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uest.07: 잘난 손님.-Part1: 콧대 꺾기 (40/49)
  • Guest.07: 잘난 손님.

    Part1: 콧대 꺾기

    아우레스력 1879년, 안스란력 436년 1월 3일.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가는 해에 미소를 띄워 흘려보내고, 오는 해에 기대감으로 환영하는 취지의 각종 연회를 가지는 것이 제일 일반적일 것이다.

    염세주의적인 사람들은 단순히 앞으로 남은 수많은 날짜를 구분하기 편하도록 계절의 순환을 중심으로 옛 사람들이 만들어둔 한 권의 책이 자리바꿈을 하는 것뿐인데 뭘 호들갑이냐고 하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자기만족으로 사는 사람들의 말이야 어차피 한 귀로 흘리는 것이 현명하고, 그렇게 보자면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염세주의자들이 염소 종이 씹는 것만큼이나 무가치한 염세적 발언으로 궁상의 늪을 파 내려 갈 때, 대개의 사람들은 가는 해와 오는 해를 위하여 자신이 믿는 신의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종교의 장(場)은 다른 이들에게 흠 잡히지 않을 훌륭한 사교의 장으로 바뀐 지도 2세기가 넘었다. 특별히 신을 믿던 믿지 않던 신전에서 새해맞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단순한 기분 내기의 일환으로도 통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연간 유동인구가 나라의 인구와 맞먹는 대규모 도시인 힐텐펜스는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곁눈질로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은 인파는 광장공포증을 앓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포근한 요람이겠지만 평소의 몇 배나 넘는 다양각층의 유동인구는 숙박업자들에게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여관 WISH는 이미 16월 23일에 ‘방 없음’의 서판을 간판 밑에 매달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을 알아보게 된 손님들은 최소 예약 일자가 언제인지 물어보았지만, 예약 장부를 들여다보던 페네디와 샹그렐의 졸도하고 싶다는 표정을 본 뒤로는 아예 포기하고서 돌아간 경우가 더 많았다.

    일이 몸에 충분히 익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여관이 처음 개장했을 때보다 더 바빠졌다는 것에 공포 비슷한 감정까지 느껴야 했다. 만약 그들이 5층에서 현재의 상황을 브리핑 받는 나미아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면 그대로 서까래에 목을 매달고 싶어졌을 것이다.

    “흐음. 역시 방을 늘릴 걸 그랬나봐. 좀 크게 지을 걸.”

    “지금으로도 충분해요. 성수기라서 가격을 좀 올려 받긴 했는데도 숙박업소는 언제나 꽉꽉 들어차죠.”

    “그래. 역시 연말과 연초는 언제나 바쁘다니까.”

    “여긴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데요?”

    티나세르는 4층 이하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고 바깥의 소리도 완벽하게 차단된 5층의 응접실을 둘러보며 이질감을 느껴야 했다. 보통이라면 바깥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악다구니를 듣거나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소음에 바쁜지 어떤지 알 수 있겠지만 16월 30일, 오후 14시 59분에 카운트다운을 하던 나미아가 5층 전체에 외부의 소리를 막아버리도록 마법을 걸어버려서 지금까지도 고요함 그 자체였다.

    나미아는 티나세르를 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쯔쯔, 티나. 원래 체어맨은 의자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체어맨이라고 하는 거야.”

    “그런 거예요?”

    “그러엄! 물론이지!" ”물론, 새겨듣지 마.“

    오늘의 오디는 나미아에게 말을 끝마친 후의 여운도 남겨주지 않으려는 듯 단호하게 말했고, 티나세르는 일그러지는 나미아의 표정을 보며 입을 가리고 작게 키득거렸다.

    아래층에선 분주함이 일상사로 되어가는 중이라 진짜 분주함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릴 지경이었지만, 그곳에서 알지 못하는 영역에 있는 나미아와 오디, 티나세르는 4층 이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무시한 채 한가함을 누리고 있었다.

    불공평한 처사라고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나미아와 오디에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으며 그녀들의 개인 시종으로 고용된 티나세르는 그 분위기에 편승한지 오래였다. 신입이 이래도 되냐는 생각은 현재도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일하는 브란디에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떠오르기에 티나세르는 자신도 뭔가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미아에게 수차례 건넸지만 렌디너스 왕실령 미성년자근로고용관리기준법에 의거한다는 나미아의 말은 진작 그녀에게서 포기를 불러들였다.-사실, 법 보다는 나미아의 즉흥적 발상이 더 가까웠다.

    일단 티나세르의 직위는 나미아와 오디의 시종이었다.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는 티나세르가 정작 즉위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디는 다른 고양이과의 동물들이 그러하듯 영역권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성격이었고, 나미아의 시중을 드는 일은 이미 4세기 전부터 그녀의 일이었다.

    입 속의 혀 같다는 말로도 모자를 오디의 나미아 시중들기는 티나세르가 도저히 끼어들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디의 시중을 들기에는 다른 고양이들이 그러하듯 자기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그 성격 탓에 아무것도 손 댈 것이 없었다.

    결국 시종다운 일이라곤 주어질 건덕지도 없다는 걸 깨달은 티나세르는 자신의 존재가 상당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단순히 밥만 축내는 존재라는 사실에 괴로움에 가까운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딱 나흘만.

    고용인으로써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그녀는 나미아를 죽이기 위해 2개월 동안 황량한 벌판을 걷게 만든 결단력과 추진력을 십분 발휘하여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계산으로는 어차피 평생 이 여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이곳을 탈출해 나미아의 정보망에서 도망 다니는 것이란 아예 불가했기에 차라리 그 정해진 미래를 이용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란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 결론에 따라 그녀는 경영학 공부와 위생보건에 관련된 공부를 시작했다.

    후자의 경우는 지루한 청소와 정돈의 확대개념이었지만 전자는 나미아의 열렬한 지지와 함께 전 대륙의 경영학도가 부러움에 스스로의 목을 조-르거나 티나세르의 목을 조-를 일로 발전되었다. 대륙의 상권 49%를 장악한 상회의 회장으로부터 개인 경영학 과외를 받게 된 것이다.

    수시로 튀어나오는 나미아의 헛소리 비슷한 농담만 걸러낼 수 있다면 그 시간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값진 시간이 되겠지만, 그녀는 농담과 진담을 말하는 화법에 있어 큰 차이를 두지 않기 때문에 티나세르는 매 과외 시간마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지, 좌절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이래저래 소소한 것만 빼면 재미있는 나날이다.

    “후아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네. 감사합니다.”

    티나세르는 마저 노트에 몇 줄을 더 적어 놓고서는 펜을 내려놓았고, 오디는 두 사람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서는 차를 따라주었다. 티나세르는 이렇게 대접을 받을 때마다 시중을 드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오디의 고집을 꺾기에는 400년 이른 일이었다. 어느새 티나세르도 당연하다는 듯 따라주는 차를 마시게 되었고, 나미아는 애초에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태도로 찻잔을 들어올렸다.

    “지금은 기초만 나가는데, 일단 초급 나가기 전에는 일반교양도 다뤄야 할 거 같아.”

    “예? 일반교양이요?”

    “사실, 지금 네가 배우는 건 경영학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빈약하지. 개요만 알려주고 있는 거야. 생각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 좀 더 제대로 된 경영학을 배우려면 체계적인 교육을 거처야 해. 너 이제 나이가 열여섯이지? 열아홉부터는 힐텐펜스 대학에 보낼 생각이니까 그 전까지 최소 조건을 만족해야하지 않겠어?”

    “예, 예엣?! 대학이요?! 누구 마음대로요!”

    “나.”

    나미아는 평소의 명쾌함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덕분에 좀 덜 명확해진 기분을 느낀 티나세르는 입만 반쯤 벌린 채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은 나미아의 뜻대로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머릿속의 경제적인 티나세르는 ‘그렇게 되면 빚이 더 늘어나는 거 아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 대학 들어갈 돈이 없는데요? 심지어….”

    “10만 펜의 빚도 있다고?”

    “네. 도저히 대학에 들어갈 형편이 안 된다고요.”

    최대한 돈 안들이고 공부를 하고 싶었던 티나세르는 대학에 들어가는 등록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의 막나가는 티나세르가 ‘어차피 등록금 따위야 10만 펜에 비하면 새발의 피잖아. 거기서 그거 더 늘어나봤자 느낌도 없을텐데, 그냥 가버려!’라는 말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최대한 줄일 것은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미아는 눈썹을 추욱 내려뜨리며 말했다.

    “걱정마. 후견인이 되어 줄 테니까. 네가 대학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후견인의 성의를 다해주지.”

    “후, 후견인이요?!”

    오늘은 놀라는 일 뿐이구나. 티나세르는 거의 헐떡거릴 지경까지 정신이 내몰렸다. 이켈라인 상회의 회장이 후견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피후견인이 후계자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녀는 온 몸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나미아가 웃고, 티나세르가 허망하게 있는 사이 어느 샌가 계단을 타고 올라온 브란디에고는 조심스레 나미아를 불렀다.

    “저, 오너. 손님이 오셨는데요.”

    “어머, 그래? 어서 이리로 모셔. 티나는 잠시 방에 가있지 않으련? 내 제안 잘 생각해 봐.”

    “예, 예에….”

    티나세르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움직여서는 책과 필기구를 챙겨들고 자신의 방으로 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브란디에고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특별손님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곧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가뜩이나 일도 바쁜데, 더 이상 신경 쓸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같은 신입이라도 대접이 완전히 딴판이라는 것에 따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잃고 말았다.

    새해 첫 손님을 본 나미아의 첫인상은 상당히 단정하다는 것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이라든가 기름을 발라넘긴 머리카락은 청결하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생각해보던 나미아는 그 차림새와는 반대로 그의 손이 상당히 거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반되는 인상이 공존하는 그 모습에서 나미아는 그의 직업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그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나미아의 반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가 내려놓는 검고 네모난 케이스를 보면서 나미아는 대체 무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일까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저희 여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스터인 나미아입니다.”

    “자마닌 와르벡입니다. 요리사입니다.”

    “아, 요리사셨어요? 어쩐지 단정하다고 생각했어요.”

    나미아는 그제야 깔끔단정한 모습과 거친 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항상 단정하고 깨끗해야 하는 요리사는 그 겉모습과는 달리 칼을 들고 피를 보며 불을 곁에 두는 과격한 작업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나미아는 그제야 그가 들고 온 케이스가 다양한 요리칼을 넣는 나이프 케이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이프 케이스를 들고 계신 걸 보면 꽤 실력 있는 요리사신가 봐요?”

    “그렇습니다. 얼마 전까지 렌디너스 왕궁의 4 별궁에서 보조요리사를 하고 있었지요.”

    나미아는 자마닌의 말에서 그가 실력도 있고, 거기에 자신감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모습을 보면 꽤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보조요리사라는 걸 자랑스럽게 밝히지는 않겠지만, 왕궁의 보조요리사는 왕궁 밖에서는 주요리사라는 뜻이 된다.

    “이곳 소문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제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연찮게 들었습니다. 처음엔 그런 허황된 곳이 있을까 싶었지요. 애초에 자신의 일을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하고 한심한 사람들이나 그런 소문에 취하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별로 담아두지 않았는데…, 필요하면 저 같은 사람도 발길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미아는 갑자기 심사가 뒤틀리는 걸 느꼈다. 그녀를 거쳐 간 손님들은 분명 나약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절대 한심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다못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안젤라도 이곳으로 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열차를 훔쳐 타는 등의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가진 능력이나 의지가 뛰어난 사람들이었고, 넘을 수 없는 장애물에 좌절했지만 훌륭하게 극복한 사람들을 그렇게 매도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잘났다는 걸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있었다. 자신을 높이는 방법 중에 제일 한심한 방법을 쓰는 자마닌을 보며 나미아는 기분이 상했지만 일단은 손님인 이상, 생각의 자유는 보장해 주어야 했기에 그녀는 그런 불편한 심사를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세상엔 원래 여러 일이 있는 거죠. 어쨌든 저희 여관 같은 곳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쩐 일로 이곳에 오신 거죠?”

    “좀 더 ‘맛’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죠. 요리는 하나의 예술 아닙니까? 휘발성적인 예술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욱 매력적으로 비춰지는 예술이지요. 아무리 좋은 요리를 즐긴다고 해도, 그 종극에는 파멸만이 남아있고, 여운밖에 남지 않는 아련하고 고고한 매력. 죽음에 제일 가까이 다가가는 미학이 있는 예술.”

    “흐음. 그럴 듯 하군요.”

    “그렇죠? 예술은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예술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는 너무 그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맛에 얽힌 깊이를 이해하려들지 못하고 그들의 싸구려 혀를 맹신하고 있지요. 이는 곧 훌륭한 화가들이 초창기에 그린 그림의 예술성을 모르고 비판만 일삼던 평론가들과도 같습니다. 요리사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그 싸구려 혀로 느낄 수 없기에 무작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트집을 잡는 사람들을 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환멸이 들어요. 저는 좀 더 높은 곳으로, 그러니까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그런 곳으로 올라갔어야 했어요. 전 제가 고작 왕궁의 별궁에서 보조 요리사나 하고 있을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이 사람 너무 자아도취적이군.’

    요리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호감을 가진 나미아는 눈앞의 요리사에 대한 평가만 쭈욱 떨어뜨리고 싶었지만 손님에게 매겨야 할 기본적인 점수가 있었기에 차마 그러질 못하고 그냥 흥미가 있다는 표정만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마닌은 매우 가슴이 아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건 정말 신의 농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재능이 사용될 곳은 따로 있지만 결국 제가 나아간 곳은 고작 마지막 별궁의 보조였습니다. 어떻게든 아양을 떨어서 요리의 질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요리사 밑에 있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을 그대로 내보이지 못하고, 꼬리만 흔들어대는 그런 작태도 심히 가슴 아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짜 요리가 뭔지, 예술로 승화한 요리가 무엇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고고하고, 참되며, 숭고한 의가 담긴 한 접시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 요리를 내보이기에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더군요. 슬픕니다.”

    나미아는 워낙 많은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에 이쯤 해서 자마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게다가 실력도 갖추었기 때문에 더더욱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세상 끝날 때까지라도 자신을 칭송하는 이야기를 할 거라 여긴 나미아는 이쯤해서 그의 목적이 뭔지 들어보기로 했다.

    “상당히 깊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군요. 그래서 하고 싶으신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신가요?”

    “예. 두 달 뒤에 제국의 황실 요리사를 뽑는다는 말이 들렸거든요. 제국의 황실이라. 이 얼마나 멋진 곳입니까? 그곳에는 어설픈 혀로 때려 맞추려는 국무대신도 없고, 요리사의 예술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막돼먹은 신흥 귀족도 없을 겁니다. 제 재능을 펼칠 곳은 바로 그곳이라는 계시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요리사 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좀 더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인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예술가의 기쁨을 누리고 싶거든요. 무식한 지분거림으로 점철된 시끄러운 세상과는 이별하고 싶습니다.”

    ‘…당신 요리사 맞아?’

    나미아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엄청나게 많았고, 그걸 간략하게 표현한 문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걸 도로 밀어 넣었다. 어차피 사람마다 직업에 대한 철학은 다르고, 임하는 태도도 다르다. 보편진리와 상식을 옹호하는 대변자의 입장이 되어봐야 종이 한 장 들어가지도 않으리라 여긴 그녀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목적도 뚜렷하시고요. 그렇다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지 생각해 오셨겠네요?”

    다른 손님들에게는 절대 물어보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목적까지만 알아낸 다음 과정을 임의로 처리하였다. 손님을 파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들의 사연을 듣는 것으로만 충분했고, 손님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그들에게 결여된 부분을 보충해주는 일을 맡기는 것이 나미아의 주된 일이었다.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그녀의 역할이었고, 손님들은 그녀가 건네주는 도움을 받아 결여된 부분을 보충하고서 장애를 해결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이라 이 잘난 손님이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끝까지 가보자는 게 나미아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생각대로, 자마닌은 구체적인 도움 내용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예. 물론이죠. 그 두달 동안 제 요리를 한 단계 더 진보시킬 수 있도록 자유로이 쓸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재료들의 공급도 원활했으면 좋겠고요. 그런데 정말로 도와줄 수 있는 겁니까? 여관에서 버는 돈으로는 제가 수행에 전념할 수 있을지 의심되는군요.”

    ‘어이어이, 보통은 그런 말은 돌려서 하는 게 예의야. 어째 첫인상에서 계속 빗나가는 느낌이야?’

    여관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에 나미아는 빈정대고 싶은 자신을 억누르며 아무런 걱정 없다는 듯 화사한 미소로 답했다. 그녀의 영업용 미소가 최대한으로 발휘되는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이지요. 이켈라인 상회에서 최대한의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켈라인 상회요? 그곳과 연계되어 있습니까?”

    이켈라인 상회와 연계되지 않은 숙박업소가 몇이나 되겠냐는 식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질문에 나미아는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속을 긁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예의 영업용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물론이죠. 왜냐면 제가 거기 회장이거든요.”

    “예? 저… 그렇다면 당신이 나미아 이켈라인입니까?”

    “예. 이곳은 이켈라인 상회의 회장 직속 여관이고요. 굳이 따로 부연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되겠군요. 충분하겠죠?”

    “하핫! 과연! 제가 찾아오기는 잘 찾아왔군요! 이켈라인 상회의 회장이시라면 제 음식을 대접해드릴 가치가 충분하군요. 이제부터는 제 재능을 맘껏 펼쳐보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봅니다. 하하핫!”

    표정이 미소로 굳어져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나미아는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냐는 식의, 보는 상대로 하여금 모멸감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영업용 스마일 제 13번으로 굳어진 채 변하지 않았다.

    자마닌이 짐을 풀러 5G3호로 들어간 뒤에 그제야 차를 내온 오디는 나미아가 소파와 하나 되고 싶다는 식의 표정으로 늘어져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쿠키가 마저 구워지지 않아 늦게 나와 죄송하다는 말을 할 틈도 없이 그녀는 나미아를 살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모습 같았다.

    “나미아 님? 왜 그러세요?”

    “아아아… 몰라, 피곤해. 저 잘난 손님 정말 싫어어어….”

    “잘난 손님이라….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긴 하군요. 근데 요금에 대한 건 말씀하셨나요?”

    “…아차!”

    나미아는 자신을 저주하고 싶다는 표정이 되어서는 옆으로 스르륵 기울어 쓰러졌다.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진 그녀의 옆얼굴은 머리카락으로 이루어진 붉은 선이 가득 그어진 모습이었다. 그 흐드러진 붉은 머리 사이로 그녀의 입술이 가냘프게 움직였다.

    “오디. 네가 상대해….”

    “네. 알겠습니다.”

    결국 귀찮은 일은 나에게 떠넘기는구나. 오디는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일에 대해서 뭐라 하지 않고는 나미아는 추슬렀다. 그나마 꼿꼿하게 앉아있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아우레스력 1876년, 안스란력 436년 1월 7일.

    자마닌의 태도는 나미아에겐 여러 가지로 놀라운 모습이었다. 10만 펜이라는 요금을 듣고서도 자마닌은 제국 황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정도야 문제없다는 듯 당당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했다.

    그는 이켈라인 상회가 스폰서나 다름없다는 걸 알고는 거리낌 없이 최고급 품종의 고기와 최고 품질의 야채를 비롯한 각종 재료를 요구했고, 심지어 그런 재료들의 상태에 대해 불평까지 늘어놓았다.

    떠받들어주는 것을 매우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거기에 불평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얼굴 두꺼운 사람은 몇 없다. 그러나 자마닌은 그의 마인드만큼이나 똑똑한 사람이었고, 후불이긴 해도 막대한 돈을 지불하는 손님이라는 점을 들어 무척이나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나미아는 이것에 대해 뭐라고 할까 고민하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자마닌의 모습은 그녀가 어느 정도 원하던 손님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잡고는 당당해지는 모습을 바랬었다. 지금까지의 손님들은 그럴 장소가 있어도 용기나 의지가 부족한 경우가 있어 중간과정을 밟아야 했는데 이번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제가 볼 때 그리 좋은 요리사는 아니던데요?”

    “그렇게 생각하지? 나도 그래.”

    티나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미아는 손님이 원하는 걸 어떤 식으로든 받아주고 들어준다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치는 자마닌의 모습은 방종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최고급 재료를 마음껏 사용해서 만든 요리는 재료가 좋으니 당연히 맛이 뛰어났지만, 그것 외에 다른 걸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뭔가 대단한 걸 이루었다는 표정으로 접시를 내려놓았고, 티나세르는 그 기분을 맞춰주며 대단한 걸 대했다는 표정을 지어주어야 했다.

    “그런데 왜 언니는 그걸 그냥 둬요?”

    “글쎄다. 저 사람의 요리관이 심각하게 빗나가있는 건 사실인데, 내 요리관을 주입시킬 수도 없거든. 주입시킨다고 들어먹을지도 의문이지. 일단 여기서는 그가 새로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지. 간단히, 콧대를 꺾어버리는 거야.”

    “어떻게요?”

    “황실 요리사 대회라고 했지? 황제한테 몇 마디 해두면 되겠네.”

    나미아의 위치를 모른다면 황제라는 이름의 옆집 사람이 있는 줄로 착각할 것 같은 말이었다. 티나세르는 나미아의 이야기하는 스케일이 전대륙을 아우른다는 걸 상기하고는 놀라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최고의 존귀함을 갖춘 황제폐하면 그의 콧대를 꺾을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티나세르는 의아해하며 오디를 바라보았다. 오디는 찻잔의 테두리를 매만지면서 심히 우려된다는 어조로 이야기했다.

    “자마닌 씨가 황제의 권위마저 무시해버릴 수 있다는 거지. ‘결국 황제조차도 내 요리를 이해할 수 없구나.’라고 생각해 버릴 수 있다는 거야.”

    “…심각하네요.”

    자마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티나세르는 우려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주변의 모든 가치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그 권리에는 설사 황제라 하더라도 빗겨나갈 수 없을 것이다. 나미아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일단은 두 달 정도 그냥 참아줘. 요리대회가 지난 다음에 저 성격을 고치든 해야겠으니까. 한 번 실패를 하면 그도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

    티나세르와 오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미아는 안심했지만 그들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참아달라고 해야 한다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여관 WISH의 요리장 델리스 서커바인은 자부심 높은 요리사였다. 손님들의 하루 세 번의 즐거움을 보장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업무에 성실하게 임하는 좋은 요리사였다.

    입맛이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날카롭게 음식의 허점을 짚어낼 수 있는 나미아와 오디의 입맛을 근 10년 넘게 만족시켜왔다는 점을 생각하자면 다른 실력 보증이 필요 없을 것이다.

    주방의 직원들에게 그는 멋진 상사이며 엄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인간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는 그는 인격자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었으며 그 모습만큼이나 그의 요리도 따스한 느낌이 들어있었다. 정성을 다해 만든 그의 한 끼는 하룻밤 자다가는 손님들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언제 재료를 투입하고, 어떻게 불을 조절해야 할지 끊임없이 지켜보는 요리사의 덕목대로 그는 자신이 화를 낼 때와 그러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자기조절이 무척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런 면은 그의 부하직원들이 그를 인간적으로 따르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현재 주방 직원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존경하는 요리장이 풋내기 요리사가 일으킨 아궁이의 불같은 태도로 화내고 있었으니까.

    “지금 날 무시하는 거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스테이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드린 것뿐입니다. 그리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젠장! 그게 조언이요?! 분명 당신의 말이 맞긴 하지만 손님을 생각해야지! 305호의 손님은 올해로 154세 되시는 연로한 분이시오! 이가 성치 않아 쉽게 드실 수 있도록 고기에 칼집을 낸 것이 잘못이오?!”

    “그렇게 되면 스테이크의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무릇 스테이크란 고기의 육질을 입 안에서 느끼며 흘러나오는 육즙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방법이면 굽는 과정에서 육즙이 새어나와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레어 스테이크를 그런 식으로 구우면 속까지 모두 익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럴 때는 그냥 주문 받을 대로 레어 스테이크를 구워 내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요리가 관상용 물고기인줄 아시오?! 그렇게 두꺼운 고기를 그냥 보내드리면 연로하신 분이 어떻게 드시란 말이오?!”

    “요리의 맛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불편함도 감수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아양을 떠는 것은 요리가 아닙니다. 단순한 먹거리에 지나지 않아요.”

    페네디가 얼굴이 새하얗게 되서는 황급하게 달려왔기에 똑같이 황급하게 주방 입구로 내려온 나미아는 이마를 짚고 쓰러지고 싶었다. 손님의 요리관에 대해서는 뭐라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걸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대략적인 상황은 이렇다. 원래라면 5층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어야 할 자마닌은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잠시 주방에 들렀다. 델리스 요리장은 특별손님에게 협조적으로 대하라는 아이덴 지배인의 말에 따라서, 그리고 같은 요리인이라는 생각에 친절을 발휘했고, 그들은 요리사라는 동질감을 느끼며 어느 정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제가 된 305호에 올라갈 음식으로 자마닌의 시선이 향했고,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델리스 요리장의 요리관은 단 하나였다. 손님을 위할 것. 요리를 먹는 사람은 어차피 손님이고, 그걸 평가하는 것도 손님이었다. 요리사가 음식을 만드는 이유는 손님이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고, 그렇기에 그는 손님을 위한, 먹는 사람을 위한 음식을 만든다. 거기에서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들어가고, 쏟아야 할 정성이 생긴다. 손님의 만족이 곧 자기의 만족이라는 생각이었다.

    자마닌의 생각은 맛이란 건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 먹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그 맛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건 요리사의 맛이라는 말이다.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진짜 맛을 거부하는 아양일 뿐이고, 속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 바보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건 능력의 낭비라고 말했다.

    델리스 요리장으로서는 먹는 사람을 철저하게 무시하라는 그 말을 절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그의 긍지를 걸고 손님을 위한 요리를 만들었는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녀석이 와서는 그게 아니라 이거라고 훈계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맛을 모르는 바보라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으니 그의 자제력이 바닥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여기까지 생각을 한 나미아는 아무래도 저 손님의 콧대를 꺾는 건 좀 더 일찍, 그리고 더 심한 방법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두다가는 아끼는 요리장이 두 달 머물 손님 때문에 여관을 떠날 것 같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녀에겐 제 주제 모르는 잘난 손님보다도 10년 넘게 같이 한 요리장이 더 중요했다.

    “그만! 둘 다 멈춰요.”

    “마스터….”

    “아, 나미아 씨. 잘 오셨군요. 이야기 좀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도저히 당신 같은 분이 머무는 여관에서 이런 저급한 맛을 내는 모습은 보고 있기 괴롭군요. 진정한 맛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나미아의 자제력은 어찌 보면 델리스보다 얕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델리스 보다는 한계치가 높은 편이었고, 아까부터 충분히 올라와있던 분노는 아직 그녀의 한계치에 다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치가 약간 높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는 말했다.

    “자마닌 씨.”

    “예. 말씀하십시오.”

    “더 이상은 두고 보기 힘들군요. 대체, 당신의 맛이라는 건 어떤 거지요?”

    자마닌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이해해줄 것만 같았던 사람도 결국엔 자기편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마닌은 그녀가 이켈라인 상회의 회장이고, 수백 년을 살아온 고풍스러운 인물임을 감안해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는 말했다.

    “아무 때나, 어디서든지 느낄 수 있는 그런 건 아닙니다. 처음 입에 음식을 물었을 때 강렬한 충격이 느껴지면서, 결코 불쾌하지 않은, 지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맛이지요.”

    나미아는 콧방귀를 뀌고 싶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일단 손님 앞이라 자제력을 좀 더 발휘하며 말했다.

    “참 추상적이네요. 당신은 그런 맛을 낼 수 있나요?”

    “아직 그런 단계에는 접어들지 못했습니다만, 누구보다도 더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할 수 있습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참 숭고하시네요. 요리사가 아닌 것 같아요.”

    단어만 나열하면 칭찬이 되겠지만 요리에 곁들여진 소스처럼 단어를 휘감은 어조는 결코 칭찬이나 감탄이 아니었다. 나미아는 팔짱을 터억 끼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자마닌을 마주보며 말했다.

    “대체, 그 숭고한 맛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주방에 들어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월권행위라는 거 알아요?”

    “그것은 단지 모두가 그 맛의 경지에 들기 위해….”

    “누가 요청이라도 했어요? 1879년 전에 살았던 아우레스처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계시라도 받으신 건가요? 왜 대체 일 잘하던 우리 요리장한테 시비 걸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요리장님은 순수한 맛이 뭔지 알고 계시면서도 아양을 떠는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요리인으로써 그건 참을 수 없었기에….”

    ‘뒤틀렸어, 뒤틀렸어. 한참을 뒤틀렸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뒤틀릴 수가 있는 거지?!’

    나미아는 골머리가 썩는다는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고는 몇번 꾸욱 눌러주었다. 자마닌과 델리스 요리장은 물론 주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침묵하면서 그녀가 할 말을 기다렸다.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나서거나 한다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나미아가 조성하고 있었다. 손을 옮겨 목 뒤를 주무르던 나미아가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자마닌을 보며 말했다.

    “일단, 묻겠는데요. 아양과 배려의 차이가 뭔지나 알고 있습니까?”

    “순수한 맛을 위해서는 배려가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맛을 숨기는 것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손님이 원하지 않으면?”

    “그건 손님의 잘못입니다. 애초에 맛을 느낄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미성숙한 손님이지요.”

    자제력의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곳은 발광의 영역이었다. 이미 여러 번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놓아본 적이 있는 나미아는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영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추슬렀다(물론, 예전에는 사람이 있던 없던 신경 쓰지 않았지만).

    “결국 요리사가 옳다는 소리군요? 자신의 실력을 믿으면서 자신의 손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을 철썩같이 믿는 거네요.”

    자마닌은 기뻐하는 표정으로-나미아가 이제야 이해했구나 싶은 기쁨이 분명한-말했다.

    “예. 바로 그것입니다. 요리사는 언제나 옳아야합니다.”

    자마닌은 싱긋 웃기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주었고, 그것은 오디를 감명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어쩜 저리 생각하는 것이 나미아 님의 독선과 똑같을까?’

    그나마 나미아가 좀 더 상식에 기반을 둔 독선을 내세운다는 것이 그녀에겐 다행스러울 따름이었다.

    대개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성격의 사람을 보게 되면 적으로 삼든지 친구로 두든지 둘 중의 한 경우가 발생하는데, 지금의 경우 나미아는 절대 눈앞의 사람을 친구로 삼을 수 없다고 결정해버렸다. 친구로 삼기에는 너무나도 큰 장벽이 서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요. 그런데, 주위를 좀 봐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주위와는 상관없습니다. 신념이란 주위의 어떠한 시선에도 기죽지 않아야 하는 법이니까요.”

    ‘세상에, 투철한 신념의식까지! 아주 멋져! 그레이트! 당신 정말 최고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정말 배우고 싶어!’

    나미아는 오늘 따라 높은 자제력을 부여한 신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저렇게 자신감과 신념과 맹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도저히 자력갱생불가능의 경지에 접어들고 만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저리 한 치도 흔들림 없는 신념을 얻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마닌은 그런 나미아의 자제력에 멋진 일격을 가하는 것으로 간신히 억누른 임계점을 돌파하게 만들었다.

    “요리사는 언제나 지고의 맛을 추구하는 마음가짐과 그 길이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거지요.”

    작렬하는 크리티컬과 함께 나미아는 더 이상 참는 건 죄악이라고 여겼다. 세 번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지만 네 번 참으면 바보라는 소릴 듣는다. 나미아는 적어도 지금 이 상황만큼은 손님을 위해 바보가 되지 않겠다고-즉흥적으로-결정 내어 버렸다. 후에 오디의 찬성을 듣게 되는 결정이니 틀린 선택은 아닐 것이다.

    “하! 하! 하-! 그러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전 요리사도 아니고 취미로 배우는 정도지만 댁의 말이 얼마나 가당찮은 헛소리로 가득한 독선적이고 앞 뒤 볼 줄 모르는 몽상가의 낮잠 자며 꾸는 꿈이란 건 알 수 있습니다. 대체, 당신은 세상을 뭐로 보고 있는 거죠? 그 신념 정말 멋지군요. 흔들림 없이, 주위의 어떠한 시선에도 기죽지 않는다고요?”

    “나미아 씨. 저는….”

    “아아! 당신의 사상이나 철학이나 인생관 따위 더 듣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기죽으라고!”

    오디는 나미아가 네 번 참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선 기뻐했지만 손님에 대한 존칭을 무의식적으로 포기해버린 점에서는 별로 기뻐할 수가 없었다. 나미아는 손가락으로 자마닌의 가슴을 찌를 듯이 가리키며 참았던 거 다 털어내겠다는 태도로 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요리가 언제부터 신선놀음이었냐? 참나,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네. 네가 추구하고 있는 건 아무나 혀로 자아낼 수 있는 것에 불과해. 네가 그걸 추구하고 있다는 건 결국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심리일 뿐이라고.”

    “나미아 씨. 말이 좀 심하시군요.”

    “내가 원래 말이 좀 심해! 그러니 닥치고 귓구멍 열고 내 말 들엇! 내가 살아도 너보다는 스무 배 넘게 살았어! 어른 말은 귀담아 들엇!”

    ‘뭔가 좀 틀리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디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면박을 주는 건 좋은 일 같지만 지금 같은 면박은 별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오늘의 나미아의 행동패턴은 일장일단이었다. 자마닌의 입을 어떻게든 ‘닥치게’만든 나미아는 어린아이들이 뻐길 때 어른들이 흔히 짓곤하는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도 못할 말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는 거야. 아마 당신은 단 한명의 혀도 만족시키지 못하니까 그렇게 허울 좋고 멋있어 보이는 생각으로 자신을 무장시킨 거겠지.”

    “틀립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 하! 하-! 거 참 대단하시구만. 그래서 당신은 언제 어느 때라도 한 명의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거야?”

    “물론이지요. 저 같은 사람이 그런 초보적인 일을 할 수 없을 리가 없잖습니까.”

    옷깃을 다지면서 말하는 자마닌의 태도에는 자신감이 넘치고도 남았다. 조금도 기죽지 않은 그 모습에 나미아는 진짜로, 전심전력을 다해 저 잘난 손님의 콧대를 꺾지 않으면 성을 갈겠다고 다짐했다. 파더 콤플렉스 중증인 그녀가 아버지와의 유일한 접점인 성을 갈겠다고 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다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 다짐을 되새기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말야, 당신의 실력으로는 요리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우리 막내직원 디에고도 이기지 못 할걸? 솔직히 걔보고 만들라고 하는 게 더 맛있을 거야.”

    “그런…! 절 무시하는 겁니까?”

    “무시? 무시는 실력이 있는 상대한테나 내리는 거지. 이런 경우엔 적당한 심사를 거친 정확한 판단이라고 부르는 거야.”

    “저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군요! 그 디에고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당장 나오라고 하세요! 승부하겠습니다! 요리경력 15년을 걸고서, 초보중의 초보에게 질 거란 평가는 참을 수 없습니다!”

    15년 이라는 알량한 경력의 상대였다는 사실에 45년 경력의 델리스 요리장이 잠시 좌절하는 동안 나미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런 상대일수록 속을 잔뜩 뒤집게 해서 계략에 넘어오게 하기는 쉬웠다. 나미아는 아까 화냈던 것이 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듯 여유 있는 표정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설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물론이죠! 제 명예를 걸고, 절대 지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럼 뭐 까짓것 승부를 해보도록 하지. 아무나 디에고하고 티나 좀 불러와!”

    “예, 마스터!”

    주방에 있던 직원들은 마스터의 변덕에 애꿎은 신참만 박살나는구나 싶었지만 진짜로 디에고가 이긴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다 전원의 머릿속에 거의 동시에 스친 생각은, 티나세르는 왜 찾느냐는 점이었다.

    자마닌이 씩씩대며 자신의 상대를 기다릴 때, 수려한 금발머리의 청년과 단발머리의 예쁘장한 소녀가 얼굴에 의문을 가득 담고 주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나미아는 먼저 브란디에고를 소개했다.

    “이쪽이 디에고. 그리고 이쪽은 티나세르. 댁이 겨뤄야 할 상대는 이 청년이고, 심사는 이 소녀가 하는 걸로 하지. 뭐, 심사위원의 입맛을 맞출 자신이 없다면 다른 상대를 지목해도 좋아. 어린 소녀의 입맛도 못 맞추는 실력이라면 누가 되든 뻔 하지만.”

    끝 문장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지만, 혼잣말이 의미가 무색하리만치 큰 그 목소리는 자마닌이 귀에 똑똑하게 들렸다. 자마닌은 한껏 일그러진 미소로 브란디에고를 바라보며 그에게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 제 상대군요. 한 번 겨뤄보지요.”

    “예? 에… 무슨 말씀이십니까?”

    브란디에고는 갑자기 불러와서는 웬 이상한 인간이 노려본다는 상황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승부는 무엇이고, 티나세르가 심사위원이라는데 그건 대체 무슨 말인가? 그러나 나미아는 브란디에고를 싹 무시하고는 자마닌의 요청을 얼른 받아들였다.

    “좋아. 승부는 일주일 뒤로 하지. 설마 그 정도의 아량도 없는 건 아니지?”

    “훗. 어차피 그가 질 것이 뻔 한 승부인데 일주일 정도야 아무래도 상관없지요.”

    “킥! 과연 그렇게 될지 두고 보자고.”

    “예. 두고 보도록 하죠.”

    자마닌은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주방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아직도 어벙하게 서있는 브란디에고는 한 번 훑어봐주고는 코웃음을 쳤고, 나미아는 팔짱을 낀 채로 얼굴 가득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이전 사정을 모르는 브란디에고와 티나세르는 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서로 마주보고는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나미아를 불렀다.

    “저… 오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언니? 왜 불렀어요? 무슨 일인데요?”

    “…우하하하하하핫! 승부다! 승부인 것이다!”

    나미아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는 천장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고, 그 모습에서 설명을 위한 친절을 찾지 못한 브란디에고와 티나세르는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의 시선을 받은 오디는 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다.

    “에… 그러니까, 디에고 씨는 일주일간 요리를 배워서 조금 전의 자마닌이란 사람과 맛 대결을 펼쳐야 해요. 거기의 심사위원으로는 티나세르가 낙점되었어. 일련의 사정으로 인해서 디에고 씨는 절대 지면 안 된다는 걸 염두에 두시고요, 종목은 티나세르가 좋아하는 음식 종류로 정하도록 하죠.”

    “…예?”

    “자, 잠깐만요.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브란디에고가 오디의 말을 곱씹고, 혼란스러운 표정의 티나세르가 머리 위로 물음표만 가득 띄울 때, 실컷 웃고 난 나미아는 아까처럼 승부의 당사자들은 깡그리 잊은 듯 델리스에게 말했다.

    “델리스 요리장! 일주일간 디에고의 신병을 맡길게. 뭘 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

    “예! 반드시 이기고 말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럼 그렇게 알고, 영업 재개! 다들 일해, 일!”

    짝짝짝!

    나미아가 박수를 치면서 직원들을 재촉했고, 주방이 직원과 소란을 쫓아 고개를 내민 홀 직원들은 다시금 자신의 자리를 찾아 흩어졌다.

    간신히 이야기의 맥락을 짚을 수 있었고, 그리하여 심사위원이 된 티나세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좋아하는 음식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서도 아직도 이야기를 파악하지 못한 맹한 표정의 골드 드래곤은 델리스 요리장에게 이끌려서 팔자에 없는 요리수업을 받게 되었다는 것만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다.

    콧대 꺾기는 그렇게 무모하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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