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잠식 : 나서는 망나니
좌로는 리앙 수호군을 대동하고 우로는 푸른매 용병단을 거느린 나는 위풍당당한 기세로 몰티성에 도착했다.
설마 인간 군대가 레이븐 숲을 뚫고 코앞까지 밀고 들어올 줄은 몰랐는지 몰티성 내 엘프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침착을 되찾은 상대는 도개교를 올리고 화살을 쟁여두고 끓는 물을 대령하고 방패를 배치해서 수성할 준비를 했다.
과연 감탄이 나올만한 대응 속도였다.
물론 저렇게 부산을 떨어대도 의미 없다.
전력으로 육천 군대를 휘몰아침과 동시에 드루이드 능력을 극한으로 발휘한다면 결국은 무너질 테니까.
그러나 엘프의 본거지를 목표로 하는 마당에 굳이 잔뜩 웅크린 몰티성을 공격해서 시간 낭비할 이유는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몰티성을 둥글게 포위한 채 위협적인 압박만 가했다.
그 사이에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톰이 준 선물 중 하나였던 텔레포트 장치, 즉 웜홀 생성기를 설치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작법은 간단한 편이었다.
땅에다가 원형판을 고정하고 마나를 불어넣자 원형판 내부에서 빛이 발생하며 기이한 기계음을 내뱉었다.
위이이이잉!!!!
“정말 신기하군요.”
“자작께서는 별의별 신물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장거리 공간이동 기계라니, 칼론 제국 황족이나 일부 대귀족이 사용한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일세.”
동료들도 이를 구경하면서 감탄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느새 설치가 끝났다.
단단하게 고정된 웜홀 생성기 위로 시커먼 검은 원이 허공에서 일렁였다.
“이제 다 된 건가?”
호기심 넘치는 캠벨이 검은 원을 손으로 휘저어보았다.
캠밸의 손과 부딪친 웜홀은 허깨비처럼 조금 흔들렸다가 제 모양을 찾았을 뿐, 딱히 어디론가 연결된 느낌은 아니었다.
“별일 없는데?”
의아해하는 캠벨에게 설명했다.
“이곳은 시작점일 뿐이야. 이제 다른 지역에도 똑같이 설치하면 이곳과 연결되는 원리다.”
“아하, 그렇군. 그래서 부단장이 대산림까지 들어간다는 말이었구나.”
“그걸 이제야 이해한 겁니까? 먹는데 쓰는 열정의 반 정도만 여기에 써도 금세 이해했을 텐데요.”
“하녀가 또 까칠해졌어.”
자기들끼리 투닥대는 시온과 캠벨을 구경하던 차에 수호군 부사령관 에이든이 와서 보고했다.
“로이드 자작님, 인편을 통해 피엔토 자작을 위시한 영주 연합군의 동향을 알아냈습니다.”
“그쪽은 어떻답니까?”
“그게···”
에이든이 전해준 소식은 충격이었다.
첫번째 요새를 점령하는 데만 거의 일천 가량의 사상자가 났고 지금 두번째 요새 점령 여부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고.
세례 받은 강화엘프 전사가 그만큼 뛰어난 활약을 벌였으리라 짐작된다.
“심각하군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쪽은 몰티성까지 도착하지도 못할 듯합니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습니다.”
세례까지 받아가며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엘프족.
이와 달리 전쟁 후에 몰티령 땅을 어떻게 나눌지만 욕심내는 오합지졸 연합군.
한쪽은 종족의 명운을 걸었고 다른 한쪽은 동네 나들이를 나왔는데 둘이 부딪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진작 예상했던 결과였다.
“서둘러 움직여야 하겠군요.”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로이드 산하 가문이고 휘하 농노병은 멍청한 영주에게 강제로 징집당한 죄밖에 없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일찍 동부 대산림으로 진입해서 리처드 대장로를 잡아야 했다.
“자작님, 계획은 좋습니다만, 동부 대산림은 면적이 상당합니다. 거기서 근시일 안에 엘프 부락 위치를 발견하긴 어렵습니다.”
걱정하며 묻는 에이든에게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부분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그럴까 봐 미리 S급 길잡이를 대기해놨거든요. 아! 마침 오는군요.”
펄럭!
하늘에서 까만 점이 점점 커진다.
방긋방긋 웃는 귀여운 아기용이 하늘을 부드럽게 활공하더니 이내 내 품에 뛰어들었다.
“뀨!!”
재롱덩어리가 품속에서 꼼지락거렸다.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보아하니 임무를 제대로 완수한 모양이었다.
* * *
깊은 숲.
엘프의 안식처.
리처드 대장로의 왼팔로 불리던 아멜리아는 밧줄에 꽁꽁 묶인 채 창고에 갇혀있었다.
그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리처드 대장로가 말한 세례식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따져봐도 세례식에 대한 불안감이 계속해서 뇌리에 맴돌았다.
아멜리아도 맨 처음에는 세례를 받으려고 했다.
그랬던 그녀가 처음으로 망설이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혼의 라이벌로 여기던 스콧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가위바위보도 지기 싫었던 상대였기 때문에, 스콧이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아멜리아는 그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 결과, 세례를 받은 이후로 육체적인 능력만큼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이와 비례하여 정신적인 부분이 취약해졌는데, 특히나 인간에 대한 무분별한 적개심을 시도때도 없이 드러냈고 지능도 좀 떨어진 느낌이었다.
이는 비단 스콧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강화전사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특히 오래전에 세례를 받은 사람일수록 해당 증세가 더 심해졌다.
요새 세례자의 행동을 보면 뒤가 없고 미래를 포기한 사람들 같았다.
종족의 안위보다는 인간의 피와 살을 맛보지 못해 안달이 난 흡혈귀 같달까.
세례를 받은 간부진과 매일을 부대낀 그녀인지라 이러한 변화가 더욱 확실히 체감됐다.
정신이 꼿꼿해야 궁극적인 강함을 달성한다는 철학을 고집하던 그녀로서는 세례식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허나 세상일이 어찌 뜻대로만 되겠는가.
창고 문이 열리며 엘프 간부 두 명이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며 다가왔다.
“아멜리아, 세례식을 받을 때가 되었다.”
“이미 말했을 텐데. 나는 세례를 받지 않는다.”
“너에게 결정권 따위는 없어. 위대하신 대장로께서 너를 필두로 종족 전체에게 세례식을 내릴 테니까.”
강제로 끌고 가려 했다.
그래서였을까.
바닥에 떨어진 뾰족한 돌로 밧줄을 끊어놓았던 아멜리아가 번개같이 뒷목을 쳐서 간부 하나를 기절시켰다.
당황한 다른 간부가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려 했다.
“어림없지.”
그 괴물 같은 헤논을 상대로 유효타를 먹일뻔한 아멜리아였으니, 놀라서 자세가 무너진 강화엘프 하나 정도는 껌이었다.
재빠르게 달려들어 상대의 뒤에 업히더니 손으로는 헤드락을 걸고 발로는 허리를 조였다.
복부에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뇌에는 산소가 차단된 간부는 비명조차 못 지르고 컥컥 대다가 침묵했다.
결국 저질러버렸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기척을 죽인 그녀가 엘프의 안식처를 벗어났다.
막상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엘프인 그녀가 부락을 떠나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막막한 심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의 머릿속에 불현듯 한 인간이 떠올랐다.
바로 레이븐 숲에서부터 줄곧 충돌했던 헤논 로이드 자작이었다.
“제길! 하필 이런 순간에 빌어먹을 놈 얼굴이 떠오르다니.”
꿈에서라도 만나기 싫다.
그래도 상대하는 입장이었기에 놈의 강함과 유능함만큼은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다.
무엇보다 아멜리아는 헤논이 하이엘프이자 종족의 정신적 지주였던 사샤를 데리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사샤님을 만나야 해.’
곁에 있는 인간이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은 사샤를 만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지금에 와서 리처드 대장로의 집단 세례식을 막을 권한과 힘을 가진 건 그녀뿐이었다.
아멜리아는 우거진 숲을 거침없이 헤치며 대산림 외곽으로 나아갔다.
바로 그 시각.
사샤를 대동한 헤논 일행 또한 엄청난 속도로 대산림 안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 *
동부 대산림.
거구의 캠벨도 한아름에 안지 못할 두꺼운 고목들이 울창하게 늘어서 있다.
이끼가 그물처럼 늘어져 진행로를 막았고 처음 보는 동식물들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븐 숲도 제법 깊은 숲이었지만 동부 대산림에 비하면 아기 수준이었다.
“도련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군대를 이곳에 데리고 왔다면 길 뚫는 데만 한세월이 걸렸을 겁니다.”
단검을 꺼내 길을 뚫던 시온의 한마디였다.
선두에 있던 캠벨은 마나소드까지 써가며 풀과 나무들을 썰어버렸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나도 천마검을 휘두르며 시온과 캠벨의 작업에 동참했다.
“제기랄! 더럽게 덥군!”
아직 초여름이었고 숲은 서늘했다.
그런데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는데, 그만큼 쉴 새 없이 빠르게 이동한 탓이다.
우리가 애쓰는 걸 보던 사샤가 도와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몇 번 칼질하다가 손목이 부러지자 얌전히 따라가는 쪽을 택했다.
“뀨! 뀨뀨! 뀨!”
반면에 코코는 신났다.
이제 보니 요녀석은 드래곤답게 숲을 좋아했다.
게다가 날개가 있어서 지형지물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공중을 빙글빙글 날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가끔은 숲에 서식하던 소형 몬스터가 우리를 습격했는데, 그런 몬스터에게는 코코가 하늘에서 내리꽂는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비록 헤츨링이라지만 오리하르콘에 비견될 만한 단단한 비늘을 지녀서인지 코코와 부딪친 몬스터는 그 자리에서 침묵했다.
[코코 — 헤츨링 Ⅰ]
[진화율 — 2%]
누가 악마 삼키던 헤츨링 아니랄까 봐.
몬스터를 사냥하면 경험치를 얻고 진화율이 올라갔다.
진화율이 100%에 도달하면 한 단계 성장하고 이를 거듭할수록 코코는 헤츨링에서 벗어나 강력한 성체 드래곤으로 거듭날 것이다.
아무튼 코코의 안내를 받아 최대 속력으로 착실하게 대산림을 헤쳐나갔다.
코코의 반응을 보니 목적지가 얼마 안 남은 모양이다.
“잠시 휴식.”
엘프의 안식처(엘프족의 거주지를 일컫는 말. 사샤가 말해주었다.)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둥글게 앉은 우리는 정체를 들킬까 봐 모닥불조차 없이 주머니에서 삼각 김밥을 꺼내서 우물거렸다.
삼각 김밥은 아르니아 대륙에는 없는 음식이어서 내가 시온에게 따로 만드는 법을 설명해서 제작한 특별 식사였다.
“이거 제법 맛있군요.”
시온이 삼각 김밥 한쪽을 다소곳이 베어 물고 말했다.
사샤도 옆에서 감탄했다.
“맞아요. 쌀을 쪄서 소금간을 한 다음에 미역으로 감싸다니. 이런 음식은 처음 봐요. 말린 육포보다 훨씬 영양가 있고 배도 불러요.”
“원래는 다른 재료도 같이 넣어서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밥에 소금간만 했다. 성에 돌아가면 더 다양한 레시피를 알려주지.”
“뀨뀨!”
코코도 삼각 김밥이 맛있는지 입가에 밥풀을 묻혀가며 방방 뛰었다.
캠벨은···자기 혼자 삼각 김밥을 여덟 개째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시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일갈했다.
“그만 좀 먹죠? 이러다가 도착하기도 전에 식량이 떨어지겠습니다.”
“어차피 거의 도착했다며? 남은 식량 다 털고 다음 식사는 엘프 마을에서 해결해야지.”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비상식량은 남겨야지요.”
“아몰랑. 그냥 다 먹을래.”
“어휴!”
“뀨! 뀨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온과 캠벨이 투닥거린다.
최근에는 여기에 코코도 합세하여 시온과 함께 캠벨을 몰아세운다.
졸지에 2대1이 된 캠벨이 투덜거렸다.
“쳇! 저 도마뱀은 왜 하녀 편만 들지?”
“뀨뀨!”
“그 이유를 모르니까 당신 편을 안 드는 겁니다.”
“저거 알이었을 때 확 후라이를 해먹었어야 했는데.”
“뀨우!?!?”
후라이를 해먹는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코코가 빠르게 내 뒤로 숨었다.
알이었을 때 캠벨이 했던 말이 제법 충격이었는지 후라이라는 단어에 격한 반응을 보여주는 코코였다.
지금이야 캠벨이 훨씬 강하니까 코코가 내 뒤로 숨는데 나중에 성체가 된 뒤에 어떻게 감당할지 궁금해지긴 했다.
‘캠벨이 내 등 뒤로 숨으려나? 안 가려질 텐데···’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긴장을 빼놓고 있을 때.
의식 속에서 천마의 목소리가 퍼졌다.
-애송아, 전방에 적이다. 저번에 그 암살자 같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마가 경고해줄 때까지 몰랐으면 트윈테일 협곡에서 내가 풀어줬던 그 여자가 분명했다.
다른 건 몰라도 기척 숨기는 솜씨 하나는 확실했으니까.
“전원 전투 준비.”
말 한마디에 웃고 떠들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돌변했다.
시온이 양손에 날카로운 예기를 뿌리는 단검을 꺼내 들었고, 캠벨이 자기 몸통만 한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치켜들었으며, 코코가 붕붕 날며 사주경계를 했고, 나 또한 천마검을 뽑아 사샤를 보호했다.
천마가 일러준 방향을 잔뜩 노려보고 있기를 십여 초.
건너편 수풀이 흔들리더니 검은 신형 하나가 쏜살같이 우리 쪽을 향해 쇄도했다.
“하앗!”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행의 대응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가장 앞쪽에 있던 캠벨이 야구 배트 다루듯이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러 습격자의 몸통을 쳐냈다.
콰앙!!
검면에 몸통이 제대로 명중했다.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는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습격자.
물도마뱀 발걸음을 시전한 시온이 정신 못 차리는 적의 양팔을 구속하고 급소에는 단검을 겨누었다.
결국 습격자는 무엇을 해보지도 못하고 제압당했다.
“잠깐! 항복!”
습격자는 정체는 묘령의 여인.
예상대로 일전에 만났던 암살자였다.
그녀는 다급한 표정이었다.
“내 말 좀 들어봐.”
“이거 적장이 넝쿨째 들어왔군. 목을 잘라버린 후 공격을 시작하면 딱 좋겠는걸?”
“잠시만요! 아멜리아의 말을 들어봐요!”
사샤가 앞으로 나서서 캠벨을 말렸다.
나도 사샤의 말에 동의했다.
그동안 파악한 바로는 저 암살자는 이렇게 무턱대고 단신으로 돌격하는 무모한 타입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우리를 공격할 의도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마치 우연히 마주친 느낌.
“캠벨, 멈춰라. 저 여자 말을 들어보고 싶군.”
“쳇! 부단장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캠벨이 뒤로 물러났고 시온도 압박하던 자세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그러자 아멜리아는 사샤를 쳐다보더니 애타게 부르짖었다.
“사샤님! 저희 부족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저도 엘프족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리처드 대장로가 엘프족 전원에게 강제로 세례식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
놀라운 소식이다.
세례식이 엘프족을 얼마나 망가트리는지는 진작에 알아냈다.
애초에 동부 대산림을 공격하는 이유도 리처드 대장로가 행하는 세례식의 희생자가 더 늘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도 있었다.
그런데 엘프족 전원에게 세례를 내리겠다니, 만약 그렇게 되면 엘프족은 멸족이었다.
“절대 그렇게 내버려두어선 안 돼요!”
사샤가 거의 비명을 질렀다.
나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 생각.
“방금 한 말이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라면 나 혼자 여기를 돌아다닐 이유가 없잖아.”
“그것도 그렇군.”
제법 신빙성이 느껴진다.
바로 그때.
아멜리아가 왔던 길을 따라서 전사 부대가 나타났다.
그녀가 말한 추격조였다.
우리와 함께 있는 아멜리아를 본 엘프 전사들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렸다.
“크크큭, 그럼 그렇지. 배신자가 인간과 붙어먹고 있었군.”
“우리가 베풀 마지막 자비마저 걷어차는군. 넌 세례가 아니라 즉결처형이다.”
“더불어 너희 열등한 인간들도 모조리 죽여주마.”
살기를 줄기줄기 풍기는 강화전사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긴 글러 먹었다.
“아멜리아라고 했나?”
“맞다.”
“일단 여기부터 정리해주지. 그다음에 차분히 이야기 나눠보자고.”
천마검을 뽑고 앞으로 나섰다.
지금은 입의 대화보다는 몸의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