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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script(후기): 기만. (32/49)
  • Postscript(후기): 기만.

    From guest diary of Namia. Page 25.

    속이고 속는 일. 이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두 번쯤은 있을 법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에는 대수로울 수도, 거창할 수도 있는 이유가 붙는다. 숨긴다는 것은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모호한 웃음이나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거나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 숨긴다는 것은 기만의 1차적 목적이다.

    사람을 속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건 쉽다. 속는다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진실과 다를 때 겪는 감정이다.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의 차이에서 속느냐 확인하느냐가 갈린다. 결국, 기만은 무지에서 찾아온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빈센트는, 안테르지오는 나와 오디를 속이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그의 기만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배경에 숨겨진 진실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는 그가 내보인 표면적인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는 속았던 것이고, 유래 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결과적으로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은 것이니 속았다고 할 수 있겠지. 나는 그가 평생 꿈을 쫓는 사람으로 내버려두고 도움이라고 생각하는 방해를 줄 작정이었다. 처음부터 속이고 들어갔던 것이었고, 결국 기만과 기만이 충돌했다는 것이 이번 일의 전체적 핵심이다.

    고대인이었다는 사실은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생존자가 극히 미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손님의 형태로, 나를 속이기 위해서 왔다는 걸 난 모르고 있었다. 나와 오디는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는 진심으로 하는 것이라 믿었기에 그들의 정신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것이 일이 비틀어진 화근이었을까?

    아니다. 나와 오디는 손님을 기만하기 싫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와줌에 있어 기만당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싫었다. 우리는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꾸밈없는 모습이라 여겼고, 여태까지 우리는 기만하지고, 기만당하지도 않았다. 이번 일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속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꽤나 불쾌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진실이라 믿게 되고, 그 사실이 기만이었다는 걸 알게 될 때는 배신감이 들게 되어 불쾌해하고, 화를 내고, 실망하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화를 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기만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디가 죽었다는, 그것 때문에 화를 내었다. 나는 애초에 그에게 기만당했다는 사실로 화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처음부터 그를 속이고 있었기에. 그가 고대인이 아니라 정말로 고대의 유적 발굴에 인생을 거는 고고학자 겸 트레저 헌터였다면 그는 나에게 기만당해 평생을 헛되이 보낼 것이다. 자신의 야망에 근접해 최후에 싶해한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는 꿈을 쫓고 있었다. 어느 꿈이 진실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그는 결국 이룰 수 없는 꿈을 끊임없이 쫓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도 속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며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기에 그게 아니라고, 이 세상이 비틀려 있다고 자신을 속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불쌍한 자기기만의 피해자일 뿐이다.

    어떤 결말이 되었든, 그는 지금 나에게 있어 불쌍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속고, 이 세상에 속아서 결국 이루지 못할 꿈을 쫓다 죽은 그는 기만의 희생자. 화가 나지도, 불쾌하지도 않다. 단지 그의 불행만이 생각날 뿐이다. 힘없이 꺼져가던 눈동자엔 세상에 대한 불신만이 가득 남아있었다. 측은하였다.

    세상은 기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모두들 진리에 근접한 진실을 숨기고 적당한 기만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 대화를 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않고 다른 말을 하는 것도 기만하고 있는 행위이다. 그런 기만은 가식이라는 행동으로 비춰지거나, 혹은 그로 인해서 사람들 사이에 끈이 돈독해질 수도 있다.

    기만 위에 쌓여진 세상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그래서 기만을 뒤에 깔고 시작된 이번 일도 그 끝이 서글프기 그지없다. 기만을 위해 죽은 고대의 제국 삼황태자인 안테르지오에게 애도를.

    앞으로도 많은 손님이 나에게 찾아올 것인가. 그들 중에는 진짜 마음을 숨기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나와 오디를 기만하여 무엇을 얻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마음속에 담고 있는 진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스스로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우리가 억지로 알아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와 오디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우리는 평온함을 가장한 불안한 현실 위에서 다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지 않는가, 손님을 속이려고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지 않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어디까지일까. 나는 과연 어디까지 기만할 것이며, 어디까지 내보여야 할 것이다. 기만 위에 쌓아진 신뢰가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 것인지 잘 보았다. 난…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잘 생각해 봐야겠다. 적어도 그 생각의 끝에서 내가 나 자신을 속이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스스로 잘 생각해 봐야겠다. 옳고 그른 것인지는 시간이 말해주겠지만, 현재에 솔직하게 살며 기만하지 않으면 미래에 가서도 그것이 기만 아닌 진심이 담긴 진실로 남게 되지 않을까?

    지금은…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내가 속은 것인지, 그가 속은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아. 어차피 제대로 말 할 수 없는 진실 위에 세워진 일에서 뭐가 명확하다 할 수 있을까?

    기만. 그것은 결국 모든 걸 허무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번 일에서 건진 단 하나의 진리다.

    Postscript: 기만. - 종료.

    P.S: 결국 손익 제로군.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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