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크-52화 (52/55)

Chapter 52. 무너지는 삼국 연맹!

"이거 너무 규모가 커지니 말이 나오지 않는 군"

"그보다 조금 걱정이 됩니다. 공작님! 아직 기간테스를 조정하는 기사들의 숙련도가 떨어집니다. 전쟁 선포는 좀 이르지 않았나 싶은 데요?"

측근의 수하가 우려를 표시했지만 스베인 왕국의 비오텐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지가 않아. 우리의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북구연합군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된다. 그들 보다 우리가 나은 점이라고는 무기와 병력 수자뿐이야. 하지만 북부 합군은 전쟁 경험이 풍부하다. 또한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우수한 병력들을 가지고 있어, 그런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준다면 그나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리한 점이 사라진다. 저들이 준비를 끝내기 전에 우세한 숫자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저들에게 숙력된 기간테스 조종사들이 있다고 해도 우리의 기간테스는 그 보다 몇배가 많다. 숫자로 눌러버리는 길 밖에 없어. 이 전쟁은 시간 싸움이야, 누가 더 빨리 선수를 치느냐지."

비오텐 공작은 성안 가득히 늘어서 있는 기간테스를 바라보면서 오히려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내가 두려운 것은 저들이 너무 조용하다는 점이야. 마치 이건 폭풍 전야의 고요 같아서 불안해.'

성벽의 단단한 대리석 모루에 손을 올려놓은 비오텐 공작은 많은 장비가 오고가는 성의 광장을 보며 자꾸만 엄습하는 불안감을 떨쳐 내려 애를 썼지만 날이 선 칼날 위를 걷는 광대를 보는 것처럼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 그의 마음을 나타내듯 굳게 입을 다문 비오텐 공작의 주변의 공기가 한없이 무거웠다.

"어서 오십시오, 호크 장군님!"

활짝 열린 게이트를 통과하는 병력을 호위하던 이지중대의 루크 소령이 반갑게 호크를 반겼다. 그런 루크를 보고 호크도 주먹으로 루크의 가슴을 가볍게 치며 화답했다.

"수고했다. 테인스 필드 성의 분위기는 어때?"

"조금 전에도 엄청난 양의 물자가 안으로 들어갔는데 로베니아 제국의 문장이 찍힌 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루크의 말을 들으며 호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로베니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북부 연합군이 크게 착각하고 있던 사항은 로베니아의 군사력이 크게 감소했을 거란 낙관론이었다. 물론 병력면에서는 그 수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장비와 물자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것이 지금의 삼국연맹이 북부 연합군을 위협하게 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결국 로베니아는 여전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호크의 머릿속은 삼국 연맹을 저지시킨 뒤 로베니아 와의 두 번째 싸움을 그리고 있었다. 북구 연합군과 로베니아제국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새겼다. 숲속 너머 테인스필드 성의 고색창연함이 달빛을 받아 고고하게 빛나고 있었고 푸른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울창한 숲은 북부 연합군의 날카로운 무기가 달빛을 받아 번뜩이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 시각 할란 연방의 국경부근에도 레센의 반 봄멜 공작이 이끄는 공격 부대가 어둠을 틈타 접근하고 있었다. 삼국 연맹이 선전 포고를 한 그 날 밤 이미 북부 연합군의 주력 부대가 그들의 턱밑에 와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심지어 로베니아 제국마저도 그 날 밤의 일은 상상조차 못했고 날이 밝을 무렵 대륙은 또 한 번 충격 속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콰콰광!

"막아라! 무엇이든 던져서라도 적군을 막아!"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해진 비오텐 공작은 피를 토하며 고함을 질렀다.

오후가 되면 삼국 연맹이 동시에 북부 연합군을 치기로 되어 있었는데 오히려 날이 밝자 마자 북부 연합군이 들이 닥치니 그야말로 혼비백산할 일이었다. 역사를 자랑하던 테인스 필드 성은 이미 색이 바래고 있었다. 고대인들의 무기로 보이는 전차들이 불을 내뿜자 성곽의 수비 병력들은 변변히 방어 한 번도 못해보고 지리멸렬했고 자다가 일어난 병사들은 지휘관들의 통제를 받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로베니아에서 보급받은 최신의 무기들은 그저 너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그걸 운용할 병력이 없다면 그것은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곧이어 대지가 흔들리며 비오텐 공작이 쓰러지려는 몸을 검에 의지해서 버텼다. 황급히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달려가니 북부 연합군의 기간테스들이 테인스 필드 성문을 몸으로 열려고 하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비오텐 공작이 입술을 깨물자 붉은 피가 턱 선을 따라서 흘러 내렸다. 늘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호남의 비오텐 공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절규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광장에서 전투가 끝날 때 까지 서있기만 할것 같던 기간테스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걸음을 떼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베인 왕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그제 서야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간테스 작동 법을 배운 기사들이 어렵사리 기체를 움직이며 성문을 향해 달려 나갔고 비마스 전차대도 로베니아에서 파견된 교관들과 함께 자신들을 매섭게 몰아치는 북부 연합군을 향해 반격을 시작했다.

"놈들도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느리군."

무심하게 전황을 살펴보던 호크는 의외로 스베인 왕국의 방어력에 실망하고 있었다. 선전포고를 했기에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며 걱정했던 호크는 테인스필드의 방어태세를 보고 무척이나 실망을 했다.

호크가 보기에는 전쟁을 앞두고 있는 나라의 병사들이라고 불수 없을 정로도 그 대비가 미흡했다. 어제 긴장하며 잠을 설친 것이 후회 될 정도였다. 그 때 땅이 흔들리며 테인스필드 성문이 열리며 로베니아의 기간테스들이 뛰쳐나오자 비로써 호크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벽이 열리고 50여기의 기간테스들이 뛰쳐나오자 테인스필드 성벽을 공략하던 이지 중대원들과 케린버그 왕립군 2사단 병력이 신속하게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나자 케린버그의 기동 전대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쿵쾅! 쿵쾅!

땅을 울리던 기간테스들이 서로 교차하며 접근전을 벌이자 금세 들판은 혼전 속에 빠져 들어가며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 그 사이를 북부 연합군이 틈을 놓치지 않고 성벽을 공략해 왔다. 자국의 기간테스 출현에 환호성을 질렀던 스베인 왕국의 병사들은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와 충돌하는 북부 연합군의 기간테스를 보고 함성이 잦아들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기간테스의 움직임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군의 기간테스들이 아기 걸음마라면 북부 연합군의 기간테스들은 어른의 달리기였다. 게다가 그들의 손에는 커다란 검과 방패가 아주 위협적으로 보였고 전투가 시작되자 스베인왕국의 기간테스들은 무참하게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기간테스의 기종과 성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그것을 조정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나도 너무나 현격하게 실력차이가 났고 그것은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고도 금세 눈으로 들어났다.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비오텐 공작은 북부연합군의 기간테스들이 거대한 검과 도끼로 자신들의 기간테스를 유린하는 것을 지켜보며 치를 떨었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기간테스를 겨우 손에 넣어서 기쁨에 떨었고 로베니아 제국과 자신들의 차이는 단지 기간테스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오산이었는지 그는 새삼 깨달았다.

"우리 삼국 연맹은 바보들이었어. 로베니아가 던져준 선물에 정신이 빠져서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 한 거야!"

비오텐 공작은 손에 든 검을 힘없이 내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스베인 왕국이 자랑하는 철혈 기사단과 테인스필드 성을 수비하던 10만명의 대군이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들의 기간테스 50여기가 힘도 못쓰고 부서진 것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그들이 기간테스의 싸움에 정신이 팔린 사이 북부 연합군이 어느새 성안으로 진입을 했고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소드마스터 알렉스 호크가 그의 검 제로에 오러를 잔뜩 피워 올리며 마지막 남은 기간테스를 부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정보는 잘못된 것이었다.

털썩!

"우리는 속았다. 철저하게!"

비오텐 공작은 누군가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저주를 퍼부었지만 그 와 똑같이 피눈물을 흘리는 이가 또 있었다. 저 멀리 할란 연방의 죠클라이어드 공작이었다.

"피하십시오, 공작님!"

수행기사의 비통한 말에 육중한 거구의 몸을 부들부들 떨던 죠클라이어드 공작은 미친 듯이 웃어 댔다.

"하하하! 어린아이 마냥 손에 쥐어준 사탕을 좋다고 만하고 있었으니 우리는 그런 아이보다 어리석었어!"

"공작님, 지금은 잠시 몸을 피하시고 후일을 도모해야만 합니다."

수행기사 죠클라이어드 공작의 몸을 잡아 끌었지만 공작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주저하는 사이 할란 연방의 대표적인 전진기지인 오크스다임 성벽이 허물어지며 북부 연합군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백기를..."

"네? 뭐라고 하신겁니까?"

"백기를 올려라!"

"고, 공작님..."

"이미 끝난 싸움이야. 삼국 연맹이라 후후후 처음부터 알버스크 왕국에게 놀아난 셈이야. 우리를 희생시켜서 뭘 얻으려고 한 거지?"

회한이 가득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던 죠클라이어드 공작은 힘없이 웃음을 흘렸다.

"스베인 왕국도 우리 꼴이 나고 있겠군."

죠클라이어드 공작이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의자에 몸을 내던지고 한숨을 쉬었다. 눈을 감자 환한 미소로 손을 내밀고 연맹을 제의하던 알버스크 왕국 테렌스 공작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이 떠올랐다.

"훗, 당했어!"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자 결국 질끈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개 숙인 죠클라이어드 공작의 의자 뒤로 알버스크와 긴급연락 때 쓰는 통신구에서는 아무런 회신도 오지 않고 있었다. 애타게 연락을 취하던 마법사도 공작처럼 고개를 떨어뜨렸다. 분홍빛 미래를 꿈꾸던 할란 연방의 희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죠클라이어드 공작은 현명한 편이었다. 호크에게 사로잡힐 때까지 스베인 왕국의 비오텐 공작은 알버스크에 대해서 의심하지 못했다. 작은 단검이 죠클라이어드 공작의 목에 선혈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의 몸에서 생명이 조금씩 빠져나가자 수행기사와 마법사가 거의 발밑에 엎드려 통곡했다. 북부 연합군에게 선전포고를 했던 삼국 연맹 중 스베인 왕국과 할란 연방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북부 연합군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대륙의 모든 이들이 놀라서 기절할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적어도 사람들은 용호상박龍虎相搏의 대결을 기대했건만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나 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알버스크 왕국이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구심으로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두 동맹이 침략당하고 있는 동안 왜 알버스크 왕국은 침묵했는지 그리고 북부 연합군은 왜 알버스크 왕국만 남겨두고 두 연맹국을 공격했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이제 세인들의 관심은 알버스크 왕국으로 쏠렸다. 그러나 알버스크 왕국은 문을 굳게 닫고 외부세계와 폐쇄시켰다.

"후~ 잠시 쉬었다 가지."

"네, 싸이클론님!"

핸들러가 이마의 땀을 훔치고 있는 싸이클론에게 물통을 건네자 싸이클론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마셨다.

"후아, 이제야 좀 살겠군!"

"싸이클론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알버스크 왕국이 지난번 왔을 때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마치 다른 세상 같습니다. 어떻게 땅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핸들러가 무릎을 꿇고 숲의 흙을 만져보는 모습을 보던 싸이클론이 물을 손에 조금 덜어서 얼굴에 뿌렸다. 정신이 좀 들자 싸이클론은 숲을 둘러보았다.

"이 숲도 이미 죽은 지 오래야, 첩자들의 보고를 토대로 종합해 보았을 때 알버스크 왕국에도 고대인들의 유적이 있는 것이 분명하네, 아마도 오래전에 발견했을 거야. 하지만 그 쓰임새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인거 같아.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일을 벌였겠지."

물통의 마개를 단단히 틀어막은 싸이클론이 지친 몸을 일으켰다.

"자, 가세나. 점점 그 기운이 가까이 느껴지기 시작 했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해. 그 괴물들을 깨우기 전에 손을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알버스크가 대륙의 주인이 될 텐데 자네도 그 꼴을 보고 싶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싸이클로님!"

물통을 건네받은 싸이클론이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싸이클론이 몸을 돌려서 움직이자 숲속에서 검은 군복을 입은 이들이 서둘러 주변을 따라 움직였다. 어느새 핸들러 뒤에 나타난 챠챠 소령이 낮게 속삭였다.

"특임대가 주변을 살펴봤지만 국경처럼 경계가 삼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을이 폐허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알겠네, 자네와 특임대가 수고하는군. 호크 장군님과 레센의 공격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알버스크의 비밀을 알아내야해! 올칸 영지로 해서 드베리안 영지를 지나서 우리의 목적지인 헤미칸 신전에서 만나지."

핸들러 역시 낮게 속삭이자 챠챠 소령이 구령 없이 거수경례를 올렸다.

"네, 대령님도 몸 조심하십시오! 그럼."

말을 마치자마자 특임대와 함께 챠챠 소령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시 그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핸들러는 서둘러 싸이클론을 쫓아갔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치자 생기를 잃은 나무에서 바짝 말라붙은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다. 곧 겨울이 올 시기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까지 숲이 메마른다는 것은 이해가가지 않는 일이었다. 바람이 싸이클론이 앉아 있던 나무 등걸을 건드리자 사라지자 잠시 후 나무 등걸이 퍼석! 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 흔한 새소리마저 나지 않는 숲은 싸이클론의 말처럼 죽음의 숲처럼 고요했다. 북부 연합군이 할란 연방과 스베인 왕국을 공격하는 동안 싸이클론과 핸들러를 비롯해서 케린버그의 특수부대인 특임대 소속 대원들이 대거 투입된 알버스크 왕국에서 이들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세인들의 추측과 달리 북부연합군이 알버스크 왕국을 그냥 둔 것이 아니고 이미 왕국 깊숙이 파고들어가 작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말라죽어가는 숲속을 빠져나온 싸이클론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핸들러는 아예 할 말을 잃어버리고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대륙을 수없이 여행한 싸이클론도 핸들러도 전혀 보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저, 저게 도대체 뭡니까?"

겨우 입을 떼고 의문을 표시하던 핸들러는 고개를 돌리며 좀 더 주위를 살폈지만 똑같은 풍경에 기운이 빠져서 어깨를 늘어뜨렸다. 핸들러와 싸이클론를 놀라게 한 것은 발아래 절벽 밑으로 펼쳐진 말로 표현할 지 못할 혼돈이었다.

폐허...

도저히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지고 망가뜨려놓아서 부서진 신전이 없었다면 그 표식이 없었다면 이곳이 어디였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이곳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간간히 몇 군데는 그 형태가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부서진 채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대체 무슨 일이 이곳에 있었던 것일까? 죽음의 냄새를 가득히 풍기며 불어오는 바람에 피어오른 흙먼지가 뿌옇게 날아올라 폐허 속에 위태롭게 서있는 신전 안으로 몰려갔다. 바람의 숨결이 신전의 내부로 흘러가자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검불덩어리가 따라서 굴러갔다. 핸들러와 싸이클론이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절벽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뭔가 썩는 냄새가 숨쉬기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 이었다.

탁!

걸음을 옮기자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핸들러는 흙을 치워냈다.

마이란스!

낡아 빠진 나무판자에 마이란스를 상징하는 꽃과 검으로 된 문장과 마이란스라고 새겨진 글자가 빛바래져 있었다.

마이란스는 알버스크 왕국에서 가장 고귀하고 정신적 문화가 발달한 신성도시였다. 고대의 신들과 고대인들의 삶을 따르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곳이었다. 싸이클론이 핸들러에게 나무판을 건네받고서 심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참 멋진 곳이었는데. 이제 다시는 마이란스의 벌꿀 차 맛을 볼 수가 없겠군."

그의 눈은 자신이 여행길에 매번 들려서 마셨던 그 찻집을 찾는 듯 했지만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핸들러가 검을 꺼내들고 앞으로 나섰다. 뭔가가 살아 있어보이지는 않았지만 안으로 더 들어가니 바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폐허 속에서 뭔가 기분 나쁜 것들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가장 땅이 많이 파헤쳐진 곳에 이르자 잔인하게 도륙된 짐승들의 사체가 가득 쌓여있는 곳을 지나가야만 했다. 썩어가는 죽은 짐승 귀에서 거미가 들락날락 하는 광경이 저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게 만들었고 그래서인지 코와 입을 가린 핸들러에게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 나왔다.

짐승들을 저리 잔인하게 죽였으니 산 사람을 어떻게 했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땅이 뒤집어져 생긴 언덕위에 올라서자 예전에는 화려한 신전이었을 것 같은 건물이 형체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후우, 시간의 틈을 지키는 고대의 신전 아크라트로스에 이런 비극이 벌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콜록 콜록!"

심하게 기침을 하던 싸이클론이 부축하려는 핸들러의 손을 뒤로 물리고 미끄러지듯 언덕에서 내려와 신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핸들러는 아까부터 누군가 지켜보는 시선을 느끼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싸이클론의 곁을 지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잠시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노려본 후에 싸이클론의 뒤를 따라서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메케한 냄새가 숨도 쉬지 못하게 복도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싸이클론이 두 팔을 들어 바람을 불어와 복도 안을 쓸어내자 겨우 기침을 멈추고 신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인지 뭔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액체가 천정에 흘러 내려왔다. 그 물이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와 뒤섞여 진창을 만들어 냈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창을 통해서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밑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싸이클론의 눈은 무엇보다 진지했다. 그는 여기서 해답을 얻고자 했다. 그것이 지금은 레센의 영토가 되어버린 베를로니아 지하의 고대 도시에서 징후를 느낀 드래곤들의 경고에 따라서 온 이유였다. 문지기 야누아리우스(Januarius)가 지키는 쿰 클라비(cum clavi)에서 어렵게 탈출한 후 아레네스와 레토니어스는 복수 대신 드래곤들의 삶에 대한 고찰을 위해 은둔에 들어갔다. 싸이클론이 애타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이미 중간계의 조율자란 자리에 회의를 느끼고 더 이상 신의 놀음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면 고대인들의 유물 발굴만 도와주고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다시 나타나 한 가지를 알려주었다. 알버스크 왕국에서 꺼내지 말아야 할 고대의 물건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에 이 자리에 왔고 확인하기 위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건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실내는 더욱 엉망이었다. 온통 불길에 그을리고 벽면은 피칠을 해 놓았는지 검붉게 변해 있었다. 신관 복장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불에 타다만 시체들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수가 점점 많아졌다. 코와 입을 가린 천을 손을 눌렀다. 악취가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우욱!"

수많은 전장에서 지옥을 경험한 핸들러가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 신전의 지하 광장에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신관들이 무릎을 꿇고 지하 광장에 죽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죽어있었다.

눈이 뽑히고 혀가 잘리고 손과 발이 잘린 이들도 있었지만 온 몸의 살가죽이 벗겨져 호흡을 하지 못해 질식사한 이들은 얼마나 고통 속에서 몸부림 쳤는지 주변이 피로 가득했다. 더욱 잔인한 것은 그 중에 대부분이 어린 신관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저런 고문을 가할 수 있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싸이클론이 분노를 삭이며 신관들의 시체 사이를 돌아 다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이 많은 영혼들을 희생시켰단 말인가? 그게 누구든지 결코 편히 잠들지 못할것이야. 절대로!"

이를 가는 싸이클론을 보며 핸들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몸은 한 마리 늑대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밖에서부터 지켜보던 기분 나쁜 시선이 이곳까지 따라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핸들어의 날카로운 검이 허공을 갈랐다.

"으아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핸들러는 검을 급히 회수했다. 기분 나쁜 시선의 정체는 조그만 아이들이었다.

"뭐, 뭐야?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지?"

정작 놀란 것은 아이들보다 핸들러 자신이었다. 이런 곳에 아이들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벌어진 소동에 싸이클론도 급히 달려왔다. 핸들러에게 놀란 아이들의 얼굴은 땟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놀라서 흘린 눈물로 무척이나 불쌍해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겁에 질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들은 비오는 날 피할 곳을 모르고 겁에 질린 강아지 같았다.

"그만하게 아이들이 놀라서 어디 말이나 하겠나, 숨이나 돌리자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서 나가지."

싸이클론의 말에 핸들러는 서둘러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밖을 향해 나갔다. 그 뒤를 따르던 싸이클론은 광장 입구에서 뒤로 돌아섰다.

"불의 힘이여 모든 죄를 멸해 주소서!"

싸이클론이 지팡이를 높이 들어 외치자 지하 광장 안에 무서운 불기둥이 솟아올랐고 추악하고 더러운 것을 감추려는 듯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영혼이나마 편안하시길, 신의 가..."

신의 가호를 빈다는 말을 하려던 싸이클론은 그 말을 집어 삼켜야만 했다. 이 모든 일이 신의 의도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불길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모든 것을 태워버리자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혼들이 싸이클론에게 감사해하며 하나 둘 사라져갔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굳은 얼굴로 싸이클론이 빠져나가자 불길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허참, 요놈들 좀 보게. 천천히 먹어라, 누가 안 뺏어가니까. 물도 좀 마시고."

핸들러가 물통을 건네주었지만 아이들은 입안 가득한 마른 빵을 집어넣기 바빴다. 보아하니 며칠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은 듯 했다. 별수 없이 아이들이 빵을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얼마 후에 빵을 다 먹고 주린 배를 채운 아이들이 털어 놓은 이야기들은 아주 놀라웠다.

"그러니까요, 마이란스는 절대로 군대가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거든요. 아무리 유명한 기사라도 검을 풀어 놓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 마이란스에는 들어 올수가 없는 곳인데. 갑자기 왕국의 군대가 들이 닥쳤어요."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가 당시의 상황을 세세히 설명했다.

"신관 할아버지들이 길을 막고서 군대를 돌려보낼 려고 했는데...했는데..."

기억을 되살리던 아이는 갑자기 겁에 질렸는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그것은 절대적인 공포에 빠진 모습이었다. 싸이클론이 얼른 다가가 손에 마나를 가득 담아 아이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자. 서서히 아이의 안색이 되돌아왔다.

"가, 갑자기 괴물이 나타났어요. 커다란 괴물이 하나 둘, 셋, 넷, 움직일 때 마다 이상한 소리가 나며 모든 것을 파괴했어요."

"기간테스!"

핸들러의 입에서 단발마의 외침이 터져 나왔고 싸이클론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본 것은 기간테스였다.

이곳 마이란스는 신성도시 샹그릴라와는 다른 성격의 신성도시였다. 샹그릴라가 철저하게 주신 쥬(ju)섬기는 것과 달리 이곳 마이란스는 모든 신들을 아우르는 신앙의 총아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 토속 종교의 작은 신들로부터 고대의 신들까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신들이 사는 땅이라는 불리는 마이란스의 뜻도 바로 신들이 머무는 거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그 잘난 로베니아 제국마저도 절대로 무례하게 굴지 않는 곳이었다. 고대인들의 전쟁터였다고 전해지는 알버스크 왕국에서도 이곳 마이란스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었고, 그 제멋대로인 로베니아의 발렝 황제도 마이란스를 방문했을 때에는 비무장으로 의식에 참가했을 정도로 신성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타국도 아니고 자국의 군대가 짓밟은 것이었다. 뭔가 대단한 이유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참상이었다.

"그들은 마이란스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신관들을 잡아서 신전 지하광장으로 끌고 갔어요. 그리고는 무언가에 대해서 말하라고 다그쳤어요."

"그게 먼데?"

"무슨 지팡이라고 했는데? 뭐라고 했더라?"

아이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애타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핸들러와 싸이클론을 보더니 조바심이 나나 보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한 참을 고민하더니 손뼉을 쳤다.

"아! 맞다. 폴렌시아의 지팡이!"

아이는 자신이 기억을 해낸 것이 기뻐서 소리를 질렀지만 싸이클론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폴렌시아의 지팡이, 그것은 바로 네 번째 낙인의 출현을 알리는 말이었다.

[성스런 돌이 샹그릴라를 떠나지 아니하매 폴렌시아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길 바라매,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네 번째 낙인의 출현, 종내 오면서 마음속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누르던 근심거리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아레네스와 레토니어스가 주저하며 끝내 말해주지 않았던 알버스크 왕국에서 되살리려하는 고대 유물의 정체는 네 번째 낙인이 출현하는 데 필요한 폴렌시아의 지팡이였다. 단 한번 대륙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폴렌시아의 지팡이는 만물의 생명을 조정하는 힘이 있다고 전해지는 신기(神奇)였다. 고대인들의 전쟁 당시 유실 된 것으로 알려진 폴렌시아의 지팡이가 이곳 마이란스에 있었다니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아이의 어깨를 바로 한 싸이클론이 나직하게 물었다.

"그래서 신관들이 지팡이가 있는 곳을 말해줬느냐?"

아니길 바랐지만 아이의 고개가 위 아래로 끄덕이자 눈이 감기며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토해낸 후 싸이클론은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그래, 너도 신관이 한 말을 다 들었니?"

아이는 싸이클론의 얼굴이 무섭게 변하자 울먹이는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팡이가 숨겨져 있는 곳은 어디냐?"

두려움에 떨던 아이가 손을 들어 어느 곳을 가리켰다. 아이의 손끝을 따라가니 그곳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는 높은 산이 있었다. 그 산을 바라보는 싸이클론의 눈썹이 몹시 꿈틀거렸다.

성산(聖山) 마르히바도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신들이 잠들어 있는 곳. 이 대륙에서 가장 성스럽고 신성한 곳으로 알려진 성산 카일라스에 네 번째 낙인이 숨어있다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핸들러는 서둘러 특임대에 연락을 해서 이곳으로 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제 다른 영지를 구태여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핸들러는 아이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며 멀리 떠날 것을 당부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식량을 받아 들고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두 사람의 눈이 성산 카일라스의 정상에 꽂혀서 한 동안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성산 마르히바도르에 오르기 위해서 뛰었다. 아직 늦지 않았기를 간절히 마음속으로 빌면서 필사적으로 달렸다.

성산 마르히바도르는 위도상으로 별로 높지 않지만 지형이 높고 험준하며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한랭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특히 타히메산맥에는 식생이 전혀 없는 고산 한랭지역 이므로 평균기온은 0℃ 이하이며 한 여름이 되도 대부분의 지역이 20℃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일교차가 크고 강풍이 부는 날이 많아서 정상을 오르는 길이 매우 험하다. 성산 마르히바도르로 가는 중간 계곡은 로베니아 제국의 솔라리온 골짜기로부터 계절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연평균기온 10℃ 안팎이고 연평균강수량도 엄청나게 많은 지역이 대부분인 아주 험한 산이었다.

북부 연합에서 길을 떠날 때 따로 여정을 정하지 않았지만 종착지를 알버스크의 수도로 정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의외의 곳에서 벌어졌고 작전도 변해야 했다. 핸들러의 메시지가 특임대를 통해 본국으로 전해졌을 테니 서둘러야 했다.

"후우, 후우"

"평지에서 걷는 것처럼 걷다가는 금방 쓰러질 걸세 호흡을 천천히 하게,"

점점 높이 오르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자 싸이클론이 핸들러에게 주의를 주었다. 싸이클론이 마나를 집중하며 정화 마법을 사용하자 창백했던 핸들러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마법으로 정상까지 가면 안 되겠습니까?"

혈색이 돌아온 핸들러가 싸이클론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자 싸이클론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산이 달리 성산 마르히바도로이겠나, 신들의 숨결이 잠들어 있는 성스러운 곳 정상까지는 고행의 등반만 허락 한다네 누구도 마법으로 오른 자는 없어"

"제길!"

인상을 쓰는 핸들러의 등을 두드려준 싸이클론이 다시 몸을 일으키며 걸음을 서둘렀다. 노인도 저렇게 힘을 쓰는데 젊은 핸들러는 민망해져서 얼른 뒤를 쫓았다.

멀리 보이는 설봉(雪峰)이 유난히 높아 보였고 핸들러가 투덜거리며 내던진 눈덩이에 먹이를 찾던 작은 짐승이 깜짝 놀라서 얼른 제집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커다란 발자국이 나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기간테스의 발자국이었고 알버스크 왕국이 벌써 성산 마르히바도르에 올랐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다. 특임대나 지원군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서 산을 올랐다. 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에게 맞바람을 쳤다. 신이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순례자들이 쌓아둔 것으로 보이는 돌탑만이 두 사람을 반기며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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