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64)

갑자기 선작이 늘어나는 것 같네요.

함께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제니는 안타까운 얼굴로 계속해서 쓰러지는 에린을 바라보았다.

'저, 저 녀석이.'

은신 스킬을 이용해 에린의 추적을 따돌리고 철저히 원거리에서 뒤통수만 저격하는 심후를 보니 손이 근질거렸다.

얼른 에린에게 심후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나 혼자 힘으로 잡을 거니까 끼어들지 마. 대신 잘 봐두기나 해."

고용주의 엄명이 있었으니 메이드로서는 선을 넘을 수 없었다.

결국 제니는 안절부절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에린은 그렇게 죽고 또 죽었다.

어떻게 된 것이 한 번도 제대로 반격도 못해보고 계속 잡혔다.

'나쁜 놈.'

결국 에린은 시간을 꽉 채울 때까지 심후의 그림자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 아가씨, 그 녀석 은신 써요.

- 그랬어? 어쩐지 이상하더라.

대결이 끝나자마자 제니는 자신이 본 것을 알려주었다.

사냥 도중에는 혼자 힘으로 해보려 하지만 분석을 할 때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에린이었다.

- 추적 스킬북 사놓을까요?

- 지금 익힌 스킬을 마스터할 때까지는 안 될 것 같은데.

에린은 심후와 같이 도플갱어의 육신을 마스터했다. 그리고 현재 익히고 있는 스킬은 이동 속도를 올려주는 '가속'이었다.

가속: 골드, 레벨 3

(12.54%)

이동 속도를 올려준다. 이동 속도 30%+지속시간 3분필요 마력: 50 속도에 목숨 거는 에린이었다.

에린이 선호하는 전투 스타일은 근접에 붙어서 서브머신건으로 난사하는 것이었다. 가까이 붙어 상대의 공격을 월등한 속도로 회피하며 공격할 땐 짜릿했다.

마치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특히 바로 앞에서 요리조리 공격을 피하며 반격할 때 당황하는 적을 볼 땐 스킬 고른 보람이 느껴졌다.

- 그럼 제가 상대해도 될까요?

- 마음대로 해. 심후가 좋다고 하면 하는 거고.

- 감사합니다.

에린은 추적 스킬을 익힐 때까지는 심후와의 대결을 보류하기로 했다.

몬스터로 변해서 돌아다니다 은신으로 숨어 뒤통수만 노리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아무리 에린이 빠르게 달려도 빌딩 옥상까지 단숨에 갈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상하게 뒤통수에 총알이 한 번 박히면 그 다음부터는 꼼짝 못하고 당했다.

마치 콤보 공격 같았다. 한 번 시작되면 공격이 다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콤보 공격을 떠올린 에린의 가슴은 점점 불타올랐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잡는 보람이 있지. 약하면 재미없어.'

한편, 제니의 도전장을 받은 심후는 쉽게 도전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제니는 심후를 만날 수 없었다.

- 어디 갔어! - 잘 찾아봐. 근처에 숨어있다니까.

심후는 제니를 내버려두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한참 후에 심후에게 농락당한 것을 깨달은 제니는 바주카를 잡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 내가 추적 익히고 만다!

- 그래.

심후는 계속 이동하며 계속 스킬을 사용했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숙련이 쭉쭉 올라갔다.

은신은 실버급 스킬이었기 때문에 올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2배의 경험치가 필요하긴 했지만 플래티넘급에 비하면 무척 양호한 수준이었다.

'이제 무협 문명으로 넘어가자.'

심후는 과학문명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움직이는 도중에 괜찮은 총기들을 구입하고 바로 무협 문명으로 넘어가 근접 전투, 특히 암살에 특화된 무공 스킬을 익힐 생각이었다.

- 차영과 친해짐.

이동하던 도중 갑자기 수동에게서 연락이 왔다. 순간 심후의 눈이 번쩍였다.

'오호, 걸렸군.'

보고서를 읽다보니 웃음이 나왔다. 차영과 영수의 사이가 수동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동은 원래 여자에게 몸을 팔던 호스트였다. 호스트 일이 돈을 잘 벌긴 하지만 모두 한 때였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수동은 아직 한창 때이긴 했지만 1년 넘게 호스트 생활을 하고 나니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돈은 아껴 쓰면 몇 년이고 먹고 살 정도로 모았지만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심후의 일을 소개 받은 것이었다. 수동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셈 치고 일을 수락했다.

돈도 받고 게임도 하고 새로운 경험도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수동을 움직이게 했다. 원래가 호스트였으니 여자의 마음을 훔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또한 영수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굉장히 잘했다.

그 결과 차영과 영수의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며 수동은 차영의 마음속에 조금씩 파도든 것이었다.

- 무협 문명으로 데리고 올 수 있음?

- 아직 파티 수준이 떨어짐. - 무리하지는 말고 준비 되면 무협문명으로 데려올 것.

- 알았음.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게임이란 참 좋아. 자신을 밝히기 전에는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으니.'

무협 문명으로 넘어가는 심후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지윤은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던 심후를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심후의 방어벽은 단단했다.

철벽과 같아 뚫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돌아가려고 했다. 그래서 심후를 좋아하는 여자 역할을 하기로 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네트워크에는 둘이 잘 어울린다는 소리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걸그룹의 멤버였기에 신경 쓰는 이는 많지 않았다. 또한 심후는 요리사로서 유명했지 아이돌로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둘이 엮어진다고 해서 잡음이 많이 생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윤이 일반인에 가까운 요리사를 좋아한다니 풋풋한 소녀 같다는 목소리도 하나둘 늘어나는 중이었다.

물론 시작은 소속사에서 일으킨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심후의 반응은 여전했다.

'아직 압박이 안 되나.'

연예인이란 결국 이미지가 전부였다. 때문에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싫어도 좋은척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다.

지윤이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심후의 이미지가 지윤의 순정을 온전히 받는 남자라는 이미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지윤은 한 없이 착하고 순종적이며 해바라기처럼 심후만 바라보는 여자를 연기했다. 심후에게 호감이 아주 없던 것도 아니기에 어렵지 않았다.

지윤과 심후가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지게 되면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지윤과 가깝게 지내야 했다. 사적으로는 말 한 마디 섞지 않는다 해도 카메라 앞에서는 다정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인터넷에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한 심후에 대한 악담과 예전 애인으로 추측되는 여자의 옹호가 바로 그것이었다.

영수에 의해 못난 놈이라는 이미지가 지윤과 심후에게 쏟아져야 할 관심을 빼앗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에 차영의 옹호글은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아갔다. 

'이년이?'

옛날 애인이라며 차영은 이름은 밝히지 않고 심후에게 자신이 잘못했다며 글을 올렸다.

절대 상처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자신의 의도가 아닌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라며 용서를 구했다. 지금은 많이 후회하고 있으며 만나서 용서를 빌고 싶다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글이었다.

지윤은 짜증났다. 자신이 찍은 먹이에 감히 손을 대는 존재가 나타났으니 화가 났다.

지금까지 들인 공이 모두 허사가 되어가고 있으니 더했다. 사람들은 밋밋한 순정 보다는 심후의 과거를 더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과거가 있는 걸까?'

차영의 옹호글은 막 치솟기 시작한 심후의 인기와 맞물려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지윤은 속으로 쉬지 않고 욕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작전은 실패한 거나 다름없고. 이걸 어떻게 하지?'

 이리저리 상황을 타개할 생각을 하다 결국 이 상황 자체도 이용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 어디 진흙탕에서 싸워보자.'

새로운 계획을 다시 짠 지윤은 준비를 하고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촬영장에 도착한 지윤은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인기 프로에 출연한다고 인기가 자동으로 치솟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노력해야만 했다.

프로에 출연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얻는 것뿐이었다.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사랑 받을 수 있었다.

"우웩!"

'먹어봐'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이번에도 극악무도한 맛의 요리가 나왔다. 심후의 요리인줄 알고 먹었는데 당면과 소고기가 만든 요리였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요리 공부를 하는지 심후의 요리와 겉모습은 똑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오빠."

맛없는 것을 먹은 지윤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심후에게 다가갔다.

"왜요?"

"나 힘들어요."

"네."

"맛있는 걸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은데."

"알아서 드세요."

여전히 까칠한 심후의 반응에 지윤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여전하시네요."

"네."

"오빠 애인이었다는 사람이 갑자기 부러워지네요."

진흙탕에 돌이 던져졌다.

"알아서 드세요."

여전히 까칠한 심후의 반응에 지윤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여전하시네요."

"네."

"오빠 애인이었다는 사람이 갑자기 부러워지네요."

진흙탕에 돌이 던져졌다.

촬영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싸늘해지는 날씨 속에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첫눈 같았다. 하지만 닮은 것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 부분뿐이었다. 지윤의 말에는 첫눈이 안겨주는 감성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진흙을 뒤집어 쓴 불쾌함이 맴돌았다. 

'싸우자는 거냐?'

지윤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심후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표정 관리를 위해서였다. 계속 고개를 들고 있다가는 어떤 표정을 보여주게 될지 모를 정도로 심장은 격하게 뛰었다.

화를 내고 싶었다. 감히 자신의 아픈 부분을 거침없이 건드리는 지윤에게 응징을 가하고 싶었다.

'넌 잘못 건드렸어.'

계획이 수정되었다. 지윤의 껄떡거림에는 그냥 적당히 상대해주려 했을 뿐이었다.

계속 친한 척 하면 다른 여자 연예인들하고도 친하게 지내서 물 타기를 하려고 했다. 그냥 아는 사람, 지인, 기타 등등으로 끝내려고 했다.

'그래, 나랑 아주 단단히 엮이고 싶은 모양인데. 그래, 알려주겠다. 나란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뼛속 깊이 각인하게 만들어주마.'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수정된 계획은 복수에 지윤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후우, 뭐 먹고 싶어요?"

일단 져주는 척 했다. 하나도 지지 않고 싸워봐야 좋지 않았다.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때론 내줘야 하는 것도 있었다.

"라자냐가 먹고 싶어요."

지윤은 추억의 음식을 거론했다.

먹고 싶었지만 먹지 못했던 심후의 라자냐를 언급하자 다른 출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기다려 봐요."

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대화의 흐름은 이상했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사람인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있기 마련이었다.

어차피 방송이기에 피디가 적당히 알아서 편집하면 되는 일이었다.

심후의 반응을 보며 지윤은 미소 지었다.

예상 밖의 반응이었기에 조금 놀란 것도 있으나 원하는 것을 이뤘으니 개의치 않았다. 

'조금 이상하지만. 지가 어쩔 건데?'

소속사도 없는 요리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음을 잘 아는 지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요리사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심후는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간과한 것이 지윤의 잘못이었다. 심후는 열심히 라자냐를 만들었다.

예전에 만들던 모습 그대로, 재료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만드는 심후의 모습을 확인한 지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겼다.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절벽에 핀 꽃을 꺾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도하던 심후를 자신을 위해 움직이게 했다는 사실에 지윤은 기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그래서 눈물을 흘렸다.

아주 살짝. 촉촉이 젖은 눈에서 눈물이 넘쳐흘렀다. 겉보기에는 심후가 지윤을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감동한 것으로 보였다.

노릇하게 익은 치즈로 덮인 라자냐가 나오자 출연자들은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먹어봐요."

접시에 담은 라자냐를 받아든 지윤은 울먹였다.

'드디어 먹는 구나!'

승리의 증거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포크로 찍어서 뜨니 치즈가 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치즈 아래 맛있는 모습을 숨기고 있는 내용물이 케이크처럼 층져있었다. 입술은 오물오물 움직였다.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조신한 여성을 연기하는 것인지 얌전히 먹는 모습이었다. 다만, 라자냐가 없어지는 속도가 이상했다.

'아! 맛있다!'

평소보다 2배 빨리 먹기에 없어지는 속도가 올라간 것이었다.

'저걸 어떻게 굴려줄까?'

심후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역린을 건드린 지윤에게 응징을 가할 필요를 느꼈다.

아주 잠깐 요리에 장난을 칠까 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인기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기에 자중했다. '복수에 이용하기 위해선 관계를 더욱 진전 시킬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고난 속에서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 가식은 점점 사라지고 원래 모습이 드러난다는 어딘가의 글귀가 떠올랐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을 가장 먼저 챙기며 이기적으로 변하지만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함께 역경을 이겨내려 하기도 한다는 글이었다.'진정으로 배고픈 상황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맛있는 요리의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또한 방송이라고 해도 어려운 상황을 함께 헤쳐나간 동료에게는 동료의식이 생기는 법이었다.'

생존왕. 캠핑. 오지 탐험.'현대인들이 처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에 대해 떠올리자 수많은 정보가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기억력 덕분에 계획을 새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계획을 모두 세운 심후는 휴식 시간에 포식을 찾았다.

"제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는데 들어주세요."

"뭔데요?"

복덩어리 같은 심후가 할 말이 있다고 하니 포식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관심을 보였다. 

"거인의 주방도 좋지만 중간에 조금씩 다른 것도 끼워넣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오지 탐험과 캠핑에 대한 얘기를 듣는 순간 포식의 눈이 번뜩였다.

"그거 좋네요. 진짜 좋은 아이디어네요."

'먹어봐: 거인의 주방' 에피소드가 인기가 많다고는 하지만 같은 음식도 자꾸 먹다보면 질리는 법이었다. 하물며 커다란 음식을 만드는 것을 구경만 하는 것도 질릴 수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질리기 전에 좀 더 새로운 것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는데 심후의 아이디어는 매우 적절했다.

두 사람은 조용히 탐험 음식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심후는 탐험에 대한 운을 띄워놓고 포식이 연신 생각나는 것을 떠들면 옆에서 조금씩 양념을 쳐주었다.

"거기에 보물찾기 게임을 해도 좋죠."

"그거 좋네요. 보물찾기!"

탐험이란 것은 거인의 주방보다는 더욱 많은 에피소드가 나올 수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지역 특산물을 한 번씩 이용해먹기만 해도 수십 편은 나올 수 있었다. 더구나 여행이 가미되기 때문에 항상 색다른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나머지는 출연자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가 중요했다.

촬영이 다시 시작되자 심후는 지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고생 좀 해봐라.'

지윤이 꺼낸 옛 애인 이야기는 편집되었다.

심후의 반응이 어색했기 때문에 뭔가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애인 얘기를 꺼내기 전에 힘들다고 하는 장면에서 잘라낸 이후 심후가 라자냐를 만드는 모습으로 바로 이어주니 감쪽같았다.

마치 지윤의 마음을 받아준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편집의 힘이었다.

수많은 언론사들이 잘 쓰는 수법이기도 했다. 잘 쓰면 좋지만 악심을 품고 만들면 생사람 잡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편집의 힘이었다.

"썩을."

심후의 모습을 본 영수는 이를 갈았다. 자신에게 얻어터지던 녀석이 방송에 나와 연예인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질투가 났다.

아무리 한물갔다고 해도 아이돌은 아이돌이었다. 영수는 옆에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차영을 돌아보았다.

왠지 지윤과 자꾸 비교가 되었다. 더구나 요즘 차영은 수동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봐?"

시선을 느낀 차영이 돌아보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보고 있지만 속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예전에는 자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요즘 들어선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기분이 더 나빠진 영수는 차영을 밀었다. 위로 올라가 거칠게 몸을 탐했다.

"어때! 좋지?"

"응! 좋아!"

부드러운 육체 위를 거칠게 질주하는 야생마가 된 영수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가슴 한 구석에서 피어나는 불만과 불안은 영수를 조금씩 좀 먹고 있었다.

반면 차영은 자신의 위에 올라탄 영수를 받아주면서 꼭 끌어안았다. 사랑의 포옹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단해질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헤어지는 게 아닌데.'

방송에서 나온 심후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금 자신의 몸 위에 있는 것이 영수가 아닌 심후였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몸은 하나로 이어졌지만 마음은 따로 노는 두 사람이었다.

반면 차영은 자신의 위에 올라탄 영수를 받아주면서 꼭 끌어안았다.

사랑의 포옹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단해질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헤어지는 게 아닌데.'

방송에서 나온 심후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금 자신의 몸 위에 있는 것이 영수가 아닌 심후였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몸은 하나로 이어졌지만 마음은 따로 노는 두 사람이었다.

반면 차영은 자신의 위에 올라탄 영수를 받아주면서 꼭 끌어안았다. 사랑의 포옹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단해질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헤어지는 게 아닌데.'

방송에서 나온 심후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금 자신의 몸 위에 있는 것이 영수가 아닌 심후였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몸은 하나로 이어졌지만 마음은 따로 노는 두 사람이었다.

심후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급물살을 탔다. 방송국에서는 자금 확보를 위해 스폰서를 찾기 시작했다.

심후를 주시하고 있던 에린은 금방 소식을 접했다.

'이런 건 도와주는 게 좋겠지.'

심후가 아이디어를 냈다는 사실까지 입수한 에린은 투자를 결정했다.

에린이 소유한 수많은 회사들 중에 식품 회사도 있었고 레저용품 회사도 있었다. 스폰서를 하는데 어려움 따윈 없었다.

오히려 심후 덕분에 더 많은 홍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하지만 입수되는 정보는 모두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김지윤.'

괜히 기분이 나빴다.

먹으려던 음식에 벌레가 꼬이는 것 같은 짜증이었다. 얼마 전 방영된 에피소드에서 지윤이 결국 심후의 철벽을 넘어 가까지는 모습이 나왔다.

아주 친근한 것은 아니지만 심후가 지윤을 계속 무시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대우를 해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세히 알아본 결과 촬영장에서 뭔가 이상한 흐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말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에피소드가 방송된 이후 지윤의 소속사에서도 알아보았다. 그 결과 지윤은 심후와 어떻게든 스캔들로 엮여서 다시 한 번 인지도를 올리며 이미지도 개선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짜증나.'

심후는 자신이 정말 아끼는 게임 친구였다. 그런데 엉뚱한 여자가 이용하려고 하니 괜히 기분이 나빴다. 요리를 해놨더니 바퀴벌레가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줄까?'

잠시 고민하던 에린은 심후의 아이디어를 생각하고는 미소 지었다. 심후의 아이디어는 오지 탐험이었다. 그리고 먹어봐는 엽기적인 음식을 먹이는 것이 핵심 포인트였다.

'고생해봐라.'

입꼬리가 한쪽만 슬쩍 올라가는 미소가 얼굴에 그려졌다.

아이디어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일자가 잡혔다. 에린의 적극적인 투자로 인해 거칠 것이 없었다.

방송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장소 섭외도 어렵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자! 이번에는 새롭게 도전해보겠습니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먹어봐! 세계를 먹자!"

'먹어봐: 세계를 먹자'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히 높았다.

거인의 주방도 재미있었으나 3개월 간 계속해서 본 시청자들에게는 슬슬 식상한 느낌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무엇이든지 크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단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만들어진 거대한 음식을 보면서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은 많았다. 또한 거대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긴 했다. 하지만 매번 요리만 바뀔 뿐이지 결국 상상하지 못한 크기의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이었다. 한두 번은 재미로 보더라도 몇 개월씩 계속 보다보면 질릴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다.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적당한 것이 나타났다. 바로 여행과 요리를 접목한 예능이었다.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시도된 수많은 여행 프로와 요리 프로가 있었고 둘이 함께 접목된 적도 많았다. 또한 이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먹어봐: 세계를 먹자'는 색다른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먹어봐 자체가 리얼 요리 예능이었다.

대부분의 요리 프로들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맛있다고 칭찬하며 맛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먹어봐는 달랐다. 함정 요리가 있었다. 아니, 원래부터 맛없는 요리를 만들어 먹였다.

굉장히 가학적인 쇼였다. 여기에 심후가 등장하며 대결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반전이 존재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기대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세계 여행이었다. 예고에 의하면 요리하기가 굉장히 힘든 환경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냥 내버려둬도 이상한 맛의 요리가 탄생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식재료는 현지 조달하거나 보물찾기나 게임을 통해 스텝들이 주는 것을 조금 받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때문에 심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높아져만 갔다.

'야생에서 어떤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정말 맛있는 것이 나올까?'

리얼 요리 예능이기에 출연자들은 맛없는 것은 솔직하게 맛없다고 표현했다.

가식 따윈 없었다. 맛있다고 광고해줘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정말 먹을 만한 요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우선 가볍게 국내로 정했습니다."

국내라고 해도 통일한제국은 굉장히 넓었다.

만주 지역과 한반도,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넓어진 영토를 다 합한다면 역사에 등장하는 고구려보다 더 넓었다.

"어디부터 갈 건데요?"

질문을 받은 포식은 음흉하게 웃었다.

"섬이요. 일단 섬에서 시작하죠. 무인도 컨셉입니다."

"설마......."

"참고로 난파했다는 설정이니까 몸만 가야 합니다. 옷은 최대한 편하게 입는 게 좋습니다."

"말도 안 돼!"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요?"

"2박3일입니다. 1박2일은 그냥 이 악물고 버틸 수 있으니까 2박3일!"

포식의 선언에 출연자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내 건강이 위험해."

처음에는 무조건 함께 하겠다며 출연을 결정했지만 막상 포식이 말하는 것을 듣다보니 점점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목숨이 붙어있지 못하면 다 쓸모없었다.

이때, 소고기가 나섰다.

"그런데 형님. 형님도 '똑같은' 음식 먹는 거죠?"

"응?"

"우리만 고생하고 형님만 스텝들하고 식사하면 안 되죠. 형님도 스텝이잖아요."

당면이 옆에서 거들자 포식은 당황했다.

"아니 나야 진행자니까. 당연히 스텝으로 봐야 하지 않겠어? 내가 탐험가서 진행할 게 뭐가 있겠어. 안 그래?"

"그래도 이건 아니죠. 먹어봐는 어디까지나 형님 중심 아닙니까? 중심이 빠지면 쓰러질 뿐입니다."

"맞아요! 같이 해요!"

모든 출연자들이 물귀신처럼 달라붙자 피디는 포식을 등을 밀었다.

"포식씨도 이번에는 출연자입니다.

결국 포식도 합류했다. 그러자 출연자들은 모두 환호했다. 드디어 복수 할 수 있다며 이를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프로의 메인 진행자인 포식이 함께 하니 적어도 굶어죽을 일은 없다며 안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에이! 어쩔 수 없군요! 그럼 갑시다! 강화도로!"

"잠깐만요. 강화도가 무인도는 아닐 텐데요?"

"컨셉이 무인도라는 거죠! 컨셉이!"

이후 출연자들은 모두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들에겐 짐은 없었다.

신나는 트롯트와 함께 관광버스는 강화도를 향해 달렸다. 

"이야! 경치는 좋네!"

바다의 생명력은 찾아온 이들을 모두 여행자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가슴이 넓어질 것 같은 탁 트인 바다의 풍경에 출연자들은 감탄했다. 일 때문에 온 것이었지만 아주 잠깐 놀러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난파했다는 설정이니까 준비 좀 하겠습니다."

스텝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경계선을 설정했다.

허가 없이 경계선 밖으로 나가면 무조건 벌칙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경계선 설정이 끝난 이후에는 바닷가에 여러 가지 물품을 떨어트리는 일을 했다.

난파한 조난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준다는 의미였다.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2박3일 간의 서바이벌! 과연 우리는 뭘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서바이벌의 선언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심후에게 매달렸다.

"뭘 구해오면 됩니까?"

"여기서 만들 수 있는 게 뭐죠?"

살면서 무인도 표류 영화를 안 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표류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는 물론 소설과 드라마도 있었다.

무엇보다 출연자들은 오지 여행이란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름대로 조사하고 준비했다. 가만히 넋 놓고 있다가는 아무 것도 못하고 고생만 죽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출연자들을 움직이게 했다.

"일단 식수부터 구하는 게 좋겠죠. 그리고 요리 재료는 조개가 있나 살펴보는 게 좋겠네요. 그리고 저기 떨어진 물건들도 수거해 오는 게 좋겠죠."

사람들이 심후를 중심으로 뭉친 이유는 간단했다. 포식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포식과 한 패인 당면과 소고기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때문에 심후를 중심으로 뭉쳤다.

서바이벌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었다면 다른 사람이 리더를 자처했겠지만 먹어봐는 어디까지나 리얼 요리 예능이었다. 요리를 잘 못하는 자신들이 중심이 되겠다고 나서봐야 그림이 살지 않으니 당연히 심후가 중심이 되어야 했다.

"오빠, 나랑 가요."

모두 역할을 분담해 움직이기 시작할 때 지윤이 심후의 손을 잡았다. 거침없는 스킨십에 순진한 남자는 기분이 좋아지며 웃었겠지만 심후는 달랐다.

"이 손 놓고 가죠."

슬며시 손을 뿌리친 심후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흥. 어디까지 견디나 보자구. 이제부턴 더 가까워 질 걸?'

내심 심후를 공략할 계획을 세우며 뒤를 따라 걷는 지윤은 심후의 얼굴에 피어난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어떻게 굴려야 속이 시원할까?'

교활한 미소는 카메라조차 잡을 수 없는 각도에서 슬쩍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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