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3: 평원해 격전. (24/49)
  • Part3: 평원해 격전.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력 435년 10월 22일.

    화이트 캣은 이른 아침 바다 위에 떠도는 안개를 소리 없이 밀어내면서 시론트의 연안까지 들어왔다. 부두까지 들어오지 못한 이유는 시론트의 바로 앞의 수심이 화이트 캣의 흘수선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론트의 서쪽으로 펼쳐진 너른 바다는 이제 일몰을 똑똑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화창하게 개었다. 그전까지 미친 듯이 몰아치던 폭풍우는 마치 풍경화에서 흰 물감으로 덮어버린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바다 안개 사이로 거대한 실루엣을 본 시론트의 주민들이 기겁하는 사건이 벌어지긴 했지만, 해가 충분히 동쪽 산에서 벗어나 여행을 시작하는 동안 안개를 걷히고, 흰색의 외장을 자랑하는 화이트 캣이 주민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그제야 시론트의 주민들은 이켈라인 상회의 과학력이 집결된 두 건조물이 모두 자신의 마을에 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야… 저게 화이트 캣이로구만. 정말 새하얗네.”

    “저게 그 유명한 주포야? 이름답지 않게 위협적으로 생겼네.”

    “요즘 조선 기술이 아녀. 저 배에 돛은 장식이라며?”

    화이트 캣이 활약하는 지역은 시론트와 정 반대지역이었지만 150년이나 지난 지금은 대륙의 반대편까지도 그 위명이 잘 알려져 있었다. 시론트의 주민들은 전설의 목격자로서 감격스러운 표정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화이트 캣과 그랜드 크로스는 번갈아 보았다. 이것으로 앞으로 반세기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나타난 그랜드 크로스와 화이트 캣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할 이야기가 넘칠 것이었다.

    오디는 그랜드 크로스의 객실에서 시론트의 앞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이 설계하고 진두지휘하여 만든 최고의 전함 화이트 캣이 있었다. 그녀는 다른 물건들보다 훨씬 애정이 담긴 눈으로 화이트 캣을 바라보았다. 절묘한 시간의 안배로 화이트 캣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동해에서 남해를 가로질러 서해까지 오는 여정은 보통의 배라면 적어도 몇 개월은 잡아야 할 여정이었다. 아무리 화이트 캣이 남해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일반 무역 선박이 보통 두 달에서 석 달은 걸릴 거리를 일주일 만에 주파해서 왔다. 상당히 무리한 항해였을 것이다. 최고 속력으로 엔진을 가동시키고, 전 승무원들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일주일 동안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후우… 오늘까지만 수고해주면 쉴 수 있겠지.”

    오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에디킨츠의 영해 내로 들어와서는 편안한 항해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쉴 시간을 하루 정도는 얻을 수 있었겠고, 어느 정도의 피로는 풀렸겠지만 애초에 육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다. 육지에서 쉬게 해주는 편이 좋은데… 하지만 오늘 바로 싸우러 나가야 했다.

    백병전을 벌일 필요도 없었다. 화이트 캣의 승무원들은 일차적으로 백병전을 하지 않는 함선 전투를 위한 사람들이었다. 뛰어난 기동성과 강력한 함포의 위력은 다른 배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원거리 요격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배끼리 붙을 필요도 없었다. 다른 배들이 지닌 대포의 사거리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화이트 캣의 두 주포보다 길지 않았다.

    “내가 함께 가니…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겠군. 어쨌든 사람도 구해야 하는 일이니까.”

    오디는 천천히 옷을 입으면서 전투의 준비를 했다. 신사이 해적단이 머무는 곳까지는 천천히 가서 그들의 소굴 인근해역에서 전투를 벌여야 한다. 절대 그들의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게끔 둬선 안 된다.

    그녀는 하얗고 통이 넓은 면 스커트에 역시 흰색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그리고 검은 조끼를 걸쳐 선명한 색의 대비를 주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은 등 뒤로 산발한 채 두었고, 옅은 화장 외에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올린 오디는 그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화이트 캣과 함께 나가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네.”

    오디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수록 점점 즐거워져가고 있었다. 지팡이에 달린 쇠고리가 그런 그녀의 기분에 맞춰 시원하게 짤그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랜드 크로스와 지상과는 수직으로 오갈 수 있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디는 밑의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나는 모습을 보고는 그 사이에서 쥬리아를 찾아보았다. 오디와 나미아의 작은 의뢰인 소녀는 사람들의 앞에 서서 상기된 얼굴로 그녀가 내려오는 걸 보고 있었다.

    오디는 승장기가 멈추자 허리쯤에 오는 철문을 열며 쥬리아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었다.

    “쥬리아. 안녕? 좋은 아침이야.”

    “오디 씨. 안녕하세요! 저, 그때 말씀하신 게 저건가요? 화이트 캣이요?”

    “그래. 저 배는 나의 배야.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단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 아니에요! 설마했지만 저 화이트 캣이 올 줄은… 저 감격했어요!”

    오디는 생긋 웃으며 쥬리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람들의 무리가 순간 출렁하더니 자연스럽게 오디와 쥬리아를 따라 화이트 캣이 보이는 부두로 향하고 있었다. 화이트 캣은 저 멀리서 흰색의 선체를 자랑스럽게 내 보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저 바다로 향할 듯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부두를 따라 한참을 돌아가면 비스듬하지만 옆에서 구경할 수도 있었기에 부두에는 지금 많은 주민들이 나와서 전설의 함선을 견학하고 있었다.

    오디는 쥬리아가 흥분해서 떠드는 이야기에 푸근한 표정으로 대답해주면서 부두까지 걸어갔다. 부둣가에 선 오디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지팡이를 들어올렸고, 지팡이에서는 번뜩이는 한줄기 섬광이 화이트 캣으로 향했다. 곧 화이트 캣에서 승무원들이 나와 보트를 내렸고, 느릿느릿 노를 저어가며 보트는 오디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이제 잡혀간 사람들을 구하러 가시는 건가요?”

    쥬리아가 잔뜩 흥분해서 묻는 말에 마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디는 희망과 불안을 담은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이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잡혀간 사람들을 모두 무사히 데려오도록 최선을 다할 거란다.”

    “정말이시죠?!”

    “정말이야. 애초에, 네가 이야기한 것이잖니? 최선을 다할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쥬리아는 마치 지금 당장 구출된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고개를 꾸벅거렸고, 그것은 그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면서 오디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고, 그것은 그녀가 보트를 타고 화이트 캣으로 출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럼 다녀올게! 좋은 소식 기대하고 있어!”

    “예! 다녀오세요!”

    오디는 지팡이로 보트의 바닥을 짚고는 등을 돌렸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으로 일단 그들에겐 희망이 될 것이다. 잡혀간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이 바로 구출되어서 올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괴롭게 되지 않도록, 오디는 일부러 그들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일부러 부정적인 생각은 접도록 했다. 어쩌면 해적들이 사람들을 무차별로 학살했을 수도 있다. 노동력이 필요해서 잡아간 것이겠지만, 잡혀간 시간 동안 한 명도 죽지 않았기를 바라는 건 역시 무리였다.

    화이트 캣의 옆으로 다가간 보트의 양끝에 갈고리가 걸쳐졌고, 크레인이 보트를 끌어올렸다. 갑판 높이까지 올라간 보트는 상승을 멈추었고, 오디는 여유롭게 걸어서 화이트 캣에 승선할 수 있었다. 오디가 오는 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디는 그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에게서 깍듯한 경례와 함께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선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캡틴 벅. 오랜만이에요. 닉스 일항사도 오랜만이고요.”

    “조타관제실로 가시겠습니까?”

    “예. 먼저 목적지부터 정해야겠지요.”

    선장인 “벅 일세르”는 훤칠한 키에 깡마른 몸집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상당히 맑고 날카로운 축에 속했다. 전체적인 인상에 대한 평가로 마치 송곳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들리지만, 선원들에게 존경받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디가 마지막으로 화이트 캣에 탓을 때가 3년 전이었고, 그때와 비교했을 때 바뀐 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화이트 캣의 운영법을 생각해보자면 당연한 일이었기에 오디는 마치 맨 처음 화이트 캣을 탔던 150년 전의 일이 1분 전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들어오시죠.”

    “고마워요.”

    화이트 캣이 다른 목조선들과 다름 전이라고 한다면 그 구동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자연력과 인력의 힘을 빌려 움직이는 범선과 갤리선은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전 승무원이 갑판을 돌아다니면서 로프를 당기고, 선장의 명령에 따라 타륜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화이트 캣은 자연력보다도 내무에 탑재되어 있는 엔진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것을 관제하기 위한 장치가 있는 관제실에 조타를 위한 타륜이 있었다. 모든 것이 실내에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풍랑을 만나더라도 조타수가 떠내려가거나 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이런 부분들이 현재 해안에 접한 국가들이 만들어낸 함선에서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자연력 대신 연료를 소비하는 엔진을 달고, 배를 조종하는 부분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최근에야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었다. 이켈라인 상회에서는 그것을 150년 전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 기술력이 얼마나 진보해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나미아와 오디는 모든 브리핑을 라이니시스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중심 기술에 대해서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조타관제실에는 승무원들이 앉아서 배의 각 부분을 체크할 수 있는 압력계나 눈금자, 승무원들 간의 통신을 위한 통신석이 있었고, 전방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선장이 앉는 의자가 있었다. 선장석의 앞으로는 배가 가는 진행방향을 조종하는 타륜이 있었다. 시대가 지나도 타륜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명언은 화이트 캣에도 진리처럼 남아 있었다.

    “일단 해도를 봤으면 좋겠네요.”

    “예. 알겠습니다.”

    캡틴 벅이 오디를 안내한 곳은 선장석의 뒤에 있는 선장실이었다. 여러 가지 물건들과 수많은 해도들이 있는 책장, 그리고 다른 교양을 위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워낙에 책이 많아 대부분의 책들이 바닥에 쌓여 있다는 점 또한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틴 벅의 방에는 항상 그 위가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책상이 있었다.

    “매우 인상 깊은 방이군요.”

    “하하, 부끄럽습니다. 방 대신에 이걸 보십시오. 근방의 해도입니다.”

    “고마워요. 아, 일단 먼저 출함부터 시키세요.”

    “예. 출함 준비! 연안을 벗어난다!”

    “출함 준비!”

    오디가 해도를 읽는 사이 출함명령이 떨어졌다.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이트 캣은 시론트의 앞 바다에 내려뜨린 닻을 끌어올렸다.

    화이트 캣의 돛이 활짝 펴지고, 바람을 받으며 화이트 캣의 거체가 천천히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파도에 맞춰 화이트 캣의 내부도 조금씩 흔들렸다.

    한참 동안 해도를 읽던 오디는 그녀가 찾는 목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캡틴 벅에게 말했다.

    “진로는 북북서. 목표는 “평원해”입니다. 전속전진 하세요.”

    “예!”

    캡틴 벅은 오디에게 경례를 붙이고는 조타관제실의 선장석으로 올라가서 명령하기 시작했다.

    “진로 북북서! 목표는 평원해! 전속 전진!”

    화이트 캣의 이물이 북북서를 향했다.

    아무리 고성능의 배라고 할지라도 바다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화이트 캣 역시 다른 범선보다는 덜하다 할지라도 약간의 흔들림이 존재했다. 물론 기존의 함선을 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요람에 불과한 정도였지만.

    오디는 급격하진 않아도 천천히 흔들리는 느낌을 좋아했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노라면 마치 물 위에 떠서 흔들거리는 느낌이 든다. 본신이 고양이라고 해도 그녀는 물을 상당히 좋아했다. 아무래도 나미아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잠든 것처럼 누워있었지만 그녀는 화이트 캣의 속력이면 평원해에 금방 도착한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고, 또한 이런 상태로 잠들면 어떤 원성을 듣게 될 지 뻔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말했다.

    “그래요?

    「그렇다니까! 왕 따위 정말 싫어! 뭐야, 대체! 난 정말 이렇게 왁자지껄하고 휘황찬란한 파티 같은 거 싫단 말이야! 히잉-!」

    “그래도 그쪽 일이 잘 해결되었잖아요.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오디야…. 빨리 일 끝내고 돌아와. 혼자 있으려니까… 나 너무… 너무….」

    “심심하시죠?”

    「응!」

    갑작스럽게 마법으로 말을 걸어온 나미아가 내뱉고 있는 무수한 단어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투정’이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태가 얼마나 우울하고 심심한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오디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했다.

    평소에도 있던 일이라서 오디는 그런 투정들을 모두 받아주었고, 나미아는 점점 진정이 되는 듯 싶었다. 벌써 400년 이상이나 반복되어온 일이라서 이제는 일상생활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그런데 신사이 왕국에서는 뭐라고 안 했어요? 화이트 캣은 아무 무리 없이 영해를 통과했거든요.”

    「모르겠다. 지금은 반란 징후를 찾은 직후에 스나일이 이것저것 명령해서는 신사이에게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이야. 그 전에 화이트 캣의 목적을 알면서도 들여보내 줬다는 일이 좀 마음에 걸린다. 뭔가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몰라. 신사이 왕국은 작아도 해군력은 막강하잖아?」

    “그건 그래요. 그렇지만 주변 200해리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걸요.”

    「뭐, 화이트 캣이니까 별 걱정은 안 하고 있지. 기왕이면 그랜드 크로스도 끌고 가지 그랬어? 거기 주포도 쓸 만 하잖아?」

    풀 차지(Full charge)로 발포하면 명중된 지역의 반경 300야드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주포를 가리켜서 쓸만하다고만 칭하는 것이 나미아의 스케일이 크기 때문일까 고민하는 오디였다.

    “그게, 해전이잖아요? 배가 나와야죠. 그리고 그랜드 크로스보다는 화이트 캣이 저에게 더 편해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그래도 조심해야 해? 알았지? 일 끝나면 바로 오고.」

    “알았어요. 그런 파티 재밌게 참석하세요. 나미아 님은 이켈라인 상회의 얼굴이라고요.”

    「응응. 알았어. 그럼 수고해.」

    “예. 안녕히 계세요.”

    대화를 끝낸 오디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미아가 해준 말들을 들어 보면 일단 에디킨츠 내의 불온세력(不穩勢力)들이 서서히 청소가 되고 있었고, 그 배후였던 신사이 왕국은 현재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신사이 해적단이 에디킨츠 근해로 이동하기 전까지 그들은 신사이 해에 머물고 있었고, 그들이 입히는 피해는 조금만 신경 쓰면 들릴 그런 종류의 정보들이었다. 그런데 현재 그 해적단의 뒤에는 신사이 해군이 있다고 하였다. 결국 그들은 자국을 대상으로 한 사략함대(私掠艦隊)였던 걸까? 오디는 가짜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길었던 시간동안의 해적 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떠올리며 의문에 잠겨들었다.

    해적단이 에디킨츠를 괴롭히고, 그 뒤에 다른 나라의 해군이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다. 어차피 국제사회라는 곳이 음모와 음해(陰害)가 판치는 곳 아니던가. 적어도 7년 동안 활동하면서 노략질을 해온 해적단이 해군에게 쫓겨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위엔 해군이 있다.

    ‘결국… 해군이 모든 걸 조종한 걸까?’

    생각해보자면 가능성은 많았다. 신사이의 군부나 더 고위층은 비밀리에 돈을 모을 필요가 있었고, 정치적인 공격이 가능한 뇌물수수 보다는 사람들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더 쏠리게 만들 사건에서 이익을 챙기는 방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혹은 이런 것도 생각해 봄직 하다. 해적단은 애초에 해군과 어떠한 관계도 없었는데 어느 날 신사이 해군에서 접촉이 들어온 것이다. 해적단의 두목과 해군 수뇌부는 서로 결탁을 하고서는 신사이 해적단의 근거지를 옮기에 해서 에디킨츠에 혼란을 가져오게 한다. 그 와중에 해적단은 마음껏 노략질을 하고, 거기서 얻은 수익 대부분을 취한다는 식의 더러운 거래.

    깊게 생각하자면 더 복잡한 경우도 나올 수 있었다. 세상사는 일은 아무도 그 앞을 모르는 것이고, 간단해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그 속은 복잡할지도 모른다. 마치 회중시계처럼 겉면에는 3개의 침만 돌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톱니가 얽혀있는 것처럼. 결국 해답을 듣기 위해서는 시계를 만든 사람에게서 어떻게든 대답을 얻어내야 한다.

    ‘생포… 해야 할 사람들이 생기겠군.’

    에디킨츠의 왕실에서는 어떻게든 해적단과 신사이 해군의 연계를 가진 자를 체포하려고 할 것이다. 나미아의 말로는 오늘 에디킨츠의 4함대가 무데칸에서 출항해 신사이 해적단과의 일전을 치를 거라고 했다.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면 그들과는 목적지인 평원해에서 만나게 된다.

    뱃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가지고 있는 융통성은 바다에서 닥치는 각종 상황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대부분은 경험으로 뒷받침되는 일이지만 바다의 상황이 한결같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겪은 경험 위에 자신의 융통성을 덧씌워 사용한다. 그런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하고 협상하는 일은 뱃사람의 속성만 이해하면 가능하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군인일 경우다. 군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이고, 집단을 위해 계급이 존재하는지, 계급을 위해 집단이 존재하는지 모호한 곳이다.

    군인인 만큼 들어온 명령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초과달성도 없이 완료할 것이며, 따라서 협상이나 대화도 거부할 것이다.

    해적과 만나면 차라리 편하다. 바로 전투로 돌입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해군을 만나게 될 경우는, 그들이 받은 명령인 해군 격퇴에 화이트 캣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생각한 경우, 그들은 가차없이 화이트 캣도 공격대상으로 간주-하기에는 너무 강해서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그녀는 에디킨츠 해군과 신사이 해적단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해군에게 있어서 해적은 몽땅 ‘적’이며, 잡혀가서 노예라는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 역시 똑같은 해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관 WISH의 개점이래 특별손님의 의뢰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최악의 불명예가 생기게 된다.

    오디는 그런 상황까지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건 좋지만 너무 빠져들면 안 된다. 군인들도 사람이니 이야기를 하면 통할 구석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공동작전으로 해적들을 퇴치하게 될 것이다. 오디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어떻게든 시론트의 마을 사람들을 구해내면 되는 것이다.

    ‘휴우… 차라리 바다사자단하고 싸울 때가 편한 것 같아.’

    120여 척의 함선을 모두 침몰시켰던 전설의 전투, 타실렌 해전(海戰)을 떠올리며 오디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의뢰를 받은 이상, 그녀는 끝까지 책임을 지고 해결할 것이다. 설령 에디킨츠 해군과 싸우게 되더라도.

    그녀가 생각의 갈무리를 막 끝냈을 무렵, 방 한쪽에 있는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주님. 10분 뒤 평원해로 돌입합니다.

    그녀는 일어서서 지팡이를 잡았다. 어떤 식으로든, 싸움은 시작되고 있었다.

    평원해, 그곳은 아이리펜 대륙의 5대 불가사의 중 한 곳이며, 사람의 발길이 너무나 잦은 유일한 불가사의이다.

    보통의 바다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건 당연한 상식이며, 무상의 진리이기도 하지만 평원해에서 적용되는 진리는 아니다.

    직경 500해리에 이르는 원에 해당하는 해역은 그 주변에서 바다를 뒤집어엎든 상관하지 않고 잔물결만 일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이 없는 건 아니다.

    아기의 숨결 같은 부드럽고 고요한 바람, 성난 사자의 기세 같은 거칠고 억센 바람, 언제라도 한결같은 꼿꼿한 나무 같은 무풍 등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바람이 분다. 편서풍, 편동풍, 북풍, 남풍, 계정에 다른 계절풍까지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바람이 분다. 하지만 파도만큼은 그렇지 않다.

    평원해 위로는 애초에 바다를 날뛰게 할 태풍이 머물지 않고, 설령 태풍이 평원해에 밀착해있다 하더라도 평원해의 테두리 1해리 정도만 날뛸 따름이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쪽의 일은 다른 세계의 일이라는 듯 잔잔한 파도만이 일렁거리고 있다. 그래서 이 해역은 항해자들의 쉼터이며, 천국이고, 풋내기 조타수의 실습장소이기도 하다.

    평원해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다른 불가사의에 비해서 접근하기도 쉽거니와 오히려 뱃사람들이 쾌적함을 추구하기 위해 일부러 지나다니는 곳이라서 이곳을 들른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어장도 그럭저럭 풍부한 편이지만 항해에 위협이 될 생물이나 몬스터도 없다. 그야말로 바다 위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 조사를 하기 위한 사람들이 무수히 다녀갔지만 그들은 불가사의의 명성을 한 꺼풀 더 두터워지게 만들뿐이었다.

    아무튼 이런 평원해에서 전복하는 배는 머저리 승무원의 집합소이고, 전복해도 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조용한 바다는 많은 배들이 오가는 해역이면서 동시에 신사이 해적단의 활동지역이기도 하다.

    대개의 뱃사람들은 해신을 숭배하면서 그들 사이에 널리 퍼진 미신을 신봉한다.

    대륙 5대 불가사의 중에서 하나를 단순히 ‘해신의 축복’이라고 정의하는 그들은 이 해역에서 악행을 저지르면 반드시 천벌이 내린다는 미신을 거의 절대적으로 믿고 있기에 평원해에 들어서면 하던 싸움도 멈추고 내뱉던 욕설도 주워담는다(물론, 공중으로 흩어지겠지만).

    그런 곳에서 약탈과 살인의 악행을 일삼는 신사이 해적단은 그 해역을 통과하던 뱃사람들에게 크나큰 증오와 함께 해신의 이름을 빈 저주를 받지만, 해적단의 규모가 워낙 크고 그 세력도 강성하기 때문에 뱃사람들로서는 그들의 믿은 대로 ‘천벌(天罰)’만을 기다려야 하는 우울한 상황이 몇 주 째 계속되고 있었다.

    “천벌인지 인벌(人罰)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야기는 해 봐야겠지요.”

    “통신을 연결할까요?”

    “연결하세요.”

    화이트 캣의 조타관제실(操舵管制室)로 온 오디는 평원해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녀가 예상했던 바와 같이 에디킨츠 해군의 4함대와 조우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일단 전 함대의 움직임을 멈추었고, 화이트 캣 역시 그들을 따라서 배를 정박시켰다. 그 후에는 마치 길 가던 여행자들이 잠시 멈춰서 나누는 대화 같은 함대간 통신이 시작되었다. 4함대를 지휘하는 기함의 함장이 오디와 대화를 요청한 것이다.

    상용화되기에는 멀었지만 여러 장소에서 사용되고 있는 쌍방향 화상대화 장치는 비공정이나 함선간의 통신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었고, 화이트 캣과 4함대의 기함인 ‘시 드래곤(Sea Dragon)’은 그걸 장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디는 시 드래곤의 함장인 ‘이클리스 벤달테’와 얼굴을 마주한 원거리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화이트 캣의 선주이자 이켈라인 상회의 총무인 오디 이켈라인입니다.”

    평상복을 갖춰 입은 상인인 그녀는 깔끔하게 고개를 숙였고, 제복을 갖춰 입은 군인인 이클리스 함장은 절도 있게 경례를 붙였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디킨츠 해군 예하(隷下) 4함대 소속 기함 시 드래곤의 함장인 이클리스 벤달테입니다.”

    “정중한 소개에 감사드립니다.”

    “이쪽이야말로….”

    상견례를 끝낸 오디는 선장석에 앉아서 등을 꼿꼿하게 세웠고, 이클리스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마법으로 나타나는 반투명한 영상이지만 오디는 이클리스의 몸에 배어있는 군기를 쉽사리 읽을 수 있었다. 타협과 담합과는 대륙의 극단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모습에 그녀는 자신의 특기가 봉인된 것 같다고 여겼다. 흥정이 통하지 않는 상대만큼 어려운 사람은 없기에 그녀는 어쩌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은 아니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망설여지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귀함과 본 함대의 목적이 명확한 만큼 다소의 충돌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충돌이라고 했다. 조우가 아니었다. 오디는 자신의 마음을 거세게 강타한 낭패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을 관리했다. 이건 시작부터 쉽지 않은 상대였다. 군인으로서는 100점 만점에 12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사람이었지만, 상인으로서는 단 0.1점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확인 절차이지만, 본 함의 목적은 해적에게 잡힌 시론트 마을 및 기타 잡혀간 사람들의 구조입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질 해적단과의 전투는 피하지 않을 생각이고요.”

    “본 함대에 내려진 명령은 귀함의 목적과 대부분 같지만, 정확하게는 해적의 소탕입니다. 대체적으로 섬멸전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포로에 대한 처우 방침을 가지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건에 대해서는 출발 전 하달된 명령서가 있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오디는 오랜만에 만난 어려운 상대라는 생각에 속으로 바짝 긴장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에 보이는 이클리스의 뒤로 보좌인 듯한 군인이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클리스의 손에는 봉인을 뜯지 않은 서신이 주어져 있었다. 오디와 화이트 캣은 긴장하면서 그 서신에 주목했다. 이클리스는 말했다.

    “이 명령서는 국왕 폐하가 화이트 캣과 조우할 시에 내용대로 따르라고 하시며 하달하신 겁니다. 폐하의 복안대로 귀함과 마주치게 되어 이 명령서를 개봉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칠 경우에 발동되는 쌍방동의의 질의였다. 보통의 군인들이라면 바로 뜯어보고 말겠지만 이클리스는 상대방의 의사를 묻고 있었다. 보통 이럴 경우 상대가 거절하게 되면 명령서는 그대로 소거되고 쌍방의 합의를 이끌게끔 되어 있었다. 또한 이런 질의는 공격명령이 아닐 때에 준수하게끔 되어 있었다.

    일단 오디는 그런 사항을 떠올리고서는 무차별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개봉하세요.”

    일국을 다스리는 국왕의 친서였다. 오디는 공격명령이 아니더라도 그 내용이 자신의 목적과 반하게 된 시 꺼내야 할 문장을 머릿속에서 침착하게 짜집기하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반투명한 화면 속에서 이클리스의 눈동자는 좌우로 쉬지 않고 움직였고, 그 행동은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최소 두 번은 꼼꼼하게 읽었으리라 생각되는 시간동안 이클리스는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명령서를 잘 접어서 보좌에게 넘기고는 말했다.

    “충성과 목숨으로 캐트스나일러 오르펜 바일나하 에디킨츠 폐하 만세. 명령서의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긴장한 오디는 짧은 긍정의 단어 외에는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이클리스 함장은 그의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처음 인사를 할 때처럼 절도 있게 경례를 붙이고는 말했다.

    “금일 화이트 캣과 조우한 시 드래곤을 포함한 에디킨츠 해군 예하 4함대 일동은 현재 시각을 기해 신사이 해적단의 깃발이 에디킨츠 영해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오디 이켈라인의 지휘에 따르겠습니다.”

    “…예?”

    순식간에 찾아온 당황은 그녀의 사고회로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착실한 군인인 이클리스는 오디의 반문에 착실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우정과 진심을 담아 이켈라인 상회의 뜻에 찬동을 표하며 그 성의에 대한 보답으로 4함대의 지휘권을 일시적으로 양도하셨습니다. 신사이 해적단의 퇴치에 관련된 모든 명령권한과 실행권한을 화이트 캣의 선주이신 오디 이켈라인 씨에게 귀속시킨다는 뜻입니다. 지휘권을 이양 받으시겠습니까?”

    “에… 자, 잠시만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오디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격한 논쟁, 간곡한 협상, 분노를 이끌어내는 토론, 끊임없는 심리적 위장술이 나도는 타협 등 거의 모든 가능성을 가정하고서 행동방향을 정했지만 지휘권 이양이라는 사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녀는 파란 눈과 빨간 눈을 깜빡거리면서 순식간에 다단계의 사고과정을 걸쳤고, 당황이란 이름의 사고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그제야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우정과 성의를 다해, 캐트스나일러 오르펜 바일나하 에디킨츠 국왕 폐하의 의지를 받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즉시 귀함의 함장과 작전회동을 가졌으면 합니다. 승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수인계 절차가 끝난 이상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이클리스는 군인다운 태도로, 하지만 인간적인 불만의 표출로서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오디의 브리핑을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오디는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예. 그럼 지금 곧 승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승선 후 뵙겠습니다.”

    통신은 거기서 중단되었고, 오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선장석에 등을 기대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성과였다.

    화이트 캣 한 척으로도 해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제 아무리 화이트 캣이라고 해도 같은 시간에 다른 두 곳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작전의 시간차가 생기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었다. 그러나 에디킨츠 해군의 4함대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녀는 마음대로 작전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별다른 충돌도 없었고, 그렇게나 걱정했던 일이 바보같이 느껴지고 있었다. 오디는 그렇게 한 번 피식 웃고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있는 조타관제실의 승무들을 보고는 살포시 웃음 지었다. 그녀는 캡틴 벅을 불렀다.

    “캡틴 벅.”

    “예? …아, 예. 선주님.”

    “화이트 캣을 시 드래곤의 좌측 측면에 접근시켜 정선시키세요. 정선 직후에 캡틴 벅과 승선을 해야 하니 승무원들을 갑판에 정렬시키고요.”

    “예! 알겠습니다! 전원! 선주님의 명령을 들었지? 해룡 옆에 하얀 고양이를 밀착시킨다! 미속 전진! 승무원들은 갑판에 집결해 에디킨츠 해군 4함대에게 최고의 예절을 보일 준비를 해라!”

    “아이 아이 캡틴(Aye aye captain)!

    조타관제실의 승무원들의 힘찬 대답과 함께 화이트 캣의 거체가 물살을 가르며 정렬한 채 정선해 있는 함대로 다가갔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시 드래곤의 승무원들 전원은 군인이다. 군인으로서의 절도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걸 생활의 기본으로 여기는 그들은 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생활을 지속하다보니 육군에 비해서 훨씬더 군인정신이 몸에 깃들어있다.

    육군들이 하루에 자신의 상사를 만나는 것을 세고 있다면, 해군은 같은 숫자를 한시간 단위로 세고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근무시간 내내 긴장상태이며, 나중에 가면 갈수록 그들의 몸에는 자연스레 흠 잡히지 않을 동작이 배어들어 전신에서 ‘나는 군인이다.’라는 기운을 발산한다. 에디킨츠 해군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때문에 갑판에 정렬하여 시 드래곤을 맞이하는 화이트 캣의 승무원들은 해룡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배가 하얀 고양이라는 아담한 이름을 가진 배보다 작다는 사실에서 느낄 수 있는 희극적 즐거움을 표현하려고 했으나 눈앞에서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 위에서 천둥이 가로 지나가도 꿈쩍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 같은 시 드래곤의 선원들을 보며 자제해야만 했다.

    화이트 캣의 이물이 시 드래곤의 이물과 같은 선에 놓이게끔 배를 조작한 환상적 조타 솜씨가 발휘되고서, 두 배의 사이에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만한 판자가 놓여지게 되었다. 오디가 캡틴 벅과 함께 판자에 올라가 시 드래곤으로 건너가기 시작하자 시 드래곤의 부함장인 ‘젠드라 마실타’는 6피트 8인치의 거구에 걸맞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오디 이켈라인 님께 대해! 경례!”

    처억!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경례를 붙이는 군인들을 보며 반대편에 서있던 화이트 캣의 승무원들은 반쯤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군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에디킨츠의 해군은 그 일치단결성으로 토타카 연합의 해군과 자주 비교되고는 하였다. 그러나 대륙의 양 끝단에 있는 나라의 해군들이 서로 만날 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오디는 매우 정중한 인사에 살풋이 웃으면서 판자를 걸어갔고, 마실타 부함장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시 드래곤에 승선할 수 있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굳이 그에게 모멸감을 주고 싶지 않았던 오디는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친절에 답해주었다.

    “고마워요.”

    “영광입니다.”

    오디는 그 말을 듣고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이클리스 함장도 영광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지금 자신을 에스코트 한 마실타 부함장 역시 영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클리스 함장의 경우는 대외적인 인사라서 그렇다고 해도, 마실타 부함장까지 영광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광이라는 말이 4함대의 인사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오디는 자신이 나미아의 사고관에 물들었음을 깨닫고는 살짝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쨌든 그녀는 열중 쉬어의 자세로 자신이 걸어오는 걸보고 잇는 이클리스 함장의 앞으로 가서 멈춰 섰다. 이클리스 함장은 경례를 붙였다.

    “승선을 환영합니다.”

    오디도 따라서 경례를 할까 하다가 자신은 군인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했다. 그녀는 이클리스의 굳은 표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오디의 손과 그녀의 표정을 번갈아 보던 그는 함장모를 벗어서 왼손에 들고는 오른손을 마주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오디는 그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군인으로서 상부에 신용 받지 못하고 여자의 명령이나 들어야 한다는 일이 그에겐 큰 충격이었나 보다. 오디는 순간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악수를 청한 것은 그에게 모멸감 밖에 주지 못하리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

    그녀는 이클리스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감정에 그녀는 의아함을 느껴야 했다. 그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목소리에 담겨져 있었다. 감동 어린 기대감이었다.

    ‘…감동하고 있어?’

    그녀가 의문을 감추지 못할 때 이클리스 함장은 손을 놓고는 모자를 쓰면서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함대에 관련한 간단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어라? 웃었어?’

    아주 살짝 본 표정이지만 분명 이클리스 함장은 등을 돌리기 직전에 입 끝을 들어올려 웃었다. 오디는 순식간에 그 웃음에 대한 해석을 시작했는데, 그 어느 해석에도 저 웃음에 담긴 가소로움이나 비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너 따위가 얼마나 함대 운용을 하는가 보자’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던 오디는 점점 더 알 수가 없어졌다.

    말끝마다 영광이니 말하는 함장이나, 단순히 급조된 지휘관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정중한 승무원들의 태도는 오디에게 의문과 걱정을 가져오고 있었다. 대체 이건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져서 더 이상 생각하는 걸 그만 두고는 이클리스 함장의 뒤를 따라서 선장실로 향했다.

    오디의 뒤를 따라가는 캡틴 벅은 오디가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에스코트를 맡았던 부함장이라는 덩치는 열중 쉬어를 하면서 오디를 에스코트 할 때 잡을 손을 소중하게 어루만지는 모습이나, 오디가 이클리스 함장의 뒤를 따라 걸어 갈 때 갑판에 정렬한 선원들의 얼굴에 비치는 경외감과 감동 같은 감정들이었다.

    정작 본인인 오디는 모르고 있지만 그녀는 아이리펜 대륙의 모든 뱃사람들에게, 특히 군인들에게는 여신급의 우상으로 추앙 받고 있었다. 화이트 캣이 주로 활동하는 동해와 동남해에서는 타지역에 비해 그 모습이 자주 보여서 이런 시선이 덜하지만, 보통의 뱃사람들이 뛰어난 기량을 갖춘 전설적인 뱃사람에게 존경심과 경외감이 어린 시선이라는 걸 오디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드래곤의 함장이나 승무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건 캡틴 벅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 바다사자와의 전설적인 해전을 직접 본 목격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북해의 폭군인 딕비모가 붉은 피로 검은 북해를 물들이는 걸 직접 목격한 증인이었다. 그때 그는 오디의 명령에 따라 정신 없이 배를 움직였고, 여섯시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화이트 캣이 딕비모를 쓰러뜨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디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그녀의 전략가적 능력은 1:120이라는 싸움마저도 가능하게 만든 능력이었다. 물론, 강력한 마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제아무리 마법이라고 해도 1:120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엔 그 한 요소만으로는 부족한 법이다.

    결국, 오디만 이걸 모르고 있다는 것이 캡틴 벅의 얼굴에 미소를 떠오르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 시 드래곤 위에서 미소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주변인들의 태도가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는 오디 한 명뿐이었다.

    오디는 시 드래곤의 이물 위에 서있었다. 뱃머리 아래로 갈라지는 바다를 보면서 그녀는 잔잔함 밖에 남아있지 않는 그 모습에 담겨있는 무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평원해는 마나가 강제적으로 흐르고 있는 장소였다. 그 강제성은 어떠한 일탈도 용납하지 않는 완고한 형태로 수많은 마법사들을 좌절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마법 물건들을 일시적으로나마 쓸모 없게 만들었다. 시 드래곤이 평원해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화이트 캣과 입전(入電)을 요청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에디킨츠 해군 4함대는 기함 시 드래곤을 위시하여 총 25대의 함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 6대는 막강한 화력에 치중한 설계로 만들어진 대함포선(對艦砲船)이었고, 12대는 막강한 기동력으로 무장한 고속기동선(高速機動船), 나머지 6대는 적당한 기동력과 적당한 화력을 갖춘 순양함(巡洋艦)이었다. 기함 시 드래곤은 뛰어난 기동성과 화력을 두루 갖춘 모선이었다.

    시 드래곤이 선두에 서고, 그 뒤로 3열 종대로 6대의 대함포선이 뒤따르며 12대의 고속기동선은 시 드래곤을 첨단부로 세운 뱅가드(Vanguard) 형태로 좌우익 6대씩 배치되어 있었다. 바람은 순풍이었고, 이물에 갈라지는 파도는 더없이 시원스러웠다.

    그 함대의 어디에도 화이트 캣을 보이지 않았다. 오디는 작전회의를 마치고서 화이트 캣을 따로 출발시켰고, 4함대의 군인들은 전투를 벌이는 화이트 캣을 보지 못해서 매우 아쉬운 감정을 느껴야 했지만 필승의 여인이라는 오디가 함대에 남아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오디는 그녀의 지팡이를 짚고는 당당하게 맞바람을 맞으며 서있었다. 세찬 바람은 그녀의 길고 탐스러운 우윳빛 머릿결을 깃발같이 휘날리게 했다. 현재 시속은 15노트. 속도가 느린 대함포선에 맞춘 속도였다.

    그녀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는 한참 전에 보인 신사이 해적단의 존재를 아직 알리지 않고 있었다. 메인 마스트(Main mast) 위에서 망을 보는 승무원의 체면을 걱정해주는 건 아니었다. 함대의 전체적인 기동성과 각 배에 따른 성능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전투를 준비하는 시간은 메인 마스트에서 확인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해도 늦지 않는다.

    “전방 2해리-! 신사이 해적단이다아-!”

    망원경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전방 2해리에 있는 선박의 소속을 확인한 승무원은 마땅히 칭찬 받을 만하다. 오디는 한껏 숨을 들이마신 다음 전방에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명령을 시작했다.

    “대함포선 플라잉 피쉬(Flying fish), 영 레이디(Young lady), 골든 튜나(Golden tuna), 머메이드(Mermaid), 빅 브라더(Big Brother), 스몰 시스터(Small sister)에 타전(打電)! 1해리 앞에서 좌우 각 45도! 0.5해리 전진 후 정방을 향해 각각 좌측면과 우측면을 노출! 대함전포(對艦戰砲) 펄른 해머(Fallen hammer) 전탄(全彈) 장전!”

    “아이 아이 서(Aye aye sir)!”

    그녀의 뒤로 한참동안 펄럭이는 깃발의 소리가 들려왔다. 평원해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무가지보(無價之寶)였던 마법물품이 단순한 무가치보(無價値寶)로 전락했기에 낡은 연락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깃발소리가 거의 끝나갈 때쯤 그녀는 다시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좌익의 고속기동선 블랙 웨일(Black whale), 그램퍼스(Grampus), 레드 샤크(Red shark), 킬러 맥커럴(Killer mackerel), 블루 마린(Blue marlin), 설리(Saury)에 타전! 시 드래곤을 기점으로 좌측 30도로 이물 정렬! 우익의 고속기동선 포크 테일드 페트럴(Fork-tailed petrel), 레이징 윈드(Raging wind), 바실리스크(Basilisk), 버밀리온 시걸(Vermilion seagull), 블루 서펀트(Blue serpent), 브라운 씰(Brown seal)에 타전! 시 드래곤을 기점으로 우측 30도로 이물 정렬! 1해리 앞까지 전진!”

    “아이 아이 서!”

    흑고래에서부터 꽁치까지 이르는 각종 바다생물의 이름을 딴 좌익의 6척이 시 드래곤의 날개가 되어 서서히 벌려졌다. 그 반대쪽에 있는 바다제비에서 시작해 갈색 바다표범의 이름을 딴 우익의 6척도 거의 동시에 전개하여 총 각 120도에 달하는 넓은 뱅가드 상태가 되었다.

    오디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메인 마스트의 정찰병이 망원경을 들여다보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시, 신사이 해군 확인! 전 함선 수 60!”

    “뭐?!”

    “빌어먹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욕설을 들으며 오디는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자신에게 들어온 정보들과 그것들을 바탕으로 추론한 예상이 적중했다. 함대전에서 중요한 것은 기상과 함선 수라는 건 어촌의 어린 아이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24:60이라는 숫자는 아무리 순풍을 업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리한 숫자임이 틀림없었다.

    갑판을 오가던 승무원들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오디가 어떻게 행동할 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보다는 덜하지만 계속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다듬지도 않으면서 계속 등을 보이고 서있었다. 그녀는 외쳤다.

    “후방의 순양함 시 어쌔신(Sea assassin), 로얄 탱커(Royal tanker), 블랙 로즈(Black rose), 블루 로즈(Blue rose), 시커(Seeker), 키퍼(Keeper)에 타전! 전속선진! 2열 종대로 시 드래곤을 따르라!”

    6대의 대함포선이 서서히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6대의 배가 거센 시게로 그 사이를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 명령에서 승무원들은 오디가 절대 전투를 피할 생각이 없음을 느꼈고, 또한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배어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라도 고개를 저을 절망적인 결과가 나올 거라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승무원들은 당당하게 서있는 오디의 등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승무원들 중 우연히 뱃머리를 지나던 승무원은 오디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120에 대항에 한 척이 나갔을 때 자살하러 가냔 소리도 들었지. 지금은 고작해야 2.5배뿐이니 훨씬 쉽겠는 걸?”

    그녀의 말은 곧 함대 전체로 바람같이 퍼져나갔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전 함대의 승무원들의 사기가 고조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사기에 떠밀리는 듯 25척의 배는 씩씩하게 2.5배나 되는 대 함대의 무리를 향해 전진했고, 점차적으로 오디가 명령한 바와 같이 6척의 대함포선이 3대씩 일렬로 반대방향을 향해 늘어서게 되었고, 양익(兩翼) 6쌍의 배와 중심 3열의 화살표 같은 함대 구성도 완료되었다.

    그 사이 신사이 해군과 연합한 해적단도 서서히 정렬하여 그들 간의 거리는 0.5해리만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었다.

    “전 함대 정지! 히브 투!”

    “아이 아이 서!”

    모든 배는 돛을 펼친 채로 언제든지 전진할 수 있게끔 배를 멈추는 정박술인 히브 투를 시행했고, 해적들과 함대 사이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전 4함대의 승무원이자 군인들은 활과 칼을 준비하면서 함교전에 대비하였고, 기수들은 당장 떨어질 명령에 팔 근육과 어깨를 긴장시켰다. 오디가 외쳤다.

    “적 함대에 타전! 에디킨츠 해군 제 4함대의 기함 시 드래곤의 함장 이클리스 벤달테의 이름으로, 항복하라!”

    자신의 이름을 대면 적들의 사기가 꺾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으로 기가 꺾일 해적이라면 이켈라인 상회의 무역선을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야 이미 노출되어 있겠지만 자신이 지휘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잠시 후 메인 마스트의 정찰병이 상대방 함대에서 전해져오는 신호를 판독했다.

    “신사이 해적단 단장 바라카스 올틴의 이름으로….”

    정찰병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오디는 함대가 출발하고 난 이후에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이름으로?”

    “에… 그러니까… 저기, 말씀드리기가 좀….”

    “괜찮으니까 말하세요.”

    “예에…. 한번 대주면 생각해 보겠다. 이상.”

    정적.

    오디의 얼굴이 모멸감으로 붉게 물드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대간의 대화에서 저런 후안무치한 소리를 할 수 이는 것은 역시 해적이기 때문이리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군인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디가 어깨를 부르르 떨 때, 활과 칼을 부여잡은 군인들은 사납게 외치면서 각종 욕설과 저주를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저런 3대가 세 번 빌어먹을 새끼가!”

    “내장으로 목을 졸라버릴 개자식이?!”

    “메인 마스트에 혀를 매달아버려!”

    “저, 저런 죽일 놈!”

    그의 신체에서 시작해 자손 만대를 말아먹을 욕을 집어먹게 된 바라카스라는 해적단 단장에게 오디는 한마디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쿠웅! 찰그랑!

    그녀는 지팡이를 들어 한번 갑판을 내리찍는 것으로 그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헤르키엘과 안스란의 이름으로, 잡히면 가운뎃다리부터 마스트에 매달겠다. 이상. 답문은 전해주지 않아도 되요.”

    “옙! 확실하게 전하지요!”

    기수는 씩씩하게 그녀의 표현에 자신의 해석과 살을 붙여서 다소 과장된 문장을 날려보냈고, 정찰병은 상대방이 성에 차서 날려대는 깃발을 점잖게 모른 척 했다.

    어차피 상대가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에디킨츠 해군의 전투 규범에 따르자면 전투가 벌어지기 전 여유가 있으면 항복권유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일단 찔러본 것에 불과하다. 그녀는 이클리스를 불렀다.

    “이클리스 함장.”

    “예스, 커맨더(Yes, commander)!”

    “함대의 지휘를 맡으세요.”

    “아이 아이 서!”

    “아, 그리고… 여기 에 한 1인치 정도 구멍을 뚫을 건데, 괜찮으세요?”

    “예? 아, 문제없습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서 발 앞의 갑판을 힘차게 내리 찍었다.

    콰직!

    최소 2인치가 넘는 두께의 판자가 지팡이에 이의해 뚫려버렸다. 여자의 팔에서 나왔다고 볼 수 없는 힘에 승무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클리스는 오디로부터 이양받은 지휘권으로 전 함대에 명령을 내렸다.

    “기수. 전 함대 함장에게 타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라지 말도록. 이상.”

    “아이 아이 서!”

    기수는 뭔가가 일어날 것임을 직감적으로 눈치채고는 그의 명령에 그의 특기가 가진 성실함을 덧대어 전달했고, 시 드래곤을 제외한 다른 배에서는 그의 명령이 다소 각색되어 내려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꼼짝하는 녀석들은 대포알 매달아서 바다로 던져버리겠다아!”

    오디는 지팡이를 꽂아두고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태도는 더없이 경건했으며, 누군가가 그녀를 건드린다는 그건 이 세상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되어질 듯한 동작이었다.

    퍼벙! 퍼버벙!

    그때 상대 함대에서 개전을 알리는 발포가 시작되었다. 역풍을 받으며 전진하기 위해 태킹을 반복하며 다가오는 60여대의 함선들은 일사불란하게 좌 우로 움직여가면서 점차점차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그러나 4함대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클리스가 내린 명령 때문이다.

    시 드래곤과 그에 인접한 배의 모든 시선이 뱃머리에 있는 오디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기도를 하고 있는 듯 손을 마주잡고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너른 바다를 지배하시는 영광된 해신께 한때나마 당신의 동료였던 자의 조각이 아뢰오니 재앙과 독수로부터 자신을 지킬 힘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위대한 권능을 거두어 미력한 몸을 돌보게 해 주사옵고, 전능한 권능의 일부를 허락해 신을 공경하지 못하는 우매한 자들께 당신의 힘의 역사함을 보며 참람된 검을 치우게 하옵소서. 한때 당신의 동료였던 자의 조각이 미력한 힘으로나마 그대의 역사함을 돕겠사오니 진실된 이치를 깨달아 그들은 빛의 발로로 이끌게사옵나이다.’

    오디는 죽은 신의 파편이다. 오드 아이 짐승들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죽은 신의 파편으로 세상에 뿌려진 존재들이다. 짐승의 이성을 지니고 있기에 평생 자신의 신성을 깨달을 수가 없지만 이성을 가지게 된 오디는 신앙을 지닐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 안에 깃든 신성으로 신앙을 발휘하여 신의 참된 검이 되어 진실된 힘의 역사를 행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지금, 해신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하여 강제적 마나의 흐름을 조작할 수 있게 하고, 이 해역에서 해신의 권능과 마법의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이다.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정수리에서부터 파고든 성스런 힘이 가슴 깊숙이 자리잡은 신성을 깨워 그 힘이 온 몸을 내달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일어났다. 그리고 지팡이를 부여잡았다.

    그녀의 눈이 떠졌을 때, 그녀의 양 눈은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뽑아 올려서 그 끝 부분을 하늘로 향했다. 그녀의 입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위대한 존재의 동료였던 조각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와라!”

    쿠르르릉…! 쿠르릉!

    하늘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 하늘은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나 위대한 존재의 동료였던 조각의 힘으로 원하나니! 대해에 역사한 위대한 권능을 거두노라!”

    화아아악!

    그녀의 주변으로 하얀 기류가 흩어져 나왔다. 그녀의 몸에서 채 10야드도 벗어나지 못하고 흐트러졌지만, 그녀를 보고 있던 모든 승무원들을 왠지 모르게 주변의 공기가 한 결 편해졌다고 느꼈다.

    “이제! 여기서! 강대한 힘의 역사가 이루어질지니! 격뇌강림(激雷降臨)!”

    꽈가가가강!

    먹구름들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번개가 치더니 오디의 지팡이 끝으로 떨어져 내렸다. 동공을 모조리 태워버릴 것 같은 백광에 승무원들은 전부 고개를 돌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눈을 떴을 때, 그들은 오디의 지팡이에 있는 링에 휘감겨서 스파크를 내뿜는 번개를 볼 수가 있었다. 오디는 앞을 보았다.

    해적들은 계속 달려오고 있었다. 오디가 벌인 일에 의아해하면서도 그들은 그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오디는 씨익 웃고는 지팡이의 중간을 받았다.

    발은 앞으로 반발자국을 내밀었고, 지팡이는 한쪽 손으로 수평 되게 들었다. 마치 그 끝으로 앞으로 찌르려는 것 같았다.

    “신의 분노! 참람된 검을 겨누는 자들에게 보여주리라! 천륜(天倫)!”

    그녀는 지팡이를 앞으로 내질렀고, 그 끝에서는 블루 드래곤의 브레스보다도 강력한 뇌격이 터져 나왔다.

    콰자자자자자자!

    천륜이 지나는 밑의 바다는 무시무시하게 갈라지고 있었고, 4함대의 제일 앞에 있는 시 드래곤을 향해 다가오는 해적선단을 관통했다. 태킹 도중에 측면을 살짝 노출시킨 배 세척을 관통한 천륜은 네 번째 배에 닿자마자 사방으로 벼락을 날리면서 폭발했다.

    꽈르르르릉! 꽈가강!

    측면을 관통 당한 세척의 배에서는 사람들이 잇달아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관통 당한 배는 서서히 침몰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네 번째 배의 폭발과 사방으로 날려진 벼락줄기는 근처의 배로 퍼졌고, 찰나의 순간 많은 배에 실어져 있는 화약고를 자극했다.

    콰앙! 퍼엉! 콰가강!

    1차 충격에 이른 2차 폭발, 서서히 충돌하는 배는 60척의 선박 중 전반부 30척을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시 드래곤에서 0.2해리를 남겨둔 거리였다.

    “우와아아아아!”

    “오-디-!”

    “에디킨츠! 오디!”

    충격이 가시고 난 뒤 에디킨츠의 해군은 전율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신의 의지가 역사 했을 때 감동한 인간들이 보내는 찬사였다. 오디는 지팡이를 옆에 세워들고서 왼손으로 머뭇거리는 해적선단을 가리키며 외쳤다.

    “대함포선 플라잉 피쉬, 영 레이디, 골든 튜나, 머메이드, 빅 브라더, 스몰 시스터에 타전! 대함전포 펄른 해머 전탄 발사!”

    “아이 아이 써!”

    “전 승무원 대함전투 준비! 좌익, 우익의 고속기동선 전체에 타전! 좌우 벌리며 앞으로! 선단의 양익을 포위!”

    “아이 아이 써!”

    “모든 순양함에 타전! 시 드래곤의 옆을 피해 전속 전진!”

    “아이 아이 써!”

    숨가쁘게 명령을 내린 오디는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머리 위로 지팡이를 들어 수평을 맞춘 그녀는 양손으로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챠라랑! 카라랑!

    고리들이 부딪히면서 섬뜩할 정도로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지팡이를 돌리면서 외쳤다.

    “대해의 위대한 거력이여! 그대를 일깨우나니 나의 의지가 다다랐다면 나의 이름 아래 움직여라!”

    휘이이이이이-!

    회전하는 지팡이 위로 서서히 회오리바람이 생기고 있었다. 하얗게 용오름 치는 회오리는 지팡이의 중심에서부터 하늘에 맞닿았다. 구름은 거세게 회전하며 무참하게 찢어졌고, 주변의 공기는 사정없이 날뛰었다.

    “대해의 거력이여! 가라-!”

    오디는 지팡이를 힘차게 내밀었고, 회오리바람은 시 드래곤의 앞에 떨어져서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바닷물을 끌어올리면서 빠르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오디는 그때 옆으로 치고 나오는 순양함에 명했다.

    “해신의 가호가 그대들에게 있나니! 겁내지 말고 회오리를 따라 전진!”

    아이 아이 써!

    양옆을 지나가는 순양함의 모든 승무원들이 외치는 소리는 일치단결 되어 있었다. 순양함은 오디가 말하는 대로 배를 짓이기는 회오리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앞으로 향했고, 그녀는 우왕좌왕하는 후방의 해적선단을 보며 그녀의 신성을 다시 한 번 끌어올렸다. 그녀의 왼손이 앞으로 뻗어지더니 허공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그걸 서서히 끌어당겼다.

    “오라! 원수의 육체를 이끌고 나에게 오라!”

    고오오오….

    후방에 있던 선단의 뒤에서 거대한 파도, 아니, 해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바다가 사람들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횡포는 폭풍도, 태풍도 아닌 해일이다. 모든 것을 쓸어 가는 성난 괴수 같은 해일. 바다에 떠있는 배라고 해도 그 기세를 피할 수는 없을 거이다.

    “오오…!”

    “저, 저런…!”

    오디의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령을 받은 18척의 배의 승무원들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까지 오디가 보여준 믿을 수 없는 신위를 믿으면서 그들은 앞으로 전진했다. 저 해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자신들에겐 피해가 없거나 적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전진했다.

    그들의 믿음은 보답 받았다. 거대하게 일어난 파도는 후방의 해적선단의 배들을 자신의 몸에 올려둔 채로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해일에 얹혀진 배들을 황급히 해일의 진행방향을 향해 이물을 돌렸고, 그들은 매우 세찬 파도를 가로지르며 앞서갔던 해적선단과 강제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끼-기기기기!

    배가 뒤틀리는 것 같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후방의 해적선단이 앞섰던 해적선단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자 해일은 언제 일어났냐는 듯 뻔뻔하게 다시 가라앉아 버렸다.

    순식간에 수십척의 배가 얽혀버리게 된 해적선단은 양익에서 포위하는 고속기동선과 전방에서 다가오는 순양함을 보며 당황했다. 도망칠 수 있는 방향은 오로지 바로 그들의 뒤 밖에 없었지만 그곳에는 새로이 합류한 30척의 배가 있었고, 좌우 양익의 포위로 인해 반전할 공간도 없었다.

    오디는 모든 해적선단이 움직일 수 없게끔 한 곳에 몰아두고서는 회오리를 거두었다. 회오리가 사라진 자리로여섯 척의 순양함이 씩씩하게 전진하고 있었고, 양익에서는 6척의 고속기동선이 포문을 열어 있는 대로 사격하기 시작했다. 또한 지급도 계속해서 그녀의 좌우 상공에는 펄른 해머가 날아서 새로이 합류한 30척을 두들기고 있었다.

    “고속기동선 전 척과 순양함 전 척에 타전! 신사이 해적단과 신사이 해군을 섬멸하라!”

    “아, 아이 아이 서!”

    시 드래곤의 승무원들은 오디의 명령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알려진 오디의 목적은 잡혀갔던 사람들의 구출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명령은 그것이 헛소리라도 되는 양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하, 함장님. 저 안에 해적단에 잡혀갔던 마을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한 승무원이 차마 오디에게는 말을 걸 수가 없어서 이클리스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클리스는 오디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저 안에는 없다.”

    “예?”

    “오디 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의 본거지인 섬에는 매우 특수한 식물이 자란다는 것이지.”

    “특수한 생물이요?”

    이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카나무다. 순도가 높은 코카인을 만들 수 있지. 신사이 해적단이 신사이 해군과 결탁한 것은 신사이에서 국가적으로, 혹은 그에 필적하는 권력자가 마약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생각 하에 벌어진 일이겠지. 그 코카나무에서 코카인을 정제하기 위한 노동력으로 사람들을 잡아간 것이다.”

    “아아… 그렇다면, 잡혀간 사람들은 저 안에 없겠군요?”

    “오디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사실이겠지. 설령 저 안에 잡혀간 사람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저분은 다시 살려내실 것 같이 보이지 않는가?”

    이클리스의 말에 질문한 승무원과 그 주변의 승무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오디의 저 당당한 모습은 정말로 죽은 사람일지라도 도로 살려낼 여신 같은 모습이었다. 또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 여신처럼 보였다. 이클리스는 승리할 것이라는 데 한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전 승무원에게 타전! 우리에겐 해신의 가호가 있다! 겁먹지 말고 전진!”

    “아이 아이 써!”

    시 드래곤도 그 거체를 움직여 난투가 벌어지는 해전의 한 가운데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오디는 은빛의 눈을 들어 생긋 웃고는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승리의 바람이었다.

    “아빠! 오빠!”

    “쥬리아!”

    에디킨츠 4함대가 해적선단과 결전을 벌일 시점에, 화이트 캣은 잡혀간 사람들의 구조를 맡았다. 에디킨츠 4함대가 오디의 도움을 빌어 해적선단의 반수를 피해 없이 아작 내고 남은 반수가 항복했을 무렵 구출작전은 완료되었고, 잡혀간 사람들을 태운 화이트 캣은 4함대의 비호를 받으며 시론트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어찌 감사의 말을 해야 할 지….”

    “정말 감사합니다…!”

    오디는 약간 당황하면서 사람들의 감사인사를 하나하나 받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오빠에게 안겨있는 쥬리아를 보면서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해적단의 문제도 말끔히 해소된 데다가 의뢰인의 의뢰 역시 제대로 해결되었다. 그 처리과정이 너무 쉬웠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오디 씨! 정말 감사합니다!”

    “다행이구나, 쥬리아.”

    “예에!”

    오디는 쥬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매우 기뻐하고 있는 소녀를 보면서 오디는 지금 만큼은 성족의 음모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이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이걸로 시론트의 문제는 확실하게 해결되었다. 사람들도 돌아왔고, 남아있던 사람들도 별 탈 없이 잘 지내었다. 오디는 쥬리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럼, 쥬리아. 난 이만 가봐야겠구나.”

    “예에? 벌써요?”

    “일이 끝났잖니? 나와 나미아 님은 아직 도와줄 사람이 많아.”

    “그렇군요….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이거….”

    쥬리아는 고개를 폭 숙이고는 오디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소라껍질을 줄로 꿰어서 만든 목걸이 두 개였다. 쥬리아는 말했다.

    “나미아 씨에게도 전해주세요. 고마웠다고요.”

    “그래. 고마워. 나미아 님도 기뻐하실 거야.”

    항구 여기저기에는 군인들이 오가면서 국가에서 지급하는 보상금을 집집마다 쥐어주고 있었다. 이클리스는 감사의 의미로 오디에게 얼마간의 상금을 내밀었지만 오디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걸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대인의 풍모를 보이는 오디에게 이클리스는 더욱 감격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가 거둬온 해적단의 보물은 화이트 캣의 창고에 쌓여져 있는 7할을 제외한 3할이란 것을.

    오디는 이클리스를 불렀다.

    “이클리스 함장님.”

    “예. 오디 님.”

    작전이 끝난 이상 오디를 부르는 호칭이 커맨더에서 오디 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굳이 그 점을 지적해 시간 끌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오디는 그냥 그러나 보다 싶었고, 전 함대의 구성원이 그녀를 함대장과 같게 부르게끔 만들었다. 오디는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귀 함대의 조력에 감사 드립니다. 에디킨츠 해군에 해신의 영원한 영광 있기를.”

    “이쪽이야말로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전원-! 오디 님께 향하여! 경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신원을 알 수 없는 목소리였지만 해군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오디에게 경례를 붙였다. 오디는 사방에서 향해지는 경례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녀도 이클리스 함장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에디킨츠 군인들은 시론트의 편의를 돌보고서는 다시 무데칸으로 향하게 되었다. 오디는 캡틴 벅에게 몇 가지 명령을 내린 다음 그랜드 크로스에 탑승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 다신 고민 가지고 찾아오지 말렴. 놀러오는 건 환영이야.”

    “예에-!”

    승강기에 탑승한 오디는 계속 손을 흔드는 쥬리아를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저런 웃음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이 일이 할만한 것 같았다.

    ‘그럼 슬슬 돌아가 볼까? 나미아 님이 기다리겠어.’

    Guest.03: 반가운 손님 -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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