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진짜 발굴의 시작.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 력 435년 13월 27일.
라투나에서 북쪽 산맥의 입구까지는 라스킨이 내어준 대통령 전용 비공정을 타고서 4일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나미아는 이 여정의 일정을 대충 20일 정도로 잡고 있었다. 나미아는 이 일이 아마도 손님과 최대로 오래 있게 되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손님과 긴 나날을 보내야 한다는 것에 다소의 우울함을 안고 있었지만 그것이 바깥으로 표출되지는 않았고, 속으로고 깊이 숨겼기에 그녀의 최측근인 오디 조차도 나미아의 불안감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백색 산맥’이라고도 불리는 북쪽 산맥은 아이리펜 대륙의 최 북단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산맥에서 남은 길이 하루 정도 되었을 때 비공정 바깥으로 보이는 것은 무한히 펼쳐진 하얀 동토였다. 눈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공간에 점점이 움직이는 유랑부족의 모습은 그야말로 하얀 종이 위에 찍어진 단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했다.
그 북쪽 산맥의 입구에서 나미아는 용케 이곳에 자리를 잡을 생각을 한 어떤 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빙산의 눈물’이라는 상당히 익숙한 이름에서 친근감을 느낀 나미아는 출발하기 전 점검을 위한 공간을 약간의 식량과 생활용품으로 얻어낼 수 있었다.
부족민들은 대통령 전용 비공정에서 내린 사람들에게 매우 정중하게 대했지만 북쪽 산맥으로 들어간다는 점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의 난색을 표했다.
“왜 그러죠?”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북쪽 산맥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겨울을 앞둔 시점이라 지금이 아니면 반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심정은 이해하지만요.”
부족의 족장인 ‘눈물의 정수’라는 이름의 늑대인간은 갈색의 털이 수북한 목덜미를 벅벅 긁으며 난처한 표정을 유감 없이 드러내었다.
나미아는 그 표정에서 겨울의 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초보로 보이는 일행에게 현지인 들이 보낼 수 있는 비웃음이나 가소로움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눈물의 정수는 진심으로, 그 어떤 이유 때문에 이들이 산맥으로 진입하는 걸 꺼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미아는 그들이 가진 이유가 제발 주술적 의미라든지 설화와 민담에 기초를 둔 터부적인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랬다.
그런 점을 들어 이들을 막고 나서는 이들의 행동을 무시한다면 이것은 곧바로 적대적 행위로 간주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채 눈보라로 호흡하는 산맥과 싸우기에 앞서서 이 부족을 비롯해 이 부족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부족들을 상대로 먼저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인원의 대부분이 늑대인간이라서 그들은 부족의 율법을 중요시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시작도 하지 못하고 이 일이 중단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눈물의 정수가 꺼내는 이야기는 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저희도 대통령 각하께 말씀드리려고 벼르고 있던 차였습니다. 저 산맥에 드래곤의 레어가 생겼거든요.”
“…예?”
“말 그대로입니다. 저희 부족민들 모두 봉우리 사이를 날아다니는 드래곤을 본 적이 있거든요. 집단적 환각이나 착각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나미아는 이마를 짚으면서 정말로 난색을 표했다. 드래곤의 영역이 되었다니, 주술적 이유보다도 훨씬 고약한 경우가 아닌가. 그녀는 아연실색하며 말했다.
“맙소사. 아무리 화이트 드래곤이 살 곳이 없다고 해도….”
“화이트 드래곤이요? 아닙니다. 저희가 본 것은 골드 드래곤이었습니다.”
“…잠깐만요. 골드 드래곤이요?”
“예. 미쳤다고 생각하셔도 차마 할 말이 없는 점은 저희도 알고 있지만 그건 분명히 골드 드래곤이었습니다. 설마 화이트 드래곤이 무겁게 온 몸에 금칠을 하고 돌아다니진 않지 않겠습니까?”
보편적인 진리와 일반적인 상식의 이름으로, 맙소사. 나미아와 오디는 얼이 빠져버렸다. 아니 대체 어떤 미친 골드 드래곤이 이런 동토의 산맥 속에 집을 꾸밀 생각을 했단 말인가? 적어도 골드 드래곤이 화산에 둥지를 틀지는 않는 것은 확실했지만 이런 얼음밖에 볼 것이 없는 산맥 속은 절대 아니었다.
눈물의 정수는 나미아와 오디의 표정을 보고서는 심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했다.
“그 심정 이해합니다. 저도 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골드 드래곤이라고 말한 부족민을 다른 부족민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 속에 파묻어 계도했을 겁니다. 하지만, 맙소사. 저도 보고 말았습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체를요. 아마 제가 봤을 시점에는 모든 부족민들이 봤을 겁니다. 어린 늑대에서부터 늙은 노인까지 모두요.”
눈이나 땅속에 파묻는 행위는 광증을 치료하는 툰드라의 민간요법이었다. 이런 쓸데없는 정보를 생각한 나미아는 고개를 휘휘 젓고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사막에 화이트 드래곤이 둥지를 틀었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눈 밖에 없는 곳에서 둥지를 틀겠다니, 어지간히 이상한 골드 드래곤이다.
나미아는 빙산의 눈물 부족을 모두 눈 속에 파묻어야 하나 고민하는 대신에 그들의 이야기를 믿기로 했다. 하나가 말하면 거짓이고 둘이 말하면 절반이고 셋이 말하면 진실이라는 오래된 금언이 그녀의 사고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그녀는 확인을 위해 다시 물었다.
“그게 언제부터라고 했죠?”
“1년 전입니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터가 좋아서 여러 부족들이 머물거든요. 최소 1년 전까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새로 레어를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미아는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창날을 진열한 것 같은 산맥을 보았다. 오늘은 날 생각이 없나보다. 직접 본다면 확실하게 사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눈물의 정수가 해준 말로만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도 남았다. 늑대들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귀중한 정보 고맙습니다. 일행들과 상의해 볼게요.”
“예. 대통령 각하께도 말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들어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유념해 둘게요. 설령 들어가더라도 부족에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지요.”
“그럼 천천히 쉬다 가십시오.”
눈물의 정수는 예를 갖춰 인사하고서는 부족민들에게로 돌아갔다. 나미아는 저 멀리서 자신들이 들었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발굴대의 인원을 보았다.
가장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역시나 빈센트였다. 그가 쫓는 꿈이 눈앞에 있건만 전혀 들어갈 수가 없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감정일 것이다. 그녀는 오디를 불렀다.
“오디.”
“예?”
“빈센트가 저기에 언제 들어갔다고 했지?”
“4년 전이에요.”
“4년 전이라… 그 전에는 이 소문을 듣지 못했을 테니 들어갈 수 있었을 거야. 그렇지?”
“그렇겠죠.”
오디는 산맥에서 혹시나 그 드래곤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주시하느라 옆얼굴로 나미아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나미아는 아예 산맥의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등을 돌리고서는 하얗게 펼쳐진 눈 앞 위에 안착한 비공정을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랜드 크로스를 생각했다.
그랜드 크로스라면 충분히 갈 수 있겠지만 산맥의 상공에 도착하면 구름 뚫고 올라오는 골드 드래곤의 화염 브레스에 정통으로 명중 당할 것이다.
영역권에 대해서는 도시의 떠돌이 개보다도 알레르기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드래곤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영역을 가진 이성적인 생물들이 그렇다.
자기 영역에 엘브스 퀸의 성을 짓게 하고 인간의 출입을 통제하지만 그 외 이종족의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하는 라이니시스가 특이한 경우였다.
“아아…. 세상 드래곤이 아빠 같으면 얼마나 좋아? 이해심과 사랑으로 넘치는 세상이 될 거야.”
“그냥 포기하세요. 아버님은 드래곤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씀하시잖아요?”
“그래그래.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아니, 영혼이 인간이니까 실제로 인간이라고 해도 별로 할 말 없구나.”
서로 반대방향을 보는 두 사람의 대화는 한가지 결론을 내기가 어려운 법이었다.
나미아는 쪼그려 앉아서는 손가락으로 눈을 슥슥 훑으며 기묘한 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오디는 갑자기 나미아의 얼굴이 옆에서 사라졌다는 것만 알 수 있었고, 나미아의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을 때야 그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디. 어떻게 해야 할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드래곤들이 영역에 대해서 어떻게 신경질적인지는 단편적인 이야기 밖에 없잖아요? 그래봤자 결과는 전부 똑같지만요.”
“그래. 그렇지. 통신석 좀 줘봐.”
“예.”
오디는 그제서야 나미아를 돌아보며 주머니에서 통신석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나미아는 그걸 어깨 넘어로 받아서는 가운데를 꾸욱 눌렀다. 오디는 다시 산맥 관찰로 신경을 돌렸다. 나미아는 통신석을 들고서 상대편에서 연락을 받길 기다렸다. 이내 그녀의 머릿속으로 퉁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체리야. 그렇게 연락 받지 말렴.”
「알았어, 언니. 그런데 왜?」
체리랑스는 죽어도 체리랑스일 것이다. 나미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빠 계셔?”
「응.」
그리고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나미아는 언제 한번 이 막내 동생에게 통신예절을 심각하게 교육해야겠다고 여기며 말했다.
“…바꿔주렴.”
「알았어 언니.」
어째서 체리랑스가 연락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다. 또 다른 다섯 형제가 막내 혼자만 두고서 나갔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라이니시스가 있다는 것에는 안심하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서, 라이니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미아니? 어쩐 일이야?」
“아빠. 나 곤란해요. 도와줘요.”
「어떻게 곤란한데? 어떻게 도와줄까?」
“골드 드래곤하고 친해요?”
통신석 건너편에선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분명 아버지의 친분관계에 무슨 볼 일이 있느냐는 대답이 들려올 것이다.
「아버지의 친분관계에 무슨 볼 일 있니?」
‘아빠…. 엄마들뿐만 아니라 제 예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시네요.’
“골드 드래곤들 중에서 작년쯤에 성룡이 나왔는지 알고 싶어서요. 정확하게는 레어로 북쪽 산맥을 택한 얼뜨기요.”
나미아는 잠시 알아보겠다는 대답이나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라이니시스는 말했다.
「아. 그 애 말이냐? 얼뜨기처럼은 보이지 않았다만.」
“…아세요?!”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에 나미아는 벌떡 일어났다. 게다가 저 반응은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는 반응 아닌가?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아무 것도 없는 땅을 달라고 했던 욕심 없는 골드 드래곤의 신예에 대한 소문을 들었단다. 미리안이 용족 회의에 놀러가서 들은 소문이라더군.」
“용족 회의가 무슨 부녀회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그 아이한테는 무슨 볼 일이냐?」
“으음… 저희가 북쪽 산맥에 들어가야 하는데, 마침 시기도 적절하지. 거기에 둥지를 틀었다잖아요.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어요. 아빠라면 혹시 아실까 생각했는데 이거 뜻밖이네요? 이름이 뭐래요?”
「브란디에고 루 세스칸추. 꽤 착한 아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나도 한 번 본적이 있지. 꽤 성실한 아이 같더군.」
‘꽤 착한 아이라는…’부터 나미아는 흘려들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브란디에고 루 세스칸추’라는 이름만이 남아있었다. 그 외에 라이니시스가 자신이 느낀 감상을 한 두개 더 말한 것 같지만 그녀는 기억해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래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은 라이니시스가 한 두 차례 불렀을 때야 대답할 수 있었다.
「나미아.」
“예?! 예. 아빠.”
「네가 지금 하는 일이… 꿈을 쫓는 사람의 일이냐?」
“…네.”
아니라고 한다면 잠시동안 아버지의 걱정을 덜 수 있겠지만 언제까지고 속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미아는 작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히 조심하고 있어요.”
「그래도 걱정이구나. 조심에 또 조심하거라. 엄마들도 걱정하고 있단다.」
“예. 일 끝나면 연락 드릴게요.”
「아무 일 없길 바라는 것은 사치 같으니 좋게 끝나길 바라마. 꼭 연락하고.」
“네. 아빠.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쪽!”
통신석에 대고 키스하는 것은 진심일까 애교일까. 오디는 날이 가면 갈수록 나미아의 파더 콤플렉스 수치를 측정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나미아의 일방적인 대화를 들었을 때 뭔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오디는 아무래도 그 골드 드래곤이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여겨 나미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흠칫 놀랐다. 나미아가 먹이를 덮치려는 고양이 같은 자세로 준비하다 오디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던 둘 중에서 나미아나 먼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칫. 아깝군.”
“후훗. 다행이군요. 좋은 결과 얻으셨나요?”
“흥. 칫. 말해 줄까보냐.”
“…놀라는 모습이라도 보여드려요? 아아. 깜짝이야. 나미아 님. 대체 뭐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잖아요. 아아아. 심장 멈추는 줄 알았네.”
“푸하하하하핫!”
오디는 두 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고서는 체리랑스의 어조로 말하여 나미아를 웃겼다. 나미아는 허리를 꺾으며 오랜만에 등장한 오디의 익살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때까지 한참을 웃었다. 오디는 살풋이 미소지으면서 나미아가 제대로 말 할 수 있을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아… 푸킥킥! 오디, 방금 것 웃겼어.”
“충분하세요?”
“응. 충분해. 간만에 즐거웠어.”
“그럼 말해 주세요. 무슨 소득을 얻으셨어요?”
“저기 골드 드래곤, 신예 맞대. 이름은 브란디에고 루 세스칸추. 아빠 말로는 착한 성격일 것 같대. 일단 대화는 통할 것 같아.”
이름과 출몰 시기야 아무래도 괜찮았던 오디는 대화가 통할 것 같다는 말에 크게 안심했다.
골드 드래곤이 다른 드래곤에 비해서 선량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의 기본적인 성향이 순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들은 다른 드래곤에 비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레드 드래곤이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를 발견하면 냅다 브레스를 뿜을 때, 골드 드래곤은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식으로 일단 이야기는 들어준다는 식이다.
나미아와 오디는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독특한 존재였다. 신예들 중에서 최강의 레드 드래곤으로 손꼽히는 라이니시스의 두 수양딸이라는 존재감은 어떤 드래곤일 지라도 대화를 할 수 있게 허락할 것이다. 일차적으로 사정청취는 해줄 것이다. 골드 드래곤이라면 그들의 사정도 봐줄 수 있을 확률도 높았다. 게다가 상대는 라이니시스와 일면식도 있지 않는가. 모르는 드래곤이 레어를 튼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경우였다.
나미아는 이것으로 산맥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우울함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기운차게 두 주먹을 꼬옥 쥐며 외쳤다.
“자아! 그럼 출발준비나 해 볼까?!”
“네. 그러죠.”
나미아는 씩씩하게 나머지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오디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산맥을 흘깃 본 다은 조용하게 오디의 뒤를 따라갔다. 북쪽 산맥의 봉우리 위로는 시린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이니시스는 자식에게 고생이 될 거라는 걸, 어려운 길이 욀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보내야 하는 마음이 참으로 착잡한 것을 오늘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성족들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길 바랬지만, 그들이 뭐가 좋다고 메신저를 보내어 거짓말을 하게 만들까?
그는 에릭 안자이라는 메신저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도 덧붙여서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날 자신과 미리안, 에실루나에게 에릭은 이렇게 말했었다.
“고대인들의 병기에 대해선 세 분들도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수양따님이신 나미아 씨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고대의 병기, 상대방을 말살하기 위한 목적만이 잇는 그 병기는… 사실 카르마 병기입니다. 고대인들은 그들 특유의 과학으로 우주를 움직이는 카르마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 카르마를 자기들 멋대로 조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르마엔 여러 가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존재도요. 그들이 쏘아낸 말살포는 그 카르마에서 격중된 곳에 있는 구성원의 카르마를 지우는 흉악스런 병기입니다. 마물 생성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에 없는 카르마를 출현시키지요.”
카르마 병기. 고대인들이 카르마에 제일 근접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결국 고대인들은 자기들이 세계를 이루는 근본소를 멋대로 가져다 쓴 결과 그 피드백을 받고서 자멸한 것이다. 고대인들의 갑작스러운 멸망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에릭은 또 이렇게도 말했다.
“나미아 씨가 가는 도시는 고대인들이 자신들이 끌어다 쓸 카르마가 부족해지자 다른 방안을 생각하여 만들어낸 최초이자 최후의 장치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고대의 다른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카르마 병기입니다. 성족은 대량의 카르마를 만들어내어 카르마 스톤의 제조에 사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의 병기를 작동시키려는 거지요. 일단 그 장치에서 발생된 카르마는 성족들이 남김없이 수거하여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만, 그 과정에서 세 분의 따님은 조심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게 주의하라는 것이죠.”
고대 병기의 작동. 그리고 그것이 나미아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오게 될 것인가 알고 있던 라이니시스는 그 일을 눈앞에 둔 나미아에게 경고할 수도 없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단지 꿈을 쫓는 손님을 주의하라는 짧은 문장뿐이었다. 그것만으로 나미아가 잘 알아차려 주길 바라면서.
“나미아야… 미안하구나.”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고,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 없다. 자식을 위험속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로 힘들다는 걸, 그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나미아의 무사 생환을 바랄 수밖에는 없었다.
바라고, 바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미아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인정한 걸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눈사태가 일어나는 건 바라지 않았기에 속으로만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기분은 상당히 하락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지금 그녀는 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기분 나쁨’이라고 정의했다.
“오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산을 무시하고 있었어.”
“너무 큰 장애물이 있어서 그 앞을 못 본 것뿐이에요.”
입을 가린 마스크의 앞에서는 그녀들이 말을 할 때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구치고 있었다.
뭔가를 사용해서 가린 입으로는 들이마시고, 코로는 내뱉는 것이 얼어붙은 산을 비롯해 추운 곳에서 사용하는 호흡법이었다.
입 앞에 아무것도 대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폐로 들이닥친 차가운 공기를 피를 차갑게 해 체력을 깎거나 심하게는 폐를 얼어붙게 하며, 코로 들이마셨다가는 비강 내 분비물이 빙결-간단하게, 콧물이 얼어붙어-해 호흡장애를 동반한 각종 악현상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기후의 횡포를 막아주는 마법물품은 비싸긴 해도 다른 마법물품에 비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기에 일행은 모두 그런 물품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눈이 쌓여 그 무게에 짓눌려 얼음이 된 그 위로 눈이 쌓여 그 무게에 짓눌려 얼음이 되는 작업을 수 만년 반복한 산이 부릴 수 있는 횡포 중 하나는 해결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산의 횡포는 한 두개가 아니었다.
휘우우우우우…!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는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쉬이이이이-!
날카로운 바람은 그들의 몸을 날려버릴 것 같았다.
뽀드득. 뽀드득.
설신 아래로 밟히는 눈은 언제 미끄러질지 몰랐다.
“앞에 끊어진 길이 있습니다. 뛰어 넘어야 하니 조심하세요.”
눈으로 덮인 길은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눈가는 곳, 손닿는 곳, 발 디딘 곳을 모두 주의하지 않으면 그 대가로 목숨을 가져가는 곳이 이런 만년설의 산이었다. 그리고 지금 일행은 만년설의 ‘산맥’속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주의에 주의를 덧붙이고 주의를 채색해 주의로 포장한 다음에 주의라고 써진 도장을 찍어서 주의해 취급해도 2% 부족한 위험한 곳이었다. 나머지 2%는 협동심과 단결력과 감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등짐을 진 채 서로를 연결한 로프에 의지하여 일렬로 걸어가는 일행은 믿을 것이 자신이고 서로였다. 라스킨이 배정한 20명의 늑대인간들은 동절기의 극한훈련보다도 더한 실제상황에 잔뜩 긴장하면서 감을 날카롭게 세웠다.
제일 앞에서 안내하는 빈센트는 피켈로 천천히 발 앞을 찍어가면서 좁은 벼랑을 오르는 것으로 제일 위험한 위치를 맡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추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정말로 다행이었다. 추위는 육지를 걷는 바다거북 마냥 몸을 둔하게 하고 조각가 도제의 실수처럼 체력을 심하게 깎아내며 스톤 골렘의 육체처럼 몸을 얼어붙게 한다.
드래곤만이 장애물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야 할 곳, 가고 있는 곳, 지나온 곳 모두가 험난한 인생처럼 위험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미아는 이래가지고는 어떻게 돌아올까 걱정이 되었다.
돌아올 때도 이런 고생고생 생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추락한 기분이 마음의 밑바닥을 뚫고 무저갱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돌아 갈 때는 정신력을 고갈시키더라도 반드시 마법으로 갈 테다.’
일행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안달이 나있는 산을 비웃을 작정으로 나미아가 떠올린 생각이었다.
걷다가 멈추고, 다시 걸었다. 앉거나 휴식하는 일은 없었다. 걷다가 멈추더라도 3분이 되기 전에 곧바로 출발했다. 어딘가에 앉아서 쉰다는 건 사치이고 도박이었다.
쉴 곳은 여러 조건에 의거하여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만 여장을 풀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캠프뿐이었다.
물은 조금씩 마시면서 열량이 많은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걸었다. 느릿느릿 걷는 걸음은 지상이었다면 단숨에 달릴 거리였지만 자신을 느리게 쌓아온 산은 자신의 몸 위를 지나기 위해서는 역시 느려야 한다고 생각하듯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다. 완고한 산을 가리켜 왜 할아버지라고 하는지 알 듯한 나미아였다.
빙산의 눈물 부족의 걱정스런 눈빛을 뒤로하고 출발한 지 8시간 째였다. 지금까지 그들은 천천히 걸으며 옷깃을 여미고 입을 막고, 고글을 착용했으며 말수를 줄였다.
간간이 들려오는 말은 선두에 나선 빈센트가 어디로 가야 한다, 주의하라, 어떻게 해야 한다 등 인솔자로서 꺼내는 말이 전부였다. 그것은 도란도란 뒤로 전달되었고, 후미의 늑대인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전달은 끝난다.
“앞으로 2시간 더 가서 쉽시다. 낮이 짧군요.”
오후 5시였건만 해는 부지런하게도 서쪽 산맥의 끝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오디는 빈센트의 말을 뒤로 전달했고, 그들은 다시 걸었다.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력 435년 14월 3일.
가장 큰 적인 추위를 막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들은 혹한의 추위를 뚫고서 고요한 어느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늑대인간들은 큰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며칠 전 나미아가 고려한 자연현상의 거동을 바라지 않았기에 서로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보며 희열을 교환했다.
나미아는 밝은 갈색을 반사하는 도시를 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로군요.”
“예. 말씀하신 대로 잘 보이는 정상까지 오긴 했습니다만….”
우려하는 목소리였지만 빈센트의 표정에는 희열이 있었다. 나미아는 심호흡을 하면서 그녀의 피를 고동치게 하는 도시를 보았다. 느낌만으로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저곳은 고대의 도시였다.
오디는 생각보다 넓은 산 정상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그 골드 드래곤의 존재였다. 그들이 산을 타는 동안 골드 드래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는 골드 드래곤이 레어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라이니시스만큼은 믿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골드 드래곤이 신경을 껐던지 다른 곳으로 외출을 했을 거라는 신빙성 높은 추리를 하는 것으로 자신을 만족시켰다.
나미아는 고대의 유적과 일행, 골드 드래곤 중 그 어디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느끼고 신경 쓰는 건 단 하나였다. 그녀는 뭉쳐 앉아 감동을 교환하는 늑대인간들에게 말했다.
“자, 수고했어요. 다들, 무겁게 짊어지고 온 짐이 진가를 발휘하는 모습을 보게 될 거예요.”
오디는 결국 물건을 점검했던 날 이후로 이상한 철골과 천이 대체 어디에 쓰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쉬기 위해서 텐트를 칠 때도 그 짐들은 한 번도 개봉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여러 번 나미아에게 대체 저건 뭐하는 짐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나미아는 모호한 웃음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오디는 나미아가 뭔가 엉뚱한 짓이나 놀라운 일을 꾸민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에 따라 칭찬이나 찬사 혹은 북쪽산맥의 추위보다도 혹독한 혹평을 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다.
늑대인간들은 천천히 그들이 개봉하지 않은 짐을 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철골과 천, 튼튼해 보이는 끈이 들어있었고, 그것들은 한 묶음으로 되어 있었다. 뭉치 속에서 또 다른 뭉치들이 나오자 늑대인간들은 당황했다. 이걸 어쩌라는 거야?
그들의 귀로 나미아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걸 풀어보세요. 설명서가 있으니 그대로 조립하시고요.”
늑대인간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서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끔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빼보기를 반복하며 철골과 천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길쭉한 삼각형을 그리는 철골 위로 팽팽하게 당겨진 천이 씌워지는 단순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오디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찬사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나미아 님!”
“헤헷. 어때? 내 머리도 쓸 만 하지?”
“쓸 만 한 정도가 아니에요! 세상에…! 이건 정말 철두철미한 준비잖아요?!”
“에헴. 내가 원래 그렇지.”
나미아는 팔짱을 끼고는 한껏 고개를 젖히며 뽐내었고, 오디는 그런 나미아의 기를 죽이기는커녕 더욱 더 그녀를 띄워주었다. 나미아의 콧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널따란 정상 위에는 23개의 삼각 돛 같은 물체들이 만들어져 놓여지게 되었다. 오디는 연신 놀랍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행글라이더라니… 생각도 못했어요. 세상에… 이런 방법을….”
바람을 타고서 사람이 날 수 있게 한 획기적인 발명품이 고대의 유적을 앞에 두고 조립되었다.
나미아와 오디는 라이니시스로부터 다른 차원인 ‘지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중에는 행글라이더도 있었다. 라이니시스는 이걸 직접 만들기도 했고, 그녀들은 어릴 적에 줄곧 타고 놀았던 기억이 있었다.
인간 사회에 나온 지금은 악마의 날개로 오인 받을 소지가 충분하고, 그랜드 크로스라는 훌륭한 공중 이동 수단이 있었기에 탈 일이 없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없이 어울릴 물건이었다.
“자, 한 번 밖에 설명하지 않을 테니까 잘 들어요. 먼저 이건 바람을 타고 날 수 있는 발명품인데….”
나미아는 행글라이더의 각 부분을 가리키며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고, 바람을 타는 법과 공중에서의 자세 제어, 착륙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늑대인간들과 빈센트는 생전 처음 보는 기구들의 설명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일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날리고는 싶지 않았기에 열심히 기억했다.
나미아나 한 번밖에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두 번 설명하기가 귀찮았을 뿐더러 군인들로 이루어진 늑대인간과 트레져 헌터를 하면서 잘 단련된 이들의 운동신경은 금방 행글라이더에 적용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모든 설명을 끝낸 나미아는 시범을 보이는 것으로 즉석 행글라이더 강습을 끝내고자 했다.
“자! 이제 시범을 보일 테니까 제가 말씀하신 걸 잘 생각하며 보도록 하세요.”
나미아는 제일 앞에 있는 행글라이더의 행거를 잡고 행글라이더의 중심 축에 달려있는 끈을 허리에 매었다. 입을 가리고 고글을 쓴 그녀는 크게 외쳤다.
“납니다! 하나, 둘!”
그녀는 행거를 밀며 앞으로 달렸고, 봉우리 아래로 주저하지 않고 발을 내딛으며 나아갔다.
“어엇!”
“헉!”
아무런 공포도 없이 떨어지는 나미아를 보며 늑대인간들과 빈센트는 헛바람을 삼켰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옆으로 나미아를 실은 행글라이더가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갈 때는 눈을 크게 뜨거나 입을 쩌억 벌리며 놀라고 있었다.
나미아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이런 박쥐 날개를 잘라 확대시킨 듯한 물체로 날 수 있을지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미아는 날고 있었다. 마법도 아니고 성법도 아닌 도구의 힘으로!
나미아는 일행의 머리 위를 좌우로 가로지르며 오디에게 외쳤다.
“오디-!”
“네에!”
“사람들 유도해서!”
쉬이익-!
“비행 시켜! 나는!”
쉬이이-!
“먼저 갈게! 너는!”
쉬이이이익!
“맨 뒤에 와!”
“예! 알겠어요!”
짧은 말이었건만 꽤나 힘들게 말한 나미아는 본격적으로 하강하기 시작해 유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디는 신기한 듯 나미아를 바라보는 늑대인간과 빈센트를 보면서 생긋 미소짓고는 말했다.
“자, 여러분.”
일행의 시선이 모두 오디에게 향했다.
“누가 먼저 하실래요?”
오디의 눈은 웃고 있었다.
“우어어! 내가 난다아아아….”
“푸하핫! 저건 떨어지는 거잖아!”
“야야! 칼처럼 칼 같이 떨어지진 말자고!”
늑대인간들의 긴장은 다소 완화되어 있었다. 나미아의 훌륭한 솜씨에 비하면 엉성한 비행이었지만 그 엉성한 모습은 늑대인간들에게 희극적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 엉성한 비행이 가지는 단순한 위험에 대해 오디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려다가 그들의 몸을 굳게 만들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 “저러다 추락사하죠.”
긴장이 풀리면 재미있게 대할 수 있는 것이 비행이었다. 늑대인간들은 비행을 준비하고 구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었고, 나미아가 생각한 대로 훌륭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사리 행글라이더 운용에 적응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긴장하는 건 육상생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2분의 간격을 두고 늑대인간들이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빈센트는 행글라이더를 타기만 하면 유적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희열에 몸을 내맡기고 싶었지만 비행의 위험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저곳에 닿고 싶을 것이건만 차마 발을 쉽게 떼지 못하는 것이 인간답다고 오디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등을 살짝 떠밀어 보도록 늑대인간들을 유도했다.
“여러분. 저희 발굴대의 대장님이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는 데요?”
반응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에에? 대장! 그래선 안 돼!”
“자자,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며 이 해, 해그라….”
“행글라이더.”
“그래. 행글라이더를 옮기고 조립한 것 같아?”
빈센트는 실실 웃고 있는 늑대인간들이 더없이 공포스럽다는 듯 얼굴을 파랗게 물들였다. 비록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빈센트는 늑대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저, 저기, 저는 나중에….”
“모두들! 준비!”
“하압!”
“대장을 옮겨라!”
“우와와악?!”
빈센트는 이 정상 위에서 도망가지도 못한 채 늑대인간들의 우악스런 손에 잡혀야만 했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듯 오디를 보았지만 그녀는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며 한마디만 말했을 뿐이다.
“있다봐요.”
“자! 얘들아! 준비는 되었나?!”
“오옷-!”
“사, 살려줘어-!”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산 정상에 울렸다. 그러나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빈센트의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나미아가 착륙한 곳은 넓고 긴 대로였다. 착륙하기엔 안성맞춤일 곳이라 그곳을 포인트로 정했고, 속속 날아오는 늑대인간들을 유도해 착륙하게 했다.
행글라이더의 행거에는 바퀴가 달려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땅 위로 내려서면 되겠지만 나미아는 가르친 보람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느꼈다.
“와다다다다!”
다단계 적인 기함과 함께 허리의 안전띠를 푼 늑대인간이 바퀴 대신 다리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증명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해도 멈출 수 있는 것은 단지 늑대인간의 무지막지한 힘 때문일 것이다.
저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땅에 가까이 닿자마자 안전끈을 풀고서 대 충격 자세를 취하고는 데굴데굴 굴러 분리식 착륙(?)을 실시하고는 행글라이더를 회수하러 가는 늑대인간도 있었고, 어떤 비행을 했는지 모르지만 10야드 높이에서 행글라이더를 낙하산으로 사용해 수직 착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까지 10명이 넘는 늑대인간들이 착륙을 시도했지만 나미아의 가르침대로 따른 자는 2명뿐이었다.
“대체… 가르친 보람이 없잖아…!”
나미아는 심하게 좌절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늑대인간들은 ‘뭐가 어찌됐든 안전하게 착륙했으니 되었지 않느냐’는 식의 표정이나 ‘요는 이륙이지 착륙이 아니다’라든가, ‘착륙은 단지 거들 뿐’이라는 위험 천만한 뻔뻔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미아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혼내고 싶은 생각이 싸악 사라지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괴상하게 착륙하기 대회’라도 벌이는 건가.
“흐이여-업!”
그녀의 눈앞에서는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서는 바람을 타고 선회 착륙하는 행글라이더를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행글라이더가 부서지지 않는 것이 천만 다행이야.’
나미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30년 전의 그 말 잘 듣던 신병들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새삼 대폭 깎여버린 자신의 위엄이 그리워지는 나미아였다.
쿠르르르르르-!
행거의 바퀴가 땅에 닿으며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찰로 인해 서서히 속력이 줄고 행글라이더의 꼬리가 서서히 내려와 이내 완전하게 멈추었다.
오디는 그녀가 배운 대로 교과서적인 착륙을 깔끔하게 성공했다. 그녀는 행글라이더가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하고서 허리의 안전끈을 풀러낸 다음 고글을 벗으며 행글라이더를 나왔다.
그런 그녀가 제일 처음 본 것은 자신을 끌어안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나미아의 모습이었다.
“오디! 사랑해!”
“예에?!”
드디어 나미아 님이 동성간의 사랑에까지 눈독을 들이셨구나. 이제 내 순결은 요원해졌네. 아아… 고이 간직했는데.
이상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의 인생이 모두 귀결되는 걸 느낀 오디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차라리 자신을 희생하여 나미아의 오갈 데 없는 사랑을 받아주는 건 어떨까 싶은 생각을 마악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귀로 나미아의 징징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앙! 21명 중에서 제대로 착륙한 사람이 3명이야! 이게 말이 돼?! 너무해! 가르친 보람이고 뭐고 모두 사라졌어어-!”
“예, 예에?”
오디는 기막혀하는 눈으로 늑대인간들과 빈센트를 보았고, 오디의 눈길을 받고서야 나미아가 말한 3명을 제외한 18명은 머쓱한 표정을 짓거나 머리를 긁적이거나 부츠의 끝을 뚫기 위해 노력하거나 하는 각종 딴청을 볼 수 있었다.
오디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 순간에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는 걸 느꼈다.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구나. 쉽게 포기해선 안 되는 거였어. 내 순결은 아직 소중히 보관할 가치가 있구나.
이상의 사고과정으로 안정을 찾은 오디는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나미아의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요. 처음이잖아요. 그래도 3명이나 나왔고 다들 다친 곳도 없어 보이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크응! 그래야 해?”
“예. 행글라이더도 안 망가졌잖아요.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에요.”
“그래. 그렇다고 할께. 히잉….”
오디는 크게 안심하면서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거부감이 드는 이 고대의 유적도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드는 걸 보면 거의 안심이 중증에 달한 것 같았다.
나미아가 한참을 징징대고서 진정한 뒤에야 발굴대의 진짜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빈센트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희열에 찬 외침을 내질렀다.
“와하하! 정말로 고대의 유적이야! 이거 정말 멋진데?! 상태도 최고야! 이런 곳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나미아는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하는 빈센트를 보며 오디의 귀에 대고서는 낮게 속삭였다.
“여기, 물건들도 남아있었어.”
오디는 표정을 스윽 굳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인명말살포에 당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동물을 말살시키는 그 원리를 알 수 없는 병기에 당한 것 같았다. 이곳을 파괴시켜야 할 이유가 증가함을 느끼는 오디였다.
나미아는 오디에게서 떨어지고는 짐짓 쾌활하게 외쳤다.
“자아! 행글라이더 접고 빈센트 씨 좀 진정시켜요. 주변에 금붙이가 떨어져 있더라도 함부로 건드리지 마시고요. 눈에 파묻히거나 절벽 밑으로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려갈 걱정은 없지만 여긴 그런 곳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걸 되새기세요!”
“예! 알겠습니다!”
늑대인간들의 반은 몸을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돌리면서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몸을 돌리지 않은 반은 빈센트를 진정시키기 위해 달려갔다.
산 위에서는 그다지 긴장할 것이 없었던 나미아는 이 안에서, 들뜨는 자신의 피를 느끼며 최대한 긴장했다. 그녀의 눈은 말살포 아니면 생성포 둘 중에 하나일 도시 중앙의 거대한 포대를 향해 있었다.
저건 대체 뭘까? 무슨 용도일까?
극도의 경계를 보이던 그녀는 이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작동시킬 사람도 없는 걸. 내 피와 살, 아무에게나 주진 않아.
나미아는 그 포대로부터 등을 돌리고는 오디를 도와 주변을 정리하는 늑대들을 감독하기 시작했다. 진짜 발굴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