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2: 전개되는 물밑작업. (9/49)
  • Part2: 전개되는 물밑작업.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력 435년 7월 8일.

    렌디너스 왕국의 신 수도 데린너스에는 한 왕국의 수도답게 여러 산업이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을 꼽자면 역시나 상업이다. 물류에서 인력까지 다채로운 분야를 취급하고, 최종적으로 이익을 내면서도 그것으로 하여금 사회 전반을 매끈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상업이다. 혹자는 “상업이 아니라 돈”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 돈을 취급하는 것이 상업의 일이다.

    그런 상업을 위하여 렌디너스 왕국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 걸쳐서 존재하는 가장 표준적인 단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회”이다. 각종 물류 운송에서 시작해 인력의 거래까지를 취급하기 위한 하나의 단체로서 상회는 거의 모든 산업과 발이 닿아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건의 사고파는 역할을 하는 상행위에서 시작했지만 현재는 고객에서 고객으로 물류를 배달하는 택배를 비롯한 운송업, 자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금융업, 돈을 받고 인력시장에 필요한 사람들을 사들려 필요한 곳에 배치하는 직업소개까지 적재적소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양화되고 세분화되었다.

    그렇게 다양성을 띄게 된 상회들 중에서는 각자의 규모에 맞춰서 특정한 계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상회가 출현했는데, 이것을 가리켜 “전문상회”라고 부른다. 그들은 특정한 계열에서 한두 개를 더한 상회의 역할만을 하며 주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에 두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상회 자체가 거대화되어서 모든 사항을 전부 처리하는 상회도 생겨났는데, 이를 가리켜 “종합상회”라 부른다. 종합상회의 모토는 “모든 일은 상회 안에서”로서, 그 말대로 상회 안에서 상행위, 운송, 금융, 직업소개 등의 다양한 모든 업무를 처리하도록 만든 상회이다.

    대개의 종합상회는 대해의 노도와도 같은 업무량을 순조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거대화되어 있는 편이 일반적이다. 현재 아이리펜 대륙에는 전 대륙을 아우르는 여섯 개의 상회가 존재하며, 그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회를 꼽자면 그 안에는 당연히 “이켈라인상회”가 존재한다.

    설립연도는 아우레스력 1478년, 안스란력 38년으로 곧 있으면 설립 400주년에 이르는 정말로 오래된 상회이다. 처음 시작은 엘 타칸리스 산맥 동부 순회 진입로에 위치한 “프레빌”에서 일상적인 생활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상회의 주인은 붉은 머리를 나부끼는 매우 아름다운 미녀로서, 절세의 칭호를 받아갈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녀의 옆에는 그녀를 돕는 흰색 머리의 뒤지지 않는 미모의 여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들은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매우 품질이 뛰어난 드워프제(Dwarf製) 물건을 판매했으며, 그 물건들은 매우 높은 품질을 자랑했다. 당연히 그녀들의 물건들은 고가에 거래되기 시작했고, 이켈라인 상점에서 파는 드워프제 일상용품들의 소문은 전 대륙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펜촉이나 주머니칼을 비롯해 농기구, 주방용품, 무기와 갑옷에 이르기까지 철제 물품하면 “이켈라인”이라고 할 정도의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그 뒤 이켈라인 상점은 대여섯의 유랑 상단을 사들여 운송업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산적이나 몬스터들에 의해 피해를 당하기도 했지만, 이켈라인 상점의 여주인과 총무는 매우 뛰어난 수완―아직까지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으로 툰드라의 늑대들을 호위로 영입했다. 그 뒤 호위 문제는 해결되었고, 이켈라인상회의 100% 안전한 운송은 또다시 입에서 입을 타고 퍼져나갔다.

    대륙의 상계의 모든 정보통은 이 혜성처럼 등장한 상점의 존재에 귀추를 주목시켰고, 중소규모의 상단이나 상점이 서서히 이켈라인 상점의 산하로 들어가게 되어 상점은 체인으로, 상단은 운송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설립한 지 30년 후에는 프레빌에 위치한 상점을 본사로 삼는 상회가 출범하게 되었고, 이 상회는 레리첸트와 미하반 제국, 사이에그롭의 무멘트라, 렌디너스 왕국에서 이유 모를 전폭적 지원을 받아 그 크기를 불렸다.

    그리하여 현재에 이른 이켈라인상회의 데린너스 지부는 렌디너스 왕국의 모든 산하 지부를 통제하는 곳답게 거창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켈라인상회 데린너스 지부]

    지방 점포라는 뜻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전혀 위축이 들지 않는 필체로 쓰인 현판을 달고 있는 이 건물은 7층의 높이에 옆으로 뻗은 길이만 하더라도 50야드가 넘는다.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쯤 쳐다보게 하는 이 건물로는 새벽에 문을 열기 시작해 야밤에 문을 닫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그런 건물의 앞으로 이켈라인상회 산하의 운송업체 마크를 달고 있는 마차가 멈춰 섰다. 물류수송이 아닌 인명 수송을 담당하는 승객마차로서, 현재 대륙 대부분의 도시에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그들의 발이 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서, 갈색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이 가뿐한 걸음걸이로 내려왔다. 후드의 틈새로는 하얀 피부와 붉은 머리가 언뜻 보였다. 그런 그녀의 뒤로는 하얀 머리의 여성이 검고 큰 여행가방을 가지고 내렸다. 처음 내린 여성은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이켈라인상회 데린너스 지부를 바라보고는 마부에게 금화 두개를 쥐어주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수고하세요.”

    ??예,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차는 다시 새로운 손님을 찾기 위해 떠나가고, 건물의 입구에 선 붉은 머리의 여성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오디, 여기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요. 개점할 당시하고 왕실과의 마찰 문제 때문에 25년 전쯤에 한 번 오고서 처음이죠?”

    오디의 말에 나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대륙에 퍼져 있는 상회에서 대부분의 처리사항은 마법을 통해 수십, 수백 마일의 거리를 돌파하여 프레빌의 이켈라인상회 본사로 올라온다. 나미아와 오디는 그것을 보고서 답변서를 작성하거나 결재서류를 작성해 마법으로 전송하기 때문에 웬만한 문제가 아니면 그녀들이 지부로 출동할 일은 없었다.

    25년 전에 그녀들이 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 데린너스 지부는 긴장의 도가니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녀들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후 도착하기까지의 3주 동안을 외장과 청소에 신경 썼다고 전해진다. 물론 쓸데없는 돈 낭비라며 나미아의 불호령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로 전설같이 전해진다.

    ??그런데 이번엔 묘하게 조용하네?”

    ??뭐, 쓸데없이 업무에 지장주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그래? 역시 오디야. 잘했어. 쓸데없이 돈을 버리는 일은 죄악이야.”

    나미아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디는 생긋 웃으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 가방을 들고 뒤따랐다.

    이켈라인상회 데린너스 지부는 언제나 분주했다. 그러나 손님을 맞이하고 여러 가지 신청을 담당하는 창구가 있는 1층은 내부의 분주함과는 달리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였다. 손님은 입구를 통해 들어와 원하는 창구를 이용하기 위한 번호표를 지급 받는다. 그리고 대기석에 앉아서 호출될 때까지 기다리게 되는 것으로 창구 앞의 번잡함을 해소한 획기적 시스템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나미아는 그것을 보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라이니시스의 조언이 정말 시대를 앞서가는 일을 만들어냈구나 하고 새삼 감동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지식의 보고를 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아버지에게 새삼 감사하는 그녀였다.

    ??안녕하십니까. 저기, 무슨 일이시죠?”

    1층의 안내와 경비를 맡은 푸른색 제복의 여성이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하고 있는 나미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갈색 가죽바지에 검은 부츠, 흰색 셔츠 위로는 검은 색 가죽조끼를 끈에 꿰어 걸치고 있고, 그 위로 갈색의 천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 들어오면 누구라도 의문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체형이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얼굴의 반을 가린 후드는 충분히 수상쩍어 보였다.

    나미아는 그런 그녀에게 생긋 웃어 보이며―상대방에겐 입 모양밖에 보이지 않을 테지만― 말했다.

    ??상회의 사람을 만나러왔는데요?”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저기 4번 창구의 번호표를 가지고 가셔서 대기해주세요. 번호표의 숫자가 호출되면 창구 직원에게 가셔서 방문 목적과 만나고자 하시는 분의 성함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창구의 시스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직원을 보면서 나미아는 피식 웃었다. 직접 고안한 사람으로부터 완벽한 설명을 듣고서 시스템을 상용화시킨 것이 바로 자신인데, 그런 자신이 설명을 들어야 한다니 참으로 우스웠다.

    나미아의 속내를 모르는 여직원은 약간 불안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미아는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투박한 무광택의 금속제 펜던트(Pendant)를 꺼내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나미아는 말했다.

    “여기 지부장이 아직도 ”다도린 슈인??인가?”

    ??어, 어…!”

    나미아의 펜던트를 본 여직원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입을 벌린 채 미약한 신음성만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본 다른 직원들이 조심스레 다가와서는 의문을 표했다.

    ??베닌? 왜 그래?”

    ??히익! 저, 저것은…!”

    ??응? 허억…!”

    다른 직원들도 나미아의 펜던트를 보고서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펜던트에는 거칠게 깎은 듯한 봉우리 사이를 날아다니는 매우 아름답고도 위엄 있으면서도 압도적인 힘이 서려 있는 레드 드래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는데, 드래곤을 새긴 홈에 드워프만의 기술인 금속 염색기술로 만든 붉은색 금속을 흘려 넣어서 만든 것이었다. 기술적인 문제나 예술적인 측면을 보더라도 매우 뛰어난 공예품임에 틀림이 없었다. 누구나 척 보면 놀랄 만한 공예품이었다.

    그러나 직원들이 놀라는 이유는 이켈라인상회에서 그 레드 드래곤이 새겨진 펜던트가 뜻하는 바가 바로 상회의 주인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미아는 그렇게 놀라면서 굳어 있는 세 직원에게 펜던트의 위에 있는 스위치를 누른 뒤 다시 내밀었다. 그러자 그 음각 된 레드 드래곤의 날개가 천천히 퍼덕이면서 봉우리 사이를 나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움직이는 펜던트.

    말이 필요 없는 진품이었다. 펜던트까지는 어떻게 만든다고 쳐도 날개를 움직이는 레드 드래곤의 모습은 눈앞의 상대가 상회의 주인임을 확신하게 했다. 평생 가도 만날 수 있을까 말까한 거물급 인사가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나미아는 신원을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누구 아무나 가서 지부장을 불러와주겠어? 아무래도 내가 온다는 연락은 받은 것 같네. 당신들이 놀라고 있는 걸 보면.”

    ??아, 예에. 엊그제 지부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상회의 회장님께서 내방하신다고 접대에 만전을 기하라는…….”

    ??그래, 아무튼 그 접대라는 걸 받으려고 왔으니까 당장 튀어 내려오라고 그 지부장에게 전해주겠어?”

    ??아, 알겠습니다!”

    당황한 직원 두 명이 연락을 위해 어디론가 달려가고, 덩그러니 남은 직원은 나미아의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약삭빠르게 빠져나간 두 사람에게 원망만 생길 뿐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귀빈이 오셨을 경우에 대한 교육내용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더 당황하게 되었고, 나미아는 그런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은 다음 그녀를 도와주기로 했다.

    ??응접실은 어디지?”

    ??예?”

    ??응접실 말이야. 이대로 있다가는 자네가 지부장한테 혼나잖아?”

    ??아, 저기, 응접실 말이죠? 알겠습니다. 기다리세, 아, 아니지. 따라오세요. 그런데 저 뒤에 계신 분은?”

    나미아는 가방의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로 내부를 둘러보는 오디를 흘끔 보고서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우리 상회의 총무. 모든 결재담당.”

    ??예엣?!”

    ??그러고 보니 당신 월급도 따지고 보면 쟤가 결제하는 거네. 뭐, 아무래도 좋으니까 앉을 자리 있는 곳으로 좀 안내해줘. 서 있기 귀찮아.”

    ??아, 죄송합니다! 따라오세요!”

    나미아는 뻣뻣한 동작으로 걸어가는 여직원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녀의 뒤로 나미아가, 그녀의 뒤로 오디가 종종걸음으로 따라 붙었다.

    ??그런데 약간 건물이 낡아 보이는데요?”

    ??보수공사 좀 하라고 지시해야 하나? 그건 지부장 재량이잖아?”

    ??아무래도 25년 전에 너무 크게 혼내신 것 같아요. 너무 돈을 아끼려고 생각한 흔적이 역력한 걸요?”

    ??그래? 융통성 없기는……. 돈은 무조건 아낀다고 되는 게 아닌데 말이야. 쓸 곳이 있으면 제대로 써야지. 어쩌다 그런 융통성 없는 사람이 지부장이 되었지? 이참에 확 갈아버릴까?”

    ??말씀만 하신다면 쓸 만한 인사목록을 만들어볼게요.”

    ??헤에…. 그런데 나한테 그런 거 있으면 기분 꿀꿀할 때마다 여기 바꾸고 저리 바꿀 거야, 아마도.”

    ??그러니까…….”

    이켈라인상회를 배경으로 회장과 총무가 나누는 대화의 무게는 앞에서 안내를 하는 여직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저런 일상적이고도 무가치하게 들리는 대화라고 할지라도 상회의 내용인 이상 이미 상회 내 일급 기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런 인사이동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녀는 어쩌다가 자신이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앞에 가는 사람 심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나미아와 오디는 응접실로 향하는 동안 상회내의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거침없이 뱉어내고 있어 점점 그 여직원의 정신에 압박을 넣고 있었다. 나름대로 불쌍한 모습이었다.

    이켈라인상회 데린너스 지부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다도린 슈인은 주변에서도 꽤나 걸출한 인물로 정평이 자자하다. 78년 평생 이켈라인상회에서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는 다른 지역의 지부에서도 배우러올 정도이다.

    혹자는 무작정 찍는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과감한 결단력과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그 사람의 직위나 권력에 짓눌리지 않고 소신 있는 상도를 걸어온 그는 데린너스 지부의 모든 이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런 다도린도 전 대륙에 퍼져 있는 이켈라인상회의 최고 우두머리와 총무를 만날 때는 존재의 여부조차 불투명했던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400년 가까이 이켈라인상회를 운영해온 전설과도 같은 두 사람은 일개 지부장이 대하기에는 턱없이 높은 인물들이었다.

    ??오랜만이야. 이번엔 지부 단속을 꽤 잘했네?”

    ??무, 물론입죠. 25년 전에 혼났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랬지. 그런데 내가 그때 너무 크게 혼낸 것 같아. 건물 모양이 이게 뭐야? 아무리 내가 한 말이라고 해도 이렇게 융통성 없이 지키는 어떻게 해? 일국의 상회를 총괄하는 지부장 역을 맡고 있으면서 말이야.”

    ??예, 예?”

    나미아는 팔짱을 낀 채로 원래는 다도린의 자리였을 지부장 석에 앉아서 쯧쯧 혀를 찼다. 그녀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다도린은 당황하고 있었다. 나미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한 나라 왕국의 수도에 건설된 지부는 그 나라의 상회를 대표하는 얼굴이야. 그런데 이렇게 후줄근하잖아? 아무리 사람이든 건물이든 외견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고 해도 보수공사정도는 해야지. 마음씨가 아무리 착해도 얼굴을 가꾸지 않는 미녀는 미녀가 아니야.”

    ??아, 예에. 알겠습니다. 곧 보수와 단장을 위한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아, 물론 또 내 말을 곡해에서 듣지는 말고 소신껏 처리하라고. 자네도 알 거 아냐? 이 건물의 어디가 좋고 나쁜지를.”

    ??물론이지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다도린은 연신 고개를 굽실거리면서 나미아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베닌이란 여직원은 지부장의 생소한 모습을 보며 웃어야 할지 다른 반응을 취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원래 안내만 하고 물러날 작정인데 지부장이 뛰어들다시피 응접실로 들어오고, 물러가란 말도 없이 모두를 지부장 실로 안내하는 바람에 거의 얼떨결에 끌려나온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내가 맡긴 조사는 어떻게 되었어?”

    ??에… 그 뉴먼 백작에 관한 말씀이십니까?”

    ??응. 조사 결과는 대략적으로 나왔겠지?”

    ??물론입니다. 상회의 모든 정보력을 총 동원해서 만족하실 만한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잠시 후면 이곳으로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래? 수고했어. 정보부 직원하고 조사하는데 들어간 인력을 간추려서 본사로 올리면 수고비로 이번 분기 마감 때 특별 보너스 예산을 집행해줄게. 오디, 이 정도는 괜찮지?”

    나미아의 옆에 서 있던 오디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특별 보너스 예산의 여유분은 충분합니다.”

    ??좋아, 그럼 상여금 수준으로 지급해 줘.”

    ??예,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즉시 지시해두겠습니다.”

    다도린은 거의 감격할 듯한 표정을 나미아와 오디를 바라보았다. 이켈라인상회의 최대 장점은 상벌제도가 정확하게 짜여 있다는 점이다. 잘한 이에겐 그만큼의 대가를 주고, 못한 이에겐 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상여금의 의미는 입막음의 의미가 더 크겠지만.

    ??그럼 그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베닌, 차를 끓이게나.”

    ??예? 아…. 알겠습니다.”

    멀뚱멀뚱 서 있던 베닌은 자신의 역할은 원래 차를 끓이는 역할이었다고 주장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차를 타기 시작했고, 나미아는 의자를 뱅글 돌려서 창문 밑으로 보이는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그 보고서라는 것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상회 운영에 대한 전반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당해 보였다.

    ??다도린, 1분기 매출은?”

    갑작스럽게 받은 질문이었지만 다도린은 이미 그런 것은 숙지했다는 듯 시원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년도에 비해서 1.5%의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올해는 새로 시작한 사업도 없어서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의 기반을 다지는 중입니다. 1분기의 매출로 볼 때 전년대비 총 매출 상승은 총 5%남짓으로 생각됩니다.”

    ??2분기 시작에서 지금까지는?”

    ??0.5%의 매출 성장을 보였습니다. 이용하는 고객층이 한층 두터워져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매출은 순조롭습니다.”

    탄탄한 기반 위에 세워진 건물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이켈라인상회는 그런 식의 경영을 하고 있고, 데린너스 지부는 올해 그 기반을 한층 더 다지는 것으로 상회 방침을 정했다. 전년도에 비해서는 격감한 매출이지만 충분한 흑자운영이었다.

    ??하긴. 처음 만들고서 398년이나 지났는데 안정적이지 않다면 문제 있지. 사회환원(社會還元)은?”

    ??렌디너스 왕실 복지부, 신전 복지회 연합과 문의해서 매달 매출의 1%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본사에서 내린 명령대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음음, 좋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고 했어. 가진 사람이 베풀어야 사회가 평안해지는 법이야. 여담이지만, 우리 상회의 사회환원에 대한 귀족들의 움직임은?”

    ??예. 저희 상회의 사회환원으로 생긴 긍정적 반응을 보고 다른 귀족이나 상회들도 점차 사회환원 활동에 참가해서 지금은 하나의 풍속으로 발전되어 있습니다. 사회환원을 하지 않는 귀족은 거머리나 다름없다면서요.”

    마지막 말에 나미아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켈라인상회가 사회환원을 시작한 지는 약 30년 가까이 된다. 가진 사람은 그만큼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 하에서 시작된 사회환원은 처음엔 비웃음을 사기 일쑤였다. 상회라는 집단이 이익도 없이 돈을 마구 써버린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사회환원을 시작하고서 3년도 되지 않아 이켈라인상회의 명성은 대폭 상승했고, 그에 따른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 매출 역시 대폭 상승했다.

    이런 현상을 본 다른 상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이켈라인상회의 사회환원을 벤치마킹(Benchmarking)하여 사회환원 활동을 시작했고, 대체적으로 상회와 연관이 있는 귀족들 역시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너도나도 사회환원에 참가하여 지금은 사회환원을 하지 않는 귀족이 없을 정도이다.

    국가에서 보기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복지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국가의 예산만으로는 여기저기 구멍 뚫린 치즈같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귀족들이나 상회가 자발적으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재산을 기부하고 있으니 국가로서는 그 기반을 이루는 백성들을 수월하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신전도 마찬가지다. 헌납으로 이루어진 복지금은 신전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신전에서도 신의 인지도와 신전의 경제생활 파탄을 막아주는 사회환원을 매우 기꺼워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사회라는 구조는 서로가 약간만 양보하고 희생하면 훨씬 살기 좋아진다니까. 사회환원 뒤로는 빈민가 분쟁도 많이 줄었을 테고.”

    ??그렇습니다. 일단 배고파 죽을 일은 없으니까 생활고를 빙자한 범죄도 많이 줄었습니다. 전부 회장님의 탁월한 안목 덕분입니다.”

    ??너무 그렇게 치켜세우지 마. 이 아이디어는 우리 아빠한테서 받은 거니까. 아빠가 그러더라고. 모름지기 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사회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더 많은 돈이 모이거든.”

    ??그렇군요. 아버님의 선경지명이 저희 상회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칭찬을 들은 나미아는 기분이 좋은 듯 싱글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가지를 내려다보던 나미아는 다시 의자를 돌려서 다도린을 보았다. 오늘 처음 응접실로 달려 들어왔을 때보다는 많이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때 베닌이 때맞춰 찻잔이 올려진 접시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차 드십시오.”

    ??고마워.”

    ??총무님은 어떻게……. 서서 드실 건가요?”

    ??이쪽이 더 편해요. 고마워요.”

    오디는 서 있는 채로 접시를 받아들었다. 나미아가 업무를 보는 시간에는 항상 옆에 서 있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다. 처음 몇 십 년간 나미아가 그것을 고치게끔 하려다가 오디의 고집도 한 가닥 하는 터라 아예 포기해 버린 지 오래였다.

    다도린은 자신의 앞에 나온 차를 티스푼으로 천천히 저으면서 한결 편해진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차의 향기가 방안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긴장했던 마음도 한결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궁금증일 내보일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회장님. 이곳까지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그 뉴먼 백작과 저희 상회와 뭔가 관련이라도 있습니까?”

    ??응? 그런 건 아냐. 단지… 개인적인 일이 있이 있어서. 상회에는 피해가 없을 거야. 하지만 상회의 힘을 좀 이용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나도 참 제멋대로 회장이라니까. 와하핫.”

    ??하하, 그러시군요.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상회를 만들고 여기까지 키워오셨고, 앞으로도 운영하실 분의 말씀인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언뜻 들으면 상회의 회장에게 하는 아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상회를 여기까지 만들고, 여러 상업활동이나 사회 전반적인 활동을 벌이는 상회를 만든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러 나오는 것은 상인으로써 당연한 마음가짐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나미아는 생긋 웃으며 그의 칭찬을 받아들였다.

    ??고마워. 자네는 정말로 상인이군?”

    ??하하핫.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장님께 상인이라는 소릴 들으니 기쁘군요. 그래도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겸손함은 최고의 미덕이야. 앞으로도 렌디너스의 상회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혹시라도 일 그만두고 다른 거 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말해. 개인적으로 전폭 지원해줄 테니까. 기왕이면 이대로 상회에 계속 남아 있어줬으면 싶지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켈라인상회에서 뼈를 묻고 싶습니다. 제 인생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까요.”

    ??그래? 하지만 상회 건물에 무덤을 만드는 건 좀….”

    ??예?”

    다도린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미아는 평온한 표정을 차를 마실 뿐이었다. 그가 나미아의 말이 무슨 뜻일까 심각하게 고민할지를 생각하던 때 지부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똑똑똑.

    ??지부장님. 말씀하셨던 보고서를 가져왔습니다.”

    ??아, 가지고 들어오게.”

    나미아와 오디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문으로 향했고, 그 시선에 반응하듯 문이 열리면서 품에 웬 책을 한 권 들 남성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잠시 지부장석에 앉아 있는 나미아와 그 옆에 시립 해 있는 오디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 다음 다도린에게 책을 내밀었다.

    ??제이슨 하이윈 뉴먼 백작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그의 인적사항과 가족관계, 금융평가서, 상회이용도, 주변 평판 등을 중점으로 모아봤습니다.”

    ??수고했네. 아, 자네도 인사하게. 저기 계신 분이 우리 상회의 회장이신 나미아님이시고, 그 옆에는 총무 오디님일세.”

    다도린의 소개에 책―모양의 보고서들―을 가지고 온 남자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나미아와 오디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말했다.

    ??그, 그렇습니까?! 실례했습니다! 좀 전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아냐, 아냐. 무례는 무슨. 당신 정보부 사람이야?”

    ??예! 이켈라인상회 디렌너스 지부 정보부 보안 3과에 근무하고 있는 잭 니콜입니다!”

    ??그래, 잭. 수고했어. 그리고 정보부 사람들에게 나 대신 수고했다고 전해줘.”

    ??예! 영광입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잭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지부장실을 나갔다. 그리고서 한참 뒤에 달려가는 발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문 앞에서 한참동안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미아는 잭의 발소리가 멀어져가자 방긋 웃고는 다도린에게 말했다.

    ??정보부에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있나봐?”

    ??하하, 회장님의 존재를 처음 뵈니까 그런가봅니다. 아무튼 오늘 정보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겠군요. 단체로 회식이라도 갈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회식비는 상회에서 대줘. 내가 직접 가줄까? 아냐. 일반 사원들 있는 곳에 괜히 높은 사람 가면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거야. 아무튼 여기로 온 목적이나 해결하지. 그게 보고서야?”

    ??예. 정보부 직원들이 꽤나 신경 써서 만들었나봅니다.”

    다도린은 깔끔한 활자인쇄로 만들어진 보고서에다가 책등을 실로 붙이고 아교를 덧대어 세심하게 만든 것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다도린은 그것을 나미아에게 건네주었고, 나미아도 다도린처럼 책을 주욱 훑어보았다.

    ??헤에, 정말이네. 책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안 들어가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이네. 거의 200페이지는 될 듯한 보고서를 3일 만에 참 잘도 만들었군.”

    ??소문에 듣자 하니 철야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가서 일일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기분일걸. 너무 기특하잖아? 아무튼 고마워. 나중에 필요한 것 있으면 다시 올 테니까. 아, 일 끝날 때까지 저 사람 빌려줄 수 있어? 비서 일은 오디가 전부 하지만 아무래도 상회간의 접점정도는 필요하니까 말이야.”

    베닌은 즉흥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생각의 희생양으로 지적당하자 흠칫 놀라면서 다도린과 나미아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다도린을 보는 그녀의 눈에는 제발 자신을 이런 거물급 인사와 함께 하게 해서 말라죽게 하지 말라는 강력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다도린은 그런 그녀의 눈에서 맡겨만 주신다면 책임지고 끝까지 해보겠다는 열의를 읽었다.

    다도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상회의 사람 모두가 회장님의 사람인걸요. 잘 가르쳐주십시오.”

    ??그래, 고마워. 있다가 이 사람한테 연락처 쥐어서 보낼게. 그럼 난 이만 간다. 오디, 나가자. 그리고 베닌이라고 했지? 잘 부탁해.”

    ??아, 예에…….”

    베닌은 고개를 푹 숙이면서 힘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나미아와 오디의 뒤를 따가 힘없이 걸어 나가면서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다도린을 쳐다보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다도린은 그런 베닌의 표정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저렇게까지 의지를 불태울 줄이야. 상회의 인재도 상당히 쓸 만하군.”

    사람의 의사소통에서 언어가 제외되면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주는 경우이다.

    후일, 베닌이 말하길 흡족해하는 다도린의 모습에서는 노련한 상인의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데린너스 중심에는 렌디너스 왕실의 궁전이 있다. 그리고 그 궁전을 축으로 삼아 여섯 방향으로 구역을 나눈 뒤에 그것들을 다시 가로로 쪼갠 것이 디렌너스의 모습이다. 그것을 위에서 보면 단단한 돌과 석회로 자아낸 거미줄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총 36개 구역으로 나뉜 데린너스는 왕궁의 북쪽 제일 끝은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구역 번호를 매겨서 행정을 담당하게 한다. 바깥쪽으로 갈수록 넓어지고,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점차 좁아지는 구조이고, 왕궁 가까이에는 대개 부유층의 집이 있기 마련이다.

    왕궁을 둘러싸듯 접해 있는 31번에서 36번까지의 구역을 제외하고는 18번에서 24번 구역까지는 대개 부유층이나 권력자들의 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구역들의 상가나 상점 역시 고급 물건을 사고팔고 있고, 돌아다니는 사람의 옷감마저도 틀리다고 할 정도이다.

    그중에서 22구역에 있는 “이데른 여관”은 데린너스의 모든 여관 중에서도 최고급을 자랑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주로 렌디너스 왕실에 용무가 있어서 온 사신이나 왕실과 거래하는 거대 상인들을 비롯한 재력, 권력, 기타 힘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곳이다. 8층이라는 렌디너스 여관 역사상 최고의 높이에, 높은 건물의 건축에 쓰이는 운반용 승강기를 개조하여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승강기―말과 소, 때로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인다―까지 갖춘 초호화 여관이다.

    ??헤에. 확실히 화려하군. 오히려 지저분해 보인다.”

    ??심미안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

    나미아는 그중에서도 8층의 최고급 스위트룸에 턱하니 들어가서 주름 하나 없는 침대 위로 폭삭 주저앉았고, 오디는 소파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서는 창문을 열었다. 압도적으로 높은 건물 높이에 시가지가 한눈에 다 보였다.

    베닌은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나미아와 오디와는 달리 이런 황송스럽기까지 한 곳에 와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문에서 약간 비켜선 채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침대에 드러누워 뭉그적거리던 나미아는 그런 베닌을 보면서 말했다.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편히 쉬어. 나중에 바빠지면 쉴 틈도 없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원래가 경비 직원이었고, 렌디너스 육군 사관학교까지 나온 전적을 가지고 있는 베닌 프라이슈는 마치 장교 딱지를 달기 전처럼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나미아는 약간 재미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우리 상회도 본격적으로 체인 숙박업이나 해볼까?”

    ??예? 갑자기 왜요?”

    ??아니, 우리하고 장기 계약한 건설회사도 많고, 여러 나라 자본가들하고 친하니까 이참에 체인 규모로 여관업을 해보면 괜찮겠다 싶어서.”

    여관을 둘러보면서 즉흥적으로 꺼낸 말이라는 것을 짐작한 오디는 조금 생각하는 체를 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내버려둬요. 판매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업종변경이니까 행정 처리하려면 나름대로 골치 아파요. 자회사를 두는 것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요. 이쪽 시장에 물건 대는 것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저희가 사업에 끼어들게 되면 아마 이런 쪽의 매출은 격감할걸요.”

    ??그렇겠지? 뭐, 어차피 우리가 서비스 업종도 아니니까. 그냥 물건 대는 것으로 만족하지. 그런데 여기도 우리가 물건 대고 있어?”

    ??아마 여기에 대해선 식료품을 비롯한 소모품 일체를 저희 상회가 책임지는 것으로 되어 있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여기 공사할 때 인력을 파견한 적이 있네요.”

    오디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결산처리서와 보고서를 떠올리면서 나미아에게 대답했다. 나미아는 잠시 턱을 괴면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장사를 하고 있는 건데 괜히 여관업계에 진출해서 이런 대어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흠, 그렇군. 역시 여관업계에 투신하는 건 그만둬야겠어. 잘못 투신하다가는 땅바닥과 충돌해 죽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상회재력이면 떨어지는데 꽤 걸릴 거예요.”

    ??그건 그래. 대륙에 깔린 금화만 해도 몇 장인데.”

    베닌은 평소에 생각해오던 상회의 운영회의의 이미지가 서서히 깨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상회의 주인과 그 총무가 나누는 이야기의 어조는 너무나도 가벼웠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상회를 심심풀이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녀는 이 참에 진지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대체 나미아가 무슨 이유로 상회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녀의 평소 태도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저… 회장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응? 뭔데?”

    ??상회를 만드신 이유가… 뭔가요?”

    ??에?”

    나미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오디 역시 고개를 약간 갸웃 하면서 같은 의문을 담고 베닌을 바라보았다. 그 두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던 베닌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서 다시 말했다.

    ??상회가 점차 커져서 전 대륙에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겪으시는 바와 같이 매우 큰 영향력도 있고요. 이런 거대 상회를 만드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저기… 그러니까… 회장님의 태도가 너무 가벼워 보여서요. 한 상회를 대표하는 주인 같지 않게… 경망스러워 보여요.”

    베닌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고, 금방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아아! 너무나 거대한 분위기에 짓눌려서 잘못 새어나온 말이야! 난 혹시 바보인 거야?!

    금방이라도 나미아의 “넌 해고야!”라는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베닌의 귓속으로 들어온 소리는 의외로 폭발 같은 웃음 소리였다.

    ??푸하하하! 아하하핫! 오, 오디! 들었어? 응? 꺄하하하하하! 야아. 놀랍다! 아직까지도 자기 의견을 이렇게 선뜻 말하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어!”

    ??그러게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에? 예? 저기… 대체…?”

    나미아는 당황하는 베닌을 보면서 한참동안 깔깔대고 웃었다. 오디는 살포시 조용한 웃음을 얼굴에 띠었고, 베닌은 두 사람이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자 조금 전보다 더 혼란에 빠질 것 같았다. 베닌이 당장 엎드려서 잘못했다고 빌까 심각한 갈등에 빠져 있을 무렵, 나미아가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와하…. 아, 간만에 유쾌한데? 나에게 그런 식으로 당돌한 질문을 해온 사람은 몇 안 되거든. 의외로 강단 있는 성격이구나?”

    ??예? 아니, 그런 것은…….”

    ??아냐, 아냐. 괜찮아. 뭐, 일단 질문에 대답은 할게. 사실 난 이런 거대 상회는 조직할 생각 없었어.”

    ??예?”

    베닌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미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 상회는 프레빌의 상점으로 시작했어. 그건 너도 알지? 상회의 중요 역사 정도는 가르칠 테니까 말이야.”

    ??아, 예. 작은 상점이었다가 점차 커졌다고…….”

    ??그래, 거래하는 물건도 특이했었으니까. 단기간에 많이도 컸어.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가 의도하고 한 게 아냐. 그냥 난 상점 열고 장사를 한 것뿐인데, 사람들의 입소문이 퍼져서 가게가 커졌고, 지부를 만들자는 투자협상이 있어서 그에 응하고, 아는 사람들의 힘을 빌려서 새로운 분야 진출도 좀 하고. 사실 내가 전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던 것은 처음 100년 정도야. 그 뒤에 나는 일선에서 빠지고 알아서 굴러가게 내버려두었더니 눈 덮인 산 위에서 눈덩이를 굴린 꼴이 되던 걸?”

    ??그, 그래요?”

    ??그렇다니까. 너무 커져서 내가 조직개편 몇 개 하고, 사업 몇 개하고, 그리고 돈을 받아먹지. 내가 하는 일은 이런 거야. 오디야 워낙에 책임감이 강해서 아직도 총무일을 하고 있지만.”

    ??나미아님의 책임감이 결여된 거예요.”

    오디의 조용한 지적에 나미아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흘려버렸다. 그러고서 베닌을 보자 그녀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나미아는 자신의 대답에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는 베닌을 건져내고자 그녀에게 말했다.

    ??베닌. 상회의 궁극적 목적은 뭐라고 생각해?”

    ??상회의… 목적이오?”

    ??그래, 상회는 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궁극적인 목적 말이야.”

    ??에… 그러니까… 돈을 위해서?”

    자신 없는 표정으로 대답한 베닌에 말에 나미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바로 그거야. 돈을 벌기 위해서지. 혹자는 경제 구조의 해소나 새로운 문화의 창조 어쩌고 하는데, 전부 개소리야. 상회는 ”돈을 벌기 위한 집단??이야. 단체야. 돈을 버는 것에 그 의의를 둔다. 그리고 돈을 어디다 쓸 건지는 상회의 자유. 아무튼, 목적은 돈이지. 나 역시 마찬가지야. 돈 되는 길을 찾아서 오다보니까 상점이 상회가 되고, 그 상회가 점점 커지더라고.”

    ??그렇…군요. 그럼 회장님은 상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세요?”

    ??생각이라……. 사실 별생각 없어.”

    ??예에?!”

    ??그렇잖아? 돈벌기 위해서 만든 거야.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잖아? 뭐, 자랑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데, 나에게 있어선 내가 가진 많은 것들 중에서 약간 큰 것 하나에 불과해.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회장 자리를 양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별생각 없기는 한데, 책임은 끝까지 질 생각이야. 무슨 일이 있든 상회와 직원은 지켜야지.”

    나미아의 말투는 여전히 대수롭잖은 것을 이야기하는 식이었지만 베닌은 상당히 감격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든 책임은 진다는 말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말이었다. 특히 이런 거대 상회의 회장일수록 모든 것을 떠안겠다는 식의 말은 위험하다. 나미아는 너무나도 가볍지만 믿음직스럽게 말해 베닌을 감격시켰다.

    나미아는 베닌의 표정을 보고는 이만하면 대답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했다. 이 정도라면 이번 일에서 믿고 여러 심부름 같은 것을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섰다. 대충 문제가 해결된 듯해서 나미아는 슬슬 보고서를 읽어보기로 했다.

    ??자, 그건 그렇고. 할 일도 없으니 보고서나 읽어볼까.”

    ??예, 잠시만요.”

    오디가 가방을 열어서 보고서를 꺼내는 사이 나미아는 열려져 있는 창문으로 렌디너스 왕궁과 시가지를 보며 레이라인이 언제쯤 돌아올 것인지 궁금해졌다. 집에서 상태만 본 뒤에 곧장 예약되어 있는 이곳 스위트룸으로 오기로 했는데, 한참 시간이 더 걸리고 있는 것이다.

    ??뭐, 알아서 오겠지.”

    ??여기 보고서요.”

    ??아, 고마워.”

    레이라인이 오기 전에 보고서를 읽고 대략적인 계획을 짜야 한다는 생각에 나미아는 오디가 내밀 보고서는 꺼내 들고 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보고서에 목차까지 있어?”

    그나마 글쓴이의 말이 없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데린너스에 들어온 뒤로 레이라인은 나미아와 나중에 만날 약속을 잡고서는 자신의 육체가 있는 뉴먼 백작의 집으로 향했다. 행인들이 다가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의 느낌을 따라 일직선으로 걸었다.

    어차피 영체인 그녀를 누군가가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고, 영체가 된 뒤로 한 달가량 지냈기 때문에 그녀는 지금 상황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편이었다. 더불어서 언제 육체가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허… 거참, 어째서 눈을 못 뜨는 건지 알 수 없군요.”

    ??그런가요. 몸 상태는 어떤지?”

    ??몸 상태는 많이 나았습니다. 누워 있으니 좀 마른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독소도 거의 다 제거되었고… 남은 것은 의식인데 말이죠. 허허.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반백의 의사는 청진기를 가방 안으로 집어넣고는 가방을 닫았다. 약간 말라 보이는 체격의 의사의 몸이 휘청하는 것처럼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라인의 계모인 비앙키 뉴먼은 짐짓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아이가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예.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틀 뒤에 또 뵈어요.”

    비앙키는 나가는 의사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였고, 의사는 마주 목례하고서 방을 나갔다. 그러자 그때까지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지겹다는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입에서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어조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휴우. 대체 왜 아직도 안 죽는 거야? 그리고 점점 좋아진다니, 무슨 수를 써야겠어.”

    비앙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서는 곤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것 같은 레이라인의 육체로 다가갔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비스듬하게 레이라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것아. 네가 죽는 것이 더 편하다는 걸 모르냐? 너나 그 시골에 처박힌 네 가족한테나 말이야. 쓸데없이 명줄은 길어 가지고……. 이걸 그냥 죽일 수도 없고.”

    레이라인의 육체는 가만히 있었지만 그 옆에서 그 말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영체는 얼굴을 파악 일그러뜨렸다. 그녀는 손을 휘저어서 비앙키의 뺨을 때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손은 허무하게 비앙키의 뺨으로 스며들듯이 들어가서는 반대쪽으로 나왔다. 비앙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레이라인의 육체를 노려보다가 입술을 한번 삐죽거리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안 계신가?”

    보통 진찰 때는 그녀의 아버지인 뉴먼 백작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어디론가 나갔을 확률이 제일 높았다. 레이라인은 고르세 숨을 쉬고 있지만 오랜 침대 생활과 링거액만의 불균형적인 영양섭취 때문에 상당히 수척해진 얼굴은 창백했다.

    그녀는 영체의 손을 보았다. 그녀가 쓰러질 당시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인지 통통하고 보기도 좋았지만 담요 위로 나와 있는 그녀의 손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담요를 들어 올려 제대로 덮어주려고 했지만, 실체가 아닌 손에 담요가 잡힐 리가 만무했다.

    레이라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더 이상 있어봤자 아무런 할 일도 없었다. 나미아와 헤어지고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육체를 봐왔다. 아무런 반응 없이, 마치 죽은 듯이 조용히 자고 있는 육체를. 그야말로 혼이 나가 있는 육체를.

    육체에 들어가려고 수없이도 몸을 겹쳐 보았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자꾸만 튕겨져 나왔다. 그녀는 아직도 몸 안에서 독소가 마저 빠져나오지 않은 탓이라고 여겼다. 의사의 말을 들어봤을 때도 몸 안에 여독이 남아 있어 영체의 귀환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햇살은 따스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자극도 느낄 수 없었다. 주변으로 바람이 흩어져감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 한 올 날리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영체라는 것을 이해하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원의 관목들을 아무렇게나 뚫고 지나서 높게 솟은 담을 통과하면 깔끔한 포석이 깔려 있는 길이 나온다.

    그녀의 몸을 뚫듯이 마차가 세차게 지나갔지만 그녀는 이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현재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22구역이라. 여기하고는 정반대잖아.”

    그녀는 길 한가운데 서서 두리번거렸다. 마차를 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같이 타고 갈 수도 있다. 보통은 영체들이 날아다닌다고 하지만, 그녀는 여태까지 날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힐텐펜스로 갈 때도 비공정 정류장에서 시간표에 맞춰 비공정을 타야만 했다.

    ??22구역 24번지로.”

    ??예잇! 알겠습니다!”

    때마침 바로 앞 10야드쯤에서 어떤 남자가 마차를 잡아타는 것을 본 레이라인은 재빨리 마차 위 지붕으로 기어올라갔다. 아무리 마차가 빨리 지나가더라도 위에서 떨어질 염려도 없었다. 레이라인은 생긋 웃고는 지붕 위에서 꼿꼿이 서서 점차 빠르게 옆으로 지나가는 시가지를 보았다. 나미아가 자신의 의뢰를 들어주면 이제 더 이상 이곳을 볼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한눈에 담아두려고 했다. 더 이상 볼일이 없으니 마지막으로나마 확실하게 봐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레이라인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가지를 보며 크게, 자기 자신마저도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난! 여기가! 싫어―!”

    아무에게도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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