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3: 계략과 흉계 (5/49)

Part3: 계략과 흉계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력 435년 6월 4일.

한스가 눈을 뜨자 그곳에는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뭐지…? 으윽!”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온몸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통증이 쇄도하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도로 누워버렸다. 그제야 그는 어제의 기억이 끊기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괴한들의 고아원 난입과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분투한 일. 그러다가 그 두목 같은 흉터 남자에게 얻어터지고는 먼지 나게 짓밟힌 일들이 생각났다.

??대체… 왜 고아원에 쳐들어온 거지?”

이유를 모를 침입은 아이들에게 공포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아들과 함께 지내보면서 느낀 것인데, 그 아이들은 정말 꿋꿋하고 착하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웨일즈와 고아원을 의지할 대로 의지하고 있어서 고아원에서 내몰리면 어디로 갈 데가 없었다.

벌컥.

??한스, 일어났어?”

??예에…….”

나미아는 한스의 방으로 들어와서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과 내리쬐는 햇살이 눈부셨다. 오늘도 한스의 심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씨가 될 것 같았다.

??아아, 정말이지 깜짝 놀랐어. 웨일즈 씨에게 업혀서 들어오는 한스의 모습 말이야.”

??그, 그래요? 폐를 끼쳐드렸네요….”

??그건 그렇고, 깡패들한테 당했다며?”

??에, 예에. 죄송합니다. 기껏 가르쳐주셨는데…….”

한스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고, 나미아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 겨우 한두 달 훈련해서 강해진다면 인간이 고생할 이유가 어디 있겠니. 네가 당하는 건 당연해. 당연한 일에는 미안할 필요 없고.”

??저기, 그거… 위로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설픈 위로나마 받고 싶은 기분도 없었다. 나미아의 생각에서 그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때문에 이 일은 화를 낼 일도, 위로를 할 일도 아닌 것이다. 나미아는 한스가 누워 있는 침대의 끄트머리에 살짝 엉덩이를 걸쳤다.

??생각해보니 너한테 그 고아원 사정을 알려준다는 걸 깜빡했었어.”

??예? 무슨 사정인데요?”

나미아는 잠시 손가락으로 탐스러운 붉은 머리를 베베 꼬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스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 순간 덜컹했지만 그녀의 표정이 그 사정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사정이기에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다. 한스의 궁금증이 끊임없이 증폭되어갈 때쯤 나미아가 입을 열었다.

??모 신전의 모 유력인사가 모 시청 간부의 청탁을 받아 현재 고아원이 있는 블록의 재개발을 추진하려 하고 있지. 실행된다면 막대한 예산이 집행되고, 그 지역을 선택하게 만든 모 신전의 모 유력인사에게 상당한 이권이 떨어지게 된단 말이야. 그런데 그 모 신전의 영향력은 이 도시에서 상당히 높아. 그들의 말이라면 시청에서도 재개발 지역을 선정하는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어.”

??예? 그, 그런 일이… 그런데 그 일이 웨일즈 씨의 고아원과 무슨 관계가 있죠? 아무리 그래도 단순히 선정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뿐인데…?”

??쯔쯔, 한스. 생각을 해봐. 이건 지방정부에서 행하는 사업이고,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일이란 말이야. 지역의 경제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되기 때문에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게 돼. 하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강제퇴거를 명하기 때문에 보상금과 재개발이 끝나고서 주택 우선 분양의 혜택을 준단 말이야. 그리고 재개발된 지역에 지어진 주택의 가격은 재개발 이전에 비하면 천지차이지. 그래서 재개발 사업이 발표되면 보통은 그 지역을 떠나지 않고서 분양권을 받는 것이 시대의 대세야. 그런데 재개발 사업이 발표되기 이전에 재개발이 될 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가격으로 땅을 사들이면? 그 사들인 사람은 통상 몇 배의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일까?”

나미아의 설명으로 한스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듯싶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던 땅이 순식간에 금덩이로 변하는 것이고, 그 곳에 최대한 많은 우선권을 점유하게 되여 몇 배에서 몇 십 배에 달하는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었다.

한스는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런…! 그게 사실이에요?”

??그래. 게다가 워낙 그곳의 땅값이 싸니까 시세차익이 몇 십 배에 달할걸.”

??말도 안 돼요! 신관이 그런 일을 한다고요?! 그것도 안스란의?!”

??뭐, 신전이 타락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있어. 그런 검은 잉크 같은 녀석이. 꼭 그런 놈이 맑은 물에 들어가서 전체를 다 오염시킨다니까. 아무튼, 웨일즈 씨의 고아원은 주변에 비해서 차지한 땅도 많거니와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고아들뿐이거든. 훌륭한 타깃이지. 그러니까 폭력배를 시켜서 협박을 하는 거야. 물론 이것은 그냥 보기에는 빈민가 폭력배들의 행패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나미아의 심드렁한 태도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한스는 금세 분노에 어이가 없어졌을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존재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이유 모를 행패라고만 어림짐작했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 그러면 이건 신고해야 하잖아요?!”

??어디에?”

??그, 시의 치안대 같은 곳에…….”

??안타깝지만 신성불가침이라는 별 이상한 법규가 있어서 말이지. 신전의 일은 신전에서 처리하라는 거야. 그리고 현재 모 신전에서는 그 일을 모르고 있지.”

??아아, 그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네?”

나미아는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단순한 깡패집단의 의한 행패라면 힘으로 저항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힘이 통하지도 않는 일 아닌가? 한스는 나미아마저도 방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자 더더욱 절망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나미아는 그런 한스를 보며 말했다.

??흐음, 별로 강해진 것 같지 않잖아.”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깡패들은 더 강해요. 하물며 신전의 간부라니…!”

??아니. 내가 말하는 건 말이지, 여기야.”

나미아는 손가락을 뻗어서 붕대가 둘둘 감긴 한스의 가슴을 톡톡 건드렸다. 한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되물었다.

??가슴…이오?”

??아니, 마음. 여전히 약해빠졌구나. 대체 한 달 동안 무인도에서 뭘 배운 거야. 이래가지고는 보람이고 뭐고 없잖아.”

??예…에? 무슨 말씀이신지…?”

??아아! 모르면 됐어! 마법 걸어서 치료해주려고 했는데, 그냥 내버려두련다. 한 삼 일 지나면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저 링거(Ringer) 보이지? 저게 네 식사다.”

나미아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투명한 색상의 액체가 가득 담긴 링거가 지지대에 걸려 있었다. 한스는 비로소 자신의 팔에 꽂혀 있는 링거 바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잠깐만요. 삼 일이라뇨? 고아원에 그 깡패들이 들어가 무슨 난리를 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네가 가면 막을 수나 있다는 거야? 네가 죽어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시끄러우니까 입 다물고 잠이나 자.”

??그, 그래도…! 나미아 씨!”

??시끄럽다니까! 슬립(Sleep)!”

나미아가 외친 마법주문에 의해 나미아를 부르려던 한스는 눈이 스스륵 감기더니 이내 잠들고 말았다. 주문의 강도를 조금 강력하게 걸었으니 삼 일간은 그대로 곯아떨어질 것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나미아는 목을 좌우로 우득 소리 나게 꺾고는 손가락 마디마디도 소리 나게 꺾어서 몸을 풀었다. 한스가 잠든 사이 해결해야 했다.

??그나저나 하인츠 오빠는 뭘 하고 있는 거야? 하여튼 윗대가리가 너무 착하니까 아랫것들이 지랄을 떨지.”

한 교단의 최고 우두머리를 겨냥하여 결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은 나미아는 오디를 소리 높여 불렀다.

??오디―! 잠깐 외출하자!”

??예엣!”

잠시 후,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두 절세미녀가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힐텐펜스의 안스란 신전은 지금으로부터 440년 전에 벌어진 전대미문의 연유를 모를 사건인 “성녀의 날”에 생겨난 높이 200야드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를 둘러싸는 건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여신수”라 불리는 이 나무는 대륙을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품종이었고, 무수한 사람들이 이 나무의 가지를 얻어가 키우려 애썼지만 안스란교의 최고사제인 하인츠가 직접 “펜힐” 마을에 심은 가지가 나무가 된 것 이외에는 다른 지역에서 전혀 자라지 않고 있었다. 수많은 식물학자와 신학자들이 여신수의 비밀을 풀려고 애썼지만, 그렇게 쉽사리 풀릴 만한 비밀이었으면 대륙의 불가사의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여신수는 많은 순례자들에게는 안스란교의 살아 있는 증거이며, 신성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나무의 주변을 둘러싸고 신전을 지었기 때문에 나무의 생장에 상당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 같았지만, 많은 교인들이 이야기하듯 안스란의 힘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 있는 나무는 인간의 지식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생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이 안스란의 총본산인 “그랜드 트리”이다.

??저 나무는 언제 봐도 일조권 침해야.”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다가는 칼침 맞아요.”

??흥, 찌를 사람 있으면 찔러보라지.”

순례자들의 사이를 지나가는 두 명의 여성은 신성모독의 죄를 거리낌 없이 범하는 이야기를 하며 안스란의 신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록 그녀들의 모습이 로브를 뒤집어써서 다른 이들에게 얼굴을 들킬 염려가 없다고 할지라도 누군가 정확하게 들은 순간 그녀들에게 살기가 어린 욕설과 무기가 덩어리로 날아들 것이었다.

보통 순례자들은 여신수의 동쪽에 있는 대예배당(大禮拜堂)으로 들어가서 여신수가 있는 신전 내부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신수를 알현(!)하게 되는데, 안스란의 신자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 거쳐야 하는 관례쯤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 두 여성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신관들의 전용 출입구인 남쪽의 건물로 방향을 바꾸었다.

??나미아님, 어떻게 들어가실 거예요?”

??걸어서.”

??저도 걷는 줄은 알아요. 하지만 신관도 아닌데 어떻게 들어가시려고요?”

??하인츠 오빠하고 약속이 되어 있거든. 신전 입구를 지키는 녀석들이 돌대가리가 아닌 이상 들여보내 줄 거야.”

오디는 그런가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의 개점일에 하인츠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신전 출입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았다.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은 순례자들 사이에서도 흔한 모습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여러 사람이 몰려들기 때문에 힐텐펜스는 일종의 국제도시와도 같아서 아무리 이상한 의상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다지 눈길을 받지 못한다. 하물며 보통의 로브를 뒤집어 쓴 모습이야 흔한 광경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안스란 신전의 남쪽 출입구를 관리하는 신관이 점잖게 그들을 제지하며 인자한 웃음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룩한 진실이 함께 하기를. 순례자의 입장은 동쪽 대 예배당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참혹한 진실 아래 짓밟히는 여신의 목소리는 애달픈 것이죠.”

나미아의 말에 인자하게 웃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종파 내에서 한번도 유출된 적 없는 안스란교의 비밀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문 앞을 지키던 신관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예의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원로 신관님을 뵙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죠.”

그는 다른 동료 신관을 불러 입구를 지키게 한 다음 그녀를 안내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의 존재는 대외적으로 “순례 신관”이라고 설명될 것이다. 물론 그 이상의 존재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지만 따로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라 할지라도 종파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는 않을 것이다.

??순례자의 수는 여전하군요.”

??다 여신의 영광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관님들의 서글픈 미소는 안스란력 원년(元年)서부터 변하지 않았더군요.”

??거대한 진실에 접한 가련한 존재일 뿐입니다.”

앞서가는 신관의 뒤를 따라가며 안스란은 역시 그들과 같은 서글픈 미소를 띠웠다.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안스란의 이야기는 참혹한 음모에 휘말린 한 소녀의 피맺힌 이야기였다. 다른 이들이 이야기하는 거룩함이나 신성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일이었다.

안스란의 총본산은 여느 신전의 총본산의 그렇듯이 거대했다. 가장 많은 수련생들과 가장 많은 신관을 보유하고, 가장 많은 순례자, 참배객(參拜客)이 찾아오기 때문에 거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신전의 안쪽으로 점점 파고 들어가 고위급 신관이 아니면 들어올 수도 없는 곳까지 안내된 나미아는 커다란 원목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여기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여신의 광휘(光輝)가 함께 하시길.”

??여신의 광휘가 함께 하시길.”

신관이 뒤를 돌아 걸어 나가고, 나미아는 로브를 벗어서 얼굴을 드러내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누가 그녀의 얼굴을 볼 일은 없었다. 설사 본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그럴 자격 내지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오디 역시 로브를 걷어서 얼굴을 드러내고는 문으로 다가가 그것을 밀었다. 그녀들에 힘에 비하면 문이 가진 저항쯤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문은 너무나도 가볍게 열리게 되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의 건너편에는 커다란 창문으로 여신수의 줄기가 보이고 있었고, 그 앞에는 백발이 성성한 신관이 책상 앞에 앉아서 집무를 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서는 예의 그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고 신관님이 잠시 기다리라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문을 닫아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지요. 오디, 문 닫아.”

나미아는 안으로 걸어 들어왔고, 그녀의 뒤를 따라 오디가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 육중한 소리에 비해 너무나도 가볍게 문이 닫혔다.

상당한 거리가 있는 문과 책상 사이를 걸어간 나미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백발의 신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서 그의 젊은 날을 찾아보던 나미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원로 신관이 되었군. 슬슬 신의 부르심을 받을 때도 되지 않았나?”

갑작스러운 하대였지만 신관은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80년 전 보다 많이 늙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나미아 누님은 전혀 늙지도 않으셨군요.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오디 누님도 그렇고요.”

??누님 소리는 관둬.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한테 누님소리 들으려니 거북해.”

나미아는 손을 휘저으면서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한 종파의 원로 신관 앞에서 하는 행동 치고는 무례하기 그지없었지만 오디는 물론 원로 신관마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하인츠 오빠는 뭐 하고 있어? 귀환하신 지 벌써 두 달 가까이 되지 않았어?”

??그분이야 그분의 일을 하고 계시겠지요. 잠시 후에 오신다고 언질을 주셨으니 곧 올 것 같습니다.”

??흐음…. 많이 점잖아졌네? 누가 보면 왕년의 제라크가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할 거야.”

??누님이 그렇게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이도 들고 증손자까지 생겼으니 점잖지 않아질 수가 없지요. 이래봬도 한 종파의 원로입니다.”

제라크의 말에 나미아는 피식 웃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80년 전이었고, 그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젊었을 때였다. 젊은 날의 혈기가 아직까지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 어깨 위에 얹혀진 것들이 점차 늘어나 서서히 변화한 것이다. 언제까지고 젊은 날의 패기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어쨌든 그 누님 소리를 좀 빼봐.”

??언제 또 찾아오실 줄 알고 호칭을 바꾸겠습니까. 어려운 말씀하지 마세요.”

??쳇, 그 고집은 여전하군. 사람에게 말하는 방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나미아는 책상에서 내려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소파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오디도 조용히 따라가서 그 옆에 다소곳하게 앉았고, 나미아는 등을 소파에 파묻은 다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했다.

??종파 내부는 어때? 조금 시끄럽지 않아?”

??제가 처음 들어올 때보다는 많이 변했지요. 변질된 듯한 느낌도 들어서 문제입니다. 위치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하긴, 그럴 것 같았어.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까. 인간의 집단 속에서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지.”

??누님께서는 뭔가 고견이라도 들고 오셨습니까? 누님의 방법은 다소 강압적이고 강제적이긴 하지만 결과만큼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나미아는 피식 웃으면서 제라크를 보았다. 자신이 찾아온 이상 뭔가 실마리라도 들고 온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 없이 그녀가 하릴없이 찾아오지는 않지만.

??하인츠 오빠 오면.”

??아아. 감사합니다, 누님. 누님 덕분에 저희 종파는 닥쳐올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됐어. 안스란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인츠 오빠를 위해서야.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내가 해결해야 할 일도 있어. 아래에서 일일이 캐가는 것이 귀찮으니까 이곳으로 온 것뿐이야. 인력도 충분하고,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니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런 격장지계(激將之計)에 넘어갔겠지만 저는 다르다는 걸 아셔야지요. 누님의 착한 성정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제라크의 말에 나미아는 볼을 긁적거리면서 그의 시선을 피했고, 옆에서 오디가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나미아는 어지간해서는 큰 대가 없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는 틱틱거리는 말투로 자신의 공을 깎아 내린다. 생색내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라서 그녀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착함을 잘 알고 있다.

??아, 아무튼! 오빠는 왜 이렇게 안 온담!”

나미아는 붉어진 얼굴을 들키기 싫다는 듯 고개를 팩 돌려버렸고, 제라크와 오디는 그런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고 있을 때, 나미아와 오디가 앉아 있는 소파의 뒷문이 열리면서 하인츠가 평상복 차림으로 여유 있게 걸어 들어왔다. 갈색의 가죽바지에 흰색 면 셔츠를 입고서 걸어 나오는 모습은 한 교단의 최고 신관이라는 말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평범한 모습이었다.

??늦어서 미안. 가게는 잘돼?”

??얼마 전에 첫 특별손님을 받았어요. 아직 의뢰는 진행 중이고요.”

??안녕하셨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며 인사를 생략하는 나미아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오디에게 하인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건너편 소파에 앉아서 편하게 등을 기대었다. 그의 뒤로 제라크가 당당하게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인츠는 난처하게 웃는 얼굴로 제라크에게 말했다.

??제라크, 좀 앉지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편히 이야기 나누시죠.”

제라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딱딱하게 굳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미아나 오디가 보기에도 백발이 무성한 노인이 그렇게 바짝 기가 들어서 있는 모습은 왠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하인츠는 자신을 대하는 신전 사람들의 태도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신경을 끊었고, 나미아나 오디 역시 알고 있는 것이 같기에 행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라크에게서 끊은 신경을 나미아와 오디에게 맞춘 하인츠는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그녀들에게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너희들의 일이니까 꽤나 복잡한 사정이겠지?”

??아아, 뭐어. 정말 그렇게 보여요? 우리라고 만날 복잡한 문제만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정말. 부우!”

나미아는 팔짱을 끼면서 볼을 부풀렸다. 하인츠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나미아의 반응에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그래, 미안해. 그래서 무슨 일인데? 우리 교단과 관계된 일이야?”

??예. 조사한 건 오디예요. 오디, 말씀드려.”

??아, 네. 그럼 지금부터 설명해드릴게요.”

오디는 몇 가지 서류를 하인츠에게 내밀면서 신전의 모 유력인사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빈민가의 일에 대해 설명했다. 힐텐펜스 자치정부에서 벌이려고 하는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그것에 부당한 방법으로 끼어들어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고 하는 신관의 이야기를 들은 제라크는 금세 발끈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 신관이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을…!”

??아니. 참아요, 제라크. 어느 신전이든 그런 존재가 꼭 한둘쯤 있으니까요. 여신께 자신의 마음을 맡기지 못하고 인세의 욕망에 혹한 자입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너희는 그런 정보를 대체 어디에서 얻었니?”

나미아도 그것이 궁금하다는 듯 오디를 바라보았고, 오디는 정녕 나미아가 자신을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것에 당황했다. 나미아는 그런 오디의 눈빛에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응? 오디.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하아…. 아니에요. 단지 나미아님이 만드신 상회의 정보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궁금해서요.”

??아, 걔네? 난 그저 각종 로비 비용이 아까워서 뇌물 받아먹는 인간들 고발조치해서 퇴직시키려는 목적의 뒷조사를 위해 모은 애들인데? 그리고 만든 지가 벌써 200년도 넘었잖아?”

??그 200년 동안 조직이 자체적으로 진화했어요. 하긴 나미아님이 주물럭대지 않아서 긍정적인 성장을 이루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나미아님이 만들고도 잊어버린 그 사람들이 가져온 정보예요.”

??우씨…. 매일 나만 갖고 뭐라 그래.”

나미아는 대놓고 자신을 구박하는 오디의 태도에 구시렁거렸지만 이번엔 확실히 자신의 잘못임을 알고 있었기에 따로 큰소리를 치지 못하고 있었다. 오디는 그런 나미아를 무시하고서 하인츠에게 말했다.

??어쨌든 불법적인 정보망은 아니에요. 출처도 확실하거든요. 남는 것은 서류에 있는 사항대로 직접 신전차원에서 조사를 하고 수습을 하는 것이죠. 하인츠 오라버니는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

??나야 신전을 나온 사람이니 뭐라고 할 수는 없지.”

??그렇지 않습니다! 하인츠 대신관님의 자리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습니다!”

??괜찮아요, 제라크. 어차피 저는 은자이고, 은신해 있는 편이 더 편해요. 게다가 타락한 신관을 벌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고 쳐도 아마 삼 개월은 신관 여러분이나 순례자들에게 잡혀서 꼼짝도 못할걸요. 사람들이 보내는 신앙과 존경의 방향이 바뀌어선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안스란에게 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인츠의 말에 제라크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인츠의 은자행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전설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안스란의 총본산에 와서 그녀를 경배하는 일은 둘째 치고 귀환한 전설에 대해 칭송하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보다도 눈에 보이는 전설에 더 많은 존경심을 보낼 것이며, 그것은 안스란과 하인츠를 헷갈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은 하인츠를 괴롭고 슬프게 만들 것임을 누구보다도 하인츠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하인츠는 오디가 준 서류들을 제라크에게 넘기면서 말했다.

??그런 연유로, 이 일은 제라크가 처리하도록 하세요. 소신껏 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좀 더 큰 권위의 힘이 필요하시면 신관회의만큼은 모습을 드러내겠어요. 공식적인 귀환은 하지 않습니다만 비공식적인 귀환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법이지요.”

??알겠습니다. 대신관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마워요. 언제나 힘이 되어 주는군요. 종파의 미래가 밝아요.”

??별말씀을…….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제라크가 서류를 들고서 총총히 자리를 비웠고, 나미아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면서 제라크가 나간 문과 하인츠를 번갈아 보았다.

??끝났어요?”

??수일 이내로 끝이 날 거야. 제라크의 성격으로는 아마 오늘 내로 모든 일이 끝날걸?”

하인츠의 인자한 웃음과 함께 내려진 설명에 나미아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신전 내부에 일인 만큼 그다지 시끄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조용하게 처리될 줄은 몰랐었다.

??에에, 싱거워. 처리과정이 직접 보이지 않으니까 실망. 대실망.”

??내가 나설 수도 없잖아.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차나 마시고 갈래? 신전에 들어온 상납품 중에 최상급 가디스티가 있던데.”

??정말인가요? 와아! 정말 기뻐요!”

오디가 반색을 하면서 나서자 나미아는 그대로 가겠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매사에 조용하고 침착한 오디가 물불 안 가리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맛있는 차에 관한 것이었다. 더욱이 최상급 가디스티는 일반 시민은 물론이거니와 귀족들도 제대로 마셔보지 못할 정말 희귀한 차였기 때문이다. 최상급은 대부분의 수량이 신전으로 납품되기 때문에 제국의 황제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차다.

??물론, 나 혼자 먹기에는 좀 많아서 말이지. 내다 팔지만 않으면 상관없어.”

??아아, 정말 고마워요. 고마워요, 오라버니.”

??오라버니, 실례가 안 된다면 가는 길에 좀 나눠 받을 수 있을까요?”

??뭘, 그럼 일어날까? 손님을 이런 곳에서 대접할 수는 없지. 내 방으로 갈래?”

??그럼 삼가 실례하겠습니다.”

하인츠가 일어서서 앞장섰고, 오디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뒤따랐다. 순식간에 곁다리가 되어버린 나미아는 이내 울상을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 정말! 나 빼먹지 말아요!”

신전 내부에 불어 닥칠 폭풍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따스한 산들바람 같은 분위기였다.

아우레스력 1875년, 안스란력 435년 6월 6일.

힐텐펜스의 안스란 신전 총본산에서는 유래 없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신전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신관 데인더스 페이트(67)가 힐텐펜스 제7블록 빈민가 재개발과 관련해 이권을 얻고자 고아원을 비롯한 안스란교단 지원 복지 시설 여러 군데를 억지로 철수시키려 근처의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일이 밝혀진 것이다.

이 일이 밝혀지면서 힐텐펜스의 안스란교단은 대대적인 사과성명을 발표하였고, 연루된 시청 관련자의 처벌을 시 당국에 요청했다. 힐텐펜스에서 기득권을 가진 안스란 신전의 위명을 깎아먹지 않을 수 없게 된 이 일은 사회적 문제로 거듭나 여러 신전의 대대적인 내부 관리에 들어가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신속하게 이루어진 조사과정에서 각 신전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비리정보를 손에 얻게 되고, 역시 사건의 발생과 마찬가지로 유래 없는 검거속도를 보이게 된다. 조사와 검거에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면 비리를 저지른 신관들의 꼬리 끊기가 시작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각 신전에서는 신속한 정보조사를 하려고 했지만, 원래 정보기관이 아닌 각 신전들에서는 조사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도중에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정확한 정보가 들어오게 되자 사건 관련자들이 미처 손을 쓰기 전에 검거해버리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조직체계에서 그 흠을 외부에 드러내는 일은 조직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힐텐펜스의 주구라고도 할 수 있는 안스란교단에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일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처리하고 해명함으로써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나서서 했다는 자조적인 소리와 함께 신관들이기 때문에 신이 떠받드는 세인들에게 정직한 면을 보여주었다는 칭찬의 목소리도 높았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총 삼 일 동안 힐텐펜스 내의 9개 신전에서 마흔일곱 명에 달하는 신관들을 축출하게 되었고, 그에 연루하여 시청에서는 백서른두 명의 연루자를 사법당국에 고발 조치하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행한 물갈이에 대한 소문은 이후 대륙의 전역으로 퍼져 각 교단과 신전들이 자신들의 조직체계를 자가 점검하게 되는 파동으로 번지게 된다. 훗날 역사가들이 말하기를 이 사건을 가리켜 리디벨롭먼트 게이트(Redevelopment Gate)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나 역사에서도 이 초유의 사태의 원인이 된 정보를 가져다준 인물 혹은 조직의 출처를 밝힐 수 없었다고 적어두고 있었다.

??하아, 평화롭구나…….”

훗날 종교계에 불어 닥칠 파문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인 나미아는 바깥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베란다의 의자에 앉아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분위기만 보면 그녀의 말대로 평화롭기 그지없는 분위기다.

??바깥은 아주 시끄럽던데요?”

??그거야 이제는 내 소관이 아니지.”

??이걸로 고아원에 대한 위협도 없어지겠죠?”

??아마도. 이익이 없는데 폭력배들이 날뛸 이유는 없잖아?”

오디는 나미아의 건너편에 앉아서 로맨스 소설을 펼쳐 들었다. 평범한 외모에 따뜻한 마음씨를 빼고서는 모든 능력이 표준 이하인 평민의 여식에게 모든 면에서 뛰어난 귀족 남자가 반하게 된다는 틴에이저 로맨스 소설이었다.

??그거 재미있어?”

“재미있다기보다도 웃기잖아요. 말도 안 되는 설정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너무 웃겨서 배가 다 아프다니까요. 이런 건 그야말로 소녀들의 감성만 자극해서 ”나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라는 허황된 꿈과 주인공과 자신을 일체화시켜서 대리만족을 얻도록 노리는 글이죠. 이런 걸 가지고 눈물 흘리며 읽는 사람은 마땅히 바보라고 부를 만해요. 아, 웃겨서 눈물 흘리는 거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평이 꽤나 잔혹하네.”

??뭐…. 글쓴이가 설마 진심으로 이런 걸 썼겠어요? 이런 걸 쓰는 사람의 성격은 대개 사회의 흐름을 잘 읽고 기회를 잘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거나, 허황된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바보 중에 하나예요. 게다가 아무리 이렇다 저렇다 해도 이런 부류의 글은 뻔하잖아요. 연인 사이에 나오는 시련이라는 것도 하나같이 신분차이에 의한 부모님의 반대라든가 남자를 노리는 못된 여성의 음모나 비슷한 계급의 남자의 해외유학하고 평범한 여자에게 반한 또 다른 완벽남의 대쉬, 그리고 제일 편하고 제일 흔한 게 불치병. 이런 거라면 생각도 안 하고 마구잡이로 펜 놀려도 나오겠어요. 아, 나왔다! 이번엔 불치병이라네요. 신관들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불치병이래요.”

헛웃음을 흘려가며 책을 읽는 오디를 보면서 나미아는 가끔 저 정신의 정령의 사고구조는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상대의 생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나미아는 아이스티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 그러고 보니 슬슬 우리의 첫 의뢰인인 한스가 눈을 뜰 때가 되지 않았나?”

??눈뜨면 알아서 내려오겠죠. 그건 그렇고, 오늘은 그릇 안 만드세요?”

??건조 중이야. 웨일즈 씨의 지도가 없었다면 접시 한 장도 못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요 며칠 사이에 나미아가 심취해 있던 도예는 슬슬 실력이 성장기에 오르고 있었다. 흙을 조몰락거려서 여러 그릇을 만드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생소한 경험이면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창조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두 절세미녀 중 한 명은 로맨스 소설을 코믹북과 동의이음어로 취급하고서 즐겁게 읽고 있었고, 한 명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아이스티만 조금씩 비워내고 있는 화창한 늦봄의 오후였다. 저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다고 해도 그 분위기가 전혀 달라 보일 것 같지 않는 광경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 한스. 이제야 일어났네. 몸은 좀 어때?”

멈춰 있던 것 같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고, 나미아와 오디는 그들 사이에 한스를 앉혔다.

??예에… 뭔가 상쾌한 기분이라서…….”

??다친 것 같지 않지?

??그…러네요. 그런데 지금이 며칠이죠?”

한스는 목 언저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의문의 눈빛을 나미아에게 보냈다. 그리고 나미아의 눈빛이 번뜩이는 것을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미아는 천연덕스럽게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우레스력 2000년이야. 축하해. 뉴 밀레니엄을 맞이했구나.”

??예, 예엣?!”

??너 자는 사이 세상이 꽤나 변했거든. 적응하려면 꽤 시간 걸릴 거야. 호호홋.”

??그, 그런…!”

쿠르르르르르르….

경악하는 한스의 머리 위로 테트로 타입 비공정이 낮은 소리를 울리면서 지나갔다. 문득 그것을 바라본 한스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비공정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도 저런 초기형태의 비공정이 남아 있었나…!”

한스는 그제야 나미아의 눈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이죠?”

??응. 그걸 믿었니?”

한스는 그만 고개를 풀썩 숙이면서 좌절했다. 자신이 이다지도 쉽게 속는 사람이었던가 생각하면서 그의 16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푹 숙인 한스는 거의 애절함에 가까운 표정으로 나미아에게 말했다.

??제대로 말해주세요. 지금 며칠이에요?”

??6월 6일. 잠들기 전에 삼 일 정도라고 했잖아?”

“얼마 안 지났네요. 다행이다…. 아차! 고아원! 고아원은 어떻게 되었죠”?

??고아원? 아아, 무사해. 너 오늘부터 출근한다고 이야기해뒀어.”

무사하다는 말에 한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그 깡패들이 고아원에서 어떤 행패를 부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얻어터질 정도면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럼, 고아원으로 가볼게요.”

??벌써? 좀 쉬다가지?”

??괜찮아요. 몸도 다 나은 걸요.”

한스는 팔을 들어올리며 건제를 자랑했고, 특별히 더 말리고 싶은 이유가 없던 나미아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 알았어. 잘 다녀와.”

한스는 부리나케 달려갔고, 그 뒷모습을 보던 나미아와 오디는 뭔가 빼먹은 것이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빼먹은 것 같다?”

??그러게요. 흐음… 뭘까요? 아아! 신전의 일!”

??맞아! 해결했다는 말을 안 했구나!”

그녀들은 5층의 계단을 보았지만 이미 한스는 5층의 입구를 나가서 저 멀리 발소리만 남기고 사라진 채였다. 짧은 시간 동안 그 뒤를 쫓아갈까 생각한 나미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알아서 알게 되겠지.”

??그러겠죠. 워낙 일을 크게 벌였으니까요.”

그렇게 두 사람의 무관심 속에서 고아원을 지켜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한스는 여관을 나와서는 열심히 대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나름대로 불쌍한 인생이다.

한스가 고아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물! 물 좀 더 가져와!”

??사람은? 다친 사람은 없어?!”

??대체 어떤 놈이!”

고아원이 불타고 있었다.

파르륵 피어오르는 붉은 불꽃이 커튼을 살라먹고 있었다. 불꽃에 감싸여 오그라들며 불타오르는 커튼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불꽃이 지나간 자리는 검게 변색되고 있었다. 불꽃의 혓바닥이 핥고 지나간 곳에는 지저분한 검댕만 남아 까맣고 투박한 색이 번뜩거렸다.

한스는 부리나케 물동이를 옮기는 사람 중 아무나 한 명 붙잡았다.

??아이들은?! 아이들은 어떻게 됐어요?!”

??거의 다 나온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아아앗! 저기 봐! 한 명 남아 있어!”

??뭐라고요?!”

한스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서 위를 보았을 때, 10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애 한 명이 울면서 창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아이의 뒤로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빠져나오고 있어 매우 위급한 상황 같았다. 한스는 곧 그 아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알렉!”

옷 입은 모습을 보니 낮잠을 자다가 미처 다른 아이들과 대피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한스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의 물동이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머리 위에서 냅다 물동이를 뒤집었다.

촤아아악!

??어엇?!”

??알렉! 기다려!”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한스는 또 다른 사람의 물동이를 빼앗아 들고는 검은 연기와 불꽃이 튀어 오르는 고아원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엇! 이봐!”

??위험해! 돌아와!”

??어이! 어―이―!”

만류하는 사람들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스는 고아원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연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코와 눈을 찔러대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의 옷에 스며든 물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한스는 얼른 계단을 찾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그가 걸음을 옮기자마자 그가 서 있던 자리 위로 불탄 잔해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한스는 건물의 내장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콰작! 우지직!

물에 적당히 타 있던 내벽이나 천장의 구조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불티를 날리고 있었다. 간혹 한스가 들고 있는 물통의 안으로 들어가서 치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를 내뿜기로 했다.

화르르르륵!

사방에서 새빨간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혀뿐만 아니라 손도 뻗어오고 있었다. 한스는 방이 있던 곳에서 갑작스럽게 솟구친 불꽃이 얼굴을 가렸다. 머리가 살짝 타고 있는지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었고, 얼굴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텅텅 비어 있던 1층은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아이들의 침실이 있는 2층부터는 새빨간 화마(火魔)가 제 세상인 양 뛰어놀고 있는 것 같았다. 한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얼른 계단을 밟아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동이를 들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가리면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그의 몸 위에 뿌려진 물은 말라 있었다.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열풍은 그의 몸을 장작개비같이 불사를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알렉을 구해야 한다는 한스의 의기는 꺾이지 않았다.

쿠르릉! 콰자자작!

층계참이 부서지면서 그가 올라왔던 길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같은 일이 자신이 올라가려 하는 계단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재빨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층까지 올라가는 데는 이제 스무 개의 계단밖에 남지 않았다.

쿵쾅쿵쾅!

콰작! 우직! 콰드득! 끼이이이…!

그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붕괴를 앞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반쯤 불탄 나무가 주저앉거나 계단 자체가 들썩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워낙에 낙후된 건물인지라 내구성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침내 한스가 3층에 올라오자 그를 올려 보낸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듯 계단이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쿠과가강! 끼기기긱! 콰르릉!

??크윽…! 알렉! 어디야!”

??으아아아앙! 아아아앙! 무서워어!”

매우 가까운 위치에서 알렉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스는 검댕이 가득한 얼굴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울음소리가 들려온 방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그의 머리 위로 천장이 쏟아져 내렸다.

콰두둑!

??으아악?!”

한스는 머리와 등에서 닥쳐오는 무게감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도 물동이는 안전했다. 그리고 한스는 등에 얹혀진 건물자재의 느낌과 등을 지져대는 목재의 뜨거움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한스는 벌떡 일어나면서 자신에게 얹혀진 자재를 털어 내었고, 재와 함께 불똥이 그의 몸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한스는 등이 찢어질 듯 아파 오는 상황에서도 알렉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콰르르!

이미 문짝은 불이 붙을 대로 붙어서 타오르고 있었다. 한스는 물을 뿌릴까 생각했지만, 이것은 안에서 울고 있을 알렉의 몫이었다. 그래서 한스는 물동이를 내려두고는 어깨로 문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발로 찰 수도 있지만 등의 상처 때문에 도저히 발을 들 수가 없었다. 함부로 발을 들어올렸다가는 상처가 크게 벌어질 것 같았다. 한스는 입술을 깨물고는 문으로 몸을 돌진시켰다.

콰앙! 콰앙! 콰앙!

??크으윽!”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어깨가 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타고 있는 문은 그만큼 쉽게 부서질 것 같았지만 그 뜨거움은 달궈진 숯과도 같았다. 이미 한 번의 충돌도 한스의 어깨는 화상을 입었다. 두 번째의 충돌 때는 살이 익는 것 같았고, 세 번째의 출동에서는 문에 피가 묻기 시작했다.

??으아악! 으악! 으아아아!”

콰앙! 콰앙! 콰가강!

??으아아아…! 히끅?!”

몇 번 안 되는 충돌이었지만 문은 쉽게 부서졌다. 그리고 한스의 어깨도 진액을 흘리며 익어버렸다. 한스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알렉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얼른 물동이를 들고는 알렉에게 가져가서 물을 뿌렸다.

촤악! 치이이익!

물이 불탄 목재에 닿으며 증발하는 소리와 함께 알렉이 한결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렉, 괜찮아?”

??한스 혀엉!”

알렉은 울먹거리면서 한스에게 매달렸고, 한스는 알렉의 등을 토닥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망갈 길이 몽땅 사라진 데다가 불이 닥쳐오는 속도는 곧 그 둘은 통째로 구워버릴 것 같았다.

??제길! 어디 길이 없나…?”

한스는 창문 밑을 보았다. 아래로 2층의 높이였고,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있으니까 잘하면 받아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등부터 떨어지면서 알렉의 머리를 감싸 안으면 최소한 알렉을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이대로 죽을 수도 있는 건가?”

의기심이 동해서 달려오긴 했지만 막상 마지막 상황을 두고서 한스를 갈등에 휩싸였다. 자신이 여기서 죽으면… 여태껏 그 세발트 일당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비공정의 정장이 된다는 꿈도 하늘로 사라질 것이며, 강해지겠다는 비원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는 크게 슬퍼하실 것이다.

한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알렉이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알렉은 한스의 바지를 두어 번 당긴 후에 말했다.

??혀엉…. 우리 죽는 거야?”

??왜? 죽는 게 두렵니?”

??으응. 아니, 죽으면 안스란님한테 가잖아? 그리고 친구들은 더 많이 먹을 수 있잖아? 나는 안스란님의 옆에서 맛있는 거 먹을 거니깐 죽는 거 안 무서워.”

??…!”

한스는 열 살짜리 꼬마가 하는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눈을 크게 떴다. 이 아이는 도움을 청하며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었지만 죽는 것 자체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의 순수함이 강한 것이다. 그 마음이, 어린 마음이 자신보다 훨씬 강했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나미아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마음. 여전히 약해빠졌구나.”

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알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알렉. 안 죽어. 너나 형이나.”

??정말?”

??응, 그래. 형을 믿어.”

한스는 알렉을 안아 올렸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불길에 뒷걸음질쳐 창문으로 향했다. 그의 표정을 조금 전의 허탈함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결의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마음. 마음이 강해야 해. 마음이 강해야…!”

닥쳐오는 화마를 피해 한스는 온 힘을 다해 뒤로 몸을 날렸다.

파창!

날카로운 느낌이 등을 관통하는 것 같았고, 온몸이 시원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붉은 불꽃이 눈에서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파란 하늘이 까마득한 중력의 상실감과 함께 멀어지고 있었다. 한스는 알렉의 머리를 꼬옥 끌어안았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내려온다!”

??받아―!”

덜컹덜컹!

한스의 귀로 들려오는 복잡한 소리는 지푸라기가 잔뜩 담긴 짐수레의 소리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스는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

??이이이익―!”

끼기기기이익!

수레꾼이 용쓰는 소리와 함께 수레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곧 한스의 등으로 까실하고 푹신한 부드러운 충격이 와 닿았다. 짐수레가 크게 흔들렸다.

덜커덩!

??어이쿠! 허헛! 받아냈어!”

한스의 몸은 지푸라기에 묻히다시피 했지만 뼈가 부러진다든가 하는 부상은 없었다. 단지 폐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숨쉬기가 곤란해진 한스는 인상을 잔뜩 쓰다가 한번에 숨을 토해냈다.

??쿨럭쿨럭! 커헉! 하아, 하아…!”

??형? 형? 괜찮아? 형!”

??아아…, 괜…찮아….”

한스는 손은 흔들면서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알렉의 얼굴을 향해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이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주변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와하핫! 해냈어!”

??거봐!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잘했다! 멋있었어!”

??아이들은 이제 다 살은 거야!”

??얘야, 정말 잘했다!”

한스는 알렉의 얼굴 뒤에서 어른거리는 어른들의 얼굴에 일일이 답하는 미소를 지어주었지만 통증이 그를 더 이상 현실에 놔두게 하지 않았다. 한스는 지쳐 보이는 미소를 마지막으로 서서히 눈을 감고는 고른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자는 얼굴에는 상처의 고통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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