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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남겨진 약속에서 기다리는 여인 (42/49)

Part3: 남겨진 약속에서 기다리는 여인

아우레스력 1876년, 안스란력 436년 1월 12일.

“뭐랄까. 처음이 아니라서 그런지 익숙해진 상황 같아.”

“…언니 말에 가시가 있다고 여기는 건 단순히 제가 자의식 과잉이라 그런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티나세르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읽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나미아가 말하는 그 익숙해진 상황이란 자마닌이 방에 처박혀서 3일째 나오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었다. 티나세르 역시 두문불출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자마닌이 티나세르보다 자신을 생각하는 면이 보인다면, 그는 하루 세끼의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먹는다는 점이다.

먹을 것만 제대로 챙겨먹는다면 생존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나미아나 오디는 마치 그가 없는 사람이라는 듯 행동했다. 가끔가다 언급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티나세르는 도저히 책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심사로 그렇게 된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보낼 수 있는 평범한 걱정을 했다.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요?”

“글쎄. 적어도 유언장 작성과 튼튼한 목줄을 준비하지는 않는 것 같으니 뭔가 생각이라도 하고 있겠지.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럴까요….”

티나세르는 그래도 걱정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듯이 열중하던 요리도 그만두고서 주어진 음식을 말없이 챙겨먹으며 자폐증 환자의 흉내를 내는 사람에게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평온을 유지하는 나미아가 심히 부러워지는 그녀였다.

완전히 미움을 사버린 자마닌이 그렇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직원들은 환호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고, 그들 사이에서 브란디에고의 주가는 펄쩍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옳은 판단’을 내린 티나세르의 주가도 덩달아 뛰게 되었다. 그리고 자마닌을 걱정하는 사람은 그들 중에는 없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그대로 작용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동정 받는다는 걸 알면 더욱 비참해질 사람 같았지만, 티나세르는 그를 동정했다. 브란디에고 역시 그를 동정했다. 예상되는 반응 중에 하나였던, 그가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으면서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사람이 왜 저렇게 된 걸까요?”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시합의 결과가 그렇게 작용했다는 건 확실하지. 하지만 너의 평가 중에서 어느 것도 그런 의심이 들진 않는 걸?”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티나세르는 다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얼마간 생각하고 있었을까, 중간점검을 위해 내려갔던 오디가 올라왔다.

“저 왔어요. 자마닌 씨는 아직 방에 계시나요?”

나미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답했다.

“어서와. 아직 나오지 않았어. 조금 전에 점심을 받아들긴 했어.”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나미아 님. 자마닌 씨를 찾아온 사람이 있어요.”

“응? 무슨 말이야?”

손님을 찾아오는 손님이라니, 약간 이상한 뉘앙스를 가진 말에 나미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오디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오디의 뒤에는 한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저… 자마닌이 정말 여기 있나요?”

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성이었다. 오디의 턱쯤에 올 듯한 키에 조신하게 차려입은 여행복은 그녀가 부유층의 자제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파란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금발머리는 풍성하게 늘어져 어깨를 덮고 있었다. 나미아는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자마닌 씨를 찾아오셨다고요?”

“네. 여기로 간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이쪽으로 오세요. 앉아서 이야기하죠.”

나미아는 일어서서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고, 티나세르는 옆으로 슬쩍 비켜 앉았다. 자마닌을 찾아온 여인은 그녀가 입은 옷만큼이나 다소곳한 걸음걸이로 걸어와 얌전하게 자리에 앉았다. 오디는 그녀의 숄을 받아들었고,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아뇨. 별말씀을.”

오디는 숄을 걸어두고 차를 준비하기 위해서 주방으로 들어갔고, 나미아는 앙증맞다는 말이 어울릴 아가씨가 누군지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나미아라고 합니다.”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예?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요?”

여인은 빙긋 웃었고, 나미아는 자신의 인명록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앞의 여성에 대한 건 전혀 찾아낼 수 없었기에 재차 물었다.

“저… 어디서 뵈었었죠?”

“기억 못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10년 전에 제국 황실 파티에서 한 번 뵈었을 뿐이니까요. 그때 저는 열두 살이었죠. 제국의 바란스카 이그레스 후작의 삼녀인 세이아란 이그레스라고 합니다."

“이그레스 후작…? 아아! 기억나네요! 큰 언니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던 귀여운 아가씨가 훌륭하게 성장하셨네요.”

“기억해주셔서 고마워요.”

세이아란은 생긋 웃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은 어린 꼬마를 여성으로 바꿔놓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릴 때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기에 못 알아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세이아란 씨. 자마닌 씨는 어쩐 일로 찾아오셨나요?”

소개를 할 필요가 없어지자 나미아는 곧바로 본론으로 찔러 들어갔고, 세이아란은 걱정을 담은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라도 약혼자가 갑자기 일터를 뛰쳐나가 소식이 없다면 걱정하기 마련이겠지요. 렌디너스 왕궁의 4 별관에서 뛰쳐나갔다는 소릴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어요. 그래도 다행히 어디 간다는 말은 흘렸기에 찾아올 수 있었답니다.”

나미아는 경악했다. 약혼녀가 있었단 말인가?

“야, 약혼자요?!”

“네. 15년밖에 차이가 안 나잖아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제국 후작의 삼녀께서 왜 요리사와 약혼을…?”

세이아란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국은 세습제도 아니고, 귀족의 자식은 귀족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삼녀이기도 하니 혼약관계에선 관대한 편이죠. 전 예전부터 작은 식당을 꾸려나가고 싶었거든요. 어렸을 때의 약속이지만요.”

“음… 뭔가 깊은 사연이나 복잡한 이야기나 꽤나 오래 파고 들어갈 이야기가 있는 것 같군요.”

“짐작하신 대로에요. 그런데 자마닌은 어디 있지요?”

“저쪽 방에 있어요. 3일째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 있지요.”

나미아는 5G2호를 가리켰다. 굳게 닫힌 문은 어딘지 모르게 접근을 거부하는 기운을 모락모락 풍기고 있었다. 세이아란은 틀어박혀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일이라면 일이 있었죠. 음… 일단 차나 마시며 이야기를 해볼까요? 바깥 날씨가 추운데 속도 좀 따뜻하게 녹이면서 이야기하죠.”

나미아는 오디가 차를 가져오는 시간에 맞춰 말했다. 오디는 잠시 대화가 중단된 사이에 테이블에 티 세팅을 시작했고, 그 세팅의 마지막으로 나미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미아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흐음… 일단 이쪽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자마닌 씨가 찾아온 건 9일 전의 일인데요….”

나미아는 자마닌이 찾아와 제국 황실 요리 대회에서 우승해 황실 요리사가 되고 싶어한다는 소망을 내보였다는 것-세이아란의 작은 한숨-부터 시작해, 그의 요리 철학으로 인해 여관의 요리장과 말다툼을 벌였다는 일-역시 한숨-, 승부를 위해 요리의 첫 글자와도 연관이 없던 브란디에고를 내세워 그를 부채질한 일, 티나세르를 심사위원으로 한 승부에서 자마닌이 패배한 일-세이아란의 안심하는 듯한 표정과 안도의 한숨-을 객관적으로 조리 있게 이야기했다.

중간중간 여러 반응을 보여 다른 이들을 의아하게 한 세이아란은 최종적인 반응으로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고, 나미아는 순간 약혼자의 실패를 바라는 것이 최근 제국 여인들의 유행인가 하는 잡생각까지 떠올렸다.

“음….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왠지 굉장히 안심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예? 아… 맞아요. 안심하고 있어요. 덧붙여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도 드려야겠네요. 자마닌을 이겨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나미아는 자신의 생각이 사실이 아닌 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티나세르는 나미아 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세이아란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야기에 끼여들 자격은 없는 것 같지만 그녀는 과감하게 끼어들기로 했다.

“저… 실례지만 왜 그렇게 안심하고 계시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이상하게 보였나 보네요. 여러분들도 아실 거라 생각하지만 자마닌의 태도는… 뭐랄까, 너무 과도하게 당당했죠?”

“예. 그랬지요.”

“그렇게 된 이유도 사실 그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티나세르 양이라고 했죠? 그 사람의 실력이 어떤지는 잘 알겠네요.”

티나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란디에고의 따스함이 마음을 자극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주저없이 자마닌의 요리에 손을 들었을 것이다. 세이아란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런 거예요. 실력은 높은데 아직 인간적으로 덜 컸거든요. 게다가 어설프게 높은 실력이 아니라 확실하게 높아요. 고작 37세의 나이로 왕궁 요리사가 될 정도면 실력 보증은 확실하겠죠. 그래서 그는 안하무인이었어요.”

상황은 사람을 만든다. 눈을 돌려 주위를 보았을 때 자신이 제일 뛰어나다고 느낀 사람은 자연스레 자만심을 가지게 된다. 자신이 옳고, 진리에 닿아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진리라는 건 틀릴 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겐 다른 이들이 보기엔 숨 막힐 정도로 꽉 막힌 신념을 가지게 되고, 주위를 완전히 배척하고 무시한다. 티나세르는 무의식적인 동의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아란은 말했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면서부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죠. 처음의 약속 따위는 잊어버리게 되었어요. 왜, 남자들이 흔히 그러잖아요? 목적했던 것 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더 나아가죠. 게다가 그 목적은 잊어버리지요. 더 큰 성과에 도전하고, 더욱 큰 목적을 삼아서 끊임없이 돌진하길 반복하죠.”

나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봐온 남자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어쩌면 그건 남자들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세이아란의 맛을 거들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돌격하고 있지요.”

“예. 자마닌도 지금 그런 상태에요. 이미 그는 저와의 약속을 망각한 채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고는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죠. 비뚤어진 생각으로.”

“그래요. 동감해요. 그런데 그 처음의 약속이 뭐였죠? 아마 그것 때문에 찾아오신 것 아닌가요?”

나미아는 계속해서 언급되는 처음의 약속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분명 자마닌이 요리의 길에 들어선 것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의 현재 나이가 서른일곱이고, 경력이 15년이라고 한다면 스물 둘이라는 늦은 나이에 요리를 시작했다는 뜻이 된다. 뭔가 계기가 있지 않으면 성인이 그렇게 급반전을 할 일은 없다.

세이아란은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짓는 것이다. 그녀는 손을 깍지 껴 무릎 위로 올리고는 말했다.

“작은 식당을 둘이서 꾸며가기로 했죠. 돈은 얼마 벌지 못해도 따스한 느낌이 가득한 서민적인 식당을 만들자고요. 그때의 저는 소녀라는 말도 어우리지 않을 어린애였고, 이뤄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자마닌은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는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눈부신 성장을 했죠. 저는 소녀가 되었을 때 그가 이뤄놓은 걸 보고는 놀랬어요. 제 막연한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았죠.”

그녀는 과거의 기억에서 헤어 나와 피로한 표정을 지었다. 소파에 등을 묻은 그녀는 천장 아무데나로 시선을 던지고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런데 그는 점점 높은 곳을 바라보았고, 저는 그것이 약속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죠. 하지만… 그는 변했고, 남겨진 곳엔 꿈을 꾸던 소녀가 여인이 되서 외로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를… 계속… 바라보며….”

남겨진 약속에 남아있는 여인은 천천히 말꼬리를 흐렸다. 처음엔 바라보지 않은 꿈을 일궈나가던 남자에게 기대를 가지게 된 소녀는 여인이 되어서도 그를 기다렸지만 정작 그녀가 꿈의 자리에 남아있을 때는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떠난 상태였다.

“약속에 홀로 내버려 둔 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에게 미안해요. 그래서 전 약속에 남아있기로 했지만…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전 계속 기다릴 거예요. 그를 홀로 두지 않을 거예요. 전 그가 다시 약속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사그라지는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그녀의 말에 뭔가 다른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멋지네요.”

“응. 멋진 여인이야.”

세이아란이 자마닌의 옆방으로 짐을 풀러 가고, 남은 세 사람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티나세르는 자마닌의 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람은 그걸 기억하고 있을까요?”

“글쎄. 어쩌면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을지도 모르지. 흔한 경우야. 목적을 위해 노력하다가 그 노력이 목적이 되고는 최초의 목적을 망각하는 경우지. 수단으로 인해 목적을 잊은 경우는 흔해. 여러 조건만 제하면 자마닌도 결국 노력하는 사람의 평범한 샛길이로군.”

“평범하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지만요.”

“그렇지? 까르륵!”

오디의 무심한 말에 나미아는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그녀가 자마닌의 행동에 대해 다른 말을 하여 오디와 티나세르를 웃길 결심을 했을 때, 그녀의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미아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자마닌이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머? 자마닌 씨.”

나미아는 자마닌이 세이아란과의 대화를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여관의 방음시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신하는 그녀였다. 어쩌다보니 타이밍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자마닌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한 보폭으로 걸어왔다. 어찌 보기엔 뭔가 따지기 위해서 걸어오는 것 같았다. 표정도 굳은 결심을 한 것 같은 표정이라서 세명은 잠시 긴장하며 그가 걸어오는걸 보았다. 그는 이쪽에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기에 티나세르는 얼른 나미아의 옆으로 가서 앉았고, 자마닌은 티나세르가 앉았던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몸은 괜찮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였고, 나미아는 그의 몸 상태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녀는 그의 정신 상태에 대해 걱정했다. 괜찮을까?

오디는 새 잔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고, 자마닌은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오디가 새 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을 때 입을 열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옛날 생각이라는 말에 티나세르의 어깨가 잠시 흠칫했지만 그는 그걸 볼 수 없었다. 나미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양 말했다.

“옛날이라면 언제적인가요?”

“그러니까… 제가 잊어버리고 있던 약속이었습니다. 저는 약혼녀가 있습니다. 제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녀와의 약속 때문이었지요. 그녀는 작은 식당을 꾸려나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유명하지 않아도 좋고, 단지 따스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파는 자그마한 공간을 바랬지요.”

“소박하네요.”

“예. 그리고 전 그 소박함을 이뤄주기로 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고나자 지금의 제가 보이더군요. 약속에서 너무나 멀어진 바보 같은 모습이 말이죠.”

자마닌은 고개를 들어 티나세르를 보았다. 갑자기 시선을 받게된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마닌은 티나세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티나세르 양이 그런 생각을 나게 했습니다. 따스하고 행복한 요리…. 그것은 그녀가 원하던 요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요리를 만들고 싶었지요. 그녀의 소망을, 어린 아이였던 그녀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확실히 인생을 걸 가치가 있는 일이었지요. 소박한 행복을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티나세르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그녀의 말이 원인이 되어 그에게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마닌은 허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하하. 제가 걸어온 길을 보면 정말 가관이더군요. 자신이 예술가가 된 양 떠들었고, 약속은 잊어버리고서는 계속 전진하기만 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간단하게 배신하였지요. 바보 같습니다. 초심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티나세르 양의 말과 표정에서 되돌려 받은 제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지요.”

티나세르의 말과 행복한 미소는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말과 표정은 그가 15년 전에 보고 들은 그 말과 표정이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노력했지만 어느새 자신의 재능에 묻혀 잊어버렸다.

“그제였나요…. 밤중에 식사를 가지고 온 디에고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추운 곳에서 돌아온 티나세르 양을 위해 좋은 요리만을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승부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단지 맛있고, 행복한 요리만을 대접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배려를… 그는 그래서 요리시간 내내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걸 보면서도 저는 속으로 비웃었죠. 아양이나 떠는 머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머저리는 바로 저였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 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은 것일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초심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도 과연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걸 생각했습니다.”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나요?”

자마닌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미약한 움직임이었지만 그것은 확실한 긍정의 태도였다.

“너무 많이 돌아왔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소박한 약속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 소박함이… 제게는 너무 그립습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미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도 좋은 시간에 좋은 결심을 내린 손님을 보며 나미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오디나 티나세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제일 빠른 시작이에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약속을 이야기했던 그녀에게 얼굴을 들기가 너무 미안합니다. 저는 호언장담했지요. 대륙 최고의 요리사가 되겠다고.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녀를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도 부끄러울 것이다. 지금에야 와서 자신의 허물을 깨달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아름다운 모습이다. 15년이나 쌓아온 허물을 인정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보통은 완고하게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끝끝내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지만 그는 그걸 알고 있고, 인정했다.

나미아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에 찬사를 보내기로 했다. 그녀만의 방법으로.

“그럼, 당분간은 계속 부끄러워하셔야겠네요.”

“예? 무슨 뜻입니까?”

“머리가 복잡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어째서 이곳에 잔이 네 개가 있었을 까요? 자마닌 씨가 오기 전까지 있었던 제 4의 인물은 누굴까요? 그리고 조금 전 자마닌 씨의 옆방으로 들어간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귀여운 아가씨는 누구일까요?”

자마닌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그의 눈은 나미아와 그의 옆방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그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 듯 더듬거렸다.

“그, 그게… 저…?”

“그녀는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언젠가 당신이 돌아올 것임을 믿고서. 그리고 지금은 저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 그게… 저, 정말이십니까?”

나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마디의 말보다도 한 번의 행동이 때로는 더 큰 확신을 심어주는 법이다. 나미아는 5G3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세요. 부끄러워하러.”

“하하…! 세이아란!”

그는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문으로 달려들듯 뛰어갔다. 그 누구도 그가 레이디의 방에 노크도 없이 뛰어들었다 해서 그를 탓할 수 없을 것이다. 세이아란은 비명같이 기뻐하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자마닌!”

“세이아란!”

연인의 감격적인 재회에 티나세르는 눈물을 글썽였다. 세이아란은 너무나도 많이 돌아온 남자를 여인은 따스하게, 기쁘게 맞이했다.

“다행이에요. 훌쩍!”

“그래. 다행이야. 정말로.”

나미아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차향이 더없이 향기로웠다.

‘이걸로 한 건 해결 직전이군.’

그녀는 씨익 미소 지었다.

자마닌은 약 두 시간 정도 세이아란의 방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이 점잖은 편이라고 생각-오디의 눈으로는 명백한 착각-하는 나미아는 자신의 생각대로 둘 사이의 일을 엿듣거나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티나세르가 놀라면서 감탄하고 있을 때, 오디가 어김없이 나미아의 행동 분석에 들어갔었다.

“나오면 물어볼 거죠?”

“당연하지.”

티나세르는 잠시나마 감탄했던 자신을 후회했다.

자마닌과 세이아란은 뭔가 상당한 무게감이 있던 시간을 흘려보낸 듯 표정에서부터 여유로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척 보더라도 둘 사이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와서 좋게 끝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두 분 다 아주 좋은 얼굴들이세요. 평화로워 보이네요.”

나미아의 말에 자마닌과 세이아란은 멋적은 미소를 지었다. 자마닌의 어깨위에 언제나 떠돌던 ‘내가 최고야!’ 오오라도 사라진 것 같아서 나미아는 십분 만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콧대를 꺾을 예정이었지만 일이 생각보다 잘 진행되어 그가 생각 자체를 고쳐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자마닌 씨. 앞으로는 어쩌실 생각이세요?”

“음…. 그 점에 대해서 여러모로 고민했습니다만,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 예전의 목표를 이루기로 했습니다.”

“둘이서요?”

“…예.”

자마닌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고, 세이아란은 생긋 웃었다. 처음에 보던 반응과는 완전히 다른 그 반응에서 나미아는 잠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자마닌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진 것이다.

한 번 마음을 정한 사람이 과연 저렇게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이 떠올린 의문에 부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자마닌 같이 철저한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은 이른바 ‘광신도’와도 같아 자신의 생각을 쉽게 뒤바꾸진 않는다.

물론 며칠 전의 자마닌은 요리 경력 일주일의 신참내기에게 진다는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게다가 티나세르가 솔직하게 말한 것은 그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맞물리니 그에겐 크나큰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을 걸까?’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얄팍한 끈에 매달려 있는지는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끈은 놀랍게도 강하여 개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의지를 지탱하는 끈이 끊어지면 새로운 의지를 매달거나 떨어진 의지를 복구하는데 얼마나 힘들어야 하는지도 안다. 그렇기에 자마닌의 변화는 정말로 극적인 변화이다. 순간 세이아란이 마법사여서 자마닌의 성격을 근본부터 바꾼 것은 아닐까 생각한 나미아는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생각에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시기적절한 때에 세이아란이 등장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기억하지도 못했던 약속에서 기다리던 약혼녀가 찾아왔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세이아란은 지금 자마닌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마 자마닌이 그 과도함을 거세한 자신감을 되찾게 되더라도 세이아란은 여전히 그에게 있어 중요한 존재일 것이다.

‘세상에 공처가 한 명 더 추가되었으니, 그 이름하야 자마닌 와르벡이라.’

나미아는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서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와아, 부러워라. 사랑하는 사람과 뭔가를 같이 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 같아요. 우웅…. 나도 결혼하고 싶어졌다.”

“주위에 많지 않나요? 당장 아무 무도회나 나가셔서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대륙의 모든 미혼 남성들이 구름같이 몰려들 거예요.”

세이아란은 생글 웃으면서도 나미아에게 반격타를 날렸다. 나미아는 눈썹을 꿈틀하면서 수많은 공격-원래 생각에도 없던-을 날렸고, 세이아란은 능수능란하게 그것을 받아내고 때로는 돌려 침으로서 나미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오디가 자신의 주인을 한심하게 여기게끔 만들었다.

“나미아 님. 뭔가 대화의 목적이 틀려지셨어요.”

“그러니까…, 아? 응? 뭐라고?”

“하고 싶지도 않은 결혼하시겠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본론을 꺼내놓는 편이 더 좋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에요.”

“…넌 너무 정확해서 미워.”

“별말씀을.”

티나세르는 단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던 중심화제가 건져졌다는 것에 안도했고, 이 쓸모없었던 소모전은 무승부로 돌아가게 되었다. 쓸데없이 열 올렸던 나미아는 볼을 잔뜩 부풀리고는 몇 마디를 꿍얼거렸다가 이내 표정을 바꾸면서 말했다.

“어쨌든, 본론이나 이야기 하죠. 자마닌 씨는 제국 황실 요리 대회에 출전하실 생각 있으세요?”

“그 점도 많이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껏 제가 해온 일들을 돌아보면 그곳에서 입상이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 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음. 그러시다면 그곳에서 우승할 생각 같은 것도 아예 없군요.”

“예. 그렇습니다.”

나미아는 찻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미간을 파악 찌푸렸다. 손님의 앞이 아니었다면 곧바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했을 그녀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에도 적자냐!’

브란디에고와의 시합을 제시하고 난 뒤에 나미아의 계획은 대충 이러했다.

자마닌의 콧대를 부러뜨리고는 그의 요리관을 새로이 만들어서 재교육을 받게 한다. 의외로 재능이 있으니 요리관이 바뀌면 더욱 더 좋은 요리가 나올 것이고, 실력만 가지고도 제국 황실 요리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 같은게 없도록 그녀가 면밀히 조사하고 나머진 마음을 고쳐먹은 자마닌이 황실 요리사가 되는 것으로 해피엔딩. 그 뒤 일단 요리 대회의 우승 상금부터 비롯해 의뢰 비용이었던 10만 펜을 모두 받아내는 것으로 자신도 해피엔딩.

그런데 지금 그 계획은 순식간에 수장되어 버렸다. 사람 마음이야 바뀌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가계부에 빨간 줄을 그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속이 쓰린 그녀였다.

자마닌이 지금부터라도 다시 배운다면 충분히 입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완전히 욕심을 버려서 평온한 상태였고, 그와 세이아란의 꿈을 위해 걷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손님의 자유의지이며, 어찌 보자면 이것으로 일이 끝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뭐라고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강림했다.

그녀는 찻잔을 내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마닌 씨. 대회에 나가세요.”

“예? 그렇지만 저에겐 이미 소용 없는 대회입니다만….”

“아뇨, 소용있어요. 아마도 제 생각이지만 끝까지 들어주세요. 아무리 제국의 귀족이 1대에 그치고, 그런 귀족의 셋째 딸이라고 해도 바란스카 이그레스 후작께서는 쉽게 요리사에게 딸을 내주실 것 같진 않아요. 게다가 호젓한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아무런 일도 없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사랑하는 딸을 데려가겠다는 백수 청년에게 아버지가 취할 당연한 태도를 보여주시지 않을까요?”

이야기를 하면서 세이아란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걸 본 나미아는 자신의 추측이 확실하다고 여겼다. 그녀의 손윗자매보다는 결혼에서 자유롭지만, 기득권과 기득권 사이에 존재하는 혼인이라는 접점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 것이다.

약혼은 그것이 실혼이 되지 않는 이상 깨버리면 그만인 말뿐인 약속이다.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약혼파기의 횟수만 해도 역사책 이외의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나미아는 그 점을 찌르고 들어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마닌 씨에게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억누르고 사위를 따뜻하게 맞이할 마음이 들게 하는 실적이 필요해요. 마침 이그레스 후작은 제국의 귀족이고,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제의 권위를 이기지는 못하죠. 황제의 칭찬을 받은 요리사를 내칠 정도의 배짱은 없을 거예요.”

상당한 신빈성을 동반한 나미아의 말은 세이아란과 자마닌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분명 그 말은 일리가 있다. 설령 자마닌이 최하위로 입상하더라도 입상하게 된 이상 황제의 칭찬을 받는다. 그것만으로도 이그레스 후작을 억제하여 결혼 승낙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미아는 솔깃한 표정의 두 사람을 보며 슬슬 결정타를 날리기로 했다.

“게다가, 제국 황실 요리 대회에서 입상한 사람의 식당이면, 그곳이 아무리 작아도 매일 손님으로 가득 찰 걸요?”

청소년기에 꿈만 이루어도 된다는 식과는 달리, 성인이 되면 꿈을 이루어서 얻어지는 이익도 생각하게 된다. 정상적인 성인으로 커온 두 사람에게 이 이상 솔깃해지는 이야기는 없었다.

다른 능력은 둘째치고서라도 제일 재능 있는 요리사의 재능으로 평생을 먹고 살아야 할 자마닌이나 집에서 나와 그의 능력을 보좌해야 할 세이아란이나 미래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저는 남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하겠군요.”

“자마닌…! 끌리지 않는 이야기라고는 못하겠지만… 굳이 그래야 할 필요는 없잖아? 아버지는 내가 설득할 수 있고… 그냥 이대로 식당을 운영해도….”

세이아란은 간신히 자신을 되찾은 자마닌이 그 대회에서 참패하면 영영 포기해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그를 만류하려했다. 지금은 간신히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그가 요리 대회라는 거친 곳에서 실패하면 두 번 다시 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자마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할 거야.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내 실력에 대한 좋은 평가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 요리 대회에 나갈 거야.”

“그래…. 알았어.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해 줘. 반드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곁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줘.”

자마닌은 불안해하는 연인의 어깨를 다독였다.

“약속할게. 그럼, 나미아 씨. 조금만 저를 더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러려고 이야기를 꺼냈으니까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기왕이면 대회의 우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나미아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고, 자마닌은 굳을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자마닌과 세이아란은 이렇게 자신들의 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전폭적으로 도와주는 나미아에 대해 고마워했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만약 제국 황실 요리 대회의 우승 상금이 없었더라면 절대 돕겠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만큼은 흑자를 내겠다는 나미아의 결의는 어쩌면 자마닌의 결의보다 더 견고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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