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3: 평원해 격전. (21/49)
  • Part3: 평원해 격전.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력 435년 10월 22일.

    화이트 캣은 이른 아침 바다 위에 떠도는 안개를 소리 없이 밀어내면서 시론트의 연안까지 들어왔다. 부두까지 들어오지 못한 이유는 시론트의 바로 앞의 수심이 화이트 캣의 흘수선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론트의 서쪽으로 펼쳐진 너른 바다는 이제 일몰을 똑똑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화창하게 개었다. 그전까지 미친 듯이 몰아치던 폭풍우는 마치 풍경화에서 흰 물감으로 덮어버린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바다 안개 사이로 거대한 실루엣을 본 시론트의 주민들이 기겁하는 사건이 벌어지긴 했지만, 해가 충분히 동쪽 산에서 벗어나 여행을 시작하는 동안 안개를 걷히고, 흰색의 외장을 자랑하는 화이트 캣이 주민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그제야 시론트의 주민들은 이켈라인 상회의 과학력이 집결된 두 건조물이 모두 자신의 마을에 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야… 저게 화이트 캣이로구만. 정말 새하얗네.”

    “저게 그 유명한 주포야? 이름답지 않게 위협적으로 생겼네.”

    “요즘 조선 기술이 아녀. 저 배에 돛은 장식이라며?”

    화이트 캣이 활약하는 지역은 시론트와 정 반대지역이었지만 150년이나 지난 지금은 대륙의 반대편까지도 그 위명이 잘 알려져 있었다. 시론트의 주민들은 전설의 목격자로서 감격스러운 표정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화이트 캣과 그랜드 크로스는 번갈아 보았다. 이것으로 앞으로 반세기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나타난 그랜드 크로스와 화이트 캣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할 이야기가 넘칠 것이었다.

    오디는 그랜드 크로스의 객실에서 시론트의 앞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이 설계하고 진두지휘하여 만든 최고의 전함 화이트 캣이 있었다. 그녀는 다른 물건들보다 훨씬 애정이 담긴 눈으로 화이트 캣을 바라보았다. 절묘한 시간의 안배로 화이트 캣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동해에서 남해를 가로질러 서해까지 오는 여정은 보통의 배라면 적어도 몇 개월은 잡아야 할 여정이었다. 아무리 화이트 캣이 남해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일반 무역 선박이 보통 두 달에서 석 달은 걸릴 거리를 일주일 만에 주파해서 왔다. 상당히 무리한 항해였을 것이다. 최고 속력으로 엔진을 가동시키고, 전 승무원들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일주일 동안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후우… 오늘까지만 수고해주면 쉴 수 있겠지.”

    오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에디킨츠의 영해 내로 들어와서는 편안한 항해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쉴 시간을 하루 정도는 얻을 수 있었겠고, 어느 정도의 피로는 풀렸겠지만 애초에 육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다. 육지에서 쉬게 해주는 편이 좋은데… 하지만 오늘 바로 싸우러 나가야 했다.

    백병전을 벌일 필요도 없었다. 화이트 캣의 승무원들은 일차적으로 백병전을 하지 않는 함선 전투를 위한 사람들이었다. 뛰어난 기동성과 강력한 함포의 위력은 다른 배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원거리 요격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배끼리 붙을 필요도 없었다. 다른 배들이 지닌 대포의 사거리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화이트 캣의 두 주포보다 길지 않았다.

    “내가 함께 가니…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겠군. 어쨌든 사람도 구해야 하는 일이니까.”

    오디는 천천히 옷을 입으면서 전투의 준비를 했다. 신사이 해적단이 머무는 곳까지는 천천히 가서 그들의 소굴 인근해역에서 전투를 벌여야 한다. 절대 그들의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게끔 둬선 안 된다.

    그녀는 하얗고 통이 넓은 면 스커트에 역시 흰색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그리고 검은 조끼를 걸쳐 선명한 색의 대비를 주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은 등 뒤로 산발한 채 두었고, 옅은 화장 외에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올린 오디는 그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화이트 캣과 함께 나가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네.”

    오디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수록 점점 즐거워져가고 있었다. 지팡이에 달린 쇠고리가 그런 그녀의 기분에 맞춰 시원하게 짤그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랜드 크로스와 지상과는 수직으로 오갈 수 있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디는 밑의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나는 모습을 보고는 그 사이에서 쥬리아를 찾아보았다. 오디와 나미아의 작은 의뢰인 소녀는 사람들의 앞에 서서 상기된 얼굴로 그녀가 내려오는 걸 보고 있었다.

    오디는 승장기가 멈추자 허리쯤에 오는 철문을 열며 쥬리아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었다.

    “쥬리아. 안녕? 좋은 아침이야.”

    “오디 씨. 안녕하세요! 저, 그때 말씀하신 게 저건가요? 화이트 캣이요?”

    “그래. 저 배는 나의 배야.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단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 아니에요! 설마했지만 저 화이트 캣이 올 줄은… 저 감격했어요!”

    오디는 생긋 웃으며 쥬리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람들의 무리가 순간 출렁하더니 자연스럽게 오디와 쥬리아를 따라 화이트 캣이 보이는 부두로 향하고 있었다. 화이트 캣은 저 멀리서 흰색의 선체를 자랑스럽게 내 보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저 바다로 향할 듯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부두를 따라 한참을 돌아가면 비스듬하지만 옆에서 구경할 수도 있었기에 부두에는 지금 많은 주민들이 나와서 전설의 함선을 견학하고 있었다.

    오디는 쥬리아가 흥분해서 떠드는 이야기에 푸근한 표정으로 대답해주면서 부두까지 걸어갔다. 부둣가에 선 오디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지팡이를 들어올렸고, 지팡이에서는 번뜩이는 한줄기 섬광이 화이트 캣으로 향했다. 곧 화이트 캣에서 승무원들이 나와 보트를 내렸고, 느릿느릿 노를 저어가며 보트는 오디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이제 잡혀간 사람들을 구하러 가시는 건가요?”

    쥬리아가 잔뜩 흥분해서 묻는 말에 마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디는 희망과 불안을 담은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이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잡혀간 사람들을 모두 무사히 데려오도록 최선을 다할 거란다.”

    “정말이시죠?!”

    “정말이야. 애초에, 네가 이야기한 것이잖니? 최선을 다할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쥬리아는 마치 지금 당장 구출된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고개를 꾸벅거렸고, 그것은 그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면서 오디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고, 그것은 그녀가 보트를 타고 화이트 캣으로 출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럼 다녀올게! 좋은 소식 기대하고 있어!”

    “예! 다녀오세요!”

    오디는 지팡이로 보트의 바닥을 짚고는 등을 돌렸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으로 일단 그들에겐 희망이 될 것이다. 잡혀간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이 바로 구출되어서 올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괴롭게 되지 않도록, 오디는 일부러 그들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일부러 부정적인 생각은 접도록 했다. 어쩌면 해적들이 사람들을 무차별로 학살했을 수도 있다. 노동력이 필요해서 잡아간 것이겠지만, 잡혀간 시간 동안 한 명도 죽지 않았기를 바라는 건 역시 무리였다.

    화이트 캣의 옆으로 다가간 보트의 양끝에 갈고리가 걸쳐졌고, 크레인이 보트를 끌어올렸다. 갑판 높이까지 올라간 보트는 상승을 멈추었고, 오디는 여유롭게 걸어서 화이트 캣에 승선할 수 있었다. 오디가 오는 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디는 그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에게서 깍듯한 경례와 함께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선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캡틴 벅. 오랜만이에요. 닉스 일항사도 오랜만이고요.”

    “조타관제실로 가시겠습니까?”

    “예. 먼저 목적지부터 정해야겠지요.”

    선장인 “벅 일세르”는 훤칠한 키에 깡마른 몸집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상당히 맑고 날카로운 축에 속했다. 전체적인 인상에 대한 평가로 마치 송곳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들리지만, 선원들에게 존경받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디가 마지막으로 화이트 캣에 탓을 때가 3년 전이었고, 그때와 비교했을 때 바뀐 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화이트 캣의 운영법을 생각해보자면 당연한 일이었기에 오디는 마치 맨 처음 화이트 캣을 탔던 150년 전의 일이 1분 전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들어오시죠.”

    “고마워요.”

    화이트 캣이 다른 목조선들과 다름 전이라고 한다면 그 구동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자연력과 인력의 힘을 빌려 움직이는 범선과 갤리선은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전 승무원이 갑판을 돌아다니면서 로프를 당기고, 선장의 명령에 따라 타륜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화이트 캣은 자연력보다도 내무에 탑재되어 있는 엔진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것을 관제하기 위한 장치가 있는 관제실에 조타를 위한 타륜이 있었다. 모든 것이 실내에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풍랑을 만나더라도 조타수가 떠내려가거나 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이런 부분들이 현재 해안에 접한 국가들이 만들어낸 함선에서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자연력 대신 연료를 소비하는 엔진을 달고, 배를 조종하는 부분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최근에야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었다. 이켈라인 상회에서는 그것을 150년 전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 기술력이 얼마나 진보해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나미아와 오디는 모든 브리핑을 라이니시스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중심 기술에 대해서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조타관제실에는 승무원들이 앉아서 배의 각 부분을 체크할 수 있는 압력계나 눈금자, 승무원들 간의 통신을 위한 통신석이 있었고, 전방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선장이 앉는 의자가 있었다. 선장석의 앞으로는 배가 가는 진행방향을 조종하는 타륜이 있었다. 시대가 지나도 타륜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명언은 화이트 캣에도 진리처럼 남아 있었다.

    “일단 해도를 봤으면 좋겠네요.”

    “예. 알겠습니다.”

    캡틴 벅이 오디를 안내한 곳은 선장석의 뒤에 있는 선장실이었다. 여러 가지 물건들과 수많은 해도들이 있는 책장, 그리고 다른 교양을 위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워낙에 책이 많아 대부분의 책들이 바닥에 쌓여 있다는 점 또한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틴 벅의 방에는 항상 그 위가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책상이 있었다.

    “매우 인상 깊은 방이군요.”

    “하하, 부끄럽습니다. 방 대신에 이걸 보십시오. 근방의 해도입니다.”

    “고마워요. 아, 일단 먼저 출함부터 시키세요.”

    “예. 출함 준비! 연안을 벗어난다!”

    “출함 준비!”

    오디가 해도를 읽는 사이 출함명령이 떨어졌다.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이트 캣은 시론트의 앞 바다에 내려뜨린 닻을 끌어올렸다.

    화이트 캣의 돛이 활짝 펴지고, 바람을 받으며 화이트 캣의 거체가 천천히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파도에 맞춰 화이트 캣의 내부도 조금씩 흔들렸다.

    한참 동안 해도를 읽던 오디는 그녀가 찾는 목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캡틴 벅에게 말했다.

    “진로는 북북서. 목표는 “평원해”입니다. 전속전진 하세요.”

    “예!”

    캡틴 벅은 오디에게 경례를 붙이고는 조타관제실의 선장석으로 올라가서 명령하기 시작했다.

    “진로 북북서! 목표는 평원해! 전속 전진!”

    화이트 캣의 이물이 북북서를 향했다.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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