗줄이다.
반면에 테오도르는 부족 내 최강자라서 약자를 상대로 찍어누르는 싸움만 해왔다.
그렇다 보니 대등한 상대나 불리한 상황에서 뒤집는 힘이 다소 빈약했다.
“제기랄!”
테오도르가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미 끝났다.
챙강!
캠벨이 바스타드 소드를 쳐올리자 창이 날아가 버렸다.
테오도르의 패배였다.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던 어인족 전사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캠벨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 좋은 승부였다. 그래도 인간족 중에 특출난 자가 있긴 있구나. 오늘 많이 배웠다.”
그리고는 분했는지 덧붙인다.
“이 사내는 인정한다. 허나 너희가 전부 강한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까 우쭐해하지 마라.”
아직도 콧대가 많이 높군.
더 확실히 눌러줘야겠다.
“시온, 앞으로.”
어인족은 자기 허리춤에나 올 만한 여자가 나서자 어이가 없는지 창을 축 늘어트린다.
“설마 이 여인과 싸우라는 말이냐?”
“왜, 싫어?”
“당연하다. 이건 일방적 폭력이다. 이겨봐야 명예조차 남지 않···”
쐐액!! 따악!
시온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물도마뱀 발걸음과 보호색 콤보.
방심했던 테오도르는 공격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이마에 손바닥을 얻어맞았다.
충격에 주저앉은 그에게 어두운 음영이 드리운다.
시온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말이 맞다. 이건 일방적 폭력이다. 지금부터 너에게 폭력을 휘두를 테니 잘 막아봐라.”
“감히!!”
시온과 테오도르의 대련은 캠벨과의 대련보다 훨씬 시온 쪽으로 기울었다.
이유는 해저도시에서 시온과 같은 암살자 스타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보통의 어인족 전사들은 캠벨처럼 육체의 우위를 이용한 싸움을 즐긴다.
시온처럼 힘을 역이용하거나 아예 기척을 숨기는 식의 전투는 낯설어서 대응을 못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시온은 최근 들어 제국에서 나태에게 가르침을 받고 한 단계 진일보했다.
테오도르가 이길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던 셈이다.
“커헉!”
결국 눈탱이가 밤탱이 된 그가 무릎을 털썩 꿇었다.
창은 진작부터 바닥에 굴러다녔다.
그런 그에게 오르네오가 슬쩍 앞발을 들이밀었다.
“흘흘흘, 다음 상대는 날세. 지쳤다면 다음에 해도 되네.”
“아무리 지쳤어도 삐쩍 마른 노인네 하나는 쉽다.”
“호오라? 그래? 어디 감당해보도록.”
세븐 스타를 도발한 대가는 매우 컸다.
테오도르는 뒤지게 처맞았다.
오르네오는 현자답게 어떻게 해야 상대를 제대로 팰지 알고 있었다.
물 싸대기를 여러 번 때린 다음, 정신을 못 차리는 녀석을 물을 조종해서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는 또 때렸다.
어찌나 악랄한지 보는 내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으허억! 헉! 구웨에엑!!”
테오도르가 빈속을 게워냈다.
마지막 상대는 나였다.
여태까지 신나게 얻어맞았는데 머리가 붕어대가리가 아니라면 나와 싸우려 들진 않겠지.
너무 심하게 때린 것 같으니 솔직하게 최약체임을 인정하면 봐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여긴 해저도시고 테오도르는 어인족, 즉 붕어대가리라는 걸.
“네놈이 강한 부하를 뒀다고 해서 네가 강한 건 아니다. 비겁하게 뒤에 숨어있지 말고 당당하게 붙자!”
지구에서 읽었던 소설 중에 유명한 착각계 소설이 있었다.
주인공은 항상 자기보다 강한 부하를 앞세워서 도전자를 꺾는 수법을 즐겨썼다.
때문에 도전자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강한 자라고 착각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거느린 부하조차 못 이겼는데, 그보다 강한 주인공을 이길 리 없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건 착각계 소설일 뿐.
현실은 부하보다 우두머리가 강하다.
테오도르는 맞으면서 그 사실을 배워야 했다.
퍽! 퍽! 퍽!
“아직도 네가 최강자 같아?”
“으어어···”
드루이드 스킬도 아낌없이 썼다.
바인드로 묶어놓고 숨 쉬는 샌드백으로 만들었다.
어설픈 저항은 천마게이션으로 피했다.
천마검을 회초리 삼아 일부러 아픈 곳만 골라서 매질했다.
“지금부터 세 번 복창한다. 나는 붕어대가리 최약체입니다. 복창!!”
“으어어어···”
“안 되겠네.”
퍽! 퍽!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고.
얼마나 때렸을까.
교육이 완료되었다.
“나 테오도르는 최약체다.”
“반말?”
“최약체입니다···”
“붕어대가리는 어디 갔어?”
“그것만큼은 봐다오.”
“알았어. 그러면 붕어빵 대가리로 바꾼다. 그게 더 귀여우니까.”
결국 테오도르는 자신이 최약체임을 확실히 인지하고서야 자유를 찾았다.
* * *
해저도시 북부구역.
강철심장 부족.
블레이크는 강철심장 부족장의 아들이다.
최근 그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옆동네 날쌘바람 부족장 딸 제인에게 구애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하찮은 년이 감히 나를 까?”
날쌘바람 부족과 강철바람 부족의 인구수만 무려 다섯 배 차이.
중앙에서 북부를 통제하지만 않았더라도 진작 멸족시켰을 부족이었다.
그런 열등한 부족 출신 여자가 외모 좀 반반해서 관심 좀 가져줬더니 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냈다.
그래서 복수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마침 좋은 타이밍이 왔다.
날쌘바람 부족이 무도대회에 우승하지 못한지 19년 째였던 것이다.
20년 동안 우승을 못하면 그 부족은 인어왕의 어명에 따라 몇몇 그룹으로 분리되어 인근 부족에 귀속된다.
강철심장 부족에도 날쌘바람 부족원이 올 테고 블레이크는 당연히 제인을 데려올 계획이었다.
‘단순히 데려오기만 해선 안 되지.’
그녀에게 똑똑히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자신을 거부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블레이크는 날쌘바람 이주민이 이곳에 오자마자 사육장에 가둘 생각이었다.
그다음에 천천히 한 명씩 잡아먹는다.
눈앞에서 조리되는 부족원을 바라보는 제인은 어떤 즐거운 비명을 내뱉을까.
이를 상상하는 그의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물론 어려움은 있다.
최근 날쌘바람 부족에는 굉장한 천재가 탄생했다.
애송이였던 테오도르가 최근 깨달음을 얻고 강인한 전사로 성장했단다.
정보원에 따르면 강철심장의 웬만한 고수도 그와 스무 합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강철심장 부족에는 날쌘바람 부족에는 없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자본과 권력과 인맥.
블레이크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블레이크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뫼셔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천막에 들어온 어인은 총 세 명.
포세이돈 시티에서 유명한 ‘도살자 삼형제’였다.
“자네가 블레이크인가.”
이마에 외뿔이 난 첫째.
턱에 혹이 붙은 둘째.
애꾸눈을 한 셋째까지.
도살자 삼형제.
이들은 포세이돈 시티에서 악명 높은 깡패였다.
도살자라는 이명답게 적을 무참히 썰고 먹어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식인이 금지된 포세이돈 시티에서 그런 만행을 벌이고도 여태껏 살아있다는 점이 도살자 형제의 강함을 증명했다.
하나같이 풍기는 기세가 심상찮았다.
블레이크가 자동으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제가 블레이크입니다. 여러분은 저와 함께 무도대회에 참가하면 되겠습···커헉!!”
외뿔 사내가 블레이크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대로 식탁에 꽂아버렸다.
나무로 된 식탁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절반으로 쪼개졌다.
“애송아, 감히 누구한테 명령질이냐.”
“죄송합니다···”
“우리는 너희 부족이 수도에서 먹기 힘든 별미를 준다길래 왔을 뿐이다.”
“물론입니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잘 알았으면 당장 술하고 어인 고기 좀 가져와. 인간 고기면 더 좋고.”
“옛!”
겁 먹고 쌩하니 사라지는 블레이크.
도살자 삼형제가 그 뒷모습을 무료하게 쳐다본다.
“깡촌에서 열리는 무도대회라니, 더럽게 재미없겠어. 피래미는 잡아봐야 영 손맛이 안 사는데.”
“테오도르랬나? 나름 굵직한 놈이 있는 모양이더군.”
“그래봐야 우물 안 개구리겠지. 포세이돈에 그 정도 놈은 널렸어.”
“좀만 참아라, 막내야. 곧 네가 원하는 피 맛을 얼마든지 볼 테니까.”
곧이어 그들 앞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전부 어인족으로 만든 요리였다.
다릿살을 뜯던 그들은 무도대회에서 누가 더 압도적이고 잔인하게 상대를 죽일지에 관해서 내기했다.
삼형제 중 그 누구도 자신의 패배에 베팅하는 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