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4: 부활을 준비하는 자. (31/49)
  • Part4: 부활을 준비하는 자.

    브란디에고는 흥미로움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었다. 자신의 영토 안에 있는 이상한 도시는 땅을 딛는 생물들이 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앞에서 저들은 매우 수월하게 그 일을 해내었다.

    그 전에 앞서 더 흥미로운 점은 숨기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건만 거침없이 산을 타고 오르는 일행의 모습이었다. 무엇을 믿기에, 무엇을 바라기에 드래곤이 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접근하는가.

    그는 한 순간 저들이 이제 막 성룡이 된 자신을 상대로 무용을 뽐내어 드래곤 슬레이어의 칭호라도 노리나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며칠 간 잘 지켜본 결과 그들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매몰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는 순수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죽음도 감수하면서 이 북쪽 산맥을 오르는 것인가.

    그래서 그는 멀찍이 떨어져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눈보라의 건너편에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목적은 산맥 내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도시에 대해서는 브란디에고 역시 고대의 도시라는 점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스스로를 발굴대라 부르는 자들의 행동은 여러 조건과 맞물려서 브란디에고로 하여금 그들을 일단 살려두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에 했다.

    브란디에고 역시 잘 알고 있는 도시의 진입의 난점은 그 도시가 깎아지른 계곡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브란디에고의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 부분이었다.

    드래곤의 영토임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들어왔다는 것은 이 원정에 대해서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성공해 내었다. 피막과도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도구를 사용하여 23명에 달하는 인원이 모두 안전하게(대부분 우스꽝스런 비행이었지만) 유적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0피트 위에서 모든 걸보고 있던 브란디에고는 나중에 저들에게 접근하여 유적 발굴의 결과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들은 그 날개 역할을 한 도구를 분해하여 도로 가방에 집어넣고는 조사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발굴대의 대장이자 유일하게 고대의 유적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남자가 한 명이었고 나머지는 그들을 돕기 위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었다.

    한가지 알 수가 없는 점이라면 제일 먼저 비행 도구를 타고 날아오른 붉은 머리의 여성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나지만 그의 기억에는 없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하얀 머리를 지닌 여성은 왜 저 일행에 있는 것일까?

    그것을 위해서라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브란디에고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미아의 눈에 비친 고대의 도시는 예전 사이에그롭에 있었던 그 도시와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단지 사이에그롭의 도시는 땅 속에 있었다는 차이점뿐이었지 다른 부분에 대해선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고대의 생활 용품 대부분은 현재와 별 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의념을 사용한 물건들이 있을 뿐이었죠.”

    빈센트는 어느 집에서 들고 나온 칼자루를 보여주며 싱글벙글 웃었다. 20명의 늑대인간들은 그들의 도시나 이 도시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에 금방 흥미를 잃었다. 나미아와 오디는 빈센트의 조사 과정 하나하나를 눈여겨보며 긴장하고 있었기에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희희낙락한 사람은 빈센트뿐이었다.

    일행은 도시의 외곽을 먼저 돌기 시작했다. 외곽의 지역부터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빈센트가 원하는 것, 의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보조기구를 찾고 있었다. 그의 추측으로는 병원이나 관청 같은 곳에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나미아가 말했다.

    “상점은 어떨까요?”

    “상점이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목발이나 휠체어를 관청에서 팔지는 않잖아요? 대개 장애를 완화시키는 보조기구들은 특수한 상점에서 주로 팔죠. 의념으로 물건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빈센트씨가 들고 나온 그런 칼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는 다리가 부러졌다거나 팔이 없는 식의 장애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도구는 따로 파는 상점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흐음…. 일리가 있군요. 역시 상인이시군요.”

    빈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미아의 생각은 자연스러운 사고 과정의 발로였다. 빈센트는 상점들도 주의 깊게 보면서 외곽지역을 돌기 시작했다. 나미아는 그의 행동에서 중앙의 포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걸 알고는 한결 안심할 수 있었다.

    기왕이면 이 도시 안에 빈센트가 찾는 물건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내색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짐짓 쾌활하게 말했다.

    “오늘은 노숙 안 해도 되겠네. 간만에 씼을 수도 있겠어.”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곳에 와서도 건량이나 간이 식량으로 식사를 대신하면 그건 상당히 우울할 것 같아요.”

    “아, 그래. 동감이야.”

    나미아와 오디는 마치 여행하다가 오랜만에 도시에 들른 듯한 여행자들처럼 도란도란 떠들고 있었다. 그들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겠다는 듯이.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력 435년 14월 5일.

    외곽지역, 내부지역을 탐사하는데 3일의 시간이 걸렸다. 20명의 늑대인간들은 자신들의 할 일이 짐꾼으로 낙점 되었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무료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료해하는 늑대인간들과 달리 빈센트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간에 걸쳐 도시를 샅샅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찾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탐색의 실패와 스폰서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의 침울함을 해석한 나미아는 이번 발굴이 실패로 끝나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루해하는 늑대들과 침울해하는 빈센트와는 달리 그녀는 고대의 도시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장소라고 여기는 표정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며칠동안 판이하게 달라진 일행의 모습을 보며 오디는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별 일이 없었으니 아마도 앞으로도 별 일이 없을 거라는 좋은 느낌이 들었다. 빈센트에겐 미안하지만 이번만큼은 좌절해 주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도시의 발굴에 예정된 시간은 5일이었고, 오늘은 그 4번째 날이었다. 보통의 발굴작업이 다년간에 걸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반해 고대의 유적은 파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관광하듯 돌아다니며 조사하며 그걸로 끝이기에 조사기간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남은 부분은 도시의 중앙 부분이었다. 굴뚝같은 길쭉한 포대가 서있고, 그 주변으로 나있는 여러 건물들은 외곽이나 내부 지역보다도 훨씬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관공서가 모여있는 도시의 중심은 이제 빈센트의 마지막 희망이 담겨진 곳이었다.

    “자, 출발하죠.”

    “네에-!”

    반쯤 자포자기한 빈센트와 활기찬 나미아의 대답은 부조화를 이루었다. 서로의 목적이 이미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지루해하는 늑대인간들이나 침울해 있는 빈센트에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짐을 지고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도시에 유일한 방문객인 23명의 일행은 천천히 도시의 중심 지역으로, 높은 굴뚝같은 기둥이 더 높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미아는 자신의 예상이나 추측이 들어맞는 것에 대해 어떤 기분을 가지고 있냐하면 대개는 좋은 기분이었다. 왜냐면 그녀가 하는 예상은 그녀에게 좋은 쪽의 예상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예상이나 추측이 들어맞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자신의 예상에 대해 좋아할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빈센트가 저리도 기뻐하고 있으니.

    “이, 이거다! 이거였어! 으하, 으하하하핫!”

    빈센트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중심지역의 어느 상점에 있는 밴대너와 팔찌, 손가락이 없는 글러브로 되어있는 어떤 장비 세트 일체였다.

    나미아가 남몰래 불쾌한 표정을 짓고 오디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빈센트는 그것을 착용하고는 의식을 집중시켰고, 이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의자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우하핫! 난다! 날아!”

    애들처럼 좋아하는 빈센트를 보며 나미아는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축하드려요. 정말 고대인이 아닌데도 되는군요.”

    “하하, 하하하! 만세!”

    빈센트는 듣지 않는 듯 자신의 몸을 띄워서는 상점의 바깥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20명의 늑대인간들이 모두 놀라며 빈센트의 모습을 보고 있었고, 빈센트는 그들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좋은 아침이죠? 와하하핫!”

    “대, 대장? 어떻게 한 거지?”

    “이게 바로 고대의 그 보조기구입니다. 의념으로 물건을 들어올리거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착용했던 그 도구지요. 단점이 있다면 손을 통해서 대부분의 염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손을 사용하지 못하면 움직임에 제한이 걸린다는 점이죠.”

    나미아와 오디는 상점 바깥으로 나오면서 공중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빈센트를 보고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발견되지 않기를 바랬지만 고대의 저 보조기구는 완벽한 형태로 빈센트에게 발각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일반인인 그가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불행이었다. 양산까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미아는 저걸로 그가 학회에서 박사 학위를 따면 양산화의 연구를 빌미로 해서 저 보조기구를 정당한 수단으로 봉인해야겠다고 결론지었다. 빈센트에겐 미안하지만 그 이후에 다른 미확인 정보들을 무수히 뿌려주면 죽을 때까지 자신의 꿈을 쫓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나미아는 오디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의심이 그녀의 표정에 떠올라 있었다.

    “오디, 왜 그래?”

    “저… 좀 이상해서요.”

    “응? 뭐가?”

    “저 보조기구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나미아 님은 알고 계셨나요?”

    나미아는 공중에서 한 두 바퀴 돌면서 비행의 기분을 만끽하는 빈센트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현대에서 깨어난 것은 3살 때의 일이었고, 그녀는 고대에 관련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랜 기간의 생명보존 수면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고대에 관련된 기억을 전부 가져가 버렸다.

    “아니. 왜?”

    “이상해요. 아무리 고대의 문헌을 읽었다고는 해도… 빈센트 씨는 어떻게 손에서 염력이 방출되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도저히 처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저 자유로운 제어는… 무슨 뜻일까요? 자세한 설명서라도 있었던 걸까요? 아니, 그렇다고는 해도 저 보조기구의 힘을 자유롭게 다룬다는 건…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나미아는 빈센트를 보았다. 단순한 적응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저 보조기구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오디의 말대로 자세한 설명서가 있더라도 저렇게 쉽게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장애를 도와주는 기구의 대체적인 특징이 있다면 사용자가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 작동방법이나 원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사용하면서부터 깨닫는 종류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추측을 꺼내놓았다.

    “그렇…네? 하지만 저건… 저렇게 사용하고 있다는 건 원래 사용하기 쉽다는 뜻 아닐까?”

    그녀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4야드 높이 위에서 나왔다.

    “하핫! 그건 아닙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의념에 작용하는 도구가 그리 쉽게 작동될 리가 없죠. 하물며 제 4 문명기의, 기본적인 구조부터가 틀린 인간이 작동할 수 있는 호락호락한 물건일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 말씀, 진위가 무엇이죠?”

    오디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빈센트를 보았다. 빈센트는 생긋 웃으면서 그녀의 말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내놓았다.

    “고대에는 말이죠, 모든 사람들이 전멸할 정도로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원인은 모르지만 인간들의 탐욕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지요. 그땐… 정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습니다. 쏟아지는 마물들이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제각기 무기를 꺼내 맞섰지요. 이런 식으로요.”

    위잉-!

    빈센트는 품속에서 날이 없는 칼자루, 고대의 병기를 꺼내었다. 칼날이 달려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던 그 병기에서 갑자기 1야드 길이의 뿌연 칼날이 솟아올랐다. 염력을 집어넣어 칼날의 형태로 구현시키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패배와 멸망은 어쩔 수 없는 것. 저희 부모님은 저를 미래로 보냈습니다. 생명유지만을 시켜둔 채 몇 년의 시간이 지날지 모르는 그런 긴 잠을 제게 주셨습니다.”

    “…고대인이군.”

    나미아는 잇사이로 짧게 결론을 내렸다. 오디의 의문도 한번에 해결되었다. 그가 저리도 쉽게 고대의 보조기구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빈센트, 그가 고대의 생존자였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고대인입니다. 고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토타카의 어느 산 속에서 깨어나 방황하다 마음씨 좋은 양부모에게 길러진, 그리고 고대의 기억을 가지고서 현대를 살아가는 고대인입니다.”

    “목적이 뭐지?”

    “목적이요? 글쎄요. 짐작해 보시겠습니까? 저는 위대한 제국, 아라크 제국의 황제였던 아스페지움의 셋째 아들, 부활을 준비하는 자, ‘안테르지오’입니다. 제가 무엇을 할까요? 잃어버렸던 의념의 힘도 되찾고… 눈앞에는 ‘저것’이 있습니다! 하하핫! 하하하하하!”

    빈센트의 이름으로 가장한 안테르지오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나미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가 황제의 아들이건 딸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고대인의 피와 살…

    그것은 저 고대의 병기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나미아는 그를 잡으려고,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안테르지오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하하!”

    안테르지오의 모습이 파앗 꺼지더니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제야 나미아는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고대의 병기를 쥐게 된 최고 권력자의 후예이자 ‘부활을 준비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나미아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고대 제국의 부활! 그가 노리는 건 고대 제국의 부활이야!”

    나미아의 외침에 오디의 표정이 새하얗게 변했다. 어떤 식으로 고대의 부활을 준비하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힘을 가졌다. 힘을 가진 자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취해 어떤 일이든 하게 될 것이다.

    “저, 저기… 무슨 일입니까?”

    “빈센트가 무슨 말을 한 거죠?”

    20명의 늑대인간들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미아처럼 끝없니 신경을 쓰고 있던 것도 아니었으며, 모든 걸 눈 여겨 관찰 한 것도 아니거니와 고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들이었다. 오디는 이들이 어떻게 말하면 납득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나미아는 그보다도 더 빠른 결론을 내렸다.

    “하나 뿐인 늑대왕의 이름을 빌어 명령한다! 지금부터 빈센트, 아니, 안테르지오를 잡아! 그는 저곳에 있다!”

    “예?”

    “명령을 수행하라-!”

    “예, 옙!”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그들은 어쩔 수 없는 군인이었다. 그들은 당장 짐을 풀어 몸을 가볍게 하고는 나미아가 명령하는 대로 도시 중심에 있는 포대를 향해 달렸다. 나미아는 양 허벅지에 있는 봉인을 제외한 나머지 봉인을 모조리 풀고서는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속았어…! 속았어! 고대인이었을 줄은!”

    “어서 가요!”

    “절대, 절대 저걸 작동하지 못하게 해야 해!”

    나미아와 오디는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속이려고 들었다. 그를 속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속은 것을 그들이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안테르지오는 자신의 몸에 기만을 두르고서 그녀들을 만났던 것이다.

    고대 제국의 부활을 위해서.

    이 도시의 이름은 반테르지안. 계곡에 둘러 쌓인 아름다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고대 축약단어였다. 고대 후기에 건설된 도시가 그렇듯이 이 도시에도 위력적인 형태의 ‘포’가 만들어져 있었다. 문명 말살포, 인명 말살포, 마물 생성포 등 수 많은 형태의 포가 만들어지던 시절, 이 도시는 고대 최후의 도시였다.

    반테르지안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포대는 다른 포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포의 역할은 고대인이 숨쉬듯 사용할 수 있었던 다양한 형태의 의념을 증폭시켜서 세상을 향해 쏘아내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염력이나 투시력같이 단편적인 의념을 증폭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이 포의 역할은 사람의 정신을 세상에 구현하는 ‘신의 손’ 그 자체였다.

    “나의 시대의 부활이다! 유일무이한 제국의 피를 잇는 마지막 후예로서 나는 절대자가 된다!”

    안테르지오는 염력과 투시력 같은 자연스러운 힘을 사용할 수 없는 장애자였다. 그런 그에게 남들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보조기구의 사용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 고대의 정신구현포는 정상인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보조기구의 힘이 필요로 했다.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그는 피 한 방울과 머리카락 한 올로 이 장치의 작동 준비를 모두 완료했다.

    거대한 둥근 공간의 중심에는 안락하게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저곳에 누워 눈을 감고 이 장치와, 반테르지안과 자신의 정신을 일치시키기만 하면 장치의 작동은 시작되는 것이다.

    우우우웅….

    공간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번쩍거리는 빛이 벽면을 메우기 시작하면서 장치의 작동을 알리고 있었다.

    안테르지오는 희열에 찬 표정으로 장치의 작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중앙의 의자로 걸어갔다. 마치 왕좌같이 안락하게 만들어진 그 자리에 그가 앉자 전체의 벽면이 일시에 빛나더니 굵직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울렸다.

    -이름을 밝혀 주십시오.

    “안테르지오! 아라크 제국의 삼황자!”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안테르지오는 이를 드러내며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드러내었다. 그는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묻고는 눈을 감았다. 이 공간이, 이 도시가, 그리고 곧 이 세계가 그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의 입이 열리며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그럼, 최초의 방해자를 해치워야지…?”

    그는 웃었다.

    빛이 번뜩였다. 20명의 늑대가 가는 앞과 뒤, 좌우로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벌거벗은 인간 수백 명이 갑자기 생겨났고, 힘차게 중앙의 포대를 향해 달려가던 그들은 발을 멈추어야 했다.

    “뭐지…?”

    그 인간들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는 그들을 보았다. 눈에는 적의를 잔뜩 담고 이를 드러내며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이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늑대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던 나미아는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었다. 저 모습은 평생이 가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피와 살로 작동된 장치에서 쏟아져 나와 세계를 혼란으로 이끈 주범들이었다. 지금은 멸살 되어 남아있지 않은 존재들을 안테르지오가 부활시킨 것이다.

    그녀는 불같은 화를 토해내었다.

    “안테르지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나미아 님! 소소한 것에 신경 쓰지 마세요!”

    오디는 당장 마물들을 처단하려 날아가려는 나미아를 붙들었다. 나미아는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오디를 쏘아보았지만 오디는 침착하게 말했다.

    “일일이 상대하실 것 없어요. 안테르지오만, 그 사람만 끌어내면 돼요. 마물들은 늑대들에게 맡기세요.”

    “…제길! 늑대들에게 알린다! 400년도 더 전에 너희들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들은 저들과 맞서 싸워 이겼다! 그 후손인 너희들이 저들에게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죽여라! 전부 죽여버려엇-!”

    마지막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피맺힌 원한이 섞인 나미아의 목소리는 늑대들을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들려온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툰드라의 늑대들이 세상에 좋은 이미지로 알려질 수 있게 된 결정적 사건의 주범이었다.

    죽이고, 먹고, 강간하는 것으로 세상을 혼란으로 물들인 마물들이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어리둥절해하던 늑대들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나미아의 피맺힌 목소리. 전부 죽여버리라는 악에 받힌 목소리는 그들의 투지를 불러 일으켰다.

    마물들과의 시선에서 한치도 지지 않던 그들 중 제일 앞에 선 늑대인간이 크게 소리쳤다.

    “라스-! 크란-! 가자!”

    우우우우우우-!

    그들의 목소리는 거대한 함성이 되었다. 일시에 울부짖는 늑대들은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마물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이 싸우는 길에는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져 내렸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에는 나미아가 없었다.

    나미아는 날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중앙의 포대에 도달할 것이다. 속고 속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번에는 속아선 안 될 사람에게 속았다.

    “고대 제국의 부활?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죽은 시대는 부활되어선 안 된단 말이야! 현대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과거의 망령을 부활시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나미아는 자신이 고대인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에 대한 무참한 향수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좋은 부모를 새로 만났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도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이 시대를 굳이 바꾸려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귀여운 동생들도 생기고, 떠들썩한 가족이 있었다.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라는 시간은 그녀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억도 하지 못하는 과거의 영광 따위는 그녀의 관심목록 바깥에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원하기에 과거의 시대를 부활하려 한다는 것인가?

    그녀는 안테르지오가 모든 걸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목소리를 드높여 외쳤다.

    “대답해엣-! 대체 왜! 무슨 이유 때문이야! 뭘 원하고 있는 거야?! 왜 망령이 되어버린 시대를 부활시키려 하냐고!”

    드드드드드….

    도시가 떨리고 있었다. 일정한 진동이 도시 전체를 지배하면서 도시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떨리고 있었다. 그 소리 사이로, 안테르지오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살던 곳이 과거이기 때문이다. 15세에, 수 만년 뒤의 미래로 보내져 혼자가 되어버린 기분을 알겠나?

    “몰라! 난 몰라! 하지만 자기와 살던 곳이 다르다고 해서 세계 전체를 뜯어고치려고 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네가 세계에 적응하면 되잖아!”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단순히 다수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맞춰가야 한다는 건가? 이 세계를 고칠 수 있는데 왜 내가 맞춰야 한다는 거지?

    “독선이야! 그렇게 만든 세상에서 누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은 너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야!”

    -과연 누가 더불어 살아갈까.

    “…뭐?”

    진동이 멈췄다. 나미아와 오디는 포대가 있는 건물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나미아는 이를 악물며 안테르지오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보았지. 서로가 사랑으로 맺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가는 사람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불신하고 자기들만 힘들다고 말하면서 끝없는 자기 만족에 취한 사람들. 다른 이들과 살아갈 수 있으면서도 자신이 원래 그렇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얼빠진 인간을. 결국 모두 같아. 다들 혼자 남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기만 외롭다고, 힘들다고 말하지. 다른 이들이 힘들어하는 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들. 이들이 과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

    -결국 세상은 같아! 어떤 곳에서든 살아가는 건 혼자야! 그래서 바꾼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든다! 내가 살아가는, 살고 싶은 곳에서 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을, 이 세계를! 내가 살았던 그 그리운 시절로 되돌린다!

    나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독한 독선과 고독으로 만들어진 아집은 그에게 어떤 말도 통하게 하지 않았다. 그의 말로 일리는 있다. 서로가 돕지 않으려 하고 서로를 믿지 않으며, 믿으면서도 혼자 살아가는 자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의 말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건 틀린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알아! 함께 웃고, 함께 행복해지려고 하고! 함께 나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알아! 세상은, 그래! 혼자서 살아갈 수도 있지! 개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그건 자기 발 밑 밖에 보지 못하는 편협한 인간들이 고개를 들어 앞을 보고, 옆을 볼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내뱉는 궁상일 뿐이야! 자신부터가, 자신부터가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남들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는 비겁한 생각일 뿐이야! 남들이 자신을 받아줘도 자신이 마음을 열지 못하는데, 스스로를 고독의 길로 밀어 넣고 있으면서 남을, 세상을 탓하는 건 좁디좁은 좁쌀 근성이라고!”

    -결국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야! 함께 살면서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상처 입혀서 그걸 즐거워 하는 게 인간이다! 지금의 현실이다! 대인인 척 하면서 포용력 있는 행세만 할 뿐이야! 자신을 간직하면서 남들과 살아갈 수가 없어!

    “너 바보냐?! 당연한 것 아니야?! 사람과 사람이 언제나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모두가 달라! 벽돌 같이 안정적으로, 모두 똑같이 생긴 게 아니라고! 나 자신을 유지하면서 남들과 함께 살겠다는 그런 생각이 얼빠진 거야! 싸우고, 상처 입히면서도 사람들을 살아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러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 사람을 진심으로 상처 입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 것 같아! 상처는 치유되게 되어 있어! 사람은… 사람은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야! 이 정신연령 7살짜리 꼬맹아!”

    안테르지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미아는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이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말을 도통 들어먹지 않는 상대에게 해줄 말이라고는 욕 외엔 남은 게 없었다. 오디는 나미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그녀의 숨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너도 같아.

    “뭐라고?”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뿐이야!

    나미아는 기가 막혔다.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면 저렇게 남의 말도 곡해해서 들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이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결국에는 모든 걸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해 버린다. 그야말로 어린애였다.

    “더 이상 듣고 있지 못하겠군. 오디! 가자!”

    “옛!”

    나미아와 오디는 몸을 날렸다. 포대가 세워진 건물 어딘가에 안테르지오가 있을 것이다. 나미아는 자신의 경험을 생각하여 건물의 전 중앙, 포대의 끝에 그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날 방해하게 두지 않아!

    쿠르르르…!

    건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가는 길이 갑자기 좁아지고, 벽돌이 튀어나오며, 문이 잠기고 있었다. 안테르지오의 의념은 그녀들이 자신에게로 오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나미아는 잠겨진 문 앞에서 이를 드러내며 날카로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넌 착각하고 있어. 나는 말이지… 이미 나이 세는 걸 포기할 정도로 이 시대에서 닳고닳은 고대인의 생존자라고! 자기 혼자만 외롭다고 생각하는 꼬맹이 주제에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열엇-!”

    퍼억!

    나미아의 의념은 문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녀들의 진입을 거부하던 건물은 그녀가 걸어가는 길을 비켜주고 있었다. 이곳에 작용되는 안테르지오의 의념보다도 나미아의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거대한 힘이 움직이는 곳을 본능적으로 짚어낼 수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거침이 없었고, 각종 방해를 하려던 건물은 그녀가 가는 길을 터 주었다.

    -어, 어떻게…?

    나미아는 당황해하는 안테르지오의 말에 대답하지도 않은채 척척 걸어나갔다. 그녀가 가는 곳은 건물의 지하, 장치의 구동부분이었다.

    안테르지오는 당황했다. 자신 이외에 고대인이 있었다는 소리인가? 그는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그의 의념과 그에 반응하는 구현장치의 움직임도 다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시작한 일이었다. 여기서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었다. 구현장치는 계속해서 힘을 축적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고대의 제국을 다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힘이 모였을 때, 일시에 방출하기만 하면 그가 원하는 세상이 이 세계에 도래할 것이다. 성공을 눈앞에 뒀는데 그것을 걷어찰 정도로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그녀들을 절대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의념을 모아 상상했다. 건물이, 포대만을 남기고 모두 터져 나가는 모습을.

    콰-가가가가가!

    건물이 조각나며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미아는 이를 악물었고, 오디는 자신과 나미아를 감싸는 마법 방어막을 만들었다.

    콰드득! 콰가가각!

    기둥이 어긋나고, 벽돌이 뽑히면서, 모두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리고는 분해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힘의 파동은 마법의 방어막이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오디는 그 방어막을 유지하면서 몇 겹의 방어막을 더 만들었다.

    콰가가가가각!

    안테르지오의 의념은 결국 건물을 분해시켜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나미아는 그녀의 발 밑으로 거대하고 투명한 돔 속에 있는 안테르지오를 보았다. 거대한 포대는 돔의 첨단부에서 높게 솟아 있었다. 나미아는 오디에게 눈짓하며 돔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그들의 몸을 날렸다.

    안테르지오는 나미아와 오디가 남아있다는 것에 낭패감을 느끼며 다시 이 도시를 살펴보았다. 그들이 부른 마물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20명의 늑대인간들 앞에 마물들은 모두 쓰러졌다. 살아서 움직이는 마물은 하나도 없었고, 늑대인간들은 다소 다치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멀쩡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면서 너무 강한 상대를 부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도시에서, 모든 걸 다룰 수 있는 신이었다. 그는 힘이라는 이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나미아가 외치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들었다.

    “안테르지오! 당장 그만 둬!”

    “어림 없는 소리!”

    안테르지오는 씨익 미소지으며 나미아의 앞에 그녀가 아는 자들을 옮겨왔다. 20명의 늑대인간들이 갑자기 끼여든 그림처럼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뭐, 뭐지?”

    “어라? 여긴 어디야?”

    그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중 몇 명은 나미아를, 몇 명은 안테르지오를 볼 수 있었다.

    “교관님?”

    “빈센트!”

    서로 반대편을 보던 늑대인간들이 양쪽의 사람들을 모두 확인했을 때, 나미아는 늑대인간들의 덩치에 가려 보이지 않는 안테르지오에게 말했다.

    “무슨 수작이지?”

    안테르지오는 빙긋 웃었다.

    “수작? 글쎄. 이런 것이지. 고대인을 제외한 모두는, 이 방에서 죽을 지어다.”

    “아, 안 돼!”

    오디는 앞으로 나가면서 절대방어마법을 사용했지만 그건 그녀의 목숨 밖에 구하지 못했다. 안테르지오에게서 공간의 일그러짐 같은 기운이 퍼져 나와 사방으로 퍼졌고, 아무런 상황파악을 하고 있지 못하던 늑대인간들은 그 기운을 맞고는 피를 토하면서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커헉!”

    “크억! 가, 가슴이…!”

    “교, 교관…님…!”

    “우웨에엑!”

    순식간에, 20명의 늑대인간들이 죽었다.

    나미아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앞에서, 오디를 제외한 모두가 힘없이 쓰러져 내렸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붉은 생명의 정수를 토하며 쓰러져 죽었다.

    “아… 아아…!”

    나미아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고 있을 때, 안테르지오는 자신이 한 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생각만으로 20명의 늑대인간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오디가 살아남았을 뿐이지만 그는 그녀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이과 하는 의념을 집중시키면 된다.

    그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눈을 감은 채 그녀에게 손가락을 향했다.

    “모두, 죽어.”

    파아앙!

    그의 손에서는 푸른빛이 쏘아졌다. 오디는 이를 악물면서 수십 겹의 마법 방어를 그녀의 앞에 펼쳤고, 그녀의 눈앞에서 파란빛이 방어막에 맞아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디는 마법으로도 이 강한 의념은 막을 수 없다는 걸 실감해야 했다.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입으로부터 한 움큼의 피가 토해진 것이다.

    “쿨럭!”

    나미아는 다급하게 오디에게 다가갔다. 어지간한 일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던 오디가 피를 토했다. 이것만큼 심각한 일도 없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오디를 불렀다.

    “오, 오디!”

    “피, 피하세…요, 나…미아… 님….”

    오디는 입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나미아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상태를 전혀 나아지게 하지 않았다.

    쉬이이익!

    안테르지오에게서 방출되던 파란빛이 거둬지고, 재차 피를 토한 오디는 무릎을 꿇으며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나미아는 황급히 쓰러지는 그녀를 받아 안았다.

    오디는 입에서 연신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커억! 쿨럭! 흐윽…!”

    “오, 오디! 오디잇!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괘, 괜찮…으세… 커헉!”

    오디는 다시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나미아는 다급하게 회복마법을 시전 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깃든 죽음의 그림자를 벗길 수는 없었다. 나미아는 계속해서, 다급하게 오디를 불렀다. 그녀의 눈에는 절망과 슬픔이 깃들었다.

    “오디!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가지마! 나 혼자 두지 말란 말이야!”

    “죄송… 저는… 저…, 흐윽!”

    저는 여기까진가 봐요. 추워요. 손이 떨려요. 나미아 님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어요. 죄송해요.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

    오디의 머리가 추욱 늘어졌다. 입가에는 새빨간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채로, 루비와 사파이어 같은 두 눈동자엔 칙칙한 빛만이 남아있었다.

    나미아의 움직임이 굳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오디의 얼굴을 만졌다. 서서히 식어 가는, 하얀 얼굴을.

    “오디…? 오디?”

    나미아는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오디의 입가에서 왈칵 선혈이 튀어 나왔지만 그것은 삶의 징조가 아니었다. 단순히 걸려있던 피가 튀어나온 것뿐이었다.

    나미아는 난처한 웃음을 띄우며 떨리는 목소리로 오디에게 말했다.

    “오디? 거짓말이지? 응? 아하하… 우습잖아, 정신의 정령이 죽다니…. 장난이지? 응? 나 장난 좋아해. 그러니까 웃어 줄게. 장난치지마. 오디? 응? 자꾸 그러면 나미아 화낸다? 응? 응? 으응…?”

    그녀의 목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그녀의 품안에서 오디의 몸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몇 백년을 함께 해왔고, 몇 천년이고 같이 할 줄 알았던 그녀의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오디의 몸이 천천히… 천천히… 식고… 있었다….

    “으아아…! 으아아…! 아냐! 이게 아냐! 거짓말! 이렇게 될 수는 없어! 오디! 오디-!”

    식는다. 뭐가? 난 뭐지? 난 누구? 이건 누구야?

    이렇게 식어 가는 데. 무슨 뜻이지?

    오디? 싸늘하게 식은 건 시체? 죽음?

    오디가 죽었어. 귀여운 내 하얀 고양이.

    네 이름은 오디 미아! 안녕, 오디!

    안 돼. 죽었어. 오디가 죽었어.

    나 죽으면 울어줄 거지?

    안녕 오디! 식는다. 귀여운 내 하얀 고양이.

    죽는 건 뭐야? 오디가 죽었어. 무슨 말이지?

    나미아는 오디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오-디-!”

    그녀의 두 뺨에 흐르던 물은 피가 되었다. 붉은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건 붉은 피. 아롱져 떨어지는 피는 눈물에 섞여 기묘한 무늬를 볼에 남기며 턱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고함질렀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여버릴 거야아아아아아-!”

    마지막은 거의 비명이었다.

    철컥!

    그녀의 양 허벅지에서, 뭔가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미아는 오디를 조용히 내려두고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의 주변으로는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공기가 몰아치면서 주변을 휩쓸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던 안테르지오는 이를 악물며 다시 그 파란빛을 나미아를 향해 쏘았다.

    “죽어라!”

    콰앙!

    파란빛에 격중된 나미아가 뒤로 퍼억 밀려나버렸다.

    쿠웅!

    투명한 돔의 외벽에 부딪혀서 추욱 늘어진 그녀의 입가에서는 한 줄기의 핏물이 흘러나왔고, 안테르지오는 안심할 수 있었다. 이걸로 나미아도 죽은 것이다.

    “날 방해할 사람은 없…어?”

    나미아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힘없는 동작으로 스르륵 일어난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면서 기성과도 같은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아아아아-!”

    우드드득! 콰지지직!

    그녀의 등에서, 날개 한 쌍이 옷을 뚫고 나왔다. 붉은 색과 검은 색을 한 드래곤의 날개였다. 나미아의 몸보다도 훨씬 큰 날개가 천천히 펼쳐지고 있었다. 변화는 그 것 뿐만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 중앙에 있는 머리카락이 칠흑 같은 검은머리로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는 머리의 끝까지 이루어져 그녀의 머리카락은 가운데에 검은 선이 그려진 듯이 보였다.

    우득! 우득! 찌지직!

    그녀의 오른 팔의 옷이 찢어지면서 팔의 모양이 변하고 있었다.

    검붉게 빛나는 딱딱한 비늘이 덮이면서 팔의 길이도 늘어나고 손가락까지도 비늘이 덮이며 길게 늘어났다. 손가락 끝에서는 흑색의 손톱이 4인치 가량 솟아났다.

    왼쪽 눈의 홍채가 새까맣게 면한 그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안테르지오를 노려보았다.

    모든 봉인을 풀고 힘을 개방한 그녀의 블러드 스폰 폼이었다.

    “무슨… 괴물 같은!”

    파앙!

    예의 그 파란빛이 나미아에게 향했지만 나미아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표정으로 짧게 말하며 오른 팔을 들어 그 빛을 후려쳤다.

    “사라져.”

    파란빛은 그녀의 팔에 맞아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그라지었다.

    파스스스….

    빛의 사그라짐 뒤로 보이는 그녀의 입에서는 살기가 잔뜩 묻어나는 말이 흘러나왔다.

    “감히… 감히…! 오디와 내 부하들을…!”

    그녀는 양 날개를 활짝 펼치고서는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었다.

    “왜… 왜 죽어야 했던 거야!”

    나미아는 오른 팔을 휘둘렀다. 새파란 불꽃이 파도가 되어 안테르지오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그 성난 기세는 나미아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었다.

    “사그라져라!”

    안테르지오는 눈을 뜨며 불꽃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그의 명령대로 불꽃은 사그라지며 검은 탄 자국만을 남기고 있었다. 나미아는 재차 오른 팔을 휘둘렀다. 가느다란 바늘과도 같은 산성액이 그에게로 향했다.

    “하압!”

    안테르지오는 손바닥을 들었다. 산성액이 날아가다 공중에서 멈춰서는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바닥이 녹아들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미아는 계속 전진했다. 안테르지오는 그녀가 오지 못하게끔 의념을 쏘아보냈지만 그걸로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너 때문이야….”

    나미아는 우뚝 멈춰 섰다. 안테르지오는 그녀가 일격을 날릴 것이며, 자신이 그걸 막지 못할 것임을 짐작했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목적을 끝까지 이루고자 했다. 그는 눈을 감고 의념을 모으기 시작했다.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의념까지 모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크그그그그그….

    “왜 오디가 죽어야 해? 왜 누군가 죽어야만 해? 왜? 왜? 왜?!”

    나미아의 날개가 한 번 펄럭였다. 그녀의 발이 살짝 띄워지며 땅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녀는 말했다.

    “왜 누군가 죽어야만 하냐고! 그렇게 밖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거야?!”

    쿠르르르르…!

    “대답하라고!”

    대답은 없었다.

    그녀의 검고 붉은 날개가 거세게 퍼덕였다. 그 직후,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다.

    우지지직!

    오른 손에 옷을 꿰뚫고 내장을 훑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안테르지오는 피하지도 않은 채 그녀의 일격을 받았다. 나미아는 피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들러 그를 바라보았다. 안테르지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피를 토하며 외쳤다.

    “이걸로, 이루어진다!”

    콰아아앙! 씨이이이-잉!

    돔 전체가 떨리면서 안테르지오의 의념이 증폭되어 쏘아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정체 모를 물질로 구성된 돔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의념이 한참동안 포신을 통과하는 소리가 나미아의 귀를 울렸다.

    이대로, 이대로? 고대의 병기가, 고대의 제국이 지금 나타나는 거야? 또 나로 인해서? 내가 막지 못해서 이런 거야? 안 돼, 이럴 순 없어! 또 다시 평화로운 이 세상을 혼란으로 이끌 수는 없어!

    나미아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에에엣-!”

    퍼엉!

    하얀 의념이 쏘아졌다. 포의 끝에서 쏘아진 하얀 의념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저대로, 저대로 퍼질 것이다.

    나미아는 고개를 숙이며 울부짖었다.

    “아아… 아아아악!”

    콰앙!

    그리고, 공중에서 폭발했다.

    세상에 안테르지오의 의념이 퍼지는 폭발은 아니었다. 그것은… 소멸의 폭발이었다.

    “커헉! 커억! 비, 빌어… 먹… 을…!”

    안테르지오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그는 거기까지밖에 말 할 수 없었다. 그는 죽었다.

    “대체… 뭐지?”

    나미아는 알 수 없다는 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었지만 안테르지오의 의념은 발사되자마자 소멸했다. 아무런 목적도 이루지 못한 채 그의 헛된 꿈을 쫓던 몸뚱이는 나미아의 팔을 감싸며 식어가고 있었다.

    “뭐였…지?”

    나미아는 천천히 팔을 뽑았다. 검붉은 비늘 위에 흥건한 피가 뚝뚝 떨어졌고, 안테르지오의 몸이 서서히 끌려나오며 힘없이 쓰러져 뒹굴었다.

    나미아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안테르지오의 시신으로 향해있었다. 그녀는 허무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이렇게 끝날 거를… 그렇게….”

    오디가 죽었다.

    20명의 늑대인간들도 죽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으로 목적을 이루려던 안테르지오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의념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구현장치라고 하더라도 고대의 제국을 부활시킬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의념을… 현실로….”

    나미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안테르지오의 피로 흥건한 장치가 보였다. 아직도 계속 작동될까? 나미아는 확신할 수 없는 생각에 홀린 듯 몸을 내맡겼다.

    그녀의 등에 나있던 날개가 접혀들고, 머리의 색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두 눈동자의 색이 붉은 색으로 통일되고, 그녀의 오른 팔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원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린 나미아는 멍한 눈으로 홀린 듯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20명의 늑대인간과 오디의 모습을 강하게 떠올렸다.

    ‘살아나 줘! 제발! 내 모든 걸 걸어도 좋으니, 그들을 살려줘!’

    순간 그녀의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주변이 진동하면서 그녀의 몸 속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득한 느낌, 너무나도 먼 듯한 기분이 들면서 그녀의 정신은 천천히 잠겨들었다.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브란디에고는 돔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같은 동료들을 죽이면서, 목숨을 버리면서 필사적으로 발사시킨 그 빛을 그는 절대 좋은 것으로 볼 수 없었다. 포신의 끝에 마법장을 설치했지만 그 빛을 그 마법장을 무참히 깨트리면서 하늘로 솟았고,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용언을 사용하여 그 빛을 무효화 시켰다. 그러다가 그는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두 번 째 빛을 막지는 못했다.

    돔의 내부는 시체들이 쌓여있었다. 어떤 드래곤들이 만든 블러드 스폰인지 모르지만 그 여자는 발굴대의 대장이 앉아있었던 그 좌석에 앉아서 추욱 늘어진 채 혼절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었지?”

    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일단 구할 사람은 구하고 봐야겠기에 나미아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그러다가 자신의 발치에 누워있는 하얀 머리의 여자가 움직이는걸 보고는 눈을 크게 흡떴다. 분명 죽었을 텐데? 그러다가 그는 그녀의 앞에 쓰러진 20명의 늑대인간들도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되살아난 건가?”

    “우응…. 나미아… 님?”

    오디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서있는 다리를 볼 수 있었고, 그 다리를 따라서 고개를 치켜든 그녀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금발의 남성을 볼 수 있었다. 가죽갑옷에 가벼운 장비를 착용한 브란디에고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오디에게 말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저, 저는… 오디 미아 싸이…. 그런데 누구시죠?”

    오디는 자기 이름을 무의식중에 말하려다 문득 눈앞의 남자를 처음 본다는 걸 깨달았다. 브란디에고는 끝에 한 두개 정도 단어가 더 붙을 것 같은 이름을 추궁할까 하다가 상관없는 이야기 같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브란디에고 루 세스칸추. 골드 드래곤의 신예입니다.”

    “아아… 북쪽 산맥의 주인…?”

    “여러분의 모습은 처음부터 보고 있었습니다. 아주… 안 좋은 일이 있더군요.”

    “예에… 아, 나미아 님?! 나미아 님! 아아!”

    오디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화들짝 놀라서는 남아를 찾았다. 이윽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안테르지오의 시체와 추욱 늘어진 나미아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브란디에고를 무시하고는 황급히 나미아에게 달려가 그녀의 팔을 잡고는 맥을 짚어보았고, 미약하지만 그녀의 맥이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다행이에요. 살아 계시군요…!”

    오디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으며 나미아의 손을 잡고 그렁그렁 눈물을 속눈썹에 달았다.

    브란디에고는 오디에게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사정 이야기는 나중에 듣도록 하죠. 죄송하지만 이 곳은 지상에서 없애버려야겠습니다.”

    “예. 꼭 부탁드립니다.”

    오디는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장소가 더 이상 지상에 남아있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브란디에고는 고생해서 온 장소를 부순다는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오디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동의를 받은 이상 별 다른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깨어나는 늑대인간들과 오디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을 잠시 다른 곳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챙길 물건이 있으면 속히 챙기시길 바랍니다.”

    “에? 예? 형씨는 누구요…?”

    “제 이름은 브란디에고 루 세스칸추. 골드 드래곤의 신예입니다.”

    “허억?!”

    놀라는 늑대인간들의 무리를 보며 브란디에고는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까마득함을 느꼈다.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력 435년 14월 7일.

    나미아의 눈에 빛이 보였다. 하얀 천이 드리워진 모습은 그녀가 익히 보던 그런 모습이었다. 아득한 기억은 마치 꿈결같았다. 기분도 편안했고, 그녀가 눈을 돌렸을 때 오디가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나미아는 안심하고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모두 꿈이었구나….

    오디는 눈을 뜨는 나미아를 보면서 기쁜 듯 말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나미아 님.”

    “오디… 안녕. 나… 꿈을 꾸었어.”

    “무슨 꿈인 데요?”

    “으응… 이상한 손님이 왔는데… 고대인이야. 고대의 유적에 가서… 그 사람이 배신을 하고… 오디가 죽었어. 그 자는 내가 죽였는데… 아무튼 정말로 이상한 꿈이었어.”

    나미아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앉았다. 부스스한 머리를 잡고 긁적이던 그녀는 웬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침실에 들어와서 유유자적하게 차를 마시는 걸 볼 수가 있었다. 그녀는 의례 침실에 들어온 생면부지의 외간남자에게 여자들이 보일 수 있는 보편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리면서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를 지른 것이다.

    “다, 당신 누구야?!”

    “나미아 님. 저 분은 브란디에고 루 세스칸추 님이세요. 북쪽 산맥의 골드 드래곤이세요.”

    “뭐? 그, 그건…! 내 꿈 이야기잖아?”

    “꿈이 아니에요. 나미아 님이 혼절하시고, 저 분이 나타나셔서 저희들을 구조해 주셨어요. 안테르지오의 계획을 막은 것이 저 분이시라더군요.”

    “무, 뭐? 오디 그럼 너… 유령이야?!”

    나미아는 급하게 손을 뻗어서 오디의 뺨을 만졌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얼굴을 통과하진 않았다. 손에 와 닿는 촉감은 부드러웠고, 따뜻했다. 오디는 자신의 뺨에 닿은 나미아의 손을 잡으며 생긋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저, 안 죽었어요.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지만요. 나미아 님이 저와 늑대인간들을 살려주셨잖아요.”

    나미아는 냅다 오디를 끌어안고는 목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오, 오디-! 흐아아앙! 난 정말로 너 죽었는 줄 알고…! 으아앙! 다행, 끄윽, 다행이야아! 으아앙!”

    오디는 푸근하게 나미아를 마주 끌어안고는 등을 토닥거렸다. 나미아는 그렇게 한참을 오디를 끌어안은 채 울었고, 잊혀진 존재가 된 브란디에고는 이 애정 넘치는 장면을 보며 방해하지 않기로 작정하며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가 차 한잔을 비웠을 무렵, 나미아의 울음이 잦아들고 다소 진정이 된 듯 싶었다.

    “크응, 훌쩍! 지금 며칠이야?”

    “14월 7일이요.”

    “꽤 오래 지났구나…. 저기, 브란디에고?”

    “예?”

    “저희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브란디에고는 진심으로 겸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미아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서 생긋 미소지어주고는 대번에 표독스런 표정을 지으며 베개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숙녀의 침실에 누가 함부로 들어와도 된다고 그랬어-?! 당장 나가-!”

    “우왓?! 아, 알겠습니다!”

    날아오는 베개를 고개 숙여 피한 브란디에고는 황급하게 나미아의 침실을 나갔고, 나미아는 씩씩거리다가 다시 오디를 보며 활짝 웃었다.

    “오디-! 정말 다행이야. 응응.”

    “아, 네….”

    오디는 나미아의 감정기복이 마치 어릴 때 같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미아의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살아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다른 데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적어도, 나미아가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볼 수 있으니 살아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미아는 오디의 얼굴에 대고 자기 얼굴을 비비다가 한숨을 쉬면서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따라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 같았다.

    “아아… 정말이지, 꿈을 쫓는 손님은 위험했어. 뒤가 좀…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요.”

    “그래. 그 메신저가 조심하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어. 그런데, 대체 이번 일로 우리들에게 뭘 시키려고 했던 걸까?”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건 그렇고, 브란디에고 님을 계속 저렇게 기다리게 두실 건가요?”

    나미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응? 나한테 할 말 있대?”

    “예. 사정 설명도 좀 하고, 나누실 말씀도 있대요.”

    “우웅….”

    나미아는 손가락을 아랫입술에 대고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았어. 1시간 정도 기다려 달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오디는 일어나서 고개를 숙인 후 물러났고, 나미아는 침대에서 내려와서는 기지개를 쫘악 펴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이나 은은한 향이 떠도는 자신의 침실은 그녀의 일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씻기 위해 목욕탕으로 들어가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위험했어.”

    이걸로 잊자. 그녀는 더 이상 꿈을 쫓는 손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Guest.05: 꿈을 쫒는 손님 -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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