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64)

'앞으로 한 마리!'

하나만 더 잡으면 스킬 레벨이 오를 찰나였다. 유저의 등 뒤에서 갑자기 검을 든 좀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눈 깜빡하는 동안에 나타난 좀비는 소리 없이 유저의 등에 바짝 다가섰다. 

"응?"

이상한 낌새를 느낀 유저가 뒤를 돌아본 순간, 검이 목을 파고들었다.

"컥!"

초보는 감당할 수 없는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은 유저는 그대로 사망했다. 주변에는 작은 짐승을 잡는 유저들이 있기는 했지만 좀비가 한 짓을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다.

좀비는 잠시 뒤 좀비는 다시 몸을 숨겼다.

이 날, 총 100여 명에 달하는 초보들이 암살 좀비에게 죽었으며 이때 찍은 영상은 게시판에 또 다른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검을 든 좀비가 무협 문명에 나타난 것이었다. 초보 유저의 등 뒤에 나타나 번개같이 찌르고는 사라지길 반복하는 연쇄PK좀비의 존재는 금방 화제가 되었다.

- 이거 도플갱어 아님? 이젠 무협문명까지 진출했나?

- 자세히 보셈. 이거 그 놈임. 최초의 도플갱어.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좀비로 변신한 심후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심후는 좀비의 이미지는 새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이로 인해 도플갱어들의 전투 스타일과 이미지를 분석했던 이들은 좀비의 이미지로 사람들을 구별하기까지 했다. - 이번엔 검을 들다니. 뭐 하자는 건지.

- 정말 이상한 인간임.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렸다.

모두 심후를 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끔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 역시 대단한 분이심. 저기까지 가서 저렇게 깽판을 치다니. 그것도 검으로!

자유로운 플레이, 특히 PK를 즐기는 이들은 심후를 옹호했다.

문제 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 억울하면 길드 가입해서 보호받던가.

- 우리 길드로 오시면 보호해드립니다. 오세요! 잘 밀어드릴게요!

이 틈에 어느 길드는 홍보를 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새로운 종류의 플레이를 하는 모습은 일시에 다른 유저들에게 퍼졌다. 특히 몇몇 무협 문명 유저들은 공명심에 심후를 잡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게임 초반에 PK를 하고 다녔던 심후의 명성은 대단히 높았다. 특히 도플갱어의 육신 스킬을 사용하는 유저들을 잡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도플갱어라고 알려진 유저들은 하나같이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저쪽으로 간다!"

"잡아!"

심후는 쫓기고 있었다. 허나, 쫓기는 자의 표정치고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이 자식!"

경공 스킬을 사용한 유저가 어느새 등 뒤에 접근했다. 순간 심후는 은신을 사용하여 땅을 굴렀다.

"큭!"

유저는 심후를 놓쳤다. 사방으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은신한 심후가 잡히길 바랐지만 걸리는 것은 잡초뿐이었다.

'이번에는 좀 쎈 놈이네.'

유저의 발광은 보며 심상치 않음을 느껴졌기에 조용히 물러났다. 약 100미터 정도 떨어져 유저와 충분히 거리를 두었다고 생각한 순간 무기를 바꿨다.

언제나 애용하는 저격총이었다.

"바이바이."

발광하다 멈춰선 유저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주었다.

총격을 당한 유저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사망했다. 속도는 꽤 빨랐지만 생명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이었다. 초보자들보다는 월등히 강하지만 고수는 아니었다.

때문에 한 방에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제 진짜 가봐야겠네.'

총은 안 쓰려고 했지만 점점 강한 유저들이 뒤를 쫓다보니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유분이 계속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 심후는 아쉽지만 슬래셔의 업을 잠시 내려놓고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과학문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속도 좀 풀렸고 숙련도도 올랐으니 됐다.

'칼질을 하며 초보 유저들을 썰었던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유저를 PK해야만 숙련이 올라가는 마라신공의 숙련도도 올릴 수 있었다. 생각 같아선 계속 하고 싶었지만 이젠 슬슬 그만둘 때였다.

나쁜 짓은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물러날 때를 아는 심후는 모여드는 유저들을 비웃어주고는 유유히 과학문명을 향해 움직였다.

"게임을 시작했다고?"

"네."

황태자 한강운은 심후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자신 나랑 한 판 붙자니까 이렇게 피해?"

강운에게 패배는 굉장히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일시적인 패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항상 노력해서 그것을 뒤집어 왔다. 그래서 항상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에 익숙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패배란 그저 주춤하게 만드는 걸림돌이었다. 상대방에게 승복하는 진정한 패배를 경험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심후는 에린의 관심을 받고 있는 남자였다.

'내가 그 놈보다 뭐가 못해서?'

상처 받은 자존심은 치유를 원했다. 문제는 치유 방법이 심후와 무엇이든 자존심을 걸고 대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심후는 강운을 피했다.

그래서 에린이 근처에 이사했다는 것을 알고 이사하며 바밥바와 같은 가게를 냈다. 바로 앞에. 처음에는 망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바밥바는 망하지 않았다.

이유? 간단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태자바와 바밥바를 찾은 것이었다.

태자바도 꽉 차고 바밥바도 꽉 찼다. 결론은 둘 다 장사가 잘 되었다.

"에이."

황태자인 자신이 근처에 가게를 낸 것도 모자라 근처에 자주 나타난다니 인근의 땅값이 꿈틀거리며 올라갔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또 있었다.

"만약 심후에게 이상한 짓을 하면 저에 대한 도발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후 심후의 게임 계정에 대한 접근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에린이 정식으로 경고를 보내온 것이었다.

개인의 게임 계정을 게임사를 통해 들여다봤다고 해서 강운이 감옥에 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단지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길 뿐이었다. 하지만 에린이 앙심을 품고 계속 덤빈다면 조금 귀찮은 일이 아닌 아주 피곤한 일이 될 가능성이 컸다.

"지금 어디라고 했지?"

"무협 문명이라고 했습니다."

"마침 잘 됐네. 나도 본격적으로 하겠다."

강운도 올라이프를 하긴 했다. 다만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그저 주변 사람들과 분위기를 맞춰주는 수준에서만 했다.

"게임 접을 때까지 죽여주마."

강운은 자신이 누굴 건드리려고 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한편, 에린은 게임에 접속한 상태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 찾아가는 게 좋을까?'

추적 스킬로 확실하게 심후를 찍어두었기 때문에 못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추적 스킬을 이용해 찾아가 싸움을 건다면 싸우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후가 그 동안 많은 압박을 받아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란 것을 알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황태자만 아니었어도.'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푼돈을 걸고 하는 사업이라도 스트레스를 받는 판에 거액을 투자한 사업이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황태자가 나타났다.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앞에 똑같은 컨셉의 가게를 차렸다.

망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이에 심후는 내심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게임을 할 여유도 없었다.

이 때문에 에린은 더 화가 났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어린 시절에는 사이가 참 좋았다. 하지만 에린은 황태자와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그냥 좋은 오빠에 불과했고 남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아내라 되라며 자꾸 귀찮게 했다. 가문의 힘이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 집요했다.

그러던 것이 토니가 황녀와 약혼을 하면서 강운은 더 고집을 부릴 수 없게 되었다. 황실에서도 적당히 하지 않으면 무공을 폐한다고 강하게 경고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강운은 정말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그럼 정상적으로 구애를 해서 마음을 허락 받으면 되는 겁니까?"

황실에서는 이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정상적인 연애를 통해 인연이 이어진다면 막지 않겠다는 말에 강운은 집요하게 에린을 쫓아다녔다. 그러나 에린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싫은 건 싫은 거니까.'

강운이 부족한 남자는 아니었지만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자신을 우습게 여기며 언제든 꺾을 수 있는 꽃 취급이 싫었던 것이었다.

비굴한 남자도 싫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싫었다.

그런 와중에 만난 것이 심후였다. 더구나 심후는 강운과의 만남에서도 절대 비굴하게 굴지 않았다.

실리를 추구하며 싫은 것은 거절했다. 막대한 권력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심후가 더 마음에 든 에린이었다. 그런데 강운이 심후와 좋은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막기라도 하듯 근처 건물로 이사 왔다. 더구나 심후의 뒷조사까지 진행하는 중이었다. 

'싸우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에린은 걱정했다.

행여나 자신이 찾아가 싸움을 걸었다가 심후가 기분이 상해 자신에게 악감정을 품을까 두려웠다. 

'바보 같아.'

거침없이 살아왔던 과거와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지만 싫은 기분이 아닌 에린이었다.

"아가씨, 드릴 보고가 있습니다."

"뭔데?"

심후를 찾아갈까 고민하던 와중에 제니가 나타났다. 

"황태자 전하께서 게임 세력을 모으고 계십니다. 아마도 심후씨를 잡을 모양입니다."

"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세력을 만든다."

'부셔주겠어.'

자신의 작은 즐거움을 자꾸 방해하려는 강운이 미운 에린이었다.

자신의 작은 즐거움을 자꾸 방해하려는 강운이 미운 에린이었다. 

============================ 작품 후기 ============================

더워서 미치겠네요. 크고 넓은 물웅덩이가 필요합니다.

모두 더위 조심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며 기분전환을 하고 나면 항상 하는 일은 무공 수련이었다.

이제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아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안전한 상태였다. 집을 개조해서 자신만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공간을 만들었다.

'오늘은 양자 컴퓨터에 대해 알아봐야겠군.'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선 심심했다. 가상현실에 접속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공이 자동으로 익혀지지 않기 때문에 항상 가상현실 프로그램 하나를 돌려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도서관 프로그램이었다.

도서관 프로그램은 돈을 주고 국립 도서관에 보관 되어 있는 자료를 사서 보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주문하면 하루 안에 택배로 도착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도 적었다.

직접 다운로드를 받으면 더 싸지만 심후는 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기에 직접 구매를 선택했다. 직접 구매를 한 경우에는 몇 번이고 다른 곳에 설치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장식 효과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향상된 암기력으로 수많은 지식들이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가끔 두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럴 땐 잠시 쉬어주면 얼마 후 더 많은 정보를 암기해도 괜찮을 정도로 한계가 늘어났다.

'돈만 있으면 한 번 만들어보고 싶긴 하네.'

공부를 하면서 자신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실천에 옮겨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본능일지도 몰랐다.

심후 또한 이 때문에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일에 강한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를 만들기에는 돈이 한참 모자랐다. 

'하나씩 하면 되지 뭐.'

급할 건 없었다.

쫓기는 것도 아니었다. 단순한 욕망, 호기심일 뿐이었다.

심후는 젊었고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이제 돈도 슬슬 벌리는 중이었다.

주변에 자리 잡은 힘쎈 인간들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었다.

공부를 하던 중에 알람이 울렸다.

이제 일할 시간이었다. 심후는 얼른 숨겨진 공간을 나와 샤워를 하고는 준비를 했다.

'오늘은 차영이 면접 본다고 했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때 빼고 광내고 헤어스타일에서 피부 상태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데 허술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시계와 옷은 그럭저럭 괜찮은 명품이었다. 그렇게 고가는 아니지만 일반인이 쉽게 살 수 있는 가격은 아닌 그런 것들이었다.

'이 정도면 됐어.'

거울 속에 있는 훤칠한 남자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차영은 심후에게 접근하기 위해 바밥바에서 여종업원을 추가로 구한다는 구인광고가 나오자마자 연락했다.

심후가 나오는 먹어봐를 꾸준히 시청한 차영은 똥줄이 탔다. 

'저게 심후 꺼?'

번창하는 바밥바의 모습을 보아왔기에 장사가 무척 잘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심후가 거기의 지분을 가지고 동업자가 된다는 얘기가 방송에 떴다.

그런 이유로 방송에서 하차한다고 하니 가슴에 차오르는 것은 후회였다.

'그때 내가 꽉 잡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화려한 삶을 접할 수도 있었다는 환상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랬기에 굉장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고 심후의 손을 잡고 있는 지윤이 못 마땅했다. 

'뭐 이걸로 끝이니 저 년도 더 관심 안 갖겠지.'

이후 차영은 심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겨우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차영은 어느 때보다 몸단장에 치장했다. 그런 차영의 모습에 동거하고 있던 수동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 뭐하는데 그렇게 치장해?"

"면접 가거든."

"그래?"

수동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차영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이제 이 생활도 거의 끝나가는 군.'

더 이어져도 상관은 없었지만 슬슬 다른 일이 해보고 싶던 참이어서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붙을 거야. 누난 예쁘니까 아마 거기 주인이 홀딱 반할 걸? 그렇다고 바람 피우면 안 돼. 알았지?"

수동의 애교에 차영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 나한텐 너 뿐이야."

'썩을 년.'

마주 웃으면서 수동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면접 시간이 되자 심후는 차영과 마주 할 수 있었다. 

"어?"

심후가 직접 면접하기 위해 나온 것을 보며 차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만난 것처럼 아주 사근사근한 어투였다. 면접에는 심후 뿐만 아니라 홀 매니저와 사장도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아는 척 하지 않은 것이었다.

면접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홀 매니저와 사장은 그다지 반기지 않았지만 심후가 합격시키자고 하자 군말하지 않고 받아줬다.

면접 내내 서로 주고받는 눈빛에서 남녀 간의 썸씽이 일어난 것이라 착각한 것이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요?"

터질 것 가슴을 진정시키며 담담하게 질문하는 심후였다. 지금 당장이라고 욕이란 욕을 다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잘 돼서 다행이다."

"그래요?"

"응, 사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였어. 그때 나랑 계속 같이 있었으면 이렇게 성공하지도 못했을 거 아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마워 할 이유는 없었다. 배신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죽음의 문턱에 들어가려다 실패해 겨우 마음을 고쳐먹고 산 것이었다. 

"그러게요."

그러나 그런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복수심을 꽁꽁 감췄다.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는 것처럼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어쨌거나 그 때 일은 정말 미안해. 사실 널 정말 좋아했는데 그 인간 때문에......."

"됐어요. 지나 간 일 더 말해서 뭐해요. 앞으로 일이나 잘하세요."

슬쩍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대화 도중에 갑자기 자리를 뜨면 불쾌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차영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날 좋아하는 게 확실해.'

미워하거나 증오했다면 거칠게 욕을 내뱉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을 채용하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채용했고 과거에 대한 일도 별로 얘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날 보고 마음이 흔들린 게 틀림없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 차영은 앞으로 어떻게 해서 심후를 공략할지 떠올리며 돌아갔다.

일은 다음날부터 시작이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게임에 접속한 심후는 미친 듯이 달려서 과학 문명에 돌아왔다.

"내가 돌아왔다 거지새끼들아!"

총알을 사고 머신건을 든 심후는 바로 학살에 들어갔다. 근처에 보이는 유저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 것이었다.

갑작스런 습격에 모두 놀랐지만 총기 난사 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과학 문명이기에 반응은 상당히 빨랐다.

공격당하던 유저들은 조직적으로 뭉쳐 바로 반격해 왔다.

심후는 길게 시간 끌지 않고 은신을 활용해 모습을 숨기고는 저격총을 꺼내들었다. 이후 이어진 것은 사냥이었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투명한 암살자의 저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심후가 나타난 지역의 유저들은 로그아웃 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3시간도 넘게 한 지역에 머물며 사냥을 해대는 통에 아예 포기한 것이었다. 몇몇이 심후를 잡겠다며 덤볐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잡을 수가 없었다.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차영을 마주하고도 미련이 남은 남자를 연기했더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걸 계속 참았더니 손이 근질근질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복수의 대상이 근처에서 알짱거리는데도 참으려니 너무 답답했다.

적당한 때를 기다려 한꺼번에 터트릴 생각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또 잡는다.

'무협문명의 경계선 근처의 도시 주변을 완벽히 장악한 심후는 다시 이동했다. 근처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줄 사냥감을 찾을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 뭐해?

하지만 에린의 연락에 심후는 걸음을 멈췄다.

- 사냥.

대답을 하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에린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스킬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 나도 같이 하면 안 돼?

- 뭘 믿고?

- 정말 싸움 안 걸게. 그냥 나도 같이 하게 해줘. 응?

- 싫어.

쉽게 허락하지 않는 심후였다. 하지만 에린은 끈질겼다.

- 안 껴주면 쏜다?

순간 심후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총성이 울리며 서 있던 곳에 총탄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저쪽인가?'

총성과 총탄에 의해 파편이 튀는 방향을 보며 에린이 있는 곳을 계산해냈다. '꽁꽁 숨어라.

'조준을 하는 순간 에린이 달리는 것이 보였다.'

머리통이 보인다.

'총성과 함께 에린의 몸이 허공에서 핑그르르 돌았다. 에린의 몸은 땅에 닿는 순간 계속된 연사로 인해 이미 사망 판정이 뜬 뒤였다.

제니에게 세력을 만들라고 시키고 심후의 뒤를 따라왔지만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망한 에린이었다. - 덤벼.

간단하게 메시지를 날려준 심후는 다음 도시를 향해 달렸다.

더러운 감정을 모두 잊고 싶은 마음은 학살에 몰입하기를 원했다.

============================ 작품 후기 ============================

금요일이군요.

모두 불타는 금요일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덤벼.

간단하게 메시지를 날려준 심후는 다음 도시를 향해 달렸다. 더러운 감정을 모두 잊고 싶은 마음은 학살에 몰입하기를 원했다.

============================ 작품 후기 ============================

금요일이군요.

모두 불타는 금요일 보내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시의 외곽. 좀비들을 사냥하던 유저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이마가 뚫리더니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도플갱어 놈들이다!"

유저들은 바로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도플갱어 유저들에게 가장 많이 당한 과학 문명의 유저들답게 대응하는 속도도 빨랐다. 집단으로 바로 뭉쳐 대응에 들어가는 모습은 악을 처단하고자 하는 용자의 군대 같았다.

그러나, 도플갱어 유저를 잡기 위해 뭉친 유저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하나, 또 하나.

한 명씩 쓰러질 때마다 악을 쓰며 적을 찾으려 했으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유령도 아니고 뭐야!"

유령. 그럴지도 몰랐다. 은신 스킬을 마스터한 심후는 여유롭게 건물 사이를 오가며 유저를 사냥했다.

먼 거리에서 저격하면 유저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몰려와도 은신한 상태에서 유유히 벗어나버리니 유저들은 심후를 잡지 못했다.

이 건물 인가 싶어 뒤지면 저 건물에서. 저 건물인가 싶어서 몰려가면 딴 건물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는 숨바꼭질에서 유리한 것은 심후였다.

하지만 그런 심후를 위기에 빠트린 유저가 나타났다.

"앗! 저기다!"

드디어 심후의 모습이 드러났다.

심후의 모습이 드러나게 만든 것은 바로 에린이었다. 유저들은 에린을 칭찬하며 심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심후가 숨을 때마다 에린은 심후가 숨은 곳을 찾아내 공격했다. 하지만 심후는 잡히지 않았다. 에린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심후를 잡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귀신같은 저격 실력은 달리면서도 이마에 바람구멍을 내줄 정도로 정확했다. 도망치며 가끔 뒤돌아 쏘는 저격은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빙글 몸을 돌리는 순간 총알이 허공을 가르고 선두에 선 유저의 이마나 가슴에 명중했다. 기계 같은 솜씨였다.

이 때문에 에린과 유저들은 심후를 잡지 못했다. 유저들은 포위망을 형성하고 싶어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심후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에린 뿐이었다. 다른 유저들은 심후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은 무리였다.

에린이 공격해서 심후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지 않는 이상 그저 같은 방향에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것이 전부였다.

한 남자가 이러한 추격전을 보더니 미소 지었다.

'찾았다!'

에린의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강운이 추적 끝에 나타난 것이었다.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심후를 본 강운의 눈은 더욱 빛났다.

'대단하군.'

끈질긴 정보 수집 끝에 강운은 에린이 쫓고 있는 유저가 심후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최초의 도플갱어. 유저 학살자. 그리고 이제 곧 추가될 피에 굶주린 유령이란 별명의 주인을 보는 강운의 심장은 뜨거웠다.

평범한 유저의 실력이 아니었다. 액션 영화의 히어로와 같은 모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널 잡는다.'

뛰어난 존재에 대한 도전 의욕을 활활 불타올랐다.

요리가 심후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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