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2: 제국식 파스타 (41/49)
  • Part2: 제국식 파스타

    아우레스력 1876년, 안스란력 436년 1월 6일.

    나미아가 자마닌의 상대로 브란디에고를 내세운 것은 그녀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였다. 심각성을 드러내보일 정도로 둔한 둔탱이 드래곤이지만 성실함과 학습속도에 있어서는 다른 종족을 초월하기 때문이었다. 둔하고 착해빠진 성격은 개인의 성격이지만 학습속도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종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요리장인 델리스를 내세워서 격파를 내고 싶지만, 자마닌 같은 경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한테 깨져야 완벽하게 부서진다는 것이 나미아의 결론이었다. 여관 직원들 중에는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학습속도라든지 평범함을 뛰어넘는 초월적 감각을 지닌 사람을 찾으라면 당연히 종족이 틀린 브란디에고 밖에는 없었다.

    “이상과 같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이거야.”

    “그렇지만 오너. 아무리 생각해도 전 요리를 하기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브란디에고의 표정은 처참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천년 동안의 해츨링 기간에 대체 뭘 배웠는지는 나미아로서도 미지수지만, 그 가운데에 ‘요리’의 덕목이 빠졌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시합 종목은 티나세르가 뽑은 12개의 목록 중에서 가장 무난한 파스타 계열로 정했고 시합 예정일은 10일이었다. 현재 반 정도 온 시기에서 브란디에고의 요리실력향상에 대해 논하자면 굼뱅이와의 좋은 비교가 될 수 있을 정도였다.

    가르치는 사람의 문제는 아니었다. 델리스 요리장은 나미아에게 붙잡히지만 않았더라면 레리첸트 왕실의 총주방장이 될 수 있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 실력가다. 본인이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는다면 유력 귀족가문이나 어느 왕실의 왕실 요리사로도 전환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자신들의 직원에 대해, 특히 이켈라인 상회의 본사 사저에서 데리고 온 네 사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꿰고 있던 나미아는 결국 모든 문제가 배우는 사람, 브란디에고에게 있다고 판단했고, 그 결론은 브란디에고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레어에 있는 동안은 요리를 할 필요도 없었거니와 요리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살아있는 것을 죽여 자르거나, 굽거나, 찌거나, 지지거나, 회치거나, 삶거나, 으깨거나, 튀기면 된다는 식의 모호한 의식밖에 없는 상태였다.

    확실하게 브란디에고는 요리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재료를 썰어도 맛없게 썰어놓을 사람’의 범주에 반쯤 발을 걸친 것 같은 실력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정한 상대를 바꿀 수도 없고, 그렇게 했다가는 자마닌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 것이 뻔했기에 나미아는 브란디에고는 위로하고 응원해서 다시 주방에 밀어 넣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

    “괜찮아. 우리 엄마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예? 어떤 어머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미리안. 아빠가 그러는데, 지독한 맛치였대. 지금은 훌륭하게 극복해서 둘도 없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시지만.”

    “그래요? 고치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브란디에고는 맛치를 극복한 사람의 자녀를 앞에 두고서 일말의 희망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감돌았고, 나미아는 잠시 예전 일을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에… 보자. 한 5, 6년 걸렸다더군.”

    “…그냥 포기하겠습니다.”

    “이봐, 그래도 넌 맛치는 아니잖아. 네가 만든 음식은 처음에 비하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그만두겠다는 소린 그만해.”

    “하지만, 오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제가 드래곤이고, 오너가 말씀하신대로의 학습속도와 인간을 초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15년의 경력이 그리 쉽게 좁혀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죠.”

    오디는 늘상 그렇듯이 테이블에 티 세팅을 하며 한마디 거들었다. 나미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브란디에고는 머리를 감싸 쥐며 작은 절망에 빠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느 샌가 싹튼 철학적인 논제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대체 요리란 뭘까요?”

    “…어려운 질문이군. 철학적이야.”

    “그러게요.”

    순식간에 사색하는 철학자의 자세 비슷하게 되어버린 브란디에고를 보면서 나미아와 오디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콧대를 꺾으려고 시작했던 일이 되레 꺾임을 당할 일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간이 사색하는 시간이 그렇게 세 사람 사이에서 흘러갔다. 비워지는 찻잔을 말없이 따르고, 차를 마시면서 사색에 잠기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브란디에고가 입을 열었다.

    “델리스 씨는 좋은 재료에 정성을 담으면 더없이 맛있어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정성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흠. 그 사람다운 말이지.”

    “그 후로 계속 기술을 배우고 있긴 하지만 진전이 없습니다. 주위에서는 단지 이겨야 한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고요. 대체 왜 요리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미아와 오디는 서로를 마주보며 멀뚱한 표정을 교환했다.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사항을 브란디에고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브란디에고는 범용적인 가용인원이었고, 쉽게 이야기하자면 막일꾼으로 취급되는 존재였다. 아무거나 시키는 일은 다 하기 때문에, 이번 일을 맡겼을 때도 여관 직원은 물론이고 나미아와 오디까지 브란디에고의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시키는 일은 만족스럽게 끝낸 그였기에 이번 일도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쉽게 덜컥 맡긴 것이 그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일의 결과가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주관적으로 평가되는 일임을 모두가 잊어먹고 있었다는 걸 그녀들은 이제야 알았다.

    나미아는 머쓱한 미소로 볼을 긁적이며 오디에게 말했다.

    “이거, 왠지 시작부터 잘못 시작한 것 같아. 안 그래 오디?”

    “예에…. 그런 것 같네요. 이번 일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니까요.”

    오디도 마찬가지로 머쓱한 미소로 답했다. 브란디에고는 조금 전 그녀들이 지었던 멀뚱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고, 그의 시선 을 받으며 머쓱한 표정을 보여주던 나미아와 오디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나미아가 말했다.

    “이거 처음부터 우리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남을 위한 요리를 한다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닌데 무작정 가르치려고만 했어.”

    “그러게요. 게다가 요리를 하겠다는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켰으니 일이 진전될 리가 없었죠.”

    나미아와 오디의 말은 얼핏 들으면 브란디에고를 이번 일에서 제외한다는 말과도 같았기에 그는 은근한 기대감으로 그녀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서 그가 한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절대 그녀들에게 평범한 기준의 잣대를 세우면 안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너에게 특별 교육을 해야겠군.”

    “예? 특별교육이요? 지금도 충분합니다만….”

    “아니에요. 나미아 님이 말씀하시는 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뇨? 그럼 무슨 특별교육을 행하시겠다는 거죠?”

    오디는 살포시 미소 짓고는 잠시 나미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미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찻잔을 들어올리는 걸 본 오디는 그녀들 사이에서 내린 결론을 이야기하는 역할은 자기 역할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요리를 만들면 그것은 누가 먹지요?”

    “에… 일단 지금은 티나세르가 먹지요.”

    “예. 그래요. 그렇다면 지금 배우는 요리 기술은 일단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티나세르를 위한… 기술이겠죠?”

    오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가르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네, 맞아요. 기술은 먹는 사람을 위한 것이죠. 지금부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수업을 시작할 거예요. 물론 이런 수업은 자마닌 그 사람에게 해줘야 하겠지만, 지금은 저희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는 것 같으니 당신에게 가르치려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그의 길이 틀린 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에서 수업을 받은 당신이 그를 이겨야 하니까요.”

    “아아…. 그렇군요. 그 의미를 제가 이해하게 되면… 이길 수 있습니까?”

    “십중팔구는 이길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기억해둬요. 이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그것만 생각하지 말아요.”

    “예. 알겠습니다. 그런 그 특별교육은 언제부터 시작인가요?”

    오디는 나미아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그녀가 나설 차례라는 듯이. 나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녀가 말했다.

    “지금부터. 장소를 좀 옮겨볼까?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옮겨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나미아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우리 집.”

    “훗. 고작해야 생 초짜한테 질리는 없지만,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하지. 파스타라고? 그런 기초중의 기초를 종목으로 정한걸 보면 어지간히 지고 싶었나보군.”

    쿵! 쩌억!

    자마닌이 휘두른 칼에 레몬이 두동강이 나 도마 위를 뒹굴었다. 그는 레몬을 집어 들고는 도마 옆에 둔 보울(Bowl)위로 손을 옮겨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레몬의 과육이 터지면서 노랗고 향기로운 즙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의 맛과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겠어.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 목표를 말이야.”

    휙! 턱!

    뒤로 집어던진 레몬 껍데기가 절묘한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떨어졌다. 그 쓰레기통에는 방금 떨어진 레몬 껍데기와 비슷한 모양을 한 레몬 껍데기들이 쌓여있었다.

    출렁거리는 레몬즙이 가득 담긴 보울을 들어 올리며 자마닌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술이 일그러지며 극도의 환희를 담은 말이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힘껏 상대해주겠어. 자마닌 와르벡의 이름에 걸고,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신천지의 비경을 일깨워주겠노라! 으하하하핫!”

    그는 광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리며 레몬즙에 박력분을 부었다.

    어두운 조리실에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마법등이 그의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고, 그 위에 떠오른 미소는 광기의 연금술사와도 같았다. 그는 밀가루와 레몬즙을 혼합하면서 자랑스레 말했다.

    “제국식 파스타! 그 진수를 보여주마!”

    이미 광기의 진수였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드래곤의 킨 센스(Kin sence)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마법사들 중에서 어찌어찌 들어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혈족감지능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묘한 감각은 혈족이 있는 곳을 가늠할 뿐만 아니라 상대의 대략적인 기분도 느낄 수 있는 감각이기도 하다.

    킨 센스는 해츨링이든 어덜트 드래곤이든 상관하지 않고 고루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한 곳에서 드래곤끼리 마주쳐도 겉모습 때문에 모르고 지나치는 식의 일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시끌벅적한 라이니시스의 레어에 있던 여섯 남매는 평소의 마나 충돌과 함께 느껴지는 킨 센스에 의아해 하면서 시선을 거실 한쪽으로 집중했다. 단순히 생각하자면 그들의 아버지인 라이니시스일 수도 있지만 현재 그는 의뢰를 받고서 부재중이었기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오는 것 같았다.

    여느 때와 같은 하얀 빛이 폭사하며 그 안으로 세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중 앞에 있던 그림자가 손을 흔들며 그들에겐 매우 익숙한 목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안녕! 얘들아! 잘 지냈어?!”

    “새해 복 많이 받으렴.”

    “언니!”

    “누나?”

    나미아와 오디는 편안한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미소를 지으며 여섯 동생들에게 다가갔고, 동생들은 그런 그녀들을 반가이 맞이해주었다. 어느 정도로 반겼냐고 한다면 니에라와 시크린이 싸움을 멈출 정도였다.

    “헤헤. 요것들. 이제 한 살 더 먹었구나. 점점 크고 있다만 아직 반도 안 컸지? 와하하핫!”

    “나미아 님.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응? 아니아니, 그냥 반가워서 그러는 거지.”

    나미아는 얼굴에서 미소를 떠나보내지 않은 채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관을 차린 뒤로 많이 엄한 태도를 줄인 나미아에게 동생들을 생경함과 친근감을 느끼면서 답삭답삭 안겨드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미아는 더욱 즐거워하고 있었고, 그래서 브란디에고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렸다.

    “…?”

    나미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그녀를 올려다보던 체리랑스는 문득 뒤에서 멍하게 서있는 브란디에고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언니의 치막자락을 두어번 당겼다. 한참 이률킨과 담소를 나누던 나미아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있는 막내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응? 왜 그래, 체리야?”

    “다른 거 아니고…. ‘저거’ 뭐야?”

    “체리랑스야. 사람에게 그런 말 쓰면 안 돼지.”

    오디가 체리랑스에게 핀잔을 주는 사이 나머지 다섯 명은 그제야 막 생각났다는 듯 브란디에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미아 역시 그의 존재를 이제 막 떠올렸다는 듯 동생들 사이에서 벗어나 브란디에고의 옆으로 간 다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소개했다.

    “자, 모두 인사해. 이쪽은 브란디에고 루 세스칸추라고 해. 보면 알겠지만 골드 드래곤이야.”

    “어… 다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브란디에고가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순간 여섯 명의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약간의 경악마저 담긴 그 표정에 나미아는 고개를 갸웃했고, 체리랑스에게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에 대해 짤막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결심한 오디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막내 동생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는걸 보며 의아해했다.

    여섯 해츨링들 중에서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둘째인 이률킨이었다.

    “어어언니가… 남자를?”

    “이, 어, 으…! 그, 으으!”

    라르딘은 차마 말이 안 나온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동생들을 돌봐야 할 맏이가 저렇게 패닉에 가까운 지경에 빠져있었으니 다른 아이들은 오죽할까. 심지어 체리랑스마저도 불신의 표정으로 나미아와 브란디에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고가 완전히 정지해버린 여섯 형제들 중 제인 먼저 나서서 움직인 쪽은 제일 활동적인 일에 매진하는 가운데의 두 남매였다. 니에라와 시크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방으로 달려가서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브레스를 뿜을 기세로 단어를 토해내었다.

    “엄마! 누나가 남자 데려왔어!”

    “드, 드래곤이에요! 그것도 골드 드래곤이에요!”

    나미아는 이 세계의 배신을 겪은 표정의 동생들을 오랜만에 심하게 계도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그 고민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주방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소리는 그녀의 사고도 완전히 굳어지게 만들었다.

    와장창! 쨍그랑! 퍽석! 와르르륵!

    “꺄아앗!”

    “미, 미리안!”

    에실루나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왼쪽 머리에 밀가루를, 오른쪽 뺨에는 다진 고기 몇점을 붙인 미리안이 경악한 두 남매 사이를 뚫고 주방을 나온 것이다. 나미아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간신히 이 말만을 할 수 있었다.

    “어… 엄마? 대체 뭘 만들고 계셨어요?”

    “미리안식 엘프 첨가 미트 파이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기보다, 그 사람 누구니?!”

    “미리안. 나갈 때는 깨끗하게 하셔야죠.”

    앞치마에는 과일 즙을 잔뜩 묻히고서 왼손에는 계란 반죽한 밀가루를 덕지덕지 붙인 에실루나가 주방에서 나오면서 한 말이었다. 나미아는 거의 항복하는 기분이 되어서는 에실루나에게 말했다.

    “…남보고 뭐라고 할 때가 아니에요. 엄마.”

    “어머? 그러네.”

    그다지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서로의 몸매무새를 가다듬어주었다. 몇 차례의 마법이 오간 뒤 말쑥해진 모습의 미리안은 그녀의 아이들만큼이나 당황해있는 브란디에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누구니? 척 보니 골드 드래곤인 건 알겠다만.”

    옆에서 에실루나가 미리안을 거들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손님이 왔는데 아직 차도 대접 못했네….”

    “에실루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가요? 하지만 앉아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일 아닐까요?”

    미리안은 생긋 웃으면서 ‘안 그래요?’라는 표정을 짓는 에실루나를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작은 한숨을 토해놓았다. 자신이 언제나 부러워하는 면이 바로 저런 면이란 생각도 하면서.

    “하아. 그래요. 그래야겠죠. 얘들아! 손님 앉을 자리 마련하렴! 나미아하고 오디도 적당히 자리 준비해서 앉아. 다과라도 준비할 테니까.”

    “아, 도와드릴게요.”

    오디가 미리안과 에실루나를 거들고 나섰고, 여섯 아이들은 미리안의 말에 따라 거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이나 여러 취미도구가 치워지고, 테이블도 깨끗하게 정리 되자 나미아는 브란디에고를 소파에 앉혔다. 소파에 앉은 브란디에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듯 말했다.

    “뭔가 터무니없는 오해를 사게 된 것 같네요….”

    브란디에고의 말에 나미아는 정말 놀랍다는 듯 말했다.

    “와아! 그것도 눈치 챌 수 있게 된 거야? 의외네? 난 그 예의 ‘대체 무슨 일입니까?’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걸 상상했는데 말야.”

    “이쯤 되면 아무리 저라도 눈치 챌 수는 있습니다.”

    브란디에고가 별로 도움 될 것 같지 않는 자기변론을 펼칠 때 그의 앞에 주르륵 앉은 여섯 명의 해츨링은 매우 생소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태껏 그들이 봐온 드래곤 혈족은 레드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성룡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계보가 아닌 드래곤을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들은 호기심과 의혹을 동시에 담아 브란디에고를 관찰하고 있었다.

    ‘…왜들 이럴까.’

    브란디에고가 슬슬 그 시선에 불편해하고 있을 때쯤, 나미아가 작게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얘네 소개를 안 했네.”

    “아뇨. 괜찮습니다. 알아볼 수 있겠는데요.”

    “에에? 그래? 우리 동생들이 그렇게 유명했어?”

    “흔히 있는 경우는 아니니까요.”

    드래곤 사회에서도 한 사람이 두 배우자를 데리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른 이유는 둘째치더라도 비생산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가로막은 가운데, 드래곤이 되기 전부터 라이니시스의 아내였던 미리안과 에실루나는 일단 별개의 문제로 처리되었지만 그녀들이 한날한시에 낳은 세쌍둥이는 레드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은 물론이고 드래곤 혈족 사회에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 정도냐를 논하자면 골드 드래곤인 브란디에고마저도 라이니시스와 미리안과 에실루나는 물론이고 그들의 수양딸들을 비롯해 여섯 동생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는 제일 먼저 라르딘을 가리켰다.

    “이쪽이 맏이인 라르딘이겠군요. 저쪽이 둘째 이률킨, 여기가 셋째 니에라, 그 옆이 넷째 시크린, 저쪽에 있는 둘이 스웰텐과 체리랑스. 맞나요?”

    “오, 맞아. 와아… 너희들 의외로 꽤 유명하네?”

    “오너도 유명하시잖아요. 관리자 님과 함께.”

    “오너?”

    이률킨이 붉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해 할 때 미리안과 에실루나, 오디가 쟁반에 티 포트와 쿠키가 가득 담긴 접시를 올린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들이 잠시 테이블에 티 세팅을 하는 동안 시선의 교환이나 대화 같은 행동이 자연스레 중단되었다. 조용한 거실에서는 괘종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와 빈 찻잔, 무거운 접시가 만들어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대화하기엔 좋은 환경 같네요.”

    “그러게요.”

    만족스러운 티 세팅을 마친 미리안과 에실루나는 그것만으로도 보람찬 듯 주부의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에도 명석할 엘프였고, 드래곤이 된 지금은 더욱 명석했기에 이야기할 거리에 대해서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오디와 이률킨이 포트를 들고는 모두의 잔에 차를 돌리는 사이 상석에 앉은 미리안과 에실루나는 브란디에고에게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었다. 매우 유명한 두 부인의 시선을 받게 된 브란디에고는 다소 송구스러운 기분이 되었고, 그것은 킨 센스로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졌다.

    에실루나는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어려워하지 말아요. 저희는 단순히 주부일 뿐이니까요.”

    “예….”

    “소개하지 않아도 알거라 생각하지만 이쪽은 ‘암흑의 가인‘ 미리안 킨 라이엔츠예요. 저는 ‘암흑의 천녀‘ 에실루나 킨 지오덴틱이고요.”

    “예, 저…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의, 선, 옮음의 추구자‘ 브란디에고 루 세스칸추입니다.”

    미리안과 에실루나, 브란디에고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한 소개를 했으니 이제 아까처럼 시끄럽게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미리안은 찻잔과 접시를 들어 올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까는 소란스러운 광경을 보여드려 부끄럽기 그지없군요. 죄송합니다. 아직 애들이 어려서요.”

    “엄마가 제일 문제였잖아요.”

    “…시끄럽단다.”

    미리안은 눈을 내리깔고 찻잔을 들어 올려 입술에 대었고, 나미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쿠키를 입 안으로 던져넣었다. 에실루나는 모녀의 정겨운(?) 장면을 보며 살짝 미소 지은 뒤, 브란디에고에게 말했다.

    “오랜만의 혈족 손님이네요. 그것도 나미아와 함께…. 어쩐 일로 오셨죠?”

    “그게….”

    브란디에고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방문목적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고, 나미아는 그런 시간끌기를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나미아는 냉큼 브란디에고의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방식인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엄마. 얘한테 요리 가르쳐줘요.”

    거실의 공기가 조금 전과 같이 굳어버렸다.

    “…그래서 가르치고 있어?”

    “들으셨던 대로의 사정대로요.”

    “해츨링 때 뭐했대?”

    “당신과 같은 일은 안 했나봐요.”

    라이니시스는 에실루나의 말에 피식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드래곤이 다른 드래곤에게 무언가를 배우러 오는 일은-거의도 아니고 아예-없다. 드래곤은 독립을 하면서부터는 철저한 개인 생활을 시작하며, 뭔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그것 역시 스스로 배워야 한다.

    배우는 방법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은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것임을 그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스승이 필요할 때가 되면 그들은 그 과정을 ‘유희‘로 규정하고 해당 종족의 생활을 통해 기술을 습득한다. 이렇게 다른 드래곤이 레어로 직접 찾아와서는 배움을 요청하는 일은 드래곤 사회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 가족이 수다스럽지 않은 성향이라 다행이군. 안 그래? 에실루나?”

    “네, 그래요. 소문이 퍼질 염려는 없겠네요. 나미아도 그걸 알고서 그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아요.”

    “글쎄…. 당신은 너무 나미아를 과대평가하고 있군.”

    “과소평가를 하는 것으로 그 아이를 키운 노고를 허사로 돌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 아이로서는 어느 쪽이든 달가워하지 않겠지만요.”

    “푸하하핫! 그, 그건 그렇지…! 파하하하하!”

    라이니시스는 배를 잡고 웃었고, 에실루나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의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농담거리의 재료가 된다는 사실의 꼬리조차 붙잡지 못한 나미아는 현재 레어의 작은 주방에서 미리안이 브란디에고에게 해주는 요리 강론을 듣고 있었다. 아니,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요리를 만들어야 할 상대가 십대 소녀라는 거죠?”

    “예. 그리고 경력 15년의 요리사와 경쟁해서 이겨야만 합니다.”

    “흐음… 그건 신경 쓰지 말도록 하죠.”

    미리안은 손에 들고 있던 뒤집개를 칼처럼 휘두르며 말했다. 무언가를 잘라내는 듯한 그 행동에 브란디에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평소의 행동처럼 무조건 순응하는 대신 미리안에게 물었다.

    “왜 신경 쓰지 마시라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것 없죠. 오히려 권장해요. 제가 왜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했냐 하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저에게 배워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까?”

    정의, 선, 옮음의 추구자인 브란디에고는 설령 그 표정으로라도 거짓을 띄울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이해력을 한탄하면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속생각을 갈무리할 수 없었다. 나미아라면 지적했을 그 모습을 미리안은 부드럽게 넘기면서 말했다.

    “음식이라는 건 말이죠, …말로만 하기보다 보여드려야겠네요. 잠시만요.”

    미리안은 고기 저장고로 걸어가서는 큼지막한 소고기 덩어리를 들고 왔다. 적당한 온도로 숙성된 소고기는 겉으로 보기에도 최고급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단, 간단한 예시를 위해 스테이크를 몇 장 구워보기로 할까요? 나미아. 철판 예열시켜두렴.”

    “네, 엄마.”

    미리안은 자신의 키만한 고깃덩이를 가볍게 들고 와서는 테이블 위에 살짝 내려놓았고, 나미아와 오디는 그녀들의 뒤에 있던 거대한 조리용 철판 밑에 있던 스위치를 눌러 철판을 가열하기 시작했다. 물론, 마법으로 가열하는 것이다.

    “으샤. 자…, 고기가 잘 숙성된 것 같네요. 오늘은 재수가 좋은 편이군요.”

    “하하… 네….”

    브란디에고는 아무리 드래곤이 되었다고 해도 엘프가 죽은 동물의 시체를 방싯방싯 웃으며 들고 왔다는 것에는 상당한 충격을 감내해야했다. 학습의 의지가 상식파괴의 충격을 억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배운 생물생리학의 이름을 걸고서 혼이 빠져나갔을 것이다.

    미리안은 그런 브란디에고의 사고를 뻔히 느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고기 해체용 칼을 집어 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자, 일단 잘라보지요. 가족이 많다보니 각자 좋아하는 부위가 제각각이거든요.”

    미리안의 손이 시원스럽게 움직이며 거대한 소고기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그이와 막내 체리랑스는 안심을 제일 좋아해요. 그에 비해 첫째 라르딘과 다섯째 스웰텐은 등심을 좋아하죠. 이률킨은 목심을, 니에라와 시크린은 누가 더 많은 갈빗대를 뜯느냐에 관심이 많아요.”

    쩍! 탁! 콰악! 차악!

    거침없이 휘둘러지는 칼과 쩍쩍 갈라지는 소고기의 모습은 가히 명인의 솜씨였으며, 그녀에겐 매우 일상적인 일로 보였다. 그 명인이 귀가 뾰족한 엘프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브란디에고에겐 큰 감명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순식간에 소고기 덩어리가 해체되었고, 미리안은 그 중 목심을 들어올렸다. 시연을 위해서이니 이것 하나만 구워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전부 굽는 건 무리니까 이거 하나만 하죠. 이제, 익히는 정도에 따라서도 또 제각각이에요. 일단 이걸 다섯등분하고….”

    콰자자작!

    고기의 단면이 익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속도로 칼이 움직였고, 고기는 순식간에 3센티 두께로 5등분 되었다. 미리안은 칼끝으로 고기를 들어 올려 철판으로 던졌다. 나미아와 오디는 어느새 자리를 피해 옆으로 옮겨서있었고, 고기는 던져지는 대로 철판 위로 미끄러졌다. 미리안은 그런 곡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며 말했다.

    “그이와 체리랑스는 언제나 일치단결하여 울트라 레어, 라르딘과 이률킨은 중도를 지키는 아이들답게 미디움, 니에라와 시크린은 서로가 먹는 스테이크를 욕하기 위해선지 각각 레어와 웰던. 불쌍한 스웰텐은 이도저도 아니게 미디움 레어를 먹지요.”

    길쭉하게 되어있는 철판위로 고기들이 간격을 두고 일렬로 늘어서게 되었다. 끝과 끝의 익는 소리가 틀린 것을 보면 부분마다 온도차가 나게끔 만든 고등 마법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브란디에고는 사소한 마나의 움직임에는 신경을 끄고는 익어가는 고기와 미리안의 말에만 생각을 집중했다.

    “자, 이렇게 한 가족 내에서도 취향은 제각각 달라져요. 남이 아닌 가족의 입맛을 맞추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단적으로 알 수 있어요. 하물며, 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쉬울까요?”

    “아, 아뇨.”

    “어렵죠. 쉽지 않아요. 요리라는 건 언제나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잃지 말아야 해요. 아양이요? 그건 배려라는 걸 해본적도 없는 멍청이의 소리에요.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일이 어째서 아양이 되는 거죠?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지, 그것을 통해 자신이 뭔가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요리라는 건 마음으로 만들어서 맛으로 대접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거예요. 물론, 파는 음식이라면 돈을 바라긴 해야겠지만요.”

    미리안은 뒤집개를 들고 스테이크를 하나하나 뒤집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일 중에서 음식 만들기가 제일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에요. 배려는 얼마든지 해도 모자람이 있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그 음식에는 만든 이의 기분이나 생각이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따스함과 차가움… 먹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민감하게 받아들여요. 당연히 그 안에는 자만과 겸손도 들어있지요.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당당한 맛’이라든가 ‘비참한 맛’같은 말이요.”

    “예. 들어봤습니다.”

    “요리사가 당당하게 만들면 요리도 당당해져요. 만든 이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솔직하기 때문에 먹는 사람은 금방 알아요. 음식을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요. 만든 사람이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음식뿐만 아니에요. 식기라든가, 날씨, 알아낼 수 있다면 손님의 취향을 고려해서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왜 그럴까요?”

    미리안은 뒤로 돌아 허리에 손을 척 얹고는 브란디에고를 응시했다. 브란디에고는 갑작스레 닥쳐온 질문에 잠시 생각의 방황을 겪었지만 이내 대답할 수 있었다.

    “손님이 드시는 거니까요. 배려해야죠.”

    “맞아요! 자신이 먹을 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남이 먹는 거예요. 가족의 입맛 맞추기도 어려운데 남의 입맛을 맞추기는 더욱 어려워요. 최대한의 배려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건 단지 채소를 썰고 고기를 잘라 조리해서 늘어놓은 조합물 밖에는 되지 않아요.”

    브란디에고는 이제 이해할 것도 같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었기에 그 사람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드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얼마나 더 배려할 수 있는지에 목적을 두는 것이다.

    미리안은 서서히 깨닫는 것 같은 브란디에고를 보며 생긋 웃엇다가 서서히 익어가는 것 같은 스테이크들을 얼른 감시했다. 미리안은 등을 돌린 채 뒤집개를 놀리며 브란디에고에게 말했다.

    “당신이 왜 요리를 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왜 해야 하는가? 그거야 우리 과년한 딸년의 오갈 데 없는 변덕과 무계획성이 일궈낸 희생양 정하기의 일환이지요. 그 점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해요.”

    “엄마아!”

    “시끄럽다. 아무튼, 당신은 요리를 해야 하고, 그것은 십대 소녀를 위한 것이에요. 승부? 그런건 신경 쓰지 말아요. 당신이 생각할 것은 어떻게 하면 그 소녀가 기분 좋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먹고 나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자신이 배려하는가, 그 미소로 자신도 행복해할 수 있는가에요.”

    스테이크들은 온도가 다른 철판 위에서 같은 시간동안 판이하게 다르게 익었다. 미리안은 만족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접시위에 올리며 말했다.

    “요리의 의미는 배려에요. 기술은 단지 거들 뿐이라고요. 기술은 먹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도달점이 될 수는 없어요. 당신이 얼마나 다른 이를 배려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요. 요리는 정직하죠. ‘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당신은 처음에 그것에 번민했지만 사실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생각할 것은 ‘무엇을 위해’ 요리를 하는가. 지금 묻겠으니, 당신은 무엇을 위해 요리를 하고 싶나요?”

    탁!

    미리안은 마지막 미디움 목심 스테이크가 놓인 접시를 소리 나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브란디에고는 척 봐도 세심하게 구워진 다섯 종류의 스테이크를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미리안은 무수한 단어를 쏟아내면서도 스테이크에서 눈을 뗀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익는 정도를 일일이 확인하고, 소리를 들으며 뒤집을 순간을 결정하고, 최종적으로 접시에 옮기기까지 보이지 않는 노력을 경주했다는 걸 그는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함이었지만 그녀는 가족이 먹을거리를 만드는 마음으로 최대한의 배려를 담아 요리했다. 아름답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브란디에고는 무심결에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하하… 자마닌 씨가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나중에 당신이 가르쳐 주세요. 질문에 답해주시겠어요? 무엇을 위해 요리를 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예, 오너의 얼굴을 찡그리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티나세르가 행복하게 웃으며 맛있었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미리안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세요. 그것이 곧 배려가 될 테니까요. 아, 여기까지 어려운 걸음 하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기왕 구운 거 몇 장 더 구우면 숫자도 맞겠네요.”

    “저, 감사합니다만… 오너, 괜찮겠습니까?”

    “와아! 찬성! 오랜만에 엄마 음식 먹고 싶어요!”

    나미아는 팔짝 뛰면서 기뻐했고, 브란디에고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리안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되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그 모습을 보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왜’라는 의문은 사라졌다.

    배려엔 이유가 필요 없으니까.

    아우레스력 1876년, 안스란력 436년 1월 10일.

    “준비는 많이 하셨나?”

    “필요한 만큼은 했습니다.”

    “한 번 노력해 보시지.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자마닌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띄우며 브란디에고에게 말했고, 브란디에고는 다소 굳은 얼굴이긴 하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나미아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런 걸 트집 잡기에는 상황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은 승부의 시작을 알리는 것뿐이었다.

    “시간은 두 시간, 그 이상 넘으면 탈락으로 간주하겠습니다. 그럼 두 분은 요리를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탁! 째깍째깍째깍….

    나미아는 미리 맞춰둔 초시계의 스위치를 눌렀고, 자마닌과 브란디에고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목은 파스타로 정했지만 워낙 범위가 넓은 그 분야는 둘의 재료 준비를 판이하게 다르게 만들었다.

    자마닌은 미리 만들어둔 면을 사용하기로 했다. 시중에서 팔고 있지 않은 면이라서 미리 만들어두겠다는 말에 나미아는 승낙했기에 지금 자마닌의 손닿는 곳에는 노르스름한 빛깔을 띄고 있는 균일한 두께의 면 수십 가닥이 빳빳하게 굳어 늘어져 있었다.

    그가 만드는 요리는 ‘제국식 파스타’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레몬 풍미의 제국식 샐러드 스파게티’이다. 아이리펜 대륙에서 레몬을 제일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제국은 레몬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가진 다양성의 극을 보여주고 있었고, 자마닌은 그 극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가 준비한 주재료는 싱싱한 야채와 허브, 레몬이었다. 채식주의자들이 좋아할 재료를 두고서 그는 의기양양하게 팬에 버터를 올렸다.

    브란디에고는 애초에 스파게티를 준비할 생각은 없었다. 면 삶기는 꽤 어려운 종목이었고, 삶은 뒤의 살짝 볶아내는 것도 초보자가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준비한 파스타는 마카로니를 비롯해 쉽게 포크로 찍어먹을 수 있는 파스타를 준비했다.

    그가 만들 요리는 ‘칠리미트소스를 두른 치킨 파스타’로서 양질의 닭고기와 파스타를 맵고 뜨거운 칠리미트소스와 함께 둘러 내놓는 요리이다. 닭고기의 익는 정도와 소스의 볶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으면 초보자라도 좋은 맛이 나는 쉬운 요리에 속한다.

    그에 어울리도록 그가 준비한 재료는 다진 쇠고기와 생닭,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였고, 이런 재료의 구비는 자마닌과 많은 대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채식주의자를 조롱하기 위한 그런 준비같은 느낌도 들었다.

    두 사람은 등을 돌린 채 각자의 조리에 열중하고 있었고, 나미아는 주방의 입구에 앉아 고의서이 짙은 실수로 서로의 조리를 방해하는 일이 있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시간을 재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요리에 대해서는 일체 조언을 하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한다는 것이 그녀의 방침이었다.

    ‘그렇지만 알려주고 싶은 걸. 적어도 디에고보다는 내가 더 요리를 잘 한단 말이야. 히잉.’

    마법으로 알려주자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의사를 전달하는 마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발전해왔고, 그런 마법에 대해 나미아는 두꺼운 리포트를 작성할 수 있을 만큼 배웠다. 그러나 브란디에고는 그런 편법을 단호히 거부했고,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을 들여 정신에 작용하는 모든 마법의 개입을 거부하는 방어벽을 둘러쳤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성실한 모습이었다.

    ‘결국 티나세르만 믿을 수밖에 없나. 에휴. 지금 그 애는 막 심부름을 나갔을 텐데….’

    나미아는 티나세르가 좋은 판단을 하길 바랐다. 이런 일은 자신이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렇게 흘러가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초시계를 흘끔 본 그녀는 이제 막 3분이 지났음을 알고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시간은 너무나도 더디고,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허, 오늘은 작은 아가씨가 배달 부탁을 하러 왔구만.”

    “예. 나미아 언니가 안부 전해 달랬어요.”

    “신년이라 좀 많이 바쁘긴 하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주렴. 이런, 날씨도 추운에 세워두고 있었구나. 들어가서 차 한잔하지 않으련?”

    “고맙습니다만 괜찮아요. 가봐야 할 곳이 여러 군데 있거든요.”

    티나세르는 이켈라인 상회 힐텐펜스 지부의 창고담당에게 주문서를 건네주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약도를 따라 시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호의적으로 봐주려고 해도 여관의 모든 직원들은 브란디에고의 편이었기에 어떻게든 티나세르에게 첩보를 보내올 것이고, 새로 온 손님에게 그리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은 티나세르는 그런 첩보에 자신이 흔들릴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오디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고, 티나세르는 요리가 만들어지는 동안 외근을 빙자한 시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디의 설명으로는 그녀가 심부름을 끝내고 돌아오면 두 접시의 파스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애초에 자마닌과 브란디에고가 무엇을 준비해왔는지 모르는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맛있는 요리에 손을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철저한 정보차단을 당해온 그녀는 앞에 어떤 모습을 한 요리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맞힐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브란디에고에 비해 경력이 뛰어난 자마닌의 요리에 손을 들지도 못한다는 걱정이 그녀를 심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차라리 나미아 언니의 의도를 몰랐다면 마음 편히 심사를 볼 수도 있겠는데 말이야….’

    베테랑인 자마닌을 생초보인 브란디에고로 꺾는 것으로 그의 콧대를 꺾고, 그의 문제점을 고친다는 것이 나미아의 계획이었다. 원래라면 그 일은 두 달 뒤의 제국 황실 요리대회에서 이뤄져야 할 일이지만 참을성 부족한 나미아는 그 일자를 파격적으로 앞당겼다. 그 모든 사항을 이해한 그녀는 자신이 심사위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여관 직원 오빠 언니들은 어차피 요리장님의 편일 테고, 생판 모르는 사람을 끌어들이기엔 내부적 문제지. 직원이 아니면서도 여관의 일원인 사람을 뽑자면 나랑 나미아 언니와 오디 언니가 있는데, 두 언니는 이 시합의 주최자니까 내가 남지. 내 위치가 두 언니의 시종이라고 해도, 대체적으로는 관련이 없으니까.’

    가끔은 상황을 잘 이해하고 대응하는 자신의 능력이 조금 괴롭기도 한 그녀였다. 모든 상황을 이해한 그녀는 어떻게든 두 시간이 넘어서 여관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가지게 되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표정을 얼굴에 드리우게 되었다.

    “아, 시청 지나쳤다.”

    그녀는 아까와는 의미가 조금 다른 심각한 표정을 얼굴에 드리웠다.

    때앵!

    “10분 전! 다들 마무리하세요!”

    나미아의 말에 브란디에고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마닌은 낮게 하품을 하고서는 느릿한 손길로 접시 위에 스파게티를 보기 좋게 올려놓고, 차갑게 식힌 맑은 수프를 뿌렸다. 예쁘게 썰어놓은 야채와 허브를 늘어놓는 것으로 그는 간단하게 요리를 마무리했다.

    브란디에고는 허겁지겁이란 말이 그의 행동 지침인양 움직였다. 막 삶아낸 파스타의 물기를 털어내고는 버터를 두른 프라이팬에 올려 한 손으로 프라이팬을 움직이며 다른 손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소스를 맛봤다. 적당히 되었다 싶은 순간 그는 파스타가 볶아지는 프라이팬 위로 소스를 들이붓듯 뿌렸고, 옆에 준비해둔 브랜디를 둘렀다.

    파르륵!

    파란 불꽃이 일어나며 알코올을 날려 보냈고, 나무 주걱으로 세심하게 볶던 브란디에고는 얼른 접시를 준비에 그 위에 프라이팬의 내용물을 담았다. 장식 차원에서 브로콜리와 파슬리를 얹고서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순간, 10분의 시간이 끝났다.

    때르르르릉!

    “요리 종료!”

    “나미아 님. 티나가 돌아왔어요.”

    “오, 마침 딱 좋은 시간이군. 테이블 세팅하라고 지시하고, 이것과 이것을 테이블에 올려.”

    “예. 알겠습니다.”

    오디는 뜨겁고 차가운 두 접시를 들어 올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자마닌은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었고, 브란디에고는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며 긴장 풀린 표정을 지었다. 자마닌은 브란디에고에게 말했다.

    “어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가?”

    “잘… 모르겠습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거든요.”

    “뭐라고?”

    “그냥… 티나세르가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쯧. 그런 생각이라니…. 이기긴 글렀군.”

    “글쎄요….”

    자마닌의 말에 브란디에고는 애매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때맞춰 준비되어있는 요리를 보며 티나세르는 감격 비슷한 느낌마저 받았다. 추운 겨울의 날씨는 소녀가 두 시간동안 돌아다니고자 할 때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빠져나간 체력은 공복감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음식생각이 간절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테이블에 앉았다.

    “자, 두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서 가장 맛있는 걸 정해봐.”

    예쁘게 담겨져 있는 레몬향 물씬 풍기는 스파게티에 따끈따끈한 김을 피워 올리고 있는 칠리 파스타를 보며 티나세르는 겉모양으로 판단하기를 그만뒀다. 레몬향 스파게티는 얼핏 보면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지고 있었지만, 뒤집어 생각할 때 브란디에고가 맛에서의 핸디캡을 없애기 위해 장식을 선택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결국 모든 건 혀에 맡긴다는 심정으로 포크를 든 티나세르는 왼쪽의 차가운 접시부터 앞으로 끌어당겼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식사 같은 느낌이 아닌 과자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레몬향과 새콤달콤함은 그녀의 혀를 휘감아 놓아주질 않았다. 이가 시릴듯이 식힌 레몬향의 수프는 달콤한 소스 같았고, 야채와 허브의 향이 어우러져 두 배, 세배의 맛의 파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신듯 하면서도 단 맛, 아삭거리는 야채와 존득한 면이 가져다주는 식감, 질리지 않게 만드는 레몬의 향, 깔끔한 색채는 포크를 놓지 않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요리 이상의 요리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운 티나세르는 몰아쉬듯 숨을 내뱉었다.

    “후아아…. 세상에 이런 맛이….”

    잠시 무아지경에 빠져있던 그녀는 갑작스런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고는 오른쪽 있던 접시를 끌어당겼다. 두 접시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두 접시를 합쳐 일인분이 나올 정도의 양이었다. 먹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다 식은 것 같은데…. 괜찮을까?’

    소스의 겉면은 식어있었지만 그녀가 포크를 들어 슬쩍 뒤섞는 순간 하얀 김이 다시 피어올랐다. 티나세르의 얼굴이 환해지며 포크를 움직이는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한바탕 파스타의 극적인 자리이동이 지나가 처음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김을 피워 올리는 파스타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기뻐하면서 파스타를 집어 입 안으로 넣었다.

    매콤한 칠리소스가 코를 자극했고, 반쯤 익힌 듯한 고기를 흐물흐물하지 않고 단단했다. 존득한 파스타를 입안에서 호호 굴리며 우물우물 씹는 것은 일종의 게임같기도 한 재미있는 느낌이었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씹고서 목으로 넘기자 따스한 온기가 몸 전체를 내달렸다. 무의식중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온기를 온 몸으로 느끼던 그녀는 다시 포크로 파스타를 찍어 올렸다.

    퍼석퍼석하지 않게 잘 익힌 닭고기의 섬유질이 갈라지며 닭 특유의 맛을 전하고, 칠리소스가 몸을 따스하게 만들어주었다. 꼬들꼬들한 파스타의 식감은 씹는 것도 하나의 재미인양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먹은 뒤에 온 몸으로 열류가 치닫는 그 느낌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행복하고, 따스했다.

    두 접시가 비워진 시간은 요리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냅킨으로 입을 닦은 뒤 냅킨에 묻은 칠리소스 자국을 보던 티나세르는 헤죽 웃었다. 우열을 가르기 어려운 요리였지만 일단 행복함을 맛볼 수가 있었다. 둘 중에 하나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는 점이 가슴 아팠지만 그것을 위해 요리를 먹은 것이 아닌가. 티나세르는 소리 높여 나미아를 불렀다.

    “언니! 다 먹었어요!”

    “그래? 알았어!”

    물을 마시며 입가심을 하는 티나세르의 앞으로 나미아와 자마닌, 브란디에고가 걸어왔다. 승리의 기분을 미리 만끽하는 표정의 자마닌과 약간 주저하는 브란디에고의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나미아는 말끔하게 비워진 두 접시를 보고는 살짝 미소 지은 뒤 티나세르에게 물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들었어?”

    티나세르는 잠시 두 접시를 번갈아보며 약간 주저했다. 잠시 그렇게 망설이던 그녀는 이윽고 선택했다. 그녀는 말했다.

    “칠리소스 파스타가 마음에 들었어요.”

    세 사람의 표정이 극적으로 변했다. 브란디에고의 얼굴이 환해지고, 자마닌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나미아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어렸다. 티나세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그런 표정들을 볼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귀로 나미아의 즐거워하는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래? 왜?”

    “레몬 풍미의 스파게티도 맛있었어요. 너무나 맛있어서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치만… 너무 차가웠어요. 소름끼치도록 맛있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추운 날씨에 들어와서 먹기엔 조금 부적절했어요. 그에 반해 칠리소스 파스타는 얼어있던 몸을 녹여주고 있었어요. 저는 거기에서… 만든 사람의 배려를 볼 수 있었어요. 승부조작을 피하기 위해 제가 외출했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일이었죠. 그런 절위해서, 추운 날씨에 언 몸을 녹일 수 있게 배려해준 요리를 내놓았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잠시 말을 멈춘 티나세르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전 그런 따스하고 행복한 요리가 좋아요.”

    자마닌의 얼굴이 굳었고 브란디에고의 얼굴에는 기쁨이 서렸다. 나미아는 씨익 웃으며 승부의 결과를 발표했다.

    “디에고 승! 축하헤, 디에고.”

    “예, 예… 오너. 감사합니다.”

    나미아는 딱딱하게 굳은 자마닌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안타깝군요. 자마닌 씨. 승부는 이걸로 결정났네요.”

    “나, 나의… 제국식 파스타가….”

    자마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좀 더 깊은 곳에서, 그는 뭔가 더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다.

    나미아와 브란디에고, 티나세르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한 자마닌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마닌은 손을 부르르 떨며 쥐어짜듯 외쳤다.

    “이, 이건 있을 수 없어!”

    “자마닌 씨!”

    자마닌은 나미아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는 식당을 박차고 계단을 올라갔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멀어지고, 직원들의 놀라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나미아는 황망하게 그가 올라간 계단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브란디에고의 어깨를 두들겼다.

    “수고했어.”

    “예? 아, 예. 저, 오너… 저 사람 괜찮을까요?”

    “글쎄. 그건 앞으로 봐야 할 일이지. 걱정하지 마.”

    나미아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브란디에고는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겼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머리를 긁적거린 브란디에고는 일단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서는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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