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21화 (21/200)

3장 북부 : 움켜쥔 망나니

“캠벨이 귀족 신병이랑 결투한다!”

척박한 북부에는 별다른 유흥이 없다.

블랙캐슬의 대표주점 블랙허니에서 종업원 에리카를 보며 맥주나 마시는 게 삶의 낙이랄까?

그런 군인들에게 결투란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심지어 그냥 대결도 아니다.

레인저단의 부단장 캠벨과 귀족 신병이 부단장직을 놓고 벌이는 짭짤한 스토리까지 가미된 결투였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구름 떼처럼 몰려든 관중은 나와 캠벨을 둘러싸고 둥글게 원을 그렸다.

“캠벨의 덩치는 언제봐도 엄청나군.”

“신병도 제법 체격이 된다만 캠벨과 비교하면 애송이야.”

“무엇보다 녀석의 외모를 보라고. 레이디를 울릴 얼굴이지, 몬스터를 잡을 얼굴과는 거리가 멀어.”

“캠벨이 제일 싫어할만한 관상이야. 아무래도 저 곱상한 얼굴이 이번에 아주 박살이 나겠군.”

예상했던대로 대다수 구경꾼들은 레인저 부단장 캠벨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입방아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단 한 명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였다.

-저놈도 강하다. 이곳 경지로 분류하자면 소드유저 최상위는 될 게다. 무엇보다 타고난 신체의 용력이 상당해 보이는군.

일전에 상대했던 누더기 용병단장 게빈이 소드유저 상위에 해당하는 고수였으니 캠벨은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셈이다.

‘이길 수 있을까?’

나 또한 게빈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전했다.

검술실력은 소드유저 상위인 시온과 비교해서도 쉽사리 안 밀릴 수준까지 올라왔다.

게다가 드루이드의 능력까지 쓰면 그녀를 뛰어넘을 자신도 있었다.

‘그래, 쫄 것 없어. 그동안 많이 성장했으니까.’

아르니아 대륙으로 빙의된 이후로 줄곧 배수진을 쳐놓고 외나무다리를 건너왔다.

한 번이라도 발을 삐끗하면 영원한 무저갱으로 빠지는 그런 위험한 순간들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내가 가진 능력과 잠재력을 믿고 발자국을 떼었다.

이번에도 그럴 차례였다.

“흐음. 기본적인 자세는 잡혀있군. 어디서 검술을 배우긴 배웠나 봐?”

“너를 잡을 정도까지는 배워두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너 같은 귀족들을 자주 봐왔다. 검술 스승 밑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놈들이 딱 너처럼 거만하지.”

“그런가?”

“하나같이 온실 속 화초들이다. 조금이라도 변수가 끼어들면 아무것도 못하고 머리가 하얘지는 반푼이들. 그래놓고 무슨 싸움을 한다는 건지.”

배고픔 모르는 귀족이라서 마음가짐이 허술할 거라고?

확실히 다르긴 다르지.

저들은 아르니아 대륙이 종말을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난 알고 있으니까.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는 새싹이나 거목이나 모두가 평등하게 휩쓸리는 법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스텝에 목숨이 걸려있으니 오히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절실했다.

“북부인들이 입으로 싸우는 취미가 있는지는 몰랐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긁어주자 캠벨이 씩 웃었다.

“배포는 좋군.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보마!”

탓!

캠벨이 땅을 박찼다.

그의 신형이 쭈욱 늘어났다.

검을 맞받아치려 했으나,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네놈의 필패다.

천마의 조언에 몸이 우뚝 섰다.

확실히 캠벨의 괴력은 범상치 않았다.

순수 근력으로만 날 벽으로 날려보낼 수준이었는데 여기에 마나까지 실린다면?

천마검이 버텨도 내가 못 버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게빈과의 일전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지금 상황과 완전 반대였다.

내가 힘이 셌고 게빈은 힘이 약했다.

이럴 때 게빈은 어떻게 했더라.

‘부드러울 유(柔)’

유검을 사용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검을 늘어트렸다.

그리고는 캠벨의 공격을 막았다.

까앙!!

모두가 기대했던 굉음은 없었다.

그저 내가 세 걸음 물러났을 뿐.

검손잡이가 지잉 울리면서 손목이 뻐근했다.

과연 캠벨의 공격은 무지막지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대로 된 판단을 했다.

만약 저 엄청난 일격을 대놓고 막았다면 충격을 못 이기고 공중에 붕 떠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캠벨이 후속타를 먹이고자 달려들었으면 게임 오버였겠지.

캠벨도 내가 그의 일격을 무난히 넘기자 눈가에 이채를 띄었다.

“입만 산 애송이는 아닌 모양이구나. 이것도 받아보거라!”

거구의 캠벨이 달려들었고.

이윽고 무자비한 난타쇼가 펼쳐졌다.

손발이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공격을 흘리고 충격을 흡수했다.

쾅! 콰쾅! 콰콰쾅!

일합이 십합이 되고 십합이 백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에는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나만 그렇진 않았다.

캠벨의 숨도 점차 거칠어지고 있었다.

지켜보던 관중들의 눈에는 점점 흥미가 깃들었다.

“신병이 제법 잘 싸우잖아?”

“여태까지 캠벨을 상대로 저 정도까지 분전한 신병이 있었나?”

“없었지. 죄다 쫄아서 고개를 숙이거나 어중간하게 덤벼서 처맞았거든.”

만약 여기가 민간인이 대다수인 대륙의 어느 평범한 시장바닥이라 가정해보자.

싸움을 볼 줄 모르는 그들은 회피로 일관하는 나를 보고 야유가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북부.

현역 군인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이들은 흐름을 파악할 줄 알았다.

단순히 밀리는 게 아니라 물러나면서도 예리하게 빈틈을 찌르려는 내 의도를 모두가 느꼈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이런 미꾸라지 같은 놈!”

결국 캠벨의 입에서 욕설이 나왔다.

욕설이라 쓰고 청신호라 읽는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욕설과 패드립은 곧 칭찬이다.

“어디서 요상한 검술을 펼치는 거냐? 정정당당하게 붙어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석적인 검술은 변수에 약하다 말하지 않았나? 인제 보니 외모는 물론이고 기억력까지 오크를 닮았군.”

“으아아아!!”

캠벨이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대결 이후 처음으로 보이는 약점.

바로 들어갈 수도 있었으나 상대가 의도적으로 노출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신중하고 확실하게 노린다.

[스킬 우드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주변 환경이 아군이 됩니다.]

저번에 천마에게 보여줬던 새롭게 얻은 액티브 스킬 나무 조종을 시전했다.

땅밑을 뚫고 고개를 내민 나무줄기가 슬쩍 캠벨의 발목을 속박했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눈썰미가 좋은 고수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어라?”

캠벨이 휘청였다.

이때만을 기다렸다.

수비 일변도의 자세를 풀고 공세로 전환했다.

신검합일이라 했던가.

검과 하나가 되어 앞으로 쏘아졌다.

속으로 승리를 자신했다.

‘끝난 게임이군.’

우드 컨트롤로 상대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급습하기.

필립도 당했고 게빈도 당했다.

아마 캠벨도 똑같이 당할 것이다.

쉽게 여기고 그의 급소를 향해 칼을 뻗어 나갔다.

그리고는 발견했다.

내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놈의 검을.

“미친! 지금 칼을 던진 거야?”

검사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검을 던지다니.

상대의 대처는 그간 누구에게서도 본 적 없는 데이터였다.

만약 그 일격이 빗나가면 다음엔 어쩔 건데?

그야말로 뒤 없는 선택.

하지만 캠벨은 그 답이 뭔지 몸소 보여줬다.

“흐아압!”

화살처럼 날아오는 검을 피하느라 고개를 젖히자 공격이 다소 늦어졌다.

캠벨은 그 틈을 철저히 이용했다.

내 일검을 물구나무 자세로 피했다.

그리고는 회피와 동시에 공격을 전개했다.

마치 비보잉처럼 손에 땅을 짚고 발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거구의 발차기는 그 자체로 사정거리도 길고 위력적이었고, 변칙적인 공격을 예상 못한 나는 그대로 옆구리를 가격당했다.

콰지직!

갈비뼈에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시야가 뒤흔들렸다.

입안으로 차가운 눈이 들어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호흡의 균형이 깨졌다.

“퉤!”

피 섞인 눈을 내뱉었다.

땅바닥에 OTL자로 엎드린 채 정신을 차리고자 안간힘을 썼다.

발차기에 맞는 순간 천마검을 놓쳤는지 손이 허전했다.

그런 나에게 캠벨이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며 입을 털었다.

“검사가 검을 던질 줄은 몰랐나? 내가 그랬지. 너 같은 놈들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크핫하하!”

상대가 마무리하러 달려온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눈 아래 깔려있는 흙덩이를 손으로 꽉 쥐었다.

발차기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방심을 유발했다.

놈은 지금 눈이 뒤집힌 상태다.

타이밍은 지금!

촤아아악!!

캠벨이 간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몸을 뒤로 돌려 손에 쥐고 있던 모래를 흩뿌렸다.

넓게 분사된 흙이 캠벨의 얼굴에 퍼부어졌다.

이물질에 눈알에 정확히 들어갔다.

그가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악! 이런 치사한 놈이!”

“네가 먼저 시작한 개싸움이다!”

멈칫하는 캠벨의 허리를 붙잡고 다이빙했다.

90kg에 달하는 몸무게를 온전히 사용하자 캠벨도 결국엔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두 사내가 눈밭을 데굴데굴 굴렀다.

둘 다 칼을 놓쳤으니 격투기로 치면 그라운드 싸움이 된 상태.

“멍청한 놈! 감히 체술로 나한테 싸움을 걸어? 떡이 될 때까지 패주마!”

나 또한 힘으로는 저 오크 같은 놈에게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내가 먼저 기술을 걸었으니 선공권도 나에게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 기회.

주먹을 불끈 쥐고 온 힘을 다해 캠벨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렸다.

빠아아악!!

제대로 들어간 라이트훅.

인간의 신체구조를 가졌다면 이 지점에 주먹을 맞고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승리를 자신했다.

내 턱에 무언가가 날아오기 전까진.

데에엥!!

골이 흔들리고 종소리가 울렸다.

몸이 휘청거렸다.

저 무지막지한 놈은 정통으로 처맞고도 나한테도 치명타를 먹인 것이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지만 억지로 버텼다.

의식을 잃으면 끝장이다.

퍼억!

다시 한 번 주먹을 먹여줬다.

그러자 재차 날아오는 충격.

마치 내가 휘두른 주먹에 내가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보아하니 놈도 눈알이 풀려있다.

서로 마구잡이 주먹을 날려댔다.

“이 개새끼가!”

“치사한 새끼! 모래를 뿌려?”

“검을 던지는 너보다야 낫지.”

“옹졸한 새끼.”

“오크 같은 새끼.”

자연히 말수가 늘어났다.

계속해서 충격이 오긴 오는데 이젠 나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이미 첫 일격을 맞은 시점부터 둘 다 반쯤 그로기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치명타를 못 날리고 허우적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한 걸까?

비틀대던 캠벨이 갑자기 타격을 중지하고 날 덮쳤다.

원하는 부위에 주먹이 안 맞으니까 확실하게 초크로 마무리하려는 의도.

갑자기 숨통이 막혔다.

놈의 헤드락이 나에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제발 좀 뒤져!”

“컥! 커허억!”

투명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기절할 것만 같았다.

지금만큼은 대륙을 구하겠다 종말을 막겠다 게임 속 세상을 빠져나가겠다는 거창한 의도 따윈 없었다.

그냥 저 캠벨이란 사내를 이기고 싶었다.

이제는 자존심 문제였다.

의식이 흐려졌다.

목이 졸리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땅바닥을 손으로 더듬었다.

짱돌이라도 잡히면 바로 놈의 머리를 가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돌치고는 물렁물렁한데 모래보다는 좀 더 딱딱한?

뭔지는 몰랐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이걸로라도 어떻게 해야겠다.

그대로 움켜쥐었다.

“끄아아아아악!!!!!”

아련한 비명이 들렸다.

기절 직전이라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았다.

어쨌든 다시 움켜쥐고 놈의 머리를 치려고 했다.

“으아악! 그만! 그마아아안!”

이게 왜 안 뽑힐까?

땅바닥에 깊게 박혀있는 짱돌인가 보다.

어떻게든 뽑아내려고 온 힘을 다했다.

“으아아아!!!”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상대도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나와 똑같은 처지겠지.

캠벨에게 당한 일격이 크긴 컸나 보다.

결국 나는 정체불명의 돌을 땅에서 뽑아내지 못했다.

그저 저절로 헤드락이 풀렸다.

숨이 돌아왔다.

“허억! 헉! 허어억!”

힐끗 쳐다봤더니 캠벨은 거품을 물고 기절해있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간신히 일어났다.

마치 소주 열 병을 단번에 들이킨 것만 같은 느낌.

몸을 가누질 못하겠다.

그래도 승자의 기쁨은 누려야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이겼다···”

어라?

주변이 조용하다.

다들 환호할 줄 알았는데.

북부인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렇다고 치기엔 시온의 표정도 뭔가 오묘하고.

언제 왔는지 사령관 카리나도 심각한 표정으로 캠벨을 살펴보고 있다.

“내가 이겼다고···”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밀려오는 어둠에 의식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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