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46화 (146/200)

18장 인어 : 지불한 망나니

나에게 있어서 황혼교도는 누구든지 해치워야 할 적이었다. 특히나 기둥 격인 칠대사도는 최우선 제거대상이었다.

반면에 나태는 애매했다.

그녀는 시온의 친모로 나를 죽이려 했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명백한 적이지만, 여러 방면으로 우리를 도와주기도 했다.

신성국에서 얻은 황금가지의 위치를 알려줬고, 시온의 실력을 늘려줬으며, 색욕의 정체도 말해줬다.

물론 나중에 들어보니까 시온이 나태에게 암살자 스킬을 배울 당시에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알아낸 정보란다.

그래도 나태가 시발점이 되었기에 입수할 수 있었던 정보였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도움이 되었달까.

결국 병 주고 약 주고가 되었다.

적군도 아니고 아군도 아닌 존재.

한마디로 애매한 관계다.

“시온, 궁금한 게 있다.”

“말씀하시지요.”

“나태가 우리를 황혼교주에게 팔아넘기거나 정보를 흘릴 가능성은 없나?”

“애초에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가 아닙니다. 걱정 놓으시지요.”

수다를 떨면서 후미진 골목을 한참 들어갔다.

이윽고 허름한 술집에 도착했다.

문을 밀고 입장하자 와인잔을 닦던 바텐더가 무심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금일 영업 종료입니다. 돌아가시죠.”

실내에는 여전히 손님이 많았다.

대부분 우락부락하고 흉터가 많은 사내들이었다.

“손님 많은데?”

“영업 종료입니다.”

“밤거미에게 볼일이 있다.”

밤거미를 언급하자 주점 전체가 조용해졌다.

잠시 후, 일제히 폭소가 터져나왔다.

“푸하하하!!”

다들 자신이 들은 단어를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바텐더도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끈적한 살기가 전신을 감아왔다.

피부가 불쾌하게 따끔거렸다.

“정신 나간 연놈들이군. 제국의 뒷골목에서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다니.”

“목숨은 포기했다 보면 되겠지.”

알고보니 주점에 있던 손님 전원이 나태의 길드원이었다.

메이스, 대거, 쿠크리, 엑스, 실드.

평균적으로 롱소드를 취급하는 기사와는 다르게 온갖 잡다한 무기가 등장했다.

놈들이 혀를 할짝거리며 바텐더의 눈치를 보았다.

아무래도 바텐더가 이곳 지점장인 모양이다.

“한 가지만 묻지요.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말하세요.”

“밤거미를 만나러 왔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왜 왔습니까?”

“귀가 먹었나? 너희 대가리 만나러 왔다고.”

“기어코 벌주를 마시겠다면 어쩔 수 없지. 쳐라!!”

피맛을 갈망하는 피라냐 떼가 우르르 달려들었다.

허나 피라냐는 피라냐일 뿐.

한낱 물고기다.

그리고 이곳은 물이 아니라 뭍이었다.

퍼억!!

천마검을 검집째로 휘둘렀다.

천마게이션조차 사치다.

저들의 움직임은 굼벵이였고 사방이 급소투성이였다.

검이 휘둘러지는 족족 치명타를 얻어맞은 놈들이 주저앉아 신음했다.

“커허억!! 강하다!”

“제기랄, 움직임이 보이질 않아!”

“쫄지마. 한꺼번에 덮치면 별수 없다!”

대장 바텐더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독려해보지만 이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만큼 내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동행한 캠벨과 시온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건달과 싸우게 된 캠벨이 신나서 주먹질을 해댔다.

“으랴! 으랴아!!”

솥뚜껑 같은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상대는 기절한 채 훨훨 날아갔다. 매번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괴력이다.

반면에 시온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적을 기절시켰다. 그녀가 손을 내뻗을 때마다 목젖이나 뒷목을 가격당한 덩치들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결국 상황종료.

숫자만 믿고 달려들었던 놈들의 최후였다.

바텐더는 아까와는 백팔십도 달라진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귀인을 뵙습니다!!”

“아까는 목숨 내놨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목숨을 내놓은 건 저희였습니다!!”

그래도 도적들이 이런 면에선 좋다.

상대가 강하다 싶으면 바로 고개 숙이고 꼬리 내리거든.

만약 기사였으면 자존심이랑 충성심 운운하면서 더 맞았을 거다.

“네가 여기 지부장이야?”

“예.”

“당장 밤거미 불러와.”

“알겠습니다.”

지부장이 쌩하니 나갔다.

남은 건 우리 셋.

“시온, 굳이 이런 방법을 써야 했나?”

“나태의 소재지는 극비여서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도 겨우 알아낸 아지트입니다.”

옆에 있던 캠벨이 말했다.

“부단장, 우리 내기할까?”

“내용은?”

“지부장 놈이 정말 밤거미를 데려올까? 아니면 정신 못 차리고 다른 놈들을 잔뜩 끌고 올까?”

“난 후자에 걸겠다.”

“나도인데. 내기가 성립이 안 되는구먼.”

지부장은 얼마 후 다시 돌아왔다.

예상대로 나태는 없었고 지원을 데려왔다.

동네 형이라도 부른 듯 아까와는 달리 기세등등해진 지부장이 우리를 향해 삿대질했다.

“저놈들입니다! 감히 길드장님을 운운하며 온갖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의외로 지부장이 데려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갈색 피부에 백발을 찰랑이는 남자.

눈동자는 샛노란색이다.

머리색과 눈동자색이 워낙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던 인물이다.

“너는···파헬이었나?”

이름을 맞추자 사내의 눈썹이 꿈틀했다.

“나를 아는가?”

“전에 봤었지.”

알버스 영지전이 끝나고 본 적 있다.

그때 파헬을 자신을 정체불명 집단의 정보원이라 소개했었다.

돈을 상당히 밝히는 녀석이었는데 나태의 수하였구나.

내 기억으로 놈은 상당히 강자였다.

젊은 나이에 소드마스터를 목전에 둔 세바스찬과 엇비슷했다.

그때만 해도 파헬과 싸우려면 도토리를 먹고 드루이드 스킬과 검술을 총동원해야 겨우 호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단순 검술 실력만 따져도 파헬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다.

파헬도 내게서 풍기는 은은한 기세를 느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디서 갑자기 이런 놈이 튀어나왔지?”

당황하던 파헬이 내 동료들을 훑어보다가 시온의 보라색 머리카락에 시선이 딱 꽂혔다.

“아, 시온이었군요.”

나는 칸으로 변장해서 못 알아봤지만 시온은 바로 알아본다.

시온과 같이 다니는 모험가라면 내가 누군지도 알았을 터.

파헬이 갑자기 지부장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따악!!

“악! 왜 때립니까?”

“손님과 적을 구분하는 것도 실력이다. 지부장쯤 됐으면 대충 눈치챘어야지.”

파헬이 앞으로 나서서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시온님, 캠벨님, 그리고···칸님. 길드장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괜히 뒤통수를 얻어맞고 부서진 집기와 얻어맞은 부하를 수습해야 할 지부장만 울상이 되었다.

* * *

파헬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새삼스레 오스딘 시티의 엄청난 규모에 감탄했다.

복잡한 뒷골목을 빙빙 돌았다.

아무리 길눈이 밝은 자라도 헷갈릴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라이프 컨트롤]

[시야공유]

물론 나는 예외였다.

상급 드루이드가 되면서 라이프 컨트롤의 스킬 숙련도가 크게 향상됐다.

탐지 시야 범위도 늘어났고 시야공유 대상도 다양해졌다.

또한 동시에 여러 동식물의 시야를 빌릴 수 있었다.

덕분에 눈을 가리고서도 탈출로를 모조리 외워두었다.

별일이야 없겠으나 방심은 금물이기에 혹시 몰라 들어둔 보험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안대를 벗어주시지요.”

빛이 눈을 찔렀다.

시야가 확보되니 고풍스러운 실내가 드러났다.

눈앞에는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다.

맞은편 기다란 소파에는 나태가 반쯤 몸을 눕힌 채 우리를 맞이했다.

“반가워.”

먹보 캠벨은 벌써 군침을 흘린다.

이 녀석은 적진에 들어왔다는 건 아무래도 좋았고 한시라도 빨리 음식을 맛보고 싶은지 내 눈치를 봤다.

그 모습이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 같다.

“먹어.”

“좋았어.”

우적대며 먹는 캠벨.

시온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본다.

어쨌든 캠벨은 내버려두고 마주했다.

벌써 두 번째 만남이었다.

“오랜만이군. 못 보던 사이에 더 강해진 듯한데, 내 착각인가?”

역시 나태의 눈썰미는 날카롭다.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지. 시온을 가르쳐줬더군. 그녀의 주인으로서 감사함을 표한다.”

“고마워할 것 없어. 그 또한 세바스찬과의 계약에 포함된 사안이었다.”

포도알을 하나 따서 입 안에 넣은 나태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왔지?”

“너와 거래를 하러 왔다.”

나태는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 <흑야>의 마스터.

아울러 대륙 최고 암살자이기도 하다.

“내 몸값과 시간값이 얼마나 비싼지는 알지? 참고로 대가를 지급하지 못하면 너희는 이곳에서 죽는다. 내 딸이라고 해도 예외 없어. 너희 쪽에서 계약을 위반했으니까.”

대가 걱정은 하지 않는다.

아공간 주머니에는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을뿐더러, 돈 주고도 못 구할 보물이 한가득이다.

중요한 건 그녀가 나에게 쓸만한 정보를 줄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원하는 게 뭐야?”

“벨라누스에게 신탁을 받았다.”

‘원하는 물건을 얻으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 가장 큰 나라에서 가장 목마른 자를 찾아라.’

신탁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신기하군. 신탁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수두룩했는데 아무리 봐도 너는 진실을 말하고 있어.”

“그야 당연하지. 정말 진실이니까. 혹시 이 내용에 대해서 감이 오는 부분이 있나?”

나태가 포도알을 입 안에 넣고 질겅질겅 씹으며 고심에 잠겼다.

“잘 모르겠는걸? 가장 큰 나라는 칼론 제국이겠지. 네가 나한테 온 걸 보면 거기까진 알아냈겠고.”

“물론이다.”

“가장 낮은 곳이라···원한다면 아르니아 대륙 최저지대를 알아봐 주겠다. 그런데 내 직감으론 왠지 오답 같아.”

대륙이 모든 정보를 쥐고 있다는 나태도 별 수 없는가.

포기하고 일어서려고 할 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모르지만 정답을 알만한 자를 알고 있다.”

“누구지?”

“오르네오 공작.”

현자 오르네오.

세븐 스타 중 일인.

현재 오스딘에 거주 중이란다.

“대륙의 모든 불가사의와 비밀을 다루는 사람이니 이쪽 방면으로는 나보다 전문가다. 괜히 현자 소리를 듣는 게 아니겠지.”

나태의 말이 그럴듯했다.

나름 대답을 얻었으니 보상을 줄 차례.

무엇을 줄까 고민하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리볼버를 꺼냈다.

[고대의 유물]

[리볼버]

[잔여 오러불렛 1/6]

순례자 톰이 선물한 리볼버였다.

아슬란 제국 유물이라 대륙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귀물이었다.

처음 보는 무기에 나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지?”

“권총이라는 무기다. 안에는 오러로 감싸진 화살촉이 들어있지. 화살촉을 총알이라 부른다.”

나태는 바로 무기의 위험성을 알아차렸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열 살배기 아이도 익스퍼트 고수를 죽일만한 무기로군. 매력적이야. 혹시 총알이 더 있나?”

“현재로서는 한 발만 가지고 있다.”

“아쉽군.”

나태가 리볼버를 옆에 있던 파헬에게 넘겼다.

“충분한 대가였다. 정확히 계산하자면 넘쳤다. 그러니 대가에 상응하는 정보를 추가로 주겠다. 알고 싶은 정보를 말해라.”

기왕 기회가 주어졌으니 오스딘에 도착하고 쭉 의문인 점을 묻기로 했다.

“현재 레이놀드 황태자가 죽어서 제국 전체가 시끄럽더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고 싶다.”

내 질문에 나태가 즉시 대답했다.

“레이놀드 황태자는 죽은 게 확실하다.”

“사인은?”

“암살로 인한 관통상.”

역시 병사나 사고사는 아니었다.

“범인을 알고 있나?”

“당연하지.”

“누구지?”

“암살을 꾸민 사람과 실행한 사람이 있다. 둘 중 하나만 알려주지. 모두 알려주기엔 대가가 부족하다.”

주머니에서 중력장 생성기를 꺼냈다.

어차피 5번의 기회를 모두 소모한 고철 덩어리라 줘도 상관없는 폐물이다.

나에게는 쓰레기라도 나름 고대의 유물이니 나태에게는 충분히 신기한 물건이겠지.

여기에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금괴 1만 골드를 추가로 얹어줬다.

“충분하다.”

“암살을 꾸민 사람부터 알고 싶다.”

“암살을 꾸민 사람은 알렉스 폰 아울슐만츠 칼론, 제국의 2황자이다.”

2황자가 1황자를 죽였다라.

동기는 굳이 묻지 않아도 명백하다.

황좌를 둘러싸고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암살을 실행한 사람은?”

“나다.”

“···뭐라고?”

“나라고. 내가 레이놀드 황태자를 죽였다.”

나태는 제국의 차기 황태자를 죽였음에도 소름 끼치도록 침착했다.

담담한 어조만 봤을 때는 어디 산책이라도 갔다 온 듯한 말투였다.

“네 실력이 그 정도로 뛰어난 줄 몰랐군. 황태자를 죽이고 뒤탈이 없다니.”

“2황자의 협조가 있었다. 평상시에 황태자가 2황자를 믿어서 빈틈이 나왔다.”

“2황자가 너에게 의뢰한 건가? 엄청난 대가가 들었을 것 같은데.”

“대가가 부족하다. 더 듣고 싶다면 대가를 내라.”

어처구니가 없다.

순례자 중에서도 고위층만 가진다는 유물을 두 개나 바쳤다.

그뿐이랴.

지구로 따지면 130억 상당의 정보료를 지불했는데도 대가가 부족하다니.

계산이 철저한 나태가 아니었다면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이 정보는 단순한 돈으로 추산이 불가능하다. 아까 줬던 권총 수준의 보물만 받겠다.”

리볼버나 중력장 생성기가 땅 파면 나오는 줄 아나.

아무리 보물을 많이 가진 나라도 고대의 유물을 열댓 개씩 가지고 있진 않다.

딱 하나 웜홀 생성기가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향후 장거리 이동을 위해 요긴하게 쓰일 예정이니 나태에게 주긴 아까웠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

나태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어쩌지.

저 정보는 꼭 알고 싶은데.

머릿속이 복잡해진 내게 나태가 제안했다.

“이건 어떤가? 너에게 원하는 보물이 있다. 그걸 나에게 달라.”

“무엇이지?”

나태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끝이 내 허리춤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천마검이 매여있었다.

“그 검을 대가로 제출한다면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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