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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script(후기): 입장. (25/49)

Postscript(후기): 입장.

From guest diary of Namia. Page 17.

이번 일은 의뢰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히 재미없는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의뢰인들과는 달리 쥬리아는 우리 여관으로 찾아와서 사정 설명을 한 것으로 그 할 일이 끝이 났기 때문이다. 오디의 말에 따르자면 그리 재미없는 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사실 쥬리아의 일을 놓고 보자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쥬리아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러니까 국제적인 문제라든가 타국의 음모로 인한 자국의 반란의 징조는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입장의 차이를 생각하자면 이번 일은 엄청나게 카르마가 꼬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카르마라는 건 뭘까? 인연에서 생기는 업보, 혹은 인연이나 업보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일는지도 모른다.

이번 일의 의의를 생각하자면,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카르마와 그에 얽힌 구성원들의 모습들은 이것이 과연 어떤 식으로 엉켜있는 카르마인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나 할까? 나나 오디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나 손쉬운 일들일 지라도 그것이 당사자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입장의 차이, 그것이다.

그 입장의 차이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까지도 일으킨다. 예를 들자면 쥬리아 혼자서 국경을 돌파해 이곳까지 몸성히 왔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건 그녀가 처한 입장이 그녀를 그런 식으로 몰고 가게끔 만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해적단이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를 비롯한 마을의 일할 수 있는 인력을 모조리 끌고 가버렸고, 남은 마을 사람들은 영주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해있었다. 이런 일을 누구에게 말할까? 말해서 해결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와중에 쥬리아는 우연히 듣게된 소문에 기대어 무작정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다.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상황이 어린 아이로 하여금 몰래 국경을 넘고 열차를 훔쳐 타면서 필사적인 여행을 감행하게끔 만든 것이다.

반역준비를 한 공작이란 작자 역시 그의 입장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다. 신빈성 있는 계획에 전폭적 지원을 약속 받은 그는 그의 욕망에 부응하여 반역을 일으킬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가 그만큼 그 일을 할 능력이 되니까 그런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사람이 대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여러가지인줄 알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그 일을 할 명분을 가지는 입장인 것이다.

죽음이 위에 처한 소녀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희망에 매달려 무모한 여행을 감행하는 것이 당연하며, 나라의 부흥과는 상관없는 부귀영화를 바라는 공작의 입장에서는 기회가 주어지니 반란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자신이 처한 입장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위치에 서면 사람들은 그걸 하기 시작한다. 서있는 자리에 따라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제각각인 것도 다 그런 이유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각자의 입장이 있다고 해서 그 일이 모두 타당하다는 건 아니다.

다시 우리의 귀여운 의뢰인 아가씨의 경우를 보자. 그녀가 처한 입장에서 그녀가 한 일의 결과는 매우 좋은 결과였다. 마을 사람들이 아사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잡혀간 사람들도 돌아왔다. 불행한 입장에 처해있던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함으로써 그 상황을 타파했다.

그에 반해 건방지기 짝이 없는 반역자 공작은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역을 꿈꾸었다. 또한 그 일은 우리의 의뢰인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결과를 야기했다. 결국 그에게 내려진 최종판결은 반역도로서 교수대에 매달리는 것으로 끝난다. 입장의 차이라고 해도 용납될 수 있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횡포를 부리는 일이 잦은데, 그것이 과연 남의 입장에서 볼 때 타당한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눈은 자신이 서있는 곳 밖에 보지 못하며, 그것이 무조건 옳은 것이며 성공할 것일 착각하고 있다.

입장의 차이. 그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과연 남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신의 일이 타당한가 정도는 한두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빌어먹을 카르마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우리의 입장을 성족들이 생각해줬으면 한다. 우리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 궁금증으로 미쳐버릴 것 같이 않아?

아무튼, 이번 일은 정말 알 수 없는 요소로만 가득했다. 결과도 좋았고, 과정도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해결이라는 건 아니다. 이 의문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알아봐야 하겠지.

에휴,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뭔가에 심각하게 말려든 기분이다.

Postscript(후기): 입장 - 종료.

p.s: 해적단 털이… 꽤 짭짤한데?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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