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47화 (147/200)

18장 인어 : 잘찍은 망나니

“그 검을 준다면 정보를 주지.”

참고로 천마검은 천년 전 초고수의 영혼이 봉인된 에고소드다. 여태껏 황금가지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천마 때문이었다. 황금가지는 검에 갇힌 그의 영혼을 풀 수 있는 열쇠였기에.

또 다른 이유는 나 자신의 발전 때문이다. 황금가지를 찾을수록 드루이드 등급이 진일보하고, 이는 향후 바알을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 된다.

게다가 지금까지 나는 천마의 가르침으로 검술 실력을 키워왔다.

그의 가르침은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었으나 항상 핵심을 짚어왔고, 덕분에 나는 최단기간에 소드마스터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그밖에도 전투 때 미리 공격방향을 읽어주는 천마게이션이라든가, 내가 감지하지 못한 적을 미리 경고해준다든가, 여러모로 쏠쏠한 기능이 많았다.

나태는 이런 천마검을 원했다.

아무래도 천마검의 비범함을 느꼈나 보다.

“어째서 이 검을 원하지?”

“글쎄···너 정도 되는 녀석이 저런 투박한 검을 사용하는 게 이상해서.”

“누구나 자신만의 애검이 있는 법이지.”

우선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안쪽에서 천마가 말썽이다.

-애송아! 나를 팔아넘겨라.

-저 처자의 손이 제법 곱구나.

“······”

천마 영감님 변태력은 여전하구나.

저러니까 더 주기 싫어진다.

정보는 얻되 칼은 넘길 수 없다.

이걸 어찌할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칼을 넘기겠다.”

“정말인가.”

“그래. 다만 조건이 있다.”

“말해라.”

“5년 후에 넘기겠다.”

5년의 기한을 둔 이유.

그 시간이면 이미 황금가지를 다 모을 가능성이 높다.

여태껏 5년도 안 지났는데 황금가지 일곱 개 중에 네 개를 모았으니까.

그때쯤이면 천마는 봉인에서 해방되겠지.

그 전에 풀려날 수도 있고.

천마가 빠져나간 검은 고철검일 뿐이다.

“5년? 이유가 있는가?”

“대체할만한 새로운 검을 찾기 위한 시간이다.”

“상당히 긴 기간이군.”

“검을 담보로 잡고 정보의 가불을 원한다.”

왠지 상장폐지 예정 주식을 담보 잡고 대출하는 기분이지만, 지금은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다.

“애매하군. 네가 기한에 맞춰 검을 줄지 의심된다.”

“계약을 어길 경우 직접 검을 받아가면 되잖나? 너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다.”

나태는 마스터급에 해당하는 강자에다가 대륙 최고의 암살자다.

심지어 밑에서 일하는 길드원만 수만 명에 달한다.

이 사실을 인지시켜주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군. 알겠다. 정보를 알려주마.”

이후 나태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알렉스 2황자가 새로운 탐욕이 되었다는 사실.

황혼교가 1황자 암살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

알렉스를 황태자로 내세우고 제국 전체를 삼켜버릴 계획까지.

못 들었으면 엄청 손해였을 소식이었다.

“정보 고맙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가에 맞는 정보를 줬을 뿐. 정확히 5년이다. 오늘 방문했던 주점으로 찾아와라. 검은 그때 받겠다.”

* * *

나태에게 의외의 정보를 들었으나, 계획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재의 나는 황혼교의 음모를 막을 능력이 없다.

일단은 기존에 하던 대로 황금가지를 모으고 드루이드 등급을 올려야 했다.

새롭게 대간부가 된 알렉스의 야욕은 무력이 일정 수준 상승한 이후에 저지하기로 했다.

시온과 캠벨을 데리고 오스딘 시티 동쪽 구역으로 이동했다.

오르네오 공작은 그곳에 탑을 지어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현자가 사는 탑이라서 ‘현자의 탑’이라 불렀다.

현자의 탑은 오스딘에서 유일하게 황궁보다 더 높이 짓는 게 허락된 건물이었다.

오르네오 공작을 향한 황가의 신임이 어느 수준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현자의 탑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줄이 심하게 길었다.

“무슨 사람이 이리 많아?”

캠벨이 툴툴댔다.

탑의 초입에서부터 시작된 대기열은 끝을 모르고 늘어져 있었다.

줄어드는 속도도 굼벵이였다.

이대로라면 거의 두 달은 기다려야 될 판이다.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말 좀 묻겠습니다.”

“말씀하시오.”

“여기 사람들 모두 오르네오 현자님을 뵙고 싶어서 온 겁니까?”

“그렇소.”

“왜 이렇게 인기가 많습니까?”

떠돌이 용병으로 보이는 사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야 당연하지. 대륙에서 가장 현명하신 분이오. 현자님께 한마디 조언을 듣고 새로운 경지에 오른 무인이 한둘이 아니오.”

“그렇습니까?”

“단순히 무인뿐만이 아니지. 간혹 불치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해주시기도 하고, 농사나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성공하는 비법을 전해주시기도 한다오.”

각계 각층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해주는 조언자라.

하긴 나 또한 신탁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 이곳에 왔으니 딱히 다를 것도 없다.

“혹시 현자님을 빨리 뵐 방법이 없겠습니까?”

“당신이 한 생각을 여기 있는 사람이라고 안 해봤겠소? 어림도 없는 일이외다.”

“어째서입니까?”

“현자께서는 황제 폐하와 자신이 인정한 소수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모두를 똑같이 대하시오.”

돈 많은 대상단의 단주나 제국의 유명한 백작도 돈과 권력으로 새치기하려다 현자의 탑에서 영구추방 되었단다.

“그래서 현자님이 더욱 존경받는 것이오. 우리 같은 무지렁이도 사람대접 해주시고 진지하게 사정을 들어주시거든.”

오르네오 현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았다.

이제부터 맥없이 기다려야 하는 걸까.

고민이 깊어질 때, 복잡한 내 표정을 본 떠돌이가 다시 말을 걸었다.

“사실 바로 현자님을 뵐 방법이 하나 있긴 있소.”

“정말입니까? 어떤 방법입니까?”

“그게···”

말꼬리를 흐리던 용병이 괜스레 두 손을 싹싹 비빈다.

칼론 제국에 머문 기간도 제법 길다.

저런 제스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딱 보면 안다.

주머니에서 꺼낸 은화를 건네려고 할 때, 마침 정보 조사를 하러 떠났던 시온이 돌아왔다.

“도련님, 오르네오 현자를 빠르게 뵐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대기한지 열흘 이상인 사람은 다 아는 정보더군요.”

“쳇!”

아쉬워하던 용병이 줄을 이탈했다.

녀석은 대기열 맨 뒤로 가더니, 새로운 사람에게 입을 털었다.

“정보팔이하는 놈이었나.”

“맞습니다. 저런 놈들이 꽤 있더군요.”

“우스운 광경이야. 아무튼 간에, 현자와 곧장 만날 방법은 무엇이지?”

“현자의 시험을 치면 됩니다.”

“현자의 시험?”

“그렇습니다.”

시온의 설명은 이러했다.

오르네오 공작도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워낙 많은 걸 알기에 한 가지 재미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그건 바로 ‘현자의 시험’이었다.

그는 세 가지 관문을 만들었다.

‘지혜의 문’ ‘지식의 문’ ‘힘의 문’

세 개의 문을 모두 통과하는 자에 한해서 프리패스권을 발급한단다.

“밑져야 본전인데 시험을 쳐야지, 어째서 줄을 서고 있지? 다들 자신이 없는 건가?”

“여태까지 합격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답니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느니 오래 기다려서라도 현자를 뵙자는 마음이지요.”

시온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현자의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다.

나는 일분일초가 매우 아까운 사람이니 말이다.

혹여 떨어지더라도 대기열 후미라서 별로 손해는 아니었다.

시험장은 현자의 탑 뒤편에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나를 보고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시험을 보실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현자의 시험은 나름 이 동네에서 유명한 화젯거리인가 보다.

시험과 무관한 사람들이 입구를 둘러싼 채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은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나를 보며 킬킬댔다.

“또 한 명의 탈락자가 들어가는군.”

“덩치가 제법인데? 힘의 문을 통과할지도 모르겠어.”

“예전에 못 들었나? 익스퍼트 기사도 힘의 문에서 떨어졌네.”

“하긴 그랬지. 내가 관상을 좀 보는데, 저렇게 생긴 놈은 힘의 문까지 가지도 못해.”

“당연하지. 내기나 할까? 나는 첫 번째 관문 탈락에 10실버.”

“나는 두 번째 관문 탈락에 5실버 걸겠네.”

시끄러운 소리는 시험장에 입장하자마자 깔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방음벽이라도 설치된 느낌이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시험관이 나를 맞이해줬다.

“반갑습니다. 저는 지혜의 문 시험관입니다. 한 달 만의 응시자로군요.”

시험관이 시험 내용을 말했다.

“통과 조건은 간단합니다. 기둥에 묶인 밧줄이 보이시죠? 여기에 서서 밧줄을 풀면 됩니다. 참고로 본인이 직접 밧줄을 자르시면 탈락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시험이다.

기둥과의 거리는 다섯 발자국.

묶인 밧줄은 복잡하게 엉켜있다.

손으로 잡고 풀어도 모자랄 판에, 멀리서 원격으로 밧줄을 풀라고?

심지어 직접 잘라도 안 된다니 칼이나 화살 따위로 밧줄을 끊는 행위도 불가능하다.

“시험 내용이 이게 맞습니까?”

“네. 제한시간은 하루입니다. 배가 고프시면 식사를 넣어드릴 테니 말씀하세요.”

주변에 널린 나뭇가지로 밧줄을 툭툭 건드려봤다.

당연히 안 된다.

천마검으로도 건드리려다가 밧줄이 잘릴까봐 포기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천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애송아, 별것도 아닌 걸로 고민하는구나.

“정답을 아셨습니까?”

-아니, 모른다. 그래도 너만이 가능한 능력들이 있잖느냐? 잘 조합해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천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난 드루이드였다.

드루이드는 드루이드만의 방법을 쓸 수 있다.

여러가지 스킬을 고려해보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정답지를 선택했다.

“시험관님.”

“말씀하세요.”

“어떤 식으로든 여기 있는 밧줄이 풀리면 됩니까?”

“맞죠. 다만 직접 잘라버리시면 불합격입니다. 손이 닿지 않으시면 팔을 늘리시던지 다른 방법을 사용하셔야 해요.”

[라이프컨트롤]

[테이밍]

나를 기준으로 원형의 레이더망이 펼쳐졌다.

현자의 탑은 도시에 세워진 탑이라 주변에 길고양이나 떠돌이 개가 많았다.

그중에서 발톱이 날카로운 고양이 하나를 골랐다.

‘나에게 와라.’

고양이는 테이밍 당한 즉시 시험의 문으로 들어왔다.

“어라? 고양이가 들어왔네?”

직원이 고양이를 내보내려 했으나 어림도 없지.

고양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밧줄을 잘라라.’

“야~~옹!!”

서걱!!

직원의 손길을 피한 고양이가 앞발을 번쩍 들어 밧줄을 내리쳤다.

단단히 묶여있던 밧줄이 단숨에 두 동강 났다.

뒤늦게 고양이를 들어올린 직원이 멍하니 해체된 밧줄을 바라보았다.

“저런, 밧줄이 풀려버렸군요. 어쨌든 합격 맞죠? ‘어떤 식으로든’ 밧줄이 풀렸으니까요.”

직원이 가자미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일부러 뒷짐을 지고 휘파람을 불었다.

아무리 의심해도 고양이를 조종했다고는 절대 생각 못한다.

계속해서 능청을 떨자 직원이 결국 합격패를 내밀었다.

“현자님께서 말씀하셨죠. 행운도 곧 실력이라고요. 다음 관문으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정답은 뭐였습니까?”

“식사에 나온 꿀을 나뭇가지 끝에 찍어서 밧줄에 바르면 됩니다. 그러면 근처에 서식하는 개미떼가 몰려와서 세 시간 안에 갉아먹지요.”

과연 지혜의 관문이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혼자 끙끙대다가 배고프다며 식사를 시켰을 테고, 이후 빵 사이에 꿀을 발라서 맛있게 먹었을 터.

그 즉시 탈락인지도 모르고 최후의 만찬을 즐겼을 것이다.

어쨌든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다.

다소 변칙적으로 일차시험에 합격하고 지식의 문으로 도착했다.

지식의 문 시험관은 안경을 쓴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옆에 종이를 수북이 쌓고 있었는데, 시험관 역할을 하면서 따로 업무를 보는 모양새다.

“오셨습니까? 지혜의 문을 통과한 자는 반년만이군요.”

“시험 내용을 알고 싶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이 문제를 푸세요. 전부 맞춰야만 합격입니다.”

지식의 문은 말 그대로 필기시험이었다.

시험 문제는 이런 식이었다.

[Q1. 칼론 제국령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장소는?]

[Q2. 역대 선황제의 풀네임을 차례대로 적으시오.]

[Q3. 노란색과 푸른색을 섞으면 무슨 색이 될까?]

[Q4. 알고 있는 몬스터의 이름을 다섯 개 쓰고, 그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라.]

[Q5. 사랑이란 무엇일까? 질문에 답하라.]

지리, 수학, 사회, 인문, 철학, 경제.

온갖 분야의 질문이 이십 문항이나 있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

문제 각각의 난이도는 해볼만 했으나, 시험 범위가 미치도록 넓었다.

예를 들어 4번 문제 같은 경우는 북부에서 근무한 나에게 너무나 쉬운 문제다.

몬스터 이름과 특징이야 자면서도 줄줄히 나오니까.

하지만 1번이나 2번 문제는 칼론 제국민이 아니고서야 알 수가 없는 문제였다.

‘온갖 분야에 잡지식이 있는 박사거나, 답안지를 알아야만 통과할 수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낙담하진 않았다.

어차피 절대평가다.

내가 합격한다고 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대놓고 답안지를 보기로 했다.

[라이프 컨트롤]

[시야공유]

시험관 뒤편에 있는 나무에 빙의했다.

초점은 감독관 탁자 위에 올려진 종이뭉치에 고정했다.

시험관도 모든 문제의 답을 외우고 있진 않을 테니 답안지가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역시 답안지가 있군.’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시험관이 펼쳐놓은 업무용 서류 때문에 답안지가 반쯤 가려져 있었다.

저걸 치웠으면 좋겠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을까.

[라이프 컨트롤]

[테이밍]

다시 한 번 고양이를 소환했으나 일차 관문에서 막혔다.

지혜의 관문 시험관이 딱 버티고 있다가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냈다.

이어서 테이밍한 떠돌이 개나 참새도 마찬가지였다.

“시험관님? 혹시 화장실 안 가십니까?”

“바쁘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 문제를 전부 풀었거나 시험을 포기했을 때만 저를 불러주시면 됩니다.”

고지식한 놈 같으니.

화장실 작전도 실패다.

다음 작전은 바람 작전.

[윈드 컨트롤]

휘이이잉!

실내에 갑작스런 돌개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감독관 책상에 놓여있던 서류가 온통 바닥에 흩어졌다.

흘낏 답안지 쪽을 곁눈질했는데, 시험관은 다른 서류는 다 버려도 답안지만큼은 품에 꼭 안고 있었다.

‘난감하네.’

어떻게 저 답안지를 훔쳐볼까 고심할 때, 문득 이번에 상급 드루이드로 승급하면서 새롭게 얻은 스킬이 생각났다.

4. 라이프 컨트롤

- 시야공유(★★)

- 테이밍(★★)

- 기억회상(★)

현재 시야공유와 테이밍은 쏠쏠하게 써먹고 있는 중.

그런데 기억회상은 처음 본다.

무슨 스킬인지 모르니 일단 써볼까.

[기억회상 사용]

[빙의한 대상의 과거를 읽습니다.]

[빙의대상-지식의 문 시험장 은행나무]

파앗!!

머릿속 한구석에 작은 방이 생겼다.

그곳에는 동영상이 하나 재생됐다.

영상에는 텅 빈 시험장이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몇시간 전 지식의 문 시험장이었다.

‘이런 식으로 발동하는 스킬이었군.’

대상의 과거를 읽다니.

추적 및 정보 수집에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기가 막힐 정도의 사기급 스킬.

어째 라이프 컨트롤 스킬은 죄다 알짜배기다.

동영상에 시험관이 등장했다.

영상 속에서 그는 바쁜 와중에 수험생이 왔다며 투덜거렸다.

품속에 종이뭉치를 안고 있었는데, 가장 위쪽이 답안지였다.

쿵!

탁자 위에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맨 위가 답안지라 답이 선명히 보였다.

‘정지!’

머릿속으로 정지를 외치자 느리게 재생되던 기억이 멈추었다.

답안지는 스크린샷처럼 선명히 그려졌다.

시험은 끝났다.

답안지를 보고 정답을 모조리 베껴 썼다.

소요시간은 고작 오 분이었다.

“시험관님.”

“왜 자꾸 부르십니까? 한 번만 더 의미없이 부르시면 시험 결과와 관련없이 실격 처리하겠습니다.”

“문제를 다 풀었습니다.”

“장난치지 마세요.”

“정말입니다.”

시험지를 제출했다.

넘겨받은 시험감독관이 답안지와 일일이 대조하며 채점했다.

동그라미 개수가 점점 많아졌고.

그럴수록 시험관의 입도 점점 벌어졌다.

“시험관님, 침 떨어집니다.”

“아, 죄송합니다. 전부 맞추셨습니다.”

시험 결과는 만점.

시험관은 귀신에 홀린 표정이다.

“혹시 답안지를 보셨습니까?”

“제가 무슨 수로요?”

“···하긴 그러네요.”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다.

더욱 뻔뻔한 태도를 취했고, 지혜의 문에 이어 지식의 문 시험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으시군요.”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합격패를 드리겠습니다.”

지혜의 문과 지식의 문을 통과했다.

마지막 힘의 문에 입장했다.

이쪽 시험은 뻔했다.

보나마나 무력을 입증해야겠지.

상대가 누군지가 관건이었다.

“오호라, 오랜만에 이단계 시험을 통과했다는 자가 나왔다길래 누군가 했더니 사내답게 생긴 젊은이였군.”

펑퍼짐한 푸른 로브, 떡갈나무 지팡이, 허리까지 오는 기다란 흰수염, 챙이 넓은 고깔모자, 반짝이는 눈동자.

“이런.”

마지막 감독관은 오르네오 현자 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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