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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Supplementary story Postscript: 위로. (14/49)

Guest.Supplementary story Postscript: 위로.

아우레스력 1874년, 안스란력 435년 7월 28일.

문을 열자 방 안 가득 술 냄새가 불쾌하게 코를 자극했다. 오디는 햇살이 창문에 처진 햇살을 뚫고 그대로 들어오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 14시. 아직까지 나미아가 일어났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오디는 직접 나미아의 방문을 연 것이다.

커튼도 걷지 않았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은 모두 열 병쯤 되어 보였다. 진득한 술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어 냄새만으로도 취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디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침대에서 붉은 머리를 흐트러뜨린 채 누워 있는 나미아에게 말했다.

“나미아 님. 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

대답은 없었다. 평소라면 오디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감각을 느낄 그녀였으나 밤새 혼자서 들이부은 알코올은 그것마저 방해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내는 둔탁한 소리뿐이었다.

텅그렁! 쿠르르!

오디는 고개를 저으며 일단 환기를 시키기 위해 커튼을 걷고 창문을 있는 대로 열었다. 지금까지 커튼에 가려 있던 태양 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시원한 바람이 술 냄새를 걷어가는 듯싶었다. 오디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마법으로 적당한 바람을 일으켜 내부 공기를 완전히 교체했다.

나미아는 그녀의 머리 위로 태양 빛이 쏟아져 눈을 자극하자 얼굴을 찡그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우으응… 뭐야아… 눈부셔. 창문 닫아.”

나미아는 이불을 끌어당겨서 얼굴을 덮었다. 오디는 그 모습을 보면서 화를 내야 할까 고민했지만, 잠시 후에 벌어질 일은 뻔했기에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나미아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후, 오디의 예상대로 나미아는 이불을 걷어내면서 상체를 스르륵 일으켰다. 그녀는 완전히 핏발이 선 채 풀린 눈으로 멍하니 있다가 딱 두 마디만 말했다.

“더워. 숨 막혀.”

“여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까 그렇죠. 그건 그렇고, 웬 술을 이렇게 많이 드신 거예요?”

“장례식인데… 술 한 잔씩 줘서 보내야지.”

“쓸데없는 일 하지 마세요. 이러다가 손님이라도 올라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나미아는 “손님”이라는 말에 잠깐 반응하는 듯했으나 이내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키히히히! 손님? 안 와. 걱정 마. 크히히히! 저어기 개자식들도 미안해서라도 손님 안 보낼걸? 으히히히힛!”

오디는 나미아가 말하는 그 특정 동물의 후손이라는 사람들이 누군지 짐작했다. 대체 성족이란 존재들은 왜 이렇게 사람을 괴롭게 하는 거람?

나미아는 무릎을 세워서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는 숨이 막히도록 웃었다. 그러다가 곧 끅끅대며 울음을 삼켰다.

“흐끅… 오디야. 안 잊혀져. 그 사람들 얼굴, 그 새끼들, 정말로 쓰레기 같은 개자식들인데 안 잊혀지는 거 있지? 그 새끼들… 계속 살려달라고 하더라. 계에에속. 꼐에에속! 그런데, 나 죽도록 쐈어. 도저히 나 당당할 수가 없더라. 궁상이지? 응? 그렇지? 하루 사이에 1,527명을 죽였는데… 내가 원해서 죽인 건데… 당당하질 못하겠어. 그냥 시체 위에 서서 으하하핫! 웃어대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겠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어쩔 수 없는 일?! 좋아! 그 말 좋아! 와하하하핫! 그러니까 웃으라고? 그러니까 당당하라고? 길가다 사람 찌르고 “아,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라고 하면 그만이야?! 크히히히… 재미있겠구나. 와아! 세상은 멋져! 아름다워! 모두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말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는구나! 전쟁도 없고 싸움도 없이 우리 모두 평화로워! 아하핫, 아하하하하하! 엿 같은 소리.”

오디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했다. 일단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고,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었다. 1,527명이라는 숫자는 그녀들이 살아오면서도 얼마든지 쌓을 수 있는 시체의 숫자였지만 그것을 하룻밤 사이에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정식적 충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전문 암살자도 아니고, 전쟁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당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당당한 명분이 있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미아는 그들 하나하나에 대한 선별작업을 거치면서 그들을 모두 하나의 완성된 개체로 취급했기 때문에 그 고통은 더욱 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괴로운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 버리면 뭐가 되겠는가? 나미아는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말한 대로 강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나미아에게는 가장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녀의 귀에는 오디의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닫고, 귀를 닫고, 혼자만의 생각에서 천천히 늪 속으로 함몰되어가는 그녀를 어떻게 꺼내올 것인가 생각하던 오디는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나미아 님. 당장 씻고 옷 갈아입으세요.”

“응? 왜? 어차피 치장하고 그래봤자 죽으면 다 썩어 없어지는걸. 이쁘고 몸매 좋아도 죽으면 다 끝장이더라. 거기 여자들도 꽤 예쁜 애들 많았는데 다 죽였어. 임신한 애도 있었는데, 태아랑 같이 죽여줬어. 그게 제일 괴로웠워. 아무튼 세상을 사는 건…….”

오디는 오늘만큼은 나미아의 넋두리를 들어줄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오디는 얼굴을 콱 일그러뜨리면서 강압적인 태도로 소리쳤다.

“빨리 하세요! 당장이요!”

“어, 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던 나미아는 화들짝 놀라서는 비틀거리며 욕실을 향해 걸었다. 욕실 문이 닫히고 오디는 한숨을 내쉬고는 치마 주머니에서 검고 둥근 보석을 하나 꺼내었다. 표면에 미세하게 기묘한 무늬가 들어가 있는 보석이었다.

오디는 그것을 잡고 마음속으로 뭔가 강하게 생각했다. 그러자 표면의 무늬가 빛을 발하면서 보석이 붉은색으로 바뀌었고, 오디는 그것에 대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계세요? 아, 라르딘. 아버님하고 어머님 계시니? 그래? 마침 다행이구나. 아, 다름이 아니라…….”

오디는 거실에서 나미아를 기다리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씻고 옷을 입는 기본적인 외출 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여자-주로 귀족집의 규슈-들에 비해서는 한참 짧은 편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상당한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오디가 기다리다 지쳐 나미아의 방에 들어갈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면서 나미아가 풀이 죽은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대체 그건 뭐예요?”

“상복.”

“세상에! 맙소사!”

나미아가 입고 나온 것은 검은색의 고스 드레스(Goth dress)였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검은 치마는 무릎 위까지 내려오고, 벨트로 조이는 검은 무광의 투박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검은 블라우스는 어깨가 한껏 부풀어 있으며, 그 위로는 코르셋인지 알 수 없는 조끼가 몸통을 조이고 있었다. 검은 면사포가 달린 챙모자는 차라리 애교였다. 자줏빛 립스틱을 칠하고서 눈꺼풀에도 검은색 계열의 아이섀도를 칠하고, 눈썹을 한껏 치켜 올렸으며, 얼굴에는 창백해 보일 정도로 분칠을 했다. 이 정도면 차라리 변장이라도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대로 거리에 나가면 당장 화살 같은 시선의 표적이 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시 전체에 이상한 소문이 퍼질 만큼 묘한 의상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오디가 더욱 복장이 터지는 이유는 원판이 워낙 좋기 때문에 고딕 차림을 해도 어울린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어울리지나 않으면 복장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성인 여성의 고딕 코스츔은 암울하고 정적이면서 퇴폐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미아 스스로가 상복이라고 차려입은 것이라 오디는 말릴 기운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젠 포기했다는 태도로 어깨를 늘어뜨리며 힘없이 탄식했다.

“알아서 제주(祭酒)를 만들어 드시더니, 이제는 상복이에요? 이젠 삼일장만 치르면 되겠네요?”

“삼년장으로 해도 모자를 거야.”

“적당히 좀……!”

복장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에 오디는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나미아를 말리는 것은 이미 다른 누군가에게 일임한 상태였다. 오디는 거칠게 머리를 긁적이고는 나미아의 팔을 잡았다.

“지금부터 외출해요. 아시겠어요?”

“그러던지…….”

나미아는 여전히 풀이 죽은 표정에 우울한 기운을 잔뜩 뿜어내면서 힘없이 대답했으며, 오디는 승낙하지 않으면 어차피 마음대로 끌고 갈 작정이었다. 일단 자신은 나미아에게 필요한 특효약을 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런 존재로 인식 받지 못하다는 것이 오디의 입장으로서는 슬프지만, 그래도 나미아를 기운 차리게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나미아의 행동을 어느 정도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갈게요. 텔레포트!”

“와아.”

힘없이 대답하는 나미아의 목소리가 꺼지듯 사라졌고, 그 소리에 맞춰 그녀들의 몸도 스르륵 응접실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여보. 곧 있으면 올 거예요.”

“응. 나도 알아. 시간 정도는 세고 있어.”

“그런데도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이건 뭐예요?”

“글쎄. 뭘까?”

라이니시스는 짓궂은 표정으로 히죽 웃었고, 미리안은 뚱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부지간에 비밀이 없으면 좋겠지만, 가끔 이렇게 엉뚱한 면을 보이곤 하는 남편의 심중을 미리안은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었다.

“라이니시스. 곧 있으면 아이들이 올 거예요. 그러니 애프터눈 티 파티 세팅을 해야 하는데,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총기 부품은 방해가 된다는 걸 하나하나 지적해야 하나요?”

에실루나는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곤히 잠들어 있는 체리랑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거실의 한편에서는 이률킨과 니에라, 스웰텐이 책을 읽고 있었고, 라르딘과 시크린은 나미아와 오디를 대접하기 위한 차와 쿠키를 스스로 만들고자 주방에 있었다.

라이니시스는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총기의 부품을 다시 재조립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닦아줄 필요는 없지만 기분을 내는 정도는 될 것이다. 남자란 자신의 취미에 사용되는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조차 취미로 삼아버릴 만한 종족이니까.

찰칵. 철컥! 키릭!

총기를 조립하는 손놀림은 매우 익숙했고, 미리안과 에실루나는 그런 라이니시스의 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무리 블랙 드래곤으로 변화한 그녀들일지라도 근간은 엘프였고, 화약 무기에 대해서는 원초적인 두려움과 못마땅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것을 다루는 그의 손이 왠지 밉게만 여겨졌다.

그러나 라이니시스의 몇 안 되는 취미 중에 하나인지라, 이것을 막았다가는 가출이라도 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컸기에 그녀들은 그냥 묵인하고 있었다.

라이니시스는 그런 아내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능글맞은 웃음을 띠었다.

“슬슬 올 시간이 되었군. 오디한테 연락 받았을 때는 좀 놀랐어.”

“예. 저도요.”

“그 아이들의 일이니까…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그렇게 강한 아이가 아닌가봐요. 불쌍하게도…….”

“뭐, 나미아가 선택한 일이고, 여태까지 잘해왔으니까 부모인 우리는 따뜻하게 지켜보는 거지. 오늘처럼 응석부리게 만들어달라고 오디가 끌고 올 때 이외엔 성인으로 대해야 하는 거잖아? 아무튼, 자식 농사는 기막히게 했다니까. 휴우, 이제야 끝났다.”

라이니시스는 총신의 길이가 8인치는 되어 보일 듯한 거대한 피스톨의 조립을 끝마치고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탄수 8+1에 구경은 약 2인치에 가까운 대물전용 권총이었다.

“뭐, 워낙에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는 아이였으니까 응석이 많고, 폼 잡기 좋아하고, 맛 나는 거 좋아하고, 마음 씀씀이까지 같다는 거엔 부정하지 않겠어요. 정말 누군지 몰라도 자식 농사 기막히게 지었죠.”

“이봐, 미리안. 오늘 따라 당신 말이 왜 이렇게 따끔거려?”

라이니시스는 가시에 찔려서 귀찮다는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미리안은 그런 그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에에. 상처받는 계기까지 누구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안 그래요? 누군가 씨?”

“허어, 이 사람이… 나 혼자 키웠다는 투로 말하네? 나미아의 그 막무가내에 황당무계한 성격과 언행은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해?”

“저하고는 관계없겠죠.”

모르는 체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라이니시스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뭐라고 한소리 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느껴진 마나의 대량 충돌은 그의 말을 멈추게 했다. 마나의 충돌 패턴을 살펴보니 텔레포트였다. 이제야 오나보다.

화악!

빛이 한차례 빛나며 레어 전체에 깔려 있는 마법결계가 잠시 풀렸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빛무리가 사라지자 흰 옷을 입고 있는 불편한 표정의 오디와 무슨 비스크 돌(Bisque doll)이 입는 의상을 하고 있는 나미아가 있었다.

오디는 공간이동이 완료되자 나미아의 손을 놓고서는 라이니시스, 미리안, 에실루나가 있는 테이블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나미아의 다소 파격적이고 우울해 보이는 복장에 놀란 부모님들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어, 어어… 너도 잘… 지냈지?”

“나미아는… 별로 잘 못 지낸 것 같구나?”

“어서 오렴. 힘든 덴 없고?”

에실루나만이 유일하게 침착성을 발휘해 오디의 인사를 받았다. 오디는 멍하니 서서 레어의 공동을 둘러보는 나미아를 보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말이죠.”

“와아! 오디 언니!”

“둘째 누나!”

“오디 누나다!”

“언니!”

오디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거실에서 놀던 네 명의 아이들은 희색이 만면해 오디에게 달려들었고, 겉보기로만 15세에서 17세 정도 되는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자 오디는 순간 휩쓸리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생겼다. 그러나 답삭답삭 안겨오는 동생들의 귀여움에 그런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와아! 못 보던 사이에 다들 많이 큰 것 같네? 잘들 있었어? 어머님들하고 아버님 말씀 잘 듣고 있었지?”

“응! 잘 듣고 있었어!”

“맞아! 하지만 니에라 누나는 말썽이 많았어.”

“스웰텐! 시끄러!”

앞쪽 머리는 진 흑색이고 나머지 뒤쪽은 선홍색의 탐스러운 머릿결을 가진 니에라는 선홍색 일색의 머리를 한 스웰텐을 쥐어박았다. 오디는 다소 우악스럽지만 훈훈한 풍경에 살풋 미소 지으며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언니, 오빠들의 소란스러움 때문에 잠에서 깬 체리랑스는 눈을 부비적거리면서 하품을 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체리랑스는 아직도 텔레포트에서 이탈한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미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저거” 뭐야?”

“체리야. 큰언니에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지.”

“나미아 언니? 나 일어난 적 없는 걸로 해주세요오.”

체리랑스는 얼른 눈을 감으며 에실루나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었다. 나름대로 깜찍하다면 깜찍하다고 할 수 있는 행동에 에실루나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곧 체리랑스가 지적한 “저거”에 상당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미아는… 괜찮을까요?”

“모르겠어요. 라이니시스. 어떻게 좀 해봐요.”

에실루나와 미리안,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의 전격적인 동의가 담긴 눈빛이 가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잖아도 행동을 하려 했던 라이니시스는 순식간에 등이 떠밀려진 기분이 되어버렸다. 가장의 권위란 정녕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푸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젊어서 고생인데, 언제쯤 고생이 풀리려나? 알았어. 다들 그렇게 보지 마. 아무리 그래도 내 딸이라고. 소중한 가족이야. 저대로 내버려둘 생각은 없다고. 그런 의미에서… 전탄 장전.”

철커덕!

라이니시스는 방금 조립한 거대 피스톨에 명령을 내려 실탄을 장전하게 했다. 나미아와 에실루나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을 때, 라이니시스는 히죽 웃고는 나미아에게 소리쳤다.

“나미아!”

“?”

나미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 라이니시스는 총구를 그녀에게 향하고는 냅다 방아쇠를 당겼다. 부모가 자식에게 총을 쏘는 단란한 가족애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콰가앙!

보통 총에 비해 질적으로 틀린 굉음과 함께 통상 권총의 수배에 달하는 속도로 탄환이 날아갔다. 나미아는 총구가 겨누어질 때부터 놀란 표정을 하고 있다가 불꽃이 튐과 동시에 몸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총알이 비껴가게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티앙!

나미아의 뒤에서 탄환이 도탄 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고, 나미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라이니시스를 보았다. 레어에 온 뒤로 닫혀 있었던 그녀의 입술이 떨리면서 열렸다.

“아빠?”

그것에 대답하는 라이니시스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쳇. 빗나갔군.”

잠시간의 정적. 제일 먼저 행동을 취한 사람은 미리안이었다.

“라이니시스! 미쳤어요?!”

그에 이어서 에실루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거예요?!”

그러나 라이니시스는 그녀들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디는 그러려니 싶어서 조용히 있었지만 다른 네 명의 아이들은 돌발스러운 아버지의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혼을 내더라도 자식에게 총을 쏘고는 빗나갔다는 것에 아까워하진 않았었다. 게다가 지금은 혼내는 것 같은 상황도 아니었기에 그 당황함은 더욱 컸다.

“라이니시스! 대체 무슨 일을?!”

콰가앙!

미리안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라이니시스는 곧바로 두 번째 탄을 발사했다. 그리고 미리 긴장하고 있던 나미아는 여유 있게 탄환을 피해내었다. 상당한 시간의 수련과 드래곤의 피가 아니었더라면 탄환에 그대로 명중당해 탄환이 가진 운동에너지와 회전력에 의해서 갈가리 찢겨졌을 것이다.

두 번째 탄환이 지나가는 것을 똑똑하게 본 나미아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라이니시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모자를 벗으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빠? 왜, 왜 그러세요?”

“역시 내 딸이군. 잘 피하고 있어. 아무렴!”

라이니시스는 주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며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목 뒤로 질끈 묶은 적발은 나미아의 색과 완전히 똑같았으며, 단정한 얼굴 위로 떠오른 인자한 웃음은 나미아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다정한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라이니시스의 손에는 괴물 같은 권총이 들려 있었고, 그것의 가늠쇠는 자신의 미간에 향하고 있었다. 이 상호배치는 그녀의 심리상태와 맞물려서 거대한 혼란을 초래했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라이니시스에게 말했다.

“아빠… 왜 그러세요? 네? 대답해주세요. 나미아가 뭘 잘못했나요? 네? 아빠…….”

라이니시스는 나미아의 표정이 마치 그녀를 주워서 레어에 왔을 때 나미아가 실수로 주방의 접시를 반쯤 깨버렸을 때 지었던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완전히 겁먹어서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새끼 고양이의 표정 같았는데, 지금은 조금 컸을 뿐, 표정과 목소리가 완전히 그때와 똑같았다.

감회 어린 감상에 젖을 뻔한 라이니시스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행동에 저렇게 불안해하고 있을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딸을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일단 나미아의 마음을 예전으로 돌려야 했다. 라이니시스는 아주 적당한 그 방법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라이니시스는 말했다.

“일단 말이지…….”

“예?”

“한판하고 생각해보자.”

“네에?!”

콰가앙! 콰가앙!

거대한 화약연기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로 회전하는 총탄이 각자 시간차를 두고서 나미아에게 향했다. 봉인을 풀지 않은 상태의 나미아는 저런 총탄에 맞아도 크게 다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목표추적 기능은 넣지 않았다. 일반사람이라면 도저히 피할 수가 없겠지만, 나미아라면 피할 것을 계산한 행동이었다.

“계속 피하기만 할 거냐!”

“하, 하지만…!”

취르르릉! 차라락!

여전히 당황하고 있는 나미아의 주위로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날아들었다. 나미아는 연속 텀블링을 하면서 그것을 모두 피해냈고, 라이니시스는 그녀가 공중에 떠 있는 시점에 맞춰서 방아쇠를 당겼다.

콰가앙!

“꺄아악!”

나미아는 텀블링을 하던 도중 배에 날카롭고 둔중한 감각이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재빨리 몸을 뒤틀어서 탄환을 날려 보내려 했지만, 배 부분의 옷이 쭉 찢어지면서 큰 상처가 나고 말았다. 다행히도 탄환은 어찌어찌 흘려보낼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심각했다.

“아아! 아악!”

“고작해야 살가죽이 찢어진 것뿐이잖아? 뭐 하고 있는 거야? 아빠는 널 그렇게 약한 딸로 키우지 않았다.”

“이익! 힐!”

나미아는 이를 악물고는 마법을 사용해 상처를 치료쳤고, 라이니시스는 히죽 웃으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웬만큼 험하게 다뤄도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건 이미 옛날부터 알고 있던 일이었다.

상처를 치료하고 일어서는 나미아의 눈에는 이유 모를 폭력에 분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라이니시스는 아까보다 한층 생기 있게 살아난 딸의 눈을 보고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 지었다.

나미아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쏘아보았다.

“아빠! 대체 왜 그래요?!”

“아직도 모르겠냐? 옜다. 받아라!”

콰가앙!

라이니시스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과 함께 방아쇠를 당겼고, 나미아는 전광석화같이 오른쪽으로 몸을 숙여 탄환을 피해냈다. 탄환은 나미아의 잔상을 뚫고 지나갔고, 라이니시스는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휙! 휘익! 어느새 잔상까지? 나름대로 성장했구나.”

“아빠! 시집도 못간 딸내미 죽일 작정이에요?!”

“아직도 그런 옷이나 입고 다니는 철부지가 언제 시집이나 가겠어?”

나미아는 자신의 옷을 한번 훑어보았다. 라이니시스가 쏜 총탄에 의해서 배를 가렸 천이 비스듬하게 가로로 찢어졌고, 배어 나온 피가 약간 스며들어 있었지만, 옷 전체의 디자인은 괜찮았다. 검은 천에 검은 레이스와 검은 망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짧은 치마의 고스 드레스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벨트로 채우는 부츠도 약간의 본디지(Bondage) 계열 같긴 했지만 짧은 치마에 그럭저럭 괜찮은 매치였다. 그런 자신의 옷이 뭐가 잘못됐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뭐가 어때서요?!”

“네가 입어도 예쁘긴 하다만, 체리랑스에게 입히는 편이 더 낫겠다. 뭐냐 그게? 네 딴에는 상복이라고 입었겠지만, 궁상맞은 짓이다.”

“고스 로리(Goth loli)라도 노리는 거예요? 자기 막내딸 상대로? 아빠 취미도 참 이상하네요?”

“내 딸인데 뭐가 어때서?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모두가 듣고 있었고, 대화의 주제가 되는 체리랑스 역시 똑똑하게 듣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서너 살은 어려 보이는 검은 눈망울에 검은 머리칼을 가진 한 소녀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런 옷, 싫어.”

미리안과 에실루나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체리랑스의 그 다음 말로 인해 사레가 들릴 뻔했다.

“치마가 길어야 나한테 어울릴걸.”

라이니시스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서는 당당하게 자신에게 맞서는 나미아를 보며 어느 정도 괜찮아 졌다고 여겼다. 한 번 피를 보더니만 이제야 좀 기운이 나나보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이니시스는 이쯤에서 좀 더 과격하게 붙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자아… 그럼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계속하실 거예요? 전 아빠랑 싸우기 싫어요!”

“네게 거부권이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세상의 아버지들이 그렇지만, 나 역시 자식에 대한 강제권한을 실행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아아! 너무해요!”

라이니시스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무기고에서 공간이동으로 클레이모어(Claymore)와 레이피어를 꺼내왔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거대 피스톨은 어느새 사라졌고, 그는 하나의 검을 나미아에게 던지고는 클레이모어를 양손에 쥐며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고전적 대사 한마디를 내뱉었다.

“받아라!”

“치잇!”

나미아는 공중을 날아오는 레이피어를 받자마자 몸통 가드를 했고, 그 직후, 라이니시스의 클레이모어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레이피어를 덮쳤다.

카가강!

“아앗?!”

나미아는 미처 자신이 봉인구를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쇠로 만들어진 칼과 칼 사이에서 불꽃이 튀면서 나미아가 뒤로 밀려났고, 라이니시스는 보폭을 크게 밟으면서 그녀를 밀어내었다.

파캉!

“쯧, 상대를 대할 때는 힘을 아끼지 말라고 했지?”

“시, 실수라고욧! 그런 건 좀 공격하기 전에 말하세요!”

“내 맘이다.”

“우씨… 뭐 저런 아빠가 다 있어?”

나미아는 툴툴거리면서 서클릿과 팔찌, 반지, 목걸이, 귀걸이를 벗었다. 그녀가 착용한 남은 장신구는 허벅지에 채워둔 폭 2인치의 금속 토시가 다였다. 그녀는 최후의 봉인을 남겨두고서는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했다.

라이니시스는 그녀가 봉인구를 푸는 걸 보면서 자신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마음속에 상주하고 있는 정신의 정령을 불렀다.

“이봐. 싸이.”

[부녀상잔인가. 내 언젠가는 주인의 저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 끼가 다분한 네 딸이 언젠가 이런 일을 벌일 줄 알았지. 손에 넣지 못하느니 차라리 죽여서 자신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가도록 만드는 거야. 나름대로 합리적이군.]

“헛소리 그만 하고, 정신방어나 부탁해.”

[적당히 해라. 상대는 어린애다. 너무 가지고 놀아서 마음 상하게 하지 말고.]

“어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나쁜 놈 같잖아? 어린애 마음을 쥐고 흔드는 그런 악당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내 귀여운 딸이라고.”

[그거야 모를 일이지. 아무튼 정신방어를 시작하겠다. 천천히 봐주면서 해라.]

“알고 있다니까.”

사사건건 시비를 걸긴 하지만 대화를 하면 잘 통하고, 말도 잘 듣는 녀석이라 라이니시스는 매번 티격태격하면서 정신의 정령인 싸이를 다루곤 했다. 나미아의 마음을 보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드래곤의 정신방어 정도는 쉽게 뚫어버리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이었다.

“칫! 아빠… 정령술까지 전부 익히고 있으면서… 치사해요. 우우!”

“그러는 너는? 드래곤 브레스의 능력을 아무렇게나 꺼내 쓰고, 고대인의 피를 이었으면서 치사하다고 생각 안 해?”

“아빠는 드래곤이잖아요!”

“난 인간이다!”

한 치도 지지 않으려는 부녀설전의 결말은 어쨌든 칼로 매듭을 끊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몸이 움찔 움직였다 싶은 순간 번개같이 움직였고, 흰 옷을 입은 붉은 머리의 남자와 검은 옷을 입은 붉은 머리의 여자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주쳤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캉! 카강! 파앙! 카드득!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살벌하게 레어의 공동을 울리고 있었다. 붉은 줄기 두 개가 서로를 견제하다가 일순간 충돌하고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오가는 푸른 불길과 흰 빛은 그들의 싸움이 연속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미아는 진땀을 흘리면서 손에 배어든 땀으로 레이피어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라이니시스가 무기의 핸디캡을 주기 위해서 레이피어를 건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나미아의 역량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적의 무기를 건네준 것이고, 자신 역시 진심으로 상대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클레이모어를 들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의 격돌. 피가 섞인 부녀는 아니었지만 꼭 닮은 눈동자가 서로를 비추고 있었고, 똑같은 색의 붉은 머리칼이 나부꼈다. 몇 초간의 힘겨루기를 하다가 다시 그들은 떨어져서는 서로의 반대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나미아는 인페르노 플레임과 퓨어 애시드를 아낌없이 달렸고, 라이니시스는 각종 정령술로 그것을 모두 무효화시켰다. 그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마나의 충돌은 그 움직임을 너무나 잘 꿰뚫고 있었기에 그들 사이에서 마나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결국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 60야드의 지름을 가진 원을 그리며 견제공격에 열중하던 두 부녀는 천천히 안쪽으로 거리를 좁히면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넘쳐나는 기운이 거대한 파장이 되어 그들의 궤적을 따라 서서히 뭉치기 시작해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를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회전의 중심지점에서 만난 나미아와 라이니시스는 무시무시한 빠르기의 검격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힘의 여파로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카가가가가가각!

그들의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는 하나의 긴 울림처럼 들렸고, 그들은 5초 동안 30야드의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수직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들이 교환한 검격의 횟수는 무려 132번이나 되었고, 저 밑에서 구경하는 그들의 가족들은 두 사람 사이에서 치열하게 피었다 지는 불꽃 계절의 도래를 멍하니 구경할 뿐이었다.

미리안은 저 부녀의 모습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상당한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잘 봐두렴. 다 커서도 저렇게 말 대신 칼로 이야기하면 안 돼요.”

“네에!”

“아, 하지만 꽤나 수준 높은 경지니까 눈 여겨 봐두는 것도 도움이 된단다.”

미리안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공중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두 부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고, 네 명의 아이들은 미리안을 비스듬하게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생각은 현재 일치상태에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대체 어쩌란 거예요?”

미리안의 말이나 아이들의 생각이나 현재 싸우고 있는 라이니시스와 나미아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모든 집중력을 상대방에게 쏟아 넣었고, 주변의 말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빠! 이렇게 싸워야 할 이유가 뭐죠?!”

“네가 너무 기운이 없으니까. 그래, 하루 사이에 1500명 넘게 죽인 게 그리 힘들더냐?”

단도직입적인 질문. 나미아의 표정이 금세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흠칫한 표정을 들키기 싫어 라이니시스는 외면하며 말했다.

“그래요… 힘들어요.”

“그 기분 이해한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으니까. 사람을 죽인다는 게 참 힘들지. 하물며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니…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그렇게 침울해하고 있으면 안 되잖아?”

“왜요? 왜 안 되는데요?! 저는! 제가 죽인 사람들이지만… 자신을 위해 울어줄 사람 하나 없는 그들의 처지가 너무 불쌍해요! 세상의 의지에서 버림받아서 그렇게 폐기처분된 처지가 너무 불쌍해요! 그건… 그건…….”

라이니시스는 나미아가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불안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없이 슬퍼졌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 보면 나미아의 손에 죽은 이들은 이 세상과는 별다른 존재,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이니시스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그렇게 될까봐?”

“예에.”

나미아는 눈물 방울을 떨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니시스는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딸은 처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라이니시스는 이내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하기로 했다.

“넌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넌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줘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허락 받았다. 세상에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로 인해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네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우리 가족이 있다. 만약 네가 그들처럼 처분당하게 될지라도, 우리가 그걸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니?”

“하지만 아빠… 알잖아요. 전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난 거기에서 아웃사이더의 최후를 봤다고요! 버림받고, 죽임 당하고, 그렇게 되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은 잘만 돌아가요. 쓸모없어진 도구를 버리는 것과 같아요! 나는 이 세계가 너무나 좋아요. 떠나고 싶지도 않고, 버림받아 죽는 것도 싫어요! 언제 나도 나와 같은 처벌자에게 목숨을 잃게 될지 누가 알아요?!”

“그래서 지금 너는 현실을 버리겠다는 거야?!”

“예?”

라이니시스는 가면 갈수록 푸념만 늘어놓는 나미아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지 두려우니까 그렇게 현실을 버린 채 있겠다는 것은 더더욱 자신의 쓸모없음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애초에 흉악 범죄에 물들어버린 그들과 자신이 키운 딸을 같다고 보지 않는 그는 칼끝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정녕 쓸모없어지고 싶은 게냐?! 나미아. 잘 들어라.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진 널 이해한다. 너와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서 네 현실에 닻이 내려지는 건 네가 쓸모없음을 증명하는 것과 같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뭘 할 거냐! 애도만 하고 있을 테냐?! 그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어려운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던 네 말은 그냥 허언(虛言)이었냐?!”

“아, 아니… 그건…….”

“정신 차려! 나미아 이켈라인! 넌 내 딸이다! 우리 딸이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네가 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넌 그렇게 배우지 않았느냐?! 아니면 고작 두 번의 의뢰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모든 걸 다 이룬 거라고 생각하느냐?! 대답해라!”

“아, 아빠!”

라이니시스는 딸의 한심한 몰골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나미아는 아버지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 당황해했다. 분명 라이니시스의 말을 정론이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진리와 같다고나 할까.

자신은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맹세했으며, 그렇게 살겠노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신의 강박관념이 너무 강한 탓일까 조심스레 추측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나미아, 내 딸아! 인생에 좌절은 한두 번 오는 게 아니야. 수없이 많이 온다. 실수도 하고, 괴롭기도 하면서 나아가는 거야.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야 살아갈 수 있는 거지, 그 좌절에 몸을 맡겨 절망하거나 남들의 경우를 보고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 포기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단다.”

“흑… 흐윽!”

나미아의 검끝이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라이니시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자신을 배려하는 따스한 목소리에 좌절하고 있던 마음에는 새로운 기운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쓸모없게 되더라도 이렇게 감싸줄 가족이 있었다. 자신이 잘못되면 화를 내면서 고쳐주고,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주는 부모님이 있었다.

라이니시스는 완전히 내려간 나미아의 칼을 보며 따스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쓸모없다는 생각은 버려라. 넌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 네가 뭔가를 얻기 위해 나아가겠다면 더 이상 기쁜 일이 어디 있겠니. 나미아야. 아빤 널 사랑한다. 사랑하는 딸이 잘못되는 걸 볼 수가 없어서 조금 험하게 대한 걸 용서해라. 미안했다.”

“흐윽! 으아아! 으아아아앙! 아빠! 미안해요! 흐아아아앙!”

나미아는 그대로 라이니시스의 품으로 안겨 들어서는 그에게 기대 어젯밤과 같이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때는 불안과 절망, 좌절과 슬픔 때문에 흐른 비통함의 눈물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기쁘고 기뻐서 터뜨리는 환희의 울음이었다.

라이니시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는 나미아와 함께 천천히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에서 끅끅대며 우는 큰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쯔읏. 다 큰 녀석이 어린애처럼 울기는….”

“흐윽! 이럴 때, 이럴 때 울지않으면 어쩌라고요! 끄윽! 이럴 땐 우는 거라고요! 으아아아아앙!”

얼굴을 힘껏 묻느라고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에 라이니시스는 한숨을 쉬며 안심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개구쟁이 딸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라이니시스는 뒤를 돌아보면서 눈물을 짓고 있는 미리안과 에실루나, 오디에게 생긋 웃어주었다.

다소 과격하고 시끄럽긴 했지만, 나미아가 예전같이 돌아온 것에 비하면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

열 한 명의 대가족이 모여 앉아서 가지는 티타임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세 명의 부모라는 희귀한 상황에 이어 두 명의 양딸과 여섯 쌍둥이의 조합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나미아의 어린애 같은 모습은 여섯 동생들에게는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엄하고 무서운 그들의 큰언니이자 누나가 그런 식으로 펑펑 울음을 터뜨릴 줄은 차마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 세상이 자신들을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에 적당했기에 체리랑스를 제외한 여섯 아이들은 약간 쭈뼛한 태도로 나미아를 대하고 있었다.

체리랑스는 알 수 없는 그 성격을 십분 발휘해 맹한 표정으로 나미아의 무릎에 앉아서 쿠키를 아작아작 먹고 있었다. 친화력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 생각 없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여관은 잘되고 있니?”

“이제 터를 잡았다고 해야겠죠. 매상도 안정적이라서 망할 일은 없을 거예요. 설령 망하더라도 본사의 자본이 있으니 퇴직금은 줄 수 있어요. 돈 안주고 뻥튀기는 그런 회사는 꼴 보기 싫더라고요.”

“이켈라인 상회가 망하지 않는 한은 그럴 일 없겠지. 그건 그렇고, 투자 자금은 언제쯤 돌려줄래?”

라이니시스의 말에 나미아는 흠칫하며 표정을 굳혔다. 그 “투자 자금”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녀가 레어를 박차며 뛰쳐나올 때 들고 나온 라이니시스의 보화들 중 일부였기 때문이다. 장물 취급을 할 수도 있지만, 투자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둘러댄 장본인이 나미아였고, 현재 상회가 커진 만큼 슬슬 투자 자금의 회수를 시작해야겠다는 것이 라이니시스의 생각이었다.

“에헤헤… 그 정도는 선물로 주셔야죠.”

“글쎄다. 나는 선물의 보답으로 받은 물건이 없는데?”

“아하하하하… 자식한테서 보상을 바라시다니요.”

“허허허! 성공한 녀석이 그런 일도 못하냐?”

두 부녀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전류는 돈에 얽힌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돈 문제를 놓고 싸우는 모습이 그렇게나 유치해 보일 수가 없었다. 미리안은 살짝 라이니시스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냥 선물로 준 셈 쳐요. 남자가 왜 그렇게 쫀쫀해요?”

“그래요. 어차피 그것도 당신이 땀 흘려 번 돈도 아니잖아요? 보물의 대부분이 독립할 때 받은 선물이면서.”

에실루나의 거들기는 언제나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었다. 라이니시스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머쓱해했고, 나미아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에휴… 애들하고 엄마들이 한통속이니 난 언제쯤 어깨를 펴고 살려나.”

“언제는 굽혔다고 그러세요? 사실 아빠가 고집 부려서 나가면 따라가는 가족들이잖아요? 소소한 결정권을 빼앗겼다고 해서 꽁해 있는 건 남자답지 않아요.”

“남자답게, 남자가 뭐 그러냐 하는 것 전부 성차별이야.”

“당연하죠. 어차피 차별 사횐데.”

나미아는 언제 울면서 응석부렸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해서 라이니시스의 말문을 막았다. 라이니시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괜히 끈질기게 따라붙어 간만에 생긴 놀림거리를 사라지게 하지 않기로 하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래. 그냥 선물로 줬다 치자. 뭐, 이야깃거리를 얻었으니 그 정도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안 그래? 미리안, 에실루나?”

“후훗. 그래요. 그건 맞는 말이네요.”

“나미아가 그렇게 우는 모습은 참 오랜만이었으니까요.”

“케헥! 콜록! 콜록! 세분 다 악랄하세요오.”

나미아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차를 마시다가 그만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바로 밑에 있던 체리랑스는 나미아를 스윽 올려보고서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너 그거 무슨 뜻이니?”

“아니. 별로. 신경 쓰지 마, 언니.”

체리랑스는 다시 건포도 쿠키를 아작아작 씹었고, 나미아는 탐스러운 검은 머리의 정수리를 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미리안은 입을 가리며 작게 웃다가 뭔가 생각난 듯 나미아에게 말했다.

“얘, 그런데 이렇게 자리를 비워도 괜찮니? 어떻게 생각하면, 넌 항시 대기하고 있어야 하잖아?”

“괜찮아요. 성족 놈들도 양심이란 게 있으니까 일한 다음엔 쉬게 해줄 거예요. 내가 무슨 전천후 심부름꾼도 아니잖아요?”

“하긴 그렇구나. 그래도 좀 괘씸하네. 남의 딸을 이렇게나 힘들게 하고…….”

“그들도 어지간히 급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카르마를 조작해서 손님을 보내오는 브로커들이 그걸 해결하지 못했다는 건 이해하기가 힘들거든요. 카르마라는 게 어차피 시간에 기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에 뒤흔들린 것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미아는 한결 여유 있는 태도로 성족들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들도 어디까지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할 수 있는 행동에 제약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문이 드는 것은 그 일을 처리할 아웃사이더가 자신과 오디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다른 아웃사이더의 존재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꼭 그 일을 자신들에게 시켜야 할 어떤 이유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미아는 한결 마음의 평온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라이니시스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헤르디스 베올딘이라… 나에게는 그리 곱게 들리는 이름도 아니군. 하인츠라면 아마 보기 드물게 화를 낼 테지. 어쨌든 크게 신경 쓰지 마라. 이번 일을 했다고 해서 이것과 비슷한 다른 일을 해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휴우, 대체 그 작자는 저희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요? 나나 아빠나 부녀 2대에 걸쳐서 그런…….”

“나미아, 거기까지! 애들이 있잖니.”

나미아의 표정이 험악해지며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에실루나가 제지했다. 나미아의 말에 경청하던 그녀의 동생들은 아쉬움과 안도가 섞인 표정을 짓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이젠 공짜 손님은 사절이에요. 그대로 펜스텐 호수로 집어 던져버릴 생각이에요.”

“그거 괜찮군.”

“여관의 소문에 대해선 아랑곳하지 않는 말씀이니까요.”

오디의 평가는 냉혹했지만, 나미아는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손님으로 받을 필요가 없었다. 오디야 여관의 관리인이라서 신경을 쓰는 것이지만, 나미아에게 있어 여관 경영은 유흥거리에 불과했다.

“아무튼, 여태껏 해왔던 대로 할 생각이니?”

“예. 특별히 바꿀 것도 없잖아요? 게다가 아직 전 바깥세상이 좋아요.”

라이니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미아의 성격상 레어에서 평생을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이 살면 즐겁기야 하겠지만 나미아도 그녀 자신의 인생이 있었다. 아웃사이더니 만큼 남들과는 제한된 환경을 가지고 있기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너 좋을 대로하거라. 가끔 집에 와서 쉬다 가고. 물건 가지러 올 때는 네 발로 좀 찾아오너라. 매일 오디만 시키니?”

“헤헷. 그럴게요. 너무 오랜만이다 보니까 요 말썽꾸러기들 얼굴도 다 잊어먹을 지경이에요.”

나미아는 체리랑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글생글 웃었고, 체리랑스는 기분 좋은 듯 헤죽 웃었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무섭디 무서운 나미아의 품안에서도 웃을 수 있는 새삼 체리랑스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실루나는 푸근한 자매의 표정을 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언제고 찾아오렴. 항상 우리들에게서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잊지 않아요. 고마워요, 엄마.”

나미아는 체리랑스를 들어서 내려놓았다. 많은 소란을 피우긴 했지만 어쨌든 좋게 끝을 내었다. 생각 같아서는 며칠 쉬다 가고 싶었지만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오기로 결정했다.

“오디야. 가자. 엄마, 아빠, 엄마. 저 돌아갈게요.”

“실례했습니다.”

“응? 가? 언제 또 와?”

체리랑스가 서운한 듯이 나미아를 올려다보았다. 나미아는 귀여운 막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음에 여유 생기면 올게. 그때까지 체리도 잘 있어. 너희들도. 특히 니에라하고 시크린. 사이가 좋다는 건 알겠지만 툭하면 싸우는 버릇은 고쳐라.”

“누, 누가 사이좋다는 거야!”

“언니!”

반은 검은 색에 반은 붉은 색인 같은 머리스타일을 한 두 남매는 동시에 발끈했다가 서로를 쳐다보며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나미아는 이제 자신의 말도 안 먹히는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라르딘. 네가 좀 고생이겠구나. 이률킨. 넌 좀 자기 주장 좀 내세워봐라.”

“괜찮아. 저래도 서로가 미워서 싸우는 건 아니잖아.”

“으응… 알았어, 언니.”

“스웰텐. 엄마들하고 아빠 말씀 잘 듣고.”

나미아는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고서는 거실의 한쪽 끝으로 오디와 함께 걸어갔다. 그녀들의 가족들은 마법의 범위 바깥까지 우르르 나와서 그녀들을 배웅하기 위해 섰다.

“아빠, 나 사랑하죠?”

“그래. 사랑한다. 오디도.”

“히히힛. 역시 그때 딸 삼아달라고 하길 잘했다니까. 기왕이면 아내가 되는 편이 더 좋았을걸.”

키득거리는 나미아의 말에 라이니시스는 황당의 극치에 도달했다.

“무… 뭐?”

“괜찮아요. 지금도 만족하는걸? 고마워요 아빠! 사랑해요! 그럼 이만 갈게요! 다들 안녕!”

“안녕히 계세요. 실례했습니다.”

풀썩 웃어버리는 라이니시스와 서로를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나누는 미리안과 에실루나, 그리고 나미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는 표정을 한 다섯의 동생과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짓는 막내를 보며 나미아와 오디는 빛에 휩싸이며 레어에서 사라졌다.

그녀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Guest.Supplementary story Postscript: 위로-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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