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64)

늦어서 죄송합니다. 구차한 변명 같지만 피곤한 일이 생겨서 부득이하게 하루 쉬게 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합니다.

"자, 심후씨도 왔으니까 그럼 게임을 새롭게 하죠. 이번 게임의 참가자는 당연히 심후씨입니다."

요리게임은 무척 간단했다.

여러 가지 식재료가 적힌 동그란 판이 먼저 돌면 거기에 화살을 쏴서 맞는 곳에 적힌 요리 방법을 먼저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 선택할 수 있는 식재료 수를 정하고 다시 판을 돌려 식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돌리는 판이 제일 무서웠다. 앞의 선택은 모두 마지막에 고르게 될 것을 위한 함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과도한 양의 양념을 억지로 다 사용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빈칸을 노려야 한다!'

빈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즉, 정상적인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고추장 한 그릇이나 간장 한 그릇을 얼마 되지도 않는 요리에 강제로 넣고 요리를 하자면 요리 맛이 제대로 살 리가 없었다.

대량으로 요리를 하지 않는 이상 과도한 양이었다.

'이런 재래식 게임 따윈 문제도 아니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을 보며 심후는 웃었다.

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거만해 보이기도 했다.

"어? 자신 있나 봐요?"

"요리의 신이 저를 보호할 겁니다. 저는 지지 않아요."

어울리지 않는 오글거리는 소리에 포식은 냉정하게 돌아섰다.

모른 척 하는 것이었다. 

"자! 얼른 쏴주세요!"

아무도 심후에게 말을 걸지 않으니 결국 피디가 외쳤다.

아주 잠깐이지만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심후는 입술을 내밀고는 화살을 쏘는 총의 버튼에 손을 올리고는 돌아가는 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다 보인다.

다 보여.'몸의 능력이 향상되며 동체시력도 무지막지하게 발달했는지 돌아가는 판의 글자가 선명하게 다 보일 정도였다. '지금!'다 보이니 타이밍 맞추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심후는 착착 자신이 원하는 칸에 화살을 날렸다. 

"오늘의 요리는 스테이크입니다.

여기 소고기 있죠? 아주 질 좋은 소고기입니다. 이걸 적당히 잘라요. 그리고 불판에 구워요. 적당히 익으면 먹어요. 참 쉽죠?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입니다.

심후가 고기를 굽는데 옆에 다가온 당면이 심후의 행동을 따라하며 떠들었다. 이번에 하게 된 요리는 스테이크였다.

스테이크는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요리라고 봐야했다. 불을 사용하면서 무엇이 제일 먼저 구워졌는지는 모른다.

생선이 구워졌을 수도 있다. 혹은 과일이나 곤충이 가장 먼저 구워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렵민족 중 하나가 고기 덩어리를 구웠다면, 그리고 고기를 빨리 익혀 먹으려고 잘라서 구웠다면 스테이크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불을 사용한 요리. 굽기!

굽는다는 것은 정말 역사가 오래된 전통의 요리법이다.

역사가 진행되며 굽는 것에도 방법이 생겼다. 오븐을 이용하기도 하고 철판을 이용하기도 했다. 혹은 불에 직접 굽기도 했다.

헌데 이 굽는다는 행위는 굉장히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겉이 익게 되면 속은 어떻게 되었는지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적당한 기구가 탄생하기 전까지 고기를 잘 굽는 사람은 대접받는 요리사가 될 수 있었다. 허나 온도를 측정하는 방법, 그리고 요리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이를 뒤집었다.

심후는 과학적인 굽기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다. 최적의 두께로 고기를 잘라내 넓게 편 스테이크는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었다.

정말 고전적인 요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만드는 것은 당면의 설명대로 무척이나 간단했다. 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지만 제대로 잘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소스는 사용하지 않았다. 약간의 소금과 고기만으로 승부를 봐야만 했다.

재료에 제한이 걸려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고기의 맛을 최고로 끌어낸다!'

물론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테이크란 것은 사람마다 기호가 달랐다. 어떤 사람은 퍽퍽할 정도로 바짝 익힌 것을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은 겉만 살짝 익은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부드럽고 육즙이 가득한 고기를 씹고자 하는 사람에게 퍽퍽하게 바짝 익은 고기를 주면 싫어한다. 반대로 바짝 익은 것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덜 익은 것 같은 감각을 주는 부드럽고 육즙이 가득한 고기를 주면 싫어한다.

이것이 바로 기호였다.

때문에 심후는 고기를 한꺼번에 다 익히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올려서 굽기 시작했다. 

'웰던, 미디움, 레어로 해서 동시에 내자.'

요리사의 또 다른 고민은 바로 이것이다.

주문을 받으면 요리의 순서를 순식간에 정해서 해야 한다. 5명의 손님이 와서 모두 완성되는 시간이 다른 요리를 주문했는데 요리가 나오는 시간이 제각각 다르면 안 된다.

누군 먼저 먹고 누군 구경만 해야 하는 사태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먼저 먹기 시작한 사람은 다 먹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또 기다려야 한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런 식으로 서비스하면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때문에 요리사는 요리의 순서를 정해서 만드는 것도 신경 써야 했다.

모두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식탁 위에서 같이 밥을 먹는 하나 된 행동을 통해 일체감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다 됐습니다.

"심후가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자 사람들은 각자의 기호에 맞는 스테이크로 몰려갔다.

"오오! 이 육즙봐!"

"크아! 녹네 녹아."

"쩝쩝쩝쩝."

살짝 익힌 레어, 중간 정도로 익힌 미디움, 그리고 아주 바짝 익힌 웰던. 출연자들은 기호에 맞는 것을 썰어서 한 입씩 먹었다. 어떤 이들은 골고루 하나씩 먹었다.

"아아, 이건 기적이야."

그 동안 지옥 같은 요리만 먹다 정상적인 것을 먹게 되니 행복했다. 역시 먹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살인도 하는 것이 사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연신 기뻐했다. 하지만 이때 은밀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바쁘게 먹던 포식이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그러자 신나게 먹던 당면과 소고기도 뒤로 물러났다. 포식이 슬쩍 눈짓을 하자 두 사람이 움직였다.

'뭐하려는 거지?'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심후는 움직이던 이들을 바라보았다. 

'저건 소금인데?'

두 사람은 당면이 만들었던 요리에 소금을 열심히 뿌리고 있었다.

심후가 스테이크를 구울 때 당면도 설명을 하면서 따라했다. 그렇게 해서 구워진 고기는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었다. 소금이 다 뿌려지자 당면이 고기를 조금 잘라 소고기에게 내밀었지만 소고기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대신 접시를 받아 테이블로 향했다.

"자! 여기 고기 더 있습니다!"

소고기가 접시를 내려놓자 고기에 푹 빠져있던 이들은 서둘러 먹기 시작했다.

허나 당면과 소고기의 움직임을 본 사람들은 이미 물러난 상태, 걸려든 사람들은 눈치도 없이 정신없이 먹던 이들 뿐이었다.

"짜!"

"이거 뭐야!"

"하하하하하! 요리를 구분하지 못하다니 심사위원으로서 자각이 부족합니다!"

포식은 연신 비꼬며 폴짝거렸다. 정말 얄미운 남자다.

매 회마다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달이 난 것처럼 행동했다.  

'저것도 캐릭터겠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먹어봐'를 성공시킨 것은 포식이었다. 성공 시킬 때의 구성은 계속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이것을 버리면 프로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그렇게 되면 맛없는 것을 먹고 괴로워하는 것을 일부러 봐주던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게 된다. 먹어봐의 정체성은 바로 '위험한 요리'라고도 할 수 있다.

심후가 더 빛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위험한 폭탄 같은 요리가 즐비한 상황에 도전하는 존재인 것이다.

마왕에게 도전하는 용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별처럼 빛났다. 그런 면에서 보면 포식은 마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심후는 움직였다. 준비된 식재료에서 과일을 찾았다.

'사과?'

 식칼이 움직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4쪽으로 잘렸다. 손이 잠깐 안 보인다 싶더니 껍질도 다 벗겨졌다.

정말 사과 하나 해체하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고수다!"

누군가의 외침이 있었으나 심후는 이를 무시하고 맛없는 고기를 먹게 된 사람들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드세요."

"계속 출연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우리 끝까지 함께 하는 겁니다."

소금으로 듬뿍 간을 한 맛없는 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사과로 입가심하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심후에게 매달렸다.

출연자들에게 심후는 한 줄기 희망이자 구원이었다.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심후에게 매달렸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나자 사람들은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카메라의 불이 꺼지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표정이 변했다.

피곤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무표정인 사람도 있었다. 여러 가지 표정을 가진 이들은 각자의 시간을 쓰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허나, 한 사람은 뚱한 표정으로 심후에게 다가왔다.

"오늘 어땠어요?"

"뭐가요?"

"스튜디오 촬영 처음이잖아요. 힘들지 않았어요?"

"별로요."

"그래요?"

잠깐 대화가 끊어졌다. 

'어휴, 남자가 뭐 이래?'

지윤은 속으로 불평하면서 심후를 관찰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상대를 알아야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외모만 보고 혹하는 남자는 아니야.'

이런 남자는 유혹하기 까다로웠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느낀다.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하지만 외모를 봐도 변하지 않는 남자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까다로웠다.

"시간 있어요?"

"없어요."

"왜요?"

"그냥요."

'이건 완전 철벽이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지윤에게는 철벽 방어를 고수하는 심후였다. 심후는 식재료들을 정리하며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챙겼다.

포식이 방송하고 남은 재료 중 가지고 싶은 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심후를 지윤은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었다.

이 정도로 무시를 당하면 자존심 상해서 포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허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심후의 철벽이 넘어서야만 할 벽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여자의 자존심은 때론 이상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혹시 올라이프 해요?"

움직이던 심후가 잠깐 멈췄다. 

'대답해 말아? 귀찮은데 그냥 떼어버릴까? 아니면 게임 속에서 이용할까? 이대로 인간관계를 이어나간다면 분명 귀찮아질 텐데. 하지만 게임에서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게임을 안 했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뇨. 안 해요."

거짓말을 했다.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세상에 사람은 많다.

굳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과 억지로 인간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싶지 않은 심후였다.

"거짓말."

아주 잠깐의 머뭇거림조차 놓치지 않은 지윤이었다.

심후는 지윤을 무시했다.

"자꾸 사람 무시하지 마요!"

"우리 피곤하게 이러지 말죠."

"그럼 사람대접 해줘요."

"네,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도 하죠."

"이이! 이게 무슨 사람대접이에요."

지윤이 또 화를 내자 심후는 피식 웃었다.

"예쁘다고 남자들이 다 떠받들어 줬나본데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남자들이 대접해줘야 한단 착각은 버리세요."

지윤은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심후는 그 사이에 얼른 식재료를 챙겨 스튜디오를 나왔다.

홀로 남게 된 지윤은 기가 막혀서 가슴을 두드리다 소릴 질렀다. 분노의 함성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지윤은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심후는 그 사이에 얼른 식재료를 챙겨 스튜디오를 나왔다.

홀로 남게 된 지윤은 기가 막혀서 가슴을 두드리다 소릴 질렀다. 분노의 함성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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