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64)

드디어 사막편이 방송 되었다. 사막편의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뜨거운 호응이 일었다.

특히 아랍의 맛이라는 캅사라는 음식을 접한 시청자들은 다들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굉장히 오래된 전통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식문화에 대해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잘 사는 나라, 혹은 콘텐츠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의 문화는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알아보는 경우가 흔했지만 아랍은 달랐다.

아랍의 문화는 상당히 패쇄적인 면이 있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면이 별로 없었다. 흥미를 가지고 찾아보지 않는다면 널리 알려지기 힘들었다.

종교적인 문화를 계승하며 전통을 고수하는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면이 많았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피자와 햄버거와 같은 음식들도 손으로 들고 먹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밥'과 '고기'를 손으로 먹는다는 것은 신선한 것이었다. 보통 밥은 수저로 떠먹고 고기는 포크로 찍어먹거나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보편화 된 문화였다.

손으로 밥을 먹으로 입가에 묻은 기름이 번지르르하게 빛나는 모습은 재미있어 보였다. 느끼하다며 조금 먹고 마는 사람들에 비해 묵묵히 자신의 몫을 먹는 사람들의 대조되는 모습도 흥미를 자아냈다.

과연 무슨 맛일까? 얼마나 느끼하면 저러는 걸까?

더 이상 살기 위해 먹는 세상이 아니었다.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행위이기도 했지만 또한 하나의 오락이기도 했다.

(食)

이란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져갔다.

덕분에 심후는 바밥바에서 한 동안 캅사를 만들어야만 했다.

캅사를 시킨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맛있다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끼해서 못 먹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또 한 번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성공을 질투하는 자들은 이를 갈았다.

'제길, 그 자식이 또.'

영수는 심후가 싫었다. 그런데도 먹어봐는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심후의 성공을 보면 괜히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과거에 괴롭히던 놈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니 질투가 샘솟아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보았다.

어떤 성공을 하는지 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싫어하는 상대가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젠 그런 심후를 뛰어넘는 것이 영수의 목표가 되었다.

'두고 보자. 나도 성공한다. 그리고 또 널 짓밟아주지.'

독하게 마음먹은 영수는 게임에 접속했다. 판타지 문명의 외곽에 위치한 한 마을에 영수의 길드 전체가 머무는 중이었다.

"어서 오세요."

게임에 접속하니 수동이 일찍 접속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영수는 그런 수동을 볼 때마다 만족을 느꼈다.

새로운 쫄따구는 언제나 영수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시키지 않아도 필요한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서 했다. 더구나 좋은 것은 언제나 영수에게 가져다 바쳤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차영과 가깝게 지난다는 것이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과거, 자신의 밑에서 빌빌 거리던 심후의 모습이 수동과 겹쳐진 탓이었다.

차영이 수동과 가까이 지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 심후에게 했던 것처럼 어장 관리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영수가 틀렸다.

수동과 잔 차영의 마음은 이미 영수를 떠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수동을 새로운 애인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차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심후였다.

영수와 수동에 비교하면 심후가 가장 돈을 많이 벌었고 성공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수동은 그저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기 위한 매력측정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나 머리핀 바꿨어요?"

"응, 어때? 괜찮아?"

"네, 정말 예뻐요."

칭찬 받은 차영의 마음은 흐뭇해졌다. 자신의 매력이 통한다는 사실이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내일은 둘이 같이 저녁 먹을까?"

"정말요? 저야 좋죠."

"그래? 그럼 뭐 사줄 건데?"

"누나가 먹고 싶은 걸로요. 뭐든 말해 봐요."

같이 저녁을 먹자는 것은 잠자리도 함께 하자는 신호였다. 게임이야 접속방에 들어가서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녁 식사 이후에 함께 침대에서 뒹굴며 땀을 뺀 후에 게임에 접속하면 영수는 알 길이 없었다.

"모르겠는데? 뭐가 좋을까?"

"그럼 우리 바밥바 한 번 가볼까요?"

"응?"

"이번에 '먹어봐'에 나왔잖아요. 그 캅사라고 하는 거. 아랍의 맛이라고 요즘 유행하는 거 한 번 먹어보는 건 어때요? 진짜 아랍인도 극찬한 맛이라던데."

심후가 나온 프로의 이름이 나오자 차영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화가 난 것 같으면서도 웃는 표정이었다.

'김지윤 썩을 년.'

문제는 바로 지윤이었다. 방송에서 심후가 보여준 따스한 모습은 수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매번 심후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겉돌던 모습을 탈피해 드디어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는 평이었다. 일각에선 방송용이니까 그냥 대충 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사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포포걸스와 스캔들이 났던 남자 아이돌 그룹의 여성팬들은 욕을 하긴 했지만 적극 옹호해주었다. 여성 아이돌 하나가 다른 남자, 특히 연예인이 아닌 요리사와 이어진다면 그만큼 남자 아이돌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차영은 불쾌했다. 심후가 정말로 다른 여자에게 넘어가는 것 같아서였다.

자신의 것을 빼앗긴 느낌에 온 몸을 분노로 떨기까지 했었다.

'어떻게 할까? 수동하고 같이 갔다가 혹시나 보게 되면 좋게 보진 않을 텐데.'

영악한 차영은 곧바로 냉정을 되찾고 앞일을 생각했다.

심후가 일하는 바밥바에 몇 번이고 찾아갈 기회는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방송을 타게 된 이후에 찾아가게 된다면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아서였다.

마치 성공하니까 그제야 후회하며 되돌아 온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때문에 차영은 자연스러운 기회를 만들 생각을 했다.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가장을 해야 했다.

'바밥바에 가는 건 좋은 생각이지만 얘하고 가는 건 좀 그러네.'

만에 하나 심후가 지켜보는 와중에 수동이 애정표현을 하게 된다면 심후와 다시 이어지기는 어려워보였다.

"그거 느끼하다며. 별로."

"그래도 한 번 가요. 유명인 한 번 볼 수도 있잖아요. 가서 사인도 받고 싶은데."

"그것보단 맛있는 냉면이 어떨까? 싸고 맛있잖아."

"에이, 저 돈 많아요. 걱정 마세요."

"아냐, 돈 함부로 쓰면 나중에 후회해. 그러니까 우리 냉면 먹자."

차영은 신경 써주는 척하며 다른 곳으로 가도록 유도했다. '속이 뻔히 다 보인다.

보여.'사정을 아는 수동은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차영을 전혀 모르는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남자의 지갑을 생각해주는 여자라고 생각하며 더욱 호감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동은 아니었다.

호스트로 일하며 수많은 여성을 접해봤고 인기도 있었던 남자였다. 여자에 대한 눈치 하나 만큼은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좋아요. 그럼 우리 냉면 먹어요. 바밥바는 다음에 가죠 뭐."

"히히. 누나 말 잘 듣네, 우리 수동이."

이후 닭살 돋는 행각이 이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상대를 마음에 담고 있지 않았다. 영수와 길드원들은 드디어 판타지 문명을 벗어나 무협 문명에 들어섰다.

과학 문명으로 가기 위해선 무협 문명을 가로질러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우린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경계를 넘어오는데 별 다른 희생이 없었잖아요."

"그래, 운이 좋았어."

문명의 경계 부근에는 정말 강력한 몬스터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영수의 길드는 그러한 몬스터들과의 전투가 한 번도 없었다. 나름 각오하고 있었는데 전투 한 번 없이 경계를 넘게 되자 맥이 탁 풀렸다.

"어쨌든 빨리 움직이자. 조금이라도 빨리 총을 손에 넣어야 더 앞서간다."

영수와 길드원들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이동속도 상승 버프까지 받아서 움직이자 꽤 빠르게 이동이 가능했다. 중간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무시했다.

신기하긴 했지만 목적은 하루 빨리 총기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중간에 다른 짓하며 한눈 팔 여력은 없었다.

빠르게 이동하던 이들은 무협문명 깊숙이 들어와 어느덧 중심에 도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투는 없었다.

덕분에 빠른 속도로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중심지를 벗어나 과학문명을 향해 달리는데 습격이 있었다.

"저격이다!"

"실드!"

"방패 들어!"

기사들은 방패를 들고 방어를 하고 마법사들은 방어를 위한 실드 마법을 펼쳤다. 허나, 한 명은 이미 사망해서 도시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제길, 어떤 놈이야?"

"총이라면 과학 문명 놈일 텐데."

"혹시 메이드들 아닐까? 장보도 쟁탈전에 나왔었잖아. 무협 문명에서 총 쏘는 거."

"걔들이 왜 우릴 공격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유가 있다면 그저 판타지 문명의 유저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시비를 걸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어쨌거나 다시 도시로 돌아가자."

길드원을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모두 함께 이동해야 만약의 사태에 전력이 부족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영수와 길드원들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러한 모습은 멀리서 저격한 심후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드디어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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